내 씨앗



수박 먹고 싶어

노래하면

네가 수박씨 심어

그러고


능금 먹고 싶어

외치면

네가 능금씨 심어

그러더니


옥수수 먹고 싶어

말하니

함께 옥수수씨 심을까

하는 아버지.


옥수수알을 하나씩 떼어

이틀을 불리니

하얗고 작은 싹이 튼다.


싹이 튼 옥수수씨는 

흙으로 옮기니

다시 이틀 만에

길쭉하게 푸른 줄기 오른다.


아침 낮 저녁으로

옥수수싹 돌아보며

흙바닥 마를 적마다

물을 주며 속삭인다.


“예쁜 옥수수야 사랑해.

  무럭무럭 자라렴.”



2015.8.16.해.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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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들보라는 한 가지에 폭 빠지면



  고흥을 떠나 일산으로 마실을 가던 날, 산들보라는 제 빨간가방에 챙긴 장난감 자동차를 꺼내야 하기 때문에 전철 바닥에 쪼그려앉는다. 누가 부르든 말든 아랑곳하지 않는다. 오직 제 장난감 자동차를 쳐다보아야 하고 만져야 하며 꺼내야 한다. 한 가지에 깊이 빠져들어 온마음을 쏟는 모습이 아이다우면서 사랑스럽다. 그래, 어디에서나 네가 놀고 싶은 대로 놀아야지. 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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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름벼리는 배롱꽃 앞에서



  배롱꽃 곁에 서면 배롱꽃이 베푸는 냄새를 온몸으로 맡는다. 냄새는 코로만 맡지 않는다. 냄새는 온몸으로 맡으면서 받아들인다. 찻길 옆을 거닐면 배기가스 냄새가 온몸에 스며들고, 숲길을 거닐면 숲내음이 온몸에 스며들듯이, 배롱꽃 곁에서는 온몸에 배롱꽃 냄새가 찬찬히 스며든다. 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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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랑 놀자 143] 흔들아비



  아이들을 자전거에 태우고 바닷가로 마실을 가다가 남새밭 옆을 지나면서 ‘흔들거리는 곰 모습 반짝이’를 봅니다. 여덟 살 아이는 이 모습을 보고 다섯 살 동생한테 “저기 봐, 저기 곰이 흔들려!” 하고 말하더니, “아버지, 저기 흔들리는 곰은 뭐야?” 하고 묻습니다. 나는 아이가 외친 말을 고스란히 받아서 “응, ‘흔들곰’이야.” 하고 이야기합니다. 바람 따라 흔들리면서 새를 쫓는 구실을 하는 곰 모습을 한 인형이기에 ‘흔들곰’이라고 했습니다. 예부터 한겨레 들녘에는 ‘허수아비’가 씩씩하게 서면서 새를 쫓아 줍니다. 고장에 따라 ‘허새비·허재비·허수아재비’라고도 한다는데, 이 이름을 살짝 바꾸어 ‘흔들아비’ 같은 말을 쓸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바람 따라 가볍게 흔들거리면서 새를 쫓는 구실을 한다면 ‘흔들-’을 앞에 붙일 만해요. 햇빛을 반짝반짝 되비치면서 새를 쫓는 구실을 한다면 ‘반짝아비’라고 할 수 있을 테지요. 곰이 아닌 끈이나 띠를 길게 두르면 ‘반짝끈’이나 ‘반짝띠’이고요. 4348.8.19.물.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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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레한테 물리는 재미……까지는 아니나



  시골에서 살며 온갖 것에 골고루 물린다. 모기한테 물리는 일은 그야말로 대수롭지 않다. 게다가 시골모기는 도시에 있는 모기하고 댈 수 없다. 시꺼멓고 단단한 녀석은 하늘을 날 적에 파리채로 후려갈겨도 안 죽는다. 손바닥으로 짝 부딪혀서 잡아야 비로소 피를 좍 튀기면서 죽는다. 그런데 시골모기가 아무리 대단하다고 하더라도 하루 아닌 한 시간, 아니 십 분쯤 지나면 다 가라앉는다. 아무리 많이 자주 물어도 모기한테 물린 자리는 곧 아문다. 왜 그러한가 하면, 모기가 물든 말든 안 쳐다보면서 마음을 안 쓰면 그렇다. 그래서 나는 날마다 모기한테 수십 번씩 물리지만 물리는 줄조차 모르고, 때로는 ‘아, 어깨가 왜 이리 간지럽지?’ 하면서 어깨를 보면 모기 한 마리가 배가 터지도록 빨갛게 내 피를 빨아먹는 모습을 보곤 한다.


  올해가 아직 저물지 않았고 이제 팔월인데, 올들어 벌한테 세 차례 쏘였다. 올해에 지네한테도 세 번 물렸다. 이밖에 잠자리한테 한 번 물렸고, 골짜기에서 가재가 내 발가락을 한 번 깨물었다. 개미도 여러 차례 물었지 싶다. 다만, 개미는 내 몸을 아주 자주 올라타면서 기어다녔으나 몇 차례 안 물었다.


  도시에서 산다면 이런저런 벌레한테 물릴 일이 드물리라 본다. 시골에서 살기에 온갖 벌레를 만나고, 온갖 벌레가 나를 물면서 말을 거는구나 싶다. 그런데 온갖 벌레는 왜 나를 무는가? 풀을 뽑거나 벨 적에 물고, 내가 미처 알아채지 못할 적에 밟아서(지네) 문다. 어느 때에는 자다가 뒤척이면서 지네를 푹 깔고 눕는 바람에 지네가 나를 문 적이 있다. 모기는 알을 낳으려고 하니까 물고.


  벌레는 고작 침을 쏘거나 이로 깨무는 짓만 할 수 있다. 이렇게 해 보았자 사람이 목숨을 잃지 않는다. 뱀이 나를 꽉 깨문들 뱀 한 마리가 나를 죽이기는 대단히 어렵다. 그러나 사람은 온갖 벌레나 뱀을 아주 손쉽게 죽일 수 있다. 게다가 사람은 온갖 벌레나 뱀을 아주 손쉽게 죽이면서도 ‘미안하다’ 같은 마음을 안 품기 마련이다.


  지난해에도 지지난해에도, 그리고 올해에도 온갖 벌레한테 골고루 물릴 적마다 늘 생각해 보았다. 이 아이들은 왜 나를 물었을까? 틀림없이 까닭이 있으리라. 벌레들은 내 몸을 물면서 내 몸을 조금씩 바꾸어 주었다고 느낀다. 아이들을 태우고 자전거를 몰다가 숨이 턱에 닿아 헉헉거릴 즈음 하루살이 몇 마리가 입에 들어온 적 있다. 그러니, 나는 고스란히 ‘산 하루살이’를 삼킬밖에 없었다. 이런 뒤 어떻게 되었을까? 나는 죽을 일도 다칠 일도 아플 일도 없다. 다만, 하루살이는 짝짓기조차 못하면서 내 몸에서 그냥 죽는다.


  아이들을 자전거에 태우고 신나게 몰다가 때때로 개미를 밟거나 나비가 내 얼굴에 부딪힐 때가 있다. 이때에 개미도 죽고 나비도 크게 다친다. 나는 아무렇지 않다. 도시에서는 조금도 겪거나 느낄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시골에서는 참 흔하다.


  가만히 보면, 먼먼 옛날부터 시골에서 흙을 만지면서 흙밥을 먹고 흙살림을 가꾸던 사람들은 흙에서 삶을 짓는 벌레하고 이웃이 되면서 틈틈이 ‘벌레한테 물리기’를 겪었고, 이때마다 몸을 한결 튼튼하게 가꿀 수 있었지 싶다. 벌레한테 틈틈이 물리는 시골살이는 여러모로 재미있다. 4348.8.19.물.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삶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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