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을 사랑한 사진가, 김기찬



  ‘눈빛’ 출판사에서 곧 《골목을 사랑한 사진가》라는 사진책이 나온다. “김기찬, 그후 10년”이라는 이름이 작게 붙는 이 사진책은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사진을 하는 넋을 어떻게 가꿀 적에 사랑스러운 꿈이 피어나는가 하는 이야기를 새록새록 들려주리라 본다. 몇 쪽짜리로 어떻게 나올는지 모르겠지만, 이번 책에는 내가 쓴 ‘김기찬 사진비평’이 함께 실린다. 사진책도서관을 꾸린 지 올해로 아홉 해째이고, 사진비평을 쓴 지도 올해로 아홉 해째이다. 다른 어느 책보다 《골목을 사랑한 사진가》라는 책에 ‘사진책도서관 대표’라는 이름으로 김기찬 님 사진을 이야기하는 글을 실을 수 있어서 더없이 고마우면서 설렌다. 설레는 까닭은 나 또한 골목에서 태어나 골목아이로 자라다가 골목을 떠나 큰도시로 갔다가 다시 골목으로 돌아와서 사진책도서관을 열었으며, 우리 집 큰아이를 골목아이로 키우다가 시골아이로 새롭게 키우면서 살기 때문이라고 할까. 김기찬 님이 골목에서 아이를 찍은 사진은 바로 ‘아버지로서 이녁 아이를 사진으로 담은 손길’이었구나 하는 대목을 요즈막에 새삼스레 느끼곤 한다. 아름다운 사진책이 기쁘게 태어나서 널리 읽히면서 사랑스러운 사진넋을 곳곳에 예쁜 씨앗으로 흩뿌려 주기를 빈다. 늦여름 빗줄기가 고흥 시골마을을 듬뿍 적시는 밤이다. 4348.8.20.나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책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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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한 장’ 얻어서 쓰는 고마움



  사진 한 장을 고맙게 얻는다. 얼마 앞서 나온 청소년 인문책을 누리신문에 소개하려고 느낌글을 썼고, 출판사한테 전화를 걸어서 그 책에 실린 사진을 얻어서 쓸 수 있느냐고 여쭈었다. 책에 실리는 사진은 출판사에서 사진 저작권한테 사용료를 내고서 싣는다. 그러니 이 사진을 누리신문 기사에 쓰려면 출판사에 전화를 걸어서 여쭈어야 한다. 출판사에서는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에 전화를 걸어서 ‘허락 여부’를 살폈고, 한 시간 남짓 기다린 끝에 누리신문에 실어도 좋다는 말을 들었다. 이리하여, 오늘 저녁에 누리신문 오마이뉴스에 《10대와 통하는 민주화운동가 이야기》 소개글을 기사로 띄우면서 사진 넉 장을 붙인다. 기사는 이튿날에 올라가리라 본다.


  시민기자로서 글 한 꼭지를 써서 책 이야기를 널리 나눌 수 있어 고마운데, 책 한 권을 알리는 글을 쓰면서 눈물 어린 사진을 얻어서 함께 쓸 수 있으니 더없이 고마우면서 애틋하다.


  1987년에 나는 국민학교 6학년이었고, 1988년에 나는 중학교 1학년이었다. 그무렵 사회 흐르는 물결을 학교나 집이나 마을에서 아무도 알려주지 않아서 하나도 몰랐고, 그저 최루탄 냄새 때문에 언제나 고달팠다는 생각만 있다. 국민학생으로서 집회 현장을 반드시 지나가야 할 적에는 아주 무서웠지만 아무 일이 없었다. 심부름을 가는 길에, 동무를 만나러 가는 길에, 동인천 싸리재를 넘을 적마다 대학생하고 전투경찰이 서로 100미터쯤 떨어진 채 으르렁거리는 한복판을 어쩔 수 없이 지나가야 했다. 그 길이 아니면 아무 길이 없었기 때문이다. 자동차나 버스는 하나도 못 지나가고 찻길 한복판에 짱돌이 잔뜩 구르는 곳을 침을 꿀꺽 삼키면서 지나가는데, 아무도 나를 붙잡거나 말리지 않았다. ‘국민학생 모자’를 쓴 아이가 책가방을 메고 지나가니까 아마 시위 대학생도 전투경찰도 ‘저 아이가 여기를 지나가서 집에 가도록 지켜보고 나서 한판 붙자’ 같은 ‘말 없는 다짐’이라도 했을는지 모른다. 오마이뉴스 기사에 붙인 사진 넉 장 가운데 ‘이한열 님’하고 얽힌 사진을 바라보면서 서른 해 즈음 앞서 겪은 일이 환하게 떠오른다. 부디 한국 사회에 참다운 민주 바람이 불기를 꿈꾸면서. 4348.8.20.나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삶노래)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에서 보내 준 사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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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8-20 23:1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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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8-20 23: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시골자전거 삶노래 2015.8.20.

 : 다들 아이들을 묻는다



고마운 이웃님이 두 분 있어서 오늘 책을 부치기로 한다. 비가 내리는 날이어서 이튿날로 미룰 수 있지만, 이튿날은 금요일이라서 토요일에는 우체국 일꾼이 쉬기 때문에 목요일인 오늘 택배로 부쳐야 금요일에 닿는다. 금요일에 맡기면 한 주를 지나 월요일에 닿으니.


비가 오는 낮에 두 아이는 아버지를 따라서 자전거를 탈 생각이 아예 없다. 어머니는 허리가 몹시 결려서 이틀째 방바닥에 드러누워 지내는데, 두 아이는 모두 어머니 곁에서 놀겠노라 한다. 그래, 너희들이 자전거를 안 타고 싶다기보다 어머니 곁에서 어머니를 헤아리면서 놀겠다는 뜻일 테지? 비가 오는 날 비를 맞으면서 비옷도 입고 우산을 쓰면서 놀기를 아주 좋아하는 너희들이 ‘빗길 자전거마실’을 안 한다는 말이 나오니 그저 놀랍기만 하다.


비를 맞으면서 천천히 자전거를 달린다. 면소재지에 이를 무렵 상수도 공사를 한다면서 길을 파헤치는 데가 있고, 그쪽 길로는 가지 말라고 알려주는 아지매가 한 분 있다. 비가 와도 비를 맞으면서 그곳을 지키셔야 하네. 이 아지매는 면소재지에서 공사를 할 적에 ‘자동차한테 돌아가도록 알리는 일’을 몇 해째 하신다. 내가 자전거에 아이들을 태우고 이런 공사장 옆을 지날 때면 늘 활짝 웃으면서 아이들을 예뻐 하신다. 비록 자전거가 아지매 옆을 지나가는 아주 짧은 1∼2초밖에 안 되는 겨를인데에도 그렇다. 오늘도 아지매는 아주 짧은 겨를에 “아이들은요?” 하고 묻는다. “아, 오늘은 그냥 집에 있겠대요.” 하고 말씀을 여쭈면서 지나간다. 코앞에 자동차가 마주 달리기에 자전거를 멈추지 못하고, 달리는 결에 말씀한다.


우체국에서도 아이들을 묻는다. 면소재지 가게에서도 아이들을 묻는다. “아이들은 어쩌시고요?”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지만 한 해 삼백예순닷새를 치면 삼백예순 날은 늘 아이들하고 함께 지내고 닷새쯤은 혼자 따로 바깥일을 보러 움직인다고 할 만하니, 늘 둘레에서 “아이들은 어쩌시고요?” 하고 물으시는구나 싶다. 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에서 자전거와 함께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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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로 읽는 책 234] 백 해



  한 해를 살아 한 해를 노래하고

  백 해를 살아 백 해를 노래하니

  나무 곁에서 천 해 노래를 듣네



  더 오래 살기에 더 긴 이야기가 흐른다고는 느끼지 않습니다. 더 많은 일을 겪었기에 더 슬기로운 이야기를 들려준다고는 느끼지 않습니다. 한 해를 살거나 백 해를 살거나, 스스로 온 삶을 기쁨으로 바라보면서 노래할 수 있을 때에 비로소 슬기로운 사랑이 자라리라 느낍니다. 숲에서 천 해를 살고, 마을을 천 해 동안 지키며, 이윽고 집을 받치는 기둥이 되어 다시 천 해를 사는 나무 곁에 서면서, 나무가 부르는 노래에 가만히 귀를 기울입니다. 4348.8.20.나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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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작가는 ‘작가’이기 앞서 ‘사람’입니다



  모든 작가는 작가라는 이름이기 앞서 사람입니다. 독자도 독자라는 이름이기 앞서 사람입니다. 작가이든 독자이든 똑같이 아름다운 사람이며, 이 지구별에서 저마다 제 보금자리를 가꾸면서 사는 사람입니다.


  작가는 작가라는 이름이 붙더라도 언제나 사람이고, 독자도 독자라는 이름을 쓰더라도 언제나 사람입니다.


  나는 두멧시골에서 아이들을 돌보면서 사는 어버이로 살면서 한국말사전을 엮는 일을 합니다. 내가 책을 여러 권 내놓았기에 나를 두고 ‘작가’라고 하는 분이 있고, 때로는 ‘작가 선생님’이라고 하는 분이 있으나, 나는 언제나 이런저런 이름에 앞서 ‘아이들 어버이’요 ‘시골사람(시골 아재)’입니다. 아이들은 나를 ‘아버지’라고 부르지, ‘작가’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시골에서는 누구나 나를 두고 ‘아재!’나 ‘아재요!’ 하고 부릅니다.


  작가이든 독자이든 누구나 밥을 먹고 똥오줌을 누며 잠을 잡니다. 작가이든 독자이든 누구나 꿈을 꾸고 노래를 부르며 웃거나 웁니다. 작가는 독자를 비아냥거리거나 이기죽거릴 까닭이 없습니다. 독자도 작가를 비아냥거리거나 이기죽거릴 까닭이 없습니다. 작가 사이에서도, 독자 사이에서도, 그리고 작가도 독자도 아닌 ‘사람 사이’에서도 언제나 마찬가지입니다.


  밭을 돌보는 사람이 밭에 심은 남새에 뜨거운 물이나 따뜻한 물을 붓는 일은 없습니다. 사람한테는 그저 미지근한 물이라도 풀이나 남새한테는 너무 뜨거워서, 미지근하거나 따뜻한 물을 맞는 풀이나 남새는 그만 시들어서 죽습니다. 사람한테는 아무것이 아니라지만 풀과 남새한테는 다르지요. 어른들은 아이를 가볍게 툭 쳤다고 하지만, 아이는 그만 나가떨어집니다. 계단에서 어른이 아이를 툭 쳤다가는 그만 아이는 계단에서 데구르르 구르다가 죽을 수 있습니다.


  ‘솜주먹’으로 때린다고 해서 ‘때리기(폭력)’가 아닐 수 있을까요? 지난날 군대와 고문실에서는 수건으로 나무작대기를 둘둘 감아서 후려치곤 했습니다. 이렇게 하면 겉으로는 멍이 들지 않으나 속으로는 곯으면서 뼈가 욱씬거리도록 아픕니다. ‘때린 사람 잣대’로 ‘때리지 않았다(폭력이 아니다)’ 하고 말할 수 없습니다.


  작가라는 이름이 붙는다고 해서 비아냥이나 이죽거림을 들어야 할 까닭이 없습니다. 그리고, 누군가를 ‘작가’라고 부르면서 일부러 비아냥이나 이죽거림을 할 까닭도 없습니다. 4348.8.20.물.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삶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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