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풍경이 말을 건네신다 실천문학 시집선(실천시선) 191
전성호 지음 / 실천문학사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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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말하는 시 101



시와 저녁놀

― 저녁 풍경이 말을 건네신다

 전성호 글

 실천문학사 펴냄, 2011.3.31. 8000원



  저녁이 되어 어스름이 깔립니다. 큰아이는 “아버지, 이제 저녁이야?” 하고 묻습니다. 나는 “그래, 이제 저녁이야.” 하고 말합니다. 여덟 살 큰아이는 ‘아침’인지 ‘낮’인지 ‘저녁’인지 으레 묻습니다. 이제 궁금해 할 만한 나이가 되었으니 물을 수 있지만, 저녁이 되어 해가 지면 저녁을 먹고 잠자리에 든다는 말을 늘 했기에 저녁을 물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큰아이도 작은아이도 저녁이나 밤이나 새벽이나 아침을 가리지 않습니다. 안 졸리면 놀고, 졸리면 졸음을 참다가 곯아떨어집니다. 잠에서 깨면 일어나고, 일어나면 놉니다.



재봉틀의 페달을 밟다 보면 / 나는 까맣게 사라진다 (재봉공)



  전성호 님 시집 《저녁 풍경이 말을 건네신다》(실천문학사,2011)를 읽습니다. 오늘도 저녁놀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저녁놀이 진 깜깜한 하늘을 가만히 올려다봅니다. 모기가 사라질 듯하면서 사라지지 않아, 모기에 물리면서 밤바람을 쐽니다. 잠든 아이들 이마를 쓸어넘기고 가슴을 토닥이다가 이불깃을 여밉니다. 시집에서 흐르는 이야기도 있지만, 참말 저녁놀이 말을 건네시고 아침놀이 말을 건네십니다. 아이들이 놀면서 눈빛으로 말을 건네시고, 아이들이 밥을 먹다가 웃음짓는 눈빛으로 말을 건네십니다.



처맛기슭은 언제나 시끄럽다 / 노란 주둥이 뾰족뾰족 들어 올리던 지푸라기 섞인 흙집 / 새끼들 날개 달아 띄울 때까지 / 밀, 보리, 감자, 강냉이 밭일에 파묻혀 / 손톱 밑이 까매지셨다 (제비집)



  아이들을 자전거에 태우고 마실을 다니다 보면 드문드문 제비를 봅니다. 이제 늦여름이요, 가을 문턱이니 제비를 보기 어렵습니다. 우리 집 처마에서 자라던 새끼 제비는 모두 날갯짓을 익혀서 둥지를 떠났습니다. 늦깎이로 태어난 제비인 탓인지, 올해 새끼 제비는 한 번 둥지를 떠난 뒤로 다시 우리 집 처마로 돌아오지 않습니다. 지난해까지는 날갯짓을 처음 익힌 뒤로도 밤에 돌아오고 새벽에 다시 나가기를 한 달 남짓 했으나, 올해에는 이렇게 드나들지 않아요.


  아무튼, 자전거를 타고 논둑길을 달리면서 여러 마을이 둘러싼 들녘 한복판을 가로지르는 전깃줄에 내려앉은 제비를 세면 꼭 열아홉 마리입니다. 요 며칠 여러 날 세어 보는데 이 숫자를 벗어나지 않습니다.


  우리 집에서 어미 제비 두 마리 있었고 새끼를 여섯 마리 깠으니 ‘올해 우리 집 제비는 여덟 마리’입니다. 그러니까, 열아홉 마리 가운데 여덟 마리는 우리 집 제비인 셈이고, 다른 열한 마리는 다른 집 제비인 셈입니다.



앉은뱅이 대나무 의자 / 드러누운 개 발등에 얹혀 / 반쯤 잘려나간 오후 / 커피 잔에 자꾸 날아와 붙는 (무풍지대―따옹지)



  나락꽃이 살그마니 피려고 하는 이즈음 제비는 몸을 넉넉히 살찌운 뒤 바다를 건널 수 있을까 하고 헤아려 봅니다. 부디 농약바람이 좀 잦아들면서 제비가 더는 다치지 말고 살을 찌워서 씩씩하게 바다를 가로지를 수 있기를 빕니다. 이리하여, 따순 고장에서 겨울을 난 뒤, 이듬해 새봄에 새로운 날갯짓으로 이 마을과 우리 집으로 기쁘게 날아올 수 있기를 빌어요.



들녘이 젖고, 공사장이 젖고 / 빈랑나무 잎이 젖고, 서름한 되모시 머리가 젖고 / 빈민굴 띤양공이 젖고 기어코 내 뒷덜미가 젖는다 (雨)



  바람이 조용합니다. 올여름은 참으로 바람이 조용합니다. 지난해에는 무더위가 이어졌어도 곧잘 드센 바람이 불면서 더위를 식혀 주곤 했으나, 올해에는 센 바람이 좀처럼 불지 않습니다. 아니, 아예 바람조차 없는 무더위가 이레나 열흘씩 흐르기 일쑤입니다. 바람이 안 부니 빨랫줄을 받친 바지랑대가 넘어질 일이 없지만, 바람이 참말 안 부니 자전거를 몰면서 맞바람 때문에 애먹을 일이 없지만, 여름마다 으레 만나던 뭉게구름과 소낙비와 바람과 무지개 가운데 네 가지 모두 찾아보기 어려운 나날이 이어지니 여러모로 쓸쓸합니다.


  나는 도시에서 나고 자라던 어릴 적 여름날에 뭉게구름도 소낙비도 바람도 무지개도 흔히 보며 자랐는데, 시골에서 나고 자라는 우리 집 어린 아이들은 시골에서마저 뭉게구름도 소낙비도 바람도 무지개도 자꾸 못 봅니다.


  아이들은 구름을 타고 놀아야 푸른 마음이 될 텐데요. 아이들은 소낙비를 맞으며 놀아야 무럭무럭 자랄 텐데요. 아이들은 바람을 먹으며 웃어야 사랑스러운 마음이 싹틀 텐데요. 아이들은 무지개와 동무하며 달려야 싱그러운 꿈을 키울 텐데요.



식탁 위의 청어 눈알 / 반짝이는 비늘 / 나는 동문서답 / 뼈를 가진 것들의 비밀을 말한다 (빛 속의 뼈)


비가 오면 / 나무들은 물고기가 된다 (비)



  시집 《저녁 풍경이 말을 건네신다》를 살몃살몃 읽습니다. 천천히 읽고 천천히 덮습니다. 저녁 풍경이 건네시는 말을 귀여겨들으며 삶노래를 부른 전성호 님 이야기를 되새기면서, 내가 오늘 이곳에서 귀여겨듣는 ‘저녁 말’이랑 ‘아침 말’은 무엇인지 되돌아봅니다. 내가 스스로 즐기는 삶노래는 무엇인지 되새기고, 내가 아이들한테 물려줄 삶노래에는 어떤 사랑이 어떤 꿈으로 흐르는가 하고 헤아려 봅니다.



성호 왔나 / 네 어머님 (빈방)



  벽에 찰싹 붙어서 자는 큰아이를 벽에서 떨어뜨립니다. 머리카락을 쓸면서 “벽에 너무 딱 붙지 말고 좀 떨어져야지.” 하고 말을 겁니다. 아이는 잠결에 이 말을 알아들을 수 있고, 못 들을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나는 아이 마음속에 이야기를 건넵니다. 오늘 우리가 누리는 여러 가지를 생각하면서 이야기를 건넵니다.


  뭉게구름은 없어도 온갖 무늬와 빛깔로 고운 수많은 구름이 하늘 넓게 있습니다. 소낙비는 없어도 요새 여우비를 곧잘 만났습니다. 바람이 좀처럼 불지 않는 날씨이지만, 나는 아이들한테 신나게 부채질을 해 주고, 올해에는 아이들이 처음으로 선풍기 놀이를 누립니다. 무지개는 찾아볼 수 없더라도 밤마다 미리내는 얼마든지 올려다볼 수 있습니다.


  우리 집에서 손수 딴 호박으로 호박국을 끓여서 아침저녁으로 먹습니다. 우리 집 풀밭에서 함께 사는 풀벌레가 들려주는 노래를 하루 내내 실컷 듣습니다. 우리 집 울타리에서 자라는 무화과나무 열매가 거의 익어서 곧 따먹을 수 있습니다.


  깊은 밤으로 흐르는 저녁 끝자락에 찬물 한 모금을 마시면서 생각합니다. 나는 내가 물려줄 수 있는 사랑을 스스로 누릴 때에 즐겁습니다. 저녁놀이 들려주는 말을 듣고, 애벌레와 나비가 들려주는 말을 들으며, 쇠무릎 잎사귀가 들려주는 말을 들으며 재미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언제나 노래입니다. 4348.8.23.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에서 시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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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등허리가 결리더라도



  아무리 등허리가 결리더라도 아이들을 자전거에 태우고 마실을 간다. 왜 그러한가 하면, 재미있고 기쁘기 때문이다. 늦여름 들녘은 한여름하고 사뭇 다르게 고소하면서 포근한 냄새가 흐른다. 어떤 냄새일까? 바로 나락꽃이 피면서 풍기는 냄새이다. 갓 거둔 나락을 길바닥에 펼쳐서 말릴 적에 퍼지는 냄새도 몹시 고소하구나 싶은데, 나락꽃이 한꺼번에 피면서 퍼지는 냄새도 나한테는 매우 고소하다.


  생각해 보라. 자동차를 몰면서 나락꽃냄새를 맡을 수 있을까? 자동차를 몰다가 아주 조그마한 하얀 나락꽃이 바람 따라 한들거리는 춤사위를 아이와 함께 볼 수 있을까?


  등허리가 결리더라도 바닷가까지 자전거를 몬다. 등허리가 쑤시고 땀이 비오듯이 흐르더라도 멧길을 타고 넘으면서 골짜기로 자전거를 몬다. 바닷가에 닿아 바다로 뛰어가서 맨발이 되는 아이들을 보면서, 골짜기에 닿아 맨발로 골짝물에 뛰어드는 아이들을 보면서, 모든 고단함과 땀이 한꺼번에 사라진다.


  이 아이들이 갓난쟁이였을 적에는 자장노래를 날마다 두어 시간씩 부르면서 재울 적에 눈물과 웃음이 어우러지면서 기뻤고, 이 아이들이 신나게 뛰어다니며 노는 요즈음은 한 시간 길을 자전거로 달리면서 흘리는 땀방울이 웃음과 섞이면서 기쁘다. 4348.8.23.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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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사소개서



  다음주에 경남 사천에 가서 이야기잔치를 꾸리고, 다음달에 전남 장흥에 가서 이야기꽃을 피우기로 했다. 두 곳에서 강사로 두 시간씩 이야기를 나누기로 했는데, 두 곳에 ‘강사소개서’를 보내야 했다. 강사소개서는 두 기관에서 마련한 틀에 따라서 쓰는데, 어김없이 ‘마친 대학교’나 ‘받은 학위’나 ‘딴 자격증’ 같은 것을 적어야 하는 칸이 있다.


  강사라고 하는 자리는 누군가를 ‘가르친다’고 할 수 있으니, 아무래도 ‘학교 다닌 자국(학력)’이 있어야 할는지 모른다. 우리 사회는 ‘학교에 오래 다닌 사람’이 ‘학교를 한창 다니는 사람’을 가르치도록 하는 얼거리일 테니까.


  나는 ‘마친 학교’ 적는 자리에 씩씩하게 ‘고등학교 이름’을 적어 넣는다. 아마, 나처럼 고등학교만 마친 사람이 있을 테고, 중학교나 초등학교만 마친 사람이 있을 테며, 아무 학교도 안 마친 사람이 있을 테지.


  대학교나 대학원을 마치지 않고도 ‘대학 교수’나 ‘초·중·고 교사’나 ‘유치원 교사’를 맡는 사람은 몇이나 있을까? 졸업장과 자격증이 없이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맡을 수 있는 학교나 기관이나 모임은 얼마나 있을까? 4348.8.23.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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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름벼리는 바다가 그리웠어



  달포 만에 찾아온 바다에서 물을 하늘 높이 튀기면서 바다한테 인사한다. 잘 있었니? 놀러왔어. 잘 놀다 갈게. 바다순이 몸짓은 모두 춤이 되고, 춤사위로 물결을 맞이하는 놀이순이는 신나게 흐르면서 노래로 피어난다. 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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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고생 미지의 빨간약 - 단편소설로 시작하는 열여덟 살의 인문학
김병섭.박창현 지음 / 양철북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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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책과 함께 살기 124



네 아픈 마음에 ‘빨간약’을 발라 줄게

― 여고생 미지의 빨간약

 김병섭·박창현 글

 양철북 펴냄, 2015.7.31. 11000원



  국어교사로 일하는 김병섭, 박창현 두 분이 함께 빚은 이야기책 《여고생 미지의 빨간약》은 “단편소설로 시작하는 열여덟 살의 인문학”이라는 이름이 붙습니다. 국어교사는 단편소설 여덟 가지를 여고생하고 함께 읽습니다. 여고생은 저마다 단편소설을 읽은 뒤에 모둠을 꾸려서 저마다 이야기를 나눕니다. 이러고 나서 단편소설마다 글쓴이가 들려주려고 하는 생각이 무엇인가를 밝히려 하고, 이 단편소설을 오늘 이곳에서 여고생으로서 읽는 아이들이 마음에 어떤 꿈을 품을 만한가 하는 대목을 돌아봅니다.



“대신 우린 공부를 하잖아. 내가 알바 하고 싶다고 하면 울 엄마 항상 하는 얘기가 그거야. ‘내가 언제 돈 벌어 오라고 그랬니? 공부나 열심히 해라 그랬지.’ 공부라는 것도 결국엔 그거 아냐? 나중에 돈을 더 잘 벌 수 있는 가능성.” (20쪽)


“좋은 성적을 내기 위해서는 머리부터 잘라야지.”라는 말을 들으면 없던 반항심까지 생겨나는 느낌이다. 머리 길이와 성적이 도대체 무슨 상관이라고? (81쪽)



  《여고생 미지의 빨간약》에서 국어교사 ‘리쌍’은 여고생들이 읽을 단편소설을 골라서 책을 건넵니다. 단편소설을 읽으면서 인문학을 배우기로 한 여고생은 모두 다섯이고, ‘체육복 바지 단비’, ‘정리왕 수정’, ‘얼음공주 지원’, ‘빨간약 미지’, ‘반대쟁이 혜민’입니다.


  다섯 아이는 다섯 아이대로 다 다른 이름을 스스로 붙이거나 동무가 불러 주거나, 아무튼 ‘다른 어버이한테서 태어나’서 ‘다른 보금자리에서 살아’왔습니다. 그러니까, 똑같은 단편소설 하나를 놓고서 다섯 아이는 ‘다섯 가지 삶’으로 들여다봅니다.


  다섯 가지 삶으로 바라보는 한 가지 단편소설은 어떠한 이야기가 될까요? 똑같은 작품이라 하더라도 다섯 가지 눈길로 읽을 수밖에 없을 테지요. 그리고, 다섯 가지 눈길로 읽은 단편소설은 ‘다섯 가지 새로운 이야기’로 뻗습니다. 왜 그러한가 하면, 다섯 아이는 다섯 아이대로 이제껏 살아온 나날을 돌아보면서 앞으로 살아갈 나날을 그리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헬렌이 로봇이라는 사실뿐이었다. 단지 그 이유만으로 헬렌의 사랑을 부정하거나 비난할 수는 없다. 로봇이지만 사랑은 진짜라는 것, 그것이 데이브를 다시 헬렌에게 돌아오게 한 이유가 아닐까? (46쪽)


나를 개새끼라고 생각해 본 적은 한 번도 없는 것 같다. 그것은 우리 부모님을 욕되게 하는 일이니까. 이런 낙서를 쓴 사람은 도대체 어떤 사람일까. (72쪽)



  여고생 다섯 아이는 왜 단편소설로 인문학을 배우려고 할까요? 이 아이들은 왜 학교 수업을 다 마친 뒤에 따로 모여서 단편소설을 더 읽으면서 ‘교과서 바깥 세계’를 배우려 할까요?


  다섯 아이는 다섯 아이대로 삶을 사랑하기 때문에 새로운 이야기를 배우려 합니다. 다섯 아이는 다섯 아이대로 동무들을 저마다 사랑하기 때문에 ‘동무가 어떤 마음인가를 헤아리면서 한결 가까이에 있’고 싶어서 단편소설로 인문학을 배우려 합니다.


  다섯 아이는 독후감 쓰기를 하려고 단편소설을 읽지 않습니다. 게다가 ‘더 많은 책’을 읽지 않고, ‘더 많은 작품을 찾아서 읽지’도 않아요. 왜냐하면, 이 다섯 아이는 ‘문학소녀’가 되려는 뜻이 아니라, ‘내 삶을 스스로 똑똑히 바라보면서 씩씩하게 일어서서 즐겁게 노래하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미지가 나쁜 애가 아닌 건 안다. 아주 명랑하고, 착하고, 뭐든 열심히 하려고 하고……. 하지만, 아니 그래서 나는 미지의 웃음이, 미지의 대답이 좀…… 재수 없었다. 자존심도 상했다. 미지가 공부를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나보다는 못했다. 나보다 공부를 못하는 미지가 같은 소설을 읽고도 무언가 더 많이 알고 있는 듯이 말하는 것 자체가 자존심이 상했다. (109쪽)



  열여덟 해를 살아온 여고생 나이는 ‘어릴’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어리다고만’ 할 수는 없습니다. 열여섯 해를 살아온 남중생이나, 학교를 안 다니고 열세 해를 살아온 어린이한테는 ‘나이가 많’아요. 다섯 살 아이한테도 나이가 한참 많으며, 갓 태어난 아기한테도 나이가 많을 테지요.


  나이는 대수롭지 않습니다. 대수로운 대목이란, 스스로 배우려 하느냐 아니냐입니다. 스스로 배우려고 할 때에 국어교사인 리쌍 님은 아이들한테 수수께끼를 낼 수 있습니다. 아이들은 국어교사가 들려주는 수수께끼를 듣고는 ‘정답 찾기’나 ‘해답 찾기’를 하지 않습니다. 다섯 아이는 다섯 아이대로 저마다 ‘실마리 생각하기’를 합니다.


  다시 말하자면, 다섯 여고생은 단편소설을 읽으면서 ‘생각’을 합니다. 단편소설을 쓴 사람이 어떤 마음인가를 생각하고, 단편소설에 나오는 사람들 마음을 생각하며, 이 단편소설을 읽는 내(여고생) 마음을 생각합니다. 그리고, 나와 함께 이 단편소설을 읽는 동무들 마음을 생각해요.




“그래, 나도 딱 그런 상황 오면 채널 돌리고 싶어지더라. 약자를 배려한다, 스포츠 정신이다, 말들은 많아도 그냥 메달에 굶주린 사람들 같아.” (193쪽)



  인문학은 지식학이 아닙니다. 인문학은 철학이나 과학이나 문학이 아닙니다. 인문학은 삶을 가르치고 배우면서 나누는 길입니다. 단편소설로 열여덟 살 푸름이가 인문학 첫걸음을 뗀다고 할 적에는, 앞으로 스스로 두 다리로 서서 씩씩하게 나아갈 삶을 생각한다는 뜻입니다.


  남이 시키는 대로 따라갈 삶이 아닌, 내가 스스로 길을 찾으려 한다는 뜻입니다. 남이 차려 놓은 밥상대로 먹는 밥이 아닌, 내가 손수 흙을 일구어 밥을 장만한다는 뜻입니다. 무턱대고 돈만 많이 벌려고 하는 일자리가 아닌, 내 가슴속에 품을 꿈을 찾아서 사랑을 노래하려는 뜻입니다.



구체적인 실행 방법을 떠올리다 문득 든 생각 하나가 나를 주저하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건재하다면? 사춘기 시절에 저지른 철없던 장난쯤으로 여기며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살아간다면? 성인이 된 후 어린 시절의 무용담 속에서 그들의 더러운 입에 내 이름이 올려지기라도 한다면? 그러므로 나는 절대 죽을 수 없었다. (210쪽)



  뛰어난 아이가 없습니다. 모자란 아이가 없습니다. 훌륭한 아이가 없습니다. 어수룩한 아이가 없습니다. 대단한 아이가 없습니다. 바보스러운 아이가 없습니다. 그러면, 어떤 아이가 있느냐 하면, 오직 한 아이만 있습니다. 바로 사랑스러운 아이만 있습니다.


  사랑을 받아서 태어나려 하던 아이가, 사랑을 받으면서 살고픈 아이로 자라고, 앞으로 사랑을 새로운 아이한테 물려주는 어른이 되겠다는 꿈을 키웁니다.



나 자신을 존중하는 것에서부터 인문학은 시작한다는 말을 기억해 냈다. ‘그래, 나는 나다. 내가 그 친구들, 그 아픈 마음들, 다 알거나 제대로 치료해 주지는 못할지라도, 작은 상처는 감싸 줄 수 있지. 빨간약을 바르고 후후 불어 줄 수는 있지. 곁에 있어 줄 수는 있지. 안아 줄 수는 있지. 엎어진 김에 누워도 된다고, 다시 일어날 거면 도와주겠다고, 그렇게 해 줄 수는 있지.’ (240∼242쪽)




  그나저나 다섯 여고생 가운데 왜 “빨간약 미지”라는 아이 이름으로 책을 엮었을까요? ‘체육복 바지 단비’나 ‘정리왕 수정’이나 ‘얼음공주 지원’이나 ‘반대쟁이 혜민’은 왜 책이름에 오르지 않을까요?


  《여고생 미지의 빨간약》을 읽으면, 다섯 아이 삶 가운데 ‘빨간약 미지’라는 아이 삶이 ‘가장 수수하다(?)’고 볼 만합니다. ‘빨간약 미지’라는 아이는 다른 동무들처럼 어릴 적부터 여러모로 ‘마음이 다친(상처를 받은)’ 일이 드물다고 떠올립니다. 미지네 어버이가 놀라운 부자도 아니고 엄청난 사랑을 베풀었다고 할 수는 없지만, 언제나 웃음이 흐르는 삶을 즐겁게 누렸다는 대목을 헤아리니, 다른 아이들은 이런 ‘수수한 사랑’조차 못 느끼거나 멀리 떨어진 데에서 ‘어떻게든 살아남으’려고 애를 쓰고 악을 썼구나 싶어서 어쩐지 혼자 외톨이가 된 듯하다고 느끼기도 합니다. 그런데, ‘빨간약 미지’는 제 가방에 늘 있는 ‘빨간약’처럼, 아주 대수롭지 않아 보이는 ‘빨간약’으로 동무들을 어루만질 수 있습니다. 딱히 도움말을 들려주지 못해도, 동무들이 털어놓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습니다. 힘들어 하는 동무가 부르면 천천히 다가가서 손을 맞잡고 일어서도록 도울 수 있습니다.



나는 무심코 단비의 책상을 내려다보았다. 거기에는 반으로 접혀 있던 단비의 낙서 종이가 펼쳐져 있었는데, 그걸 보고 깜짝 놀란 나는 단비에게 참 미안하고 많이 부끄럽고 그러다가, 그냥 단비가 고마워서 눈물이 났다. (153쪽)



  네 여고생은 저마다 가슴에 새겨진 슬픔과 아픔이 있어서 ‘체육복 바지’가 되고 ‘정리왕’이 되고 ‘얼음공주’가 되고 ‘반대쟁이’가 되었습니다. 이 네 아이한테 ‘빨간약’을 발라 주면서 빙그레 웃을 수 있는 미지라는 아이인 터라, 이 이야기를 담은 책은 《여고생 미지의 빨간약》이 됩니다.


  사랑은 늘 가장 수수한 데에 있습니다. 바로 내 가슴에 있습니다. 그리고 바로 네 가슴에 있습니다. 내 가슴에서 흐르는 사랑이 네 가슴으로 날아가고, 네 가슴에서 자라는 사랑이 내 가슴으로 달려옵니다. 서로 아름답게 만나서 기쁘게 노래하는 하루가 되면서, 다섯 아이들은 새로운 삶에 눈을 뜨는 인문학을 단편소설로 국어교사하고 함께 배웁니다. 4348.8.23.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청소년 인문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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