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아이 290. 2015.8.18. 마루턱에 앉아서



  마루턱에 두 아이가 나란히 앉는다. 갑자기 조용하다. 소꿉놀이를 할 적에는 온갖 소리와 노래와 웃음이 흐른다면, 책놀이를 할 적에는 종이를 만지는 소리만 가끔 퍼질 뿐 아주 조용하다. 두 아이는 저마다 책을 하나씩 손에 쥐고서 이야기를 읽는다. 글씨를 읽든 그림을 읽든, 종이에 앉힌 이야기를 읽는다. 마루턱에 앉아서 새로운 나라로 간다. 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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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삽을 챙겨야지 (사진책도서관 2015.8.20.)

 ― 전라남도 고흥군 도화면 동백마을, ‘사진책도서관 함께살기’



  날마다 다 읽은 책을 도서관으로 갖다 놓으려고 길을 나선다. 빗줄기가 살짝 듣는 낮에 도서관으로 간다. 두 아이는 살짝 졸린지, 아니면 비 오는 날 집에서 그냥 놀겠다는 뜻인지 함께 따라나서지 않는다. “얘들아, 너희 오늘 비옷 입고 놀고 싶어 했잖아. 비옷 입고 새 우산 쓰면서 놀지 않겠니?” 하고 불러도 아무 대꾸가 없다. 어쩜, 비순이와 비돌이가 비를 마다 하다니.


  그런데 도서관에 닿고 보니 아이들이 안 따라오기를 잘된 셈이었을까. 도서관으로 들어서는 길이 모두 깊이 파였다. 어디로도 갈 수 없다. 무슨 일을 하려고 이렇게 깊이 땅을 파는지 모를 일이다. 이웃 밭으로 넘어가서 다시 도서관 쪽 땅으로 뛰어내린다. 책꾸러미를 메고 지면서 낑낑거리며 도서관에 닿는다.


  삽차로 땅을 파기란 어려운 일이 아니리라. 삽차로 땅을 파헤쳐서 길을 없애는 일도 어려운 일이 아니리라. 그리고, 이렇게 길을 없애고 땅을 파헤친 뒤 여러 날 그대로 두는 일도 어려운 일이 아니리라.


  다만, 나는 다음에 삽을 들고 도서관에 오자고 생각한다. 삽차로 아무리 땅을 깊게 파헤쳐 놓는다고 하더라도, 내가 아이들하고 지나다닐 길은 ‘내 삽’으로 흙을 뜨고 풀을 섞어서 ‘오솔길’ 같은 작은 자리를 내야겠다고 생각한다. ㅅㄴㄹ



* 도서관 나들이 오시려면 먼저 전화하고 찾아와 주셔요 *

* 사진책도서관(서재도서관)을 씩씩하게 잇도록 사랑스러운 손길을 보태 주셔요 *

☞ 어떻게 지킴이가 되는가 : 1평 지킴이나 평생 지킴이 되기

 - 1평 지킴이가 되려면 : 다달이 1만 원씩 돕거나, 해마다 10만 원씩 돕는다

 - 2평 지킴이가 되려면 : 다달이 2만 원씩 돕거나, 해마다 20만 원씩 돕는다

 - 평생 지킴이가 되려면 : 한꺼번에 200만 원을 돕거나, 더 크게 돕는다

* 도서관 지킴이 되기 : 우체국 012625-02-025891 최종규 *

* 도서관 지킴이가 되신 분은 쪽글로 주소를 알려주셔요 (010.5341.71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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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노래 42. 함께 저 멀리 달려



  맨몸으로 함께 달리면 아이들을 따라잡기는 수월합니다. 짐을 든 몸으로 아이들하고 함께 걷다 보면 언제나 아이들이 저 멀리 사라지려 합니다. 두 아이는 함께 달립니다. 두 아이는 저 앞에서 달리다가 문득 뒤를 돌아보고는 “저기 아버지가 개미만 하네.”라든지 “저기 아버지가 장난감 같아.” 같은 말을 외치면서 깔깔깔 웃습니다. 이러다가 “우리, 아버지한테 달려가 볼까?” 하며 쪼르르 달려오다가 “와, 이제 커졌다!” 하면서 다시 뒤돌아서서 둘이 함께 저 멀리 달립니다. 나는 아이들이 사라지려고 하는 오르막을 바라보다가, 이 오르막 들길하고 맞닿은 하늘을 올려다보고, 먼 멧줄기와 짙푸른 들판을 돌아봅니다. 4348.8.24.달.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사진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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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의 정원일까? - 베텔스만 그림동화 011 베텔스만 그림동화 11
메리 앤 호버만 지음, 제인 다이어 그림, 이혜선 옮김 / 대교출판 / 2005년 4월
평점 :
절판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556



누구 꽃밭? 누구 집? 누구 별?

― 누구의 정원일까?

 메리 앤 호버먼 글

 제인 다이어 그림

 이혜선 옮김

 베텔스만 펴냄, 2005.4.1. 8000원



  귀를 기울일 줄 안다면 풀벌레가 노래하는 소리를 버스나 전철에서도 얼마든지 듣습니다. 어떻게 듣냐고요? 귀를 기울이니 듣지요. 귀를 기울일 줄 알면, 창문이 꽉 닫힌 버스에서도 저 멀리에서 누군가 나를 보며 외치는 소리를 알아들을 수 있어요. 왜냐하면, 귀를 기울이기 때문입니다.


  귀를 기울일 줄 모른다면 풀벌레가 노래하는 소리는커녕 바로 옆에서 사람들이 주고받는 말도 못 듣습니다. 참말 귀를 안 기울이기 때문입니다. 귀에 아무것도 안 꽂더라도 옆사람 말을 하나도 못 듣기 마련이지요. 옆사람이 말을 하든 떠들든 아랑곳하지 않고 내 마음을 한 군데로 모았으면, 내 귀에는 어떤 소리도 안 들어옵니다.



할머니가 즐겁게 걸어가는데 울긋불긋 꽃이 핀 꽃밭이 나타났어요. 할머니는 그렇게 아름다운 꽃밭은 처음 보았죠! (2쪽)



  메리 앤 호버먼 님이 글을 쓰고, 제인 다이어 님이 그림을 빚은 《누구의 정원일까?》(베텔스만,2005)를 읽습니다. 이 그림책에서 주인공은 ‘할머니’입니다. 아기를 수레에 앉혀서 천천히 마실을 다니는 할머니가 주인공입니다. 할머니는 아기한테 바깥바람을 쏘여 주려고 햇볕 따뜻한 낮에 돌아다니는데, 어느 꽃밭을 보고는 무척 놀라요. 어쩜 이렇게 아름다운 꽃밭이람, 하면서 놀라지요. 이때에 꽃밭을 가꾸는 아저씨가 한번 구경해 보겠느냐면서 꽃밭 울타리 한쪽을 엽니다.



이번에는 높은 나뭇가지에서 새가 지저귀었어요. “밭은 내 거야! 밭 지렁이도 모두 내가 잡아먹으라고 있어!” 지렁이는 한숨을 폭 쉬었어요. “그렇지만 난 밭흙을 기름지게 하는걸. 그러니 이 밭은 내 거야!” (10∼11쪽)



  할머니는 꽃밭을 두루 돌아보는데, 꽃밭에서 ‘꽃’ 말고 다른 숨결을 골고루 만납니다. 아름다운 꽃을 두루 볼 생각이었으나, 꽃을 둘러싼 수많은 숨결을 하나하나 만나요.


  토끼를 만나고 들쥐를 만납니다. 새를 만나고 지렁이를 만납니다. 두더지를 만나고 뱀을 만납니다. 벌이랑 나비를 만나고, 씨앗까지 만나요. 그런데 할머니는 귀가 어두운지 ‘꽃밭에 있는 여러 목숨’이 저마다 외치는 말을 좀처럼 알아듣지 못합니다. 그래도 이쪽저쪽에서 온갖 소리가 터져나옵니다. 저마다 “이 꽃밭은 내 거야!” 하고 외쳐요.



꽃나무가 살랑거리며 말했어요. “이 꽃밭은 내 거야. 난 철마다 꽃을 피워. 꽃이 안 피면 그게 어떻게 꽃밭이겠어?” 풀도 산들바람에 한들거리며 말했어요. “아니, 내 거야. 넌 누가 심어 줘야 하지만, 난 어디서나 맘대로 자라니까.” (21쪽)



  꽃밭 임자는 누구일까요? 땅문서에 이름이 적힌 사람이 임자일까요? 땅을 가꾸는 사람이 임자일까요? 땅에서 먼먼 옛날부터 살던 짐승이나 벌레가 임자일까요? 풀이나 나무가 임자일까요? 해나 바람이나 비가 임자일까요?


  꽃밭은 왜 꽃밭일까요? 꽃이 피어서 꽃밭일 텐데, 꽃은 왜 피어날까요? 꽃은 누가 보라고 피어날까요? 꽃은 누구한테 이바지를 하는 숨결일까요?



매기 할머니는 살짝 숨을 죽인 채, 가만히 엎드려 귀를 기울였어요. 씨앗이 소곤소곤 속삭였지요. “꽃밭은 내 거야. 난 아주 조그맣지만, 모든 것이 나한테서 비롯하는걸. 다른 동무들이 나를 도와주긴 해. 그렇지만 내가 없으면 꽃밭에서는 풀도 나무도 자라지 못하지.” (26∼27쪽)



  이 지구별에는 꽃밭도 풀밭도 텃밭도 있습니다. 이 지구별에는 수많은 나라가 옹기종기 어울려서 살림을 가꿉니다. 이 지구별에는 온갖 사람이 저마다 다른 삶에 맞추어 하루를 짓습니다.


  전쟁무기가 가장 많은 나라가 ‘지구별 임자’일 수 없습니다. 돈이 가장 많은 나라가 ‘지구별 임자’일 수 없습니다. 우리는 저마다 지구별 임자입니다. 우리는 저마다 이 지구별을 가꾸는 임자요, 사람이며, 목숨이고, 숨결입니다.


  땅문서를 손에 쥔 사람만 그 땅을 알뜰히 돌봐야 하지 않습니다. 땅문서가 없는 사람이 아무 곳에나 쓰레기를 버리면 ‘땅문서를 손에 쥔 사람’이 아무리 애쓴들 덧없는 일이 됩니다. 이 땅 옆에 있는 다른 땅에 공장이나 핵발전소나 쓰레기매립지를 지으면, ‘이 땅’은 망가집니다.


  우리는 언제나 서로 이웃이고, 서로 한목숨이며, 서로 한솥밭을 먹는 사이입니다. 아무리 멀리 떨어진들 ‘이 지구별 테두리’입니다. 아무리 먼 나라에 있다고 하더라도 참말 ‘이 지구별에서 똑같은 바람’을 쐬면서 목숨을 잇습니다.


  누구네 텃밭이거나 꽃밭이거나 풀밭일까요? 바로 우리 모두가 짓고 가꾸며 돌보고 누리는 텃밭이요 꽃밭이며 풀밭입니다. 대통령 한 사람이 ‘이 나라 임자’일 수 없듯이, 또 어느 한 사람이나 몇몇 사람이 ‘이 나라 임자’라고 설치거나 나설 수 없듯이, 우리는 저마다 ‘이 나라 임자’이면서 ‘이 지구별 임자’로서, 또 ‘내 삶을 손수 짓는 임자’로서 하루를 열며 이야기꽃을 터뜨립니다. 4348.8.24.달.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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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여름 나락꽃



  얼추 이레나 열흘쯤 되었지 싶다. 자전거를 몰고 두 아이랑 들길을 달리다 보면 들내음이 바뀌었다. 한여름에는 짙푸른 풀내음만 났다면, 늦여름에는 살몃살몃 고소한 냄새가 묻어난다. 이 냄새는 무엇인가 하면, 바로 ‘나락이 익는’ 냄새이다. 나락꽃이 피면서 ‘벼알’이 속이 찰 적에 나는 냄새이다. 벼알이 굵으면서 피어나는 냄새이다.


  해마다 이 냄새가 날 즈음부터 제비는 바다 건너 먼 길을 떠난다. 이 나락꽃내음과 나락알내음이 번질 무렵부터 아침저녁으로 바람결이 사뭇 바뀐다. 시골에서 오롯이 다섯 해를 누리는 요즈음 나락꽃내음이 철흐름을 어떻게 알려주는가 하는 대목을 조금 더 깊게 헤아린다. 나락꽃내음을 한껏 들이켠 날은 어쩐지 배가 고프지 않다. 꽃가루를 많이 마셨기 때문일까? 4348.8.24.달.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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