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흥집 85. 빨랫대와 호박넝쿨 (2015.8.23.)



  햇볕이 눈부시게 내리쬐는 마당에 빨래를 넌다. 호박넝쿨은 빨랫대를 감고 싶다. 그렇지만 호박넝쿨한테 빨랫대를 내줄 수 없다. 무엇이든 잡히기를 바라는 호박넝쿨이 뻗는 자리에서 살살 에두르면서 빨랫대 자리를 바꾼다. 호박꽃은 피고 지고, 호박알은 차츰 굵는다. 우리가 뜯어먹는 풀도, 우리가 안 뜯어먹는 풀도 서로 사이좋게 어우러지면서 자란다. 여름 막바지 풀내음이 몹시 짙다. 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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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들보라 흙을 밟았어



  자전거마실을 하다가 나락꽃을 보던 산들보라가 아주 좁은 논둑을 거닐면서 말한다. “나, 흙을 밟았어.” 그래, 네가 흙을 밟았네. 그런데 흙이 있는 땅이 아주 좁네. 시골에 살면서도 여기도 저기도 온통 시멘트로 덮어 놓아서 흙을 밟기가 매우 어렵네. 용케 이 자리는 흙이 남아서 네가 흙을 밟을 수 있네. 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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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로 사람을 죽이는’ 사람들



  요즈음은 그야말로 ‘말’로 폭력을 일삼는 일이 엄청나게 늘었다. 한국말에는 ‘욕(辱)’이 없었는데, 요새는 웬만한 누리집마다 그악스럽고 끔찍하다 할 만한 욕이 넘친다. 욕이 아니더라도 사람을 ‘말로 죽이는’ 짓이 가득하다.


  한국말에는 참말 ‘욕’이 없었다. 한국말에는 그저 ‘말’만 있었다. 이는 다른 겨레한테도 똑같으리라 느낀다. 손수 삶을 짓고 오순도순 어우러져서 두레와 품앗이로 사랑을 나눈 사람들한테 ‘말’이 아닌 ‘욕’이 있어야 할 까닭이 없다. 다만, ‘막말’이라든지 ‘거친 말’이라는 말이 찬찬히 생겼다. 권력자가 나타나고 전쟁이 불거지면서 이런 말이 태어날 수밖에 없었으리라 본다.


  ‘말로 사람을 죽이는 댓글’은 누가 쓸까? 흔히 ‘초딩’이 그런 글을 쓴다고 하지만, 초딩이 그런 댓글을 남길 만큼 느긋하거나 할 일이 없으랴 싶기도 하다. 초딩 가운데 ‘말로 사람을 죽이는 댓글’을 쓰는 아이가 있기도 할 테지만, 웬만한 ‘말로 사람을 죽이는 댓글’은 바로 어른이라는 사람이 쓰리라 느낀다. 나이만 먹은 사람인 어른, 그러니까 ‘철부지’라고 할 사람들이 쓰지 싶다.


  오늘날 사회가 메마르고 차갑기 때문에 ‘말로 사람을 죽이는 글’을 쓰는 사람이 나타난다고 느낀다. 봉건제 사회가 아니라고는 하지만, 버젓이 신분하고 계급을 가르는 오늘날 사회이다. 돈과 졸업장과 얼굴 따위는 신분하고 계급을 가르는 잣대가 된다. 아이들은 어릴 적부터 입시지옥에 휩쓸리면서 마음이 다치거나 망가진다. 이런 한국 사회에서는 ‘말로 사람을 죽이는 글’을 쓰는 철부지가 생길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괴롭고 힘든 삶이 사라지지 않는다면, 괴롭고 힘든 삶을 스스로 떨쳐내지 않는다면, ‘말로 사람을 죽이는 짓’도 사라지지 않고, 떨쳐낼 수 없으리라 느낀다. 4348.8.26.물.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삶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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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순이 75. 휘파람을 부르며 (2015.8.23.)



  자전거순이는 휘파람을 부르며 자전거를 달린다. 작은아이도 아버지도 큰아이 휘파람 노랫소리를 듣는다. 자전거를 신나게 몰다가 휘파람 소리에 고이 귀를 기울이고 싶어서 슬며시 멈춘다. 바람을 가르는 소리에 섞이는 휘파람 노래도 곱고, 들녘으로 퍼뜨리는 싱그러운 휘파람 노래도 예쁘다. 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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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그림 읽기

2015.8.24. 작은아이―아저씨 버스



  “보라 자동차니?” “아니야. 아저씨 버스야.” “아저씨 버스?” “응, 아저씨가 화가 났어.” ‘화가 난 아저씨 버스’라니 무슨 소리인가 하고 헤아려 본다. 가만히 헤아리니, 우리가 늘 타는 군내버스를 보면, 버스 일꾼마다 참 거칠게 몬다. 버스에 탈 적마다 인사를 하는데 인사를 받는 분이 있으나 아무 대꾸가 없는 분이 있다. 작은아이는 군내버스를 탈 적에 ‘성난 얼굴’로 보이는 사람을 본 일이 마음에 맺힌 듯하다. 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그림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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