쇠무릎꽃



  마당 한쪽에서 쇠무릎이 꽃을 피웁니다. 조그맣게 꽃송이가 올라오니, 곧 기운찬 꽃줄기로 거듭날 테지요. 쇠무릎은 잡풀로 여기려면 잡풀이 되지만, 약풀로 여기만 약풀이 되고, 나물로 삼으려면 나물이 되어요. 그리고, 푸른 빛깔로 돋는 꽃을 꽃으로 여기려면 들꽃이 되고, 꽃이 아니라고 여기려면 아무것도 안 보입니다.


  여름 내내 쇠무릎잎을 먹으며 살았으니, 이제 첫가을 어귀에 쇠무릎꽃도 함께 먹습니다. 가을이 깊고 깊어 저물 무렵에는 쇠무릎뿌리를 파서 먹을 생각입니다. 잎도 꽃도 뿌리도 모두 밥이 되고 새로운 숨결로 스며드는 들풀입니다. 들풀 한 포기는 해를 바라보며 자라는 동안 흙을 북돋우고 사람을 살찌워 줍니다. 4348.8.26.물.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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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적' 없애야 말 된다

 (1733) 암묵적


 암묵적 강요 → 말없는 강요 / 조용한 강요

 암묵적 담합 → 말없는 짬짜미 / 조용한 짬짜미

 암묵적인 지지 → 조용한 지지

 서로 암묵적으로 합의하다 → 서로 말없이 뜻을 모으다


  2010년대로 접어들 무렵까지 ‘암묵적(暗默的)’이라는 낱말은 한국말사전에 안 실렸습니다. 2010년대로 접어든 뒤에야 한국말사전에 오릅니다. 말풀이는 “자기의 의사를 밖으로 나타내지 아니한”이라 합니다. 그러면 “자기의 의사”란 무엇일까요? ‘자기(自己)’는 “나”를 가리킵니다. ‘의사(意思)’는 “생각”이나 “뜻”을 가리킵니다. 그러니까, ‘암묵·암묵적’은 “내 생각을 나타내지 않음”이나 “내 뜻을 밝히지 않음”을 가리킵니다.


 암묵의 의견 일치를 보았다

→ 조용히 뜻을 모았다

→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암묵의 동의로

→ 말없는 동의로

→ 말없이 하나가 되어

→ 조용히 한마음이 되어


  ‘입을 꾹 다물’면 내 뜻이나 생각이 드러나지 않습니다. 입을 꾹 다물 적에는 ‘조용’합니다. 조용하게 있으면서 내 뜻이나 생각을 드러내지 않으니 ‘말없이’ 있는 모습입니다.


  말없이 있기에 어떤 일을 슬그머니 ‘눈감아’ 주기도 합니다. ‘서로 짜고’ 어떤 일을 꾀한다고 할 만합니다. ‘모르는 척’하거나 ‘못 본 척’한다고도 할 만합니다. 4348.8.26.물.ㅅㄴㄹ



학교와 교사들의 암묵적인 동의 아래 공공연히 컨닝이 이루어지기도 한다

→ 학교와 교사들이 말없이 동의해서 대놓고 훔쳐보기를 하기도 한다

→ 학교와 교사들이 눈감아 주어서 버젓이 훔쳐보기를 하기도 한다

→ 학교와 교사들이 서로 못 본 척하여 대놓고 훔쳐보기를 하기도 한다

→ 학교와 교사들이 다 함께 짜서 드러내 놓고 훔쳐보기를 하기도 한다

→ 학교와 교사들이 한통속이 되어 거리낌없이 훔쳐보기를 하기도 한다

《민들레》 36호(2004.11∼12월) 7쪽


암묵적으로 합의된 질서가 있다

→ 조용히 뜻을 모은 질서가 있다

→ 시나브로 뜻을 모은 질서가 있다

→ 서로 지키기로 한 질서가 있다

 서로 말없이 지키는 질서가 있다

→ 말하지 않아도 지키는 질서가 있다

→ 저절로 지키는 질서가 있다

《김준-새만금은 갯벌이다》(한얼미디어,2006) 183쪽


이 동의 내용에는 그것을 글로 쓰는 것도 암묵적으로 포함되어 있어서

→ 이 동의 내용에는 이를 글로 쓸 수 있다고 넌지시 밝혀서

→ 이 동의 내용에는 이를 글로 쓸 수 있다고 말없이 밝혀서

→ 이 동의 내용에는 이를 글로 쓸 수 있다고 알게 모르게 밝혀서

→ 이 동의 내용에는 따로 안 적었어도 이를 글로 쓸 수 있다고 했기에

→ 이 동의 내용에는 낱낱이 안 적었어도 이를 글로 쓰기로 했기에

《마저리 쇼스탁/유나영 옮김-니사》(삼인,2008) 476쪽


이런 식으로 부모와 자식 간에는 암묵적 계약이 성립한다

→ 이렇게 부모와 아이 사이에는 조용히 계약이 이루어진다

→ 이렇게 부모와 아이 사이에는 말없이 계약이 생긴다

《강수돌-더불어 교육혁명》(삼인,2015) 127쪽


(최종규/숲노래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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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흥집 85. 빨랫대와 호박넝쿨 (2015.8.23.)



  햇볕이 눈부시게 내리쬐는 마당에 빨래를 넌다. 호박넝쿨은 빨랫대를 감고 싶다. 그렇지만 호박넝쿨한테 빨랫대를 내줄 수 없다. 무엇이든 잡히기를 바라는 호박넝쿨이 뻗는 자리에서 살살 에두르면서 빨랫대 자리를 바꾼다. 호박꽃은 피고 지고, 호박알은 차츰 굵는다. 우리가 뜯어먹는 풀도, 우리가 안 뜯어먹는 풀도 서로 사이좋게 어우러지면서 자란다. 여름 막바지 풀내음이 몹시 짙다. 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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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들보라 흙을 밟았어



  자전거마실을 하다가 나락꽃을 보던 산들보라가 아주 좁은 논둑을 거닐면서 말한다. “나, 흙을 밟았어.” 그래, 네가 흙을 밟았네. 그런데 흙이 있는 땅이 아주 좁네. 시골에 살면서도 여기도 저기도 온통 시멘트로 덮어 놓아서 흙을 밟기가 매우 어렵네. 용케 이 자리는 흙이 남아서 네가 흙을 밟을 수 있네. 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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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로 사람을 죽이는’ 사람들



  요즈음은 그야말로 ‘말’로 폭력을 일삼는 일이 엄청나게 늘었다. 한국말에는 ‘욕(辱)’이 없었는데, 요새는 웬만한 누리집마다 그악스럽고 끔찍하다 할 만한 욕이 넘친다. 욕이 아니더라도 사람을 ‘말로 죽이는’ 짓이 가득하다.


  한국말에는 참말 ‘욕’이 없었다. 한국말에는 그저 ‘말’만 있었다. 이는 다른 겨레한테도 똑같으리라 느낀다. 손수 삶을 짓고 오순도순 어우러져서 두레와 품앗이로 사랑을 나눈 사람들한테 ‘말’이 아닌 ‘욕’이 있어야 할 까닭이 없다. 다만, ‘막말’이라든지 ‘거친 말’이라는 말이 찬찬히 생겼다. 권력자가 나타나고 전쟁이 불거지면서 이런 말이 태어날 수밖에 없었으리라 본다.


  ‘말로 사람을 죽이는 댓글’은 누가 쓸까? 흔히 ‘초딩’이 그런 글을 쓴다고 하지만, 초딩이 그런 댓글을 남길 만큼 느긋하거나 할 일이 없으랴 싶기도 하다. 초딩 가운데 ‘말로 사람을 죽이는 댓글’을 쓰는 아이가 있기도 할 테지만, 웬만한 ‘말로 사람을 죽이는 댓글’은 바로 어른이라는 사람이 쓰리라 느낀다. 나이만 먹은 사람인 어른, 그러니까 ‘철부지’라고 할 사람들이 쓰지 싶다.


  오늘날 사회가 메마르고 차갑기 때문에 ‘말로 사람을 죽이는 글’을 쓰는 사람이 나타난다고 느낀다. 봉건제 사회가 아니라고는 하지만, 버젓이 신분하고 계급을 가르는 오늘날 사회이다. 돈과 졸업장과 얼굴 따위는 신분하고 계급을 가르는 잣대가 된다. 아이들은 어릴 적부터 입시지옥에 휩쓸리면서 마음이 다치거나 망가진다. 이런 한국 사회에서는 ‘말로 사람을 죽이는 글’을 쓰는 철부지가 생길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괴롭고 힘든 삶이 사라지지 않는다면, 괴롭고 힘든 삶을 스스로 떨쳐내지 않는다면, ‘말로 사람을 죽이는 짓’도 사라지지 않고, 떨쳐낼 수 없으리라 느낀다. 4348.8.26.물.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삶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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