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설면서 새로운



  아파서 꼼짝 못하는 사람이 되어 사흘째 지낸다. 오늘 새벽에는 입이 궁금해서 부엌으로 기어가서 복숭아 반 조각을 먹어 본다. 사흘 만에 뭔가를 입에 넣는다. 아무 맛을 느낄 수 없고, 몸에 뭐가 들어간다는 느낌도 없다.


  청소도 빨래도 밥짓기도 못하고, 그저 자리에 드러누워 몸을 이리저리 뒤집으면서 허리를 펴고 오른무릎을 주무른다. 한밤에 일어나서 오줌을 누고 허리를 펴려고 몸을 동그랗게 말면서 쪼그려앉는데, 큰아이가 엊저녁에 그린 그림이 두 점 방바닥에 있다. 아버지가 다쳐서 놀이터에 못 가니 서운한 마음을 그리고, 아버지가 튼튼하던 때에 다 함께 놀이터에 가서 즐겁게 놀던 모습을 그렸다. 참 예쁘구나.


  다리를 못 써도 팔은 쓸 수 있으니, 잠자리에서 두 아이 이불깃은 여미어 준다. 책상맡에서 좀 쪼그려앉아 허리를 쉰 다음 다시 자리에 누워야겠다. 집일을 도맡아 해 주는 곁님이 더없이 고맙다. 4348.9.4.쇠.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삶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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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가 되다



  밤새 앓으면서 목이 하도 타서 작은아이한테 물 한 모금 가져다줄 수 있느냐고 묻는다. 작은아이는 그야말로 작은 잔에 물을 따라서 천천히 들고 온다. 물을 한 모금 마시는데 속이 시원하지 않고 외려 더 어질거리면서 오줌이 마렵다. 아플 적에는 아무것도 안 먹고 물도 안 마셔야 하는데, 목이 타서 괴로워 물을 한 모금 마셨다가 크게 애먹는다. 어제 깨진 오른무릎을 쓸 수 없어서 자리에 서지 못하니, 궁둥걸음으로 씻는방까지 천천히 간다. 겨우 씻는방에 서서 오줌을 눈다. 어쩌다가 서지도 걷지도 못하는 몸이 되어 엉금엉금 다니기에, 아이들한테 “얘들아, 아버지는 아기가 되었네.” 하고 말한다. 두 아이는 아버지 말을 듣고는 “아버지는 아직 안 기어다니잖아.” “애기는 기어다니잖아.” 하고 얘기한다. 그래, 아버지가 무릎을 써서 기지 못하고 궁둥이로 바닥을 밀면서 다니니, 이 몸짓은 ‘기어다니기’가 아니라는 뜻이로구나. 그렇지만 아버지는 이부자리에 드러누워 이리로 돌려눕고 저리로 돌려눕고, 이 두 가지밖에 못하는걸. 어서 아기 티를 벗고 어른으로 새롭게 일어서야지. 새로운 몸으로 거듭나야지. 4348.9.3.나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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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을 사랑한 사진가 (김기찬 외 아홉 사람) 눈빛 펴냄, 2015.8.27.



  김기찬 님이 골목을 이녁 사진에 담은 삶을 돌아보는 예쁜 책이 나왔다. 더군다나 이 책에는 내가 쓴 글도 한 꼭지 실린다. 김기찬 님이 쓰신 글을 읽고, 다른 이웃 사진가가 쓴 글을 읽는다. 모두들 한 가지 대목에서 만난다. 바로 ‘사랑’이다. 골목을 사랑하고 삶을 사랑하기에 사진을 찍을 수 있고, 이처럼 사랑으로 찍은 사진인 터라 두고두고 오래오래 널리 사랑받는구나 싶다. 누가 나한테 ‘사진이란 무엇인가?’ 하고 묻는다면, 첫째는 사랑이고 둘째는 삶이며 셋째는 꿈이라고 이야기한다. 김기찬 님이 선보인 골목 사진에서는 바로 이 세 가지가 고르게 어우러진다. 이 같은 마음으로 사진을 마주하는 사진이웃이 차츰 늘어날 수 있기를 빈다. 4348,9,3,나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한 줄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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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을 사랑한 사진가- 김기찬, 그 후 10년
김기찬 지음 / 눈빛 / 2015년 8월
18,000원 → 17,100원(5%할인) / 마일리지 520원(3% 적립)
2015년 09월 03일에 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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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그림 읽기

2015.9.2. 큰아이―아버지 얼른 나아요



  사름벼리야, 네가 그려 준 그림을 보고 눈물이 찔끔 나오는데, 무릎이 아직 많이 아파서 몸을 움직이지 못하니 너를 안아 주지도 못하네. 그래도 잠자리에서 네가 춥지 않도록 이불깃은 여미어 줄 수 있다. 아버지 얼른 나으라고, 아버지가 다친 자리마다 파란별을 깜찍하게 넣어 주었구나. 네 뜻대로 아버지 무릎이랑 발등이랑 팔꿈치에는 파란 숨결이 깃들리라 생각해. 고맙다. 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그림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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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자전거 삶노래 2015.9.2.

 : 논둑길에서 미끄러진 자전거



책을 부치러 우체국에 가자. 두 아이는 까르르 웃으면서 대문을 열어 주고, 나는 이 아이들 웃음을 바라보면서 홀가분하게 자전거를 끌고 나온다. 마을 어귀 샘터에서 큰아이는 낯이랑 손을 씻는다. 바람이 알맞게 불면서 하늘에는 구름이 끝없이 바뀌고, 그늘과 볕이 갈마들면서 새로운 가을이 싱그럽다. 자, 이제 신나게 달릴까? 샛자전거에 앉은 큰아이는 문득 “아버지, 벼리가 예전에는 ‘가자!’라 안 하고 ‘출발!’이라 했어?” “응, 이제는 늘 ‘가자!’ 하면서 예쁘게 말하지.”


자전거를 바쁘게 달려야 하지 않으니 논둑길로 접어든다. 논을 옆으로 끼면서 시원하게 달린다. 논마다 나락이 무르익으면서 나락내음이 새롭다.


그런데, 모퉁이에서 꺾은 뒤 오르막이 되는 논둑길에서 자전거가 갑자기 휘청거린다. ‘뭐지?’ 하고 생각할 틈이 없이 손잡이는 벌써 한쪽으로 꺾였다. 마음속으로 ‘아차, 미끄러졌네.’ 하고 느낀다. ‘자,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 하고 생각한다. 내가 자전거를 놓고 뒹구르르 구르면 내 몸은 안 다치리라. 그러나 이렇게 할 어버이는 없으리라. 나는 자전거를 단단히 움켜쥐기로 한다. 내 몸을 던져서 이 논둑길에서 미끄러진 자전거를 세우기로 한다. 몸을 길바닥에 날린다. 자전거와 함께 길바닥에 꽈당 하고 처박힌다.


길바닥에 처박히면서 뒤를 문득 돌아보니, 수레에 앉은 작은아이는 밖으로 튀어나오지 않았다. 샛자전거에 앉은 큰아이는 아슬아슬하게 기울어졌다가 바닥으로 콩 넘어진다. 히유, 두 아이를 모두 건사했구나.


그렇지만, 내 몸은 좀처럼 일으키기 어렵다. 목에 건 사진기는 바닥에 찧지 않았으나 논흙이 많이 튀었다. 어딘가 꽤 다쳤구나 하고 느끼면서 숨을 가쁘게 몰아쉰다. 큰아이가 팔꿈치가 아프다면서 우는 얼굴이 된다. “아버지, 잘 달렸어야지요.” 작은아이는 멀쩡한 몸으로 수레에서 내린다. “난 괜찮은데?”


요 깜찍한 것들. 팔꿈치가 쓰라리다고 느끼면서 두 손바닥으로 땅을 짚고 천천히 자전거에서 몸을 빼낸다. 무릎을 짚고 일어서 본다. 발바닥이 까끌거려서 고무신을 벗는다. 논둑길 바닥에 핏물이 주르르 흐른다. 아버지 무릎에 흐르고 팔뚝에 흐르는 피를 본 두 아이는 “아버지, 피! 피 나와!” 하면서 저희는 이제 더 아프지 않은 듯하다. 큰아이는 논물 흐르는 길바닥에 콩 떨어졌기에 가방이랑 옷이 흙범벅이 된다. 겨우 숨을 고를 수 있은 뒤에 큰아이더러 “그래, 벼리는 큰길에서 자동차 지나가는지 살피고 집으로 돌아가서 옷 갈아입어. 그리고 마른천 하나만 가져다 줘.”


이를 어찌해야 하나 하고 끙끙거리며 생각하다가 마을 어귀 샘터로 가야겠다고 느낀다. 샘터에서 무릎과 팔꿈치와 발등에 찍힌 생채기에 스며든 흙과 짚을 씻어야겠다고 느낀다. 어기적어기적 걷는다. 논물이 많이 흐르는 길바닥을 보니 커다란 물이끼덩이가 있다. 그렇구나, 물이끼가 이렇게 큰 덩이로 이곳에 있네. 이 물이끼를 밟았구나. 논물이 흐르면서 물이끼가 넘쳤나 보구나.


살이 깊이 패인 데에 박힌 돌을 빼낸다. 걸을 수 없어서 바닥에 주저앉는다. 곁님이 집에서 구급약을 챙겨 와서 소독을 해 주고 약을 발라 준다. 이 다리로 우체국에 다녀오기란 쉽지 않을 테지만, 아무튼 우체국에 오늘 다녀와야 하고 구급약을 더 장만해야 한다. 생채기에 소독약을 들이붓느라 다 떨어졌다.


쓰러진 자전거 있는 데로 돌아간다. 쩔뚝거리며 걷는다. 천천히 달리면 괜찮을 테지.


해오라기가 논둑길에 세 마리 나란히 내려앉다가 다시 날아오른다. 가을내음이 짙다. 다친 자리가 얼른 아물기를 빌며 노래하면서 자전거를 달린다. 우체국에서 책을 부치고 약국에 간다. 약국에서는 면소재지 의원에 다녀와야 소독약을 주겠다고 한다. 면소재지 의원에 간다. 깨진 무릎을 들여다보더니 면소재지 의원에서는 처치를 못하니 읍내에 있는 정형외과로 가라고 한다. 의원에서 나와 약국으로 간다. 소독약과 거즈를 잔뜩 달라고 하는데 몇 가지 안 준다. 면소재지 약국에는 이런 구급약이 얼마 없나? 병원에 가든 말든 집에서 자주 갈아 주어야 하니 소독약하고 연고가 있어야 할 텐데, 왜 소독약이나 연고를 몇 가지 안 줄까.


여덟 살 큰아이가 샛자전거에서 힘껏 발판을 구른다. 이 힘을 받아서 집으로 수월하게 돌아온다. 나는 아이들 힘으로 사는구나 하고 새삼스레 깨닫는다. 이 아이들이 있기에 이 시골에서 자전거를 달리며 노래할 수 있다.


집에 닿아 밥을 짓고 국을 새로 끓인다. 몸에 흐르는 땀하고 흙을 말끔히 씻는다. 다시 소독을 하고 연고를 바른 뒤 자리에 드러눕는다. 큰아이도 작은아이도 ‘다 나은 아버지’라는 이름을 붙인 그림을 그려서 보여준다. 참으로 용하고, 더없이 사랑스럽다. 그래, 너희 그림처럼 아버지는 실컷 끙끙 앓은 뒤 말끔히 털고 일어날게. 너희 아버지는 ‘일어서면서 웃는’ 숨결이다. 고맙다. 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자전거와 함께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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