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살이 일기 103] ‘우리 집 파란띠제비나비’ 날다

― 알에서 나비까지 스물이레



  지난 7월 29일 낮 세 시 반 무렵, 우리 집 마당에서 ‘파란띠제비나비(청띠제비나비)’를 한 마리 보았습니다. 이날 본 파란띠제비나비는 아주 부산하게 날갯짓을 하며 돌아다녔습니다. 다만, 우리 집 마당에 우람하게 선 후박나무 둘레를 맴돌았어요. 가끔 맥문동꽃에 앉아서 꽃가루를 빨아먹는 듯했지만, 이내 날아올라 후박나무를 빙글빙글 돌았고, 안쪽으로 깊숙하게 들어가기도 하고, 이 잎 저 잎 바지런히 앉았다가 일어나기를 되풀이했습니다.


  이십 분 남짓 후박나무를 구석구석 돌듯이 날던 파란띠제비나비는 이윽고 우리 집 마당을 떠나 멀리 날아갔습니다.


  전남 고흥에 후박나무가 곳곳에 많기도 하지만, 마을이나 여느 살림집 가운데 후박나무를 우람하게 키우는 집은 매우 드뭅니다. 우리 마을에는 우리 집 한 곳만 후박나무를 키우고, 우리 마을과 맞닿은 이웃 여러 마을에서도 꼭 한 집만 보았습니다.


  8월 10일 아침에 큰아이가 크게 외치는 소리에 깜짝 놀랍니다. 무슨 일이니? “아버지, 여기 봐요. 애벌레가 이렇게 많아!” 풀빛 몸인 애벌레가 거의 스무 마리 즈음 후박잎을 갉아먹습니다. 게다가 이 애벌레는 여기저기 흩어져서 잎을 갉지 않고, 한쪽에 모여서 잎을 갉습니다.


  큰아이와 작은아이가 손가락으로 하나하나 짚으며 셉니다. 두 아이가 센 애벌레 숫자는 열일곱. 그러나 아이들이 못 본 곳에 있는 애벌레를 더 세니 스무 마리가 넘습니다.


  처음에는 범나비 애벌레인가 싶었으나, 범나비 애벌레하고 생김새가 달라요. 한참 들여다보고 요모조모 알아보니, 이 애벌레는 바로 ‘파란띠제비나비’ 애벌레였고, 번데기를 틀기 앞서 마지막으로 허물벗기를 한 모습입니다.


  수수께끼를 하나 풉니다. 열 며칠 앞서 우리 집 후박나무에 찾아와서 이 잎 저 잎 돌던 ‘어른나비’는 암나비였고, 그 암나비는 후박잎마다 알을 낳느라 몹시 부산했구나 싶습니다. 알을 낳으려고 잎마다 돌아다니니 홀가분하게 내려앉아서 느긋하게 쉴 겨를이 없었을 테지요. 파란띠제비나비는 잎 하나에 알 하나만 낳는다고 하니, 그야말로 바삐 이 잎 저 잎 돌아다녀야 했겠구나 싶습니다.


  그나저나 토실토실하게 푸른 빛깔인 애벌레는 다섯째 허물벗기를 마친 몸이라고 하는데, 지난 허물벗기를 하는 동안 이 애벌레를 한 번도 못 알아챘습니다. 알이 있는지조차 못 알아챘어요.


  8월 11일 아침, 애벌레 숫자가 조금 줍니다. 다른 곳으로 옮겨 갔나 싶지만, 그동안 범나비 애벌레를 지켜보며 배우기로는, 이 아이들이 다른 곳으로 갔다기보다 새한테 잡아먹혔으리라 느낍니다.


  8월 12일 아침, 번데기를 하나 봅니다. 여러 애벌레 가운데 한 마리는 번데기로 몸을 바꾸었습니다. 애벌레 숫자는 어제보다 더 줍니다. 하루 사이에 더 잡아먹혔지 싶습니다. 그래도, 아직 살아남은 애벌레는 씩씩하게, 그러나 어제나 그제보다 훨씬 굼뜨고 느린 몸짓으로 잎을 갉습니다. 이 아이들도 곧 번데기가 되려고 할 테지요.


  8월 13일 아침, 번데기 하나가 새로 생깁니다. 그런데, 8월 14일 아침에 보니 그제에 새로 생긴 번데기가 텅 빕니다. 텅 빈 번데기에는 개미가 우글거립니다. 무슨 일이 생겼을까요? 번데기는 왜 텅 비고 이 자리에 개미만 우글거릴까요? 설마 새가 번데기까지 쪼아서 잡아먹었을까요? 8월 12일에 처음 생긴 번데기는 멀쩡합니다. 이 번데기를 보면서 부디 나비로 깨어날 때까지 걱정없이 느긋하면서 고요하게 잠을 자렴 하고 속삭입니다. 날마다 아침 낮 저녁으로 들여다보면서 번데기한테 기운을 북돋아 주는 말을 들려줍니다.


  8월 24일 아침, 번데기 모습이 꽤 바뀌면서 통통해졌다고 느낍니다. 8월 25일 아침, 번데기에 살짝 검은 빛이 돕니다. ‘그날’이 거의 다다랐다고 깨닫습니다.


  이제 8월 26일 아침 7시 33분, 번데기에 검은 빛이 아주 많이 감돕니다. 같은 날 아침 09시 36분, 번데기에 검은 무늬가 짙게 새겨집니다. 아이들을 부릅니다. 아이들더러 틈틈이 마당에서 번데기를 들여다보라고 얘기합니다. “이제 나비 나와?” “응, 아주 천천히 나와.” “몇 시간 걸려?” “여섯 시간쯤 걸린다고 하는데, 나비마다 다를 테니, 지켜보면 돼.”


  아침 11시 00분, 눈처럼 보이는 까만 점 둘이 번데기 위쪽에 나타납니다. 번데기가 터질 듯 말 듯한 모습입니다. 이러고 나서 밥을 짓느라 한 시간 사이를 두고 낮 12시 03분에 마당에 나왔더니, 아니 웬걸, 파란띠제비나비가 어느새 번데기를 다 벗고 밖으로 나왔어요.


  마지막 한 시간 사이에 깨어났습니다. 번데기에서 고개를 처음 내미는 그때를 지켜보고 싶었으나, 올해에는 이 모습을 못 봅니다. 그래도, 고흥에서 다섯 해를 살며 ‘우리 집 나비가 번데기에서 나온 모습’은 올해에 처음 봅니다.


  갓 번데기에서 나온 나비는 방울진 물이 몸과 번데기에 있습니다. 번데기를 가만히 살펴보니, 번데기에도 물이 고였습니다. 어떤 물일까요?


  애벌레였던 옛 몸을 녹이고서 나비라는 새 몸이 된 셈일까요? 옛 몸을 녹였기에 나비라고 하는 새 몸이 될 수 있던 셈일까요? 엊저녁만 하더라도 번데기에는 검거나 파란 빛이 조금도 감돌지 않았습니다. 오늘 새벽과 아침에 이르러 비로소 검은 빛과 무늬가 찬찬히 드러났고, 이 빛과 무늬는 차츰 짙어지면서 나비라고 하는 아주 새로운 숨결이 태어났습니다.




  그저 기어다닐 수만 있고, 아주 천천히 잎만 갉아먹을 수 있던 몸인 애벌레입니다. 이와 달리 가늘고 긴 주둥이로 꽃가루와 꿀을 먹는 몸인 나비요, 가볍고 커다라면서 고운 무늬를 아로새긴 날개로 훨훨 날 수 있는 나비입니다. 잎만 갉으며 푸른 빛깔인 애벌레라면, 꽃가루와 꿀을 먹고 이슬을 마시면서 아주 가볍게 바람을 타고 어디로든 날아오를 수 있는 나비입니다.


  바람이 불 적마다 빈 번데기와 나비가 흔들립니다. 번데기에서 나온 나비는 좀처럼 번데기에서 발을 떼지 못합니다. 가는 실 한 오라기로 줄기에 매달린 번데기를 붙잡은 나비는 바람 따라 흔들리면서도 떨어지지 않습니다.


  번데기에 남은 물은 천천히 사라집니다. 바람이 말렸을까요. 언뜻선뜻 스며드는 햇볕에 또 녹았을까요. 낮 12시 56분이 되자, 파란띠제비나비는 비로소 바람을 타고 번데기를 톡 놓습니다. 그러나 멀리 날아가지는 못하고 후박나무 굵은 줄기에 착 달라붙습니다. 어른으로 깨어난 나비는 이렇게 후박나무 굵은 줄기에 달라붙은 채 한 시간 즈음 있었고, 한 시간이 흐른 뒤에는 홀가분하게 날아오릅니다.


  한 해에 세 차례 알을 낳아 깨어난다고 하는 파란띠제비나비이고, 팔월 끝자락에 깨어난 파란띠제비나비는 막내 나비입니다. 이제 어디로 나들이를 다닐까요? 다른 마을로 갈까요, 숲으로 찾아갈까요? 가끔 우리 집 마당으로도 찾아올까요? 어미 나비가 알을 낳아 잎을 먹고 번데기로 꿈을 꾸던 우리 집 마당 후박나무를 떠올릴 수 있을까요? 이듬해 새봄에 파란띠제비나비는 다시 우리 집 후박나무를 찾아와서 새롭게 알을 낳고 애벌레가 깨어나서 번데기를 틀고 또 다른 나비로 다시금 깨어날 수 있을까요?


  여름 막바지 바람이 싱그러이 붑니다. 풀밭에 앉으면 파란띠가 푸른띠처럼 보이기도 하는 제비나비가 새파란 하늘숨을 듬뿍 마시면서 아름다운 한삶을 누릴 수 있기를 빕니다. 4348.8.27.나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고흥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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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5-08-27 09: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아~~귀한 영상과 사진, 글 감사합니다~!!!!!^^
새삼 신기하고~ 나비와 함께 홀가분하게 날고 싶은 아침이네요~*^^*

파란놀 2015-08-27 09:21   좋아요 0 | URL
이 사진과 영상과 글을 올리려고
거의 한 달을 기다렸어요.
그러나... 더 따지면
지난 다섯 해를 기다렸어요.

다만, 번데기에서 나오는 모습을 보려면
한 해를 더 기다려야 합니다 ㅠ.ㅜ
 

우리집배움자리 57. 무화과 한 알 나누기



  아침에 무화과알을 하나 딴다. 어제 따려고 하다가 하루 미루었다. 하루 미룬 사이 또 멧새가 와서 쪼았다. 하루 더 익혀야지 하고 생각하니 멧새가 먼저 찾아올까. 멧새도 배를 채워야 하니 살짝 쪼아먹어도 괜찮다. 다만, 잘 익은 무화과알은 오늘도 한 알만 있기에 셋으로 가른다. 하나는 어머니 몫, 둘은 두 아이 몫. 한 입에 넣으면 끝인 작은 조각으로는 배를 채우기 어려울 수 있다. 그러나 아침에 얻은 무화과알은 배를 채우려고 먹지 않는다. 한 알 얻은 무화과알을 함께 나누는 뜻이다. 우리한테 오는 고마운 무화과알을 기쁘게 노래하자. 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우리 집 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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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넋·삶 73 한다



  하려고 하니 합니다. 할 수 있으니 합니다. 하고 싶으니 합니다. 할 생각을 품으니 합니다. 그러니까, 안 하려고 하니 안 합니다. 할 수 없으니 안 합니다. 하고 싶지 않으니 안 하고, 할 생각을 안 품으니 안 합니다.


  우리가 어떤 일을 하는 까닭은 ‘하자’고 생각해서, 이 생각을 내 몸에 스스로 심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어떤 일을 안 하는 까닭은 ‘하자’는 생각을 안 하기에, 내 몸에 스스로 심을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어떤 일을 못 한다고 한다면, ‘하자’는 생각이 아닌 ‘못 한다’는 생각을 마음에 담아서 몸에 심기 때문입니다.


  “하면 된다”는 말은 거짓말이 아닙니다. 참말입니다. 하기에 됩니다. 그러니까, 안 하면 안 됩니다. 이 말도 참말입니다. 안 하기에 안 될 뿐입니다. 하려고 하지 않으니 하지 못하고, 하려고 하니 할 뿐입니다. 다만, 하려고 할 적에 곧장 할 수 있기도 하고, 한 달이나 한 해가 걸리기도 하며, 열 해나 서른 해가 걸리기도 합니다. 기나긴 나날이 걸릴 수 있으나, 스스로 ‘한다’는 생각을 품고서, 이 길을 바라보기 때문에 끝끝내 다 될 수 있습니다.


  하기 때문에 되고 나면, 이제 나는 나를 제대로 돌아볼 수 있습니다. 어떤 일을 하겠노라 마음을 품고 이 일을 붙잡은 뒤, 이 일이 될 때까지 헤아리면, ‘아무리 긴 나날이 흘렀다’고 하더라도, 긴 나날을 모두 잊습니다. 서른 해가 걸린 일이어도, 서른 해를 마치 하루처럼 느낍니다. 아니, 짤막하게 흐른 때로구나 하고 느끼고, 때와 곳(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습니다.


  할 생각을 안 하는 사람은 하루가 지나도 못 하지만, 열 해나 서른 해가 지나도 못 합니다. 할 생각을 하는 사람은 하루 만에 되기도 하고 서른 해 만에 되기도 합니다. 자, 그러면 제대로 생각해야 합니다. 하루 만에 되는 사람과 안 되는 사람은 무엇이 다를까요? 서른 해가 흐른 뒤 되는 사람과 서른 해가 흘러도 안 되는 사람은 무엇이 다를까요? 오직 하나, 마음이 다릅니다. 한 사람은 ‘한다’는 생각을 품고 날마다 새롭게 스스로 가다듬거나 갈고닦습니다. 다른 한 사람은 ‘한다’는 생각이 없기에, 날마다 안 새롭습니다. 스스로 안 가다듬고 스스로 안 갈고닦아요.


  가다듬는 데에 서른 해가 걸릴 수 있고, 갈고닦는 데에 하루가 걸릴 수 있습니다. 얼마나 길거나 짧은 나날이 걸리든 대수롭지 않아요. 길어도 되고 짧아도 됩니다. 스스로 하려고 해서 하면 될 뿐입니다.


  하려는 사람은 ‘한다’고 생각하기에 늘 이렇게 말하지요. “자, 우리 좀 하고 보자.” 하고. 되든 안 되든 “하고 보자” 하고 말합니다. 하면서 봅니다. 해 봅니다. 처음으로 한발을 내딛습니다. 첫걸음을 내딛고, 첫발을 뗍니다. 첫걸음을 내딛기에, 이윽고 새걸음으로 이어집니다. 첫발을 떼기에, 차근차근 새발을 뗄 수 있습니다.


  어떤 일을 하겠다는 생각은 씨앗처럼 우리 마음에 깃듭니다. 어떤 일을 하겠다고 생각하는 때부터 내 마음은 ‘어떤 일을 해낼 수 있는 얼거리가 되’도록 몸한테 말을 겁니다. 내 몸은 마음한테서 받은 말(생각)을 듣고 나서 차근차근 새로운 얼거리로 그물을 짭니다.


  우리는 사랑도 할 수 있고, 일도 할 수 있으며, 놀이도 할 수 있습니다. 못 하는 사랑이 없고, 못 하는 일이 없으며, 못 할 만한 놀이가 없습니다. 못 읽을 만큼 어려운 책이 없고, 못 배울 만큼 어려운 학문이 없으며, 못 이룰 만큼 어려운 일이 없습니다. “나는 그림을 못 그리는걸요.” 하고 말하는 사람은 이 말대로 그림을 언제까지나 못 그립니다. “나는 그림을 그리려고 해요.” 하고 말하는 사람은 붓질이 서툴다 하더라도 그림을 그립니다. 처음에는 서툰 붓질일 테지만, 이내 ‘부드럽고 멋스러운 붓질’로 거듭나고, 시나브로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붓질’로 다시 태어납니다.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늘 새롭게 태어나려는 사람입니다. ‘한다’는 생각을 마음에 심는 사람은 언제나 새롭게 바라보려는 사람입니다. 4348.3.9.달.ㅎㄲㅅㄱ


(최종규/숲노래 . 2015 - 람타 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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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에서 뒹굴며 자라는 호박알



  마당에서 호박알이 뒹굴면서 자란다. 아침에 일어나서 호박알을 가만히 들추면 밑에서 쥐며느리와 개미가 바글바글하다. 얘들아, 너희 예서 뭐하니? 너희도 호박알을 먹으려고 그러니? 가만히 보니, 호박알은 바닥에서 뒹굴면 안 되고 풀잎이든 지붕이든 울타리이든 바닥하고 떨어져야 하는구나 싶다. 그런데 이렇게 마당까지 뻗는 호박넝쿨이니 어쩐담. 뭔가를 마련해 주어야겠다. 쥐며느리하고 개미한테 굵은 호박알을 넘길 수 없다. 우리가 호박을 먹을 적에 뭉텅뭉텅 잘라서 너희한테도 나누어 줄 테니, 다른 것을 먹고 이 호박알은 부디 우리한테 넘겨 주렴. 아이들이 마당에서 놀다가 문득문득 호박알을 본다. 널찍한 잎에 가려서 좀처럼 못 알아보는 듯하다. 여기 있는 줄 알면서도 언제나 새로 보는 듯이 군다. 참말 호박잎은 커다란 호박알조차 넉넉히 가려 준다. 4348.8.26.물.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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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일분의 일 1
타카토시 나카무라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3년 9월
평점 :
절판


만화책 즐겨읽기 549



우리가 함께 하면서 즐거운 하루

― 십일분의일 (1/11) 1

 나카무라 타카토시 글·그림

 최윤정 옮김

 학산문화사 펴냄, 2013.9.25. 4800원



  한집을 이루는 사람은 혼자일 수 있고 여럿일 수 있습니다. 한집에 한 사람만 있더라도, 한마을을 이루자면 ‘여러 한집’이 모여야 합니다. 그러니, 한마을을 이루려면 여러 사람이 골고루 어우러져야 합니다. 이러한 사람도 있고 저러한 사람도 있기 마련입니다.


  한별을 이루는 이 지구에는 여러 나라와 겨레가 있습니다. 같은 나라이면서 여러 가지 말을 쓰기도 하고, 여러 겨레가 모인 나라에서 한 가지 말을 쓰기도 합니다. 삶과 말이 같을 적에는 겨레요, 삶과 말이 다르더라도 한마을을 슬기롭게 이루려 하면 나라입니다.



“축구는 이제, 취미 삼아 할 거야.” “하지만 너만큼 실력 좋은 사람이 축구를 안 하는 건 아까운데.” “국가대표가 그렇게 말해 주니 기쁘긴 한데, 이미 결심했어.” (18쪽)

“난 축구를 계속할 수 있었어. 그건, 축구가, 혼자 하는 운동이 아니기 때문이야.” (32쪽)



  혼자서 무대에 오르는 운동경기가 있고, 여럿이 무대에서 뛰는 운동경기가 있습니다. 혼자서 무대에 오른다 하더라도 이 한 사람을 돕거나 돌보는 사람은 여럿입니다. 여럿이 무대에서 뛰는 운동경기라면 그야말로 여러 사람이 한마음이 되어 움직이기 마련입니다.


  나카무라 타카토시 님이 빚은 만화책 《십일분의일(1/11)》(학산문화사,2013) 첫째 권을 읽으면서 생각합니다. 이 만화책은 ‘축구’라는 운동경기를 놓고서 이야기를 풀어냅니다. 혼자서 잘 한다고 잘 할 수 있는 운동경기가 아닌, 여럿이 함께 도우면서 즐겁게 할 수 있는 운동경기를 보여줍니다. 한두 사람이 솜씨를 뽐낼 때에 놀라운 성적을 거둘는지 모르나, 모든 사람이 한몸과 한마음이 되어 움직일 적에 비로소 ‘이 운동경기를 하는 보람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어요.



“나도 비슷한 처지였던지라 젊었을 땐 둘이서 정말 고생했어. 아빠는 ‘호강시켜 주지 못 해 미안하다’고 늘 내게 말했지. 그렇게 아빠는, 대학에 가지 않은 것, 고교 시절 달리기만 했던 걸 내내 후회했어. 그래서 최소한 내 아이들에게만은 나 같은 고생은 시키고 싶지 않다, 그게 아빠가 서클 따위 쓸데없는 짓이라고 생각하게 된 이유야.” (79∼80쪽)



  우리가 함께 하면서 즐거운 하루입니다. 우리가 서로 눈을 마주치면서 빙그레 웃는 하루입니다. 우리가 같이 노래하면서 어깨동무하는 하루입니다.


  네 힘이 모자라면 내가 힘을 쓰면 됩니다. 내 힘이 모자라면 네가 힘을 쓰면 돼요. 둘 다 힘이 모자라면 이웃이나 동무를 부릅니다. 둘 다 힘이 넘치면 이웃이나 동무를 도우러 가요.


  물이 흐르듯이 삶이 흐릅니다. 물결처럼 기쁜 노래를 부르면서 삶을 가꿉니다. 물처럼 맑은 눈망울로 바라봅니다. 온누리를 적시는 빗물처럼 서로서로 마음을 촉촉히 적시는 고운 숨결이 됩니다.



“골도 어시스트도 아니야. 얼핏, 이 달리기는 그저 쓸데없는 짓으로 보일지 몰라. 하지만, 그렇게, 쓸데없을지도 모르는 걸 온힘을 다해 해야, 비로소 재미있는 축구로 이어지는 거야.” (87∼88쪽)

‘늘 혼자서 카메라에 빠져 있던 그녀를, 반 아이들은 괴짜 취급했지만, 그런 주변의 시선을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모습이, 왠지 무척이나 상쾌해 보였다.’ (117쪽)

‘새로운 나로, 다시 태어나자, 그렇게, 새로운 결심을 가슴에 품고 고등학교에 들어갔을 무렵, 내 몸은 변하기 시작했다.’ (122쪽)



  만화책 《십일분의일(1/11)》이 들려주려는 이야기는 대단하지 않습니다. 스스로 새롭게 살아야겠다는 마음을 품을 때에 비로소 새롭게 살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스스로 새롭지 않겠다는 마음이 될 때에 참말 새로움이 하나도 없는 하루가 된다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바보스럽게 산다면 그저 바보일 테지요. 그러나, 바보스럽게 산다고 해서 나쁘지 않습니다. 바보스러움을 온몸으로 겪을 뿐입니다. 슬기롭게 살 적에는 슬기로운 빛이 널리 퍼집니다. 나부터 슬기로우면서 둘레에 밝은 웃음을 베풀고, 내 둘레에서 슬기로우면서 나한테까지 밝은 웃음이 퍼집니다.


  조금 늦게 깨달을 수 있습니다. 조금 일찍 깨달을 수 있습니다. 일찌감치 바보스레 살다가 뒤늦게 바보스러움을 떨칠 수 있어요. 차근차근 한길을 걸으면서 바보스러움을 씻은 뒤에, 빙그레 웃음꽃을 피울 수 있어요.



“결국 판단은, 네 몫이야. 네가 가고 싶은 길을 선택해라.” (81쪽)

“진심으로 변하려 한다면, 사람은 변할 수 있어요.” (152쪽)

‘지금, 이제야 겨우 딱 한 걸음 다가갔다. 그 시절 내가 그토록 꿈꿨던, 겉모습만이 아닌, 반짝반짝 빛나는 나 자신에게.’ (163쪽)



  내 길은 내가 걸어갑니다. 내 밥은 내가 먹습니다. 내 말은 내가 합니다. 내 노래는 내가 부릅니다. 내 웃음은 내가 짓습니다. 내 빨래는 내가 합니다. 참말 모두 내 몫을 나 스스로 즐겁게 맡습니다. 내 꿈은 내가 이루고, 내 사랑은 내가 길어올려요.


  너도 나도 얼마든지 반짝반짝 빛나는 숨결입니다. 나도 너도 언제나 고요히 피어나면서 눈부시게 일어서는 나무와 같습니다. 열한 사람이 함께 운동장에서 뛰는 축구처럼, 나는 열한 사람 가운데 하나입니다. 때로는 운동장에서 뛰지 못하고 뒷자리에 앉아서 지켜보는 사람일 수 있어요. 때로는 뒷자리에도 앉지 못하고 관중석에 앉아서 쳐다보는 사람일 수 있어요.


  어느 자리에 앉든 다 재미있습니다. 어느 자리에서든 내 몫은 즐거이 맡을 수 있습니다. 발바닥이 부르트도록 달릴 수 있고, 물주전자를 떠올 수 있으며, 목청껏 기운을 북돋아 줄 수 있습니다. 서로 아끼는 마음일 적에는 언제 어디에서나 사랑스러운 벗님입니다. 4348.8.26.물.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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