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고운 빛깔 배롱꽃



  큰아이하고 새로운 한국말사전을 빚으려고 이야기를 나누는데, “아버지, ‘분홍빛’은 ‘배롱꽃’이야?” 하고 묻는다. “응? 아, 그렇구나. 배롱꽃 빛깔이 ‘분홍’이로구나?” “응. 배롱꽃 예뻐.” 배롱꽃 빛깔이라고 한다면 아무래도 짙은 분홍빛이라고 할 만하다. 진달래꽃도 분홍빛 가운데 하나인데, 진달래꽃은 옅은 분홍이 될 테고, 배롱꽃은 짙은 분홍이 되겠네.


  마을 어귀에도 마을 길섶에도 배롱나무가 잘 자란다. 아직 우리 집 뒤꼍이나 마당에는 없다. 우리 집에는 없어도 마을에는 있으니 배롱꽃을 날마다 바라보면서 즐거운 숨결을 나누어 받는다. 그리고, 여덟 살 어린이가 알려준 ‘배롱꽃 분홍빛’을 마음으로 그려 본다. 이 아이들은 고운 빛깔을 알아보는 멋진 눈썰미가 있다. 책이나 사전에 나오지 않은 멋진 빛깔을 알려주는 사랑스러운 아이들이 고맙다. 4348.8.28.쇠.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꽃과 책읽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고흥집 86. 머리가 빼꼼 (2015.8.23.)



  도서관마실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두 아이는 저만치 앞서 달린다. 이제 마을논에도 나락이 제법 자랐다. 요즈음 나락은 유전자를 건드려서 키가 무척 작지만, 그래도 아이들 키하고 엇비슷하다. 먼발치에서 바라보니 작은아이 머리가 빼꼼 보인다. 작은아이는 자동차를 한손에 들고 빨래터 울타리에 굴린다. 배롱꽃이 곱게 흐드러지고, 큰아이도 어느새 작은아이 앞으로 달려나와서 까르르 웃는다. 여름이 저물려고 한다. 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고흥 이야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블럭놀이 16 - 미끄럼 있는 집



  작은아이가 조각으로 집을 짓는다. 척척 짜맞추어서 ‘미끄럼 있는 집’을 짓는다. 집을 둘러싼 마당에 미끄럼이 있어서 언제나 미끄럼을 타면 아주 재미있겠네. 바람을 가르며 휘휘 미끄럼을 타면서 땀흘릴 수 있는 멋진 집이 되면, 그야말로 신나겠네. 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놀이하는 아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시골아이 164. 우리가 달리는 길 (15.8.25.)



  우리가 달리는 길은 우리 마을길이다. 우리가 뛰노는 곳은 우리 보금자리이다. 우리가 사는 곳은 우리 꿈터이다. 우리가 가꾸는 살림은 우리 사랑노래이다. 장난감을 손에 쥐고 시골돌이가 달리는 길에 고운 이야기가 한 타래씩 서리리라 본다. 비가 멎고 바람이 불며 구름이 흐르는 이곳에서 풀노래를 들으면서 시골꽃 같은 웃음을 피운다. 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돌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배롱나무를 노리는 사람들



  늘 마을에서 지내면서 집과 도서관 사이를 오가다 보면, 마을 어귀에 자동차를 댄 ‘도시사람’을 곧잘 볼 수 있다. 이들은 왜 이 깊은 시골마을까지 찾아올까? 우리 마을에서 흐르는 싱그러운 샘물을 떠 갈 생각일까? 어쩌면 샘물을 떠 가는 사람도 있겠지. 오늘 두 아이하고 빨래터 물이끼를 걷으러 가서 웃통을 벗고 신나게 물이끼를 걷는데, 자동차 한 대가 서더니 늙수그레한 아저씨가 “저기 배롱나무 가지 하나 얻을 수 있을까요? 약으로 쓰게.” 하고 묻는다. 어디서 온 누구인지 밝히지도 않고 대뜸 배롱나무 가지를 달라고 하는 까닭은 뭘까? 그러고 보니, 우리 마을 배롱나무 가지가 좀처럼 늘지 못하고 자꾸 꺾이거나 줄어든다고 느꼈다. 아하, 바로 이런 사람들이 몰래 베거나 잘라 갔는가 보구나. “마을나무인데 함부로 안 베지요. 그리고 다들 약으로 쓴다면서 가지를 잘라 가면 나무가 남아나겠습니까? 다른 데 가서 알아보세요. 산에 가거나 길에서 베거나 하세요.” “약으로 쓴다는데, 갑갑하게 구네.” “여보세요. 이 나무는 아저씨 나무가 아니라 우리 마을 나무입니다. 나무를 아낄 줄 모르면서 무슨 약으로 쓴다는 말입니까?” 늙수그레한 아저씨는 잔뜩 욕을 늘어놓고 자동차 문을 쾅 닫고 간다. “아버지, 저 사람 왜 나무를 벤데?” “이 나무가 약이라서 가져가겠대. 그래서 가져가지 못하게 했어.”


  가만히 보면, 도시사람은 외지고 깊은 시골마을로 몰래 들어와서 나뭇가지뿐 아니라 이것저것 몰래 캐거나 뜯거나 파 가곤 한다. 그러면서 마을사람한테 들키거나 들통이 나면 ‘인심 좀 쓰라’고 핀잔을 하다가 ‘인심을 안 쓰겠다’고 하면 온갖 욕을 내뱉는다.


  어디에 어떤 약으로 쓸 생각인지 모를 노릇이나, 고약한 마음으로 찾아와서 고약한 마음으로 빼앗거나 훔치면 어떤 약이 될까? 마음을 곱게 다스린다면 몸이 아플 일이 없으리라 느낀다. 배롱나무도 뽕나무도 후박나무도 초피나무도 자귀나무도 …… 제발 찾지 마라. 방송에서는 제발 엉터리 같은 약초나 약나무 이야기 좀 내보내지 마라. 약이 안 되는 풀이나 나무가 어디에 있는가?


  우리 마을 배롱나무 가지를 또 훔치려고 했던 사람은 ‘마을 할매가 낮잠을 자거나 쉴 겨를’에 마을 어귀에 나타났다. 오늘 바로 그때에 아이들하고 빨래터를 치우러 나오지 않았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참으로 끔찍한 노릇이다. 4348.8.27.나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꽃과 책읽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