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하늘 이고 달리는 꿈



  자전거 사고가 난 지 여드레째. 이제 몇 걸음을 떼기는 하지만 집 바깥으로 나갈 엄두를 못 낸다. 걸상에 앉을 적에 오른다리를 땅바닥에 내려놓지 못한다. 자전거를 못 탄 지 아흐레째이고, 파란하늘을 이고 가을 들길을 가르는 싱그럽고 신나는 마실도 아흐레째 못 누린다. 다치기 앞서 아이들하고 논둑길에서 올려다본 하늘을 되새긴다. 이 새파란 하늘을 가슴으로 담고 싶다. 아니, 그동안 내 가슴에 담긴 새파랗고 눈부신 하늘을 새롭게 떠올리면서 오른무릎에 파란 숨결이 찬찬히 자라기를 빈다. 자, 구월은 아직 넉넉히 남았으니, 어서 기운을 내어 두 다리로 다시 걷는 날을 꿈꾸자. 4348.9.9.물.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삶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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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털실뭉치 문지아이들 120
권영상 지음, 김중석 그림 / 문학과지성사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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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사랑하는 시 67



아이들은 달팽이처럼 씩씩하게 나아간다

― 엄마와 털실 뭉치

 권영상 글

 김중석 그림

 문학과지성사 펴냄, 2012.5.31. 9000원



  실뭉치가 있으면 아이들은 꼭 실뭉치를 노립니다. 왜 노리는가 하면, 실뭉치를 굴리면서 놀고 싶기 때문이에요. 두 아이가 있으면 한 아이가 끝을 잡고 다른 한 아이가 길게 이으려 합니다. 처음에는 커다란 공이던 실뭉치가 차츰 작아지면서 끝도 없이 길게 늘어지는구나 하고 느끼기 때문에 재미있어서 이 놀이를 멈추지 않습니다.


  노는 아이를 나무랄 수 없습니다. 차근차근 타이릅니다. 얘야, 이 실뭉치로 어머니가 무엇을 하든? 뜨개를 해요. 어떤 뜨개를 하든? 음, 나하고 동생이 입을 옷이랑 양말을 떠요. 그러면 이 실뭉치를 어떻게 해야 할까? 막 굴리거나 풀지 말아야 해요.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겠지?



먼저 떨어진 가랑잎이 / 나중 떨어진 / 가랑잎 곁에 / 다가가 묻는다. (가랑잎들)


우리 집보다 / 더 큰 느티나무가 / 참새네 집이다. (참새네)



  권영상 님이 빚은 동시집 《엄마와 털실 뭉치》(문학과지성사,2012)를 가만히 읽습니다. 국어교사로 오랫동안 일하다가 정년퇴직을 한 권영상 님입니다. 아이들한테 말과 삶을 가르치듯이 동시도 또박또박 이야기가 흐릅니다. 똑 소리가 날 만한 동시요, 말 한 마디마다 얽힌 삶을 찬찬히 읽을 만한 이야기입니다.



살구나무에서 / 뛰어내릴 때 / 나는 들었다. // 쿵, 하고 / 땅이 울리던 소리. (내 무게)



  예부터 이 나라 모든 어머니는 아기를 낳아 젖을 물리고 젖떼기밥을 끓이면서 말을 가르쳤습니다. 이 나라 모든 아기는 어머니 몸에서 태어나 젖을 물고 젖떼기밥을 거쳐서 이가 튼튼히 나며 스스로 밥을 먹을 수 있습니다. 아기는 어머니한테서 새로운 말을 듣습니다. 어머니는 아기한테 모든 말을 노래처럼 부드럽고 따스하게 들려줍니다. 어머니는 책이나 교재가 아닌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사랑으로 아이한테 말을 가르칩니다. 아이는 책이나 교재가 없어도 온갖 말을 사랑으로 배우니까, 제 마음을 실컷 드러낼 수 있는 넉넉하고 깊은 마음자리를 가꾸면서 자랍니다.


  어머니는 밥을 짓고 옷을 짓습니다. 아버지는 밥을 함께 지으면서 집을 짓습니다. 아이는 어머니와 아버지 곁에서 삶을 짓는 길을 곰곰이 지켜봅니다. 밥짓기를 보고, 옷짓기를 보며, 집짓기를 봅니다. 살림살이가 하나씩 태어나는 결을 마주합니다. 두 어버이 손에서 새롭게 깨어나는 멋진 이야기를 하나하나 눈부시게 만납니다.



하늘은 / 목욕하기 좋도록 / 버려진 꼬막 껍질에 / 빗방울을 채워 놓는다. (비 오는 날)



  아이들은 놀 적마다 놀이노래를 불러요. 이런 노래는 어디에서 배울까요? 바로 어버이 곁에서 배웁니다. 어버이가 일하면서 흥얼거리는 기쁜 사랑이 서린 가락을 배우기에 놀이노래를 새롭게 부르지요. 아이 스스로 호미를 쥐면서 놀이노래가 새로 나오고, 아이 스스로 등짐을 지면서 놀이노래가 새삼스레 나옵니다. 아이 스스로 저보다 어린 동생을 보살피면서 놀이노래가 새롭게 깨어나고, 아이 스스로 집일을 거드는 심부름을 하는 사이에 어느덧 놀이노래가 아름답게 터져나옵니다.



콩나물을 고르던 / 엄마가 / 왠지 조용하다. // 콩나물 잡은 손을 / 힘없이 무릎 위에 떨군 채 / 고주박잠을 잔다. (고주박잠)



  동시집 《엄마와 털실 뭉치》가 보여주는 삶을 읽습니다. 버려진 꼬막 껍질을 바라보는 삶을 읽고, 고주박잠을 자는 어머니를 지켜보는 삶을 읽습니다. 씨감자를 심거나 감자알을 캐는 삶을 몸소 겪는 삶이 무엇인가 하는 이야기를 읽습니다.


  그리고, 동시를 읽을 만한 나이인 어린이라면, 어떤 집일을 거들 만할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아이가 손수 콩나물을 골라 보았다면, 아이가 손수 걸레를 빨아서 방바닥을 날마다 훔쳐 보았다면, 아이가 손수 밥을 지어서 어머니나 아버지한테 차려 주었다면, 도시락을 아이가 손수 싸 보았다면, 보채는 어린 동생을 달래면서 자장노래를 불러 주었다면, 이때에 아이 눈높이에서 피어날 동시는 어떤 이야기가 흐를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아빠와 같이 / 감자를 캐는데 / 호미 끝에 큼직한 녀석이 걸렸다. / 당겨 보니 이게 또 뭔가? / 주먹만 한 돌멩이다. (감자를 캐며)



  한국 동시문학은 퍽 오랫동안 ‘동심 천사주의’라고 하는 이름처럼 아기를 귀염둥이로만 바라보는 이야기를 운율에 맞게 틀에 넣는 동시로 흘렀습니다. 삶을 담아서 아이 스스로도 삶을 느끼도록 돕는 동시가 나오기는 했으나 ‘어떤 삶을 어떻게 그리느냐’ 하는 대목을 깊이 헤아리는 동시는 아직 많이 드뭅니다. 여기에, ‘가벼운 말놀이’로 ‘가벼운 재주’를 부려서 ‘가벼운 재미’를 퍼뜨리려는 동시가 부쩍 크게 일어나서 요즈음 ‘주류 동시’가 되었습니다.


  권영상 님 동시는 동심 천사주의로 흐르지 않고, 가벼운 말놀이 재미로 흐르지 않습니다. 아이가 스스로 부대끼면서 삶을 생각하도록 이끄는 동시라고 할 만한 결을 보여줍니다. 다만, ‘어떤 삶’을 그리느냐 하는 대목에서 ‘학교 생활’을 벗어나지 못하고, 집에서도 ‘어머니가 하는 집안일 구경’ 틀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아이가 스스로 나서는 몸짓이 드러나지 못합니다. 학교 바깥에서 마을이나 숲을 마주하는 푸른 가슴을 동시로 담는 손길은 살짝 모자라지 싶습니다.


  〈달팽이는 다르다〉처럼 아이가 제 삶을 스스로 새롭게 바라보도록 돕는 동시를 더 즐겁게 쓰실 수 있다면 권영상 님 동시는 한결 눈부시리라 생각합니다. 앞으로 이 마을을 가꿀 아이들 슬기를 동시로 드러내고, 앞으로 이 삶터를 북돋울 아이들 꿈을 동시로 보여줄 수 있기를 바라요.



그러나 달팽이는 다르다 / 천둥 치는 들판으로 / 홀로 나간다. (달팽이는 다르다)



  아이들은 달팽이처럼 씩씩하게 나아갑니다. 겉보기로는 다리가 느린 듯하지만, 운동선수처럼 잰 몸놀림도 아닐 뿐더러, 여느 어른보다 힘이 많이 여리지요. 그러나 아이들은 달팽이처럼 다부지게 나아갑니다. 비바람이 불건 천둥이 치건 대수롭지 않습니다. 비를 맞으면서 놀고, 눈을 반기면서 놀아요. 몸이 젖으면서 놀고, 몸이 꽁꽁 얼면서 놀아요.


  이 나라 모든 씩씩한 아이들한테 선물로 건넬 사랑스러운 동시를 기다립니다. 우리 둘레 모든 곱고 슬기로운 아이들한테 선물로 나누어 줄 짙푸른 나무 같은 동시를 기다립니다. 4348.9.9.물.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에서 동시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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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세상’에서 빨래를 한다면



  며칠 앞서 빨래를 할 적에 빨래틀한테 맡겼듯이 오늘도 빨래틀한테 맡겨서 빨래를 한다. 여드레째 오른무릎을 제대로 못 쓰니까 다른 집일을 할 적마다 쉬엄쉬엄 할 뿐 아니라, 천천히 한다. 조금 움직이며 일하다가 앉아서 다리를 쉬고, 다시 움직이며 일하다가 앉아서 다리를 쉰다.


  기계를 쓰는 빨래는 수월하다. 옷가지에 비누를 바른 뒤에 기계에 전기를 넣어서 단추를 누르면 끝. 빨래를 마친 뒤 꺼내어 널어야 할 텐데, 내가 손수 옷가지를 널 수 없으니 이 몫은 큰아이가 맡아 주겠지.


  지난 여드레 동안 손빨래를 못하고 보니 기계빨래를 할밖에 없는데, 기계빨래를 하면서 ‘빨래틀을 쓴다’는 말을 따로 해야 한다. 요즘 세상에 다른 사람들은 ‘빨래를 한다’고 하면 아주 마땅히 기계를 쓴다는 뜻일 테지만, 나한테는 손을 써서 조물조물 주무르면서 옷이랑 물이랑 비누랑 바람이랑 햇볕을 느낀다는 뜻이다. 4348.9.9.물.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빨래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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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뚝청소부는 언제나 즐겁다



  영화 〈메리 포핀스〉는 참 자주 다시 본다. 아이들이 다시 보고 싶다는 말을 틈틈이 하기도 하지만, 이 영화에 나오는 노래를 화면과 함께 다시 보고 싶어서 참 자주 틀곤 한다. 처음에는 노래 한두 가지만 들을 생각이었지만 어느새 끝까지 달리고야 만다.


  오늘은 〈메리 포핀스〉를 다시 보면서 “굴뚝청소부는 가장 행복한 직업”이라고 하는 ‘버트’ 대사를 눈여겨본다. 버트는 ‘뱅크스’ 씨네 굴뚝을 뚫으면서 아이들한테 ‘굴뚝’이라는 곳은 “그림자 반 빛 반이 있는 세계”라는 말을 들려주는데, ‘그림자’라기보다는 ‘어둠’이나 ‘고요’로 번역하면 한결 잘 어울리겠다고 느낀다. 버트는 굴뚝에 낀 검댕을 모두 털어서 뚫으면 아주 멋지고 놀라운 곳으로 나간다고 말하는데, 어둡고(고요하고) 밝은(빛나는) 흐름이 함께 어우러진 곳을 빠져나가서 만나는 새로운 누리는 그야말로 아름답고 사랑스럽다는 뜻이다. 그러니, 이러한 삶을 늘 겪으면서 돈까지 버는 굴뚝청소부는 얼마나 기쁜 일인가 하고 아이들한테 노래하고 춤추면서 말한다.


  아이들하고 춤노래에 빠져들어 영화를 보는 내내 생각해 본다. 아직 오른무릎이 낫지 않아 춤을 못 추지만, 굴뚝청소부들이 잔뜩 모여서 즐기는 신나는 춤을 나도 아이들하고 추고 싶다. 노래하고 춤출 수 있는 일, 참말 언제나 노래하고 춤출 수 있는 일을 해야 기쁜 삶이 될 테니까.


  오늘날 사람들 삶이 즐겁거나 기쁘지 않다면, 노래하거나 춤추지 못하는 채 ‘실적을 맞추기만 해야 하는 일’에 얽매여야 하기 때문이리라 싶다. 노래하면서 일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대통령이나 공무원이 노래하면서 일할까? 의사나 변호사가 일하다가 노래를 할까? 가게 일꾼은 어떠한가? 전문 댄서가 아니라, 여느 사람으로서 춤추면서 일하는 사람은 얼마나 있는가?


  먼 옛날부터 지구별 모든 숲마을 사람들은 언제나 노래하고 춤추면서 일했다. 웃고 이야기하면서 일했다. 현대 물질문명 사회가 된 뒤부터 사람들은 일터에서 노래와 춤을 빼앗긴다. 아니, 스스로 노래와 춤을 버린 채 일을 한다. 따로 노래방이라는 곳에 가서 술을 마시면서 몸을 뒤흔들고 소리를 빽빽 내지르기만 한다. 노래나 춤이 아니라 ‘악’을 쓴다.


  우리는 걸레를 빨고 밥을 지으면서 노래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춤출 수 있어야 한다. 길을 걸으면서 노래하고, 버스에서 창밖을 내다보다가 춤출 수 있어야 한다. 이래야 비로소 삶이다. 4348.9.9.물.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삶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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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2340) 절호의


 절호의 기회를 놓치네

→ 아주 좋은 기회를 놓치네

 절호의 공격 찬스가 될 수 있다

→ 공격할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


  ‘절호(絶好)’라고 하는 한자말은 “무엇을 하기에 기회나 시기 따위가 더할 수 없이 좋음”을 뜻한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더할 수 없이 좋음”이나 “매우 좋음”이나 “아주 좋음”처럼 손질해서 쓰면 됩니다. 굳이 “더할 수 없이/매우(絶) + 좋음(好)”을 가리키려고 ‘절호’라는 한자말을 빈 다음에 ‘-의’까지 붙여야 하지 않아요. 단출하게 ‘좋은’이라고 해도 되고, 때와 곳에 따라서 ‘멋진’이나 ‘훌륭한’이나 ‘둘도 없는’이나 ‘다시 없는’ 같은 말마디를 넣을 수 있습니다. 4348.9.9.물.ㅅㄴㄹ



간신히 테츠오 씨에게 대항할 수 있는 절호의 새우를 찾았는데

→ 겨우 테츠오 씨한테 맞설 수 있는 아주 좋은 새우를 찾았는데

→ 가까스로 테츠오 씨한테 맞설 수 있는 딱 알맞은 새우를 찾았는데

→ 드디어 테츠오 씨한테 맞설 수 있는 둘도 없는 새우를 찾았는데

《테라사와 다이스케/서현아 옮김-미스터 초밥왕 4》(학산문화사,2003) 276쪽


‘아기’라는 멋진 동반자와 함께 그렇게 기분을 전환하고 조절하는 것을 배울 절호의 기회이기도 합니다

→ ‘아기’라는 멋진 길동무와 함께 그렇게 마음을 바꾸고 다스리는 삶을 배울 좋은 때이기도 합니다

《이케가와 아키라/김경옥 옮김-아기는 뱃속의 일을 기억하고 있다》(샨티,2003) 56쪽


일본 식물학자들은 우리 고유 식물에 자신의 이름을 새겨 넣을 절호의 기회를 얻게 된 것이다

→ 일본 식물학자는 우리 고유 식물에 저희 이름을 새겨 넣을 좋은 구실을 얻었다

《이윤옥-창씨개명된 우리 풀꽃》(인물과사상사,2015) 161쪽


(최종규/숲노래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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