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정지를 들여다보는 글쓰기



  보름 뒤에 선보일 책을 놓고 교정지가 나왔다. 아침부터 틈을 내어 조금씩 살핀다. 이제 250쪽까지 보았고 쉰 쪽을 더 보면 된다. 아이들이 서로 놀면서 살짝살짝 틈을 낼 수 있고, 아이들이 영화를 보는 사이에도 살몃살몃 틈을 낼 수 있다. 그리고 저녁에 두 아이를 가만가만 재우고 나서 다시금 틈을 낸다. 잘 놀고 잘 먹으며 잘 자는 아이들은 언제나 참으로 사랑스러우면서 고맙다. 아버지는 늘 아이들을 바라보고 어루만지면서 글 한 조각을 매만진다. 이 글 한 조각이 책으로 태어나면 우리 시골집을 보듬는 살림돈을 얻는다. 가을비가 내리고, 가을바람이 차분히 마당을 휘감는다. 고즈넉하게 하룻밤이 저문다. 4348.9.16.물.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삶과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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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2352) 장문의


 장문의 글 → 긴 글

 기다란 장문이다 → 기다란 글이다


  ‘장문(長文)’은 “긴 글”을 뜻한다고 합니다. “장문의 편지”를 쓰는 사람은 “단문의 편지”도 쓰겠지요. 그러면 “중문의 편지”도 쓸까 궁금합니다. 그러나 “웬 편지가 이리도 기니?”라든지 “편지 참 짧게 쓰네.” 하고 말할 뿐이고, “편지를 길게 썼어.”나 “이번엔 편지가 짧아.” 하고 말할 뿐입니다. 글을 쓸 때에도 “길고 짧게” 쓸 뿐입니다. 4348.9.16.물.ㅅㄴㄹ



맨리 총장에게 장문의 편지를 보내

→ 맨리 총장한테 긴 편지를 보내

→ 맨리 총장한테 편지를 길게 써 보내

《하워드 진/유강은 옮김-달리는 기차 위에 중립은 없다》(이후,2002) 56쪽


장문의 발췌 부분을 베껴 낼 수 있었을 뿐이며

→ 긴 글을 뽑아서 베껴 낼 수 있었을 뿐이며

→ 긴 글을 골라서 베껴 낼 수 있었을 뿐이며

《카를 마르크스·프리드리히 엥겔스/김대웅 옮김-독일 이데올로기》(두레,2015) 185쪽


(최종규/숲노래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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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2349) -의 : 물리학자들의 헌신적 노력


여러 물리학자들 헌신적 노력에도 불구하고

→ 여러 물리학자들 몸을 바쳐 애썼어도

→ 여러 물리학자들 온힘을 바쳤지만

《프리먼 다이슨/김학영 옮김-과학은 반역이다》(반니,2015) 266쪽


  “헌신적(獻身的) 노력(努力)에도 불구(不拘)하고”는 “몸을 바쳐 애썼어도”나 “온힘을 바쳤지만”으로 손봅니다.


파인만의 과학을 화제로 삼은 몇 안 되는 편지 가운데

→ 파인만이 과학을 이야깃감으로 삼은 몇 안 되는 편지 가운데

→ 파인만이 과학을 이야기한 몇 안 되는 편지 가운데

《프리먼 다이슨/김학영 옮김-과학은 반역이다》(반니,2015) 326쪽


  파인만이라는 분이 쓴 편지를 가리키는 보기글이니 ‘-의’가 아닌 ‘-이’를 붙여야 올바릅니다. ‘화제(話題)’는 ‘이야깃감’이나 ‘이야깃거리’로 손봅니다.


우리의 영어 실력은 그런 데서 조금씩 발휘되었다

→ 우리 영어 솜씨는 그런 데서 조금씩 빛을 보았다

 우리 영어 솜씨는 그런 데서 조금씩 드러났다

《마르야레나 렘브케/김영진 옮김-돌이 아직 새였을 때》(시공사,2006) 90쪽


  “영어 실력(實力)”은 “영어 솜씨”로 손질하고, ‘발휘(發揮)되었다’는 ‘드러났다’나 ‘나타났다’나 ‘빛을 보았다’로 손질해 줍니다.


페카의 질문은 언제나 똑같았다

→ 페카는 언제나 똑같이 물었다

→ 페카가 묻는 말은 언제나 똑같았다

《마르야레나 렘브케/김영진 옮김-돌이 아직 새였을 때》(시공사,2006) 95쪽


  ‘질문(質問)’은 ‘물음’으로 손볼 수 있는데, 글흐름을 살펴서 ‘묻다’나 ‘묻는 말’로 손보아도 잘 어울립니다. 4348.9.16.물.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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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말을 죽이는 외마디 한자말

 (1403) 추하다醜


 추한 차림새 → 지저분한 차림새 / 후줄근한 차림새

 추한 꼴을 보이다 → 못난 꼴을 보이다 / 더러운 꼴을 보이다

 정말 추하다 → 참말 지저분하다 / 매우 꼴사납다

 추하게 늙다 → 볼품없게 늙다 / 초라하게 늙다

 얼굴은 추하지만 마음은 곱다 → 얼굴은 못생겼지만 마음은 곱다


  ‘추하다(醜-)’는 “1. 옷차림이나 언행 따위가 지저분하고 더럽다 2. 외모 따위가 못생겨서 흉하게 보이다”를 뜻한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지저분하다’나 ‘더럽다’로 고쳐서 쓰면 되기도 하고, ‘못나다’나 ‘모자라다’나 ‘못생기다’나 ‘볼품없다’나 ‘추레하다’나 ‘초라하다’로 고쳐서 쓰면 되기도 합니다. 자리에 따라 ‘보기 나쁘다’나 ‘보기 싫다’나 ‘볼꼴사납다’나 ‘꼴사납다’나 ‘궂다’나 ‘꾀죄죄하다’로 손질해도 잘 어울립니다. 4348.9.16.물.ㅅㄴㄹ



왜소하고 추하고 수수께끼에 넘쳐 있으며

→ 깡마르고 못생기고 수수께끼에 넘쳤으며

→ 볼품없고 꾀죄죄하고 수수께끼에 넘쳤으며

→ 초라하고 못나고 수수께끼에 넘쳤으며

《장소현-뚤루즈 로트렉》(열화당,1979) 9쪽


이 사건과 아울러 나를 더욱 추하게 한 것은

→ 이 일과 아울러 나를 더욱 못나게 한 것은

→ 이 일과 아울러 나를 더욱 바보같이 한 것은

《스나가 시게오/외문기획실 옮김-뜨거운 가슴으로 아들아》(갈무지,1988) 69쪽


더 이상 추한 짓은 하지 마세요

→ 더는 못난 짓은 하지 마세요

→ 더는 못된 짓은 하지 마세요

→ 더는 바보 짓은 하지 마세요

→ 더는 더러운 짓은 하지 마세요

→ 더는 꼴사나운 짓은 하지 마세요

→ 더는 나쁜 짓은 하지 마세요

→ 더는 몹쓸 짓은 하지 마세요

《모리모토 코즈에코/장혜영 옮김-조폭 선생님 6》(대원씨아이,2003) 51쪽


추한 생물이라 생각했는데, 아름다운 눈을 하고 있군

→ 못생긴 생물이라 생각했는데, 아름다운 눈이로군

→ 징그러운 생물이라 생각했는데, 눈이 아름답군

《나치 미사코/한나리 옮김-하루를 마치며 읽고 싶은 책》(시공사,2012) 109쪽


(최종규/숲노래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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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라디오(9/17 11:50)’와 ‘자전거 사고’



  2015년 9월 17일 목요일 아침 11시 50분에 ‘mbc라디오(표준fm)’ 방송에 내 목소리가 나간다. 지난 9월 2일에 목소리를 담았다. 아마 10분 동안 목소리가 흐르는 듯하다. 어떤 목소리를 들려줄는지 궁금하지만, 아마 나는 이 목소리를 안 듣거나 못 들을 테지. 아이들하고 복닥이느라 바빠서 지나칠 테니까.


  지난 9월 2일은 우리 아버지 생일이었고, 그날에 맞추어 두 아이를 이끌고 음성으로 마실을 가려 했다. 그런데 방송국에서 찾아오는 때하고 겹치는 바람에 방송국 사람을 만나려고 아침을 보냈고, 방송국 사람이 떠난 뒤에 우체국에 다녀오느라 부산을 떨다가 그만 논둑길에서 물이끼를 밟고 미끄러지면서 오른무릎이 아주 크게 다쳤다.


  그날, 그러니까 9월 2일에 방송국 분을 만나지 않고 음성으로 아이들을 이끌고 날아갔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마 자전거 사고는 나지 않았을 텐데, 자전거 사고가 나지 않은 지난 내 삶은 어떤 모습으로 흘렀을까?


  나는 나한테 찾아온 자전거 사고가 반갑지도 싫지도 않다. 틀림없이 어떤 뜻이 있어서 이 사고가 났다고 느낀다. 아무튼 이제 제법 걸어다닐 수 있으나 아직 제대로 걷지는 못한다. 곧 이 오른무릎도 말끔히 나아서 ‘언제 못 걷고 끙끙 앓아눕기만 했는’지 모를 만한 날을 맞이하리라 본다. 내 목소리가 얼마나 구성지거나 구수하거나 듣기 좋은지 잘 모른다. 다만, 라디오를 켜고 이웃사람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면서 삶을 새롭게 가꾸는 길을 찾는 모든 벗님들한테 즐거운 이야기꾸러미가 될 수 있기를 빌고 또 빈다. 4348.9.16.물.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삶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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