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를 달리면서 다 본다



  자전거를 혼자 달리던 무렵에는 무엇을 보았을까. 아마 내가 보고픈 모습을 보았겠지. 자전거를 혼자 안 달리고 늘 아이들을 태우면서 달리는 오늘날에는 무엇을 볼까. 아주 마땅히 아이들하고 함께 보려고 하는 모습을 볼 테지.


  혼자 달리는 자전거는 그냥 빨리 달려도 된다. 그러나 함께 달리는 자전거는 굳이 빨리 달려야 하지 않는다. 뒤에 앉은 아이들하고 말을 섞을 수 있을 만한 빠르기로 달리고, 뒤에 앉은 아이들도 함께 살피거나 둘러보면서 삶을 느낄 수 있도록 달린다.


  “들빛이 어떤 빛깔일까?” “음, 풀빛.” “풀빛이야? 노란 빛깔은 없어?” “응? 아, 여기는 노란 빛깔이 많고 저기는 푸른 빛깔이 많아. 와, 참말 노랑이 많네?”


  먼저 심은 논은 일찌감치 노란 물결이 되고, 나중 심은 논은 아직 푸른 기운이 많다. 곧 벼베기를 할 테고, 벼베기를 앞둔 논은 나락도 볏포기도 모두 노랗게 물든다. 나는 이 모습을 아이들하고 자전거를 달리면서 다 본다. 이제 더 농약을 뿌리지 않을 테니 논길을 홀가분하게 달린다. 드디어 이 가을하고 겨울에는 농약냄새 없는 시골살이를 할 테니 그야말로 기쁘게 들빛을 바라보고 들내음을 마신다. 4348.9.19.흙.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삶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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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배움자리 60. 함께 달리는 자전거



  어제 낮에 열엿새 만에 자전거를 다시 달렸다. 아직 오른무릎이 다 낫지 않았으나 아무래도 걷기라든지 뭔가 몸을 움직이기는 해야겠다고 여기면서 자전거를 달려 보았다. 내가 달리는 자전거는 으레 두 아이를 태우고 수레까지 끄는 자전거인 만큼, 앞에서 끌어야 하는 힘이 만만하지 않다. 그러나 여덟 살 큰아이가 샛자전거에서 언제나 발판을 씩씩하게 굴러 주니, 이 아이를 믿으면서 오른무릎은 살살 쓰면서 자전거를 달릴 수 있다. 큰아이는 혼자서 자전거를 버티어 주기도 한다. 얼마나 대견하면서 멋진가. 아이들은 어버이를 기다려 주고, 어버이는 아이를 기다려 준다. 아이들은 어버이를 사랑으로 지켜보고, 어버이는 아이를 사랑으로 지켜본다. 다친 오른무릎이 천천히 아물면서 낫듯이, 내 가슴속으로도 아이와 함께 누리는 삶이 새롭게 자라는구나 하고 느낀다. 4348.9.19.흙.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우리 집 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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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암사 나쓰메 소세키 소설 전집 9
나쓰메 소세키 지음, 송태욱 옮김 / 현암사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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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 삶읽기 205



‘문’을 열고 한 발짝 새롭게 길을 나선다

― 나쓰메 소세키 소설 전집 9 : 문

 나쓰메 소세키 글

 송태욱 옮김

 현암사 펴냄, 2015.8.28. 13000원



  문틈으로 모기가 들어옵니다. 아주 조그마한 틈이 있는데 아주 조그마한 모기가 바로 요 틈으로 들어옵니다. 가을이 깊은데에도 아직 살아남은 모기는 아주 조그맣지만 아주 매섭게 뭅니다. 모기한테 물린 자리가 붓고, 부은 자리를 잊으니 이내 가라앉으며, 낮고 빠르게 나는 작은 모기를 찰싹 때려서 잡다가 속삭입니다. 얘들아, 너희도 이제 잠들어야 하지 않니? 너희를 더 때려잡고 싶지는 않구나.


  가을이 깊어지는 시골집은 저녁이 되면 썰렁합니다. 낮에는 가을볕이 뜨겁지만 해가 하늘에 없는 저녁과 새벽에는 스산해요. 아침에 느즈막하게 마루문을 열고, 저녁에 해가 질 무렵이면 마루문을 닫습니다. 그런데 마루문이나 방문을 꼭꼭 닫아도 바깥에서 울리는 소리는 집안으로 고이 스밉니다. 어떤 소리가 스미는가 하면 풀벌레가 노래하는 소리가 스밉니다. 우리 집을 둘러싼 마당과 텃밭과 풀밭에서 사는 수많은 풀벌레가 노래하는 소리는 하루 내내 온 집안으로 퍼집니다.



“이봐, 작은집이 나카로쿠반초 몇 번지더라?” 하고 미닫이문 너머에 있는 아내에게 묻는다. “25번지 아니에요?” 하고 아내가 대답했는데 소스케가 수신인 주소를 다 쓸 때쯤에는, “편지로는 안 돼요. 가서 잘 말씀드리고 와야죠.” 하고 덧붙였다. (19쪽)


“오요네, 오요네.” 하고 소스케는 부엌에 있는 아내를 부르고는, “고로쿠가 왔으니까 맛있는 거라도 좀 만들어 봐.” 하고 말했다. 아내는 바쁜 듯이 부엌의 장지문을 열어 둔 채 나와 객실 입구에 서 있다가 그 뻔한 주문을 듣자마자, “네, 지금 바로 준비할게요.” 하고 대답하고는 바로 돌아가려고 하다가 다시 돌아와서는, “그 대신 도련님, 미안하지만 객실 문을 닫고 남포등에 불 좀 켜 주시겠어요? 지금 저도 기요도 손을 뗄 수가 없거든요.” 하고 부탁했다. (30쪽)



  ‘나쓰메 소세키 소설 전집’ 가운데 아홉째 권으로 나온 《문》(현암사,2015)을 읽습니다. 이 작품은 1910년에 처음 나왔다고 합니다. 1910년은 한국으로서는 크게 아픈 해였지요. 이무렵 일본은 어떤 나날이었을까요. 이웃한 여러 나라를 식민지로 삼으면서 크게 힘을 뻗던 일본이라는 나라에서는 사람들이 어떤 삶을 일구었을까요.


  일본에서도 살림이 넉넉할 뿐 아니라 흥청망청 지내는 사람이 있습니다. 일본에서도 살림이 가난할 뿐 아니라 하루 벌어먹기조차 고단한 사람이 있습니다. 군국주의와 전쟁을 두 팔 벌려 반기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고, 군국주의도 전쟁도 온몸으로 거스르는 사람이 있기 마련입니다. 한국에서도 그렇지요. 이 나라를 식민지로 삼은 일본 정권에 빌붙어서 떡고물을 얻으려는 사람이 있고, 나라를 되찾으려고 온몸으로 애쓴 사람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두 갈래로 나뉩니다. 삶을 짓는 사람하고 삶을 짓지 않는 사람으로 갈립니다. 삶을 짓는 사람은 내 삶처럼 네 삶이 아름답기 때문에 어느 한 사람이 다치거나 억눌리지 않는 길을 가려고 합니다. 삶을 짓지 않는 사람은 제 삶만 바라보기 때문에 둘레에서 아무리 다치거나 억눌리더라도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고로쿠는 자신이 학교에 다니고 있으면서도 형에게 일요일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이해하지 못했다. 엿새 동안의 어두운 정신 활동을 이날 단 하루에 따뜻하게 회복하기 위해 형은 많은 희망을 24시간 안에 투입하고 있다. (33쪽)


이튿날 아침이 되고 관청의 일이 시작되자 소스케는 이미 고로쿠의 일을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집에 돌아와 느긋하게 있을 때도 그 문제를 눈앞에 똑똑히 떠올리고 확실히 생각해 보는 것을 꺼렸다. 머리카락 안에 싸여 있는 그의 두뇌는 그 번거로움을 견디지 못했다. (69쪽)




  소설책 《문》에 나오는 ‘고로쿠’는 ‘소스케’라는 사람한테 동생입니다. 두 형제는 살림이 무척 넉넉한 아버지를 두었지만 아버지가 죽은 뒤로 집살림이 크게 기울었습니다. 형 소스케는 대학교를 다니면서 ‘불타는 사랑’에 뛰어들면서 학교와 마을에서 쫓겨나 고향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지내다가 도쿄에 어렵게 자리를 잡아서 두 부부끼리만 오붓하고 조용하게 삽니다. 동생 고로쿠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작은집에 기대어 지내다가 더는 작은집에 기댈 수 없어서 형네 집으로 얹혀 들어가서 지냅니다. 형 소스케는 밝고 싹싹한 마음결로 삶을 걱정하지 않으면서 지낸 사람이지만, 불타는 사랑으로 짝을 맺은 뒤로는 다른 사람을 만나거나 사귀는 일은 거의 안 하면서 일터와 집 사이만 오가는 나날을 보냅니다. 동생 고로쿠는 어려움이라고는 하나도 모르는 채 학교만 다니다가 돈 때문에 더는 학교에 다닐 수 없는 몸이 된 줄 깨닫고는 공부에는 재미를 안 붙이고 날마다 어디에선가 돈을 얻어서 술만 마시며 노닥거립니다.


  1800년대에서 1900년대로 넘어서던 일본 사회를 가만히 그려 봅니다. 한 사람은 ‘자유연애’라고 하는 문턱을 넘은 뒤 학교와 마을에서 손가락질을 받으면서 쫓겨난 뒤 ‘마음이라고 하는 문’을 굳게 닫습니다. 다른 한 사람은 ‘앞날을 생각하는 일’이 없이 그냥 학교만 다니다가 제 앞길이 더는 느긋하거나 탄탄하지 않은 줄 알아차리고는 ‘앞날을 생각하는 일’은 굳이 더 하지 않고 그저 노닥거리기만 하면서 어떠한 문턱도 스스로 넘으려 하지 않습니다.


  이무렵 일본 정치와 사회는 전쟁이라고 하는 문턱을 넘습니다. 군국주의와 제국주의라는 문턱을 뛰어넘습니다. 평화와 평등이라는 문턱은 아예 짓밟습니다. 군국주의 일본 사회에서 학교는 어린이와 젊은이한테 무엇을 가르칠 수 있을까요. 평화와 평등은 깡그리 짓밟는 정치와 사회에서 일본 어린이와 젊은이는 무엇을 보면서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까요.



“오늘 밤에는 오랜만에 《논어》를 읽었어.” 하고 말했다. “《논어》에 뭔가 있어요?” 하고 오요네가 되묻자 소스케는, “아니, 아무것도 없어.” 하고 대답했다. (82쪽)


아침나절에는 관청에서 평소와 다름없이 사무를 봤지만 이따금 어젯밤의 광경이 떠올랐고 자연스럽게 오요네의 병이 마음에 걸려 일이 제대로 손에 잡히지 않았다. 때로는 이상한 실수까지 저질렀다. 소스케는 점심시간을 기다려 과감히 집으로 달려갔다. (145쪽)



  한쪽에서 전쟁이 일어나도, 전쟁통에서도 아이는 태어납니다. 한쪽에서 폭탄이 떨어지고 사람들이 죽어도, 이 북새통 틈바구니에서도 아기는 어머니한테 매달려 젖을 물어야 합니다.


  삶은 어디에서나 흐릅니다. 다들 배고프고 힘들다고 하더라도 어떤 사람은 날마다 잔칫상 같은 밥을 게걸스레 먹습니다. 아침저녁으로 두 끼니를 차려서 먹기도 벅찬 사람들이 있습니다. 애써 땅을 부쳐서 곡식을 거두어도 땅임자가 거의 다 차지하고, 얼마 남지 않은 곡식마저 식민지 총독부에서 빼앗기 일쑤입니다. 쌀죽은커녕 피죽조차 먹기 어려운 나날이 이어지는 소작농이 매우 많습니다. 식민지 조선에서는 살 길이 까마득하기에 만주로 떠나거나 일본으로 건너가는 사람이 참으로 많습니다. 징용이나 징병으로 끌려가지 않더라도 스스로 입에 풀을 바르려고 고향을 떠나야 하는 사람이 매우 많습니다.


  사람들은 어떤 문을 지나야 할까요. 배부른 사람들은 날마다 어떤 문을 드나들까요. 배고픈 사람들은 어떤 문을 바라보면서 고향을 뒤로할까요.



그녀는 그때 보통의 산모처럼 삼칠일을 잠자리에서 보냈다. 몸이라는 면에서 보면 극히 안정된 3주일이었다. 동시에 마음이라면 면에서 보면 놀랄 만큼 인내한 삼칠일이었다. 소스케는 죽은 아이를 위해 작은 관을 마련하여 사람들 눈에 띄지 않게 장례를 치렀다. (163쪽)


부부는 해 앞에서 웃고 달 앞에서 생각하며 조용히 해를 보내고 또 맞았다. 올해도 이제 다 저물어 가고 있었다. (191쪽)



  나쓰메 소세키 님이 빚은 문학 《문》은 ‘잘나지도 않으나 못나지도 않은’, 그렇다고 ‘잘살지도 않으나 못살지도 않은’ 사람들 이야기를 차분하게 들려줍니다. 스스로 새로운 문턱을 한 발짝 넘어섰으나 더 새로운 문턱으로까지는 차마 넘어서지 못하고 가슴앓이를 하는 사람들 이야기를 넌지시 들려줍니다.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면서, 뒤로 물러나지도 못합니다. 앞으로 나아가는 길을 두려워하면서, 뒤로 물러서는 길을 걱정합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사이 하루하루 흐릅니다. 이것도 못하고 저것도 안 하다 보니 마음에 응어리만 쌓입니다.


  소설 《문》에 나오는 사내인 소스케는 그야말로 안절부절한 마음에 그만 허둥거리다가 관청 일을 열흘씩 쉬면서 숲속 절집으로 꽁무니를 뺍니다. 소설 《문》에 나오는 가시내인 오요네는 아픔하고 슬픔을 가슴에 품고 살면서도 스스로 웃음을 잃지 않을 뿐더러, 무엇보다 뒤로 빼거나 꽁무니를 빼는 일이 없습니다. 언제나 이녁 삶을 코앞에서 맞닥뜨리고 마주하며 부딪힙니다. 다만, 이러한 오요네라고 하더라도 더 너른 문턱을 넘어서지는 않습니다. 문지방 건너편에서 조용히 사내(남편인 소스케)를 지켜보면서 기다립니다. 마음속으로는 새로운 삶을 꿈꿀는지 모르나, 이러한 뜻을 선뜻 내비치지 않으면서 그저 사내를 지켜보며 기다리는 삶을 보냅니다.




소스케는 언뜻 보기에 아무런 구애도 받지 않는 듯한 그 사람들의 나날과 자신의 내면에 존재하는 지금의 생활을 비교하고 그 현격한 차이에 깜짝 놀랐다. 그렇게 속 편한 신분이라 좌선을 할 수 있는 것인지, 아니면 좌선을 한 결과 그렇게 마음이 편해지는 것인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228쪽)



  삶은 언제나 흐릅니다. 하루하루 고달프거나 괴롭다고 여기면서 등을 돌린다든지 고개를 돌릴 수야 있습니다만, 내가 등을 돌리더라도 삶은 늘 흐릅니다. 내가 아무리 눈을 질끈 감고 이불을 뒤집어써도 아침이 흐르고 낮이 흐르며 저녁이 흘러요. 나는 언제까지나 이불을 뒤집어쓰면서 숨을 수 없습니다. 일터에 낼 수 있는 말미는 길지 않습니다. 열흘쯤 말미를 냈어도 열흘은 훌쩍 지나갑니다.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면 뒤로 돌아갈 노릇이고, 뒤로 돌아갈 수 없다면 앞으로 나아갈 노릇입니다. 앞으로도 못 가고 뒤로도 안 간다면 언제나 제자리걸음인 셈인데, 제자리걸음으로는 삶을 짓지 못합니다.


  뒤로 가는 길은 나쁘지 않습니다. 살다 보면 뒤로 돌아갈 수도 있습니다. 봉우리에 오른다고 해서 그저 올라가기만 하지 않습니다. 봉우리에 올라섰으면 이제 내려와야지요. 봉우리에서는 아무것도 못 해요. 봉우리에 집을 지을 수도 없고, 봉우리에서 땅을 부쳐 열매를 얻을 수도 없습니다. 봉우리에 올라섰으면 적어도 집으로는 돌아가서 밥을 지어 먹어야지요.


  소설 《문》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그야말로 수수합니다. 아무래도 수수한 이야기가 아니고서는 실마리를 풀 수 없던 사회였을 테고, 바로 수수한 이야기이기에 이처럼 소설로 빚어서 삶을 새롭게 돌아보는 길을 찾아볼 만하지 싶습니다. 왜냐하면, 문턱을 넘어서는 일은 아주 쉽기 때문입니다. 어렵다고 여기니 어려울 뿐인데, 그저 자리를 털고 일어나서 한 걸음 내딛으면 됩니다. 문을 여는 일도 아주 쉽습니다. 그저 손을 들어서 문짝을 잡고는 스르륵 밀거나 당기면 됩니다.



소스케는 집으로 돌아와 오요네에게 이 휘파람새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오요네는 장지문 유리로 비쳐드는 화창한 햇살을 바라보며, “정말 다행이에요. 드디어 봄이 돼서.” 하며 눈썹을 환하게 폈다. 소스케는 툇마루로 나가 길게 자란 손톱을 자르면서, “응, 하지만 또 금방 겨울이 오겠지.” 하고 대답하며 고개를 숙인 채 가위를 움직였다. (264쪽)



  밥을 먹는 사람도 나요, 길을 나서는 사람도 나입니다. 새로운 사랑으로 나아가는 사람도 나이며, 새로운 꿈을 키우는 사람도 나입니다. 소설 《문》에 나오는 소스케와 오요네는 ‘새로운 사랑과 꿈과 삶’을 생각하면서 ‘불타는 사랑’을 나누어서 새로운 살림을 지었습니다. 다만 그 자리에서 더 나아가지 못할 뿐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앞으로 가야 합니다. 두 사람 사이에서 아이를 낳을 수 있든 없든, 두 사람은 서로 아끼고 기대며 보살피는 따스한 손길로 새 길을 걸을 수 있어야 합니다. 삶이니까요. ‘문’을 열고 한 발짝 새롭게 길을 나서야 합니다. 4348.9.19.흙.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에서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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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들은 노랗게 물드는 빛깔



  오늘날은 거의 모든 사람들, 이른바 구십구 퍼센트에까지 이를 만한 사람들이 도시에서 산다. 그리고 시골에서 태어나 자라는 어린이와 푸름이는 학교와 학원에 다니기에 바빠서 시골일을 거들지 않기 마련이고, 나락을 언제 심고 언제 거두는지조차 모르기 일쑤이다. 이리하여, 오늘날 한국사람 가운데 ‘들빛’이 가을에 어떠한가를 제대로 아는 사람은 아주 드물다고 할 만하다. 어릴 적에 시골에서 나고 자랐다고 하더라도 어른이 되어 도시에서만 사느라 가을들 빛깔을 잊는다. 바로 오늘 시골에서 살면서 늘 들을 마주하지 않고서야 들빛을 알 수 없다.


  옛날이라면 누구나 들빛을 알고 들빛을 말했다. 그래서 ‘한가을에 잘 익은 나락알’을 보면서 ‘금빛 물결’이라고 했다. 금빛이란 무엇인가? 바로 샛노란 빛깔이다. 푸른 들이 푸르스름한 들로 바뀌고 누르스름한 들로 바뀌다가 누런 들로 바뀌더니 어느새 노란 들로 바뀐다.


  ‘노랗다/누렇다’ 같은 빛깔말은 어디에서 비롯했을까? 나락이 물결치는 들하고 보리가 물결치는 들은 그야말로 노랗다. 참으로 샛노랗다. 가을과 봄에 샛노란 물결이 들에 가득하다. 누런 빛깔은 무엇일까? 나락을 말리면 노란 기운이 천천히 빠지면서 누렇게 된다. 아직 샛노랗지 않지만 차츰 샛노란 빛깔로 거듭나는 들판을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면서 바라본다. 가슴 가득 노란 빛깔과 숨결과 바람을 맞아들인다. 4348.9.18.쇠.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삶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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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자전거 삶노래 2015.9.18.

 : 열엿새 만에 살살



열엿새 만에 자전거를 다시 타기로 한다. 오늘 자전거를 타려고 어제는 일찌감치 잠든 듯하다. 아침부터 기운을 차근차근 모았고, 아이들을 배불리 먹이고 집에서 잘 놀린 뒤, 한낮 해가 높을 무렵 빨래를 걷고 자전거를 꺼낸다.


열엿새 앞서 다친 오른무릎은 아직 성하지 않다. 걸을 수는 있어도 오래 못 걷고, 조금 걸은 뒤에는 반드시 앉아서 다리를 쉬어야 한다. 한 자리에 오래 서면 아직 피가 쏠리는구나 하고 느낀다. 자전거는 어떠할까? 그동안 자전거 사고가 나서 무릎이나 어깨나 팔꿈치 들이 다쳤을 때를 떠올린다. 관절이 다친 뒤에는 외려 걸을 때보다 자전거를 탈 적에 덜 아프거나 안 아프기까지 했다. 내리막에서는 관절이 힘을 쓸 일이 없고, 오르막에서는 기어를 잘 먹이면 되며, 정 힘들면 자전거에서 내린 뒤에 자전거에 몸을 기대면 걸을 적에도 수월하다.


오른무릎이 이번에 꽤 크게 다친 터라 자전거를 살살 구를 적에도 조금 따끔거린다. 그래도 걸을 적하고 대면 훨씬 낫다. 천천히 천천히, 그야말로 천천히 바람을 가르면서 달린다. 보름 사이에 시골 들판은 꽤 노란 빛이 퍼졌다. 앞으로 날마다 더욱 노랗게 달라질 테지.


면소재지에 닿는다. 먼저 면사무소 건물 옆으로 가서 헌 건전지를 버린다. 면소재지에서는 헌 건전지를 모으는 통이 있다. 이제 초등학교 놀이터로 간다. 낮 세 시 반 무렵이면 학교 수업이 끝났을까 싶어서 놀이터로 마실을 온다. 가을볕이 제법 뜨겁지만 시골순이와 시골돌이는 맨발로 개구지게 잘 논다. 시소라도 같이 타 주고 싶으나 나는 무릎을 쉬어야 하기에 나무가 그늘을 드리우는 자리에 풀썩 앉는다. 챙겨 온 책을 한 권 읽는다.


앉다가 서다가 걷다가 하면서 무릎을 다스린다. 한 시간 남짓 아이들이 놀도록 한 뒤에 손과 낯을 씻긴다. 이제 집으로 돌아갈 때. 가게에 들러 모처럼 아이들이 과자를 한 점씩 집도록 한다. 큰아이는 언제나처럼 찰떡을 고른다. 떡순이네.


작은아이는 수레에서 잠든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더욱 쉬엄쉬엄 달린다. 그래도 등줄기로 땀이 흐른다. 샛자전거에 앉은 큰아이는 “아버지 이제 자전거 탈 수 있네? 잘 됐네!” 하고 얘기한다. 그래, 자전거를 탈 수 있는 줄은 알았지. 그러나 이만큼 타도 무릎이 좀 욱씬거리고 몸이 꽤 힘드네.


집에 닿아 작은아이를 이부자리로 옮긴다. 큰아이 손발을 새로 씻기고 밥을 끓인다. 밥상을 차리고 몸을 씻는다. 자전거를 처마 밑으로 들이고 숨을 돌린다. 이제 자리에 드러누워서 몸을 쉬어야지. 비록 한 시간밖에 안 되었으나 아이들이 날마다 노래하던 놀이터에 찾아가서 놀도록 했으니 오늘은 이만 하면 보람찬 하루이다. 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에서 자전거와 함께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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