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는 아이들, 고마운 아이들



  잘 노는 아이들은 언제나 고마운 아이들이다. 잘 노는 아이들은 언제나 사랑스러운 아이들이다. 그러면, 나는 이를 언제부터 알았을까? 어릴 적에 신나게 뛰놀면서 ‘노는 아이’인 내가 바로 스스로 ‘고맙고 사랑스러운 아이’인 줄 알았을까?


  아니다. 어릴 적에는 신나게 놀면서 늘 ‘공부도 안 하고 숙제도 안 하는 나쁜 아이’라는 생각이 마음을 옥죄었다. 왜냐하면 둘레에서 ‘놀기만 하는 아이’를 ‘앞날이 걱정스러운 아이’로 바라보고 핀잔과 꾸중을 늘어놓았으니까.


  오늘 나는 우리 집 두 아이를 바라보며 생각한다. 이 아이들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첫째, 놀이. 둘째, 놀기, 셋째, 놀이하기. 아이들은 놀면서 배우고, 아이들은 노는 동안 자라며, 아이들은 놀기에 튼튼하다.


  어버이가 아픈 데 없어서 함께 놀아 주든, 어버이가 아픈 데가 많아서 함께 놀아 주지 못하든, 아이들은 늘 놀아야 한다. 어버이 곁에서 놀아도 되고, 어버이하고 한참 멀리 떨어진 곳에서 놀아도 된다. 아무튼, 놀면 되고, 놀아야 한다.


  나는 아이들을 데리고 면소재지 초등학교 놀이터로 찾아가서 오른무릎을 쉬며 돌에 걸터앉는다. 참으로 먼발치인 데에서 아이들을 바라보며 생각한다. 이렇게 잘 놀고 씩씩한 아이들이 우리 아이들이라니 얼마나 고맙고 사랑스러운가 하고 새삼스레 느낀다. 4348.9.19.흙.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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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들다 오감 톡톡! 인성 그림책 1
후쿠다 이와오 그림, 다니카와 슌타로 글, 김숙 옮김 / 북뱅크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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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562



우리 ‘무엇 하며’ 놀면 재미있을까?

― 만들다

 다니카와 슌타로 글

 후쿠다 이와오 그림

 김숙 옮김

 북뱅크 펴냄, 2015.9.25. 12000원



  아이들은 날마다 새롭게 뭔가를 ‘하’면서 놉니다. 소꿉놀이도 하고, 달리기도 하며, 뒹굴기도 합니다. 노래도 하고, 이야기도 하며, 어깨동무도 합니다. 아이들 삶은 온통 놀이인데, 놀이는 늘 ‘놀이하다’입니다. 아이를 지켜보는 어른이라면 언제나 일을 할 테고, 일은 늘 ‘일하다’입니다. 우리는 날마다 무엇인가를 ‘하’면서 삶을 ‘짓’습니다. 놀이를 하며 삶을 짓기에 재미있고, 일을 하면서 살림을 지으니 즐겁습니다.



흙으로 무엇 만들지? 흙으로 뱀 만들지.

뱀으로 무엇 만들지? 뱀으로 항아리 만들지.

→ 흙으로 무엇 하지? 흙으로 뱀 빚지.

→ 뱀으로 무엇 하지? 뱀으로 항아리 빚지.


항아리로 무엇 만들지? 항아리로 술 만들지.

술은 무엇 만들지? 술은 친구 만들지.

→ 항아리로 무엇 하지? 항아리로 술 담그지.

→ 술은 무엇 하지? 술은 친구 사귀지.



  일본 그림책 《つくる(作る)》를 한국말로 옮긴 《만들다》(북뱅크,2015)를 읽습니다. 일본말 ‘つくる(作る)’를 ‘만들다’로 옮겼는데, 일본말 ‘츠쿠루(つくる)’하고 한국말 ‘만들다’는 쓰임새가 아주 다릅니다. 게다가 일본말 ‘츠쿠루’는 한자로 ‘作る’처럼 적습니다. ‘作’이라는 한자를 새길 적에 한국에서는 “지을 작”이라 합니다. 일본말에서는 ‘츠쿠루’라면 한국말에서는 ‘짓다’인 셈입니다.


  그런데 한국말에서 ‘짓다’하고 ‘만들다’는 사뭇 달라요. ‘짓다’는 집이나 옷이나 밥을 마련하는 일을 가리키며 씁니다. 이때에는 ‘만들다’라 하지 않아요. “밥을 만들다”나 “옷을 만들다”처럼 쓰지 않습니다. 공장에서 똑같은 물건을 척척 찍어서 내놓는다면, 이때에는 “밥을 만들다(즉석요리 밥을 만들다)”처럼 쓸 수 있겠지요. “집을 짓는다”는 살아갈 터를 마련한다는 뜻이고, “집을 만들다”는 “물건을 새로 내놓는다”는 뜻으로 씁니다. ‘짓다’는 아직 나타나지 않은 것을 새롭게 나타나도록 한다는 뜻을 바탕으로 쓰임새를 넓힙니다. “이름을 짓는다”거나 “생각을 짓는다”거나 “사랑을 짓는다”나 “꿈을 짓는다”처럼 씁니다. ‘만들다’는 “힘을 쓰거나 연장을 다루어, 갖거나 얻고 싶은 것을 이룬다”는 뜻을 바탕으로 쓰임새를 넓힙니다. 힘이나 연장으로 어떤 것을 마련할 적에 ‘만들다’를 쓰는데, 이때에는 어느 것이 다른 것으로 바뀌도록 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한국말을 찬찬히 살핀다면, 그림책 《つくる(作る)》는 “만들다”가 아니라 “짓다”로 옮겨야 옳습니다. 그런데, 일본말 ‘츠쿠루’를 더 살피면, 이 일본 그림책은 “짓다”로 옮겨도 그리 잘 어울리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일본말 ‘츠쿠루’는 “어떤 재료를 써서 무엇을 만들다. 모임이나 회사를 세우다. 마련하다. 줄을 짓다. 새로 사귀다. 처음 선보이다. 논밭을 가꾸다. 버릇을 들이다. 글을 쓰다. 맞수를 두다. 돈이나 재산을 이루다. 밥을 하다. 아이를 낳다. 꾸미다. 거짓으로 보여주다. 한 집안을 이루다” 같은 자리에 두루 쓰는 낱말이기 때문입니다.



염소로 무엇 만들지? 염소로 가죽 만들지.

가죽으로 무엇 만들지? 가죽으로 북 만들지.

→ 염소로 무엇 하지? 염소로 가죽 뭇지.

→ 가죽으로 무엇 하지? 가죽으로 북 만들지.


북으로 무엇 만들지? 북으로 리듬 만들지.

리듬은 무엇 만들지? 리듬은 축제 만들지.

→ 북으로 무엇 하지? 북으로 노래(가락) 짓지.

→ 노래(가락)는 무엇 하지? 노래는 잔치 되지.




  일본에서는 일본말로 일본 어린이를 가르칠 수 있습니다. 그림책 《つくる(作る)》는 일본말 ‘츠쿠루’를 잘 살린 멋지고 재미난 이야기 꾸러미라고 할 만합니다. 그러면, 한국에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한국말에 맞게 새롭게 바라보고 제대로 한국말을 살펴서 한국 어린이가 한국말을 슬기롭게 배울 수 있도록 이끌어야 한다고 느낍니다. 이 그림책 《つくる(作る)》를 살피면, 두 쪽으로 펼친 자리에서 두 가지로 수수께끼를 한 가지 물으면서 실마리를 하나씩 내놓습니다. 처음 묻는 수수께끼 말을 ‘한국 번역판’에서는 모두 ‘만들다’를 쓰지만, 한국말 쓰임새를 살핀다면, ‘만들다’가 아니라 ‘하다’를 넣어야 알맞습니다. “이것으로 무엇 하지?”처럼 물어야 올발라요. 이렇게 ‘하다’로 물은 뒤, 한국말 결을 살펴서 ‘하다’를 다 다른 쓰임새로 풀어낼 수 있습니다. 흙으로 무엇을 할까요? 흙으로 뱀처럼 길게 빚습니다. 뱀처럼 길게 빚은 흙으로 무엇을 할까요? 항아리를 빚지요. 항아리로 무엇을 할까요? 항아리에 술을 담그지요. 술로 무엇을 할까요? 술로 동무를 사귀지요.


  ‘만들다’만 쓰면 이야기가 매우 아리송하기까지 합니다. “염소로 무엇 만들지?” 같은 말은 너무 아리송합니다. 산 짐승을 놓고 ‘만들다’라는 낱말을 쓰니 그야말로 얄궂습니다. “염소로 무엇 하지?”처럼 써야지요. 그리고 가죽은 한국말로 ‘뭇다’를 빌어서 나타냅니다. ‘만들다’는 “북을 만들다” 같은 자리에 비로소 쓸 수 있습니다.



솜으로 무엇 만들지? 솜으로 실 만들지.

실로 무엇 만들지? 실로 천 만들지

→ 솜으로 무엇 하지? 솜으로 실 꾸리지.

→ 실로 무엇 하지? 실로 천 짜지.


천으로 무엇 만들지? 천으로 옷 만들지.

옷으로 무엇 만들지? 옷으로 허수아비 만들지.

→ 천으로 무엇 하지? 천으로 옷 짓지.

→ 옷으로 무엇 하지? 옷으로 허수아비 만들지.



  솜만 얻으려고 한다면 “솜을 틀다”라 합니다. 이 그림책에서는 “솜으로 무엇 하지?” 하고 물은 뒤에 “실 꾸리지”로 대꾸한 뒤, 실로는 “천 짜지”처럼 대꾸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옷은 ‘만들다’가 아닌 ‘짓다’로 나타냅니다. 허수아비를 세운다고 할 적에 비로소 “허수아비 만들지”처럼 쓸 수 있어요.




바위로 무엇 만들지? 바위로 쇠 만들지.

쇠로 무엇 만들지? 쇠로 가위 만들지.

→ 바위로 무엇 하지? 바위로 쇠 녹이지.

→ 쇠로 무엇 하지? 쇠로 가위 두들기지.


가위로 무엇 만들지? 가위로 종이 사자 만들지.

종이 사자로 무엇 만들지? 종이 사자로 그림책 만들지.

→ 가위로 무엇 하지? 가위로 종이 사자 오리지.

→ 종이 사자로 무엇 하지? 종이 사자로 그림책 엮지.



  죽 이어지는 다른 자리에서도 “물은 무엇 만들지? 물은 강 만들지.”는 “물은 무엇 하지? 물은 냇물 이루지.”로 손질할 만하고, “강으로 무엇 만들지? 강으로 댐 만들지.”는 “냇물로 무엇 하지? 냇물로 댐 세우지.”로 손질할 만합니다.


  “해님은 무엇 만들지? 해님은 채소 만들지.”라든지 “채소로 무엇 만들지? 채소로 샐러드 만들지.”도 영 안 어울립니다. 한국말로는 이렇게 ‘만들다’를 아무 데나 넣지 않습니다. 이 그림책은 한국 어린이한테 한국말을 영 엉터리로 보여줄까 걱정스럽습니다. “해님은 무엇 하지? 해님은 남새 키우지. 남새로 무엇 하지? 남새로 샐러드 버무리지.”처럼 손질해야지 싶습니다.



샐러드는 무엇 만들지? 샐러드는 몸 만들지.

몸으로 무엇 만들지? 몸으로 기록 만들지.

→ 샐러드는 무엇 하지? 샐로드는 몸 가꾸지.

→ 몸으로 무엇 하지? 몸으로 기록 세우지.



  이야기가 더 흘러 “모닥불로 무엇 만들지? 모닥불로 군고구마 만들지.”가 나오는데, 이 대목도 “모닥불로 무엇 하지? 모닥불로 군고구마 굽지.”로 손질해야 하고, 뒤따르는 “군고구마는 무엇 만들지? 군고구마는 방귀 만들지.”는 “군고구마는 무엇 하지? 군고구마는 방귀 뀌지.”로 손질해야 합니다.


  이밖에 다리는 ‘놓는다’고 하고, 통나무는 ‘깎는다’고 합니다. 길은 ‘낸다’고 하고, 닭은 알을 ‘낳는다’고 합니다. “닭은 무엇 만들지? 닭은 달걀 만들지.” 같은 이야기는 아주 엉터리입니다. 닭은 달걀을 ‘만들지’ 않아요. “닭은 무엇 하지? 닭은 달걀 낳지.”처럼 써야 올바릅니다. 일본말에서 ‘츠쿠루’가 “아이 낳다”를 뜻하기도 한다기에 일본 그림책에서는 ‘츠쿠루’를 빌어 “알 낳기”를 나타냈지만, 한국말 ‘만들다’는 아기나 알을 낳는 일을 안 가리킵니다.


  그런데, 꼭 한 가지 ‘만들다’가 어울리는 이야기가 그림책 끝자락에서 흐릅니다.




사람으로 무엇 만들지? 사람으로 군인 만들지.

군인으로 무엇 만들지? 군인으로 군대 만들지.

군대는 무엇 만들지? 군대는 전쟁 만들지.

전쟁은 무엇 만들지? …….

→ 사람으로 무엇 하지? 사람으로 군인 만들지.

→ 군인으로 무엇 하지? 군인으로 군대 만들지.

→ 군대는 무엇 하지? 군대는 전쟁 일으키지.

→ 전쟁은 무엇 하지? …….



  군대는 ‘만들다’보다 ‘세우다’ 같은 낱말이 잘 어울릴 만하지만, 이 그림책에서 이야기하려는 ‘군인·군대·전쟁’은 “억지로 만들어 낸 슬픔과 아픔”을 넌지시 빗댄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자리에서만큼은 ‘만들다’가 어울립니다. 왜 그러한가 하면, 평화와 평등과 자유와 민주로 나아가려 하지 않고 “군대를 ‘만드는’ 권력자와 정치인”은 바로 이 지구별에 “아픔을 만드는 바보”이거든요. 전쟁무기를 ‘만들’어서 전쟁을 일으키는 모든 권력자와 정치인은 “삶을 짓”거나 “사랑을 짓”거나 “꿈을 짓”는 길하고 동떨어집니다.


  우리는 참말 찬찬히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전쟁은 무엇을 할까요? 전쟁무기로는 무엇을 할까요? 군대로 무엇을 할까요? 군인은 무엇을 할까요? 왜 제주섬 같은 곳에까지 해군기지를 세워야 하는지 생각해야 합니다. 왜 남녘과 북녘 젊은이가 비무장지대에 ‘잔뜩 무장한 몸’으로 총부리를 맞대고 서로 손가락질을 해야 하는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전쟁을 막으려면 군대와 전쟁무기가 있어야 한다는 핑계는 이제 몽땅 내려놓고, 평화를 이루려면 오직 평화와 사랑이 있어야 한다는 대목을 제대로 깨닫고 평화로운 길로 삶을 ‘새로 지을’ 수 있어야 합니다.


  일본 그림책 《つくる(作る)》는 ‘평화 짓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츠쿠루(作る)’라는 낱말을 일부러 썼구나 싶습니다. 이러한 뜻하고 얼거리를 생각한다면, 이 일본 그림책을 한국말로 옮길 적에 《만들다》가 아닌 《한다》나 《짓는다》나 《무엇을 하며 지을까》로 새로 옮겨서, ‘평화를 사랑한다’나 ‘평화를 짓는다’는 이야기로 마무리를 지을 수 있도록 해야지 싶습니다. 우리 어른들이 아이들하고 함께 나아갈 길은 오직 ‘사랑하기’하고 ‘평화짓기’ 두 가지입니다. 두 가지를 함께 어깨동무하는 길을 걸을 노릇입니다. 4348.9.19.흙.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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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놀이 23 - 누나가 밀어 주니까



  다섯 살 산들보라는 이제 세발자전거쯤 야무지게 몰 줄 안다. 그렇지만 누나가 뒤에서 밀어 주면 더 빠르니까 한결 재미있다. 놀이돌이가 스스로 발판을 구를 줄 알아도 뒤에서 누나가 밀면 바람을 가르는 맛이 사뭇 다르다. 세발자전거는 마당에 놓은 평상 둘레를 빙글빙글 돌면서 노래한다. 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놀이하는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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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노래 52. 빨래를 널 적에


  빨래를 널 적에 그림자가 생깁니다. 빨래 그림자 때문에 호박알이 덜 굵을까 싶어 빨랫대를 슬슬 옆으로 옮깁니다. 해가 움직이는 결에 맞추어 빨랫대가 움직입니다. 빨래를 널 적에 풀내음을 한껏 들이켭니다. 빨래는 햇볕을 먹고 바람을 마십니다. 여기에 풀내음과 꽃내음까지 고요히 받아들입니다. 마당에 빨래를 널기에 우리 곁님과 아이들 옷가지는 우리 집에 드리우는 모든 아름다운 숨결이 깃드는 옷을 새롭게 입을 수 있습니다. 빨래를 다 널고서 빨래 곁에 섭니다. 또 호박꽃과 호박알 곁에 앉습니다. 빨래랑 함께 해바라기를 하면서 따사로운 바람결을 즐겁게 맞이합니다. 4348.9.19.흙.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사진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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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넋·삶 76 무엇



  이름을 모르기에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무엇인지 모르니, 무엇을 알려고 마음을 기울여 바라봅니다. 그런데, 무엇인지 모를 때에는 무엇을 바라보는지조차 모릅니다. 무엇인지 모르기에 무엇을 보아야 하는지마저 모릅니다. 그래도, 내가 모르는 무엇을 찾고자 만나고자 알고자 이루고자 마음을 기울입니다. 이리하여, 나는 내가 모르기에 볼 수조차 없던 무엇을 처음으로 봅니다. 처음으로 보면서 이 새로움에 놀라 그만 아무 말이 안 나오고 아무것도 하지 못하지만, 가만히 ‘새로운 무엇’을 바라보다가 첫 마디가 터져나옵니다. 이 첫 마디는 내가 처음으로 만난 ‘새로운 무엇’을 가리키는 이름입니다. 온누리 모든 말은 이렇게 태어납니다. 처음 만난 무엇이 무엇인지 모르지만, 가만히 바라보면서 이 무엇이 참으로 무엇인가를 생각한 끝에 비로소 무엇인지 마음으로 느끼고는, 이 무엇한테 ‘첫 이름’을 ‘첫 말’로 붙여서 부릅니다.


  ‘무엇’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기에 아직 모릅니다. ‘무엇’이라는 말로밖에는 나타낼 길이 없으니 아직 알지 못합니다. 그리고, 아직 모르기에 앞으로 알려고 합니다. 아직 모르기에 이 새로운 것을 알아서 내 삶으로 받아들이려 합니다. 아직 알지 못하고 이름조차 붙이지 못하는 것에 내가 스스로 새로운 이름을 붙여서 내 기운을 실으려 합니다. 내 손길을 타고 내 기운이 실린 ‘무엇’은 비로소 내 둘레를 이루는 수많은 것 가운데 하나가 되고, 꽃이며 풀이며 나무이며 흙이며 해이며 별이며 바람이며 사람이며 사랑이며, 맨 처음(꽃등)에는 ‘무엇’이었을 뿐이지만 ‘사람이 붙인 이름’을 얻으면서 바야흐로 아름다운 숨결로 다시 태어납니다.


  ‘무엇이라는 것’이 ‘무엇’으로만 있을 적에는 아무 뜻이 없고 넋도 숨도 없지만, 이 ‘무엇이라는 것’이 ‘무엇’으로 남지 않고 ‘내가 붙인 이름’으로 새롭게 부를 수 있을 때부터, 새로운 뜻과 넋과 숨이 흐릅니다.


  내가 바라보며 알아채고 마주하면서 손을 뻗어 만질 때에 꽃입니다. 내가 들여다보며 알아내고 맞이하면서 온몸으로 껴안을 때에 나무입니다. 내가 찾아보며 알아보고 받아들이면서 온마음으로 사랑할 때에 사람입니다.


  무엇 하나 없던 고요누리에, 무엇이든 새롭게 깃듭니다. 무엇 하나 없던 ‘하얀밤’에, 무엇이든 처음으로 흐릅니다. 무엇보다, 삶은 재미있고 즐거우며 아름답습니다. 4348.3.9.달.ㅎㄲㅅㄱ


(최종규/숲노래 . 2015 - 람타 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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