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닷 Photo닷 2015.9 - Vol.22
포토닷(월간지) 편집부 엮음 / 포토닷(월간지) / 2015년 8월
평점 :
품절


찾아 읽는 사진책 215



우리가 사진을 ‘읽을’ 때는 언제일까

― 사진잡지 《포토닷》 22호

 포토닷 펴냄, 2015.9.1. 1만 원

 정기구독 문의 : 02-718-1133



  즐거울 때에 사진을 즐겁게 읽습니다. 즐거운 날에는 사진 한 장을 들여다보면서 즐거움이 새롭게 샘솟습니다.


  고단할 때에 사진을 고단하게 읽다가, 어느새 고단함을 가만히 씻습니다. 즐거운 날에는 사진 한 장을 들여다보면서 더욱 즐거운 마음이 된다면, 고단한 날에는 사진 한 장을 들여다보는 동안 어느새 고단함을 녹입니다.


  옛말에 기쁨은 곱절로 북돋우고 슬픔은 반토막으로 나눈다고 했습니다. 살가운 곁님이나 동무나 이웃은 기쁨을 한결 따스하게 북돋웁니다. 이러면서 슬픔은 나누어 받으면서 너그러이 달래지요.


  마음이 아프다든지 일이 힘들다든지 살림이 팍팍할 적에는 언제나 아이들 사진을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내가 찍은 우리 아이들 사진은 나한테 새롭게 기운을 북돋아 줍니다. 사진에서 웃는 아이들은 늘 나더러 웃으라고 속삭입니다. 그리고, 아이들은 사진에서뿐 아니라 바로 내 곁에서 늘 웃습니다.



인천 이외의 지역도 찍었지만 개인적으로 재미가 없었다. 인천 만수동을 비롯한 주택지역은 예상치 못했던 장면들을 불쑥불쑥 마주하게 되면서 찾아내는 재미를 느꼈다. 또한 그 모습 자체도 제멋대로라 매력적이었다. 그러나 서울 도심에서는 어느 정도 찍다 보니 질려 버렸다. 계획적으로 만들어진 조경인데다 지속적인 관리를 받고 있어 몇 가지 유형에서 벗어나지 못한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32쪽/유리와)


작업 과정 자체가 퍼포먼스의 일종이라고 생각한다. 영상으로 기록도 하고 싶었지만, 예산과 인력의 부족 문제로 실행하진 못했다. (43쪽/임형태)



  사진잡지 《포토닷》 22호(2015년 9월호)를 읽으며 우리가 사진을 읽을 때는 언제일까 하고 돌아봅니다. 그러니까 ‘사진찍기’ 말고 ‘사진읽기’를 생각하려고 합니다.


  오늘날에는 그야말로 누구나 사진을 찍어요. 전문가나 작가뿐 아니라 ‘안 전문가’도 사진을 찍습니다. ‘취미’로도 사진을 찍고, 전문가도 아니요 취미도 아니라 하더라도 사진을 찍어요. 이를테면 시골 할매가 이녁 손자를 손전화로 찰칵 찍은 뒤 액정 화면으로 담습니다. 한 해에 두 차례 있는 큰 명절에만 손자를 만나더라도, 한 해에 두 차례 사진을 찍지요. 볼 때마다 새삼스레 크는 손자를 손전화로 찍는 시골 할매는 무척 많습니다. 모르긴 몰라도, 시골 할매가 ‘도시에 사는 손자’를 그리면서 찍은 ‘손전화 사진’을 죽 그러모아도 무척 재미난 사진전시가 되리라 느낍니다.


  아무튼, 사진찍기는 오늘날 누구나 하는 일입니다. 오늘날에는 사진을 안 찍는 사람이 없다고 할 만합니다. 다시 말하자면, 오늘날에는 모든 사람이 ‘작가’나 ‘사진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올해 동강국제사진제에서 ‘동강사진상’ 수상자를 기념하는 정주하 작가의 전시장에서는 관객들의 다양한 물음들이 제기됐다. ‘왜 찍었을까, 무엇을 얘기하려는 것일까, 어떻게 봐야 할까…….’ 상동의 질문들은 현대미술을 다룬 전시장에서도 어김없이 들려오는 질문들이다. (50쪽/최연하)


작가들은 관람객들이 현대미술에 대해 문외한이기 때문에 그런 것이라고 볼멘소리를 하겠지만, 실상은 오히려 반대인 경우가 많다. 어떠한 대상을 재현하더라도 그것에 ‘예술’이라는 이름표만 붙여 주면 된다는 이들의 안일한 행동이 이런 결과를 낳고 있다고 보아야 하는 것이다 … 한마디로 사진은 마음만 먹으면 작가 행세를 할 수 있는 가장 ‘만만한’ 수단이 되어 버렸다. (109쪽/장정민)




  누구나 사진을 찍는다면, 누구나 사진을 읽을까요? 누구나 사진을 찍을 수 있다면, 누구나 사진을 읽을 수 있을까요?


  쉬우면서도 어려운 물음이라 할 텐데, 누구나 사진을 찍는다면 누구나 사진을 읽기 마련입니다. 누구나 사진을 찍을 수 있다면 누구나 사진을 읽을 수 있습니다.


  전문 사진가만 찍는 사진이 아니듯이, 전문 비평가만 읽는 사진이 아닙니다. 전문 사진가만 값비싼 장비를 써서 찍어야 하는 사진이 아니듯이, 전문 비평가만 서양 철학이나 사상을 끌어들여서 읽어야 하는 사진이 아닙니다.


  시골 할매가 이녁 손전화로 손자 사진을 찍듯이, 또 시골 할매가 손전화를 켤 적마다 이녁 손자를 손전화 화면에서 보듯이, 우리는 누구나 ‘사진찍기’하고 ‘사진읽기’를 늘 함께 합니다.


  자, 그러면 이제 새롭게 하나 물어 볼 노릇입니다. 사진잡지 《포토닷》 22호에서 최연하 님이 쓴 사진비평에 나오는 말처럼, 전시장에서 수많은 관객들이 ‘왜 찍었을까, 무엇을 얘기하려는 것일까, 어떻게 봐야 할까…….’ 하고 묻는다면, 전문 사진가와 전문 비평가는 ‘전문가 아닌 여느 사람’한테 사진읽기하고 사진찍기를 어떻게 이야기할 만할까요? 우리는 언제 사진을 찍고 언제 사진을 읽을까요?



별천지다. 찍고 싶은 장면들이 너무 많았지만 원칙적으로 내부에서 사진 촬영이 금지다. 걸리면 벌금을 내고 우리 같은 비정규직은 바로 해고다. 거대한 작업 현장에서 똑같은 작업복을 입고 온몸에 연장을 차고 마스크를 쓴 채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모습은 마치 폐쇄된 군대나 교도소를 떠올리게 한다. 길게 줄을 서서 2층으로 올라가는 사진이 대표적이다. 점심을 먹기 위해 식당 앞에 선 줄이다. 20분을 줄을 서서 기다려 15분간 밥을 먹고 다시 작업장으로 가는 데 20분이 걸린다. (75쪽/변해석)



  사진은 누구나 찍을 수 있습니다. 2015년 최민식 사진상 특별상을 받은 변해석 님이 ‘조선소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로서 동무를 사진으로 찍듯이, 참말 누구나 어디에서나 언제라도 사진을 찍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여기에서 한 가지를 더 헤아릴 노릇입니다. 조선소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로서 다른 비정규직 노동자하고 정규직 노동자를 찍은 사진을 볼 사람들은 이 사진을 보면서 무엇을 생각할 수 있을까요? 변해석 님이 찍은 사진을 보면 ‘못 알아보’거나 ‘못 알아차리’거나, ‘왜 찍었을까?’ 하고 물을까요? 아니면, 사진을 보는 동안 ‘이래서 찍었겠네’ 하고 느끼거나 이 사진이 들려주려고 하는 이야기를 곧바로 고스란히 알아챌까요?




전세계 곳곳에서 초대받은 사진 관계자들은 아침마다 란린거 호텔에서 조식을 먹으며 자유분방하게 서로를 소개하고 교류하는 모습이 무척 인상 깊었다. 커다란 전시장을 하나 빌려놓고 공무원 중심의 개막식과 테이프 커팅 세레머니 이후에 뒷풀이를 하고 헤어지는 폐쇄적인 한국의 사진축제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모습이었다. (90쪽/강제욱)



  한국은 아직 ‘사진 후진국’입니다. 번쩍거리는 장비를 갖춘 사람들이 많은 한국이지만, 한국은 아직 사진 후진국입니다. 작가로 뛰는 사진가가 제법 많고, 사진전시가 전국 곳곳에서 다달이 꽤 많이 열리지만, 한국은 아직 사진 후진국입니다.


  왜 그러한가 하면, 전시가 제법 많다고 하지만 막상 사진책은 한 달에 몇 권 못 나옵니다. 사진책이 어쩌다가 한 권 나와도 잘 안 팔립니다. 전문 사진가는 전문가답게 서양 철학과 이론에 맞추어 이녁 사진을 해석하거나 비평하는 길로 접어듭니다. 젊은 사진가는 젊은 사진가답게 미국이나 유럽에서 새롭게 떠도는 흐름에 발맞추어 ‘사진기라는 장비를 빌어서 펼치는 아티스트 활동’을 합니다. 여기에 사진 동호인은 스스로 ‘아마추어’라고 하지만 장비만큼은 누구보다 전문가답게 잔뜩 갖추어 ‘하이 아마추어’가 됩니다.


  삶으로 사진을 기쁘게 즐기는 사람은 뜻밖에 퍽 적습니다. 사랑으로 사진을 기쁘게 누리는 사람은 뜻밖에 꽤 적습니다. 꿈을 이루거나 펼치는 길에서 사진을 기쁘게 가꾸는 사람은 뜻밖에 참 적습니다.



꽃을 사진으로 찍든, 예쁜 이웃을 사진으로 찍든, ‘남들처럼 찍어야 할’ 까닭이 없습니다. 멋져 보이거나 훌륭해 보이는 풍경을 사진으로 찍든, 새롭거나 낯선 모습을 사진으로 찍든, ‘전문가나 프로 작가처럼 찍어야 할’ 까닭이 없습니다. 모든 사진은 내가 나답게 살면서 찍습니다. 나는 나답게 내 둘레를 바라보면서 찍습니다. 내 사진은 오직 나다운 사진이지, 너다운 사진이 아닙니다. 내 사진은 ‘나다운 사진’일 때에 ‘내 이야기’가 서리면서 ‘내 꿈과 사랑’이 피어나는 삶으로 나아갑니다. 내 사진은 ‘브레송다운 사진’이거나 ‘카파다운 사진’이거나 ‘이런저런 잘 알려진 작가다운 사진’이 되어야 할 까닭이 없습니다. 내 사진을 읽는 사람이 ‘아, 이 사진을 보니 아무개 작가 사진이 떠오르네’ 하고 말한다면, 내 사진이란 무엇일까요? (127쪽/최종규)




  우리는 멋있어 보이는 사진을 찍을 까닭이 없습니다. 우리는 역사에 남을 만한 사진을 찍을 까닭이 없습니다. 우리는 남달라 보이는 사진을 찍을 까닭이 없습니다. 우리는 새로워 보이는 사진을 찍을 까닭이 없습니다. 우리는 ‘충격과 공포’를 준다고 하는 사진을 찍을 까닭이 없습니다.


  우리는 저마다 ‘내 삶을 사랑하면서 찍는 사진’으로 하루를 즐겁게 누리면 됩니다. 우리는 저마다 ‘내 삶을 사랑하면서 찍은 사진을 기쁘게 읽으’면서 하루를 아름답게 누리면 돼요.


  ‘전문가처럼 잘 찍는’ 사진은 그야말로 부질없습니다. 브레송을 흉내낸다든지 살가도 꽁무니를 쫓는 사진을 찍는 일은 덧없을 뿐입니다. 쿠델카나 아담스나 앗제나 카쉬 사진을 따라하는 듯한 사진을 왜 찍어야 할까요? 우리는 저마다 스스로 즐겁게 웃고 노래할 수 있는 삶을 가만히 사진으로 찍고 차분히 마음으로 읽으면 넉넉합니다.



1982년 울산에서 카메라를 처음 쥔 필자가 맨 처음 한 일은 서점으로 가서 사진잡지를 산 것이었다. (100쪽/진동선)


우리가 어떻게 (사진을) 만들었는지도 보여주고 싶었다. 우리는 사진을 보는 사람들을 속이고 싶지 않았다. 우리가 어떻게 만들었는지, 어떤 방법을 썼는지, 어떤 재료를 사용했는지, 모든 것을 다 보여주고 싶었다. 유명한 사진에서 액자를 걷어낸 것과 같은 모습에 사람들은 잠시 ‘뭐지’ 하고 고민한 뒤에 깨닫는다. 그리고 자신이 알던 사진도 거짓, 조작은 아닐까 의심한다. 우리는 묻는다. 사진은 믿을 수 있을까? 더구나 지금과 같은 디지털 사진의 시대에 말이다. (121쪽/조야킴 코티스·아드리안 존데르거)



  글을 쓰는 사람은 소설가나 시인이 되어야 하지 않습니다. 그저 기쁘게 글을 쓰면 됩니다. 사진을 찍는 사람은 사진가나 예술가가 되어야 하지 않습니다. 그저 기쁘게 사진을 찍으면 됩니다. 밥을 짓는 사람은 요리사나 쉐프가 되어야 하지 않습니다. 그저 기쁘게 밥을 지으면 됩니다.


  아이를 낳아 돌보는 어버이는 ‘육아 전문가’가 될 까닭이 없습니다. 아이를 낳아 돌보는 어버이는 그저 ‘어버이’가 되면 돼요.


  이리하여, 우리가 사진을 읽을 때는 바로 오늘입니다. 바로 오늘 이곳에서 사진을 읽으면 됩니다. 사진찍기도 바로 오늘 하면 됩니다. 사진학교를 다니거나 사진강의를 들어야 하지 않습니다. 나라밖에서 사진을 배워야 하지 않습니다. 이름난 스승한테서 배워야 하지 않습니다. 상업 스튜디오에서 견습을 해야 하지 않습니다. 그저 우리 삶을 스스로 사랑하면서 사진기를 손에 쥘 수 있으면 됩니다. 푼푼이 돈을 모아서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사진책을 꾸준히 장만해서 즐겁게 읽을 수 있으면 됩니다.


  사진으로 가는 길이란 삶으로 가는 길입니다. 삶으로 가는 길이 기쁘면 사진으로 가는 길이 기쁩니다. 삶으로 가는 길을 꿈으로 여민다면 사진으로 가는 길도 꿈으로 여밀 수 있습니다. 나는 바로 내가 되어 내 사진을 찍고 읽습니다. 너는 언제나 네가 되어 네 사진을 찍고 읽습니다. 우리는 서로서로 우리 스스로가 되어 언제 어디에서나 우리 사진을 기쁘게 찍고 읽습니다. 4348.9.23.물.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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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교를 마친 뒤늦은 저녁 먹기



  4교를 마치고 출판사로 편지를 보낸다. 저녁 아홉 시 사십 분이 넘는다. 출판사 사장님은 아직 일터에 있다고 한다. 1인출판을 하는 곳이기에 더더구나 일이 많으시리라. 표지디자인을 살피실 테고, 함께 편집하는 다른 책 원고도 살피시겠지.


  나는 아이들 밥만 차려 주고 원고만 들여다보았다. 오늘은 아이들을 잠자리에 누이고 자장노래도 못 불러 주었다. 그저 아이들 볼과 이마를 어루만지고 머리카락을 쓸어넘기면서 “미안해, 고마워, 사랑해.” 세 마디만 해 주었다. 아이들을 재우며 자장노래를 부르지 않는 날은 한 해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일. 오늘이 바로 그런 날이 된다.


  등허리가 몹시 결리지만, 라면을 끓인다. 작은아이가 먹고 남긴 국이랑 밥을 섞어서 라면 한 그릇을 끓인다. 기운을 내라는 뜻으로 달걀도 한 알 넣는다. 밤 열 시에 가까워서야 비로소 저녁을 라면 한 그릇으로 먹는다. 좋다. 괜찮다. 즐겁다. 오늘 하루 잘 놀아 준 아이들을 생각하며 이튿날에는 꼭 읍내마실을 해 보리라. 다만 이튿날은 장날인데다가 한가위 코앞 장날이라 군내버스에 빈자리가 없을 듯하다. 가뜩이나 무릎이 나빠서 버스에서 서서 갈 수 없는데, 아이들을 바라보며 기운을 내야지. 없는 살림돈을 쪼개어 이 예쁜 아이들이 주전부리로 삼을 과자를 좀 넉넉히 장만하려고 한다. 4348.9.23.물.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삶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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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교를 보다가 살짝 밥을 짓기



  곧 나올 책을 놓고 4교를 보다가 살짝 밥을 짓는다. 아이들이 먹도록 밥상을 차린 뒤 나는 함께 먹지 않는다. 나는 내 오른무릎에서 흐르는 피고름을 짠다. 피고름을 짜니 언제나처럼 오른다리와 온몸이 찌릿찌릿 저린다. 교정을 마저 더 보는데 허리가 결린다. 그래서 다시금 살짝 교정 보기를 쉬면서 눈을 돌려 본다. 오른무릎 피고름을 다 짜고 파스를 뿌렸더니 약이 몸이 퍼져서 그런지 또 졸립고 고단하다.


  하루 걸러 한 번씩 교정지를 꼼꼼히 살피려니 눈과 몸이 아프기도 하지만, 아이들하고 지내는 짬이 무척 많이 줄어든다. 집에서 밥해 주는 사람이 있다면 이만 한 일이야 아무것이 아닐 테지만, 집일도 다 하고 아이들하고 놀기도 하면서 4교째를 보자니 이제 슬슬 등허리뿐 아니라 온몸이 다 결린다.


  출판사 일꾼은 교정도 보지만 편집도 한다. 그림 작가 선생님한테서 그림도 받아서 디지털파일로 바꾸어 피디에프파일에 앉히기도 한다. 표지도 시안을 받아서 살핀다. 이래저래 출판사 일꾼은 할 일이 많다. 보도자료도 써야지, 바코드도 받아야지, 납본도 해야지, 이에 앞서 인쇄소와 제본소도 알아보아야지, 그야말로 아주 바쁘다. 조금 더 기운을 내서 마저 4교를 마치고 보내야지. 그리고, 그야말로 마지막이 될 5교를 보면 아마 내 몫은 끝나리라 본다. 4348.9.23.물.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삶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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꼴찌, 동경대 가다! 20 (미타 노리후사) 랜덤하우스코리아 펴냄, 2010.1.4.



  모두 스물한 권짜리로 나온 만화책 《꼴찌, 동경대 가다!》 스무째 권을 읽는다. 처음 한국말로 나올 무렵 첫 권을 보기는 했으나, 내 마음은 ‘대학교’하고 거의 아무런 끈이 안 이어진 터라 굳이 뒤엣권을 안 보았다. 사이는 훌쩍 건너뛰고 마지막 열아홉째와 스물한째와 스무째 권을 장만해서 읽는데, 곰곰이 헤아리니 이 만화책에 나오는 ‘입시 교사’는 비록 아이들을 ‘스파르타’로 이끌더라도 아이마다 다른 삶결과 마음결을 살펴서 가르친다. 일본에서 동경대를 가든 안 가든 아이가 어떠한 삶과 마음인가를 읽지 않는다면 ‘교육’이라고 할 수 없을 테지. 어느 대학교에 가든 대수롭지 않으며, 대학교에 가든 안 가든 대수롭지 않다. 아이와 어른이 학생과 교사라는 자리에서 아름답게 만나서 서로 이루려는 뜻을 기쁘게 이룰 수 있으면 된다. 아름다운 만남일 때에 비로소 가르치며 배운다. 아름답지 못한 만남이라면, 가르치지도 배우지도 못한다. 4348.9.23.물.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한 줄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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꼴찌, 동경대 가다! 20 (신장판)- KBS 드라마 '공부의 신' 원작
미타 노리후사 지음, 김완 옮김 / 북박스(랜덤하우스중앙) / 2010년 1월
4,500원 → 4,050원(10%할인) / 마일리지 220원(5% 적립)
2015년 09월 23일에 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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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하고 집에서 누리는 삶



  아이들을 시설이나 학교나 어린이집이나 학원에 맡긴다면, 아이들을 보살피거나 돌보거나 보듬거나 어루만지는 틈이 그만큼 줄어들거나 사라진다. 아이들을 시설이나 학교나 어린이집이나 학원에 보낸다면, 아이들을 가르치거나 아이들한테서 배우는 겨를이 그만큼 없거나 적다.


  아이들하고 한집에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늘 함께 지내면, 언제나 아이들을 지켜보고 바라보고 살펴보고 들여다보면서 이모저모 보살피거나 돌보거나 보듬거나 어루만지기 마련인데, 아이들은 차츰 크면서 저희끼리 놀 줄 안다. 아이들은 천천히 자라면서 저희 나름대로 새로운 놀이를 빚는다.


  아이들한테는 어떤 일을 ‘잘’ 해 주어야 하지 않는다. 아이들한테 어떠한 일을 ‘잘못’ 한다거나 ‘못’ 하는 일이란 따로 없다. 그저 아이들하고 어버이가 함께 누리는 삶이다. 오늘 하루 누리는 삶에서 잘잘못을 따질 일이란 없다. 그저 한집에서 한솥밥 먹는 사이로 날마다 다른 사랑을 길어올린다.


  아이가 뚜벅뚜벅 걷는다. 어른이 뚜벅뚜벅 걷는다. 아이가 무럭무럭 자란다. 어른이 무럭무럭 자란다. 아이가 크는 만큼 어른이 함께 크고, 아이가 웃는 동안 어른이 함께 웃는다. 아이가 노는 사이에 어른이 일을 하고, 아이가 노래하는 숨결이 어른한테도 고운 노래를 새삼스레 지어서 꿈꾸는 숨결로 거듭난다. 4348.9.23.물.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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