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 한 자루 켜는 마음



  촛불을 켭니다. 초를 아끼지 말자고 생각하면서 촛불을 켭니다. 밥상을 다 차리고 나서 촛불을 켭니다. “아버지 초 왜 켜?” 하고 묻는 아이한테 “응, 이제부터 밥을 차리니까 기다리는 동안 가만히 보라고.” 밥을 먹는 동안 초를 볼 일은 없지만, 문득 초를 느낍니다. 밥을 다 먹고 나서 촛불을 잊기도 하지만, 아이들이 떠올리면서 “아버지, 촛불 껴요?” 하고 묻습니다.


  책상맡에서 일하며 초를 켭니다. 몸이 몹시 고단해서 얼른 자리에 드러눕기 앞서 초를 켭니다. 허리를 반듯하게 펴고 가만히 앉아서 초를 바라봅니다. 깊은 밤에 전깃불을 켜고 싶지는 않아서 초 한 자루를 살며시 켜기도 합니다. 촛불에 기대어 책을 천천히 읽어 봅니다. 전깃불 아닌 촛불에 기대어 읽는 책은 사뭇 다릅니다. 창문을 모조리 닫아서 조용하기만 한 커다란 도서관이 아닌, 시골마을 작은 숲에서 읽는 책은 사뭇 다르듯이, 초 한 자루를 켜는 삶은 늘 사뭇 다릅니다.


  내가 먼저 촛불에 녹습니다. 나부터 스스로 촛불에 녹습니다. 내 몸을 녹이고 내 마음을 녹여서 새로운 몸이랑 마음으로 태어나고 싶어서 초 한 자루를 켭니다. 앙금도 아쉬움도 시샘도 걱정도 고단함도 모두 촛불에 천천히 태워서 녹인 뒤, 마음 가득 담으려 하는 꿈과 사랑을 새롭게 그립니다. 4348.9.28.달.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삶과 마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사진 없는 사진말

6. ‘사진을 만들’면 재미없는 까닭



  어떤 사진을 배우든, 또 어떤 사진을 찍든, 스스로 즐겁게 찍는 사진이라면 이 사진은 언제나 작품도 되고 예술도 되고 멋있기도 하다. 이와 달리, 작품으로 만들려고 하는 사진은 작품이 될 테지만, 작품을 만드는 일은 얼마나 즐거울까? 예술로 빚으려고 하는 사진은 예술이 될 테지만, 예술을 빚는 일은 얼마나 재미있을까? 멋있게 꾸미려고 하는 사진은 멋있게 보일 테지만, 멋있게 꾸미려고 하는 사진은 얼마나 기쁠까?


  꾸미느냐 안 꾸미느냐는 대수롭지 않고, 예쁘게 보이도록 하느냐 아니냐도 대수롭지 않다. 사진은 언제나 ‘찍는’다. 사진은 ‘만들’지 않는다. 사진은 사진기에 있는 단추를 눌러서 찰칵 소리가 나도록 하면서 ‘찍는’다. 사진은 어떤 모습을 억지로 쥐어짜내거나 비틀어서 이루지 않는다. 아무리 남다르거나 그럴듯하거나 볼 만하도록 만들어 본들, 만드는 사진은 늘 ‘만들기’가 될 뿐이다. 찍지 못하는 사진은 사진이 되지 못한다.


  더 맛있게 하고 싶어서 조미료를 써서 맛을 내면 조미료 맛이 난다. 조미료 맛은 더 나은 맛도 아니고, 더 나쁜 맛도 아니다. 그저 조미료 맛이다. 사진찍기를 하지 않고 ‘사진 만들기’를 하려고 하면, 사진은 얼마든지 만들 테지만, 만들어 놓은 사진에서는 이야기를 길어올리지 못한다. 이야기가 흐르는 삶이나 사랑이나 사람을 사진으로 찍기에, 비로소 이야기가 새롭게 태어난다. 이야기가 흐르지 않는 어떤 틀로 세워 놓은 모습을 만들어서 찍는다면, 이러한 ‘만들기 작품이나 예술’에는 ‘작가 주의주장’만 잔뜩 깃든다. 이리하여 ‘작가 주의주장’만 잔뜩 깃드는 ‘만들기 작품이나 예술’을 놓고 여러 비평가가 서양 이론이나 철학을 끌어들여서 누구도 알 수 없는 알쏭달쏭항 비평이나 해설을 붙인다.


  사진은 바로 오늘 여기에 있는 이야기이지만, 만들기 작품이나 예술은 ‘먼 나라 작품이나 예술’이 되고 만다. 바로 오늘 여기에서 흐르는 이야기를 ‘읽어서 찍을’ 때에 비로소 ‘사진’이다. 4348.9.28.달.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사진비평)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사진 없는 사진말

5. 사진기만 배우니 사진기만 다룬다



  사진을 배우는 사람은 사진을 읽거나 찍는다. 사진을 배우지 못한 사람은 사진을 못 읽거나 못 찍는다. 사진을 배우더라도 마음을 기울여서 배우지 않는다면 사진을 제대로 못 읽거나 못 찍는다. 사진을 배우지 못했더라도 마음을 기울여서 둘레를 살필 줄 안다면 사진을 즐겁게 읽거나 찍는다.


  사진기를 배우는 사람은 사진기를 안다. 사진기를 꾸준히 배우는 사람은 사진기를 꾸준히 잘 다룬다. 사진기를 배웠기에 사진을 알지 않는다. 사진기를 꾸준히 다루어서 사진기를 솜씨 좋게 다룬대서 사진을 잘 읽거나 찍지 않는다. 다만, 사진기를 잘 다루든 못 다루든, 마음을 기울여서 이웃을 헤아리거나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은 사진을 사랑스레 읽거나 찍는다.


  오늘날 수많은 젊은이는 사진을 배우지 않는다. 오늘날 수많은 젊은이는 사진을 배우기 앞서 사진기부터 배운다. 그런데, 지난날에도 이 흐름은 비슷했다. 지난날에도 사진 교육을 하는 자리에서 으레 사진기와 필름을 어떻게 다루느냐 하는 대목부터 가르치기 일쑤였다. 흑백필름에서 존 시스템이 무엇인지 가르치거나 이야기하는 데에 크게 마음을 쏟기는 했어도, 막상 흑백필름으로든 칼라필름으로든 슬라이드필름이로든 대형필름으로든 ‘사진에 무엇을 담는지’라고 하는 대목은 가볍게 지나치기 일쑤였다.


  사진에는 삶을 담을 수 있다. 사진에는 사랑을 담을 수 있다. 사진에는 사람을 담을 수 있다. 사진에는 이야기를 담을 수 있다. 사진에는 꿈을 담을 수 있다. 사진에는 눈물과 아픔과 슬픔과 괴로움과 고단함과 짜증과 울부짖음을 모두 담을 수 있다.


  사진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부터 제대로 배우지 않고서 사진기부터 배우거나 다룬다면, 젊은 사진가나 늙은 사진가 모두 ‘사진으로 무엇을 할 만한가’를 깨닫기까지 대단히 오래 걸리거나 아예 못 깨닫기 마련이다. ‘사진기로 무엇을 하느냐’가 아닌, ‘사진으로 무엇을 하느냐’를 가르치고 배워야 한다. 4348.9.28.달.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사진비평)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책아이 300. 2015.8.31. 촛불 책순이


  이른아침에 책순이가 일어나서 책을 보려고 한다. 여름이 저물면서 아침 해는 아직 밝지 않다. 작은아이는 아직 일어나지 않았기에 촛불을 켠다. 차츰 밝는 햇빛을 받고, 방에서는 촛불에 기대어 책을 한 장 두 장 넘긴다. 초 한 자루는 따스한 기운을 아이한테 주고, 아이는 즐거운 숨결을 초한테 돌려준다. 아침을 새로우면서 고요하게 맞이한다. 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책순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요정 핑크 (사진책도서관 2015.9.22.)

 ― 전라남도 고흥군 도화면 동백마을, ‘사진책도서관 함께살기’



  책순이인 큰아이는 새로운 만화책을 읽고 싶다. 그렇지만 큰아이한테 보여줄 만한 마땅한 만화책은 좀처럼 눈에 뜨이지 않는다. 이때에 큰아이한테 줄 수 있는 가장 멋진 만화책이라면 우리가 손수 그려서 빚는 만화책이다. 다른 분들이 빚은 아름다운 만화책을 기다리기 앞서 우리가 천천히 새롭게 이야기를 짜서 그릴 수 있다. 굳이 다른 만화책을 바라야 하겠는가. 큰아이가 곧잘 스스로 만화책을 지어내듯이, 큰아이하고 함께 만화책을 그리자고 얘기할 만하다. 이리하여 큰아이하고 어떤 만화를 그리면 재미있고 즐거울까 하고 생각을 기울이기로 한다.


  우리 도서관에 있는 만화책을 휘 둘러본다. 이 만화도 저 만화도 꼭 걸리는 곳이 있다. 《피아노의 숲》을 보여주고 싶으나 아직 안 된다. 이 만화책에는 앞자락 권수에서 ‘창녀 어머니’라는 대목이 너무 자주 나오고, 아이들이 아주 거친 말을 주고받으면서 주먹으로 치고받는 이야기도 너무 자주 나온다. 만화 독자를 헤아려서 이런 ‘요소’를 넣었을 테지만, 아무래도 좀 지나치다. 《노다메 칸타빌레》 같은 만화책도 ‘피아노 연주’보다는 엉뚱한 ‘연애질(?)’에 지나치게 기울어진다. 한국 만화는 너무 어두컴컴하거나 또 너무 연애질에 기울어지거나 하면서 따분하다. 《젤리 장수 다로》는 이럭저럭 괜찮지만, 또 죽이고 죽는 대목이 너무 쉽게 튀어나온다.


  이런저런 대목을 따지면 《우주소년 아톰》도 늘 싸우고 죽이고 괴롭히고 치고받는다. 그런데, 《우주소년 아톰》하고 다른 만화는 참으로 ‘다르다’고 느낀다. 서로 무엇이 다를까? 서로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려고 하는 만화일까? ‘재미’와 ‘장치’와 ‘요소’를 뛰어넘어서, ‘이야기’를 빚어서 들려주려고 하는 얼거리를 더 헤아리면서, 재미도 장치도 요소도 굳이 끌어들이지 않고 이야기를 빛내는 만화를 그릴 수 없는가. 그리고 거의 모든 어린이 만화와 청소년 만화가 ‘학교라는 틀’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거의 모든 만화가 ‘학교 다니는 아이들 언저리’에서 이야기가 흐른다. 학교라는 ‘요소’와 ‘소재’에서 홀가분하기가 그렇게 어려울까? 학교에 다니는 청소년과 어린이가 독자라 하더라도 ‘학교 아닌 곳’에서 펼치는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지 않을까? 이를테면, 로알드 달 어린이문학은 굳이 ‘학교’에서 이야기를 펼치지 않는다. 《찰리와 초콜릿 공장》을 만화로 빚을 만한 한국 작가는 있을까?


  이래저래 한숨만 나와서 《요정 핑크》를 보라고 큰아이한테 건넨다. 하루에 한 권씩. 거의 이모 나이만 한 만화책인 《요정 핑크》이다. 아버지가 어릴 적부터 몹시 아끼면서 보던 만화책이다. 그러고 보면, 나는 어릴 적에 《요정 핑크》 같은 만화책을 모으면서 ‘나중에 내가 어른이 되어 아이를 낳으면 물려주고 싶은 만화책’을 생각해 보기도 했다. 아쉽게도 그만 한 작품은 몹시 드물지만. ㅅㄴㄹ



* 도서관 나들이 오시려면 먼저 전화하고 찾아와 주셔요 *

* 사진책도서관(서재도서관)을 씩씩하게 잇도록 사랑스러운 손길을 보태 주셔요 *

☞ 어떻게 지킴이가 되는가 : 1평 지킴이나 평생 지킴이 되기

 - 1평 지킴이가 되려면 : 다달이 1만 원씩 돕거나, 해마다 10만 원씩 돕는다

 - 2평 지킴이가 되려면 : 다달이 2만 원씩 돕거나, 해마다 20만 원씩 돕는다

 - 평생 지킴이가 되려면 : 한꺼번에 200만 원을 돕거나, 더 크게 돕는다

* 도서관 지킴이 되기 : 우체국 012625-02-025891 최종규 *

* 도서관 지킴이가 되신 분은 쪽글로 주소를 알려주셔요 (010.5341.7125.)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