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아이 177. 푸른 들을 옆에 끼지 (15.7.31.)



  아이들하고 걷는 들길이 싱그럽다. 나는 이 들길이 사랑스러워서 자전거를 끌고 천천히 달리기도 하고, 앞장서서 저만치 멀리 걷는 아이들을 바라보면서 천천히 걷기도 한다. 봄에는 푸릇푸릇하고 여름에는 짙푸르지. 가을에는 노랗고 겨울에는 누렇지. 철마다 다른 빛은 철마다 다른 숨결이고, 철마다 새로운 바람은 철마다 기쁜 노래이지. 푸른 들을 한여름에 옆에 끼면서 오늘 이곳에 선다. 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자전거순이 78. 나 잔다 (2015.7.31.)



  자전거돌이는 집에서 낮잠을 제법 잘 자기는 하되 놀이가 재미나면 잠을 미루려 한다. 그러나 자전거를 타면 자전거마실이 아무리 신나더라도 졸음을 견디지 못한다. 아니, 살짝 흔들흔들하면서 바람노래가 흐르는 수레는 잠들기 좋은 곳이라고 할 만할까. 누구나 이런 수레에 앉으면 즐겁게 바람을 마시며 놀다가 몸을 한쪽으로 기대어 스르르 잠들 테지. 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시골노래 5 - 억새 논길



  가을이 되면 억새잔치를 하는 고장이 많다. 바람 따라 한들거리는 ‘하얀 억새 씨앗’이 무척 고즈넉해 보이면서 멋스럽게 보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억새풀 줄기 끝이 하얗게 보일 적에는 꽃이 아닌 씨앗이 퍼지려 한다. 억새풀에 꽃이 맺힐 적에는 짙붉은 꽃대에 노란 꽃이 어우러진다. 꽃은 짧고 씨앗은 길다. 이런 억새가 나풀거리는 들길은 그야말로 가을스럽다. 논마다 노란 빛이 퍼지면 더욱 가을스러울 테고, 논마다 벼베기가 끝나면 살짝 겨울스러울 테지. 이런 들길을 사람들이 휴가나 여행이나 관광이 아니라 날마다 늘 걷는다면 삶이 얼마나 달라질까 하고 헤아려 본다. 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 사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편지삯도 택배삯도 꾸준히



  어제오늘 우체국에 들러서 소포를 부치는데 편지삯이 제법 나간다. 어제는 택배를 착불로 받는데 두 달 앞서하고 견주니 천 원이 올랐다. 석 달쯤 앞서부터 전남 고흥에는 ‘일반 택배’가 많이 끊어지면서 ‘우체국 택배’로 바뀐다. 도시에서는 이런 일이 드물리라고 본다. 이런 모습을 놓고 보자면 ‘시골 살기 참 고단하다’고 할 만하리라.


  시골 물건값 흐름은 ‘틀리지’ 않다. 시골은 사람 숫자가 차츰 줄 뿐 아니라 부쩍 준다. 도시는 사람이 늘 많은데다가 물건 흐름도 언제나 많다. 시골은 도시하고 다르게 물건값이 비싸면서 ‘물건 가짓수조차 적’다. 도시에서는 한결 맛있는 커피를 더욱 값싸게 푸짐하게 마신다면, 시골에서는 맛있는 커피도 드문데다가 값도 비싸고 부피도 얼마 안 된다고 할 만하다.


  한밤에 초 한 자루를 켜고 생각에 잠긴다. 시골에서 사는 뜻이라면, 물질문명이나 소비문화를 누리려는 뜻이 아니다. 물질문명이나 소비문화를 마음껏 누리려면 도시에서 살 테지. 두 시간에 한 번 오는 군내버스는 늘 제때에 안 오고 더디 오는데, 이런 버스를 즐겁게 기다리면서 살려고 시골에서 산다. 논둑길을 자전거로 천천히 달리다가도 자전거마저 세우고 더 천천히 걸으면서 봄내음과 가을내음을 맡으려고 시골에서 산다.


  물질문명은 없지만 한가위가 지나고부터 미리내가 잘 보인다. 구름 없는 날이면 밤마다 미리내를 본다. 소비문화는 없지만 우리 집 무화과나무는 아이들한테 달콤한 열매를 기꺼이 베풀었고, 까마중과 호박도 우리 밥상을 넉넉히 북돋아 준다. 바람에 한들거리는 하얀 가을꽃을 가만히 떠올린다. 우체국에 가느라 자전거를 달리면서 바라본 노란 들녘을 가슴에 새롭게 담아 본다. 4348.10.8.나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삶노래)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잃어버렸다고 생각한 책을 찾아서



  집에 책을 잔뜩 쌓아 놓고서 읽는 사람은 흔히 ‘집에서 책을 잃는’. 책꽂이에 꽂았는데 잃고, 책탑처럼 책을 쌓았기에 잃으며, 가방에 넣은 채 까맣게 잊어서 잃는다. 베개 밑에 두거나 깔개 밑에 둔 줄 잊은 채 잃기도 하는데, 어린 아이들이 뛰놀다가 베개 밑에 깔리기도 하니까, 뭐. 마당에서 책을 읽다가 퍼뜩 다른 일이 떠올라서 평상이나 짐에 올려놓고 집안으로 들어가서 일을 하다가 책을 잃기도 한다. 이래저래 잃는 책이 많다. 웬만한 책은 하루가 다 가기 앞서 찾지만, 이틀이나 사흘이 되도록 못 찾는 책이 있고, 어느 책은 여러 해 뒤에 뜬금없다 싶은 곳에서 찾기도 한다.


  어제오늘도 책 한 권을 찾느라 한참 온갖 곳을 뒤졌으나 책이 안 나왔다. 오늘까지 사흘째 책 한 권을 찾는데 도무지 나오지 않아서 새로 한 권 사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디에 놓았는지, 아니면 어디에 두고 잃었는지 하나도 떠오르지 않았다.


  저녁해를 바라보면서 빨래를 걷은 뒤 우체국에 다녀온다. 작은아이가 잠들었기에 혼자 다녀온다. 작은 가방에 소포를 잔뜩 넣고 다녀온다. 우체국에서 소포를 부치고 면소재지 가게에 들러서 집으로 돌아올 무렵, 문득 가방이 더 무겁다고 느껴서 가방 주머니 한쪽을 여니 ‘사흘 동안 잃어버려서 못 찾은 책’이 나온다.


  허허허. 너털웃음이 나오면서 빙그레 꽃웃음도 터진다. 이야, 드디어 찾았네.


  이제 앞으로는 책을 좀 잃지 말자. 무엇보다도 ‘집에서 책을 잃는 바보짓’은 좀 그만하자. 집에서 읽던 책을 어디에 두었는지 까맣게 잊는 멍청한 짓은 오늘로 끝내자. 4348.10.8.나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책 언저리)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