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사랑 수집가 난 책읽기가 좋아
마리 데플레솅 지음, 김민정 옮김, 카타리나 발크스 그림 / 비룡소 / 2007년 9월
평점 :
절판


어린이책 읽는 삶 114



우리는 누구나 사랑을 모으고 꿈을 갈무리하지

― 나는 사랑 수집가

 마리 데플레솅 글

 카타리나 발크스 그림

 김민정 옮김

 비룡소 펴냄, 1997.7.11. 6500원



  곰곰이 돌아보면 나는 늘 무엇이든 모읍니다. 어릴 적에 놀면서 돌을 모은다든지 모래를 모으기도 했습니다. 우리 마을 모래를 모은다든지, 바닷가 모래를 모은다든지, 새로운 시골에서 본 모래를 모으기도 합니다. 어른들이 태우고 버린 담배꽁초에 남은 무늬를 모으기도 하고, 병뚜껑을 모으기도 합니다. 껌종이를 모은다거나 과자봉지를 모으기도 합니다.


  그런데 아이들이 모으는 것을 바라보는 어른들은 으레 “그거 쓰레기잖아!” 하고 한마디를 하지요. 그래요. 어른들 말마따나 아이들이 모으는 것은 쓰레기라고 할 만합니다. 어른들로서는 왜 저런 쓰레기를 아이들이 저토록 좋아해서 달라붙는가 하고 궁금해 할 만합니다.


  그러면 생각해 보아야지요. 어른 눈길이 아닌 아이 눈길로 생각해 보아야지요. 어른 눈높이로 바라보지 말고, 아이 눈높이로 바라보아야지요.



아빠는 한숨을 쉬며 말씀하셨어요. “그래, 병뚜껑이나 열심히 모으렴. 아무래도 넌 우표 수집을 하기엔 너무 어린 것 같구나.” 나는 기분이 나빴어요. 아빠가 나를 우습게 보잖아요. 그래서 이렇게 대꾸해 드렸죠. “아세요? 아빠는 병뚜껑 수집하기엔 너무 늙었다는 거?” (11쪽)



  마리 데플레솅 님이 글을 쓰고, 카타리나 발크스 님이 그림을 그린 어린이책 《나는 사랑 수집가》(비룡소,1997)를 가만히 읽습니다. 프랑스에서 날아온 이 작은 이야기책에 나오는 아이는 ‘모으기’를 매우 좋아합니다. 무엇이든 모으고자 합니다.


  왜 모을까요? 왜 자꾸 이것저것 모으려고 할까요?


  아이로서는 이것도 저것도 새롭습니다. 언제나 무엇이든 새롭습니다. 새롭기 때문에 주머니에 넣고, 새롭기 때문에 알뜰히 건사하며, 새롭기 때문에 흐뭇하게 웃으면서 바라봅니다. 모으고 또 모으며 다시 모으려는 마음에는 ‘새로운 즐거움을 북돋우는 기운’이 있습니다.



점심시간에 나는 빅투아르랑 셀레스트랑 같이 놀았어요. 둘 다 내 애인이에요. 처음엔 셀레스트랑 사랑에 빠졌는데, 나중에 빅투아르하고도 사랑하는 사이가 됐지요. 그래서 둘 다 안아 줘야 해요. 물론 빅투아르랑 셀레스트도 나를 안아 주지요. 그리고 그 둘도 친구이기 때문에 서로 끌어안아요. 그래서 우린 셋이서 안고 논답니다. (20쪽)



  이야기책에 나오는 아이가 모으려는 것을 바라보는 어머니하고 아버지는 늘 못마땅합니다. 아이가 ‘쓰레기’만 모으려 하기 때문입니다. 참말 아이는 ‘쓰레기’만 모은다고 할 만해요. 그러나, 아이가 모으는 것을 찬찬히 건사하고 곱게 보듬으면 ‘쓰레기’ 아닌 ‘살림살이’로 바뀝니다. 병뚜껑이든 종잇조각이든 차근차근 건사하면서 곱게 갈무리하면 아주 멋진 ‘이야기밭’이 되어요.


  왜 그러할까요? 왜 ‘쓰레기를 모아’도 이야기밭이 될까요? 어느 한쪽 눈길로는 쓰레기일 테지만, 다른 한쪽 눈길로는 ‘이것을 만나면서 누린 이야기’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 과자를 먹으면서 나눈 하루가 즐거웠기에 과자봉지를 남겨서 어느 하루 즐거운 이야기를 되돌아봅니다. 저 과자를 먹으면서 함께 있던 동무가 반가웠으니 과자봉지를 건사해서 그날 함께 있던 동무를 떠올립니다.


  나무젓가락 하나에도 이야기가 깃들어요. 머리핀 하나에도, 조약돌 하나에도, 다 닳은 볼펜 한 자루에도, 몽당연필에도, 토막난 지우개에도 모두 다 다른 이야기가 깃듭니다.



내 말에 엄마는 두 팔을 번쩍 치켜들었어요. “뭐? 사랑을 수집하겠다고?” 엄마는 썩 예쁘지 않은 얼굴로 나를 바라보며 물었지요. 하지만 나는 화를 내지 않았어요. 그래도 이번에는 엄마가 내 말을 귀담아들어 주었으니까요. (31쪽)



  우리는 누구나 사랑을 모으고 꿈을 갈무리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사랑을 모으면서 삶을 짓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아이도 어른도 언제나 꿈을 갈무리하면서 새 하루를 맞이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아이는 몸하고 마음이 함께 자라요. 그래서 옷이 이내 안 맞습니다. 작아서 못 입는 옷은 ‘쓰레기’로 여겨 그냥 버릴 수 있습니다. 작아서 못 입는 옷을 이웃이나 동무한테 주어 ‘물려입기’를 할 수 있습니다. 작어서 못 입는 옷을 알뜰히 건사해서 두고두고 모시면 ‘이 작은 옷을 입고 뛰놀던 나날을 그리는 이야기밭’으로 삼을 수 있습니다.



“얘, 머리가 어떻게 된 거 아니니?” 엄마는 한참 만에 말을 꺼냈어요. 그러자 형이 말을 받았지요. “아니에요. 말짱해요. 얼마나 똑똑한 녀석인데요. 그저 자기가 이 세상 모든 여자들과 사랑에 빠질 수 없다는 걸 막 깨달았을 뿐이에요. 그걸 가지고 웃기다고 생각하시면 안 되죠.” (48쪽)



  이야기책 《나는 사랑 수집가》에 나오는 아이는 마지막으로 ‘사랑 모으기’를 생각합니다. 사랑을 모으기로 하면 어머니나 아버지는 걱정을 안 할 테고, 어머니나 아버지가 ‘내가 모은 것’을 버릴 수도 없을 테니까요.


  그런데, 아이는 아직 잘 모릅니다. 아직 열 살이 채 안 된 아이로서는 아직 잘 모를 만합니다. ‘사랑 모으기’는 모든 사람을 내 옆에 두면서 언제라도 ‘내가 쳐다보고 싶을 때에 쳐다보는 인형’이 아닌 줄 아직 잘 모를 만하지요.


  ‘사랑 모으기’는 ‘사람을 수집품처럼 창고에 차곡차곡 쟁이는 몸짓’이 아닙니다. ‘사랑 모으기’는 오직 마음으로 깊이 아끼고 돌보는 숨결이 되어 너그럽고 따사로운 손길로 어깨동무를 하는 몸짓입니다.


  가시내가 머스마를 사랑할 수 있고, 머스마가 머스마를 사랑할 수 있습니다. 아이가 저보다 더 어린 아이를 사랑할 수 있고, 어른이 아이를 사랑할 수 있습니다. 사람이 나무를 사랑할 수 있고, 나무가 숲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나는 바람을 사랑할 수 있고, 바람은 자전거를 사랑할 수 있어요.


  사랑은 바로 사랑 그대로 흐르기 때문에 아름답습니다. 사람은 사랑을 언제나 그대로 지켜보면서 흐뭇하게 웃기에 아름답습니다. 사람은 사랑으로 일구는 삶을 누리기에 아름답습니다. 자, 그러면 우리 함께 어깨동무를 하고서 ‘사랑 모으기’를 신나게 해 볼까요. 4348.10.9.쇠.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어린이문학 비평)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사진 없는 사진말

9. 언제 어디에서나 ‘내 사진’



  내가 찍는 사진은 언제 어디에서나 ‘내 사진’이다. 내 사진은 ‘네 사진’을 흉내내거나 시늉할 수 없다. 내 사진은 늘 내 사진으로 있을 뿐, 다른 사진이 되지 않는다. 가끔 몇몇 이름난 다른 작가 사진을 흉내내 볼 수 있으리라. 이를테면, ‘내 사진 틀’을 마련하고 싶어서 이렇게도 찍어 보고 저렇게도 찍어 볼 만하겠지. 그런데, 다른 사람이 빚은 ‘다른 사람 틀’에 맞추어 찍는 사진은 언제나 ‘내 사진다운 결’이 하나도 없는 줄 아주 쉽고 빠르게 알아채기 마련이다. 그래서, 내 사진 틀을 세우려고 이렇게도 찍거나 저렇게도 찍어 본들, 정작 나한테 하나도 도움이 되지 않는 줄 곧 알아낼 수 있다.


  무슨 소리일까? 어떻게 해야 할까?


  우리는 누구나 스스로 찍으면 될 뿐이다. 여기에서는 이렇게 찍어야 하지 않는다. 저기에서는 저렇게 찍어야 하지 않는다. 우리는 저마다 스스로 찍을 이야기를 스스로 찍을 뿐이다. 그래서 ‘잘 찍은 사진’이나 ‘잘 찍도록 이끌 만한 도움말(팁)’은 하나도 없다.


  오늘날 사회에 떠도는 수많은 사진 가운데 ‘아무개 사진’이라고 이를 만한 사진은 매우 드물다. 거의 모든 사진이 ‘나다움’을 담으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뭔가 멋지거나 그럴싸해 보이는 틀(껍데기, 형식)에 매달린 채 다른 사람 흉내나 시늉을 내니까, 이런 사진에는 ‘사진’이라는 이름조차 아깝다. 아니, 쓸 수 없지. 다른 사람을 흉내내어 찍는다면, 이는 그저 ‘흉내’이다. 시늉으로 찍는다면 ‘시늉’이다. 이러면서 ‘베끼기’와 ‘훔치기’가 나온다. 왜 베끼거나 훔칠까? 왜 다른 사람 사진을 베끼거나 훔칠까? ‘내 이야기’를 담을 ‘내 사진’을 찍어서 ‘내 삶’을 ‘내 사랑’으로 가꾸어 ‘내 기쁨’을 한껏 누리려고 하는 ‘내 노래’가 없으니 베끼거나 훔친다.


  ‘사진이 잘 나오는 곳(포인트, 지점)’은 없다. ‘사진이 잘 나올 만한 때(시간)’는 없다. 찍고 싶을 때에 찍어라. 그러면 된다. 찍고 싶은 모습을 찍어라. 그러면 넉넉하다. 언제 어디에서나 내 눈으로 보고 내 마음으로 찍어 내 사랑으로 읽는다. 4348.10.9.쇠.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사진비평)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사진 없는 사진말

8. 사진을 가르는 형식



  모든 사진에서 ‘틀’은 껍데기이다. 이른바 ‘형식’은 그야말로 껍데기이다. 왜 그러한가 하면, 틀이든 형식이든 프레임이든 모두 껍데기일 뿐이기 때문이다.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은 ‘겉모습’이다. 겉모습은 알맹이가 아닌 겉모습이요, 겉모습은 언제나 바깥을 감싸는 옷하고 같다.


  사람을 볼 적에 무엇을 보려는가? 옷을 보려는가, 사람을 보려는가? 다만, ‘옷을 입은 사람’을 볼 수도 있을 테지만, 우리는 ‘사람을 본다’고 할 적에는 ‘걸친 옷에 따라 바뀌는 사람’이 아니라 ‘옷을 걸치든 안 걸치든, 또 어떤 옷을 걸치든, 옷을 아랑곳하지 않고 늘 마음으로 마주하는 사람’을 본다고 말한다.


  사람은 사람으로 마주해야지, 옷으로 마주할 수 없다. 사람은 사람으로 만나야지, 돈이나 이름값이나 힘(권력) 따위로 만날 수 없다. 사람은 사람으로 사귀어야지, 껍데기로 사귈 수 없다.


  사진은 어떻게 찍는가? 사진은 삶이랑 사람이랑 사랑을 이야기로 버무려서 찍는다. 사진은 껍데기를 그럴듯하게 보여주려고 하는 틀이나 형식이나 프레임이 아니다. 사진은 오로지 ‘알맹이’가 될 모습이자 몸짓이자 넋이자 숨결인 ‘삶·사랑·사람’을 이야기로 찍는다.


  껍데기에 매달리면 언제나 껍데기만 빚는다. 알맹이를 바라보면 언제나 알맹이를 보살핀다. 껍데기를 멋지게 꾸미려 하면 언제나 껍데기를 멋지게 꾸민다. 알맹이를 살가이 어루만져서 가꾸려 하면 언제나 알맹이를 살가이 어루만지면서 곱고 정갈하게 선보일 수 있다.


  껍데기가 멋지거나 그럴듯하게 보이는 사진을 찍거나 읽는면 무엇이 될까? 나 스스로 껍데기에 얽매일 테지. 껍데기 사진은 언제나 껍데기 사진일 뿐이기에 삶도 사랑도 사람도 이야기도 드러나지 않는다. 껍데기에 얽매이는 사진은 반짝이듯 한때 눈길을 모을 수도 있으나 사람들 가슴속으로 파고들지 못한다. 작가도 비평가도 껍데기에 사로잡히면 구름에 붕 뜬 헛발질에서 맴돈다. 4348.10.9.쇠.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사진비평)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말이랑 놀자 151] 가을스럽다



  가을날 아침에 마당에서 초피알을 훑다가 가만히 생각에 잠깁니다. 초피알은 새빨갈 적에 훑기도 하고, 겉껍질이 짙누렇게 마른 뒤에 훑기도 합니다. 따서 말릴 수 있고, 나뭇가지에 달린 채 말려서 가볍게 훑을 수 있습니다. 어떻게 훑든 다 좋고, 어떻게 말려도 다 즐겁습니다. 가을이기에 초피나무에서 초피알이라는 열매를 훑어요. 가을볕을 받으며 바싹바싹 마르고, 가을바람이 불면서 가을바람이 퍼지지요. 가을들은 샛노랗게 물들면서 가을빛을 퍼뜨리고 가을노래를 일으킵니다. 감알도 익고 나락도 익는 구수한 시골마을은 더없이 싱그러운 가을이기에 ‘가을스럽네’라고 하는 말이 저절로 튀어나옵니다. 그리고, 곧 ‘겨울스러운’ 바람으로 바뀌리라 느끼고, 겨울스러운 석 달이 지나면 새롭게 봄이 되어 ‘봄스러운’ 볕이랑 바람이 찾아올 테지요. 이 가을을 온몸으로 한껏 받아들이면서 가을사랑을 꿈꿉니다. 4348.10.9.쇠.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말이랑 놀자 150] 배움바라지



  뒤에서 도와주는 사람은 ‘뒷바라지’입니다. 그러면 앞장서서 도와주는 사람이 있으면? 이때에는 ‘앞바라지’라 하면 돼요. 옆에서 도와주는 사람은? 이때에는 ‘옆바라지’가 될 테고, ‘곁바라지’도 있을 테지요. 다만, 한국말사전에는 없는 말입니다. 그저 우리가 신나게 쓰고 즐겁게 나누는 말이에요. 어떤 사람은 ‘책바라지’를 합니다. 이를테면 도서관이 하는 몫이라면 ‘책바라지’라 할 만해요. 사람들이 책으로 즐거움을 누리도록 돕거든요. ‘놀이바라지’라든지 ‘살림바라지’라든지 ‘꿈바라지’도 있을 만합니다. 노래하는 사람 옆이나 뒤에서 소리를 받쳐 준다면 ‘노래바라지’라 할 수 있어요. 돕는 일은 누군가 무엇을 배우도록 도울 수 있어요. 요즈음은 아무래도 ‘배움바라지’가 가장 많으리라 느껴요. 아이들이 넉넉히 배울 수 있도록 돕는 어버이가 많거든요. 나도 우리 아이들이 시골에서 삶이랑 사랑을 기쁘게 배우도록 도우니 배움바라지로 지내고, 우리 집 곁님이 스스로 하고픈 공부를 하도록 도우면서 언제나 배움바라지로 삽니다. 그리고 아이들하고 곁님도 나한테 배움바라지입니다. 웃음과 노래와 춤과 이야기로 서로서로 배움바라지요, 사랑바라지로 하루를 맞이합니다. 4348.10.9.쇠.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