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량한 말 바로잡기

 (1710) 조석


 조석으로 문안을 드린다 → 아침저녁으로 안부를 여쭌다

 조석을 가리지 않고 → 아침저녁을 가리지 않고

 조석 두 끼 먹기도 힘들다 → 아침저녁 두 끼 먹기도 힘들다

 조석을 짓다 → 아침저녁을 짓다


  한자말 ‘조석(朝夕)’은 “1. 아침과 저녁을 아울러 이르는 말 2. 썩 가까운 앞날 3. = 조석반”, 이렇게 세 가지로 쓴다고 합니다. ‘조석반(朝夕飯)’은 “1. 아침밥과 저녁밥을 아울러 이르는 말 2. 날마다 같은 때에 밥을 먹는 일”을 뜻한다고 해요. 그런데 ‘조석’이나 ‘조석반’은 한국말이 아닙니다. 한자말이지요. 한국말은 ‘아침저녁’입니다. 다시 한국말사전을 살피면, ‘아침저녁’을 “1. 조석 2. 조석반”처럼 풀이합니다.


  한국말사전은 한국말을 풀이하지 않고 한자말만 풀이하는 꼴입니다. ‘아침저녁’이라는 한국말에 말풀이를 달고, 한자말 ‘조석·조석반’은 ‘아침저녁’이라는 한국말하고 쓰임새가 같다고 적어야 올바릅니다.


  한국말사전에는 “국가 흥망이 조석에 달린 이때”나 “6백여 인의 생명이 조석에 있는 것을 보고도” 같은 보기글을 싣습니다. 이런 글월은 “나라가 사느냐 죽느냐 코앞에 달린 이때”나 “나라가 기우느냐 사느냐 발등에 떨어진 이때”, “6백여 사람 목숨이 눈앞에 있는 모습을 보고도”나 “육백 사람 남짓이 코앞에서 사느냐 죽느냐를 보고도”로 손볼 만합니다. 4348.10.12.달.ㅅㄴㄹ



조석으로 나를 불러다 세우고

 아침저녁으로 나를 불러다 세우고

《한용운-한용운 수상집》(신구문화사,1975) 135쪽


서울에 살면서 조석으로 한강을 건너다니다 보니

→ 서울에 설면서 아침저녁으로 한강을 건너다니다 보니

《유홍준-나의 문화유산답사기 8》(창비,2015) 16쪽


(최종규/숲노래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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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그림 읽기

2015.10.11. 큰아이―바다 둘



  그림순이가 두 가지 그림을 그린다. 하나는 셸키가 사는 바다이다. 다른 하나는 범고래가 사는 바다이다. 바닷속은 파랗다. 하늘을 닮아 파랗다. 바다에서 사는 숨결은 하늘빛과 바다빛을 고스란히 온마음으로 담아서 맑다. 바다와 바다목숨을 사랑하는 아이는 바다처럼 바다빛을 안고 바다목숨처럼 하늘빛을 품는다. 바다가 눈부시다. 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그림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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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ou:Do 2015-10-12 13:32   좋아요 0 | URL
제가 좋아하는 바다와 그곳에 사는 포유류를 잘 표현해주었네요. 셸키와 눈이 마주쳤을때 좋아요를 안 누를수가 없었어요 ㅎㅎ

파란놀 2015-10-12 15:40   좋아요 0 | URL
말씀 고맙습니다.
셸키 눈이며
범고래 눈이며
참으로 맑게 잘 그렸어요 @.@
 


 우리한테 이곳은 (사진책도서관 2015.10.7.)

 ― 전라남도 고흥군 도화면 동백마을, ‘사진책도서관 함께살기’



  며칠째 방송국에서 전화가 온다. 방송국에서는 내가 시골에서 아이들하고 사는 이야기를 찍고 싶어 하는구나 하고 느낀다. 하루이틀 찍는 방송이 아니라 이레쯤 찍는다 하고, 여러 날 들여서 찍으려 하는 만큼 이것저것 묻는다. 그런데, 방송국 작가나 피디가 묻는 말은 굳이 내가 그분들한테 전화로 들려줄 만한 이야기가 아니다. 왜냐하면, 그동안 내가 쓴 책에 다 나온 이야기요, 내가 누리집에 다 올린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방송국에서는 ‘미리 알아본다’는 뜻에서 전화로 살펴보는 셈이라 할 테지만, 내가 쓴 책을 제대로 읽었으면 굳이 전화로 이것저것 알아볼 일이 없다. 내가 쓰는 글을 찬찬히 읽기만 했어도 딱히 전화로 이것저것 물어볼 일조차 없다. 게다가 나는 도서관 지킴이를 모으려고 손전화 번호를 누리집에 버젓이 적어 놓으니까, 내 손전화 번호쯤이야 누리집에 올리는 도서관일기를 읽었으면 모를 수가 없다. 아니면 내가 쓴 책을 펴낸 출판사에 전화를 걸면 손전화 번호쯤 얻는 일은 손쉬우리라.


  지난 구월 첫머리에 다친 오른무릎은 아직 말끔하게 낫지 않는다. 제법 잘 걸어다니기는 하더라도, 자전거로 면소재지를 다녀오더라도, 예전 같은 다리가 아니라고 느낀다. 그렇지만 나는 내 오른무릎을 사랑한다. 예전 같은 다리도 사랑하고, 요즈음 같은 다리도 사랑한다. 여러 시간 바깥일을 보거나 돌아다니다 보면 오른무릎이 욱씬욱씬 쑤시면서 길바닥에 주저앉을 만큼 되어도 이 무릎을 사랑한다. 틀림없이 내 몸하고 마음에서 달라지거나 새롭게 거듭나는 숨결이 있으니 이 무릎이 이렇게 몸앓이를 할 테지.


  나무를 생각하고, 땅과 풀을 생각한다. 우리 보금자리와 도서관을 나란히 생각한다. 고흥에서 지낸 지 다섯 해째이지만 아직 살림을 깔끔하게 갈무리하지 못했다. 이러한 살림살이하고 내 오른무릎이 아예 동떨어졌다고 여길 수 없다. 집과 도서관을 늘 아늑하고 깔끔하게 손질할 수 있는 몸짓일 때에 오른무릎도 한결 거뜬히 다스릴 수 있는 마음결이 되리라 느낀다. 그러니까, 가지를 꺾여도 나무는 나무 그대로이듯이, 삽차한테 밟혀도 땅은 땅 그대로이듯이, 뿌리가 뽑혀도 새로운 씨앗이 트는 풀이듯이, 나 스스로 이곳에서 일구는 이야기를 헤아려 본다. 우리한테 이곳은 삶터요 사랑터요 책터요 꿈터이면서 이야기터이다.


  다음에는 전화를 받지 말자고 생각한다. 나는 ‘방송에 찍히기를 손사래치기만 하는’ 사람은 아니니까, 내가 쓴 책이랑 글을 먼저 읽고서 ‘찍을 마음이 들면 그때 전화하시오’ 하고 말하며 짧게 끊어야겠다고 생각한다. ㅅㄴㄹ




* 도서관 나들이 오시려면 먼저 전화하고 찾아와 주셔요 *

* 사진책도서관(서재도서관)을 씩씩하게 잇도록 사랑스러운 손길을 보태 주셔요 *

☞ 어떻게 지킴이가 되는가 : 1평 지킴이나 평생 지킴이 되기

 - 1평 지킴이가 되려면 : 다달이 1만 원씩 돕거나, 해마다 10만 원씩 돕는다

 - 2평 지킴이가 되려면 : 다달이 2만 원씩 돕거나, 해마다 20만 원씩 돕는다

 - 평생 지킴이가 되려면 : 한꺼번에 200만 원을 돕거나, 더 크게 돕는다

* 도서관 지킴이 되기 : 우체국 012625-02-025891 최종규 *

* 도서관 지킴이가 되신 분은 쪽글로 주소를 알려주셔요 (010.5341.71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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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의 시골
김선영 글.사진 / 마루비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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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 삶읽기 209



풀 한 포기도 이웃이 되어 오순도순 재미난 시골

― 가족의 시골

 김선영 글·사진

 마루비 펴냄, 2015.9.25. 15000원



  가을이 깊어 가는 시월입니다. 요즈음은 밤마다 별빛이 쏟아집니다. 여름에도 봄에도 또 겨울에도 별빛은 늘 쏟아지는데, 가을에 쏟아지는 별은 한결 초롱초롱하구나 싶습니다.


  첫가을에는 풀벌레 노랫소리를 꽤 크게 듣습니다. 한가을에는 풀벌레 노랫소리가 제법 누그러집니다. 늦가을에는 바람이 무척 차가울 테니 풀벌레 노랫소리가 모두 끊어질 테지요.


  풀벌레하고 개구리는 철에 맞추어 노래를 하지만, 멧새는 한 해 내내 노래를 합니다. 딱새나 박새나 참새처럼 조그마한 텃새는 한 해 내내 마을이나 시골집을 오가면서 부산스레 노래하는데, 세 해쯤 앞서부터 마을 참새 몇 마리가 겨우내 우리 집 처마에서 겨울나기를 합니다. 그러께에는 딱새 두 마리가 겨우내 빈 제비집에서 겨울나기를 함께 했습니다.


  이 작은 새들은 처마 밑이나 제비집에 살짝 깃들어 겨울을 나는 동안 새벽이며 아침이며 낮이며 저녁이며 노래를 들려줍니다. 함께 사니까 노래를 들려줍니다. 함께 살면서 기쁨이랑 즐거움을 노래로 들려줍니다.



남편은 안동에서 앞으로 우리가 살게 될 집을 수리하고 있다. 오늘은 집을 가로막고 서 있던 은행나무를 베어내니 햇볕이 잘 들어오게 되었고, 낡은 외벽을 보강하고 … (2012.8.12.)


안락하고 예쁜 나의 아파트에서 마지막 밤을 보낸다. 이렇게 미련 없이 떠날 수 있는 것을 운명이라 생각한다. (2012.8.15.)



  김선영 님이 이녁 시골살이 이야기를 다룬 《가족의 시골》(마루비,2015)을 읽습니다. 김선영 님은 도시에서 누리던 삶을 “안락하고 예쁜 나날”로 여깁니다. 아마 다른 도시 이웃도 김선영 님하고 비슷하게 생각하리라 봅니다. 참말 도시는 도시대로 아늑하거나 예쁘다고 여길 만합니다. 도시에서는 사람들이 이녁 손으로 짓지 않아도 얼마든지 손쉽게 누릴 수 있는 것이 매우 많기 때문에, 손쉬우면서 아늑한데다가 예쁘다고 할 만하지요.


  그러면, 시골은 안 아늑하거나 안 손쉽거나 안 예쁠까요? 오로지 도시 눈길로 보자면 시골은 모든 것이 허술하거나 어수룩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시골은 도시하고 견주어 사람이 대단히 적어요. 그러니 버스도 드물고 택시를 타려면 택시삯마저 비쌉니다. 사람이 대단히 적은 시골은 ‘구매력’이 떨어지니까 물건값은 비싸면서도 가짓수가 적습니다. 사람이 대단히 적은 시골에는 극장이나 놀이기구가 들어설 턱이 없습니다. 시골에 백화점을 지으려고 하는 기업은 없습니다. 교통이 나쁘다고 하는 시골에는 공장조차 들어서기 어렵습니다.



노을 지는 초저녁, 자전거를 타고 마을 한 바퀴. 마을 수퍼에 가서 아이스크림을 사 왔다. 환경이 바뀐 것뿐인데 물욕도 줄어드는 것 같다. 아침저녁으로 초겨울처럼 스산한 바람이 분다. 오늘 이사 떡을 돌리면서 아이는 마을 할머니들의 귀여움을 한몸에 받았다. (2012.9.16.)


얼마 전, 안동시청에 갔다가 우리가 사는 집이 지어진 지가 300년이 더 되었다는 놀라운 사실을 듣게 되었다. 300년 된 흙과 300년 된 목재가 집 어딘가를 받치고 있다는 것이 경이로웠다. (2012.10.6.)




  김선영 님은 시골살이 여러 해에 무엇을 보았을까요? 김선영 님하고 살림을 함께 짓는 곁님은 시골에서 ‘스키니진’을 내려놓아야 한다고 느끼면서 무엇을 얻었을까요? 어버이를 따라 시골로 보금자리를 옮긴 아이는 시골에서 또래 동무를 사귈 수 없을 테지만 어떤 이웃이나 동무를 사귈 수 있을까요?


  시골이 삶터로 더 낫다고 할 수 없고, 도시가 삶자리로 더 훌륭하다고 할 수 없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스스로 살고픈 데에서 살기 마련입니다. 사람은 저마다 스스로 살고픈 데에서 기쁜 하루를 짓기 마련입니다.


  다만 한 가지는 도시에서든 시골에서든 어렵잖이 헤아릴 만합니다. 몸이 아프거나 고단한 사람은 ‘물 맑고 바람 상큼한 시골’에서 넉넉하고 느긋하게 지내면 아픔을 씻고 고단함도 털 수 있습니다. 이 말은 도시에서나 시골에서나 똑같이 합니다. ‘흙을 밟고 흙을 만지면 아픈 데가 사라진다’고 하는 말도 시골뿐 아니라 도시에서도 똑같이 합니다. 그래서 도시에서 살면서 흙을 만지려는 사람이 부쩍 늘어요. 할매와 할배는 도시에서 골목집을 가꾸거나 아파트에서 살더라도 어떻게든 텃밭을 마련하기 마련입니다. 오랫동안 익숙하기에 흙을 만지려 할 수도 있으나, 흙을 만지면서 흙내음하고 풀내음을 맡는 동안 저절로 몸이 푸르면서 싱그러이 깨어나는 줄 느끼기 때문입니다.



마당에 나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마치 특권이라도 얻은 듯이 저 쏟아질 듯한 별빛을 혼자 마주하고 있다는 게 이상하게도 벅차다. (2012.12.7.)


나는 쇼핑센터와 공원산책을 놓아주고 작업용 목장갑과 툇마루 사색을 얻었다. 아이는 단짝친구를 놓아주고 닭 두 마리와 밤하늘 별빛을 얻었다. (2012.12.31.)




  어느 모로 보면 시골은 사람이 없어서 좋다고 여길 수 있습니다. 사람이 적기에 ‘더 많은 사람한테서 더 많은 돈을 뽑아내자’고 하는 다툼이 생길 틈이 처음부터 없는 시골인 터라, 도시하고 다르게 느긋하거나 넉넉한 마음이 될 만한 터전이라고 여길 수 있습니다. 사람이 없거나 적거나 드문 시골에는 자동차나 버스가 지나갈 일조차 매우 드물거나 아예 없으니 대단히 조용하거나 고요합니다. 이리하여 시골에서 사는 사람은 조용히 공부하거나 고요히 마음을 다스리기에 아주 즐겁습니다. 제대로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아주 시끄러운 데에서도 북새통에 휩쓸리지 않고 공부를 할 텐데, 새와 개구리와 풀벌레와 바람이 함께 들려주는 싱그러운 노랫가락이 흐르는 데에서 공부한다면 훨씬 느긋하면서 너그러운 마음이 될 만해요.


  가만히 보면, 도시에는 흙도 풀도 나무도 없기 때문에 돈을 엄청나게 들여서 공원을 마련해야 합니다. 서울에 있는 청계천 같은 곳은 물줄기가 흐르도록 하려고 전기를 어마어마하게 씁니다. 이와 달리 시골에서는 숲을 그대로 마주하거나 껴안으면 됩니다. 숲은 숲 그대로 두면 풀하고 나무하고 벌레하고 새하고 짐승이 서로 슬기로운 얼거리를 이루어 짙푸르며 아름다운 숨결을 이룹니다. 시골사람은 숲을 그대로 건사하면서 그냥 호젓하게 숲길을 걸어가면 됩니다. 시골에서는 공원이 따로 없이 어디나 공원입니다. 마당도 고샅도 바닷가도 숲도 모두 공원이지요.



보슬보슬하고 촉촉한 흙을 만지는 것이 이렇게 기분 좋은 일인지 처음 알게 되었다. 밭은 작게 만들기로 했다. (2013.3.15.)


“엄마, 바람이 나한테 와서 지나가. 손가락 사이사이로 지나가. 엄마도 나처럼 이렇게 해 봐. 좋다.” (2013.4.28.)





  《가족의 시골》이라는 책을 쓸 수 있던 바탕을 돌아봅니다. 김선영 님이나 네 식구가 도시에서 그대로 머물렀다면 네 식구는 《가족의 시골》 같은 책을 쓸 수 없습니다. 뭐, “가족의 도시” 같은 책을 쓸 만했을 테지만, 도시사람이 쓰는 도시 이야기는 여행이나 쇼핑이나 관광이나 답사나 탐방 같은 이야기에서 머뭅니다. 도시에서 살며 ‘우리 식구가 날마다 웃고 노래하는 삶’을 들려주는 이야기를 쓰는 사람은 아주 드물어요. 거의 찾아볼 수 없습니다.


  시골에서 사는 사람은 ‘작가’나 ‘시인’이 아니어도 저절로 글을 쓰고 저절로 사진을 찍으며 저절로 노래를 부릅니다. 날마다 새롭게 맞이하면서 누리는 놀랍고 아름다우면서 기쁜 삶을 저절로 글이나 사진으로 갈무리합니다.


  아이는 도시에서도 ‘손가락 사이로 바람이 지나가는 결’을 틀림없이 느꼈을 텐데, 도시에서도 이런 말이 문득 튀어나왔을까요? 도시에도 틀림없이 꽃밭이 있어서 흙을 보기는 했을 테지만, 도시에서 사는 사람으로서 흙이 얼마나 보슬보슬하거나 촉촉한가를 제대로 느낀 적이 있었을까요?



옥수수밭이 바람이 흔들려 솨아 소리를 낸다. 겁 없는 아이는 집으로 들어오라고 아무리 불러도, 저렇게 서서 바람이 휘몰아치는 마을을 보고 서 있다. (2013.8.10.)


마당을 쓸고 툇마루에 앉아 있으니 고양이 한 마리 다가와 마당으로 따뜻하게 내려쬐는 햇볕에 눕는다. (2014.1.2.)





  바람소리를 들으며 글이 흐릅니다. 바람소리는 그저 소리로 그치지 않고 노래가 됩니다. 이윽고 바람노래인 줄 깨닫습니다. 바람노래를 가만히 귀여겨듣다가 흥얼흥얼 콧노래가 흐르고, 이 콧노래는 어느새 연필을 사각이면서 새롭게 빚는 글로 태어납니다.


  봄에는 봄노래를 글로 씁니다. 여름에는 여름노래를 글로 써요. 가을에는 가을노래를 글로 쓰다가, 겨울에는 겨울노래를 글로 쓰지요.


  철마다 다른 노래가 내 손에서 태어납니다. 그리고, 다달이 다른 노래가 내 손에서 태어나요. 더욱이, 날마다 다르면서 새로운 노래가 바로 내 손에서 태어납니다. 이 두 손으로 모든 노래를 손수 짓습니다. 참말 내 손은 내 삶을 짓는 손이요, 그야말로 내 손은 내 사랑을 가꾸는 손입니다. 시골에서 살며 살림을 가꾸는 동안 내 손이 얼마나 고우면서 대단한가 하는 대목을 새삼스레 돌아봅니다.



아이가 수수밭을 지나며 이파리를 손바닥에 스치며 걷는다. 어떤 기분을 느끼고 있는지 알 것 같았다. (2014.9.15.)


앞마당에 핀 민들레잎을 떼어내 씹어 보았다. 쓰다. 은행나무 아래는 온통 쑥이 자라 있다. 조금 떼어와 뜨거운 물에 우려내 마시니, 향긋하다. 자연이 보이고, 그걸 쉽게 입에 가져가는 데까지 3년쯤 걸렸다. (2014.11.27.)




  시골에서는 버리는 풀이 없습니다. 아니, 풀은 버릴 수 없습니다. 남새 씨앗을 심었기에 남새 말고 다른 풀은 뽑아내기 일쑤라지만, 남새 아닌 다른 풀 가운데 나물이 되지 않는 풀은 없습니다. 나물로 삼지 않는 풀이라면 바구니를 짜거나 엮는 풀이요, 예부터 옷을 지으려고 실을 얻는 풀입니다. 또는 풀짐승이 즐겨먹으며 사람한테 이바지하는 풀이에요. 이밖에 약으로 쓰는 풀이 논밭자락 둘레에 흔히 돋습니다.


  먹거나 쓰는 풀이 아니어도 풀은 흙이 기름지도록 북돋웁니다. 풀이 자라면서 뿌리로 흙을 단단히 붙잡기에 큰비가 쏟아져도 밭둑이 안 무너지도록 지켜 줍니다. 풀을 베어서 밭고랑에 놓으면 온갖 풀벌레가 이 둘레로 찾아들어서 사느라 풀짚은 곧 새로운 흙으로 거듭납니다.


  풀이 있으니 나무도 튼튼히 서고, 풀이 없으면 나무는 뿌리가 허옇게 드러나서 괴로워하다가 때때로 쓰러지기까지 합니다. 그러니까, 시골살이란 풀살이라고 할 만합니다. 푸성귀도 풀이고 나물도 풀이거든요. 남새밭도 풀씨를 심어서 가꾸는 셈이요, 나락도 보리도 밀도 수수도 모두 풀알(풀 열매)이에요.


  꼭 도시를 떠나서 시골에서만 살아야 한다고 여기지 않습니다. 도시를 즐겁게 여겨서 살더라도 ‘풀’이 무엇인지 바라보고 읽으며 어루만질 수 있다면, 우리 삶은 새롭게 피어나리라 느낍니다. 보리차는 무엇이고 녹차는 무엇이며 민들레차나 쑥차란 무엇일까요. 사람들이 마시는 차는 무엇을 끓일까요. 풀잎을, 그러니까 온 들과 숲과 마을에 돋는 풀잎을 제대로 마주하지 않는다면 우리 삶은 얼마나 멋없을까요.


  《가족의 시골》을 쓴 김선영 님네 밥상에 민들레나물이 오를까요. 이제는 오르겠지요. 고들빼기도, 씀바귀도, 소리쟁이도, 돌나물도, 비름나물도, 까마중도, 모시도, 유채도, 모두 나물이 되어 오르겠지요. 망개잎이나 하늘타리잎도, 콩잎이나 뽕잎도, 제비꽃 조그마한 잎사귀나 달개비 잎사귀까지 모두 맛나며 싱그러운 ‘이웃’이면서 나물로 우리 곁에 있는 줄 언제나 즐겁게 마주하겠지요. 4348.10.12.달.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에서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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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랑 놀자 152] 꽃바라기



  시골에서 노는 아이들은 늘 풀이랑 꽃이랑 나무를 바라봅니다. 차츰 찬바람으로 바뀌는 늦가을에도 풀이랑 꽃이랑 나무를 바라보기는 똑같지만, 이무렵에는 해가 잘 드는 곳을 찾아서 ‘해바라기’를 합니다. 겨울에도 해바라기를 하며 놀아요. 그러니까, 낮에는 ‘풀바라기·꽃바라기·나무바라기’를 하면서 놉니다. 밤에는 ‘별바라기·달바라기’를 하며 놀지요. 해나 별을 보려고 하늘로 고개를 돌려 눈길을 두기에 ‘하늘바라기’입니다. 자전거를 달려 바다로 나들이를 가면 ‘바다바라기’예요. 샛노란 가을들을 누리려고 논둑길을 거닐 적에는 ‘들바라기’입니다. 나무가 우거진 숲을 사랑하기에 ‘숲바라기’가 되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온갖 놀이를 즐기니 ‘놀이바라기’가 되고요. 어버이는 아이를 사랑하고 아이는 어버이를 사랑합니다. 서로 ‘사랑바라기’입니다. 아이도 어른도 가슴에 꿈을 품기에 ‘꿈바라기’입니다. 살림을 함께 짓는 곁님을 보살피면서 ‘님바라기’입니다. 책을 좋아하면 ‘책바라기’이고, 영화를 즐기면 ‘영화바라기’입니다. 돈이 좋으면 ‘돈바라기’일 테며, 노래가 좋으면 ‘노래바라기’예요. 비 내리는 소리와 냄새를 좋아해서 ‘비바라기’요, 눈 내리는 결이랑 빛을 좋아해서 ‘눈바라기’입니다. 우리는 저마다 어떤 바라기로 삶을 짓는가 하고 생각해 봅니다. 4348.10.12.달.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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