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을 그리면서 놀지



  그림은 언제든지 그린다. 마음 가득 이야기가 피어나기에 그림을 그린다. 꼭 어떤 그림을 그려야 하지는 않다. 그리고 싶을 때에 그리고, 그리려고 하는 이야기를 그린다. 종이와 물감과 붓이 있으니 그림을 그린다. 종이에 연필로 그림을 그린다. 그림그리기는 그림놀이가 되고, 그림놀이는 그림노래가 되며, 그림노래는 그림사랑이 된다. 그러고 보면 나도 어릴 적에 틈나는 대로 그림을 그렸다. 종이에도 그리고, 모래밭에도 그리며, 마음속에도 그린다. 교과서 귀퉁이나 공책 한쪽에도 그린다. 그림을 그리는 동안 어느새 그림님이 된다. 4348.10.14.물.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아버지 육아일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아이 그림 읽기

2015.7.5. 큰아이―바나나, 우란



  고운 빛깔 물감을 써서 하얀 종이에 바나나를 그린다. 이러고 나서 아톰 동생인 우란을 그린다. 바나나를 그린 아이는 “아버지 이건 바나나인데 잘 그렸죠?” 같은 말도 넣는다. 그래, 참으로 잘 그렸네. 그림에 곁들인 글도 예쁘네. 이렇게 네가 스스로 그림을 좋아하면서 사랑하는 마음이 되면 모든 그림이 예쁘단다. 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그림순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말이랑 놀자 153] 팔랑치마



  한국말사전을 문득 들추니 ‘꽃치마’라는 낱말이 나옵니다. 그러나 이 낱말은 널리 쓸 말이 아닌 “북녘말”이라는 꼬리표가 붙습니다. 아니, 북녘뿐 아니라 남녘에서도 ‘꽃치마’ 같은 말은 널리 쓰는데 이 낱말은 왜 북녘말이어야 할까요? 남녘에서는 꽃무늬가 깃든 치마를 ‘꽃치마’라고 해서는 안 될까요? 꽃치마처럼 ‘꽃바지’가 있습니다. 치마와 바지가 꽃치마와 꽃바지가 되듯이 ‘꽃옷’이 있지요. ‘꽃양말’도 있을 테고, 온갖 옷을 살피며 ‘풀옷·풀치마’라든지 ‘잎옷·잎치마’도 있어요. 다만, 한국말사전에 이런 낱말을 다 싣자면 끝이 없을 테니 ‘-치마’나 ‘-바지’나 ‘-옷’을 뒷가지로 삼아서 새로운 낱말을 짓는 바탕을 마련하면 됩니다. 이리하여, 꽃치마처럼 ‘팔랑치마’나 ‘팔랑바지’가 있어요. 팔랑거리는 옷이니 ‘팔랑옷’도 되어요. 날개 같은 치마라면 ‘날개치마’가 되고, 한들한들 보드랍거나 바람 따라 춤을 추는 치마라면 ‘한들치마’가 됩니다. 아이도 어른도 고운 치마를 입으면서 고운 웃음을 짓습니다. 아이도 어른도 어여쁜 옷을 입으면서 어여쁜 노래를 부릅니다. 4348.10.14.물.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숲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바그다드 카페 UE (무삭제 확장판) - 아웃케이스 없음
퍼시 애들론 감독, 마리안느 제게 브레히트 외 출연 / 에이나인미디어 / 2004년 9월
평점 :
품절


바그다드 까페

Out Of Rosenheim, Bagdad Cafe, 1987



  네 식구가 함께 볼 만한 영화란 무엇일까 하고 헤아리면서 〈바그다드 카페〉를 본다. 그런데 이 영화는 ‘열다섯 살부터’ 볼 수 있다는 딱지가 붙는다. 알쏭달쏭하다. 왜? 영화를 보니 할배 그림쟁이가 아줌마를 그림으로 그릴 적에 젖가슴이 나오기도 하고, 처음에 아줌마가 마음속으로 그리는 모습에서 젖가슴이 나오기도 한다. 이 때문인가? 아무튼 나는 이 딱지를 못 본 척하기로 하면서 여덟 살 다섯 살 두 아이하고 나란히 이 영화를 본다.


  로젠하임을 떠나 바그다드 아닌 미국 ‘바그다드 카페’에 똑 떨어진 아줌마는 가야 할 곳이 없으며 갈 곳도 없다. 그러나, 아줌마는 뚜벅뚜벅 걷는다. 다른 신도 없이 뾰족구두 한 켤레뿐이지만 이 구두로 그야말로 씩씩하게 걷는다. 아줌마를 사막과 같은 곳에 내버린 채 자동차를 몬 아저씨는 어떤 마음일까?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그렇지만, 사람은 성이 나면 그야말로 바보가 된다. 성이 나는 바람에 스스로 사람다움을 잃고 바보짓을 한다.


  〈바그다드 카페〉에서 모든 일을 혼자 짊어져야 한다고 여기는 아줌마도 늘 성이 난 마음이요 몸이다. 늘 성을 부리면서 살아야 하니, 성을 내고 난 뒤에 눈물을 흘리고, 성을 내고 나니 기운이 없어서 아무 일도 손에 잡히지 않는다. 늘 똑같은 성풀이랑 괴로움이랑 눈물이 되풀이된다. 남이 풀어 줄 수 없는 실타래인데 어디부터 어떻게 꼬였는가를 모르는 채 늘 바보짓을 하고야 만다.


  땅은 드넓지만 사람들이 머물 자리는 너무 좁다. 할 일은 많다지만 정작 아무도 어떤 일부터 손에 잡아야 하는지 모른다. 알뜰한 살림살이인지 아니면 쓰레기인지조차 살피지 않으면서 그저 쌓는다. 버려야 하는지 건사해야 하는지 들여다보지 않으면서 그저 내팽개친다. 이러한 자리에 독일 아줌마가 들어온다. 독일 아줌마로서는 삶도 죽음도 아닌 하루이지만, 아니 하루하루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모르는 나날이지만, 문득 무엇인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는 줄 알아차린다. 삶은 성을 내기만 해서는 도무지 풀 수 없는 줄 느낀다. 이제부터 모든 일을 스스로 찾고 즐기면서 살자는 생각을 천천히 피운다. 그래, 그렇지. 마치 꽃을 피우듯이 생각을 피운다. 모든 꽃이 스스로 씨앗을 퍼뜨려 스스로 햇볕과 바람과 빗물과 흙을 먹으면서 깨어나듯이, 독일 아줌마는 스스로 꽃이 되어 찬찬히 깨어난다. 그리고 이 독일 아줌마가 스스로 꽃이 되어 피어날 적에 이 독일 아줌마 둘레에 있는 사람들도 꽃내음을 함께 맡으면서 천천히, 그야말로 모두들 천천히, 그렇지만 고운 꽃내음을 풍기는 새로운 숨결로 거듭난다.


  웃으려 하기에 웃는다. 노래하려 하기에 노래한다. 아주 쉽다. 울려고 하니 울고, 성을 내려고 하니 성을 낸다. 자, 우리는 우리 삶에서 무엇을 하면 될까? 4348.10.14.물.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영화읽기/영화비평)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파브르 이야기 (매튜 클라크 스미스·줄리아노 페리) 두레아이들 펴냄, 2015.9.30.



  새로 나온 그림책 《파브르 이야기》를 가만히 읽는다. 파브르라는 사람하고 얽힌 이야기는 이녁이 손수 쓴 책을 비롯해서 다른 이들이 이녁 삶을 살피거나 헤아린 책이 무척 많이 나왔다. 앞으로도 파브르 이야기는 새로운 옷을 입고 꾸준히 나올 만하리라 본다. 읽힐 만하니까 새로운 책이 꾸준히 나올 테고, 읽힐 만할 뿐 아니라 곰곰이 되새기거나 생각할 이야기를 들려주기에 앞으로도 여러 사람이 여러 숨결을 담는 책이 나올 테지. 《파브르 이야기》를 비롯한 파브르하고 얽힌 모든 책은 어린이도 어른도 함께 읽을 만하다. 왜 그러한가 하면 파브르라는 분은 언제나 쉽고 부드러우면서 재미있게 이야기를 빚었기 때문이다. 이와 달리 한국에 있는 곤충학자나 식물학자나 온갖 학자는 ‘어려운 전문 지식을 똑같이 어려운 말’로만 쓰기 일쑤이다. 그래서 한국에 있는 여러 학자가 쓰는 책은 어린이가 읽기도 벅찰 뿐 아니라 어른이 읽기에도 벅차다. 아무래도 학자가 되기까지 읽은 책이나 배운 지식이 모두 ‘어려운 말’투성이일 테니, 이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리라. 벌레 한 마리와 작은 짐승 한 마리도 살뜰히 보살피려는 눈길로 마주한 파브르라는 사람은 이러한 눈길대로 이야기를 일구었다. 이 마음이 부디 온누리에 찬찬히 퍼질 수 있기를 빈다. 4348.10.14.물.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한 줄 책읽기)


1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파브르 이야기- <곤충기>를 쓴 파브르의 특별한 삶
매튜 클라크 스미스 지음, 줄리아노 페리 그림, 홍수원 옮김 / 두레아이들 / 2015년 9월
11,000원 → 9,900원(10%할인) / 마일리지 550원(5% 적립)
*지금 주문하면 "내일 수령" 가능
2015년 10월 14일에 저장



1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