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을 찍는 사진



  신나게 밥을 지어서 밥상을 차린 뒤 아이들을 부른다. 밥을 짓는 얼거리나 흐름이나 손길은 언제나 몸에 아로새겨지고 마음에 남는다. 옛날부터 밥짓기나 밥차림을 사진으로 찍어 보자는 생각은 안 했다. 동영상으로 찍어 놓아도 밥짓기나 밥차림을 알 수는 없다고 느꼈다. 손수 하지 않고서야 알 노릇이 없다고 느낀다.


  어릴 적에 받은 놀랍거나 멋진 밥상은 사진 한 장으로도 안 남더라도 늘 마음에 남는다. 아마 내가 오늘 아이들한테 차려 주는 밥상도 굳이 사진으로 안 찍더라도 아이들 마음에 남으리라 느낀다. 그리고, 아이들 몸이 알 테지.


  때때로 밥상을 사진으로 찍어 본다. 그리고, 밥을 먹는 아이들 모습을 살짝살짝 사진으로 담아 본다. 그렇지만, 밥상을 사진으로 찍기도 힘들고, 밥을 먹는 아이들을 사진으로 담기도 만만하지 않다. 밥상맡에 사진기를 두고 사진을 찍기는 하지만, 아이들이 잘 먹도록 이끄느라 바쁜데 언제 사진기를 손에 쥐는가.


  사진 한 장 찍는 데에는 1초면 넉넉하니까 딱 1초만 말미를 내면 되는데, 어버이로서 1초라는 말미를 내기가 뜻밖에 무척 어렵다. 어버이 자리에서 아이들을 돌보는 이라면 누구나 느끼리라. 그래도, 어버이 자리에서 아이들을 돌보면서 바로 이 1초를 내어 사진을 한 장 찍을 수 있다면, 여러모로 재미나면서 애틋한 이야기가 새삼스레 남기도 한다. 밥을 찍기는 쉽지 않아도, 밥 먹는 아이들을 찍기는 쉽지 않아도, 일부러 틈을 내어 사진 한 장 남긴다. 4348.10.20.불.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아버지 육아일기/살림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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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장소] 2015-10-20 13:46   좋아요 0 | URL
우리집도 식판으로 바꿀까...?

파란놀 2015-10-20 15:50   좋아요 1 | URL
식판을 자주 쓰기는 힘들고요...
어쩌다가 한 번 꺼냅니다 ^^;

요새는 또 거의 안 썼네요 @.@

[그장소] 2015-10-20 15:55   좋아요 0 | URL
왜..요? 좋아보이는데..채식위주로 짠 식단도 저는 늘 좋더라고요.
덜어먹는 개념보단 상시로 습관화되게 만들 방법..
고려해봐야겠어요.ㅎㅎㅎ

파란놀 2015-10-21 05:18   좋아요 0 | URL
밥판을 써도... 먹기 싫으면 남기더라구요 ^^;;
그래서 밥판은 그만두고
꽃그릇하고 꽃접시만 씁니다 ^^;;

[그장소] 2015-10-21 11:14   좋아요 0 | URL
아..저도 어릴적에 무거워도 예쁜 모량의 백 자로 빚은 그릇이 좋았어요. 모양도 그냥 밥그릇과는 다른 ..모양였는데 그게 너무 우아해서 유난히 좋아했네요 . 아이들도 이왕이면 ..예쁜데 먹는게 좋을 거예요.^^

파란놀 2015-10-21 12:55   좋아요 1 | URL
밥판을 쓰면 알맞게 덜어서
찬찬히 먹도록 하기에는 좋은데
이쁘장한 무늬가 있는 밥판은 없고
다 군대 밥판 같은 것만 있어서
이냥저냥 내키지 않더라구요.

그래도 가끔 써 보면 재미있지만요.
그러고 보면, 무거워도
꽃무늬 깃든 그릇은
언제나 참 예뻐서
밥맛이 더 나지 싶어요

[그장소] 2015-10-21 13:02   좋아요 0 | URL
우리 입장엔 밥판 이 훨씬 편해요. ^^그런데 꼭 같은 맘인게
어디 좋은데 가서 예쁜그릇에 잘 담겨나오면 기분이 더 좋거든요. 대접받는것 같고..밥판은 자율성은 있지만 또 일면 강제성 도있는게 사실이니까..군대와 회사같은 단체 생활을 연상케 하듯이..좀 넓은 접시를 그냥 쓰는 것과 는 또 달라요. 부페식...^^
 

말·넋·삶 83 스스로 그리는 그림



  우리는 스스로 그림을 그립니다. 누가 시켜서 그림을 그리지 않습니다. 그런데, 학교라는 곳에 들어가면 ‘우리 마음’이 이끄는 대로 스스로 그리는 그림이 아니라, 학교 정규 교육과정에 맞추어 ‘남이 시키는 말’에 억지로 휘둘리는 그림을 어쩔 수 없이 그려야 합니다. 학교에서 시키는 그림은 점수로 매깁니다. 학교에서 그리라고 시키는 그림은 점수에 따라 등급을 매깁니다. 이리하여, 수많은 아이들이 학교만 다니면 ‘그림그리기’에서 아주 멀어지고 맙니다.


  우리는 늘 그림을 그립니다. 무슨 그림을 그리느냐 하면, ‘내 그림’을 그립니다. 내 그림이란 무엇일까요? 바로 ‘내 삶’입니다. 우리는 아침에 일어나면서 내 그림을 떠올립니다. 우리는 낮을 보내면서 내 그림대로 삶을 짓습니다. 우리는 밤에 잠이 들면서 새롭게 내 그림을 그립니다. 이리하여, 내 삶은 ‘아침 낮 밤’으로 흐르는데, 아침에는 그림을 새로 들여다보고, 낮에는 그림대로 살며, 밤에는 새롭게 그림을 그립니다. 종이에 얹는 그림은 무엇인가 하면, 밤에 새롭게 빚는 그림이거나, 아침에 새롭게 바라보는 그림이거나, 낮에 새롭게 짓는 그림입니다.


  이리하여, 우리는 누구나 스스로 그림을 그리는 대로 이룹니다. 우리가 그린 그림을 우리가 스스로 이룹니다. 우리는 스스로 그림을 그린 대로 앞으로 나아가면서 새로운 삶을 짓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스스로 그림을 그리지 않는 사람은 아무것도 이루지 않습니다. 왜 아무것도 이루지 않을까요? 스스로 ‘아무것도 안 그렸’기 때문에 ‘아무것도 안 그린 삶’을 이룹니다.


  명상을 하는 사람은 언제나 ‘명상’을 이룹니다. 명상이란 무엇일까요? “마음 비우기”라고들 말합니다. “마음 비우기”란 무엇일까요? 마음에 아무런 그림을 안 그리는 모습입니다. 이리하여, 명상을 하는 사람은 ‘마음에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는 모습’대로 나아가는 삶을 이룹니다. 명상을 하면 할수록 ‘마음은 텅 비어’서 ‘가볍다 싶은 몸’이 될는지 모르나, 그 어느 것도 스스로 이룰 수 없는 마음과 몸이 되고 말아요.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우리는 그림을 그려야 합니다. 우리는 어떤 그림을 그려야 할까요? ‘내 그림’을 손수 그려야 합니다. 남이 시키는 그림이 아니라, 스스로 이루려 하는 삶을 그림으로 그려야 합니다. 그리고, 이 그림을 늘 새롭게 바라보아야 합니다. 내 그림을 내가 새롭게 바라보면서 내 삶을 늘 새롭게 지어야 합니다.


  이렇게 할 때에 내 삶은 제자리를 찾으면서 제대로 빛나고, 제대로 흘러서, 제대로 아름다운 사랑으로 됩니다. 거듭 말하자면, ‘하고 + 보며 + 되다’입니다. 생각을 해서 그림으로 짓고, 그림으로 지은 것을 보며, 그림으로 지은 것이 그대로 되다, 와 같은 얼거리입니다.


  스스로 그리는 그림은 모두 이루어집니다. 이를테면, 내가 전쟁무기를 그림으로 그리면 전쟁무기가 어디에선가 태어납니다. 내가 싸움박질을 그림으로 그리면 내가 싸우든 다른 사람이 싸우든 합니다. 내가 ‘사랑 어린 푸른 숲’을 그림으로 그리면, 나는 사랑 어린 푸른 숲을 누리는데, 내가 아니더라도 내 이웃이 이 사랑 어린 푸른 숲을 누릴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림을 그려야 합니다. 예술이나 미술이나 문화가 되는 그림이 아닌, 내 삶을 짓도록 스스로 북돋우는 그림을 그려야 합니다. 그림 솜씨를 자랑하려는 그림이 아니라, 사랑을 담아서 꿈으로 나아가는 그림을 그려야 합니다. 그림을 그리려고 미술학원에 다닐 까닭이 없습니다. 그림을 그리려면 내가 나를 똑바로 바라보아야 하고, 내 삶이 언제 어느 곳에 어떻게 있는가를 제대로 살펴보아야 합니다. 이때에 나는 홀가분하게 ‘내 그림’을 그리고, ‘좋고 나쁨이 없’는 사랑으로 그림을 그려서, 이 그림이 그대로 아름다운 삶으로 태어납니다. 4348.3.10.불.ㅎㄲㅅㄱ


(최종규/숲노래 . 2015 - 람타 공부/말넋/숲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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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스토리에 Historie 9
이와키 히토시 지음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15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만화책 즐겨읽기 563

 


‘사랑이 흐르는 삶’을 스스로 짓는 ‘홀가분한 넋’

― 히스토리에 9

 이와아키 히토시 글·그림

 오경화 옮김

 서울문화사 펴냄, 2015.7.30. 5000원



  이레쯤 앞서 뒤꼍에서 풀을 베다가 손가락에 가시가 박혔습니다. 풀을 한창 벨 적에는 모르다가 일을 마치고 부엌으로 가서 밥을 짓다가 자꾸 왼손 손가락이 따끔따끔하다 싶어서 들여다보니 가시가 꽤 깊이 박혔더군요. 하던 일은 마저 하자고 생각하면서 밥을 다 지은 뒤 손톱깎이로 살점을 조금씩 뜯으면서 가시를 뽑으려 하는데 안 뽑힙니다. 혼자서 안 되는구나 싶어서 곁님더러 해 달라고 하지만 피만 나올 뿐 안 됩니다. 안 뽑히는 가시라면 그냥 살점에서 내 살이 되어 살라고 할밖에 없습니다. 시골에서 살며 가시 박히는 일이야 흔하기에 이제 잊고 지나가자고 생각합니다.


  가시 박힌 자리가 아프지는 않지만 일을 하면서 문득 느낌이 옵니다. 나흘쯤 지난 저녁에 이 자리가 조그맣게 붓습니다. 조그맣지만 노란 빛깔도 돕니다. 왜 이러나 싶어서 가시 박혔던 자리를 들여다보다가 다시 손톱깎이를 손에 쥡니다. 살점을 천천히 뜯는데 노란 고름이 뽀록 나옵니다. 손톱깎이는 내려놓고 족집게를 쥡니다. 어디 보자 뭐가 나오려나 하고 혼잣말을 하며 슬슬 살점을 누르니 가시가 쏙 고개를 내밉니다.


  어느 풀에 있던 가시였을까요. 이 가시는 왜 내 손가락으로 파고들어 여러 날 지냈을까요. 잔고름을 마저 뺀 뒤 가시는 풀밭으로 던집니다. 네가 있던 곳으로 돌아가렴 하고 얘기합니다. 가시가 빠진 자리는 시원하면서 어딘가 허전합니다. 자꾸 손가락을 쓰다듬습니다. 가시 빠진 자리를 찬찬히 들여다보면 다 안 빠지고 조금 남은 듯하기도 합니다. 어쩌면 다른 가시가 더 박혔는지 모릅니다. 다른 가시도 머잖아 고름이랑 함께 빠져나올는지 모르지요.



“이건 아탈로스 님이 세워야 ‘공’이 되는 겁니다! 만약 제 경우라면 어떻게 되겠어요?” “어떻게 되는데?” “신출내기 서기관 주제에 실로 애매한 근거 하에 아탈로스 장군의 이름을 사칭해 격이 한참 높은 장군 둘을 턱으로 부려먹고, 그나마 결과가 잘 나왔으니 망정이지, 전군을 위험에 빠트린 건 사실이잖아요.” (8∼9쪽)



  기원전 300년대를 살았다고 하는 에우메네스 이야기를 담은 만화책 《히스토리에》(서울문화사,2015) 아홉째 권을 읽습니다. 알렉산드로스 같은 사람은 이름이 널리 알려졌지만 에우메네스 같은 사람은 알렉산드로스하고 대면 이름이 조용히 묻혔다고 할 만합니다. 그러나, 알렉산드로스라고 하는 사람이 힘을 떨칠 수 있던 바탕에는 수많은 에우메네스가 있고, 에우메네스도 이녁을 둘러싸고 이녁을 돕거나 믿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다만, 만화책은 만화책일 뿐, 만화책은 역사책이 아닙니다. 이천 해가 훨씬 넘는 옛이야기를 다루는 만화책은 그야말로 만화책일 뿐, 이 만화책으로 역사를 돌아볼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만화책뿐 아니라 글로만 빚은 역사책도 ‘글로 쓴 이야기’일 뿐입니다. 옛날 책이나 자료를 바탕으로 논문을 쓴다고 하더라도 이천 해가 훨씬 넘는 지난날을 몸으로 살아내지 않았으니 ‘옛날 모습을 그대로 담아서 보여준다’고 할 수 없습니다. 글이든 만화이든 모두 ‘지은이 나름대로 생각을 담아서 보여주기’ 마련입니다.



“당신은, 마케도니아인이 아니면서! 그리스인도 아니고! 그런데 어디서 잘난 척을! 애당초 필리포스 왕을 기습해서 큰 부상을 입힌 건 너희 야만족 스키타이인이잖아!” “왕께 부상을 입힌 건 스키타이인이 아니라 트리발로이인인데?” “그게 그거지! 둘 다 똑같은 야만족이잖아! 본래는 노예여야 마땅한 미개한 야만인들! 얼굴 생김새도 죄다 똑같고!” “그런 사고방식은 썩 좋지 않은데? 자신과 다른 세계를 한데 싸잡아 버리는 게 ‘단정’이나 ‘편견’을 낳고, 더 나아가 전쟁의 원흉이 되는 거니까!” (23∼24쪽)



  손가락에 가시가 박혀도 목숨이 끊어지지 않습니다. 가시가 번거로우면 살점을 많이 파내어 뽑을 수 있습니다. 바늘을 달군 뒤에 살점에 구멍을 내어 뽑을 수도 있습니다. 가시 박힌 손가락을 자꾸 생각한다면, 이 생각에 얽매여 다른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하기 일쑤입니다. 해야 할 일은 할 노릇이고, 하지 않아도 될 일은 하지 않을 노릇입니다. 언제나 스스로 제대로 생각해야 합니다. 언제나 스스로 제대로 움직여야 하지요.


  만화책 《히스토리에》에 나오는 에우메네스라고 하는 사람은 여러모로 슬기로우면서 씩씩한 숨결이었지 싶습니다. 장군이기도 했고, 학자이기도 했으며, 알렉산드로스 임금이나 필리포스 임금을 받치는 비서이기도 했으니, 슬기로운 숨결일 뿐 아니라 씩씩한 숨결일 수밖에 없었으리라 느껴요. 머리만 좋은 사람이 아니라 몸도 튼튼한 사람이었을 테고, 마음하고 몸을 스스로 다스릴 줄 알던 사람이었으리라 봅니다.



‘죽이는 것 아니었나? 하긴 그래. 죽일 목적이었다면 첫날 푹 찌르고 끝이었겠지.’ (65쪽)


“무기를 파는 것만이 장사는 아니니까요!” (73쪽)


“포키온은 한없이 냉철한 사내. 전쟁을 잘 아는 평화주의자야.” (89쪽)



  평화를 알기에 평화를 지킬 수 있습니다. 전쟁을 알기에 전쟁을 거스르면서 평화로 가는 길에 더욱 힘을 쏟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평화를 모르기에 평화를 못 지키기 마련입니다. 전쟁을 제대로 모르기에 전쟁에 휩쓸리거나 휘둘리면서 그만 전쟁이라는 수렁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기 마련입니다.


  ‘노예 해방’이라는 말을 흔히 쓰기는 하지만, 노예로 오랫동안 길든 사람은 노예 노릇에서 풀려나도 스스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릅니다. 노예로 눌려서 지내더라도 ‘노예가 아닌 삶’을 늘 스스로 생각하지 않는다면, 어느 날 문득 노예에서 풀려나더라도 그야말로 할 줄 아는 일이 없습니다. 노예에서 풀려나고서야 ‘노예가 아닌 삶’을 생각하려 한다면 아주 늦습니다. 노예인 몸이든 아니든 언제나 ‘노예가 아닌 삶’을, 그러니까 바로 ‘내가 스스로 누리려고 하는 꿈으로 가는 삶’을 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한국 사회를 놓고 본다면, 남북이 갈린 사회를 멍하니 바라볼 수 있을 테고 ‘남북이 하나가 되는 사회’를 슬기롭게 바라볼 수 있어요. 앞으로 언제 남북이 하나가 될는지 까마득하다고 하더라도, 마음속으로는 평화와 기쁨과 사랑과 통일과 민주와 평등이 무엇인가 하는 대목을 늘 생각하고 가꿀 줄 알아야 합니다.



“응, 참 좋은 마을이야. 지금은 카론이 사랑하는 마을, 메란티오스의 고향 마을인가?” (127쪽)


“이제 와서 이런 말하는 것도 좀 웃기지만, 위대한 자유! 축하한다! 메란티오스!” (136∼137쪽)



  만화책 《히스토리에》는 에우메네스라고 하는 한 사람을 다루면서 ‘히스토리에’라는 이름을 씁니다. 이 만화책은 영웅을 주인공으로 보여주려 하지 않습니다. 이 만화책은 영웅이 얼마나 멋진가 같은 이야기를 들려주려 하지 않습니다. 그야말로 ‘발자국’을 보여줍니다. 삶을 걸어온 발자국을 보여주지요. 스스로 삶을 지으면서 꿈을 이루려고 하는 사람이 걸어온 발자국을 보여줍니다.


  이 만화책은 영웅전이 아니기 때문에 이 만화책으로 ‘옛날 옛적을 살던 한 사람 이야기’를 살피는 길잡이가 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이 만화책은 ‘삶을 짓는 발자국’을 보여주기 때문에, 우리가 스스로 짓는 하루를 어떻게 지을 적에 스스로 즐거웁거나 아름답거나 사랑스러운가 하는 실마리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즐겁게 살아야지요. 어떤 삶이 아름다울까요? 말 그대로 아름다운 삶이 아름답지요. 삶이란 무엇일까요? 사랑이 흐르는 삶일 때에 비로소 삶이라는 말을 쓸 수 있겠지요.



‘그 두 다리로 지평선 저 끝까지 달려가는 것도, 혹은 대군을 이끌고 이 땅에 쳐들어오는 것도, 전부 네 자유다! 내 아들아!’ (146∼148쪽)



  한자말 ‘자유’를 한국말로 옮기면 ‘홀가분’입니다. 홀가분한 몸과 마음이 바로 자유로운 몸과 마음입니다. 홀로 하는 일, 홀로 짓는 삶, 홀로 가꾸는 생각, 홀로 다스리는 마음, 이 모두가 자유입니다. 멋대로 하는 일이 자유가 아니라, 내가 스스로 삶을 지을 수 있는 몸짓일 때에 자유입니다. 아무것이나 다 해도 되기에 자유가 아니라, 내가 스스로 삶을 사랑으로 지을 줄 아는 슬기로운 넋일 때에 자유입니다.


  그러니까, 만화책 《히스토리에》는 먼 옛날 에우메네스라는 사람을 빌어서 바로 ‘홀가분한 넋(자유로운 영혼)’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어요.


  무엇이든 할 수 있는 홀가분한 넋입니다. 무엇이든 스스로 짓는 홀가분한 숨결입니다. 무엇이든 사랑스레 가꿀 줄 아는 홀가분한 사람입니다. 4348.10.20.불.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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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밥 먹자 218. 2015.6.13. 토마토 곁들이기



  고기를 볶다가 문득 궁금하기도 해서 토마토를 곁들였다. 고기볶음이 거의 다 될 무렵 토마토를 조금 썰어서 넣고 함께 버무렸다. 왜 굳이 이렇게 해야 하느냐고 묻는 사람이 있으면 할 말이 없지만, 살짝 새로우면서 재미있게 먹으려는 마음이다. 마당에서 돋는 풀도 한 줌씩 뜯어서 함께 볶는데, 이 풀 저 풀 신나게 섞는다. 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밥짓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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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밥 먹자 217. 2015.6.6. 내가 먹고 싶어서



  올해처럼 배추를 많이 늘 먹은 적이 없지 싶다. 이제껏 살며 배추를 이렇게 날이면 날마다 신나게 먹은 적이 없다고 느낀다. 왜 나는 올해에 우리 집 꽃밥상에 늘 배추를 올렸을까. 어릴 적에는 배추김치도 배추절임도 하나도 못 먹었는데 왜 올해에는 이토록 배추를 먹을까. 몸에서 바라기도 했을 테고, 배추맛을 알기도 했을 테지. 게다가 배추는 꼭 김치로 먹지 않아도 국이며 다른 나물이며 얼마든지 새롭게 차릴 수 있다. 아이들도 배추를 간장이나 된장에 찍어서 먹는 맛, 그냥 날로 먹는 맛을 올들어 아주 신나게 배운다. 우리 함께 언제나 맛있게 먹자. 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밥짓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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