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지금의


 지금의 나 → 오늘 나 / 오늘날 나

 지금의 20대 → 오늘날 20대 / 요즈음 20대

 지금의 네 고민은 → 오늘 네 걱정은

 지금의 나를 만든 사람 → 오늘 같은 나를 만든 사람

 지금의 선택을 잘 해야 한다 → 오늘 선택을 잘 해야 한다

 지금의 커피를 기억해 → 오늘 마신 커피를 기억해

 지금의 한국을 이룩한 사람 → 오늘날 한국을 이룩한 사람


  ‘지금(只今)’은 “말하는 바로 이때”를 뜻한다고 합니다. 말뜻을 헤아린다면, 한국말로는 ‘이제’나 ‘이때’를 ‘지금’으로 적는다고 할 만합니다. 그래서 “지금부터 한 시간”은 “이제부터 한 시간”으로 손볼 만하고, “왜 지금에서야”는 “왜 이제서야”나 “왜 이때에야”로 손볼 만합니다. “지금 막 집에 도착했다”는 “이제 막 집에 닿았다”로 손보면 되고, “지금 운동을 하고 있다”는 “한창 운동을 한다”로 손보면 돼요.


  ‘지금’이라는 한자말에 붙인 토씨 ‘-의’는 군더더기입니다. 한자말 ‘지금’을 쓰고 싶다면, “지금 심정”이나 “지금 내 모습”이라 하면 그만이에요. “지금 느끼는 마음”이나 “지금 바라보는 내 모습”처럼 사이에 다른 말을 넣어서 느낌을 살려도 됩니다. “지금 돌아보는 내 모습”이라든지 “지금에 와서 느끼는 마음”처럼 살을 더 붙여도 됩니다. “지금의 심정”처럼 쓸 까닭이 없습니다. 4348.10.23.쇠.ㅅㄴㄹ



지금의 우리

→ 오늘 우리

 이제 우리

→ 오늘날 우리

→ 오늘을 사는 우리

 오늘 여기에 있는 우리

→ 우리는 오늘

→ 우리는 이제

《야나기 무네요시/김순희 옮김-다도와 일본의 미》(소화,1996) 86쪽


지금의 심정도 그렇다

→ 요즈음 마음도 그렇다

→  마음도 그렇다

→ 오늘 마음도 그렇다

《임응식-내가 걸어온 한국 사단》(눈빛,1999) 5쪽


 지금의 내 모습은 어떠할까

 요즈음 내 모습은 어떠할까

→ 오늘 내 모습은 어떠할까

→ 오늘 이곳에서 내 모습은 어떠할까

《임응식-내가 걸어온 한국 사단》(눈빛,1999) 5쪽


지금의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 이렇게 살아가려면

→ 이와 같이 살림을​ 꾸리려면

 이만큼 살아​가려면

→ 이만 한 살림을 지키려면

→ 이러한 살림살이를 이으려면

《후쿠오카 켄세이/김경인 옮김-즐거운 불편》(달팽이,2004) 155쪽


지금의 나는 없었을 거야

→ 오늘 같은 나는 없었겠지

→ 오늘 내 모습은 없었겠지

→ 이런 나는 없었겠지

→ 이 같은 나는 없었겠지

→ 오늘처럼 살지 못했겠지

→ 오늘처럼 바뀌지 않았겠지

《아즈마 카즈히로/김완 옮김-알바고양이 유키뽕 11》(북박스,2006) 58쪽


지금의 한국은

 이제 한국은

 요즈음 한국은

→ 요사이 한국은

《이하영-열다섯 살 하영이의 스웨덴 학교 이야기》(양철북,2008) 220쪽


지금의 당신이 되고자

 오늘 같은 그대가 되고자

→ 이곳에서 그대가 되고자

→ 오늘 이곳에서 그대가 되고자

→ 바로 이곳에서 그대가 되고자

 이제껏 그대가 되고자

《람타/유리타 옮김-람타 화이트북》(아이커넥,2011) 157쪽


여전히 배고픈 사람들이 살아가는 지금의 삶을 행복하다고 할 수 있을까

→ 아직도 배고픈 사람들이 있는 오늘날 삶을 즐겁다고 할 수 있을까

→ 예전처럼 배고픈 사람들이 살아가는 오늘날을 기쁘다고 할 수 있을까

《최원형-10대와 통하는 환경과 생태 이야기》(철수와영희,2015) 212쪽


(최종규/숲노래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말넋)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말·넋·삶 85 내가 짓는 삶이다



  사회의식에서는 ‘네가 한 일은 네가 책임을 지라’라든지 ‘자유에는 책임이 따른다’처럼 말합니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이 말은 맞구나 싶은데, 그렇다고 옳거나 아름답거나 사랑스럽다고는 느끼지 않습니다. 예부터 한겨레는 ‘뿌린 대로 거둔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내리사랑 치사랑’이라든지 ‘낳은 사랑 기른 사랑’을 함께 말합니다.


  내가 한 일이니 내가 맡아서 하기 마련입니다. 그렇지만, 내가 한 일은 내가 스스로 끌어들인 삶이요 일(경험)입니다. 내가 짊어질 굴레는 아닙니다. 이리하여, 우리는 서로 도와요. 두레도 하고 품앗이도 합니다. 요샛말로는 ‘이웃돕기’도 합니다. 왜 이런 일을 하느냐 하면, 함께 짓는 삶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나는 나대로 내 삶을 짓고 너는 너대로 네 삶을 짓습니다. 우리는 모두 따로따로 살아요. 한집에 사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따로따로 밥을 먹습니다. 내가 밥을 먹을 적에 네 배가 부르지 않습니다. 네가 숨을 쉴 적에 나는 숨을 안 쉬어도 되지 않습니다. 마음이 맞는 짝꿍이라 하더라도, 밥을 따로 먹고 똥을 따로 눕니다. 잠도 따로 자야 하고, 몸도 따로 씻어야 합니다. 참말 그래요. 내가 밥을 먹었으니 내가 똥을 누지, 네가 내 똥을 누어 줄 수 없습니다. 내가 힘들어서 내가 쉬지, 네가 내 몫을 쉬어 줄 수 없습니다.


  우리는 저마다 스스로 다 다른 삶을 짓습니다. 그런데, ‘내가 지은 삶’은 ‘우리가 함께 누리는 삶’으로 나아갑니다. 내가 지은 아름다운 보금자리를 내 이웃이 바라보면서 기쁨을 느낍니다. 내가 지은 어설픈 보금자리를 내 이웃이 바라보면서 혀를 끌끌 찹니다. 내 이웃이 기쁨을 느끼면 내 이웃은 새로운 기운을 얻고, 내 이웃이 혀를 끌끌 차면 이녁은 내 보금자리에 일손을 거들러 옵니다.


  그런데, ‘내가 지은 삶’이 있어야, 내 이웃이 나를 바라보면서 기쁨을 느끼든 도와주러 오든 할 수 있습니다. ‘내가 지은 삶’이 없다면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고 하나도 안 나타납니다.


  좋거나 싫거나 나쁘다고 따지는 삶이 아닙니다. 그저 삶입니다. 내가 너보다 기운이 조금 세니까 내가 너보다 일을 많이 합니다. 어른이 아이보다 몸집이 크고 기운이 세니까 어른이 일을 도맡아서 하고, 아이는 신나게 뛰놀도록 합니다. 그저 그뿐입니다. 내가 너보다 돈이 조금 넉넉하니까 내 돈을 너한테 줍니다. 네가 나보다 돈이 훨씬 넉넉하니까 네가 나한테 꽤 많은 돈을 나누어 줍니다.


  고요히 흐릅니다. 물은 언제나 고요히 흐릅니다. 가파른 자리라면 거칠게 흐르면서 우렁찬 소리를 내는데, 아무리 가파르더라도 물이 다 쏟아지고 나면 비알은 사라집니다. 물은 다시 반반하게 멈추면서 고요하게 있지요.


  삶이 흐릅니다. 삶은 언제나 고요히 흐릅니다. 오르락내리락 고빗사위도 있어 보이는 삶이지만, 가만히 보면 어떤 고빗사위가 물결을 치더라도 우리 삶은 늘 차분하면서 고요한 자리로 갑니다.


  내가 짓는 삶은 거룩한 일(업적)을 쌓아올리려는 몸짓이 아닙니다. 내가 짓는 삶은 바로 오늘 이곳에서 즐겁게 웃고 기쁘게 노래하려는 몸짓입니다. 내가 짓는 삶에서 돈을 벌 수도 있고 이름을 얻을 수도 있으며 힘(권력)을 누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돈·이름·힘을 거머쥐려고 오늘 이곳에서 살지 않습니다. 나는 늘 언제 어디에서나 아름답게 피어나는 꽃이 되어서 씨앗을 바람에 날리려는 뜻으로 오늘 이곳에서 삶을 짓습니다.


  내가 지은 씨앗을 내가 뿌립니다. 내가 심은 씨앗으로 내가 꽃이 되어 새롭게 태어납니다. 내가 지은 삶을 내가 노래합니다. 내가 이루는 꿈을 내 온 사랑을 기울여 아낌없이 노래합니다.


  우리는 ‘책임을 질 만한 일을 스스로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우리는 ‘스스로 기쁘게 웃고 노래할 사랑으로 가려고 하는 사람’입니다. 내가 짓는 삶은, 내가 짓는 사랑이요 꿈이요 웃음이요 노래요 글이요 춤이요 이야기입니다. 4348.3.24.불.ㅎㄲㅅㄱ


(최종규/숲노래 . 2015 - 람타 공부/숲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주홍 따오기 눈물 꿈터 책바보 11
질 르위스 지음, 정선운 옮김 / 꿈터 / 2015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어린이책 읽는 삶 116



교육받기보다는 사랑받고 싶은 아이들입니다

― 주홍 따오기 눈물

 질 르위스 글

 정선운 옮김

 꿈터 펴냄, 2015.10.15. 12000원



  아이들은 꼭 학교에 가야 하는가 하고 돌아보곤 합니다. 우리 집에 두 아이가 있기도 하지만, 나는 어릴 적에 학교를 다니면서 즐겁거나 재미있다고 느낀 일이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1980년대 첫무렵에 국민학교를 다니는 동안에는 하루 내내 동무들하고 노는 재미를 찾으려고 했는데, 그나마 학교에서도 힘이 센 아이들이 힘이 여린 아이를 괴롭히기도 하고, 나도 이런 괴롭힘이 싫었습니다. 무엇보다 학교에서는 제대로 놀 수 없으니 고단했어요. 게다가 숙제는 얼마나 많으며, 숙제를 안 하면 이튿날 얼마나 얻어맞아야 했는데요.


  흔히 말하기를 학교를 안 다니면 ‘사회생활을 못 한다’거나 ‘사회성이 떨어진다’고 합니다만, ‘사회’란 무엇일까 궁금하기도 합니다. 흔히 말하는 학교란, 사람들이 ‘위(정치 우두머리)에서 시키는 대로 잘 따르는 허수아비’를 만드는 곳이 아닌가 싶습니다. 학교를 오래 다니면 다닐수록 ‘위에서 시키는 대로 잘 따르는 몸짓’에 길들지 싶어요.



“괜찮을 거야, 얘 혼자서 해야 해.” 나는 레드에게도 내 담요를 두르고 같이 앉아서 작은 새끼 새가 세상으로 나오기 위해 애쓰는 것을 지켜보았다. “보여?” 나는 레드를 내 쪽으로 더 껴안으며 말했다. (21쪽)


“찌르레기, 푸른 박새, 뿔닭, 재갈매기, 집 참새, 롤러카나리아, 청둥오리, 타조, 양비둘기…….” 나는 계속했고, 새들의 이름은 차분한 리듬 속에서 내 목소리를 타고 흘러나왔다. 곁눈질로 보니, 레드가 몸을 흔드는 것을 멈추고 천천히 몸을 풀고 있는 것이 보였다. (31쪽)



  영국에서 날아온 어린이문학 《주홍 따오기 눈물》(꿈터,2015)을 읽으면서 생각에 잠깁니다. 이 책을 쓴 질 르위스 님은 《바람의 눈을 보았니?》나 《흰 돌고래》나 《반달곰》 같은 이야기를 쓰기도 했고, 이 책은 한국말로 나왔습니다. 글쓴이 질 르위스 님은 오늘날 아이들이 숲하고 멀리 떨어진 채 사는 대목을 눈여겨보면서 언제나 ‘숲하고 아이’를 잇는 징검돌을 헤아립니다. ‘바람’이나 ‘돌고래’나 ‘곰’이라고 하는 이름을 보면 잘 알 수 있어요. 한국말로 나온 질 르위스 님 넷째 책인 《주홍 따오기 눈물》에서는 ‘따오기’가 열쇠말로 흐릅니다. 따오기, 이 가운데 주홍 따오기는 ‘새’ 가운데 하나예요.


  새는 무엇을 말하는가 하면, 하늘을 마음껏 나는 숨결입니다. 새장에 갇힌 새가 아닌 하늘을 마음껏 나는 숨결이기에 새입니다. 다만, 《주홍 따오기 눈물》에 나오는 새는 ‘동물원에 있는 새’입니다. 날개가 있는 숨결이지만 막상 홀가분하게 하늘을 가르지 못하는 새가 나오지요.



짐 아저씨가 레드의 어깨에 두 손을 얹었다. “우리는 또 다른 버드맨을 갖게 되었군.” 레드가 짐 아저씨를 올려보았다. 아저씨 눈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양쪽 입꼬리에서 작은 웃음이 피어올랐다. “나는 버드 보이예요.” 레드가 말했다. 나는 숨이 턱 막혔다. 레드는 그 누구도 결코 똑바로 쳐다보지 않았고, 말을 걸거나 웃지도 않았다. 의사 선생님은 그것이 레드의 병의 일부라고 했다. (56쪽)



  《주홍 따오기 눈물》에는 여러 사람이 나옵니다. 먼저 주인공인 열두 살 가시내 스칼렛이 있고, 이 아이 동생 레드가 있습니다. 여기에 두 아이를 돌보는 몫을 맡았으나 아이들을 거의 팽개친 채 지내는 어머니가 있어요. 아이들 어머니는 곁님(아버지)이 일찍 숨을 거두는 바람에 넋이 나가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열두 살 스칼렛이 집일이랑 집살림까지 도맡습니다. 어린 동생을 보살피는 몫도 열두 살 스칼렛이 맡아요.


  그런데 어린 동생 레드는 ‘여느 사회 구성원인 여느 사람이 보는 눈길’로는 ‘장애 아이’입니다. 누나 스칼렛이 바라보는 동생은 ‘그저 동생’이지만, 다른 사람들은 스칼렛 동생을 오로지 ‘장애 아이’로만 여겨서 ‘사회 돌봄’이나 ‘복지 혜택’을 받아야 한다고 외치지요. 그리고, 사회에서는 두 아이가 ‘억지로(강제로)’ 복지 혜택이나 사회 돌봄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세 식구가 오붓하게 살지 못하도록 가로막습니다. 세 사람을 뿔뿔이 찢어서 어머니는 정신병원으로 보내고, 스칼렛은 임시 입양 보호가정에 맡기며, 동생은 보호시설에 넣어요.



담뱃갑을 엄마 얼굴 앞에 들고서 크게 소리쳤다. “엄마가 하는 일이라곤 이런 것에 돈을 쓰는 것뿐이에요.” (63쪽)


“있잖아, 만일 엄마 비둘기가 돌아오지 않는다면, 네가 쟤를 돌봐줄 수도 있어. 네가 할 수 있겠어?” 내가 말했다. 고개를 끄덕이는 레드 표정이 점잖고 진지했다. (68쪽)



  복지란 무엇일까요? 사회란 무엇일까요? 세 식구를 법에 따라 뿔뿔이 찢어 놓을 뿐 아니라, 이러한 결정 사항을 세 사람 뜻을 묻지 않고 ‘위원회’에서 ‘회의를 열어서 결정’해도 될까요?


  그러나, 다르게 본다면 한국 사회에서는 이만 한 ‘보호 장치’조차 제대로 없다고 할 만합니다. 영국이나 미국이나 여러 ‘선진국’에서는 아이들을 지켜 주겠다면서 복지사가 있고 복지 제도가 있어요. 그렇지만 이러한 제도와 정책과 공무원은 막상 ‘아이들 목소리’를 안 듣기 일쑤예요. 아이들이 무엇을 바라는지 귀여겨듣지 않고 말아요. 열두 살 스칼렛이 제 동생을 그저 ‘동생’으로만, 오직 사랑스러운 동생으로만 바라보면서 아끼는 몸짓을 어른들은 하나도 모릅니다. 어른들은 병원에서 전문 의사와 간호사가 정기검사를 해야 한다고 여기고, 어른들은 병원 검사에서 나오는 숫자를 따져서 ‘정상·비정상’을 가르려 합니다.


  가만히 보면, 학교에서도 이와 같아요. 학교에서는 시험 성적을 놓고서 높낮이를 따지지요. 시험성적이 높으면 모범생이요, 시험성적이 낮으면 문제덩어리입니다.



만일 레드가 여기에 있었다면 비둘기는 레드를 신뢰했을 것이다. 새들과 있을 때, 레드는 매우 조용했고 움직임이 적었다. 거의 보이지 않는 존재가 되었다. 가끔은 나도 보이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121쪽)


나는 짙은 갈색의 내 눈을 정면으로 바라보았다. 아마 이것이 진짜 내 모습일 수도 있었다. 어쩌면 나는 아름다운 아이일지도 모른다. (154쪽)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은 학교에서 참다이 배울 수 있을까요?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은 학교에서 무엇을 배울까요? 세 식구가 뿔뿔이 흩어져야 하는 채, 제 집으로 돌아가지도 못하고 임시 입양(또는 위탁) 보호가정에 갇힌 채 늘 감시를 받으면서 동생도 어머니도 볼 수 없는 자리에 놓여야 하는 아이는 ‘어떤 복지와 돌봄’을 받는다고 할 만할까요? 이러한 삶을 치러야 하는 아이는 학교에서 무엇을 생각하면서 무엇을 배울 만할까요?



“너희는 좋은 가족이 있는 좋은 집으로 돌아갈 수 있어. 매일 저녁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도 있고, 너희 엄마와 아빠는 너희를 돌봐 주시지. 너희 부모님은 미치지도 않았어. 그리고 너희에게 욕을 하지 않고 너희 이름을 부르시지. 하지만 레드와 나는 그런 것을 갖고 있지 않아.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이라곤 서로뿐이야. 그리고 만일 너희가 우리에 대해 얘기해 버린다면, 우리는 헤어지게 될 거야. 그러면 우리는 아무것도 가진 게 없게 되는 거지.” (214쪽)



  어린이문학 《주홍 따오기 눈물》은 주홍 따오기가 흘리는 눈물을 이야기합니다. 동물원이나 새장이 아니라 하늘을 가르면서 바람을 타고 싶은 숨결을 이야기합니다. 번지르르한 정책이나 제도나 사회가 아니라, 따스한 사랑이 흐르는 사람들 마음씨를 이야기합니다.


  아이는 무엇을 받고 싶겠습니까. 아이는 언제나 오직 한 가지를 받고 싶어요. 돈도 집도 으리으리한 집도 장난감도 아닙니다. 아이는 누구나 언제나 오로지 한 가지, 바로 사랑을 받고 싶습니다.


  아이는 교육을 받을 학생이 아닙니다. 아이는 사랑을 받을 숨결입니다. 아이는 보호나 돌봄을 받을 보호대상이 아닙니다. 아이는 따순 손길로 사랑을 받을 넋입니다. 아이가 사랑을 받고 어버이가 사랑을 베풀 때에 비로소 마을이 섭니다. 아이가 사랑을 받고 어버이가 사랑을 나눌 때에 비로소 학교가 학교답게 섭니다.


  사랑으로 흐르는 삶이 있은 뒤에 마을이나 학교나 사회가 있을 노릇입니다. 사랑으로 흐르는 삶이 없다면 학교도 마을도 사회도 정치도 경제도 교육도 모두 부질없습니다. 4348.10.23.쇠.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어린이문학 비평)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말 좀 생각합시다 12


 지나침이 없다


  배가 고플 적에는 “배고파” 하고 말해요. 배가 안 고플 적에는 “배 안 고파” 하고 말합니다. 그런데 요즈음 들어 “배고픔이 있어”나 “배고픔이 없어”처럼 말을 하거나 글을 쓰는 사람이 나옵니다. 말결을 그대로 살려서 쓰지 않고 일부러 이름씨꼴로 바꾸어서 쓰는 셈입니다.


  입으로 말을 할 적에는 이름씨꼴이 잘 안 나옵니다. 입으로 말을 하지 않고 글부터 먼저 쓰고서 이 글을 읽느라 “만사에 지나침이 없도록 하자”나 “모자람이 없습니다” 같은 말투가 차츰 퍼집니다. “모든 일을 지나치지 않게 하자”나 “모자라지 않습니다”처럼 부드럽게 쓰던 말투를 어느새 잊습니다.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습니다” 같은 말은 그야말로 먼저 글을 쓴 뒤에 줄줄이 읽는 말투입니다. 아마 글을 쓸 적에는 이처럼 이름씨꼴로 맞추어야 더 힘주어 말하는 듯 여길 만하겠지요. 그런데 말에는 알맹이가 있어야 참다이 힘이 있습니다. 말꼴만 이름씨로 바꾼다고 해서 힘이 생기지 않아요. 알맹이 없이 껍데기만 만지작거리는 글투나 말투는 오래갈 수 없습니다.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처럼 글을 쓰고 말을 해야지요.


  “망설임이 없다”가 아니라 “망설이지 않다”입니다. “설렘이 없다”가 아니라 “설레지 않다”입니다. 다만, ‘두려움’이나 ‘웃음’은 이름씨꼴로 오래도록 썼기에 “두려운 줄 모른다”, “웃지 않는다”뿐 아니라 “두려움이 없다”, “웃음이 없다”처럼 써도 그리 낯설거나 어설프지 않아요. 그렇다고 “졸음이 없다”나 “기다림이 없이 가다”나 “머무름을 안 하고 바로 떠나다”처럼 쓸 수 없는 노릇입니다. 이런 말투도 언젠가 쓸 수 있는 날이 다가올는지 모릅니다만, 모든 말투를 억지스레 이름씨꼴로 맞추어야 하지 않습니다. ‘떨림’이나 ‘새로움’이나 ‘느림’이나 ‘사랑스러움’처럼 차근차근 새 낱말을 빚을 만합니다. 새 낱말을 빚는 까닭은 생각을 넓히면서 삶을 북돋우려는 뜻입니다. 4348.10.23.쇠.ㅅㄴㄹ



기계는 공동체의 파괴자라고 표현해도 지나침이 없다

→ 기계는 공동체를 파괴한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 기계는 두레를 무너뜨린다고 말해도 지나치지 않다

《스콧 새비지 엮음/강경이 옮김-그들이 사는 마을》(느린걸음,2015) 242쪽


(최종규/숲노래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말넋)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책아이 309. 2015.10.2. 나무그늘 책순이



  가을이어도 볕이 드는 자리는 덥다면서 그늘이 드리우는 마당에 앉는다. 평상은 이슬이 아직 마르지 않았다. 언제나 마당에서 맨발로 노니까 마당에 앉아서 책순이가 될 만하지. 도라에몽 만화를 보는 누나 곁에 작은아이도 “뭔데? 뭔데?” 하면서 기웃거린다. 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책순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