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200만 발자국이 찍혔습니다.

올해로 접어들어 100만 발자국이 되었는데

한 해가 가기 앞서 새삼스레 200만 발자국이 되었어요.


이곳, 이 숲노래 글방에 찾아오신

모든 분들한테 고맙다는 뜻으로

절을 올립니다.


앞으로도 즐겁게 사뿐사뿐 마실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저도 언제나 노래하면서 웃는 이야기를

갈무리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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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좀 생각합시다 13


 준비 땅


  요즈음은 ‘요이 땅(ようい どん)’ 같은 일본말을 함부로 쓰는 사람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웬만한 사람들은 ‘준비(準備) 땅’으로 고쳐서 쓰니까요. 그렇지만, ‘준비 땅’이라는 말마디도 아직 한국말이 되지는 않습니다. 일본말 ‘요이’를 일본사람이 즐겨쓰는 한자말 ‘준비’로 바꾸기만 했을 뿐이니까요.


  일본사람은 총소리를 ‘땅’으로 적습니다. 한국사람은 총소리를 ‘탕’으로 적지요. 일본 사회나 학교에서 운동회나 경기나 대회를 하면서 총을 쏘며 퍼진 말투인 “요이 땅(준비 땅)”인데요, 막상 육상 경기를 지켜보면, 몸짓을 세 번으로 나눕니다. “준비이이, 땅!”이라 하지 않고, “하나, 둘, 셋!”이라 합니다.


  달리기를 하는 자리에서 숫자를 셋 세면서 함께 첫발을 뗀다면, 한국말로는 “하나 둘 셋”이라 하면 딱 어울립니다. 숫자를 셋 세지 않고 둘만 센다면, “자, 가자”라든지 “자, 달려”라 할 수 있어요.


  한국말에서 ‘자’라고 하는 느낌씨는 여러 사람 눈길이나 마음을 모으는 노릇을 합니다. “자, 이제 가 볼까”라든지 “자, 오늘은 이만 마치지요”라든지 “자, 기다려 보라고”라든지 “자, 요놈 보게나”처럼 써요.


  그런데 사람들이 입으로는 으레 ‘자’를 써도 학교에서나 사회에서나 문학에서는 좀처럼 ‘자’라는 말을 못 쓰는 듯합니다. 어린이를 가르치는 어른이라면, 또 어린이가 읽을 글을 쓰는 어른이라면, 어린이가 말을 슬기롭게 배워서 아름답게 쓰도록 한국말을 좀 찬찬히 살피고 생각해서 알맞게 써야지 싶습니다. 4348.10.24.흙.ㅅㄴㄹ



내가 태어날 때도 “준비 땅” 하고 수억 마리 정자가 달리기 시합을 했는데요

→ 내가 태어날 때도 “자 달려” 하고 수억 마리 정자가 달리기를 겨루었는데요

《박상우-불량 꽃게》(문학동네,2008) 44쪽


(최종규/숲노래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말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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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결에 물든 미국말

 베이비 사인baby sign



  ‘베이비 사인’은 한국말이 아닙니다. ‘baby sign’이라는 영어입니다. 이런 말은 한국말사전에 없습니다. 그런데 어느 때부터인가 이 영어를 ‘아기를 낳아 돌보는 어버이가 알아야 할 전문 낱말’인 듯 여기는 바람이 붑니다. 이 영어를 한국말로 옮기지 않고 그냥 ‘베이비 사인’으로 쓰는데, ‘baby’는 ‘아기’를 가리키고, ‘sign’은 ‘몸짓’을 가리켜요. 그러니 우리는 ‘아기 몸짓’이라는 말을 새롭게 지어서 쓸 만합니다.


 아기 몸짓 . 아깃짓 . 배냇짓


  아기가 자면서 짓는 얼굴짓을 놓고 ‘배냇짓’이라 합니다. 날 때부터 몸에 깃든 무엇을 가리키는 ‘배내’라는 말이 있어요. 여기에 ‘배내똥·배내옷’이라는 말하고 ‘배냇냄새·배냇니·배냇머리·배냇버릇·배냇저고리’ 같은 말이 있지요.


  ‘배냇짓’을 잘 적에 짓는 얼굴짓만 나타내는 낱말로 쓰지만, 아기가 ‘입으로 하는 말’이 아닌 ‘몸을 움직여서 제 뜻을 나타내는 짓’을 가리키는 자리에 넉넉히 쓸 만합니다. ‘아깃짓(아기 짓)’처럼 새말을 지어도 됩니다. 4348.10.24.쇠.ㅅㄴㄹ



아직 말을 하지 못하는 아기는 상호작용을 위해 몸으로 자신을 표현하는 ‘베이비 사인Baby sign’을 사용합니다

→ 아직 말을 하지 못하는 아기는 이야기를 나누려고 몸으로 제 뜻을 나타내는 ‘배냇짓(아기 몸짓)’을 씁니다

《김수연-0∼5세 말걸기 육아의 힘》(예담프렌즈,2015) 110쪽


(최종규/숲노래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말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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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노래 71. 살림순이 손길


  살림순이는 어릴 적부터 늘 살림순이였습니다. 여덟 살인 요즈음에도 살림순이요, 동생이 막 서서 걸으려고 용을 쓰던 무렵에도 다섯 살짜리 살림순이였으며, 동생이 아직 우리한테 오지 않던 두어 살 적에도 멋진 살림순이였습니다. 아이들하고 복닥이며 사느라 ‘예전에 찍기만 하고 깜빡 잊은 채 지나친’ 사진이 퍽 많은데, 어느 날 문득 예전 사진을 살피다가 마당에서 빨래를 주워서 다시 너는 모습을 새삼스레 돌아봅니다. 동생이 마당에서 기다가 서다가 하면서 빨랫대에 있던 옷가지를 집어서 바닥으로 던지니, 살림순이는 이 옷가지를 씩씩하게 주워서 다시 빨랫대에 얹었어요. 참으로 대단하지요. 요즈음도 이렇게 멋진 살림순이입니다. 4348.10.23.쇠.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사진말/사진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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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나라는 늘 싸우기만 했을까? (강창훈) 책과함께어린이 펴냄, 2013.7.29. 12000원



  한국이라는 나라 둘레에 중국하고 일본이라는 나라가 있다. 그래서 한국은 언제나 중국이나 일본하고 사귀거나 다투는 삶을 누렸다고 할 만하다. 역사로 보면 그렇다. 그렇지만 정치 권력자가 아닌 여느 사람은 중국이나 일본을 거의 알거나 만날 일이 없이 지냈으리라 느낀다. 여느 마을에서 수수하게 살던 사람은 중국이나 일본뿐 아니라 다른 고장 사람들조차 거의 만날 일이 없이 지냈을 테지. 옛 역사책에 남은 이야기로는 중국을 섬기거나 일본하고 아옹다옹했다고 나올 수 있지만, 막상 여느 마을에서 수수하게 살던 사람은 땅임자인 이들을 섬기지 않고서는 살아남을 수 없는 얼거리였을 테고, 마을사람끼리 오순도순 두레와 품앗이를 하는 삶이었으리라. 《세 나라는 늘 싸우기만 했을까?》라는 책을 읽으며 곰곰이 생각해 본다. 한국이나 중국이나 일본은 늘 싸우기만 하지 않았겠지. 때때로 싸움이 난 적이 있을 테지만, 싸움보다는 평화로운 나날이 훨씬 길었으리라 느낀다. 그런데 역사책이나 교과서에서는 으레 ‘싸운 이야기’를 크게 다룬다. 기나긴 역사에서 아주 짧은 동안이던 ‘싸운 이야기’를 너무 크게 다룬다. 서로 평화를 이루면서 오순도순 지낸 이야기는 그야말로 제대로 안 다룬다. 왜 그럴까? 한 번 얻어맞은 일이 큰 생채기가 되었기 때문일까? 싸움이 아닌 평화를 바란다면, 기나긴 날에 걸쳐 평화를 이루면서 어깨동무하던 삶을 찬찬히 되새기면서 이러한 숨결을 앞으로도 새롭게 잇는 길을 슬기롭게 찾아야 하지 않을까. 어린이한테 역사를 가르치거나 들려주려 한다면 ‘싸운 이야기’에 앞서, 먼저 ‘평화롭게 어깨동무한 이야기’부터 가르치거나 들려줄 때에 아름답고 올바르며 알맞으리라 느낀다. 4348.10.23.쇠.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한 줄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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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나라는 늘 싸우기만 했을까?- 한국.중국.일본의 교류 이야기
강창훈 지음, 오동 그림 / 책과함께어린이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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