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름벼리 누나가 밀수세미 챙겼어



  빨래터를 치우러 가는 가을 한낮. 사름벼리는 동생이 쓸 밀수세미를 챙겨 준다. 산들보라는 누나가 챙겨 준 밀수세미를 기쁘게 받는다. 자, 그러면 이제 다 함께 빨래터 물이끼를 걷고 물놀이를 하러 가 볼까. 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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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들보라는 이 모자가 좋아



  저녁에 자전거마실을 하려면 모자랑 장갑을 챙긴다. 두 아이한테 어떤 모자를 씌울까 하고 살피며 하나씩 꺼내어 머리에 씌운다. 산들보라는 양 모자가 좋단다. “나는 양이네. 너(누나)는 뭐야?” 하면서 빙그레 웃기도 한다. 모자에 여러 가지 무늬를 넣으려는 생각은 누가 했을까. 모자며 옷이며 여러 가지 무늬로 곱게 가꾼 사람들은 참으로 멋지구나 하고 새삼스레 깨닫는다. 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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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프터 어스
M. 나이트 샤말란 감독, 제이든 스미스 외 출연 / 소니픽쳐스 / 2013년 10월
평점 :
품절


다음 지구 (애프터 어스)

After Earth, 2013



  2013년을 사는 사람으로서 3072년을 생각할 수 있을까? 2015년을 사는 사람이라면 3074년을 생각할 수 있을까? 앞으로 한두 해쯤 뒤가 아닌 천 해쯤 뒤를 생각할 수 있을까? 오늘날 과학기술 물질문명은 하루가 다르게 발돋움한다고 하는데, 백 해나 오백 해나 천 해쯤 뒤에는 어떤 사람이 어떤 삶을 지을까? 천 해쯤 뒤에도 바보스러운 전쟁이나 따돌림 따위가 그대로 있을까? 천 해쯤 뒤에도 멍청한 입시지옥이나 졸업장 따위가 고스란히 있을까? 천 해쯤 뒤에도 사람들은 돈을 더 많이 벌려고 쳇바퀴를 돈다든지, 정치 우두머리는 사람들을 어리석게 뒤흔들려는 짓을 안 멈추고 할까?


  영화 〈다음 지구(애프터 어스 After Earth)〉를 본다. ‘천 해를 어떻게 사느냐’라든지 ‘천 해 뒤를 어떻게 아느냐’ 따위를 묻지 않고 영화를 본다. 바로 오늘 이곳에서 영화를 본다. 도무지 사람이 살 수 없는 멍청한 별이 된 지구를 그리지 않고 영화를 본다. 사람이 빼곡하다가 사람 그림자를 더는 찾아볼 수 없는 조용한 별이 된 지구는 더 생각하지 않으면서 영화를 본다.


  이 지구는 왜 지구일까? 사람이 살기에 지구일까? 사람만 살기에 지구일까? 사람이 안 살아도 지구는 지구라고 할 수 있을까? 사람이 살지 않는 지구하고 사람이 사는 지구는 무엇이 얼마나 다를까?


  사람이 빼곡하게 살던 지구에서 사람이 모조리 죽어서 사라져야 한 까닭은 무엇일까? 아마 이 대목을 모를 만한 ‘현대 문명인’은 없으리라. 지구에서 오직 사람만 살겠다면서 다른 이웃을 모조리 죽여 없애는 짓을 하니까 사람조차 지구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 풀 한 포기를 함부로 뽑고, 벌레 한 마리를 함부로 밟으며, 냇물이나 멧자락을 함부로 파헤치기 때문에 지구에서 사람이 살 수 없는 앞날이 다가온다.


  파리 한 마리가 무엇을 할까. 지렁이 한 마리가 무엇을 할까. 파리가 사라지거나 지렁이가 없는 지구에서 사람은 며칠이나 살아남을 수 있을까. 개미가 사라지거나 나비나 참새가 없는 지구라면 이런 곳에서 사람은 며칠이나 살아남을 만할까.


  영화 〈다음 지구〉에 나오는 아이는 스스로 두려움이 없다고 외치지만, 아직 스스로 두려움을 떨치지 못 한 어린 숨결이다. 왜 그런가? 두려움이 없는 사람은 “난 두렵지 않아!” 하고 외치지 않기 때문이다. 두려움이 아직 가득하기에 “난 두렵지 않아!” 하고 외치고 만다. 두려움이 없는 사람은 ‘두려움이 없기를 바라는’ 생각이 아니라 ‘스스로 앞으로 무엇을 하려는가’ 같은 생각을 한다.


  영화 〈다음 지구〉에 나오는 아이는 어떻게 괴물을 물리칠 수 있었을까? 이 영화에 나오는 아이는 왜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하는 나날을 보내야 했을까? 괴물을 물리친 까닭은 마음속에 ‘두려움’이나 ‘두려움을 없애겠다는 생각’이 아니라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나 ‘내가 사랑할 삶은 무엇인가’ 같은 생각을 품었기 때문이다. 한 시간 반 즈음 되는 영화는 바로 이 대목을 우리한테 들려주려고 한다. 지구를 살리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지구를 살릴 생각’이 아니라 ‘오늘 내가 사는 이 보금자리를 사랑으로 가꾸면서 기쁘게 웃을 꿈’을 짓겠다는 생각을 하면 된다. 4348.10.24.흙.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영화읽기/영화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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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나, 비닐봉지를 꿴 마을고양이



  저녁에 마당에서 살림을 건사하려는데 돌울타리 쪽부터 부시럭거리는 소리가 나더니, 목에 노란 비닐봉지를 꿴 마을고양이가 우리 집으로 들어온다. 얘, 너 어디에서 그런 노란 비닐봉지를 목에 꿰고 말았니? 집고양이가 아닌 마을고양이인 터라 사람 손길을 타려 하지 않으니 어찌할 길이 없다. 이 아이들은 우리 집에서 먹고살 뿐 아니라 바로 코앞에까지 오락가락할 수 있기는 하되 손타기는 도무지 하지 않는다. 아이들이 마당에서 놀든, 내가 마당에 빨래를 널거나 걷든, 이 고양이들은 서로 물끄러미 쳐다보는데, 이런 일이 생겨도 손을 쓰지를 못 한다. 부디 나뭇가지나 풀포기에 걸려서 비닐봉지가 찢어져 주기를 바랄밖에 없다. 고양이가 스스로 비닐봉지를 뜯어서 뗄 수 있을까? 이튿날 아침에는 저 성가신 비닐봉지가 사라질 수 있기를, 비닐봉지 안 꿴 모습으로 만날 수 있기를, 애타게 빈다. 4348.10.24.흙.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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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자전거 삶노래 2015.10.19.

 : 길이 좁은 가을



가을걷이가 한창일 때에는 시골길이 좁다. 마을마다 나락을 길가에 널어서 말리기 때문이다. 여느 때에는 워낙 자동차가 안 지나다니니 이 시골길에 나락을 널 만하다. 그런데 자동차가 여느 때에 워낙 없더라도 어쩌다가 지나가는 자동차가 드문드문 서로 엇갈리는데, 이럴 때에는 서로 살짝 고단하다. 가을에는 군내버스가 시골길을 조금 더 천천히 달린다. 길가를 따라 죽 나락을 말리니 군내버스도 가을만큼은 함부로 싱싱 달리지 않는다.


이 가을에는 군내버스 다니는 찻길이 반토막이 나기에 웬만하면 그냥 논둑길로만 달린다. 논둑길에까지 나락을 말리지 않으니까.


나락 벤 논이 하나둘 늘면서 샛노란 들은 차츰 누런 빈 논으로 바뀐다. 앞서 베어 말리는 나락이 마를 무렵 차근차근 다른 논을 벨 테고, 다른 논을 벤 나락은 새삼스레 길가에 널어 말릴 테며, 가을 끝자락까지 이 모습이 이어질 테지.


하늘을 보면서 논둑길을 달린다. 들하고 하늘을 찬찬히 바라보면서 논둑길을 천천히 달린다. 요새는 자전거를 달리면서 무릎이 괜찮다. 거의 다 나았다고 할 만하다. 그래도 자전거를 한 번 달리면 몸에서 힘이 많이 빠져나가네 하고 느낀다. 십일월에는 이 몸을 더욱 튼튼히 다스려야지 하고 생각한다. 자전거순이는 억새씨앗을 훑어서 머리에 뿌리면서 재미있게 논다. 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에서 자전거와 함께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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