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의 : 동안의 귀여운 스타일



동안의 귀여운 스타일? 난 별로야

→ 앳되고 귀여운 얼굴? 난 됐어

→ 어려 보이고 귀여운 얼굴? 난 싫어

《모리모토 코즈에코/이지혜 옮김-개코형사 ONE코 11》(대원씨아이,2015) 39쪽


  ‘동안(童顔)’은 ‘어린아이 얼굴’을 가리킵니다. ’스타일(style)’은 ‘맵시’나 ‘품’으로 고쳐쓰라고 한국말사전에 나오지만, 이 대목에서는 “앳된 얼굴”이나 “어려 보이는 얼굴”로 손볼 만합니다. “난 별(別)로야”는 “난 마음에 안 들어”나 “난 싫어”로 손볼 수 있습니다.


아무리 문장으로 길게 이야기할 수 있어도 상대방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면

→ 아무리 글월로 길게 이야기할 수 있어도 상대가 하는 말을 이해하지 못하면

→ 아무리 긴 말로 이야기할 수 있어도 다른 사람이 하는 말을 알아듣지 못하면

《김수연-0∼5세 말걸기 육아의 힘》(예담프렌즈,2015) 4쪽


  ‘문장(文章)’은 ‘글월’로 손보면 되는데, 이 대목에서는 ‘말’이나 ‘긴 말’로 손보면 한결 낫습니다. ‘상대방(相對方)’은 ‘상대편(相對便)’을 뜻한다 하고, ‘상대편’은 “짝을 이루는 사람”을 뜻한다 합니다. “상대방의 말”은 “상대가 하는 말”이나 “옆사람 말”이나 “다른 사람이 하는 말”로 손질합니다. ‘이해(理解)하다’는 ‘알아듣다’나 ‘알아차리다’로 손봅니다.


0∼5세 아이는 아직 문장의 의미를 정확하게 파악하기 어려우므로

→ 0∼5세 아이는 아직 말뜻을 제대로 헤아리기 어려우므로

→ 0∼5세 아이는 아직 말뜻을 똑똑히 알기 어려우므로

《김수연-0∼5세 말걸기 육아의 힘》(예담프렌즈,2015) 4쪽


  “문장(文章)의 의미(意味)”는 일본 말투입니다. 한국말은 이렇게 안 쓰지요. 한국말은 ‘말뜻’이나 ‘글뜻’이라고 쓰지요. “정확(精確)하게 파악(把握)하기”는 “제대로 알기”나 “똑똑히 살피기”나 “낱낱이 헤아리기”나 “오롯이 알아차리기”로 손질해 줍니다.


여름의 길이가 / 꽤 길었나 봅니다

→ 여름이 / 꽤 길었나 봅니다

→ 여름은 길이가 / 꽤 길었나 봅니다

《김철순-사과의 길》(문학동네,2014) 32쪽


  이 글월을 보면 “길이가 길었나” 꼴입니다. 이처럼 써도 나쁘지 않습니다. 다만, “여름이 꽤 길었나 봅니다”처럼 쓰면 한결 단출하면서 뜻이 또렷합니다. 이러면서 ‘-의’는 저절로 사라지지요. 4348.10.25.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말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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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름벼리 누나가 밀수세미 챙겼어



  빨래터를 치우러 가는 가을 한낮. 사름벼리는 동생이 쓸 밀수세미를 챙겨 준다. 산들보라는 누나가 챙겨 준 밀수세미를 기쁘게 받는다. 자, 그러면 이제 다 함께 빨래터 물이끼를 걷고 물놀이를 하러 가 볼까. 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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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들보라는 이 모자가 좋아



  저녁에 자전거마실을 하려면 모자랑 장갑을 챙긴다. 두 아이한테 어떤 모자를 씌울까 하고 살피며 하나씩 꺼내어 머리에 씌운다. 산들보라는 양 모자가 좋단다. “나는 양이네. 너(누나)는 뭐야?” 하면서 빙그레 웃기도 한다. 모자에 여러 가지 무늬를 넣으려는 생각은 누가 했을까. 모자며 옷이며 여러 가지 무늬로 곱게 가꾼 사람들은 참으로 멋지구나 하고 새삼스레 깨닫는다. 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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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프터 어스
M. 나이트 샤말란 감독, 제이든 스미스 외 출연 / 소니픽쳐스 / 2013년 10월
평점 :
품절


다음 지구 (애프터 어스)

After Earth, 2013



  2013년을 사는 사람으로서 3072년을 생각할 수 있을까? 2015년을 사는 사람이라면 3074년을 생각할 수 있을까? 앞으로 한두 해쯤 뒤가 아닌 천 해쯤 뒤를 생각할 수 있을까? 오늘날 과학기술 물질문명은 하루가 다르게 발돋움한다고 하는데, 백 해나 오백 해나 천 해쯤 뒤에는 어떤 사람이 어떤 삶을 지을까? 천 해쯤 뒤에도 바보스러운 전쟁이나 따돌림 따위가 그대로 있을까? 천 해쯤 뒤에도 멍청한 입시지옥이나 졸업장 따위가 고스란히 있을까? 천 해쯤 뒤에도 사람들은 돈을 더 많이 벌려고 쳇바퀴를 돈다든지, 정치 우두머리는 사람들을 어리석게 뒤흔들려는 짓을 안 멈추고 할까?


  영화 〈다음 지구(애프터 어스 After Earth)〉를 본다. ‘천 해를 어떻게 사느냐’라든지 ‘천 해 뒤를 어떻게 아느냐’ 따위를 묻지 않고 영화를 본다. 바로 오늘 이곳에서 영화를 본다. 도무지 사람이 살 수 없는 멍청한 별이 된 지구를 그리지 않고 영화를 본다. 사람이 빼곡하다가 사람 그림자를 더는 찾아볼 수 없는 조용한 별이 된 지구는 더 생각하지 않으면서 영화를 본다.


  이 지구는 왜 지구일까? 사람이 살기에 지구일까? 사람만 살기에 지구일까? 사람이 안 살아도 지구는 지구라고 할 수 있을까? 사람이 살지 않는 지구하고 사람이 사는 지구는 무엇이 얼마나 다를까?


  사람이 빼곡하게 살던 지구에서 사람이 모조리 죽어서 사라져야 한 까닭은 무엇일까? 아마 이 대목을 모를 만한 ‘현대 문명인’은 없으리라. 지구에서 오직 사람만 살겠다면서 다른 이웃을 모조리 죽여 없애는 짓을 하니까 사람조차 지구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 풀 한 포기를 함부로 뽑고, 벌레 한 마리를 함부로 밟으며, 냇물이나 멧자락을 함부로 파헤치기 때문에 지구에서 사람이 살 수 없는 앞날이 다가온다.


  파리 한 마리가 무엇을 할까. 지렁이 한 마리가 무엇을 할까. 파리가 사라지거나 지렁이가 없는 지구에서 사람은 며칠이나 살아남을 수 있을까. 개미가 사라지거나 나비나 참새가 없는 지구라면 이런 곳에서 사람은 며칠이나 살아남을 만할까.


  영화 〈다음 지구〉에 나오는 아이는 스스로 두려움이 없다고 외치지만, 아직 스스로 두려움을 떨치지 못 한 어린 숨결이다. 왜 그런가? 두려움이 없는 사람은 “난 두렵지 않아!” 하고 외치지 않기 때문이다. 두려움이 아직 가득하기에 “난 두렵지 않아!” 하고 외치고 만다. 두려움이 없는 사람은 ‘두려움이 없기를 바라는’ 생각이 아니라 ‘스스로 앞으로 무엇을 하려는가’ 같은 생각을 한다.


  영화 〈다음 지구〉에 나오는 아이는 어떻게 괴물을 물리칠 수 있었을까? 이 영화에 나오는 아이는 왜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하는 나날을 보내야 했을까? 괴물을 물리친 까닭은 마음속에 ‘두려움’이나 ‘두려움을 없애겠다는 생각’이 아니라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나 ‘내가 사랑할 삶은 무엇인가’ 같은 생각을 품었기 때문이다. 한 시간 반 즈음 되는 영화는 바로 이 대목을 우리한테 들려주려고 한다. 지구를 살리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지구를 살릴 생각’이 아니라 ‘오늘 내가 사는 이 보금자리를 사랑으로 가꾸면서 기쁘게 웃을 꿈’을 짓겠다는 생각을 하면 된다. 4348.10.24.흙.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영화읽기/영화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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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나, 비닐봉지를 꿴 마을고양이



  저녁에 마당에서 살림을 건사하려는데 돌울타리 쪽부터 부시럭거리는 소리가 나더니, 목에 노란 비닐봉지를 꿴 마을고양이가 우리 집으로 들어온다. 얘, 너 어디에서 그런 노란 비닐봉지를 목에 꿰고 말았니? 집고양이가 아닌 마을고양이인 터라 사람 손길을 타려 하지 않으니 어찌할 길이 없다. 이 아이들은 우리 집에서 먹고살 뿐 아니라 바로 코앞에까지 오락가락할 수 있기는 하되 손타기는 도무지 하지 않는다. 아이들이 마당에서 놀든, 내가 마당에 빨래를 널거나 걷든, 이 고양이들은 서로 물끄러미 쳐다보는데, 이런 일이 생겨도 손을 쓰지를 못 한다. 부디 나뭇가지나 풀포기에 걸려서 비닐봉지가 찢어져 주기를 바랄밖에 없다. 고양이가 스스로 비닐봉지를 뜯어서 뗄 수 있을까? 이튿날 아침에는 저 성가신 비닐봉지가 사라질 수 있기를, 비닐봉지 안 꿴 모습으로 만날 수 있기를, 애타게 빈다. 4348.10.24.흙.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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