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림노래 3 고무신



  나는 2004년 무렵부터 고무신을 신었습니다. 그무렵 고무신을 처음 신고 깜짝 놀랐습니다. 요새는 고무신 한 켤레에 오천 원인데, 그무렵에는 삼천 원이었고, 몹시 가벼우면서 말랑거릴 뿐 아니라, 틈틈이 빨고 곧 말려서 싱그럽게 신기에 훌륭했어요. 고무신 한 켤레를 열한 달쯤 신으면 닳아서 새 고무신을 샀는데, 다른 어느 신보다 이보다 값이 적게 들지 않는다고 느껴요. 아버지를 따라 두 아이도 고무신 꿰기를 즐깁니다. 아이들도 알 테지요. 고무신이 얼마나 꿰기 쉽고 땅바닥을 깊이 느끼도록 이끌며 빨아서 발을 말리기에도 좋은가를. 우리는 어디에서나 고무신 차림으로 신나게 뛰어놀고 흙을 밟으며 풀내음을 맡습니다. 4348.10.26.달.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살림노래/삶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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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슈올레 - 놀멍 쉬멍 먹멍 일본 규슈 걷기 여행
손민호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15년 9월
평점 :
절판


책읽기 삶읽기 212



두 다리로 걸을 때에 비로소 여행이 된다

― 규슈올레

 손민호 글·사진

 중앙북스 펴냄, 2015.9.1. 15000원



  제주에서 ‘올레길’이 관광상품으로 생긴 뒤 크게 사랑받으면서 온 나라 곳곳에 ‘걷는 관광’이 널리 퍼졌습니다. 그런데, ‘제주 올레길’이 따로 없었어도 제주로 나들이를 다니는 사람 가운데 적잖은 이들은 두 다리나 자전거로 제주를 돌았습니다. 2007년에 관광상품 ‘올레길’이 생기기 앞서까지 사람들이 조용히 ‘걷는 나들이’를 즐겼다면, 2007년에 관광상품이 생기고 나서는 여러 가지 ‘코스’가 생겨서 이러한 코스를 따라서 움직이는 물결이 넘실거립니다. 이제는 예전처럼 조용한 ‘걷는 나들이’를 누리기 어렵다고 할 만합니다.


  곰곰이 돌아보면, 지난날에 여행을 다니던 사람들은 으레 걸었습니다. 때때로 버스나 기차를 타기도 했지만, 지난날에는 여행을 다니던 사람들은 걸어야 제대로 여행을 한다고 여겼습니다.


  왜 그러한가 하면, 걷지 않고서는 마을도 자연도 풍경도 도심도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관광버스에 탄 채 이 지점에서 저 지점으로 달려서는 기념품 장만하는 일밖에 못 합니다. 관광버스에서 내려서 이곳부터 저곳까지 천천히 걷거나 빙글빙글 에돌아서 다닐 때에 비로소 마을도 자연도 풍경도 도심도 알 수 있습니다.



규슈올레를 처음 고안한 것은 일본의 관광 당국이었지만, 길에서 손님을 맞는 건 보통의 일본 사람이다. (8쪽)


도심 올레의 특징은 아기자기한 재미에 있다. 입이 떡 벌어지는 대자연의 위용 같은 건 없다. 대신, 여기저기 두리번거리다 보면 소소한 재미를 찾을 수 있다. (26쪽)



  ‘제주올레’는 일본으로 건너가서 ‘규슈올레’를 태어나게 합니다. 이러한 이야기가 《규슈올레》(중앙북스,2015)라고 하는 책에 찬찬히 담깁니다. 한국 제주에서 크게 사랑받는 관광상품을 일본에서 받아들인 셈입니다. 그런데, 일본은 굳이 제주올레를 받아들이지 않더라도 오랫동안 이어온 ‘걷는 나들이 문화’가 있습니다. 일본에서 애써 제주올레를 받아들이려 했다면, 일본 사회에서 오래도록 여러 사람들이 누린 수수한 문화를 넘어서, 이를 관광상품으로도 ‘개발’하려는 생각 때문이라고 해야겠지요. 오늘날에는 관광이 ‘문화상품’이기도 하니까요.



규슈를 남북으로 관통하는 고속도로와 바투 붙은 교통의 요지를 한국 여행사 누구도 말하지 못했다. 단 한 명도 이날 이전에 야메시에 들어온 적이 없었던 것이다. 시쳇말로 ‘일본 관광으로 먹고산다’는 여행사 사람에게도 야메는 지나치는 도시였다. (55쪽)


깊은 숲을 헤집는 소위 산중 올레가 아니어서 가라쓰 코스의 흙길은 반갑다. 가라쓰시 공무원들의 노고가 길에서 팍팍 느껴졌다. (96쪽)




  여러 가지를 한자리에 놓고 헤아려 봅니다. ‘관광상품’하고 ‘문화상품’하고 ‘관광산업’하고 ‘문화산업’을 가만히 헤아려 봅니다. 둘레를 구경하거나 삶을 짓는 이야기를 상품이나 산업으로 바라보려고 하는 오늘날 사회를 곰곰이 헤아려 봅니다. 그동안 상품이나 산업이라고 한다면 버스나 비행기나 기차나 배를 써서 사람들을 한꺼번에 싣고 나르면서 기념품을 사도록 이끄는 몸짓이었다고 할 만합니다. 이러다가 이러한 상품이나 산업이 ‘기념품은 없어도 되는’ 흐름으로 바뀌면서 ‘관광객 스스로 여러 시간을 걷거나 하루를 꼬박 걷는’ 모습으로 나타난다고 할 만합니다.


  여느 때에 잘 안 걷던 사람은 ‘아무리 멋진 올레길’이라 하더라도 두어 시간을 걷기 어렵습니다. 그저 수수하고 판판한 길이라 하더라도, 여느 때에 첨단 도시문명 혜택을 받으며 살던 사람들은 이 길을 잘 못 걷습니다.


  걷기가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은 걷다가 지치지요. 걷다가 지치면 ‘아무리 멋진 올레길’을 걷더라도 둘레를 살피지 못합니다. 더군다나 《규슈올레》에 나오는 일본 규슈 올레길은 ‘가게 하나 나오지 않고 여러 시간 걷는 길’이 꽤 많다고 할 만합니다. 마실거리랑 먹을거리를 가방에 짊어지면서 여러 시간을 걷다가 마땅한 곳에 자리를 깔고 앉아서 도시락을 먹는 나들이가 될 텐데, 이러한 관광상품은 도시사람한테 얼마나 기쁘거나 새로운 나들이가 될는지 궁금합니다. 아니, 이런 나들이는 예부터 누구나 들놀이나 바닷놀이를 다니면서 수수하게 즐겼어요. 관광상품이 없었어도 다니던 들놀이요, 문화상품이 아니어도 누리던 바닷놀이입니다.



벳푸 코스는 흙을 밟는 길이다. 지난 계절의 낙엽을 밟는 길이고, 보드라운 흙을 디디는 길이다. 흙을 밟는 길이어서 발이 편한 길이다. 일행 중 일부는 오르내리는 구간이 많아서 힘들었다고 했지만, 나로서는 발이 편해서 힘든 줄을 몰랐다. (111쪽)


언제부터인가 사람들 사이에서 잊힌 마을, 외부인의 출입이 거의 없어 갇힌 마을, 젊은이는 떠나고 어르신만 남아 허전한 마을이 오쿠분고 코스가 거치고 들르는 마을이다. (118쪽)


  여느 때에 늘 매캐한 하늘과 우중충한 건물과 시끄러운 자동차한테 휩쓸려서 지내야 하니까, 모처럼 맑은 하늘과 푸른 숲과 싱그러운 새소리를 들을 수 있는 나들이가 참으로 재미있다고 여길 수 있습니다. 다만, 새와 풀벌레가 노래하는 소리도, 이러한 소리가 익숙할 때에 노래로 받아들입니다. 흙내음이나 풀내음도 이러한 내음이 익숙할 때에 싱그럽다고 받아들여요. 방아깨비나 나비 애벌레조차 징그럽다고 여길 수 있으니까요.


  이리하여, 두 다리로 걸을 때에 비로소 여행이 됩니다. 어려운 이야기는 아닙니다. 두 다리로 걷지 않을 때에는 여행이 안 됩니다. 그리고, 두 다리로 걷다가 한참 가만히 서거나 앉을 때에 비로소 여행이 됩니다. 두 다리로 걷더라도 마땅한 때에 멈추거나 서거나 쉬거나 머무를 줄 모른다면 여행이 안 됩니다. 이곳에서 저곳으로 고속도로를 타고 휭 달리는 일을 놓고 여행이라 하지 않아요. 이 자리에서 저 자리로 비행기를 타고 쌩 가로지르는 일을 가리켜 여행이라 하지 않습니다. 걸어서 둘레를 살필 적에도 마냥 걷기만 하고 걸음을 멈추지 않으면 여행이 될 수 없습니다.


  여행이 아닌 삶자리에서도 이와 같다고 느껴요. 두 다리로 걸으면서 일할 때에 비로소 삶이 되지 않을까요? 두 다리로 걸으면서 놀 때에 비로소 기쁨이 되지 않을까요?


  바람을 마실 때에 여행이 되듯이, 바람을 마시는 자리가 즐거운 일자리가 아닐까요? 햇볕을 쬐고 풀내음을 맡으면서 숲을 바라볼 때에 여행이 되듯이, 햇볕이랑 풀내음이랑 숲이 어우러진 곳에서 일할 때에 기쁜 삶이 아닐까요?




길을 걷다 보면 구주연산 산마루가 눈앞에 펼쳐진다. 고코노에·야마나미 코스는 구주연산을 오르는 길이 아니라 구주연산을 바라보며 걷는 길이다. (135쪽)


야트막한 언덕을 내려오다 걸음을 멈췄다. 풍경에 눌려 걸음을 멈춘 적이 있으면 무슨 뜻인지 알 터이다. 문자 그대로 그림 같은 장면이 앞을 가로막았다. (168쪽)



  예부터 사람들은 누구나 늘 걸었습니다. 권력자는 걷기를 싫어해서 일꾼을 부려 가마에 탄다든지 뭐에 얹혀서 간다든지 했습니다만, 땅을 밟으면서 걷지 않는 사람은 땅을 알 수 없습니다. 두 다리로 땅을 밟아야 땅을 알고, 땅을 알 때에 땅을 일구는 슬기를 얻으며, 땅을 일구는 슬기를 얻기에 이웃을 사랑하는 기쁜 사랑을 압니다.


  걸으면서 생각하고, 생각을 가꾸면서 삶을 짓습니다. 삶을 지으며 생각을 가꾸면서 다시 걷습니다. 부엌하고 마당을 오가면서 걷습니다. 뒷간에 볼일을 보러 갈 적에도 걷고, 텃밭에서 남새를 뜯을 적에도 걷습니다. 마을 한 바퀴를 걷고, 숲으로 나무를 보러 걸어갑니다.


  아이들은 걸음마를 떼면서 까르르 웃지요. 어른도 이와 같아요. 어른들도 날마다 새롭게 걸음을 떼면서 새롭게 일하고, 새롭게 살림을 보듬으며, 새롭게 이웃하고 오순도순 이야기꽃을 피웁니다.



히라도 코스도 재미가 쏠쏠한 올레길이다. 세월의 흔적이 역력한 거리를 거니는 재미도 있고, 가와치 언덕에 올라 바닷바람 맞으며 노니는 재미도 있다. (254쪽)



  올레길이 아니어도 걸으면 재미있습니다. 올레길이 생겼어도 굳이 올레길로만 걸어야 할 까닭이 없습니다. 그리고, 올레길도 걸어 보면 재미있지요.


  이 길도 걷고 저 길도 걷습니다. 올레길로 ‘뽑힌’ 곳만 재미있을 수 없습니다. 마을에 있는 여느 살림집에서 여느 마을 빵집 사이를 걷는 길도 재미있습니다. 이웃집으로 나들이를 가려고 걷는 길이 재미있습니다. 서로서로 천천히 걸어서 오가고, 마을사람 누구나 이 집 저 집 찬찬히 걸어서 만나는 길이 재미있습니다.


  손민호 님이 엮은 《규슈올레》를 보면, 규슈에 새로 생긴 여러 올레길을 길그림이랑 사진으로 꼼꼼하게 잘 알려줍니다. 규슈로 나들이를 간다면 이 올레길을 한 번쯤 걸을 만하리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 올레길에 없는 여느 골목길을 느긋하게 걸을 만할 테고, 책이나 관광상품에 없는 수수한 마을길을 노래하면서 걸을 만하리라 생각해요. 우리가 걷기에 길이 되고, 우리가 길을 걸으며 노래하기에 기쁜 나들이가 됩니다. 4348.10.26.달.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에서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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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방을 메자 (사진책도서관 2015.10.23.)

 ― 전라남도 고흥군 도화면 동백마을, ‘사진책도서관 함께살기’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을 다니지 않았고, 초등학교도 다니지 않는 여덟 살 큰아이한테는 ‘가방 메기’가 그리 익숙한 일은 아니다. 이제껏 가방을 메고 다닌 일이 매우 드물다. 바깥마실을 멀리 다닐 적에 드문드문 가방을 멨으나, 큰아이는 홀가분하게 달리면서 뛰고 놀려고 할 적마다 가방을 아버지한테 맡겼다. 맨몸으로 폴짝폴짝 뛰면서 달리는 기쁨을 한껏 누리면서 살았다.


  문득 생각해 보면, ‘무거운 가방’은 아이들이 홀가분하게 뛰놀지 못하도록 가로막는구나 싶다. 나도 어릴 적에 ‘가방을 벗어야’ 놀았지, 가방을 멘 채 놀지 못했다. 가방을 멘 채 노는 아이들은 ‘놀이와 공부’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셈이다. 놀고는 싶으나 집이랑 학교에서 받는 짐 때문에 차마 가방을 벗지 못하고 뛰다가 땀으로 흠뻑 젖고, 아무래도 성가시니까 끝내 가방을 휙 집어던진다.


  가방이 없어야 논다. 가방을 메면 놀지 못한다. 그렇다고 아이들이 ‘공부는 아예 안 하고 놀기만 하면 된다’는 뜻이 아니다. 배울 때는 배우되 홀가분하게 뛰놀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오늘날 이 나라 아이들을 보면 ‘하루 가운데 공부해야 하는 시간’이 지나치게 길다. 하루 가운데 홀가분하게 놀 틈이 얼마 없다. 게다가 아이들이 놀려고 하더라도 넉넉한 빈터가 없다. 손바닥만 한 아파트 놀이터에서 무슨 놀이를 할까? 인조잔디가 깔린 운동장에서 무슨 놀이를 하나? 흙바닥이 아니라서 돌멩이로 금을 그리면서 온갖 놀이를 할 수도 없는 인조잔디 운동장이다. 인조잔디 운동장에서는 넘어지면 더 크게 다칠 수 있다.


  나는 한 가지를 더 헤아려 본다. 아이들은 그저 마냥 놀아도 된다. 아이들하고 함께 살면서 지켜보니, 이 아이들은 열 살 나이까지 실컷 놀아도 된다. 그리고 우리 아이들이 열 살 나이가 될 때에는 스무 살 나이까지 실컷 놀아도 된다고 느낄 수 있고, 이 아이들이 스무 살이 되면 서른 살이나 마흔 살까지 마음껏 놀아도 된다고 느낄 만하리라 본다.


  어떻게 놀기만 하면서 사느냐고 물을 분이 있다면, 아이들은 차츰 철이 들면서 ‘놀이와 일과 배움’을 스스로 알맞게 갈무리하는 슬기와 기운이 늘어난다고 느낀다. 아이들은 스스로 놀고 스스로 일하며 스스로 배운다. 굳이 옆에서 억지로 ‘나이에 맞추어 밀어붙여야’ 하지 않는다. 모든 아이는 다 다르기 때문에 다 다른 나이에 다 다르면서 저마다 씩씩하게 제 일이랑 놀이랑 배움을 찾고 누린다. 어버이는 아이가 바라거나 물을 적에 곧바로 한손을 내밀어서 어깨동무를 하고 함께 배울 수 있도록 기다리거나 지켜보면 된다.


  요새는 도서관에 오갈 적에 큰아이더러 가방을 메라고 이른다. 다만, 억지로 시키지는 않고 틈틈이 말을 한다. 큰아이가 깜빡 잊고 가방을 안 메면? 그러면 나는 큰아이 책이나 장난감을 하나도 안 들어 준다. 도서관에 ‘책을 보러’ 가고, 또 도서관에서 ‘집으로 가져와서 보고픈 책이 있다’면, 또 ‘집에 있는 책을 도서관으로 갖다 놓고 싶다’면, 이제 여덟 살 큰아이는 스스로 가방을 메고 챙길 줄 알아야 한다고 느낀다. 다만, 애써 시키지는 않고 곧잘 이야기를 들려준다. ㅅㄴㄹ



* 도서관 나들이 오시려면 먼저 전화하고 찾아와 주셔요 *

* 사진책도서관(서재도서관)을 씩씩하게 잇도록 사랑스러운 손길을 보태 주셔요 *

☞ 어떻게 지킴이가 되는가 : 1평 지킴이나 평생 지킴이 되기

 - 1평 지킴이가 되려면 : 다달이 1만 원씩 돕거나, 해마다 10만 원씩 돕는다

 - 2평 지킴이가 되려면 : 다달이 2만 원씩 돕거나, 해마다 20만 원씩 돕는다

 - 평생 지킴이가 되려면 : 한꺼번에 200만 원을 돕거나, 더 크게 돕는다

* 도서관 지킴이 되기 : 우체국 012625-02-025891 최종규 *

* 도서관 지킴이가 되신 분은 쪽글로 주소를 알려주셔요 (010.5341.71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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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ace 2015-10-26 1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들은 자연이다˝란 책을 읽고 궁금한 것이 무척 많았어요.
이런 부모들은 어떻게 아이를 학교에 보내지 않을 결정을 할
수 있었던 것일까? 대한민국 국민 대부분이 하는 일을
이들은 어찌하여 거부하는 것일까? 그 첫 번째 근거는 무엇이었을까?
아이들과는 의논이 되었던 것일까? 어느날, 문득, 아이가 학교에
가고 싶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내 아이들의 인생이 걸린 문제인데
진정 본인들의 결정에 아이들의 행복이 있다고 확신하는가?...등등

<‘놀이와 일과 배움’을 스스로 알맞게 갈무리하는 슬기와 기운이 늘어난다>라는
말이 모든 걸 설명해 주는 듯 합니다. ˝그렇구나...˝라고 끄덕이게 되네요.
누구나 할 수 있는 결정은 아닌데, 참 대단하십니다. 그런 확신과 결단이
부러워요.^^

파란놀 2015-10-26 13:47   좋아요 0 | URL
국민 대부분이 한대서 모든 사람이 꼭 해야 한다면..
그건 바로 독재라고 느껴요.

국민 대부분이 텔레비전을 집에 들이고 연속극이나 온갖 방송을 본대서
우리 아이들도 보아야 한다면
그 또한 독재일 테지요.

아이들이 즐겁게 뛰놀면서 사랑스레 자라서
아름다운 꿈을 스스로 짓기를 바라기에
`오직 도시바라기 입시교육 직업교육`만 하는
제도권 학교에
우리 아이들을 보낼 뜻이 하나도 없답니다.
아이들은 참말 아이들 스스로 아름답고 씩씩하게 자라요 ^^
 



네가 놀던 자국



  빨래터 물이끼를 걷으러 가는 길에 대문 앞에 뭔가 있는 모습을 본다. 가만히 바라보니 장난감이다. 그래, 산들보라가 놀다가 예 놓고 갔구나. 대문 앞 고샅에서 장난감을 밀면서 놀다가 장난감은 그대로 둔 채 ‘마을 한 바퀴 달리기’를 하는구나. 이 마을에는 우리 집에만 아이가 있으니, 이 마을에는 아이들 장난감을 훔칠 사람이 없으니, 이 마을에서는 아이들한테 어디나 다 놀이터가 될 수 있으니, 이 마을에서는 이 아이들이 못 할 만한 놀이가 없으니, 이렇게 놀 만하지.


  아이들이 지나가는 자리는 언제나 자국이 남는다. 놀던 자국이 남는다. 이 자국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그냥 지나칠 수 있고, 아이를 나무라며 얼른 치우라 할 수 있으며, 조용히 어버이 손길로 치워 줄 수 있다. 어떻게 하든 아이들은 모두 느끼고 알면서 배우리라. 아이들이 입고 벗은 옷을 어버이가 언제나 빨래를 하듯이, 아이들이 먹고 둔 그릇을 어버이가 언제나 설거지를 하듯이, 아이들이 놀고 남긴 장난감을 넌지시 치워 주거나 갈무리해 줄 수 있지. 4348.10.26.달.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살림노래/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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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15-10-26 07:36   좋아요 0 | URL
대문밖 풍경이 예술입니다

파란놀 2015-10-26 09:44   좋아요 0 | URL
네, 딱 어제까지 이와 같았어요.
엊저녁에 대문 앞 논은 가실을 마치셔서
이제는 누르께한 빈 들만 가득합니다 ^^
 

산들보라도 달리기가 재미있어



  다섯 살이 무르익는 산들보라가 요즈음 달리기 재미에 푹 빠졌다. 아버지나 누나가 함께 붙어 주지 않아도 혼자서 마을 한 바퀴를 달린다. 이내 마을 두 바퀴를 달리고, 곧 세 바퀴도 네 바퀴도 달린다. 혼자서 씩씩하게 달린다. 땀으로 온몸을 흠뻑 적시면서 논다. 어때? 바람을 가르면서 네 다리가 불끈불끈 자라는 느낌을 알겠지? 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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