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배움자리 67. 둘이 짓는 그림



  큰아이하고 둘이 그림노래를 짓는다. 나는 글을 쓰고, 아이는 그림을 그린다. 8절 그림종이에 둘이 함께 이야기를 짓는다. 문득 떠올라서 이 놀이를 해 보는데 무척 재미있다. 아이도 재미있어 할까? 아이도 재미있어 하기에 신나게 그림을 그려 줄 테지. 다만, 아이가 그림을 그리는 빠르기를 아버지가 글을 쓰는 빠르기가 좇지 못한다. 나는 글 한 꼭지를 쓰자면 며칠이 걸리기도 하는데, 아이는 십 분 남짓이면 석석 그림을 다 그린다. 둘이 함께 그림노래를 지으며 생각한다. 아이 빠르기를 좇을 생각은 하지 말고, 우리가 오늘 이곳에서 누리는 이야기를 찬찬히 돌아보면서 하나하나 적어 보자고. 그러면 하루에 두어 가지 그림노래도 빚을 만하리라 생각한다. 4348.10.31.흙.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집놀이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아이를 학교에 안 보내기



  내가 우리 아이를 학교에 안 보낼 수 있는 까닭은 내가 학교를 다녀 보았기 때문이고, 내가 학교를 그만두어 보았기 때문이다. 학교가 무엇을 하는지 똑똑히 겪었기에 굳이 아이를 학교에서 시달리도록 할 마음이 없다. 다만, 한국 사회에서 거의 모든 사람이 아이를 학교에 보낸다면, 거의 모든 사람은 그 결대로 잘 하면 된다. 모든 어버이가 모든 아이를 다 학교에 보내지 않는다. 아이를 학교에 안 보내는 어버이는 저마다 학교가 어떤 곳인지 알기 때문이요, 아이하고 누리면서 함께 가르치고 배우는 삶이 어떠한 기쁨인지 알기 때문이라고 느낀다.


  우리 집에는 텔레비전이 없다. 집에 텔레비전이 없다고 하면 놀라는 사람이 아주 많지만, ‘우리 집에도 없어요’ 하고 말하며 빙그레 웃는 이웃이 더러 있다. 한국에서 텔레비전 안 보는 집도 제법 있다. 1퍼센트가 될는지 1퍼센트도 안 될는지 모르나, 텔레비전을 집에 안 두는 집이 제법 있듯이, 아이와 도란도란 조용히 삶을 짓는 꿈을 키우는 사람도 제법 있따.


  내 마음은 늘 하나이다. 아이들이 즐겁게 뛰놀면서 사랑스레 자라서 아름다운 꿈을 스스로 짓기를 바란다. 나도 아이들 못지않게 내 즐거움을 찾아서 사랑으로 삶을 지을 수 있는 길을 걸어가려고 한다. ‘오직 도시바라기 입시교육 직업교육만 하는 제도권 학교’에 우리 아이들을 보낼 뜻이 하나도 없다. 아이들은 참말 아이들 스스로 아름답고 씩씩하게 자란다. 4348.10.31.흙.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Clou:Do 2015-10-31 08:14   좋아요 0 | URL
아!!
아이들을 학교에 안보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어요. 아니면 대안학교로 보내고 싶다던가!! 하지만 아이들을 학교에 보낼 수 밖에 없는 이유는 부모들이 그만큼 사회에 시달리고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도 해봅니다. 부모가 먼저 자유로울 수 있어야 아이들도 자유를 맛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듭니다.

파란놀 2015-10-31 09:09   좋아요 0 | URL
그러니까 우리 사회는 사람들이 자유롭지 못하게 얽어매기에
모두 학교와 유치원에 아이를 안 보내면 안 된다는 듯이
길들어요.

그리고, 예방주사도 반드시 안 맞히면 안 된다는 생각에 사로잡히지요.
아이들이 반드시 대학교 졸업장을 따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히고

스스로 자유롭게 삶을 짓고
스스로 집짓기와 옷짓기와 밥짓기를 배우며
스스로 몸을 다스리는 길을 배우는 모든 길을
가로막으면서 자유가 사라지는구나 싶어요.
 
목소리의 형태 6
오이마 요시토키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5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만화책 즐겨읽기 560



기나긴 삶을 어떻게 가꾸겠니

― 목소리의 형태 6

 오이마 요시토키 글·그림

 김동욱 옮김

 대원씨아이 펴냄, 2015.9.30. 5500원



  만화책 《목소리의 형태》는 1권부터 5권까지 ‘너라면 어떻게 하겠니?’ 하고 묻습니다. 이러한 자리에서 ‘너라면 어떻게 하겠니?’ 하고 물어요. 그러니까 ‘나라면 어떻게 할까?’ 하고 묻는 말이 아닙니다. 이러한 자리에서 ‘나라면’이 아닌 ‘너라면’이라고 하는 마음이 되어서 묻습니다. 살아가는 보람을 느끼지 못하는 자리에서 너라면 어떻게 하겠느냐고 묻고, 살아가는 보람을 느끼지 못하다가 학교에서 여린 동무를 따돌리는 재미를 느꼈을 적에 너라면 어떻게 하겠느냐고 묻지요. 이러다가 하나를 더 물어요. 네가 따돌림을 받는 아이라면, 또 네가 따돌림을 하는 아이라면, 너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수 있겠느냐고 묻습니다.



‘하느님 제발 조금만 더 나한테 힘을 ㅈ세요. 더 이상 뭐 싫은 게 있다 해서 도망치고 그러지 않을게요. 니시미야 핑계 안 댈게요. 내일부터 애들 얼굴 제대로 볼게요. 내일부터 애들 목소리도 제대로 들을게요. 내일부터 제대로 살게요.’ (15쪽)


‘아아, 그때 낸 상처, 아직 남아 있었구나. 나, 제대로 사과했던가? 미안. 미안해, 니시미야. 이제 와서 그래 봤자 늦었겠지만. 아직도 화났어? 아, 맞다. 날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어봐 둘 걸 그랬어.’ (19쪽)



  마지막 7권을 앞둔 《목소리의 형태》는 이제 물음을 바꿉니다. 그동안 ‘너라면 어떻게 하겠니?’ 하고 물었으나, 너한테 아무리 물어도 아무 실마리가 나올 수 없구나 하고 깨닫습니다. 다른 사람한테 꼬치꼬치 캐묻거나 따질 노릇이 아니라, 나는 바로 나한테 물어보아야 비로소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는 대목을 알아차립니다.


  그런데, 만화책 《목소리의 형태》에 나오는 앳된 아이들은 아직 아무것도 모릅니다. 고등학교를 두 해째 다니기는 하되, 어릴 적부터 유치원과 학교에 다니는 일 빼고는 따로 해 본 일이 없는 앳된 아이들로서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는지 모릅니다.


  더욱이, 이 만화책에 나오는 앳된 어른도 똑같아요. 아이들보다 나이는 더 들었어도 그동안 스스로 가꾸려 하는 삶이 무엇인가를 돌아볼 겨를이 없었습니다. 바쁘기도 했고, 힘들기도 했으며, 고단하기도 했어요. 먹고사느라 바쁘기도 했을 테지만, 아이들을 차분히 바라보면서 돌보거나 보듬을 틈을 미처 못 냈습니다.



“나오는 남의 마음을 너무 무시해!” “나왔다! 우리 니시미야 특기! 남을 이용한 공격!” “남이 아니라 친구야! 나오!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멋대로 단정 짓지 마!” (39∼40쪽)



  모든 사람은 똑같이 삶을 누립니다. 한 살을 두 해 동안 누리는 사람은 없습니다. 열 살이나 스무 살 나이를 두 해나 세 해를 누린다든지, 아니면 한두 달만 누리는 사람은 없습니다.


  모든 사람한테 열다섯 살은 꼭 한 해뿐입니다. 모든 사람한테 열일곱 살 여름은 꼭 한 번뿐입니다.


  오늘 이곳에서 너와 내가 어머니와 아들이라면, 너와 나 사이에 맺은 어머니와 아들로 꾸리는 삶은 바로 한 번뿐입니다. 두 번이나 세 번도 아닌 오직 한 번입니다. 너와 내가 이웃이나 동무라면, 너와 나 사이에 이러한 얼굴이랑 몸매랑 마음이랑 생각으로 맺는 이웃이나 동무라는 모습도 오로지 한 번입니다.



‘소용없었어. 전부 다. 하나도 전해지지 않았어. 제대로 말로 하는 게 더 나았던 걸까? ‘죽지 마’라고. 그럼 달라졌을까? 이시다, 너라면 어떻게 했을까? 난 어떡했어야 해?” (55쪽)



  물러서고 싶다면 얼마든지 물러설 수 있습니다. 눈을 감거나 고개를 돌리고 싶다면 얼마든지 눈을 감거나 고개를 돌릴 수 있습니다. 안 쳐다보아도 돼요. 모르는 척해도 되어요. 다만, 눈을 감아도 하루하루 흐르고, 고개를 돌려도 삶은 흐릅니다.


  자, 앞으로 어떻게 하면 될까요? 너한테 묻지 말고, 내가 나한테 물을 일입니다. 자, 나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요? 만화책 《목소리의 형태》에 나오는 사내 주인공 이시다는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고’ 하던 니시미야를 붙잡습니다. 니시미야는 스스로 묻고 스스로 움직였어요. 4층 툇마루에서 껑충 뛰어내렸지요. 도무지 수수께끼와 실마리를 풀 수 없어 아프고 괴롭던 니시미야는 죽음길로 가려 했습니다. 이때에 이 모습을 이시다가 보았습니다. 이시다는 멈칫하면서 니시미야가 스스로 죽으러 가는 길을 놓칠 수 있었어요. 이때에 이시다는 생각해요. 이제 스스로 생각해요.


  나도 죽고 싶지 않지만, 다른 동무도 죽지 않기를 바란다고 생각합니다. 아주 짧은 겨를이었을 테지만, 툇마루에 한손을 버티고 다른 한손으로 니시미야 손을 붙잡으면서, 이렇게 가까스로 잡아채어 버티다가 자꾸 생각합니다. 힘이 빠지는 다른 손을 끝내 버틸 수 없다고 느끼면서 생각하지요. 이제부터 제대로 살고 싶다고, 이제부터 사람답게 살고 싶다고, 이제부터 사랑을 품으며 살고 싶다고, 그야말로 1초도 안 될 겨를에 기나긴 생각을 합니다.



‘갈고닦자. 나 자신을. 계속해서 변해 가자. 앞으로도 쭉 변치 않고.’ (96쪽)



  《목소리의 형태》 첫째 권을 돌아보면, 이시다는 어릴 적에 높은 곳에서 냇물로 뛰어내리는 놀이를 날마다 즐겼습니다. 왜 이런 놀이를 즐겼을까 하고 생각해 보니, 바로 이날, 니시미야라는 아이가 4층 높이에서 뛰어내려 죽으려 할 무렵, 이 아이를 살려내고 이시다가 이 높은 곳에서 마을 냇물로 뛰어내리면 ‘죽지 않을 수 있겠네’ 하는 대목을 미리 배운 셈일는지 모릅니다. 앞날은 알 수 없으나, 스스로 앞날을 지은 셈이라고 할까요.


  기나긴 삶은 스스로 지을 때에 즐겁고, 기나긴 삶은 누구한테나 주어지며, 기나긴 삶을 사랑으로 가꾸든 미움이나 슬픔으로 차곡차곡 여미든, 모두 우리 몫입니다. 앳된 아이들은 이제 ‘스스로 생각하는 길’로 나아가려는 첫발을 뗍니다. 4348.10.31.흙.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에서 만화읽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말이랑 놀자 155] 볏짚말이



  가을에 아이들하고 논둑길을 걷는 나들이를 다니다 보면, 아이들은 으레 묻습니다. “아버지, 저기 저 똥그랗고 커다란 건 뭐야?” “뭘까? 너는 뭐라고 생각해?” “어! 아, 음, 음. 잘 모르겠어.” “그러면, 이름을 한 번 붙여 봐.” “이름? 글쎄, 음, 그래, 똥그라니까 똥그라미!” 지난해까지 이런 이야기를 아이들하고 주고받았는데, 큰아이는 만화책에서 저 논바닥에 있는 커다란 동그라미를 보았고, 제대로 이름을 알려 달라고 묻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아이들한테 다른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저기 저 논에 있는 커다란 동그라미는 ‘볏짚말이’라고 해.” “‘볏짚말이?’” “응, 볏짚을 동그랗게 말아서 볏짚말이라고 하지. 달걀말이도 달걀을 동글동글 말지.” “아하, 그렇구나.” 그런데 나는 큰아이한테 다른 이름으로 알려주려 하다가 다른 이름이 미처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영어로 무어라 가리키는 이름이 있는데 잘 안 떠올랐고, 저 커다랗게 동글동글 말아 놓은 것은 참말 볏짚을 동그랗게 말았기에 ‘볏짚말이’라는 이름이 퍼뜩 떠올랐어요. 나중에 집에 와서 찾아보니 ‘원형(梱包) 곤포(梱包) 사일리지(silage)’라는 이름을 쓴다더군요. 그러니, 동그랗게 말았으면 ‘동글볏짚말이(둥근볏짚말이)’요, 네모낳게 여미었으면 ‘네모볏짚말이’가 될 테지요. 4348.10.30.쇠.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말넋)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아이 그림 읽기

2015.10.22. 큰아이―우리 둘이 노래그림



  아버지는 글을 쓰고, 큰아이는 그림을 그린다. 그림종이 한쪽에 아이들하고 글놀이를 하는 삶노래를 가만히 적으면, 큰아이는 이 삶노래에 맞추어 그림을 새롭게 빚는다. 큰아이 마음속에서 흐르는 그림노래를 지켜보면서, 우리가 함께 빚는 이 놀이란, ‘노래그림’이네 하고 느낀다. 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그림순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