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거숭이 왕자 덜신 동화는 내 친구 47
C. W. 니콜 지음, 서혜숙 옮김 / 논장 / 2006년 11월
평점 :
절판


어린이책 읽는 삶 101



아이들은 스스로 일어서는 길을 배운다

― 벌거숭이 왕자 덜신

 C.W.니콜 글·그림

 서혜숙 옮김

 논장 펴냄, 2006.11.25.



  아침에 빨래를 해서 마당에 넙니다. 볕이 들 듯 말 듯 구름이 짙습니다. 바람이 살며시 불기에 빨래가 잘 마르겠구나 하고 생각합니다. 낮밥을 먹는 자리에서 작은아이가 문득 밖을 내다보더니 “비다! 비가 온다!” 하고 외칩니다. 이러면서 마당으로 달려나가려 합니다. 나도 부랴부랴 일어나서 마당으로 달려나가려 합니다. 작은아이는 아침에 누나하고 평상에 잔뜩 올려놓고 놀던 장난감이 비에 젖을까 보아 걱정합니다. 나는 잘 마른 빨래가 빗물에 다시 젖을까 보아 근심합니다.


  빨래를 걷으며 작은아이를 바라봅니다. 작은아이는 고 작은 손으로 장난감 자동차를 고 작은 가슴에 잔뜩 안습니다. 영차영차 소리를 내면서 맨발로 천천히 마당을 가로질러 마루로 걸어갑니다.


  문득 옛일을 더듬습니다. 이 아이들이 더 어릴 적에는 이 아이들이 마당에서 놀다가 그대로 둔 장난감도 내가 다 거두어야 했습니다. 이제 아이들 장난감은 아이들이 스스로 건사하고, 나는 우리 식구 빨래만 건사하면 됩니다.



켈토이의 콘라 왕은 사인즈나크 해적들을 격퇴하기 위해서 배를 서른세 척이나 만들도록 명령했다. 서른 척이 넘는 배를 만들기 위해서는 적어도 100년 이상 된 참나무 500그루, 붉은 느릅나무 80그루, 가장 키가 큰 산 소나무 100그루, 1000년 이상 된 거대한 전나무 다섯 그루를 온 나라의 숲에서 베어야만 했다. (20쪽)


“우리 켈토이는 항상 산과 숲의 비밀을 소중하게 보호해 왔지요. 오랫동안 이런 비밀들은 보통 사람들이나 외부 사람들이 읽을 수 없게 하려고 문자로 전하지는 않았지요. 단지 나는 단순하고 짧은 시를 노래했어요.” (73쪽)



  C.W.니콜 님이 빚은 청소년문학 《벌거숭이 왕자 덜신》(논장,2006)을 읽습니다. 이 책은 켈트 겨레가 지난날 어떠한 삶을 누렸는가 하는 이야기를 다룹니다. 어린이와 푸름이가 켈트 문화를 책으로 읽으면서 옛날과 오늘과 앞날 사이에 흐르는 너른 숨결을 슬기롭게 받아들이기를 바라는 마음을 들려줍니다. 책이름이 ‘벌거숭이 왕자’인데, 왕자 ‘덜신’은 스스로 깊은 숲에서 혼잣힘으로 씩씩하게 살아남아서 다시 왕자 자리로 돌아간 아이입니다.


  연장도 무기도 없이, 게다가 옷이랑 신조차 없이, 아주 알몸으로 궁궐에서 쫓겨나 숲에서 한 해 남짓 살아남아야 하는 덜신이에요. 그런데 이 아이는 이 징계를 기꺼이 받아들이고, 씩씩하게 맞아들입니다. 왕자가 왕 자리를 물려받지 못하도록 하려는 꿍꿍이 때문에 궁궐에서 내쫓긴 덜신 왕자인데, 덜신 왕자는 이렇게 내쫓기는 일을 나쁘게 바라보지 않아요. 스스로 딛고 일어서야 하는 징검돌 가운데 하나라고 여겼어요.



“덜신 왕자님, 이 까마귀는 재생의 여신, 모리간의 눈을 한 신의 심부름꾼이에요. 모리간은 두렵고 힘센 존재지요. 그 여신이 지금 어 이린 까마귀의 눈을 통해 당신을 보고 있어요. 나는 그것을 알 수 있어요. 그 까마귀를 잘 보살피세요. 이건 아주 중요하답니다. 엄마처럼 그 새를 보호하세요.” (44쪽)


덜신은 안장 없이 말 등에 올라타면 말의 기분을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49쪽)


“그래, 그랬었지. 그러나 이미 돌아와서 반 년 정도 산에서 지내면서 바람과 나무들이 전하는, 불쌍하게 파멸되어 가는 켈토이 소식을 듣게 되었지. 그래, 귄더, 바람과 숲과 강이 웅얼대며, 새가 지저귀며, 잎과 가지가 바삭거리며 똑같이 내게 말하더군.” (84쪽)



  청소년문학 《벌거숭이 왕자 덜신》을 읽을 어린이나 푸름이는 어쩌면 고개를 갸우뚱할 수 있습니다. ‘설마 아무것도 없는 맨손에 알몸으로 숲에서 살아남는다고?’ 하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는지 모르지요. 오늘날에는 깊은 숲이란 데가 없을 터이며, 궁궐에서 쫓겨나도 편의점이 있지 않겠느냐고 여길 어린이나 푸름이가 있을 수 있겠지요.


  그러고 보면, 오늘날 사회에서는 어린이도 푸름이도 혼잣힘으로 씩씩하게 삶을 짓도록 북돋울 만한 깊은 숲은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열다섯 살쯤 되는 푸른 넋이 제 몸을 가꿀 옷을 숲에서 얻고, 제 몸을 살찌울 밥을 숲에서 찾으며, 제 몸을 갈고닦을 모든 배움과 훈련을 숲에서 깨달으려고 하기는 어렵겠지요. 아니, 이러한 생각을 할 만한 푸른 넋은 아예 없다고까지 할 수 있습니다. 대학입시를 앞두고 시험공부로 바쁠 터이니, 무슨 옷이며 밥이며 집을 스스로 건사하느냐고 여길 만합니다.


  책을 덮고 생각해 봅니다. 청소년문학 《벌거숭이 왕자 덜신》에 나오는 덜신 왕자는 오롯이 홀로서기(자립)를 합니다. 남한테 기대지 않고, 다른 어른한테 도움을 바라지 않습니다. 스스로 살아남으려고 애쓰는 몸짓은 숲을 새롭게 바라보면서 새롭게 배우는 하루가 됩니다. 먹을거리를 찾으려고 맨발로 숲을 거닐면서 흙과 풀과 나무를 새롭게 마주하면서 배웁니다. 입을거리를 얻으려고 풀줄기를 훑고 실이 될 만한 것을 헤아리면서 그야말로 숲이 어떠한 터전인가를 새롭게 알아차립니다.



“덜신, 잘 들어라. 이제 너는 신들의 자식이며 자연의 보호를 받는다. 야생의 형제와 자매들을 관찰해서 그들의 말을 잘 듣고, 항상 그들을 존경과 예의로 대하라. 이제 너는 인간 생활의 족쇄에서 자유롭다. 단순한 것에서 위안과 행복을 찾아라. 귀 기울여 보아라.” (92쪽)


낮이 밤으로 이어져 여러 날이 지나갔다. 덜신은 항상 먹을 것에 대해 생각했고, 언제나 배고픔에 시달렸다. 덜신은 점점 더 약해지고 아주 말라서 몸이 가볍게 느껴졌다. 그 대신에 색깔이나 소리 그리고 냄새는 더욱더 선명하게 느껴졌다. 밤에는 사냥하는 박쥐의 높은 울음소리도 뚜렷하게 들을 수 있었다. (98쪽)



  돈을 많이 벌어서 살아야 홀로서기이지 않습니다. 삶을 스스로 지을 때에 홀로서기입니다. 손꼽히는 대학교에 들어가거나 손꼽히는 회사에 일자리를 얻기에 홀로서기를 한다고 하지 않습니다. 도시에서 아파트 한 채를 ‘내 집’으로 장만하기에 홀로서기라고 하지 않아요.


  연봉이 높은 회사를 다닌다 한들, 그 회사가 사라지면 어찌 될까요. 내 집인 아파트가 있다 한들, 전기가 끊어지고 물이 끊어지면 어찌 될까요. 내 자동차가 있다 한들 기름이 마르면 어찌 될까요.


  현대문명을 거슬러야 한다는 뜻이 아니라, 내 삶이 서는 자리를 읽을 수 있어야 합니다. 첨단문명이나 도시 사회에 등을 돌려야 한다는 뜻이 아니라, 우리가 먹고 입고 자는 모든 것이 어디에서 비롯하는가를 제대로 알아야 합니다. 기계나 연장을 안 써야 한다는 뜻이 아니라, 손수 짓고 빚고 가꾸고 가다듬을 줄 아는 몸짓이 되어야 합니다.



으르렁거리거나 히힝 하는 말 울음소리를 내지는 못했지만, 마음을 최대한 맑게 하고, 검은번개의 앞이마의 삼각형 표시에 마음을 집중하고, 자신의 생각을 그곳으로 투사하면, 검은번개가 반응을 보였다. (136쪽)


덜신은 바다표범과 더불어 노래하고 헤엄치며 놀았다. 그들은 친구들인데, 어떻게 그들의 신뢰를 배반할 수 있을까. (159쪽)



  아이들은 스스로 일어서는 길을 스스로 배울 수 있을까요? 나는 이 물음에 ‘네!’ 하고 말하려 합니다. 이르든 늦든, 더디든 빠르든, 아이들은 저마다 스스로 일어서는 길을 스스로 배운다고 느낍니다. 어떤 아이는 학교를 차곡차곡 다니면서 시나브로 배울 테고, 어떤 아이는 아무 학교도 안 다니면서 천천히 배울 테지요. 어떤 아이는 예순 살이나 여든 살이 되어서야 알아차려서 새로 배울 테고, 어떤 아이는 아흔 살에 눈을 감으면서도 하나도 못 배울 테지요.


  책을 읽거나 인터넷을 뒤져서 지식이나 정보를 빠르게 얻는 아이가 있을 테고, 책도 인터넷도 없이 머리와 생각과 느낌으로 차근차근 깨닫고 알아차리는 아이가 있을 테지요.


  옛사람은 텔레비전을 켜서 날씨 방송을 들어야 날씨를 알지 않았어요. 개미 움직임이나 제비 날갯짓을 보면서 날씨를 알았어요. 바람맛을 보고, 구름 흐름을 살피면서 날씨를 알았어요. 그리고, 옛사람은 식물도감을 뒤져서 풀이름을 알지 않았지요. 옛사람은 모두 어버이한테서 풀이름을 배웠고, 풀이름뿐 아니라 풀을 어떻게 다루고 건사하면서 어디에 어떻게 쓰는가 하는 대목까지 낱낱이 익혔어요.



덜신은 라그다의 손에서 하프를 받아서 부드럽게 연주를 시작했다. 그 소리는 상쾌하게 동굴에 울려퍼졌다. 즉시 덜신의 가슴에서 노래가 나왔다. 이 노래는 인간의 말도 리듬도 아니었다. 그 노래는 바람, 나무, 파도, 새 그리고 동물의 언어가 자연스럽게 서로 어우러져, 전체적으로 조화를 이루었다. (223∼224쪽)


자란 나뭇잎들은 그 자체가 말이었다. 나무들은 모든 날씨와 태양, 달, 별의 복잡한 운행을 알고 있었다. 나무들은 새들의 이야기를 알았고, 새들로부터 다른 식물이나 동물들의 움직임을 전해 들었다 … 미래는 도토리나 밤의 껍질 속에 보호되어 잠자고 있었다. (231쪽)



  우리 집 여덟 살 아이가 걸레질을 합니다. 설거지도 합니다. 곁님이 집에서 구운 빵을 썰 적에는 큰아이한테 빵칼을 맡겨 봅니다. 우리 집 다섯 살 아이도 요즈막에는 제 잠옷을 제법 잘 갭니다. 다섯 살이나 되어서야 잠옷을 개느냐고 나무랄 어른이 있을 수 있는데, 이 아이는 그동안 실컷 노느라 바빠서 옷을 개는 일에는 마음을 기울이지 않았어요. 이제는 제 옷을 스스로 건사하고 다루는 손길을 스스로 깨닫습니다.


  모든 아이가 똑같은 나이에 똑같은 지식이나 정보를 익혀야 하지 않습니다. 모든 아이가 똑같은 나이에 똑같은 교과서를 받고는 똑같은 수업을 받아야 하지 않습니다. 여덟 살이면 초등학교를 가야 하거나, 열네 살이면 중학교를 가야 하지 않아요. 나이는 그냥 나이일 뿐이에요. 혼인을 몇 살에 해야 하는 법이란 없고, 아기를 몇 살에 낳아야 하는 법도 없습니다. 누군가는 열아홉 살에 아기를 낳을 테고, 누군가는 마흔 살에 아기를 낳을 테지요. 어떤 아이는 열아홉 살에 대학교에 들어갈 수 있고, 어떤 젊은이는 스물아홉 살에 대학교에 들어갈 수 있어요.


  나이에 맞추어 어떤 지식을 아이한테 밀어붙이기보다는, 아이가 스스로 삶을 즐기고 누리고 가꾸고 사랑하고 펼칠 수 있는 길을 열도록 옆에서 따사로이 지켜보면서 도와주면 되리라 느껴요. 아이들이 저마다 스스로 일어서도록 북돋우면 되리라 느껴요.



“이 싸움은 복수를 위한 것일 뿐만 아니라, 왕자의 마음에서 화를 풀어내야만 하는 싸움이다. 그러니 결과는 나쁘지 않을 것이다.” (269쪽)



  청소년문학 《벌거숭이 왕자 덜신》에 나오는 덜신 왕자는 어떻게 될까요? 숲에서 홀로 살아남은 덜신 왕자는 몸뿐 아니라 마음까지 씩씩하게 다스리는 길을 스스로 배웁니다. 이리하여 ‘앙갚음’이란 무엇인가를 스스로 깨달았고, ‘사랑’도 무엇인가를 스스로 알아차렸어요. 새가 지저귀는 노래에 깃든 이야기를 스스로 알아듣고, 바람에 춤을 추는 나뭇가지가 들려주는 노래를 스스로 받아들입니다.


  사랑을 받으며 사랑스레 자라는 아이들이 가슴속에 꿈씨 한 톨을 곱게 심을 수 있기를 빕니다. 언제나 사랑으로 곱게 자라는 꿈씨를 가슴속에 심으면서 날마다 새롭게 깨어날 수 있기를 빕니다. 우리는 모두 맨손이고 알몸입니다. 우리는 처음부터 새롭게 태어나고, 처음부터 새롭게 하루를 열면서 기쁘게 웃을 수 있습니다. 4348.11.6.쇠.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청소년문학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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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로 읽는 책 259] 아픈 아이들



  웃으면서 자라고

  아프면서 자라니

  늘 새롭게 눈을 뜬다.



  아이들이 아픕니다. 우리 집 아이들이 아니라 온누리 아이들이 아픕니다. 이 나라 아이들이 아프고, 입시지옥으로 내달려야 하는 아이들이 아픕니다. 입시지옥을 지나가도 수많은 지옥이 새삼스레 찾아와서 몸이며 마음이며 아플 수밖에 없는 아이들입니다. 가만히 보면, 오늘 이곳에서 어른으로 사는 사람도 얼마 앞서까지 아이였고, 아픈 아이였다고 할 만합니다. 그런데, 아픈 아이로 살던 어른들은 아프면서도 씩씩하게 뛰놀며 웃었고, 아프면서도 동무끼리 서로 도우면서 어깨를 겯었어요. 오늘 아이로 지내는 숨결은 틀림없이 아프고 벅찰 텐데, 이 아이들도 곧 스스로 웃음을 터뜨리고 동무를 아끼는 손길을 내밀 테지요. 아프면서도 웃고, 웃으면서 새로 깨어나는 씩씩한 몸짓이 되어 아름다움에 눈을 뜨겠지요. 4348.11.6.쇠.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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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노래 79. 꽃밭 숨바꼭질



  아이들은 숨바꼭질을 할 적에 머리만 살짝 숙이면 제가 안 보이는 줄 아는 듯합니다. 가만히 보면, 나도 이 아이들만 하던 어린 나이에 이렇게 숨바꼭질을 했구나 싶어요. 내가 밖을 안 보면 남도 내가 안 보이리라 여겼어요. 고개를 살짝 내밀다가 히죽히죽 웃고는 살짝 고개만 숙이는 다섯 살 작은아이는 숨바꼭질을 할 적에 맨 먼저 잡힙니다. 그래서 일부러 못 찾은 척하면서 옆으로 비껴서 걷고, 꽃내음을 큼큼 맡다가 아이를 둘러싸고 빙빙 돌면 “나 여기 있는데?” 하면서 아이가 스스로 나서서 잡혀 줍니다. 사진을 찍으려면 연출을 할 까닭이 없이, 그저 놀면 됩니다. 4348.11.6.쇠.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사진말/사진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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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흥 군내버스 030. 네 뒤로 지나간다



  들길걷기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부르릉 소리가 나며 군내버스가 마을 앞으로 지나간다. 자동차를 좋아하는 시골돌이는 버스 소리를 못 듣고 앞만 보고 달린다. 억새풀 한 포기를 들고 달리며 놀 때에 훨씬 재미있기에 버스 소리를 못 들었나 보네. 두 시간에 한 번 지나가는 버스를 물끄러미 지켜보며 노는 아이가 훨씬 재미난 놀잇감을 한손에 쥐고 온몸으로 구슬땀을 내는구나. 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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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집에서 인터넷 쓰기



  이레쯤 앞서부터 우리 집 셈틀에 ‘인터넷 접속기기 대수 제한’과 얽힌 알림글이 떴다. 내가 바깥일을 보러 갈 적에 쓰는 작은 태블릿은 여느 때에 아이들이 갖고 놀거나 영화를 보는 놀잇감이 되어 주는데, 작은 태블릿에 이 알림글이 먼저 떴다. 이윽고 우리 집 셈틀 두 대에도 이 알림글이 떴다. 처음에는 그러려니 하고 지나갔다. 왜냐하면, 우리 집 셈틀이나 인터넷 단말기가 벼락에 맞아서 불에 탔을 적에 케이티 회사 일꾼이 와서 우리 집 셈틀에 붙인 공유기까지 손봐 주었기 때문이다. 케이티 회사 일꾼은 공유기로 이은 줄을 깔끔하게 갈무리해 주기도 했다. 우리가 이 집에서 쓰는 셈틀 대수는 괜찮다고 말해 주었다.


  엊그제는 셈틀에 뜨는 알림글이 너무 번거로워서, 알림글에 적힌 번호로 전화를 걸어 보았다. 그제는 전화가 안 되었고, 어제 전화가 되었다. 어제 전화를 받은 분은 반드시 5500원을 더 내야 한다고 말한다. 한참 생각하다가, 더 생각하고 다시 전화를 하겠다고 말한 뒤 끊었다. 오늘 아침에 다시 케이티 회사로 전화를 거는데, 오늘 전화를 받은 분은 우리 집 셈틀 대수는 괜찮다고 말한다. 태블릿은 셈틀 대수로 넣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러면, 어제 전화를 받은 사람은 무엇일까?


  아침을 지으려고 부엌에서 일하다가 곰곰이 생각한다. 어제 전화를 받은 분은 이런 전화에 많이 시달린 나머지 뻣뻣하게 나오신 셈인가? 오늘 전화를 받은 분은 또 어떤 마음인가? 오늘 아침에 전화를 걸기 앞서 ‘오늘도 어제처럼 얘기한다면, 이 시골마을 작은 집으로 점검을 나와 보라’고 얘기하려 했다. 우리 마을에 인터넷을 쓰는 집이 우리 집 하나요, 이웃한 열 남짓 되는 다른 마을에도 인터넷을 쓰는 집이 없다. 젊은 식구 사는 집은 오직 우리 집뿐이니까. 아무튼, 일이 부드럽게 잘 풀려서 나 스스로 놀랐고 고마웠다. 4348.11.6.쇠.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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