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넋·삶 88 꽃샘



  ‘꽃샘’은 이른봄에 꽃이 필 무렵 갑자기 날씨가 추워지는 모습을 가리키는 낱말이라고 합니다. ‘꽃샘추위’라는 낱말도 함께 씁니다. ‘꽃 + 샘’이고, “꽃을 샘하다”를 가리키는 얼거리입니다. 이 얼거리에 따라 ‘책샘’이라든지 ‘밥샘’이라든지 ‘일샘’이라든지 ‘잔치샘’ 같은 낱말도 쓸 만하리라 느낍니다. 무엇을 샘한다고 하면 ‘(무엇) + 샘’처럼 쓸 수 있겠지요.


  그러면, 꽃샘바람이 불고 꽃샘추위가 다가오는 이른봄은 어떤 철일는지 헤아려 봅니다. 이른봄에 땅은 어떻게 달라지고, 꽃이나 겨울눈은 어떻게 바뀌는지 찬찬히 돌아봅니다.


  겨울이 저물면서 따사롭게 바람이 불면 들과 숲마다 푸릇푸릇 새싹이 돋습니다. 새싹은 겨울 끝자락부터 돋습니다. 한겨울에도 볕이 포근하면 딱딱한 땅을 뚫고 어느새 풀싹이 돋습니다. 동백꽃은 한겨울에도 꽃송이를 터뜨리기도 합니다. 그런데 아직 겨울이 다 가시지 않은 때에 돋는 풀싹은 다시 겨울바람이 차갑게 불면 거의 다 시들시들 떨면서 옹크립니다. 일찍 돋은 풀싹은 잎 끝이 싯누렇게 마르기도 해요. 그런데, 이무렵 돋는 냉이나 씀바귀를 나물로 삼습니다. 달래나물도 이무렵에 캐서 먹습니다. 아직 추위가 흐르는 철에 봄나물이자 ‘늦겨울나물’을 먹어요.


  꽃샘바람은 꽃을 샘하는 바람입니다. 틀림없습니다. 그런데, 꽃을 샘하는 바람이 불기에 꽃은 더 기운을 내고, 겨울눈도 새롭게 기운을 냅니다. 마지막 기운을 모두어서, 잎을 더 푸르게 틔우려 하고, 꽃을 더 싱그러이 터뜨리려 합니다.


  찬바람이 불기에 풀과 꽃과 나무는 새롭게 기운을 얻습니다. 아니, 찬바람을 먹으면서 풀과 꽃과 나무는 스스로 더욱 기운을 내면서, 한결 씩씩하고 튼튼하게 이 땅에 섭니다. 봄과 여름과 가을이 있기에 겨울이 있는데, 겨울이 있기에 봄과 여름과 가을이 있어요. 고요히 잠들도록 하는 겨울을 누리면서, 목숨 있는 모든 것은 새롭게 기운을 얻어서 활짝 깨어납니다.


  꽃샘은 꽃을 ‘샘하’기도 하지만, 꽃이 새롭게 피어나도록 하는 ‘샘물’ 노릇을 하기도 합니다. 꽃샘은 꽃을 시샘하는 한편, 꽃이 스스로 더 기운을 내도록 북돋우는 샘이 되어 줍니다.


  삶에는 좋고 나쁨이 없습니다. 모든 일은 뜻이 있어서 나한테 찾아옵니다. 이 일은 이러한 뜻이고, 저 일은 저러한 뜻입니다. 이 일을 나쁘게만 여긴다면 나로서는 그저 나쁠 뿐이고, 저 일을 좋게만 여긴다면 나로서는 그저 좋다고 여길 뿐입니다. 이 자리에서 맴돕니다. 좋고 나쁨 사이를 오락가락하면서 늘 제자리걸음입니다.


  좋지도 나쁘지도 않다고 바라볼 수 있을 때에 삶을 짓습니다. 좋음도 나쁨도 아닌 줄 알아채면서 마주할 수 있을 때에 삶을 짓는 첫걸음을 씩씩하게 내딛습니다.


  꽃을 시샘하는 추위는, 다른 눈길로 보자면, 꽃이 더 튼튼하고 씩씩하게 피어나기를 바라는 추위입니다. 이만 한 추위쯤에는 지지 말라고, 이만 한 추위를 기쁘게 받아들이라고, 봄에도 쌩쌩 모진 바람이 불 수 있으니, 미리 잘 겪고 받아들이면서 한결 기운차게 솟으라고 하는 추위가 바로 ‘꽃샘추위’이지 싶습니다.


  샘물은 겨울에 얼지 않습니다. 샘물은 여름에는 차고 겨울에는 따뜻합니다. 샘물은 여름에는 여름대로 뭇목숨을 살찌우고, 겨울에는 겨울대로 뭇목숨을 보살펴요. ‘꽃샘’이란 무엇일까요? 꽃샘은 그저 꽃을 시샘하기만 하는 바람이거나 추위일까요? 꽃샘은 우리 삶에서 무엇일까요? 오늘날에는 거의 안 쓰는 옛말 가운데 ‘꽃등’이 있습니다. ‘꽃등’은 “맨 처음”을 뜻합니다. ‘꽃샘’은 봄으로 들어서는 첫 문턱입니다. 꽃샘을 거치면서 비로소 봄으로 나아갑니다. 4348.3.11.물.ㅎㄲㅅㄱ


(최종규/숲노래 . 2015 - 람타 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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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위의 물고기 독깨비 (책콩 어린이) 38
린다 멀랠리 헌트 지음, 강나은 옮김 / 책과콩나무 / 2015년 10월
평점 :
절판


어린이책 읽는 삶 121



너와 나는 달라서 더없이 아름답다

― 나무 위의 물고기

 린다 멀랠리 헌트 글

 강나은 옮김

 책과콩나무 펴냄, 2015.10.30. 13000원



  학교나 사회를 보면, 언제나 ‘안 아픈 이’ 틀에 따라 맞춥니다. 그리고 언제나 ‘힘이 센 이’ 틀에 따라 맞추기 일쑤입니다. 이러면서 ‘아픈 이’나 ‘힘이 여린 이’를 돕는 틀을 살짝 곁들이려 합니다. ‘아픈 이’가 ‘안 아픈 이’한테 따라가야 하고, ‘힘이 여린 이’가 ‘힘이 센 이’한테 맞추어야 합니다.


  언뜻 생각하기에 ‘힘이 여린 이가 힘이 센 이한테 맞추어야 하는 사회’나 ‘아픈 이가 안 아픈 이한테 맞추어야 하는 사회’라는 말은, 말이 안 된다고 여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참말 이와 같지 않은가 하고 생각합니다. 아파서 집 바깥으로 나다니지 못하는 사람은 으레 ‘복지’나 ‘보호’를 받아야 한다고 여기는 사회입니다. 여느 삶자리에서 ‘똑같은 사람’으로 바라보지 않아요. 이를테면, 버스나 전철이나 배나 비행기 같은 데에서 어린이나 늙은 할매와 할배를 헤아리는 틀은 거의 없다시피 합니다. 버스나 전철에 경로석이나 어린이석이 있다고는 하지만, 자리에 이름표만 붙일 뿐, 버스를 타러 가기까지, 또 전철을 타러 오가는 길에, 어린이나 늙은 할매와 할배를 헤아리는 사회 얼거리는 하나도 없습니다.


  조금만 살펴도 알 수 있지요. 지하도 계단은 언제나 ‘안 아픈 어른’ 키높이에 맞춥니다. ‘아픈 어른’ 키높이라든지 ‘어린이’ 키높이는 하나도 살피지 않아요. 여느 버스 계단도 ‘안 아픈 어른’ 키높이에 맞을 뿐, ‘아픈 어른’ 키높이라든지 ‘어린이’ 키높이에는 너무 높고 가파르며 좁습니다. 온 나라에 생기는 ‘자전거길’은 어른이 타는 자전거만 생각할 뿐, 어린이나 늙은 할매와 할배가 자전거를 타고 달릴 만하도록 생각해서 마련하지 않습니다.



난 다시 창밖을 내다보았다. 입을 열지 말자고 다짐했다. 지금까지 일곱 군데의 학교를 전전하면서 나는 아무 말 않는 편이 유리하다는 걸 배웠다. (23쪽)


나는 책을 한 권 꺼내 펼쳤지만 글자들이 꿈틀거리고 춤을 추었다. 움직이는 글자를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읽는 걸까? (29쪽)



  린다 멀랠리 헌트 님이 쓴 어린이문학 《나무 위의 물고기》(책과콩나무,2015)를 읽다가 얼굴이 화끈해집니다. 내 어릴 적 일이 환하게 갑작스레 떠오르기 때문입니다. 어린이문학 《나무 위의 물고기》에 나오는 ‘앨리’라는 아이는 열세 살쯤 되는데 글을 제대로 못 읽습니다. 책을 펼치면 글씨가 마치 춤을 추는 듯이 날아가거나 움직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를 가리켜 ‘난독증’이라고 한다는군요. 아마 글을 잘 읽는 사람이라든지, 글을 읽으며 어려움을 느끼지 않는 이들이 붙인 이름일 테지요.


  나한테 난독증이 있는지 없는지 잘 모릅니다. 다만, 나는 혀짤배기이고, 말을 조금만 빨리 하려고 하면 혀가 꼬여서 소리가 샙니다. 어릴 적에는 학교에서 교사들이 언제나 몽둥이를 들고 다니면서 윽박질렀고, 교과서 읽기를 시킨다든지 발표를 시킬 적에 하나라도 틀리면 어김없이 몽둥이가 춤을 추고 손찌검으로 불을 뿜었어요. 이런 학교 얼거리에서 교과서 읽기를 시키면 몹시 떨린 나머지 말소리가 샜습니다. 말소리가 새지 않도록 천천히 읽으려 하면 굼벵이가 기어가느냐 하면서 다그치니 동무들이 깔깔거리며 웃어요. 이러거나 저러거나 교과서 읽기를 시킬 적마다 웃음거리가 됩니다. 여러 사람 앞에서 말을 하는 일이 언제나 두렵고 무섭도록 내몰던 예전 학교 모습이라고 할까요. 《나무 위의 물고기》를 읽는 내내 어릴 적 학교가 떠올라서 자꾸 소름이 돋았습니다.



나는 한숨을 쉬었다. 엄마 목소리에 담긴 피곤함에, 졸라도 소용없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터덜터덜 욕실로 향했다. “그런데 말이야, 사람들이 널 싫어한다는 소리는 하지 마!” 엄마가 외쳤다. “세상에 누가 너 같은 아이를 싫어하겠어?” (43쪽)


학교 선생님들은 대부분 학생들이 전부 똑같기를 바라는 것 같다. 모든 학생들이 완벽하고 얌전하기를 바라는 것 같다. 그런데 대니얼스 선생님은 모두가 서로 다르다는 점을 좋아하는 것 같다. (71쪽)



  어린이문학 《나무 위의 물고기》를 보면, 앨리 곁에 앨리를 돕는 동무가 둘 있습니다. 두 아이는 앨리한테 ‘다른 아이하고 참으로 다른 모습’이 있는 줄 압니다. 그리고 ‘다른 모습’은 그저 ‘다른 모습’일 뿐이라고 여기면서, 이 대목을 대수롭게 여기지 않습니다. 어떤 아이는 앨리가 ‘다른 아이하고 참으로 다른 모습’을 놓고 끈질기게 꼬리를 잡으면서 놀리거나 괴롭히려고 하지만, 앨리 곁에서 동무로 함께 지내는 두 아이는, ‘서로서로 아름다운 동무’라고 여기는 마음으로 따스하게 어루만지는 손길이 되어 줍니다.


  이리하여, 세 동무가 씩씩하게 학교를 다니면서 어려움을 헤치고 즐거운 삶을 찾는 이야기가 흐르는데, 이런 이야기를 읽으면서 새삼스레 또 한 가지 일이 떠오릅니다. 수업을 하며 무시무시한 교사들이 몽둥이를 들고 으르렁거리면서 나처럼 뭔가를 ‘잘 못 하’거나 ‘어설프게 하’는 아이를 다그치거나 놀림감이나 웃음거리로 삼는 짓을 하더라도, 이런 짓에 웃지 않는 동무들이 있어요. 그리고, 이 동무들은 제가 여느 때에 함께 걷거나 놀거나 어울리다가 ‘말소리가 샐’ 적에 아무렇지 않게 흘려보냅니다. 이러면서,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 다 알아차립니다. 이 동무들은 나한테 “너 혀짤배기네!” 하면서 놀린 적도 없고, 이런 말을 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나는 그무렵에 그 모습을 제대로 못 느꼈습니다. 내가 또 말소리가 샜구나 하고 느껴서 얼굴이 발개지고 창피하다고 느꼈을 뿐, 내 동무들은 내 말소리 샌 모습을 하나도 놀리지 않고 따지지 않는데, 이렇게 고맙고 훌륭한 동무들이 있는데, 이 동무들한테 고맙다는 마음을 그때에는 미처 밝히지 못했어요. 내 창피를 감추느라 바빴습니다. 이제서야 그 마음을 깨닫습니다.



“깜깜한 방이 어째서 너에 대한 그림이야, 앨리?” 선생님 목소리는 부드러웠다. 무척이나. 나는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깜깜한 방에 있으면 아무도 날 못 볼 테니까요.” (76쪽)


‘글 읽기가 서툴다’는 표현 하나로, 사람들은 내 안에 무엇이 있는지 다 아는 것처럼 행동한다. 이를테면, 내가 깡통에 담긴 수프인데, 깡통에 쓰인 재료를 읽기만 하면 나에 대해 모든 걸 알 수 있다는 것처럼. (122쪽)



  누군가는 학교에서 시험성적이 잘 나올 테지요. 누군가는 학교에서 운동을 잘 할 테지요. 누군가는 학교에서 책을 잘 읽을 테지요. 누군가는 학교에서 글씨를 잘 쓸 테지요. 누군가는 학교에서 동무들을 잘 이끌거나 타이르거나 다독일 줄 알 테지요. 누군가는 학교에서 새로운 놀이를 끝없이 빚어서 다 함께 웃고 떠들면서 놀도록 선보일 줄 알 테지요. 누군가는 학교에서 재미난 이야기를 잘 지어내면서 따스한 바람이 불도록 할 테지요. 누군가는 어린 나이에도 밥을 잘 짓고 집일도 알뜰히 거들 테지요.


  참말 모두 다릅니다. 참으로 모두 다른 마음이요 생각이며 넋입니다. 그러니, 이 다른 아이들이 저마다 사랑하는 삶길을 걸을 수 있도록 북돋우거나 가르칠 때에 아름다운 학교라고 여겨요. 성적에 따라 등수를 매겨서 줄을 세우려는 학교가 아니라, 다 다른 아이들이 다 다른 꿈을 키워서 모두 새롭고 아름다운 사랑으로 나아가도록 이끌 학교여야지 싶습니다.



나비들이 나에게 날아왔다. 나비들의 색과 무늬를 보며 왜 지금껏 한 번도 나비를 그리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비들이 나는 방식은 새들과 달랐다. 온갖 방향으로 이리저리 움직이며 날았다. 나도 일부는 나비가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148쪽)


“앨리, 넌 남달라. 나도 남달라. 앨버트도 남달라. 그리고 속하고 말고를 누가 결정하는데? 셰이 같은 애들이? 걔는 못돼 먹은 애야. 걔가 뭐라고 하든 신경 쓸 필요 없어.” (175쪽)



  《나무 위의 물고기》에 나오는 아이를 둘러싸고 여러 교사가 나옵니다. 여러 교사를 살피면, 앨리라는 아이뿐 아니라 ‘다 다른 아이’를 다 다르게 바라볼 줄 아는 교사도 있고, 다 다른 아이를 그저 ‘다 똑같은 아이’로 맞추어서 줄을 짓거나 판에 박도록 이끌려는 교사도 있습니다. 학교에 아이들이 너무 많아서 미처 모든 아이를 제대로 못 살피는 교사도 있어요.


  어느 모로 보면, 앨리라는 아이는 동무와 교사를 잘 만났다고 할 만합니다. 참말 이렇게 좋은 동무와 교사를 만나기도 쉽지 않을 테니까요. 그러나, 다른 자리에서 살피면, 앨리라는 아이는 제 마음자리에 아프고 괴로운 앙금이 있는 터라, 다른 동무들이 힘들거나 아파할 적에 살며시 다가가서 어깨를 쓰다듬어 줄 줄 압니다. 앨리라는 아이 곁에 좋은 동무가 있을 뿐 아니라, 앨리도 다른 동무한테 좋은 벗님이에요.



“학교에 오면 어떤 일을 겪게 될지 알면서도 매일 학교에 오잖니. 학교에서의 하루가 힘들 거란 걸 알고 다른 아이들이 놀릴 거란 걸 알면서도, 너는 매일 학교에 와서 다시 한 번 시도해 보려고 하잖아.” (196쪽)


나는 반장이 되고 싶어지는 내 마음이 두렵다. 하지만 머릿속에서 내가 교실 앞에 서 있고 선생님이 나를 축하해 주는 영화가 상영되었고, 그게 현실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연필을 집어 들고 최선을 다해 집중했다. 최선을 다해. (248쪽)



  나는 어릴 적에 내 좋은 동무들한테 어떤 벗님이었을까 하고 돌아봅니다. 내 혀짤배기 말소리를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면서 한 번도 나를 놀리지 않던 그 동무들한테, 나는 얼마나 사랑스럽고 재미나며 아름다운 벗님으로 함께 지냈을까 하고 되새겨 봅니다. 짓궂은 장난도 꽤 많이 쳤고, 우스꽝스러운 장난도 자꾸 치던 개구쟁이였는데, 그래도 나는 내 좋은 동무들한테 착하면서 맑은 몸짓과 웃음을 보여주었는가 하고 참말 곰곰이 헤아려 봅니다.


  어쩌면, 나도 내 동무들한테 좋은 벗님이 될 만했기에 나를 따스히 아낀 동무들이 있었다고 할 만합니다. 그리고 내 동무들도 그 아이들대로 누구한테나 좋은 벗님이 될 만한 아름다운 넋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다 다른 동무가, 키도 다르고 몸집도 힘도 모두 다른 동무가, 씩씩하게 손을 맞잡고 걷습니다. 키가 좀 어긋나도 어깨동무를 합니다. 걸음걸이가 좀 달라도 깔깔깔 웃고 노래하면서 걷습니다. 내가 아플 적에는 동무가 나를 보살피고, 동무가 아플 적에는 내가 동무를 보살핍니다. 내가 힘들 적에는 동무가 나를 돕고, 동무가 힘들 적에는 내가 동무를 돕습니다.


  책을 잘 못 읽으면, 책은 안 읽어도 됩니다. 글을 잘 못 쓰면, 글은 안 써도 됩니다. 힘이 여리면 힘을 써야 하는 일은 안 해도 됩니다. 스스로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스스로 아름답게 걸을 수 있는 길을 걸으면 돼요. 학교에서 교사는 아이들을 사랑으로 맞이할 수 있기를 빌어요. 그리고, 학교를 다니는 모든 아이들이 스스로 ‘너와 나는 다르지만, 너와 내가 다르기에 서로 아름답지’ 하는 마음으로 삶을 사랑하는 길을 배울 수 있기를 빌어요. 4348.11.9.달.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어린이문학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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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식의


 농담 식으로 말하면 → 농담 투로 말하면 / 농담처럼 말하면

 그런 식으로나마 → 그렇게나마 / 그런 모습으로나마

 이런 식의 방법이 있다 → 이런 방법이 있다

 반갑다는 식의 인사 → 반갑다는 인사 / 반갑다며 하는 인사


  ‘식(式)’은 “1. 일정한 전례, 표준 또는 규정 2. = 의식(儀式) 3. [수학] 숫자, 문자, 기호를 써서 이들 사이의 수학적 관계를 나타낸 것 4. ‘수법’, ‘수식’을 나타내는 말 5. 일정하게 굳어진 말투나 본새, 방식”을 뜻한다고 합니다. ‘式 + 의’ 꼴로 쓰는 말뜻은 다섯째입니다. 그러니까 ‘방식 + 의’를 줄여서 ‘式의’ 꼴로 쓴다고 할 만합니다.


  “이런 식의 배열”이라든지 “이런 식의 줄거리”처럼 흔히 쓰는데, ‘식의’는 아예 덜 때에 가장 낫다고 느낍니다. “이런 배열”이나 “이런 줄거리”처럼 쓰면 넉넉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식의 여행”이나 “이런 식의 사진”도 “이런 여행”이나 “이런 사진”으로 손질하면 됩니다. 4348.11.9.달.ㅅㄴㄹ



이런 식의 생생한 공부를 해야 한다고

→ 이런 식으로 생생한 공부를 해야 한다고

→ 이렇게 생생한 공부를 해야 한다고

→ 이렇듯이 생생하게 배워야 한다고

《크리스 도네르/김경온 옮김-말의 미소》(비룡소,1997) 27쪽


성적으로써 인간을 평가하는 식의 세상

→ 성적으로써 사람을 평가하는 세상

→ 성적으로써 사람을 재는 따위 세상

→ 성적으로써 사람을 따지는 이 따위 세상

→ 성적으로 사람을 판가름하는 이 따위 세상

→ 성적으로 사람을 가르는 이 몹쓸 세상

→ 성적으로 사람을 나누는 이 끔찍한 세상

→ 성적으로 사람이 갈리는 이 더러운 세상

《W.글래서/홍흥운 옮김-낙오자 없는 학교》(부림출판사,1981) 89쪽


이런 식의 쇠고기 징발은 계속되었다

→ 이런 식으로 쇠고기 징발은 이어졌다

→ 이렇게 자꾸 쇠고기를 앗아갔다

→ 이런 쇠고기 훔치기는 이어졌다

《어니스트 톰슨 시튼/장석봉 옮김-위대한 늑대들》(지호,2004) 32쪽


‘그러면 좋을 텐데’라는 식의 희망 사항

→ ‘그러면 좋을 텐데’ 하는 희망 사항

→ ‘그러면 좋을 텐데’ 하는 꿈

→ ‘그러면 좋을 텐데’ 하고 바라는 마음

→ ‘그러면 좋을 텐데’ 하는 바람

《기류 유미코/송태욱 옮김-나는 아들에게서 세상을 배웠다》(샨티,2005) 22쪽


그런 식의 접근은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 그런 접근은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 그렇게 다가서면 마음이 좋지 않았다

→ 그렇게 다가서는 일은 내키지 않았다

→ 그런 만남은 마음에 들지 않았다

→ 그렇게 다가서기는 싫었다

→ 그런 만남은 못마땅했다

→ 그런 만남은 싫었다

→ 그런 만남은 즐겁지 않았다

→ 그렇게 만나면 마음이 가볍지 않았다

→ 그렇게 만나면 마음이 괴로웠다

《싼마오/조은 옮김-흐느끼는 낙타》(막내집게,2009) 61쪽


(최종규/숲노래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말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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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구리왕짜 2015-11-09 21:07   좋아요 0 | URL
`의`가 사실 일본식 표현의 잔재죠?
의식적으로 안 쓰겠습니다~

파란놀 2015-11-09 22:28   좋아요 0 | URL
일본 말투이기도 하지만,
번역 말투도 있고
중국 말투도 있어요.
이 세 가지가 어우러지면서
알쏭달쏭한 말투가 되었는데,

이런 알쏭달쏭한 느낌을 좋아해서
`-의`를 일부러 쓰는 분이 꽤 되는 듯합니다..

말씀 고맙습니다 ^^
 


 우리 말을 죽이는 외마디 한자말

 청하다 請


 친구에게 도움을 청하다

→ 동무한테 도움을 바라다

→ 동무한테 도와 달라 하다

 주인에게 물 한 그릇을 청하다

→ 주인한테 물 한 그릇을 바라다

→ 주인한테 물 한 그릇 달라 하다

 동네 사람들을 집에 청해서 음식을 대접하셨다

→ 동네 사람들을 집에 모셔서 음식을 대접하셨다

→ 동네 사람들을 집에 불러서 음식을 대접하셨다

 낮잠이라도 청하고 있는 모양

→ 낮잠이라도 자려고 하는 모양

→ 낮잠이라도 자려는 모양

 돈을 돌려주기를 청했는데

→ 돈을 돌려주기를 바랐는데

→ 돈을 돌려주라고 했는데


  ‘청(請)하다’는 “1. 어떤 일을 이루기 위하여 남에게 부탁하다 2. 사람을 따로 부르거나 잔치 따위에 초대하다 3. 잠이 들기를 바라다. 또는 잠이 들도록 노력하다”를 뜻한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부탁하다’나 ‘부르다’나 ‘초대하다’나 ‘잠이 들기를 바라다’로 적으면 될 노릇입니다. 그런데 ‘부탁(付託)’은 “어떤 일을 해 달라고 청하거나 맡김”을 뜻한다고 합니다. 한국말사전은 ‘청하다 = 부탁하다’로 풀이하면서, ‘부탁하다 = 청하다’로 풀이합니다. 뒤죽박죽이지요. 그러나 “해 달라고 하다”나 “해 달라고 맡기다” 같은 한국말을 엿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초대(招待)’는 “1. 어떤 모임에 참가해 줄 것을 청함 2. 사람을 불러 대접함”을 뜻한다고 해요. 이 말풀이도 뒤죽박죽입니다. ‘청하다 = 초대하다’로 풀이하면서, ‘초대하다 = 청하다’로 풀이하니까요. 다만, 이때에도 ‘초대하다’이니 ‘청하다’이니 쓰지 않고 ‘부르다’라는 한국말을 알맞게 쓰면 되는 줄 헤아릴 수 있어요. 4348.11.9.달.ㅅㄴㄹ



이번에는 군청에 도움을 청했다

→ 이번에는 군청에 도움을 바랐다

→ 이번에는 군청에 도움을 빌었다

→ 이번에는 군청에 도와 달라고 여쭈었다

《크리스 도네르/김경온 옮김-말의 미소》(비룡소,1997) 11쪽


엄마에게 도움을 청하렴

→ 엄마에게 도움을 바라렴

→ 엄마한테 도움을 받으렴

→ 엄마한테 도와 달라고 하렴

《서갑숙-나도 때론 포르노그라피의 주인공이고 싶다》(중앙m&b,1999) 278쪽


잠을 청할 수 없었습니다

→ 잠을 이룰 수 없었습니다

→ 잠을 잘 수 없었습니다

→ 잠이 들 수 없었습니다

→ 잠잘 수 없었습니다

→ 잘 수 없었습니다

→ 자지 못했습니다

→ 못 잤습니다

《구로야나기 데츠코/김경원 옮김-토토의 눈물》(작가정신,2002) 27쪽


잠을 청했으나

→ 잠을 자려고 했으나

→ 자려고 누웠으나

→ 자려고 했으나

《체 게바라/안중식 옮김-체의 마지막 일기》(지식여행,2005) 50쪽


도움을 청했다

→ 도움을 빌었다

→ 도와 달라고 했다

→ 손을 벌렸다

→ 손을 뻗었다

《이응노·박인경·도미야마/이원혜 옮김-이응노―서울·파리·도쿄》(삼성미술문화재단,1994) 9쪽


잠을 청하려고 해도

→ 잠을 자려고 해도

→ 잠이 들려고 해도

→ 자려고 해도

《안비루 야스코/송소영 옮김-누구나 할 수 있는 멋진 마법》(예림당,2012) 53쪽


(최종규/숲노래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말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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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최악의


 최악의 유혈 충돌 → 끔찍하게 죽고 다친 충돌

 최악의 결과 → 가장 나쁜 결과

 최악의 것이다 → 가장 나쁜 것이다

 최악의 철도사고 → 가장 끔찍한 철도사고


  한자말 ‘최악(最惡)’은 “가장 나쁨”을 뜻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한국말사전을 보면 “최악의 유혈 충돌”이나 “최악의 결과”나 “최악의 것” 같은 보기글이 나옵니다. 한국말사전 보기글부터 사람들더러 ‘-의’를 쓰라고 부채질하는 셈입니다.


  “사태가 최악으로 치닫다”나 “결과는 최악이다”는 “사태가 가장 나쁘게 치닫다”나 “결과는 가장 나쁘다”처럼 손질하면 됩니다. 가장 나쁘기에 “가장 나쁘다”고 합니다. 가장 나쁘다고 할 적에 어떤 느낌인가를 살핀다면, ‘끔찍하다’라든지 ‘무시무시하다’라든지 ‘모질다’라든지 ‘괴롭다’ 같은 말을 넣을 만합니다. 그리고, “눈 뜨고 볼 수 없다”라든지 “차마 볼 수 없다”라든지 “이루 말할 수 없다” 같은 말을 알맞게 써 볼 수 있습니다. 4348.11.9.달.ㅅㄴㄹ



최악의 사태가 벌어지고 말겠군

→ 끔찍한 사태가 벌어지고 말겠군

→ 무시무시한 일이 벌어지고 말겠군

→ 눈 뜨고 볼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말겠군

→ 차마 볼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말겠군

《안소니 드 멜로/이희춘 옮김-사라지는 것은 아름답다》(삼천리,1991) 28쪽


최악의 물난리를 겪은

→ 끔찍하게 물난리를 겪은

→ 말도 못하게 물난리를 겪은

→ 모질게 물난리를 겪은

→ 어마어마하게 물난리를 겪은

《최도영-통계로 본 지구환경》(도요새,2003) 59쪽


춥고 더럽고 쥐들이 들끓는 최악의 상태였다

→ 춥고 더럽고 쥐들이 들끓며 말도 할 수 없었다

→ 춥고 더럽고 쥐들이 들끓며 이루 말할 수 없었다

→ 춥고 더럽고 쥐들이 들끓어 끔찍했다

→ 춥고 더럽고 쥐들이 들끓어 보기만 해도 끔찍했다

→ 춥고 더럽고 쥐들이 들끓어 소름이 쫙 끼쳤다

《조안 하라/차미례 옮김-빅토르 하라》(삼천리,2008) 42쪽


나 자신에 대해 설명하기. 최악의 주제다

→ 나 자신을 설명하기. 끔찍한 주제다

→ 내가 나를 얘기하기. 괴로운 이야깃감이다

《린다 멀랠리 헌트/강나은 옮김-나무 위의 물고기》(책과콩나무,2015) 10쪽


(최종규/숲노래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말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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