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넋·삶 89 ‘두레’와 ‘공동체’



  조선 무렵에 한때 몇몇 곳에서 ‘향약(鄕約)’이 서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 향약은 오래가지 않습니다. 그도 그럴 까닭이 ‘향약’은 중국에서 중국사람이 하던 ‘여씨향약’을 그대로 따랐으니까요. 중국 것을 따랐기에 오래 못 간다는 뜻이 아닙니다. 이 땅에서 삶을 짓는 사람들이 어우러지는 한마당을 이루려 한다면, 마땅히 ‘이 땅에서 삶을 짓는 사람들이 쓰는 말’로 ‘이 땅에서 삶을 짓는 사람들이 나눌 생각’을 담아야 제대로 갑니다.


  지식인이나 학자나 임금 같은 사람이 중국 제도나 문물을 받아들이든 말든, 이 땅에서 흙과 풀과 나무를 만지면서 숲과 들과 보금자리를 가꾸던 사람들은, 가장 수수하고 투박한 말로 조촐하게 한마당을 이룹니다. 바로 ‘두레’이고, ‘품앗이’이며 ‘울력’입니다. ‘두레·품앗이·울력’은 남이 시켜서 이루는 한마당이 아닙니다. 두레와 품앗이와 울력은 모두 여느 시골사람 스스로 이루는 한마당입니다. 그런데 이를 제대로 살피지 않거나 찬찬히 느끼지 않던 지식인이나 학자나 임금이었으니, 애써 중국 것을 받아들여서 퍼뜨리려 하지요.


  더군다나, 해방 언저리에는 ‘공동체(共同體)’라는 이론이나 철학이나 사상을 다른 나라에서 끌어들이려 합니다. 영어를 앞세운 미국 문화와 사회와 역사를 배운 이들은 ‘커뮤니티(community)’를 말하기도 합니다.


  ‘공동체’에서 ‘共同’이란 무엇일까요? “함께 하나됨”입니다. “함께 하나되는 몸”을 ‘공동체’라 하는데, 시골에서는 늘 두레와 품앗이와 울력으로 함께 하나였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오늘날 ‘공동체’라는 이름을 쓰는 이들은 처음부터 시골사람 말과 넋과 삶을 쳐다보지도 않고 들여다보지도 않으며 생각조차 않았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굳이 ‘공동체 정신’을 말하지 않아도 됩니다. ‘두레 넋’이나 ‘두레 얼’이나 ‘두레 마음’을 말할 수 있으면 됩니다. 우리는 애써 ‘공동체 문화’를 일으켜야 하지 않습니다. ‘두레마을’을 이루고 ‘두레살림’을 가꾸며 ‘두레살이’를 돌보면 돼요. 그리고, ‘두레’라는 낱말도 꼭 앞세우지 않아도 됩니다. ‘마을살림’과 ‘마을살이’를 지으면 됩니다.


  저마다 사랑스러운 보금자리가 있기에, 여러 보금자리가 모여서 마을을 이룹니다. 마을을 이룬 여러 보금자리에서는 오순도순 어깨동무를 하고, 서로서로 아끼고 보살피려는 마음이니, 저절로 두레가 태어나고 품앗이가 깨어나며 울력이 자랍니다. 나라에서 구태여 ‘협동조합’을 북돋운다고 나서지 않아도 됩니다. 게다가, 마을마다 있던 두레나 품앗이나 울력은 바로 정치권력이 새마을운동을 앞세워 몽땅 짓밟거나 깨부셨습니다. 시골사람이 도시로 몰려들어 공장 일꾼이 되도록 몰아세우면서 마을살림도 마을살이도 와장창 깨져야 했습니다. 이렇게 갈기갈기 쪼개진 사람들 삶인데, ‘협동조합 지원’을 한다고 해서 마을이 살아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마을살림은 나랏돈이 아닌 ‘보금자리 사랑’으로만 살아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두고두고 사랑하면서 살다가 아이한테 물려주면서 두고두고 가꿀 만한 보금자리요 마을이라면, 사람들은 스스로 이 보금자리와 마을을 가꿉니다. 지원금이나 보조금이 있어야 지키는 마을이 아닙니다. ‘경제발전·재개발’ 따위를 함부로 들먹이지 않아야 하고, 정치권력이 없어야 하며, 지방자치조차 아닌 ‘마을사람 스스로 법과 제도가 하나도 없이 스스로 삶을 짓는 하루’가 될 때에, 비로소 참다운 두레이고 품앗이요 울력입니다.


  오늘날 사회에서 두레가 없는 까닭은 도시나 시골 모두 ‘보금자리’로 삼을 집이 없기 때문입니다. 툭하면 개발이고, 툭하면 고속도로이며, 툭하면 시멘트질인데다가, 툭하면 깨부수니, 보금자리도 마을도 남아날 수 없어요.


  사람이 많이 모여 산다고 해서 ‘마을(동네)’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보조금을 받아서 꾸리기에 두레(협동조합, 공동체)가 서지 않습니다. 삶을 사랑하는 꿈을 키울 수 있는 곳이라야 비로소 사람들 스스로 마음을 일으켜 새롭게 나아갑니다. 4348.3.13.쇠.ㅎㄲㅅㄱ


(최종규/숲노래 . 2015 - 람타 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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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이랑 광주, 100만 원



  서울에 있는 방송국에서 우리 도서관하고 우리 보금자리를 방송으로 찍고 싶다면서 요 달포 사이에 여러 곳에서 여러 차례 전화가 왔다. 찍을까 말까 하고 망설이다가 모두 그만두고 말았는데, 서울에 있는 방송국에서는 그 방송을 찍으면 우리한테 출연료를 100만 원 준다고 했다. 연예인이나 유명인이 아니면서도 출연료를 그만큼 받는다면 꽤 여러 날 힘들게 찍혀야 할 일이로구나 하고 느꼈다. 그런데 이런 ‘방송 찍히기’를 어제와 그제 이틀에 걸쳐서 했다. 서울에 있는 방송국이 아닌 전라도 광주에 있는 방송국 일꾼들하고 했다. 모르는 노릇이지만, 전라도 광주에 있는 방송국에서는 출연료를 따로 안 줄 듯하다. 그러니까 똑같은 ‘방송 찍히기’이지만, 출연료 없이 힘들게 이틀을 바치면서 어느 모로 보면 자원봉사를 한 셈이다. 내가 자원봉사를 좋아한 삶이었기에 방송에 찍힐 적에도 자원봉사를 했을까. 아무래도 그러하구나 싶은데, 아이들을 토닥토닥 재우고 나도 꼬르륵 곯아떨어지며 이런 생각을 하다가 그냥 혼자 재미있어서 잠자리에서 하하하 웃었다.


  광주에서 찾아온 방송국 일꾼은 그저 스스럼없이 우리 도서관에 찾아와 주었고, 그저 수수하게 방송을 찍겠노라 했다. 서울에서 전화를 건 방송국 일꾼은 그저 전화로 몇 시간씩 이것을 묻고 저것을 묻기만 했다. 시골에서 일하며 사는 사람으로서 자꾸 전화만 걸면서 꼬치꼬치 물을 적에 힘들고 괴로웠다. 전화할 틈이 있으면, 그렇게 자꾸 전화해서 한두 시간을 넘길 만하다면 좀 한 번 ‘서울에서 시골로’ 와서 얼굴을 마주보면서 물어볼 마음은 없는지?


  백 해쯤 묵은 책을 내가 사진으로 찍어서 누리사랑방에 올린 모습을 볼 적하고, 이 백 해쯤 묵은 책을 그냥 우리 도서관으로 찾아와서 두 눈으로 몸소 보고 손으로도 만져 볼 적에는 사뭇 다르다. 값이 몇 천만 원에 이른다는 김소월 님 시집은 우리 도서관에 없다. 그러나, 돈으로 따져서 그리 비싼 책은 우리 도서관에 없으나, 삶을 재미있게 되읽고 다시 살피도록 북돋우는 아기자기한 책은 우리 도서관에 많다.


  100만 원이란 무엇일까 하고 가만히 돌아본다. 아직 우리 집은 살림이 퍽 가난해서 돈 1만 원을 쓸 적에도 벌벌 떨고, 내 ‘목숨이 다한’ 사진기도 새로 장만하지 못하면서 골골거린다. 겨울을 앞두고 보일러에 기름을 넣어야 하는데, 아직 보일러 기름을 장만할 돈을 못 모았다. 그런데 나는 왜 서울에 있는 방송국에서 우리 도서관하고 보금자리를 찍겠다고 하는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을까? 나는 왜 똑같은 ‘방송 찍기’인데, 전라도 광주에 있는 방송국 사람들이 찾아왔을 적에는 스스럼없이 찍어 주었을까?


  이래저래 생각해 보는데 스멀스멀 웃음이 난다. 나는 이런 살림으로도 제법 살 만한가 보다. 아니, 돈을 벌거나 받더라도 스스로 웃고 노래할 수 있는 일거리가 아니라면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마음이로구나 하고 새삼스레 느낀다. 4348.11.13.쇠.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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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없는 사진말

15. 나로서는 아픈 사진



  누구나 사진을 찍는다. 사진을 찍는 사람은 모두 ‘사진 찍는 사람’이다. 너와 나는 모두 ‘작가’라 할 만하다. 사진을 찍어서 돈을 벌어야 ‘작가’가 아니라, 사진을 즐겁게 찍는 사람이라면 어떤 사람이든 작가라고 할 만하다. 왜냐하면, ‘작가’라고 하는 이름은 “짓는 사람”을 뜻하기 때문이다. 사진을 찍어서 이야기를 지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 너도 나도 다 함께 작가이다. 스튜디오를 꾸린다든지, 신문이나 잡지에 사진을 싣는다든지, 전시회를 열거나 사진책을 선보여야 작가이지 않다. 사진기를 손에 쥐고 기쁘게 한 장 두 장 찍을 수 있으면 참말 우리 모두 아름다운 ‘사진작가’라고 할 만하다.


  그러면, 모두 작가라고 할 우리는 사진을 왜 찍는가? 새롭게 누리거나 즐길 만한 이야기가 있기 때문에 사진을 찍는다. 스스로 새롭다고 느끼지 않으면 사진기를 손에 쥐지 못한다. 스스로 새롭게 바라보는 눈길이 아니라면 사진기를 손에 들지 못한다. 스스로 새롭게 마주하면서 이야기를 빚으려는 마음이 아닐 적에는 사진을 한 장조차 못 찍는다.


  직업으로서 사진가이기 때문에 찍는 사진이 아니다. 직업이 사진가이건 아니건 대수롭지 않다. 마음에 고이 흐르는 이야기가 있기에 사진을 찍을 뿐이다. 직업이 사진가인 사람은 이런저런 매체에 사진을 실을 뿐, 달리 대수롭거나 대단하지 않다.


  이리하여, 나는 어제 하루 찍은 사진을 돌아보면서 가슴이 몹시 아프다. 왜 그러한가 하면, 지난 이태 동안 쓴 작은 디지털사진기가 목숨이 거의 다한 탓에, 어제 찍은 사진 가운데 스무 장 남짓 ‘메모리카드에 안 남고 사라졌’다. 어처구니가 없네 하고 느끼면서도 어찌할 길이 없다. 살림돈이 모자라서 새 사진기를 장만하지 못하기도 했지만, ‘목숨이 다 된 사진기’를 부여잡고서 ‘조금 더 버티어 주렴. 조금 더 기운을 내 주렴’ 하고 외치기도 했지만, 사진기가 끙끙 앓으면서 ‘이제 더 못 찍겠어요’ 하고 외치는 소리를 제대로 받아들이지 않은 탓에, 애써 찍은 사진을 또 날렸다. 꼭 사진으로 찍어서 남겨야 하지 않으나, 즐겁게 찍은 사진이 가뭇없이 사라지니 참말 아프다. 하루 빨리 새 사진기를 장만해야 할 테지? 어서 돈을 모으자. 4348.11.13.쇠.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사진말/사진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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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이틀에 걸쳐서 ‘방송 찍기’를 했다. 이틀에 걸쳐서 하는 방송 찍기는 기운을 몹시 짜내야 했다. 나는 나대로 했지만, 아이들이 몹시 애써 주었다. 그래서 나는 아이들이 씩씩하게 뛰놀면서 찍히도록 하하하 깔깔깔 웃으면서 노래하면서 이 일을 했다. ‘방송에 찍히는 모습’으로 꾸민 내 삶이 아니라, 언제나처럼 아이들하고 노는 삶을 지으려고 씩씩하게 웃고 노래했다.


  엊저녁에 방송 찍기를 마친 뒤 그야말로 기운이 하나도 없었다. 어제 저녁에 밥을 차려야 하기는 한데 팔에 힘이 하나도 없어서 밥을 새로 짓지도 못했다. 그나마 동글배추를 썰려고 하는데 손이며 팔이며 덜덜 떨려서 ‘안 되겠어. 도무지 칼질조차 못 하겠어’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다시 마음을 고쳐먹고 ‘괜찮아. 이만큼은 할 수 있어. 하면 돼.’ 하고 나한테 자꾸 말을 걸었다. 동글배추를 조금 써는 동안에도 온힘을 쏟아서 가까스로 손가락을 안 베고 마무리를 지었다.


  이제 다시 조용한 내 삶으로 돌아간다. 다시 아이들하고 호젓하게 노는 내 삶으로 돌아간다. 모두 아름다운 이웃이요 벗님이라는 생각을 다시 마음에 품는다. 자, 나도 다시 기운을 차리고, 다시 글을 쓰고, 다시 마당을 쓸고, 다시 밥을 짓고, 다시 노래를 불러야지. 4348.11.13.쇠.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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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공간, 일상을 바꾼 여성들의 역사 - 제도와 규정, 억압에 균열을 낸 여성들의 반란
이임하 지음 / 철수와영희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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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삶읽기, 인문책 138



사내가 집안일을 하면 나라가 아름답다

― 해방공간, 일상을 바꾼 여성들의 역사

 이임하 글

 철수와영희 펴냄, 2015.11.7. 22000원



  이임하 님이 쓴 《해방공간, 일상을 바꾼 여성들의 역사》(철수와영희,2015)라는 책은 일제강점기에서 막 벗어난 한국 사회에서 ‘가시내(여성)’가 어떤 삶을 누리면서 어떤 생각을 품었는가 하는 대목을 살그마니 들여다보려고 합니다. 크게 세 갈래로 나누어서 살핍니다. 첫째로는 지식 사회가 바라본 여성 이야기, 정부에서 마련한 ‘부녀국’ 이야기를 살핍니다. 둘째로는 해방 뒤에도 일제강점기처럼 똑같이 노동자를 짓누르거나 괴롭히는 제도와 노동조건을 고치자고 하는 목소리를 낸 여성 이야기를 살핍니다. 셋째로는 미군정이 이 나라 여성을 성폭행한 사건, 공창과 사창이 뿌리내리는 발자취, 정부가 여성 몸을 통제하는 이야기를 살핍니다.



대한제국기 계몽운동가들이 여성들을 국권운동에 참여시키기 위해 봉건적 굴레에서 해방시키기 위한 제도적·관습적 조치를 요구했지만, 그것은 그때뿐이었다. 그 임무가 끝나면 여성은 언제든지 여성의 본성 또는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갈 것을 요구받았다. (41쪽)



  여성이란 누구일까요. 남성이란 누구일까요. 책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앞서 여성하고 남성이란 어느 자리에 어떻게 있는 사람인가를 먼저 헤아려 봅니다. 남성은 여성을 짓누르거나 윽박지르거나 거머쥐어도 될 만한지요? 거꾸로 여성이 남성을 짓누르거나 윽박지르거나 거머쥐어도 될 만할까요?


  남성은 여성을 옭아매거나 괴롭히거나 두들겨팰 까닭도 권리도 없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여성이 남성을 옭아매거나 괴롭히거나 두들겨팰 까닭이나 권리가 없습니다. 사람은 남성이나 여성, 또는 여성이나 남성이라는 두 갈래 성별이 있을 뿐입니다. 두 가지 성별인 사람들이 모이기에 집이 태어나고 마을이 생기며, 고을로 퍼져서 나라도 됩니다. 한 가지 성별인 사람들만 모인다면, 집도 마을도 고을도 없는데다가 나라도 없을 테지요. 한 가지 성별인 사람들만 모인 곳은 이곳에 있는 사람들이 늙어서 죽으면 가뭇없이 사라질 테니까요.


  그러니, 사람은 서로 아낄 때에 사람이 됩니다. 평등이나 평화나 민주라는 말을 모르더라도 서로 아낄 때에 사람다운 사람입니다. 사람을 계급이나 신분으로 갈라야 하지 않듯이, 남성과 여성 사이에서도 계급이나 신분을 가르지 말 노릇입니다. 



국립경찰전문학교 제1기 졸업생들은 일선 경찰서에 배치됐지만 뚜렷한 업무를 맡기지 않아 전화 받는 일이 전부였다. 또한 “남성 경찰들이 여경의 존재에 분개하고 여성들을 요리 또는 관서 주위의 잡무를 보는 직위로 내쫓을 정도”였다고 주한미군사에 기록되어 있다. (84쪽)


부녀국의 활동은 여성이 국가 건설 과정에서 어떤 역할과 직분을 갖는지를 분명하게 제시했다. 해방공간에서 다양하게 전개된 ‘여성해방론’, ‘남녀평등’, 가정의 사회적 기반을 마련하기 위한 세탁소와 탁아소 등의 정책 마련에 대한 요구, 여성 노동 조건의 개선과 대안의 요구 따위를 모두 제거해 버리고 ‘현모양처’ 역할만이 강조됐다. 이런 점에서 부녀국은 국가기구 안에서 여성들의 다양한 잠재성과 가능성의 확장이 아닌 하나의 역할만을 강제하고 규제하는 역할을 했다. (90쪽)



  해방 뒤 정부에서는 부녀국이라는 기관을 마련했다고 하는데, 이 부녀국은 여성 인권이나 권리나 문화에는 어느 한 가지도 눈길을 못 두었다고 합니다. 여성 경찰을 키우는 기관을 나라에서 마련했다고 하지만, 정작 여경은 경찰로 제 맡은 일을 할 수 없고, 경찰서에서 남자 경찰한테 밥을 지어 주느니, 헌 옷을 기워 주느니 하는 자잘한 뒷일을 할 뿐이었다고 합니다.


  여성 노동자는 공장 기숙사에 거의 갇히듯이 지내야 했답니다. 여성 노동자는 일을 쉬는 날에 ‘자유롭게’ 공장 밖으로 나가서 돌아다니고 싶다고 공장장한테 말하지만, 공장장은 이를 딱 잘라서 손사래쳤다고 합니다. 그나마 남성 노동자보다 일삯을 적게 받는 여성 노동자이지만, 공장장은 이들 여성 노동자를 아주 손쉽게 해고했다고 합니다. ‘더 적은 돈만 주어도 될 다른 노동자’가 수두룩하게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1947년) 대구 지역 신문기자들이 해고 이유를 묻자 총무과장은 “전원 해고 이유는 재정 곤란인데 현재 여공 전원을 해고시키고 형무소 죄수를 쓰면 1인당 임금 67원을 단 10원으로 절약하여 죄수 5백 명을 사용할 수 있는 까닭”이라고 대답했다. (161쪽)


(1946년) 종연방직에서 행해진 신체에 가해진 폭력은 대죽으로 구타하기, 걸상 들기, 나체로 신체검사 따위였는데, 이는 폭력 피해자에게 수치감과 모멸감을 불러오는 체벌이었다. 곧 남한 최대의 방직공장이었던 종연방직은 여성 노동자의 신체에 대한 규율과 폭력을 통해 이들을 자본에 순응하고 말 잘 듣는 노동자로 만들고자 했다. (182쪽)



  이 나라 사내는 왜 평등이나 평화나 민주로 가는 길하고는 동떨어질까요. 어릴 적부터 평등이나 평화나 민주를 배운 적이 없기 때문일까요. 나이가 든 뒤에도 평등이나 평화나 민주를 배울 생각을 스스로 안 했기 때문일까요.


  공공기관에서 높은 자리를 맡기는 까닭은 일을 잘 하라는 뜻입니다. 뒷돈을 빼돌리라고 높은 자리를 맡기지 않습니다. 그러나 한국 사회에서 높은 자리에 앉은 이들을 비롯해서 낮은 자리에 앉은 이들까지 온갖 정책이나 사업이나 공사에서 뒷돈을 으레 빼돌렸습니다. 오늘날에도 이런 일은 멈추지 않고, 일제강점기나 해방 언저리나 1970년대 새마을운동이 한창이던 때에도 이러한 흐름은 사그라들지 않았습니다.


  곰곰이 돌아볼 노릇입니다. 사내들이 집안일을 할 줄 안다면 이런 일이 생겼을까 하고. 사내들이 집 바깥만 나돌면서 지내기만 하지 않고, 집에서 아이를 돌보고 가르치는 일을 함께 맡았어도 이런 짓을 일삼았을까 하고.


  아이를 돌보고 가르치는 일을 가시내한테만 맡긴 사내입니다. 아버지 자리에 서는 사내는 으레 집 바깥에서 돈만 버느라 바쁩니다. 아버지로서 아이한테 말을 가르치거나, 삶을 보여주거나, 사랑을 물려주는 일이 아주 드뭅니다. 어쩌면, 아버지 자리에 설 사내는 말도 삶도 사랑도 모르는 탓에 ‘아이가 태어난 뒤’에도 아이 곁에서 아이를 따스히 돌보면서 살림을 가꾸는 일을 못 하는 셈이 아니랴 싶습니다. 이리하여, 삶을 모르기 때문에 사회에서도 삶과 동떨어진 일을 할는지 모릅니다. 삶도 사랑도 모르는 탓에 사회에서도 자꾸 엉뚱한 짓을 벌일는지 모릅니다.



미군정기 당시 미군 범죄는 총상, 강도, 절도, 주택 침입, 폭행, 상해, 교통사고, 밀매 따위로 다양했다. 그 가운데 성범죄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 미군 성범죄는 조선인 통역을 낀 채 대개 2∼3명이 무리를 지어 여성들을 차에 태워 다른 곳으로 이동하거나 납치하는 방식이거나 새벽에 민가를 침입하는 형태로 이루어졌다. (246쪽)


법령 제70호인 인신매매 금지령의 이중성이 오히려 ‘사창’을 증가시켰던 것처럼 법령 제72호 제70조 역시 성매매에 대한 미군정의 이중적 태도를 분명하게 드러냈다. 곧 미군에게 성병만 감염시키지 않는다면 성매매는 얼마든지 인정됐다. (303쪽)



  주한미군 범죄는 미군정 무렵부터 그치지 않습니다. 미군정기에 미군이 벌인 성폭력을 놓고 제대로 재판을 벌인 일이 드물다고 합니다. 재판장에 미군을 세웠어도 ‘성폭력’이 아닌 ‘폭력’으로만 다스렸다고 합니다. 그나마 재판장에 섰어도 거짓말만 하는 미군 손을 들어 주기 일쑤였다고 합니다.


  해방 언저리 한국 재판장에서 미군 범죄를 똑똑히 다스렸으면 그 뒤로 이 나라에 미군 범죄가 함부로 발을 붙이지 못했으리라 느낍니다. 미군 범죄뿐 아니라 다른 범죄도 그렇지요. 나라는 식민지에서 벗어났지만, 정치와 사회와 문화와 교육이 모두 식민지 틀에서 벗어나지 못해요. 일제강점기에 스며든 일본 말투는 아직도 한국 말투를 어지럽히기도 하지만, 이를 못 깨닫는 사람이 매우 많습니다. 일제강점기 제국주의 군대 같은 얼거리가 한국 군대와 사회에 아직도 또아리를 틉니다.


  바야흐로 평화를 헤아리지 않는다면 평화와 먼 모습이 됩니다. 평화와 함께 평등을 살피지 않는다면 평화도 평등도 뿌리를 내리기 어렵습니다. 평화와 평등을 가꾸면서 민주를 싹틔워서 자라도록 북돋우지 않는다면, 정치와 사회뿐 아니라 문화와 교육도 참다이 일어서기 어렵습니다.




여성의 직분이 현모양처라고 주장한 우익의 담론에는 여성해방에 대한 고민이 담겨 있지 않았으며, 여성해방에 대한 전망 또한 없었다. 그것은 여성해방을 주장하면서도 오히려 남녀 불평등을 온존시키는 기능을 했다. 여성해방은 뒤로한 채 국가 건설이라는 대의명분 아래 여성들을 다시 가정에 묶어 두려는 담론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담론은 (일제강점기에 일본 제국주의가 내세운) 총력전 체제 아래에서 여성 지식인의 현모양처론과 닮아 있다. (376쪽)



  《해방공간, 일상을 바꾼 여성들의 역사》라는 역사책은 새로운 역사책입니다.

 

  정치 지도자 몇 사람 발자국으로만 역사를 살피던 틀을 깨고서, 자료나 신문이나 문헌에 이름이 거의 안 남은 사람들 몸짓으로 역사를 읽자고 하는 책입니다. 역사를 수수한 사람들 마음과 꿈과 사랑을 바탕으로 읽자고 이야기하는 책입니다. ‘여성사’라고 할 적에도 몇몇 이름난 여성운동가 발자국으로 돌아보자고 하지 않고, ‘몇몇 운동가’를 넘어선 ‘모든 여성’이 선 자리에서 다시 헤아리자고 하는 책입니다.



고루한 전통을 고집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 단발을 찬성한 김활란과, 대중들과 만나 여성운동을 하기 위해 단발을 반대한 정종명. 한국 사회에서 김활란은 잘 알려져 있지만 정종명은 흔적조차 없다. (25쪽)



  오늘날에도 ‘집에서 밥 짓는 가시내’ 이야기는 역사책에 안 실립니다. 집에서 아기를 낳아서 돌보는 어머니 이야기는 역사책에서 안 다룹니다. 대통령이 된 여성 이야기는 머잖아 ‘새로운 국정 교과서’ 같은 역사책에서 다루겠지요. 그러나, 이 나라를 밑바탕에서 일구고 가꾸면서 ‘새로운 나라’가 아름답게 태어나서 자라기를 바라던 ‘수수하면서 사랑스러운 가시내’ 이야기는 국정 교과서에 실리지 않을 듯합니다.


  아마 나라에서는 ‘대통령이 된 여성’을 드높여야 여성 지위가 높아진다고 말할는지 모릅니다. 그렇지만, 수수한 집과 수수한 마을에서 수수한 살림을 가꾸는 가시내와 사내가 즐겁게 살림을 지을 때라야 비로소 여성 지위도 높아지고 남성 지위도 높아집니다. 가시내와 사내가 함께 살림을 지을 수 있을 때에 비로소 서로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으로 거듭납니다.


  밥짓기나 옷짓기는 가시내한테 떠넘길 일이 아니라, 사내와 가시내가 함께 즐기면서 누릴 일입니다. 집안일은 사람으로서 누구나 기쁘게 맡는 일입니다. 아름다운 보금자리가 있는 마을이기에 아름다운 나라가 섭니다. 아름다운 사람들이 아름다운 꿈과 사랑을 짓습니다. 인문책 《해방공간, 일상을 바꾼 여성들의 역사》는 바로 ‘여느 자리’에서 삶을 바꾼 여성이 ‘나라’도 문화도 정치도 모두 바꿀 수 있다고 하는 이야기를 나즈막한 목소리로 야무지게 외칩니다. 4348.11.12.나무.ㅅㄴㄹ


(최종규 / 숲노래 . 2015 - 시골에서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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