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자루


  읍내 가게에서 초를 사는데 ‘요즘 시대에 무슨 초를 사느냐? 섬에서 사느냐?’ 하는 말을 듣는다. 딱히 대꾸를 하지 않고 빙그레 웃기만 했다. 섬에 살면 전기가 안 들어와서 초를 써야 한다고 여길까? 시골에서든 도시에서든 초를 사든 성냥을 사든 무엇이 대수로운 일일까?

  아이들하고 하루에 한두 차례 촛불을 바라본다. 촛불을 바라보면서 내 마음 너머에 있는 숨결을 읽으려고 한다. 여느 때에는 글을 쓰는 책상맡에 촛불을 켠다. 때로는 낮에도 촛불을 켜기도 한다. 글을 쓰면서 온마음을 모아야 하면 초 한 자루를 켜곤 한다. 나로서는 촛불을 켠 채 글을 쓸 적에 마음을 한결 잘 다스릴 수 있다. 그리고, 겨울에는 초 한 자루를 밝힐 뿐이지만 퍽 따스하기도 하다. 4348.11.17.불.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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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아이 123. 2015.11.16. 유자알 쥔 웃음꽃



  꽃돌이가 유자알을 나른다. 꽃순이가 유자알을 통에 받으면, 꽃돌이는 한손에 한 알씩 쥐고 콩콩콩 풀밭을 달려서 바깥물꼭지 있는 곳에 있는 큰 통에 넣는다. 둘도 셋도 쥐지 않고 한손에 한 알씩 쥐고 싱글벙글 웃으면서 논다. 노는 꽃돌이 손에서 유자내음이 짙게 퍼지고, 일손도 톡톡히 거든다. 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꽃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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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새벽마다 우리 집에

휘파람새 검은등지빠귀 찾아와

어서 일어나렴

함께 놀자

고즈넉하며 우렁차게 부른다.


햇살이 차츰 퍼지고

햇볕이 따뜻하다.


풀잎마다 이슬이 앉았구나.

나무는 간밤에 무슨 꿈 꾸었나.

곁에 다가가서 귀를 기울인다.


물 한 잔 마시고

기지개 켜며

아침을 연다.



2015.11.8.해.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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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꽃(부추꽃) 씨앗이 터질 무렵



  솔꽃 씨앗이 터질 무렵 찬바람이 분다. 솔꽃 씨주머니는 차츰 벌어지면서 새까만 알을 둘레로 퍼뜨린다. 몇 포기 솔이 자라던 텃밭은 해마다 차츰 솔포기가 늘어나고, 해마다 솔꽃이 더 하얗게 핀 뒤에는 솔씨가 더 까맣게 퍼진다. 작은 꽃송이가 동그마니 모여 하얀 잔치를 이루던 솔꽃은 이제 까만 씨앗이 빼곡하게 들어찬 누르스름한 씨주머니가 되고, 가을이 차츰 저무니 겨울을 기쁘게 맞이하라고 알려준다.


  이 겨울이 찾아와서 솔씨가 흙 품에 깃들어 긴 잠을 자고 나면, 새로 맞이하는 봄에 싱그러이 돋는 솔잎은 새삼스레 우리 집 밥상에 오를 테지. 올 한 해 고마웠어. 이듬해에도 상큼하고 짙푸른 숨결을 베풀어 주렴. 4348.11.16.달.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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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들빼기는 아직 꽃을 피우고 싶어



  겨울이 코앞이지만 고들빼기는 아직 더 꽃을 피우고 싶다. 꽃이 져서 씨앗이 터지기도 하지만, 새로 봉오리를 터뜨리고 싶은 아이들이 꽃대에 가득하다. 늦가을에도 첫겨울에도 볕이 따뜻하다면 고들빼기는 씩씩하게 꽃송이를 벌려서 꽃내음을 나누어 주고 싶다. 이 늦가을에도 벌과 나비를 부르고, 곧 다가올 첫겨울에도 노랑나비와 팔랑나비가 꽃가루를 먹도록 온몸을 활짝 벌리고 싶다. 아침저녁으로 찬바람이 불지만 참말 나비가 날고, 아직 애벌레가 풀잎을 갉아먹는다. 이 아이들은 언제까지 이렇게 지낼 수 있을까. 아무래도 더 꽃을 피우고 싶은 고들빼기가 있고, 새로 돋아서 새로 꽃을 피우려는 유채와 갓이 있으니, 나비도 벌도 애벌레도 해야 해야 나오렴 하고 노래하면서 함께 어우러지겠지. 4348.11.16.달.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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