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우의 스케이트 익사이팅북스 (Exciting Books) 5
유모토 카즈미 지음, 호리카와 리마코 그림, 김정화 옮김 / 미래엔아이세움 / 2007년 6월
평점 :
절판


어린이책 읽는 삶 122



여우하고 들쥐가 서로 동무로 지내며

― 여우의 스케이트

 유모토 카즈미 글

 호리카와 리마코 그림

 김정화 옮김

 아이세움 펴냄, 2003.10.1. 7000원



  동무 사이라면 서로 아무것도 따지지 않습니다. 너와 내가 동무 사이라면 이른바 ‘조건’을 걸면서 따지지 않아요. 동무이니까요. 동무는 기쁘게 어깨동무를 하는 사이입니다. 동무는 함께 웃고 노래하면서 춤출 수 있는 사이입니다. 동무는 ‘네가 이렇게 해 주어야 나도 너랑 같이 있지’ 하고 말하지 않습니다. 동무라면 ‘그래, 우리 같이 있자’ 하고 말할 뿐입니다.



호수 한가운데는 색이 왠지 어둠침침하고 칙칙했습니다. 그리고 호수 건너편에는 아주 넓은 숲이 펼쳐져 있었습니다. 숲은 컴컴하고 빽빽했습니다. ‘저 숲에 가 보고 싶다. 저 커다란 숲에는 뭐가 있을가?’ (14쪽)


저녁놀이 비친 호수는 오렌지 맛이 나는 젤리 같았습니다. 여우는 손을 물에 살짝만 갖다 댔는데도 온몸이 달달 떨렸습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앞발을 다 담그고 일곱까지 셀 수 있었는제, 지금은 아무리 참아도 셋까지밖에 셀 수 없었습니다. (25쪽)



  유모토 카즈미 님이 빚은 어린이문학 가운데 하나인 《여우의 스케이트》(아이세움,2003)를 읽으면서 ‘동무 사이’를 새삼스레 돌아봅니다. 이 어린이문학은 ‘여우’가 주인공이고, 들쥐가 주인공하고 동무가 되는 숨결이며, 여우가 발에 끼워서 얼음을 지치는 스케이트가 수많은 동무하고 잇는 징검돌입니다.


  《여우의 스케이트》에 나오는 여우는 아직 새끼 여우인데, 어미 품에서 씩씩하게 잘 자란 뒤 처음으로 어미 품을 떠나서 홀로서기를 하려 합니다. 혼자서 숲을 달리고, 혼자서 먹이를 찾으며, 혼자서 꿈을 짓는 삶으로 나아가려 합니다. 그런데 혼자 먼먼 길을 나서다가 어느 날 숲 가장자리 못가에서 풀썩 쓰러져요. 지치고 힘들어서 그만 넋을 잃습니다.


  이때에 여러 숲짐승이 여우를 봅니다. 이 여우를 본 숲짐승은 살짝 망설이는 듯했지만 따스한 마음으로 여우를 돌보기로 합니다. 여우는 따스한 손길을 받고는 다시 기운을 차리는데, 기운을 차린 여우는 숲 가장자리 못가 마을에서 아주 개구진 짓을 하면서 설치고 놉니다.



“나도 먹어 본 적은 없어. 우리 할머니한테서 들었어. 그 열매는 머리칼이 쭈뼛해질 정도로 맛있대. 할머니가 어렸을 때 이 숲에 그 파란 열매가 열리는 나무가 딱 한 그루 있었대. 엄청나게 큰 나무에 열매가 주렁주렁 열리면 모두들 배부르도록 먹었대. 그 나무가 있었을 때는 이 숲도 이렇게 조용하지는 않았다고 할머니가 그러셨어.” (32∼33쪽)



  여우는 몸이 다 나았으나 ‘사는 재미’를 좀처럼 찾지 못합니다. 애써 홀로서기 길을 나섰으나 ‘심심한 곳’에 얽매인다고 느낍니다. 날이면 날마다 짓궂은 장난을 일삼습니다. 작고 여린 들쥐를 꽁꽁 묶어서 으르렁거리기도 합니다.


  그런데 작고 여린 들쥐는 여우가 무서우면서도 여우를 무서워하지 않습니다. 작고 여린 들쥐는 여우 속내는 막상 무척 보드랍고 너른 숨결이라고 느낍니다. 작고 여린 들쥐는 여우를 저한테 둘도 없이 살가운 동무로 여깁니다.


  여우는 처음에 작고 여린 들쥐를 그냥 잡아먹을 생각만 했지만, 이 작고 여린 들쥐가 저를 두려워하거나 무서워하지 않고 ‘동무로 여기는’ 모습을 보고는 그악스럽다고도 여기지만, 어느새 천천히 마음이 바뀝니다. 아니, 이제 막 철이 들려고 하는 ‘어미 품을 떠난 지 첫 해째인 새끼 여우’는 차츰 어른이 되면서 너르고 따스한 마음이 찾아든다고 할 만합니다.



솜사탕처럼 달지는 않았지만, 여우와 들쥐는 눈 맛이 나쁘지는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37쪽)



  들쥐는 쉬지 않고 여우한테 말을 겁니다. 여우는 들쥐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가만히 듣습니다. 이러면서 넓디넓은 못 너머에는 어떤 숲이 펼쳐질는지 궁금해 합니다. 아무도 저 못 너머로 갈 엄두를 내지 않지만, 여우는 숲 너머를 찾아가 보고 싶습니다.


  들쥐는 겨울이 되면 이 넓디넓은 못을 건널 수 있다고 알려줍니다. 여우는 왜 겨울에 이 못을 건널 수 있는지 아직 모르지만, 또 들쥐가 하는 말을 못 미덥게 여기지만, 드디어 겨울이 되어 못물이 꽁꽁 얼어붙으니 시나브로 깨닫습니다. 얼음판을 가로지르면 되는 일입니다.



들쥐는 젤리를 딱 하나만 먹고 나머지는 서랍장 깊이 잘 넣어 두었습니다. 여우가 돌아오면 같이 먹을 생각이었습니다. (53쪽)



  숲마을 숲동무가 모두 힘을 모아서 스케이트를 하나 마련했습니다. 여우가 떠나고 싶어 하는 먼 마실길에 쓰라고 스케이트를 선물합니다. 여우는 숲동무가 선물로 준 스케이트를 신고 꽁꽁 언 못을 지치며 나아갑니다. 뒤 한 번 돌아보지 않고 앞으로만, 자꾸 앞으로만 나아갑니다. 작고 여린 들쥐는 여우가 한 번이라도 뒤를 돌아보아 주기를 바라지만, 여우는 그야말로 뒤 한 번 안 돌아보고 내체 달리기만 합니다.


  여우는 못 너머로 건너간 뒤에 다시 이곳으로 돌아올까요? 들쥐는 저한테 둘도 없는 동무라고 여기는 여우를 다시 만날 수 있을까요? 다른 숲짐승은 모두 여우가 다시 안 돌아오리라 여깁니다. 오직 들쥐만 여우가 꼭 돌아와 주리라 하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겨울이 저물고 봄이 되려 하기까지 여우는 돌아올 낌새가 없습니다. 봄이 되어 얼음이 녹으면 이곳으로 다시 건너올 수 없는데 들쥐는 동무를 잃었다는 생각이 슬픕니다.



그때 작은 숲에서 나무가 일제히 흔들렸습니다. 호수에 작은 물결이 일었습니다. 여우와 들쥐는 향긋한 바람을 한껏 들이마셨습니다. (74쪽)



  어린이문학 《여우의 스케이트》에 나오는 여우는 얼음이 모두 녹는 날 아슬아슬하게 들쥐 곁으로 돌아옵니다. 여우는 등에 큰 나무 한 그루를 짊어지고 돌아옵니다. 여우가 짊어진 나무는 들쥐가 할머니한테서 이야기로만 듣던 열매 나무입니다. 여우는 들쥐가 저한테 얼마나 사랑스러운 동무인가를 찬찬히 알아차렸습니다. 그래서 저한테 사랑스러운 동무가 바라고 꿈꾸던 ‘들쥐 할머니가 이야기한 열매 나무’를 숲 너머에서 찾아다녔다고 합니다. 이 열매 나무가 있으면 이곳 숲짐승 모두 맛난 열매를 실컷 누릴 수 있으리라 여겼다고 합니다. 들쥐뿐 아니라 다른 숲짐승한테도 고마운 뜻을 돌려주고 싶었을 테지요.



“야, 참말 맛있다! 여우야, 어쩜 넌 이렇게 나무 열매를 잘 따니. 넌 참말 참말 대단한 여우야.” 들쥐는 자기가 묶인 줄도 잊은 채 감탄했습니다. (29쪽)



  여우와 들쥐 사이에 따스한 마음은 언제부터 싹이 텄을까요? 아마 여우가 들쥐를 꽁꽁 묶으며 괴롭히던 때에도 들쥐가 여우한테 늘 상냥하게 말을 걸고 ‘여우로서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여기는 일’을 들쥐가 몹시 고마워하는 몸짓을 늘 느끼면서, ‘어미 여우한테서 홀로서기를 하려던 마음’에 문득 ‘사랑이라고 하는 씨앗이 싹이 텄’으리라 봅니다. 이때에 싹이 튼 작은 씨앗인 사랑은 무럭무럭 자라서 새끼 여우가 이제는 ‘의젓하게 철이 든 어른 여우’로 거듭나는 밑거름이 되었구나 싶어요.


  참말로 사랑이란 아무것도 토를 달지 않습니다. ‘조건 없는 마음’이기에 사랑입니다. 동무 사이에서도 토를 달 까닭이 없습니다. 짝을 짓는 두 사람뿐 아니라, 어깨를 겯는 두 사람 사이에서도 토를 달지 않으면서 빙그레 웃고 노래하기에 동무가 되면서 사랑이 흐릅니다.


  아이들이 어버이한테 바라는 마음도 바로 이 ‘토를 안 다는 사랑’이리라 봅니다. 어버이가 아이들한테 물려주거나 가르치거나 보여줄 수 있는 마음도 바로 이 ‘토를 안 다는 사랑’이리라 느낍니다. 사랑이 싹트는 자리에서 웃음하고 노래가 흐릅니다. 사랑이 싹트는 두 사람은 기쁘게 손을 맞잡으면서 춤을 추고 삶을 새롭게 짓습니다. 4348.11.20.쇠.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어린이문학 비평)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우리 말을 죽이는 외마디 한자말

 권하다 勸


 해외 유학을 권했지만 → 외국 유학을 하라고 했지만 / 외국 유학을 부추겼지만

 부모들이 권하는 대로 → 부모들이 시키는 대로 / 부모들이 하라는 대로

 술을 권하다 → 술을 들라고 하다 / 술을 마시라고 하다

 담배를 권하다 → 담배를 피우라 하다 / 담배를 건네다

 음식을 권하면서 → 음식을 들라 하면서 / 음식을 먹으라 하면서


  ‘권하다(勸-)’는 “1. 어떤 일을 하도록 부추기다 2. 음식, 담배, 물건 따위를 먹거나 피우거나 이용하라고 하다”를 뜻한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부추기다’나 ‘하라고 하다’나 ‘하라고 말하다’를 가리키는 셈입니다.


  1920년대에 나온 소설 가운데 현진건 님이 쓴 〈술 권하는 사회〉가 있습니다. 소설에 붙은 이름은 오늘날에도 널리 쓰이는데 “술을 권하는 사회”란 “술을 마시라 하는 사회”이거나 “술을 부추기는 사회”인 셈입니다. “술을 건네는 사회”요 “술을 내미는 사회”이지요. 4348.11.19.나무.ㅅㄴㄹ



서울에 다녀올 것을 권했다

→ 서울에 다녀오라고 말했다

→ 서울에 다녀오라고 얘기했다

→ 서울에 다녀오라고 했다

《양희은-이루어질 수 있는 사랑》(우석,1993) 189쪽


여행을 권한다

→ 여행을 하라고 말한다

→ 여행을 하라고 한 마디 한다

→ 여행을 해 보라고 말한다

→ 여행을 부추긴다

→ 여행을 이야기한다

《신경숙-아름다운 그늘》(문학동네,1995) 112쪽


일기 쓰는 일을 권하고 싶다

→ 일기 쓰는 일을 해 보라 말하고 싶다

→ 일기 쓰기를 하라고 말하고 싶다

→ 일기를 쓰라고 말하고 싶다

→ 일기를 써 보라 얘기하고 싶다

→ 일기 쓰기를 바란다

《가와이 에이지로/이은미 옮김-대학인, 그들은 대학에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유원,2003) 28쪽


책을 권하고 싶다

→ 책을 쥐어 주고 싶다

→ 책을 안겨 주고 싶다

→ 책을 읽히고 싶다

→ 책을 읽으라 말하고 싶다

→ 책을 알려주고 싶다

《이주영-어린이책 100선》(너른들,2003) 80쪽


들쥐도 억지로 권하지는 않았습니다

→ 들쥐도 억지로 먹으라 하지는 않았습니다

→ 들쥐도 억지로 내밀지는 않았습니다

→ 들쥐도 억지로 주지는 않았습니다

→ 들쥐도 억지로 쥐어 주지는 않았습니다

《유모토 카즈미/김정화 옮김-여우의 스케이트》(아이세움,2003) 69쪽


선생님은 아저씨에게 의자를 권하며 말했다

→ 선생님은 아저씨한테 걸상을 내주며 말했다

→ 선생님은 아저씨한테 걸상을 밀어 주며 말했다

→ 선생님은 아저씨한테 걸상을 가리키며 말했다

→ 선생님은 아저씨한테 걸상에 앉으라 하며 말했다

→ 선생님은 아저씨한테 걸상에 앉으라고 했다

《최연식-웅이의 바다》(낮은산,2005) 99쪽


철학책을 권했지만

→ 철학책을 건넸지만

→ 철학책을 내밀었지만

→ 철학책을 읽으라 했지만

→ 철학책을 보라 했지만

→ 철학책을 말했지만

《김담-그늘 속을 걷다》(텍스트,2009) 82쪽


(최종규/숲노래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말넋)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2015-11-20 08: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1-20 08: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우리집배움자리 70. 꽃을 들고 걷다



  마을 한 바퀴를 돌면서 꽃을 들고 걷는다. 논둑길에 핀 꽃을 꺾은 두 아이는 저마다 빙글빙글 웃으면서 걷는다. 그저 바라보아도 싱그러운 꽃은 한손에 한 송이씩 쥐면서 더욱 싱그럽다. 꽃순이는 세 송이를 꺾은 뒤 한 송이는 아버지한테 준다. 다른 한 송이는 집으로 가서 어머니한테 주겠노라 한다. 꽃돌이는 아직 제 몫을 챙길 뿐이지만, 머잖아 꽃순이 누나처럼 다른 식구 몫을 헤아릴 수 있을 테지. 들꽃 한 송이는 들꽃내음을 베풀면서 들바람을 함께 나누어 준다. 들꽃 두 송이는 두 아이한테 들꽃빛을 밝히면서 들사랑을 고루 흩뿌려 준다. 언제 어디에서나 꽃을 볼 수 있으면 꽃마음을 가꾸는 꽃아이로 자라리라 느낀다. 우리가 심는 꽃을 보고, 들꽃 스스로 씨앗을 퍼뜨려서 피어나는 꽃도 함께 보면서 우리 이웃을 가만히 돌아본다. 4348.11.19.나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모둠 모둠 산꽃 도감
김병기 지음 / 자연과생태 / 2013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숲책 읽기 90



꽃하고 함께 살아야 꽃이름을 안다

― 모둠 모둠 산꽃도감

 김병기 글·사진

 자연과생태 펴냄, 2013.5.27. 33000원



  어릴 적에 어머니하고 나들이를 다니면 재미있고 즐거웠습니다. 어머니와 나들이를 다니면서 “어머니, 이 꽃은 이름이 뭐예요?”라든지 “어머니, 이 풀은 뭐예요?” 하고 뻔질나게 여쭈었습니다. 어머니는 늘 이름을 알려주셨고, 잘 모르시겠으면 모른다고 하셨습니다.


  어머니가 꽃이름이나 풀이름을 알려주어도 몇 차례 듣고는 제대로 떠올리지 못했습니다. 요즈음은 꽃도감이나 풀도감이 꽤 많이 나오지만, 1980년대에는 마땅한 꽃도감을 찾기도 어려웠고, 이런 책을 내려고 하는 출판사도 드물었어요. 그나저나 아무리 이름을 외우려고 하더라도 잘 못 외우겠더군요. 그무렵에는 꽃이름이나 풀이름을 왜 외우기 어려운지 제대로 몰랐습니다. 꽃이나 풀을 그리 안 좋아해서 이름을 못 외울 수도 있지만, 꽃이나 풀하고 언제나 함께 사는 하루가 아니었으니 이름을 알기 어려울밖에 없기도 합니다.


  이를테면, 나물로 먹는다든지 짐승한테 뜯어서 준다든지 했다면 꽃이름이나 풀이름을 잊을 수 없습니다. 아마 나 스스로 온갖 이름을 꽃하고 풀한테 붙여 주었을 테지요.



돌나물은 씨앗을 잘 맺지 않는 성질이 있으며, 포기를 뽑아 버려두어도 말라죽지 않고 마디에서 뿌리를 내리며 살아갈 정도로 강인하다. 주로 양지바른 돌 틈에서 자라고, 나물로 이용할 수 있어 돌나물이라는 이름이 붙었으며, 돗나물 또는 돈나물이라고도 부른다. (30쪽)


(둥근바위솔은) 예전에는 동해안의 방품링 밑이나 바위틈에서 많은 개체가 흔하게 발견되었으나 암 치료 좋다는 속설 때문에 자생지가 훼손되어 지금은 찾아보기 어렵다. (38쪽)




  김병기 님이 글하고 사진으로 묵직하면서 야무지게 묶은 《모둠 모둠 산꽃도감》(자연과생태,2013)을 읽습니다. 책이름처럼, 이 ‘산꽃도감’은 멧꽃(산꽃)을 모둠으로 엮어서 보여줍니다. 꽃을 하나씩 따로 떼어서 살피지 않고, 비슷한 갈래에 있는 꽃을 한자리에 모아서 보여주지요.


  가만히 돌아보니, 이제껏 나온 수많은 꽃도감은 ‘비슷한 갈래’를 묶기는 하더라도, 이 꽃도감처럼 낱낱이 견주어서 저마다 어떤 풀이나 꽃인가를 제대로 알려주는 구실까지는 못했구나 싶습니다. 참말로 들이나 숲에는 비슷해 보이는 꽃하고 풀이 많거든요. 그래, 이 아이는 이 꽃이었지 하고 똑똑히 가르기 어려울 만하다고 할까요.



(백작약은) 커다란 흰 꽃이 피어나는 모양이 함박웃음을 짓는 것 같다고 함박꽃이라 부르기도 한다. (81쪽)


들바람꽃은 경기도 북부와 백두대간 중부 이북지역 일부 높은 지대의 한정된 장소에만 자생해 만나기 어렵다. 우리나라에서와 달리 중국 동부지역과 러시아에서는 습기 있는 들판에서 자상해 들바람꽃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107쪽)



  ‘백작약’은 ‘함박꽃’이라고도 한다는데, 문득 이런 꽃이름은 몇 해쯤 되었을까 하고 헤아려 봅니다. 이를테면, 오백 해 앞서 한겨레 옛사람은 그 꽃을 보며 어떤 이름으로 가리켰을까요? 천 해나 이천 해 앞서 한겨레 옛사람은 어떤 이름으로 꽃 한 송이를 가리켰을까요? 한자가 들어오기 앞서 ‘백작약’이라는 이름을 쓴 사람은 없습니다. 그렇지만 함박웃음이나 함박이나 함지박 같은 낱말은 아주 오래되었습니다.


  ‘들바람꽃’이라는 이름을 곰곰이 헤아려 봅니다. 들에 피는 꽃이면서 바람하고 얽힌 꽃이기에 들바람꽃일 테지요. 그야말로 수수한 이름이면서 수수한 꽃입니다. 오늘날에는 이 들바람꽃을 찾아보기 어렵다고 하는데, 백 해나 이백 해 앞서는 어떠했을까요? 그때에도 이 들꽃이나 멧꽃은 찾아보기 어려웠을까요? 오백 해나 천 해 앞서도 이 들바람꽃을 만나기 어려웠을까요?




바디는 예전에 베나 가마니를 짤 때 날줄에 씨줄이 촘촘하게 짜지도록 하는 역할을 하는 직기의 구성품이며 빗살 모양으로 생겼다. 바디나물의 줄기에 난 세로줄이 이 바디의 빗살을 닮아 바디나물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214쪽)


(매미꽃은) 뿌리부터 뭉쳐서 올라오는 잎은 작은잎 3∼7개로 구성된 홀수깃꼴겹잎으로 잎 가장자리에 피나물보다 깊고 날카로운 톱니가 있고, 줄기를 자르면 붉은색 유액이 나온다. 이 액체 색깔로 보아 피나물과 이름이 뒤바뀐 듯한 생각이 들기도 하며. (235쪽)



  꽃하고 함께 살면 꽃이름을 잘 압니다. 풀하고 함께 살면 풀이름을 잘 알아요. 나무나 물고기나 새나 벌레가 어떤 이름인가 궁금하다면, 나무나 물고기나 새나 벌레하고 함께 살면 돼요. 함께 살기에 이름을 압니다.


  오늘날 아이들은 거의 다 도시에서 태어나 도시에서 살지요. 도시에서 나고 자란 아이들한테는 ‘자동차 이름’이나 ‘아파트 이름’이 낯익습니다. ‘가게 이름’이나 ‘갖가지 공산품 이름’이 낯익지요. 도시에서 늘 보는 것이 자동차요 아파트요 가게요 공장 제품이니까요.


  《모둠 모둠 산꽃도감》을 빚은 김병기 님이 멧꽃에 흠뻑 빠져들었다고 해요. 그래서 골골샅샅 골짜기와 멧자락을 뒤지고 다닐 뿐 아니라, 아예 스스로 씨앗을 받아서 멧꽃을 심어서 돌본다고 합니다. 다시 말하자면, 김병기 님 스스로 멧꽃하고 함께 누리는 삶을 짓기 때문에 멧꽃을 알뜰살뜰 가눌 줄 알고, 이처럼 모둠으로 그러모아서 여러 멧꽃을 나란히 살피는 이야기를 들려줄 만하구나 싶습니다.



눈개승마 잎은 승마의 잎과 닮았지만 미나리아재비과의 승마속과는 관계가 없는 식물이므로 눈개승마라는 이름이 붙었다. 울릉도에서는 어릴 때의 잎 모양이 산삼을 닮았다 해 삼나물이라 부르고, 깊은 산속에서 자라므로 눈산승마라 부르기도 한다. 강원도 산촌에서는 봄에 삐쭉 내민 새싹을 노인들도 쉽게 뜯을 수 있다 해 삑쭉바리라고 부른다. (251쪽)


금낭화는 비단주머니처럼 아름다운 꽃이라는 뜻이다. 모란처럼 아름다운 꽃을 피우지만 꽃줄기가 등처럼 휘어진다 해 등모란 또는 덩굴모란이라 부르기도 한다. 강원도 산촌에서는 꽃의 생김새가 예전에 여인네들이 치마 속에 차고 다니던 복주머니를 닮았다 해 며느리주머니라 부르기도 하고, 나물로 먹을 수 있다 해 며늘취라 부르기도 한다. (304쪽)




  먼 옛날부터 꽃이나 풀에 붙인 이름은 고장과 고을과 마을마다 다릅니다. 때때로 꽃이나 풀을 놓고 똑같은 이름을 쓰기도 하지만, 거의 모든 꽃이나 풀을 놓고 사람마다 다르게 이름을 붙입니다. 왜냐하면 고장마다 말이 달라 고장말이고, 고장에서도 고을마다 말이 달라 고을말이며, 고을에서도 마을마다 말이 달라 마을말이기 때문입니다.


  흔히 사투리라고 하지만, 곳에 따라 쓰는 말이 다를 수밖에 없기에 우리가 쓰는 모든 말은 사투리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표준말은 다 다른 사투리를 쓰는 사람들이 다 같은 한 가지 말을 익혀서 생각을 나누자는 뜻으로 세웁니다. 이를테면 ‘민들레’나 ‘냉이’는 표준말로 쓰는 이름이 되지요. 도감에는 이런 표준말 이름이 오르고요. 학문을 하는 이들이 이런 표준말 이름으로 꽃이나 풀을 살핍니다.


  이 대목에서 우리가 한 가지를 잘 살필 수 있어야 합니다. 현대 학문 틀거리에서는 학계에 처음으로 어느 꽃이나 풀을 알린 사람이 학술 이름에 이녁 이름을 나란히 적곤 합니다. 식물학자나 생물학자는 ‘학계에 알려지지 않은 꽃이나 풀’을 살펴서 맨 먼저 보고서로 올리면 이녁 이름이 꽃이나 풀에 붙는 학술 이름에 나란히 붙을 텐데, 학자가 그 꽃이나 풀을 학계에 올리는 일은 맨 처음일는지 모르나, 그 고장이나 고을이나 마을에서 사는 사람은 먼 옛날부터 그 꽃이나 풀을 보고 살피고 누리고 함께하기 마련입니다.


  왜 그러한가 하면, 꽃이나 풀이나 나무를 놓고, 또 벌레나 물고기나 새나 짐승을 놓고, 거의 하나도 빠짐없이 ‘오래된 이름’이 있습니다. 한국뿐 아니라 중국이나 일본도 이와 같습니다. 모든 겨레는 저마다 ‘오래된 이름’이 있어요. 이러한 이름은 먼먼 옛날부터 그 꽃이나 풀이나 나무나 벌레나 물고기나 새나 짐승을 눈여겨보았다는 뜻이면서, 사람들하고 이웃이 되는 숨결로 함께 살았다는 뜻입니다.




(솜다리는) 이름의 ‘다리’는 순 우리말로 예전에 여인네들이 머리숱이 많아 보이게 하기 위해 덧대던 땋은 머리를 뜻한다. 꽃차례가 다리를 넣은 것처럼 탐스럽다고 붙인 것이다. (395쪽)


(산부추는) 전국에 분포하며 조금 깊은 산속의 햇빛이 잘 들고 물 빠짐이 좋은 사질토양에서 다른 식물과 함께 자란다. 잎은 긴 송곳 모양으로 생겼으며 단면은 삼각형이고 2∼3장이 위쪽으로 비스듬히 퍼지며 자란다. 잎이 기다랗고 소나무 잎처럼 생겨 솔나물 또는 산솔나물이라 부르기도 한다. (512쪽)



  듬직하면서 예쁘장한 《모둠 모둠 산꽃도감》은 그저 멧꽃 이름을 잘 가누거나 살피는 길잡이 구실만 하지 않습니다. 숲을 아끼고 들을 사랑하며 시골을 보듬을 줄 아는 손길로 곁에 둘 책이라고 느낍니다. 모든 풀은 약풀이라는 오래된 시골말처럼, 모든 꽃은 사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모든 나무는 다 함께 모여서 숲을 이룹니다. 모든 사람은 오순도순 살림을 꾸리면서 마을을 이루지요.


  우리 삶을 둘러싼 수많은 꽃과 풀은 우리한테 밥도 되고 약도 됩니다. 우리가 밥이나 약으로 삼지 않아도 숲짐승이나 풀벌레는 이 꽃과 풀을 밥이나 약으로 삼습니다. 사람들이 가까이하지 않아도 꽃가루받이가 되어 씨앗을 퍼뜨릴 수 있는 까닭은 벌이랑 나비랑 벌레가 그 꽃한테 찾아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숲이나 들에는 몇 가지 꽃이나 풀만 있을 수 없어요. 그야말로 온갖 꽃이랑 풀이 함께 어우러지기에 비로소 숲입니다. 이 꽃하고 저 풀이 나란히 어깨동무를 하면서 자라기에 아름다운 숲이지요.


  천연기념물이나 보호종이 된 멧꽃을 함부로 캐려는 사람이 나타나지 않기를 빕니다. 천연기념물이나 보호종이 아닌 산국이나 들국이라 하더라도, 함부로 풀약으로 죽인다거나 시멘트를 들이부어서 없애는 몸짓은 나오지 않기를 빕니다. 눈으로 볼 적에는 눈부신 기쁨을 베푸는 꽃을 사랑할 수 있기를 빌고, 코와 살갗으로는 맑고 고운 냄새와 바람을 베푸는 꽃을 아낄 수 있기를 빌어요. 시골이나 숲이나 멧자락에서뿐 아니라, 도시에서도 올망졸망 들꽃이나 멧꽃이 씨앗을 퍼뜨리면서 다 함께 기쁨을 나눌 수 있기를 빕니다. 4348.11.19.나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에서 책읽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적' 없애야 말 된다

 의무적


 의무적 규정 → 의무 규정 / 꼭 지킬 규정 / 마땅히 지킬 규정

 의무적인 만남 → 의무 같은 만남 / 꼭 지킬 만남

 의무적으로 참석해야 → 꼭 참석해야 / 반드시 함께해야

 의무적으로 사용해야 → 꼭 써야 / 반드시 써야


  ‘의무적(義務的)’은 “마음이 어떻든 상관없이 해야만 하는”을 뜻하고, ‘의무(義務)’는 “사람으로서 마땅히 하여야 할 일”을 뜻한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한국말로는 “꼭 해야 하는”이나 “마땅히 해야 할”이나 “반드시 할”로 손질해서 쓰면 됩니다. ‘의무’라는 한자말을 꼭 써야 한다면 이 낱말을 쓰되 ‘-적’을 털면 되고요. 글흐름을 살펴 “누구나 지켜야 하는”이나 “억지로”나 “구태여”나 “짐스러운”으로 풀어내 볼 수 있습니다. 4348.11.19.나무.ㅅㄴㄹ



그의 자작시를 의무적으로 읽지 않으면

→ 그가 쓴 시를 억지로 읽지 않으면

→ 그가 쓴 시를 억지라로도 읽지 않으면

→ 그가 쓴 시를 울며 겨자먹기로 읽지 않으면

→ 그가 손수 쓴 시를 꼭 읽지 않으면

→ 그가 애써 쓴 시를 읽지 않으면

《김수영-퓨리턴의 초상》(민음사,1976) 218쪽


학교교육을 의무적인 것으로 만들 만큼

→ 학교교육을 의무로 삼을 만큼

→ 학교교육을 반드시 받도록 할 만큼

→ 학교교육을 꼭 받게 할 만큼

→ 학교를 반드시 다니도록 할 만큼

→ 학교를 꼭 다니게 할 만큰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허울뿐인 세계화》(따님,2000) 101쪽


의무적인 시간이 끝난 뒤

→ 의무 같은 시간이 끝난 뒤

→ 짐 같은 시간이 끝난 뒤

→ 짐스러운 시간이 끝난 뒤

→ 억지스럽던 시간이 끝난 뒤

《린다 멀랠리 헌트/강나은 옮김-나무 위의 물고기》(책과콩나무,2015) 186쪽


(최종규/숲노래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말넋)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