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은 왜 자동차를 만드는가 - 구글 vs 도요타, 자동차의 미래를 선점하기 위한 전쟁의 시작
이즈미다 료스케 지음, 이수형 옮김 / 미래의창 / 2015년 11월
평점 :
절판



책읽기 삶읽기 215



자가용 생각이 없는 사람한테 ‘자율운전 자동차’는?

― 구글은 왜 자동차를 만드는가

 이즈미다 료스케 글

 이수형 옮김

 미래의창 펴냄, 2015.11.20. 13000원



  나는 마흔 해 남짓 살며 아직 자동차를 안 몹니다. 다만, 나는 자전거를 몹니다. 내 삶을 돌아보면 스무 해 남짓 늘 자전거를 몰았습니다. 아이들을 낳아 돌보면서도 언제나 자전거를 몰고, 두 아이를 자전거에 태우고 함께 돌아다닙니다. 아이들이 크면 자전거에 못 태우지 않느냐고 묻는 이웃이 있으면, 아이들이 아버지 자전거에 함께 타고 달리기 힘들 만큼 자라면 아이들 스스로 자전거를 달릴 테니 그때에는 그때대로 즐거운 삶이 되리라 느낍니다.


  또 누군가는 묻습니다. 쉰 살이 넘고 예순 살이 넘어도 자전거를 몰겠느냐고. 나로서는 예순 살이 아닌 일흔 살이나 여든 살에도 자전거를 못 몰 까닭이 없다고 느낍니다. 그리고, 자전거는 빨리 달리려고 몰지 않습니다. 내가 가려고 하는 데를 가려고 몹니다.


  여기에 누군가는 더 묻습니다. ‘요즘 같은 세상’에 자동차 없는 집이 어디 있느냐고. 그래요, 요즘 같은 세상에 텔레비전도 안 키우고 자동차도 안 거느리는 집은 몹시 드물 테지요. 아직 나는 자동차가 나한테 쓸모있으리라 느끼지 않으니 안 몰 뿐인데, 나한테 자동차가 생기더라도 ‘내가 손수 자동차를 몰’ 마음은 조금도 없습니다.



자동차 제조사들에게는 자동차에 흥미를 잃은 젊은이들이 관심을 갖게 하는 것보다 자동차 운전이 어려운 고령자를 어떻게 줄여 나갈지가 더 중요한 과제일 수도 있다. (19쪽)


자율주행 자동차의 구동 플랫폼에서 동력원이 바뀌면 에너지 회사의 역할도 달라진다. 지금처럼 더 이상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지 않으면 석유회사의 사업 모델은 달라질 수밖에 없다. (33쪽)



  이즈미다 료스케 님이 쓴 《구글은 왜 자동차를 만드는가》(미래의창,2015)를 읽으면서 자동차를 새삼스레 돌아봅니다. 그야말로 두멧시골에서 살기에 우리 집에 자동차가 있으면 한결 수월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는 하되, 딱히 자동차가 삶을 북돋아 준다고는 느끼지 않습니다. 그래도 우리 같은 살림에 자동차를 누군가 준다면, 또는 내가 돈을 더 많이 벌어서 자동차를 장만하여 굴리려 한다면, 나는 이때에 참말 내 손으로 자동차를 몰 생각이 없습니다. 따로 운전수를 두면 모르되, 내 손은 ‘글을 쓰고 책을 읽고 아이들을 어루만지고 살림을 가꾸는 길’에 쓸 생각입니다. 내 손을 ‘운전대를 잡는 손’으로 쓸 마음이 없습니다.


  《구글은 왜 자동차를 만드는가》는 ‘구글’이라는 회사가 꽤 예전부터 목돈을 들여서 힘을 쏟는 ‘자율주행 자동차’를 다룹니다. 다만, 이 책을 쓴 분은 일본사람이고, 일본에 있는 ‘도요타’라고 하는 큰 자동차 회사를 한복판에 놓고서 자율주행 자동차를 다루려 합니다. 구글은 자동차 회사도 아니지만 벌써 자율주행 자동차를 놓고 도요타보다 몇 걸음이 훌쩍 앞서간다고 하는 이야기를 다룹니다.



구글은 수익률이 매우 높은 기업이지만, 현재 모습은 검색엔진을 축으로 한 인터넷 광고 기업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구글은 자신들이 강점을 지닌 ICT와 자율주행 자동차를 결합시켜 가까운 미래 사회를 움직일 시스템을 구축함으로써 주도권을 쥘 수 있다고 본다. (22쪽)


일본의 자동차 산업 관계자들은 그동안 전기자동차나 연료전지차에 대해 냉담한 태도를 보였다. 이는 다분히 기득권적 발상에 따른 것이다. (45쪽)



  자율주행 자동차가 나온다면 어떻게 될까요? 무엇보다 사람들이 스스로 운전대를 잡지 않아도 됩니다. 사람들이 스스로 운전대를 안 잡으면 무엇이 바뀔까요? 첫째, 면허증이 사라지겠지요. 운전면허를 시험으로 치러야 할 일이 사라지겠지요. 어린이를 비롯해서, 몸이 아픈 사람이나 나이가 많이 들어 걷기도 힘든 사람까지 자동차를 걱정없이 타겠지요. 아이를 혼자 자동차에 태워도 ‘시스템’이 ‘프로그램에 넣은 대로’ 태울 수 있습니다. 앞을 못 보는 사람도, 걷지 못하는 사람도, 누구나 자율주행 자동차로 도움을 받을 만합니다.


  더욱이, 자율주행 자동차는 석유가 아닌 전기로 달립니다. 자율주행 자동차가 나오면 주유소는 모두 문을 닫아야 할 판인데다가, 석유회사는 돈벌이가 하루아침에 사라집니다. 이러면서 ‘석유에 기대던 문명’은 그야말로 와르르 무너지면서 새로운 사회가 일어설 만합니다.


  여기에다가, 자율주행 자동차는 ‘면허증 있는 어른’이 몰지 않기 때문에 ‘자동차 사고’를 걱정할 일이 없기 마련입니다. ‘자가용을 모는 사람’한테는 아무 책임이 없기 때문에 보험회사는 돈벌이를 어마어마하게 잃겠지요. 다시 말하자면, 자율주행 자동차는 모든 보험회사한테 무시무시한 목숨앗이라 할 만합니다. 사람들은 보험료를 낼 걱정이나 짐이 없이 느긋하게 자가용을 거느릴 만합니다.



테슬라가 지향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운전자가 주체이며 자율주행을 할 때에도 운전자가 주체적으로 조작한다. 반면, 구글의 자율운전은 주체가 운전자라기보다 자율운전 시스템의 운영자다. 그리고 그 운영자는 당연히 구글이다. (60∼61쪽)


새로운 경쟁 영역에서 도요타의 경쟁사는 구글이나 테슬라다. 더 이상 폴크스바겐이 아니다. (121쪽)



  다만, 자율주행 자동차를 만들어서 자리잡도록 하려는 구글 회사는 ‘자율주행 얼거리’를 구글이 다스리려고 생각합니다. 운전자가 모는 자동차가 아니라, ‘시스템이 모는 자동차’이기 때문에, 모든 정보와 기록이 ‘시스템 운영자’한테 넘어가지요. 이렇게 할 수 있으면, 구글은 이제껏 벌어들이는 수익을 훨씬 뛰어넘는, 그야말로 가없는 수익을 끝없이 거두어들일 만합니다. 자율주행 자동차는 ‘그냥 자동차’가 아니라 ‘자동차를 빌어서 누리는 삶’을 모두 손아귀에 쥐고서 움직일 수 있는 권력이라고까지 할 만합니다. 시스템 운영자가 ‘멈춰!’ 하면 모든 자율주행 자동차는 그 자리에 꼼짝없이 멈추어야 할 테니까요.



자율주행 시스템에서 사고가 났을 때 탑승자의 책임이 없다면 이는 보험사에게도 엄청난 변화를 몰고 온다. 이 시스템에서 가동되는 자동차가 사고를 일으켜도 책임을 묻지 않는다면 자동차 보험에 가입할 필요가 없다. 보험사는 자율주행 시스템의 운영자와 보험 계약을 맺을 뿐이다. (140쪽)



  시골에서 사는 우리 집으로서는 자율주행 자동차는 까마득히 먼 이야기라고 여길 수 있습니다. 자율주행 자동차가 나오더라도 한동안 큰도시에서만 쓸 수 있을 테니까요. 자율주행 자동차가 자리를 잡는다면, 곧 자율주행 비행기가 나올 테고, 자율주행 자동차나 비행기는 ‘고속도로’를 가볍게 뛰어넘으리라 느낍니다. 공항까지 가야 타는 비행기가 아니라, 작은 역(지점)에서 다른 작은 역(지점)으로 가볍게 날아가면서 사고 걱정이 없는 얼거리가 자율주행 비행기가 될 터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되면, 오늘날 한국 사회 곳곳에서 벌어지는 ‘대형 토목공사’도 부질없을 만합니다. 고속도로가 늘어나야 할 사회가 아니라, ‘자율주행 얼거리’를 제대로 갖추는 사회로 거듭나겠지요.


  앞으로 언제쯤 자율주행 자동차가 나올는지 알 길은 없습니다. 다만, 구글 회사는 벌써 대여섯 해째 자율주행 자동차를 놓고 시험 운전을 했다고 하며, 구글 회사 개발직원은 이동안 자율주행 자동차로 출퇴근을 했다고 합니다.



일본의 자동차 제조사가 진짜로 도전해야 할 분야는 산업 인터넷 개념에 가까운 자동차 제어 영역이다 … 전 세계의 도시 인구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지만, 도쿄의 도시 디자인은 인구 감소를 전제로 실행되어야만 한다. 덧붙여 세계 최고 수준의 고령화도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190쪽)



  곰곰이 더 헤아리면, 이 자율주행 자동차가 제대로 자리를 잡을 무렵 그야말로 모든 집에 자동차가 몇 대씩 생길 만합니다. 아니면, 이 자율주행 자동차 얼거리는 ‘혼자 타는 차’가 아닌 ‘여럿이 함께 타는 차’가 될 수 있을 테고요. 집집마다 자동차가 몇 대씩 있으면 그야말로 온 나라가 자동차로 뒤덮여서 오도 가도 못할 수 있으니까요. 그렇지만 혼자 타서 혼자 움직이기만 하는 자율주행 자동차라면, 크기를 한 사람 몸에 맞춘 아주 작은 자동차가 될 만하고, 이렇게 된다면 모든 사람이 ‘내 자동차’를 누리더라도 길이 자동차로 북적거리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때에는 찻길로만 다니는 자동차가 아니라, 가볍게 하늘을 날면서 서로 부딪히지 않고 마음껏 어디로든 오갈 만하리라 느낍니다. 앞으로 이런 사회 얼거리가 된다면, 고속도로나 찻길 때문에 자꾸 숲을 밀거나 도시개발을 할 까닭이 사라지고, 우리 삶터는 참으로 새롭게 바뀔 수 있습니다. 아무튼, 그런 꿈 같은 일은 앞으로 나타날 테고, 그야말로 스스로 꿈을 꿀 때에 이 꿈을 이루리라 생각합니다.


  구글 회사는 더 높은 수익을 바라면서 자동차 사업에 뛰어들었을 테고, 일본 도요타 회사도 더 높은 수익을 꾸준히 거두기를 바라며 구글 뒤를 좇을 텐데, 이들 회사가 수익만 거두는 사업이 아니라, 삶을 곱게 살찌울 수 있는 길로 함께 나아갈 수 있기를 비는 마음입니다. ‘시스템 통제’ 권력을 거머쥐려는 흐름이 아니라, 삶을 밝히는 터전을 가꾸려는 손길이 자율주행 자동차를 만드는 사람들 마음속에 깃들기를 빕니다. 4348.11.20.쇠.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에서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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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가을 자운영 한 포기



  봄이 무르익을 무렵부터 벼베기를 하는 한가을까지 논이나 논둑에는 들풀이나 들꽃이 자랄 틈이 없다. 시골 일꾼이 바지런히 풀을 베거나 풀약을 치기 때문이다. 늦가을로 접어들어 아무도 논자락을 들여다보지 않을 때가 되어야 비로소 들꽃이 이 자리에서 씩씩하게 자란다.


  늦가을에 꽃대를 올리고 꽃송이를 터뜨린 자운영을 바라본다. 논 귀퉁이에서 살그마니 고개를 내밀었네. 곁에는 토끼풀꽃이 함께 있네. 다른 들풀도 가을볕을 쬐면서 기운차게 오르려 하고, 겨우내 찬바람에도 당차게 꽃내음을 나누어 줄 테지. 오늘은 며칠 만에 비구름이 걷히고 해가 나려 하니, 늦가을 자운영꽃은 더 환하게 춤을 추리라. 4348.11.20.쇠.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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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둑에 핀 산국



  가을 논둑에 산국이 핀다. 드문드문 살금살금 고개를 내민다. 이 아이들은 가실을 마치고 나서 꽤 지난 늦가을에 피기 때문에 기계낫에 썰릴 일도 없고, 풀약에 꼬르륵 타죽을 일도 없다. 가을일을 모두 마친 논둑에서 피어나는 꽃은 그야말로 오늘날 시골살이를 잘 읽거나 헤아린 아이들이라고 할 만하다.


  산국이든 들국이든 무엇이든, 봄이나 여름에 논둑에 피면 곧 낫날에 스러진다. 그렇지만 다시 한 가지를 헤아려 본다. 풀베기를 해야 한다고 하더라도 시골에 아이들이 많고 젊은 사람도 많다면 섣불리 이 들꽃을 베거나 뽑지는 않으리라고. 아이들이 꽃을 보고 놀 수 있도록 꽃을 잘 살릴 테고, 젊은 사람도 들꽃을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일손을 쉴 만하다.


  바쁘게 몰아쳐야 하는 일손이 아니다. 일손을 놀리다가도 가만히 쉬면서 꽃내음을 맡을 노릇이다. 이런 들꽃도 피고 저런 풀꽃도 자라면서 싱그러운 숲내음을 맡을 시골노래이다. 4348.11.20.쇠.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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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끼는 사람이 있는 책



  아끼는 사람이 있으면 어느 책이든 두고두고 사랑받습니다. 아끼는 사람이 없으면 어느 책이든 어느새 시름시름 앓듯이 사그라듭니다. 팔림새를 놓고 ‘사랑받는 책’인가 아닌가를 헤아릴 수 없습니다. 사랑은 숫자로 따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어버이가 아이한테 더 비싼 옷을 입히거나 더 값진 밥을 먹이기에 사랑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잘 팔리거나 많이 팔린 책이 되기에 ‘사랑받는 책’이지 않습니다. 어느 책 하나를 읽은 사람이 스스로 새롭게 기운을 내고 일어서면서 삶을 아름답게 짓도록 북돋운다면, 이 책은 모두 ‘사랑받는 책’이요, 어느 모로 본다면 ‘사랑을 가르친 책’입니다.


  아끼는 사람이 있으면 어느 마을이든 오순도순 살기 좋습니다. 아끼는 사람이 있으면 어느 일거리이든 즐겁게 할 만합니다. 아끼는 사람이 있으면 밥 한 그릇이 더욱 맛있고, 아끼는 사람이 있으면 노랫가락이 한결 싱그러우면서 반갑습니다.


  아끼는 손길이 모든 넋을 새롭게 살립니다. 아끼는 눈길이 모든 숨결을 새롭게 북돋웁니다. 아끼는 마음길이 모든 사랑을 새롭게 깨웁니다. 4348.11.20.쇠.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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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로 읽는 책 263] 골목마을



  이 길에 서자.

  손을 잡고 걷자.

  함께 햇볕 쬐면서.



  모든 길은, 사람이 사는 마을에서 생기고, 그러니 길에 깃든 마을을 읽을 수 있으면 깊고 너른 수많은 이야기가 샘솟으리라 느낍니다. 어깨를 맞댄 집이 다닥다닥 붙었다고 하는 골목마을인데, 작은 집이 촘촘히 모였다고 할 만하면서도, 사랑스럽고 조촐한 살림살이가 어깨동무를 하면서 사이좋게 지낸다고 여길 수 있습니다. 어떻게 바라보든 모두 괜찮습니다. 어둡게 바라보든 밝게 바라보든 대수롭지 않습니다. 오늘 이곳에서 함께 사는 이웃으로 바라볼 수 있으면 됩니다. 이 골목에서 손을 잡고 함께 햇볕을 쬐고 바람을 마시는 사이인 줄 느끼면 됩니다. 4348.11.20.쇠.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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