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량한 말 바로잡기

 혹자 或者


 혹자는 산짐승의 소행이라 했고 → 누군가는 산짐승 짓이라 했고

 혹자는 말하기를 → 누군가는 말하기를

 혹자도 궁금한 점이 많다 → 아무개도 많이 궁금하다

 혹자에 의하면 → 사람들 말을 들으면 / 아무개 말을 들으면


  ‘혹자(或者)’는 “어떤 사람”을 뜻한다고 합니다. 때로는 ‘혹시(或是)’라는 한자말하고 같은 뜻으로도 쓴답니다. 그러니까, 처음부터 한국말로 ‘아무개’나 ‘누구·누군가(누구인가)’로 쓰면 될 일이면서 ‘어쩌면·설마’로 가다듬으면 됩니다. 때로는 “어떤 사람”이나 “사람들”로 손볼 만합니다. 4348.12.8.불.ㅅㄴㄹ



혹자는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 누구는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 누군가는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 아무개는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 어떤 사람은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 어쩌면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이경미-인간 하나 만나고 싶다》(동녘,2002) 56쪽


혹자는 여행지에서 우연히 먹은 절임 음시의 맛에서

→ 누군가는 여행지에서 우연히 먹은 절임 음식 맛에서

→ 누구는 여행하면서 문득 먹은 절임 음식 맛에서

→ 아무개는 여행하다가 가볍게 먹은 절임 음식 맛에서

《시오미 나오키/노경아 옮김-반농반X의 삶》(더숲,2015) 113쪽


(최종규/숲노래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말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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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말을 죽이는 외마디 한자말

 극히 極


 극히 어려운 일 → 매우 어려운 일

 극히 당연한 일 → 몹시 마땅한 일

 극히 우수한 학생 → 아주 훌륭한 학생

 확률은 극히 드물다 → 확률은 무척 드물다


  ‘극(極)히’는 “더할 수 없는 정도로”를 뜻한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더없이’나 ‘그지없이’나 ‘가없이’로 손질하면 됩니다. 이러한 뜻을 살펴서 ‘아주·매우·몹시·무척’으로 손질할 수 있습니다. ‘참으로·참말로’를 쓸 만하고, ‘대단히’나 ‘엄청나게’를 넣어도 잘 어울립니다. 4348.12.8.불.ㅅㄴㄹ



극히 친한 몇 명 친구

→ 아주 가까운 몇 친구

→ 매우 가까운 동무 몇

《사기사와 메구무/최원호 옮김-개나리도 꽃 사쿠라도 꽃》(자유포럼,1998) 21쪽


극히 현실적이며 21세기적인 꿈이다

→ 몹시 현실을 살피며 21세기다운 꿈이다

→ 더없이 현실을 보며 21세기다운 꿈이다

《시오미 나오키/노경아 옮김-반농반X의 삶》(더숲,2015) 20쪽


(최종규/숲노래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말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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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넋·삶 91 눈을 감고, 눈을 뜨다



  눈을 감은 사람이 눈을 뜹니다. 눈을 뜬 사람이 눈을 감습니다. 참으로 쉬우면서 뚜렷한 말입니다. 눈을 감아야 비로소 눈을 뜰 수 있습니다. 눈을 떠야 바야흐로 눈을 감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눈을 감지 않는 사람은 눈을 뜨지 못합니다. 눈에 새까만 어둠을 드리우지 않는다면, 눈이 환하게 뜨이지 않아요. 무슨 말인가 하면, 겉모습을 바라보는 눈을 감아야, 비로소 속마음을 바라보는 눈을 뜹니다. 속마음을 바라보는 눈을 뜨는 사람일 때에, 겉모습에 휘둘리면서 오직 겉만 훑어보는 눈을 감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눈을 감으면서 떠야 합니다. 서로서로 겉치레로 나아가는 눈으로는 삶을 지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서로서로 속마음을 아끼고 보살필 줄 아는 눈이 되어야 삶을 지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눈을 뜨면서 감아야 합니다. 서로서로 사랑을 바라보고 꿈을 마주할 때에 비로소 삶을 짓기 때문입니다. 사랑이나 꿈 앞에서 눈을 감는다면 아무런 삶을 지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몸에 달린 눈’을 감는 삶이 될 때에, 비로소 모든 것을 제대로 볼 수 있습니다. 우리한테는 일곱 가지 눈이 있기 때문에 ‘몸에 달린 눈(첫째 눈)’을 감아야, 비로소 다른 여섯 가지 눈으로 마음을 바라보면서 읽고, 꿈을 바라보면서 읽으며, 사랑을 바라보면서 읽다가, 아름다움을 바라보면서 읽고, 기쁨을 바라보면서 읽을 줄 알며, 노래를 바라보면서 읽는 숨결로 거듭납니다.


  눈을 떠도 장님인 사람이 많습니다. 겉모습에 얽매이기 때문에 겉모습조차 제대로 못 읽기 일쑤입니다. 겉으로는 웃는 사람이 속으로는 꿍꿍이를 숨긴 줄 읽지 못하는 사람이 대단히 많습니다. ‘눈 뜬 장님’입니다. 이렇게 눈 뜬 장님이라면, 눈을 뜬들 무엇을 볼까요? 눈으로 보는 것 가운데 무엇을 믿거나 알거나 생각할 수 있을까요?


  눈을 감아도 장님이 아닌 사람이 있습니다. 겉모습에 휘둘리지 않기 때문에 ‘눈을 감은 채 겉모습을 아주 또렷이 읽’을 수 있습니다. 겉으로는 우는 사람이 속으로는 웃는 줄 읽을 수 있어요. 이렇게 ‘눈을 감은 빛살’이라면 언제 어디에서나 스스로 모든 것을 이룰 수 있도록 지을 만해요.


  내 눈은 신문이나 텔레비전을 보라고 있는 눈이 아닙니다. 내 눈은 사랑과 꿈으로 나아가는 삶을 보라고 있는 눈입니다. 내 눈은 겉모습이나 몸매나 얼굴을 보라고 있는 눈이 아닙니다. 내 눈은 마음과 생각과 넋을 마주하면서 아름다운 바람처럼 나아가라고 있는 눈입니다.


  눈을 감고 걷는다고 해서 넘어지지 않습니다. 눈을 뜨고 걷는다고 해서 안 넘어지지 않습니다. 눈을 뜨고 잔다고 해서 고단하지 않습니다. 눈을 감고 잔다고 해서 개운하지 않습니다. 눈을 떠야 할 곳에서 뜰 수 있어야 눈이고, 눈을 감아야 할 곳에서 감을 수 있어야 눈입니다. 눈빛은 눈을 감아도 환하게 온누리를 비춥니다. 눈망울은 눈을 감아도 해맑게 별누리를 감쌉니다. 눈길은 눈을 감아도 따사롭게 온별누리를 어루만집니다.


  사람한테 두 눈이 있는 까닭은, 두 눈으로 이승과 저승을 함께 사랑하고, 너와 내가 한마음인 하느님인 줄 바라보면서, 사랑과 꿈을 나란히 마주하여 어깨동무를 해야 삶이 되는 줄 깨달으라는 뜻입니다. 4348.3.12.나무.ㅎㄲㅅㄱ


(최종규/숲노래 . 2015 - 람타 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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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배움자리 72. 놀기에 재미있다



  아이들은 놀기에 재미있다고 여긴다고 느낀다. 우리 아이들을 바라보면서 하는 생각이 아니라, 나 스스로 내가 아이로 지내던 지난날 언제나 느끼던 대목이다. ‘다섯 살 아이’요 ‘일곱 살 아이’이며 ‘열 살 아이’로 살던 나는 언제나 놀고 다시 놀고 또 놀고 자꾸 놀고 새로 놀면서 재미있고 기뻤다. 놀면서 내가 나답구나 하고 느끼는 하루였고, 끝없이 새로운 놀이를 늘 스스로 지어서 즐겼다. 아이들은 어떻게 놀까? 참말 모든 아이는 스스로 논다. 누가 함께 놀아 주어야 하지 않는다. 같이 놀아도 재미있으나, 여럿이 같이 있기에 꼭 재미있지 않다. 스스로 마음껏 달리고 뛰고 구르고 박차고 날고 기고 하려는 몸짓이 될 때에 비로소 재미있다. 어른은 아이한테 마당을 깔아 주든 멍석을 깔아 주어야 한다. 이러면서 어른도 어른 스스로 하는 일을 재미나고 즐겁게 해야지. 아이와 어른은 언제나 서로서로 재미나고 기쁜 삶을 누릴 때에 웃는다. 4348.12.6.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집 놀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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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도 친구잖아 읽기의 즐거움 8
다카도노 호코 글.그림, 이서용 옮김 / 개암나무 / 2012년 6월
평점 :
절판


어린이책 읽는 삶 124



꿈을 곱게 품어서 그림으로 빚는 이모는 멋져

― 달라도 친구잖아!

 다카도노 호코 글·그림

 이서용 옮김

 개암나무 펴냄, 2012.6.1. 9000원



  일본 어린이문학 가운데 하나인 《달라도 친구잖아!》(개암나무,2012)를 즐겁게 읽습니다. 한국에서는 아직 이 만한 작품을 찾아보기 어렵다고 느끼지만, 일본에서는 이런 예쁜 어린이문학이 꾸준히 나옵니다. 이 어린이문학이 어떻게 대단하기에 한국에서 찾아보기 어려운가 하면, 이 어린이문학은 ‘학교를 다니는 아이’ 이야기를 학교에 얽매여서 들려주지 않습니다. 아이가 스스로 새롭게 짓는 삶을 꿈으로 가꾸는 숨결로 들려주기에 여러모로 돋보입니다.


  그러면 한국 어린이문학은 어떠할까요? 요즈음 나오는 한국 어린이문학은 ‘학교에서 생기는 말썽’을 줄거리로 삼기 마련입니다. 아니면, ‘집에서 겪는 골칫거리’를 줄거리로 삼아요. 생각이 홀가분하게 춤추는 꿈노래(판타지) 같은 어린이문학도 드물지만, ‘생활동화’라고 할 적에 ‘학교에서 동무끼리 따돌리거나 교사가 바보스러운 모습’을 흔히 그리고, ‘집에서 어머니가 아이를 학원에 보내고 시험공부로 들볶는 모습’을 자꾸 그립니다. 때로는 ‘어머니하고 아버지가 다투는 집안’을 그리고, ‘가난한 옛 골목마을이나 시골마을 이야기’를 되새기는 얼거리이곤 합니다. 한국 어린이문학에서 생활동화는 거의 다 이 틀에서 벗어나지 않습니다.


  일본에서 “すてきなルちゃん”라는 이름으로 2009년에 나온 이 어린이문학은 “멋진 루짱”입니다. 한국말로 옮기며 “달라도 친구잖아!”로 바꾸었는데, ‘루짱’은 이 어린이문학에서 ‘말하는 이(주인공)’한테 이모입니다.



나는 (이모) 루짱이 꽤 괜찮은 화가라고 생각해요. 엄마는 무슨 그림인지 전혀 모르겠다고 하고, 뭐랄까, 왠지 기분을 좋게 하는 무척 아름다운 그림을 그리거든요. (9쪽)


학교에서 돌아와 보니, 오늘도 루짱은 내 방에서 캔버스를 바라보며 앉아 있었어요. 나는 가슴이 두근두근했어요. 매일 조금씩 달라지는 그림을 보는 것은 굉장히 즐거운 일이거든요. (19쪽)



  일본 어린이문학 《달라도 친구잖아!》에 나오는 루 이모(루짱)는 주인공 아이네 집에 찾아옵니다. 여느 돈벌이를 딱히 하지 않으면서 그림을 그리며 산다는 루 이모인데, 언니네 집에서 밥을 얻고 잠자리도 빌리면서 그림 한 점을 마무리하려고 했대요. 그러면, 루 이모는 왜 굳이 언니네 집에까지 와서 그림을 그리려 할까요? 바로 주인공 아이 때문입니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한테 재미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재미난 이야기를 고스란히 그림으로 담으면서, 이 그림을 기쁘게 마무리짓고 주인공 아이한테 선물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루 이모는 돈을 버는 재주가 영 없다 할 만합니다. 퍽 오랜 나날을 들여서 천천히 마무리지은 그림으로 전시회를 열지도 않고, 돈을 받고 팔지도 않으니까요. 이런 그림을 덜컥 누군가한테 선물하면서 사니까요.



소라는 파란 두건의 끝을 뾰족하게 세우고 깡충깡충 뛰며 들판의 외길을 따라 집을 향해 걸어갔어. 그 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자니, 세 친구는 처음으로 두건이 정말 즐거워 보인다고 생각했어. 왜냐하면 두건이 친한 친구처럼 소라의 머리에 붙어 있었거든. (14쪽)


나는 연필을 계속 깎다가 문득 〈들장미〉는 스기야마에게 좋아하는 걸 넘어 어떤 특별한 노래일지도 모를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35쪽)



  루 이모는 그림을 이레에 걸쳐서 마무리짓습니다. 밑그림은 벌써 다른 곳에서 그려서 가져왔습니다. 이레에 걸쳐서 그림을 마무리짓는 동안 일곱 요일에 맞추어 한 가지씩 새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주인공 아이는 루 이모가 들려주는 이야기가 ‘참인지 거짓인지’ 종잡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거짓으로는 느끼지 않습니다. 더구나 거의 마지막에 나오는 이야기는 마치 주인공 아이네 어머니, 그러니까 루 이모네 언니 이야기인 듯싶기도 합니다.


  어쩌면 루 이모하고 언니가 어릴 적에 곁에서 늘 지켜보던 이웃이나 동무하고 얽힌 삶을 가만히 마음 깊이 품었다가 주인공 아이한테 들려준다고 할 수 있어요. 나중에 ‘우리 아이’가 태어난다면 그 아이한테 기쁘게 물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오래도록 가슴에 품었다고 할 만합니다. 그림 한 점은 이야기하고 맞물려서 삶을 고운 꿈으로 바라보도록 북돋우는 징검다리 구실을 할 테고요.


  왜냐하면 루 이모가 그린 그림을 주인공 아이는 방 한쪽에 걸 테고 이 그림을 늘 들여다볼 테지요. 그냥 그린 그림이 아니고, 멋지게 그린 그림이 아닌, 그야말로 온 사랑을 담아서 그린 그림이기에 이 그림을 들여다보는 동안 언제나 사랑스러운 숨결을 누릴 수 있습니다.



포리의 거실 아래는 아주 신기한 소인들의 화랑이 있었던 거야! 걸려 있는 그림들은 모두 포리가 기부한 얼룩 하나 없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우표들이었어. 소인들은 성냥개비로 만들어진 액자에 우표를 하나씩 정성스레 넣어 마루 밑 벽에 걸어 놓고 있었던 거였어. (45족)


기무는 언제나 바람이 부는 초록 들판을 상상했어. 아무것도 없이 공기만 반짝반짝 파랗게 퍼져 가는 그런 초록 들판을 말이야. 기무는 들판의 중앙에서 바람 아이가 되어 빛과 함께 빙글빙글 춤추고 싶었어. (63∼64쪽)



  한국말로 옮긴 이름은 “달라도 친구잖아”인데, 어느 모로 본다면 이 말마디는 이 일본 어린이문학을 한 마디로 잘 나타낸다고도 여길 만합니다. 이레에 걸쳐서 루 이모가 들려준 이야기에 나오는 일곱 아이는 “다 다른 아름다운 동무”이거든요. 그리고, “달라도 친구”라기보다는 “달라서 친구”입니다. 저마다 다른 동무요, 저마다 새롭게 살림을 짓고 살림을 가꾸려는 동무예요. 저마다 슬기로운 꿈을 품으려는 동무이면서, 저마다 기쁘게 웃고 노래하는 삶으로 나아가려고 하는 동무입니다.



지금은 알아요. 빛과 바람의 녹색 들판도, 아이들의 웃음 소리도, 게다가 루짱이 이야기해 준 일주일 동안 여러 이야기도 모두 하나가 되어 이 그림에 녹아 있다는 것을요. (70∼71쪽)



  책 끝에는 루 이모가 아이한테 선물한 그림이라면서 그림 한 점이 조그맣게 실립니다. 그런데 이 그림은 ‘다케다 미호’라는 분이 그렸다고 합니다. 다케다 미호는 일본에서 손꼽히는 그림책 작가 가운데 하나입니다. 이분 그림책 가운데 꼭 세 권만 한국말로 나왔는데(《책상 밑의 도깨비》, 《우리 엄마 맞아요?》, 《짝꿍 바꿔 주세요!》), 한국말로 나온 그림책 세 권을 살피면 아이끼리 나누는 깊은 마음이라든지 아이와 어른이 따사로이 나누는 마음을 살가이 밝힙니다. 아이들이 가슴 가득 곱게 담을 숨결을 늘 헤아리는 그림책 작가이기에, 《달라도 친구잖아!》라는 책 끝에 ‘루 이모가 마무리지어서 선물한 그림’을 선뜻 그려서 담을 수 있으리라 느낍니다.


  곧, 어린이문학이란 마음을 그리는 이야기입니다. 마음을 노래하고, 마음을 북돋우며, 마음을 사랑하기에 조그마한 이야기 한 자락이 어린이문학으로 태어납니다. 마음을 티없이 바라보고, 마음을 아낌없이 가꾸며, 마음을 즐거이 얼싸안을 수 있기에 따스한 꿈이 흐르는 어린이문학이 될 만합니다.


  바람을 타고, 또는 구름을 타고, 또는 햇살에 실려 일본에서 한국으로 건너온 예쁜 어린이문학 한 권을 읽는 아이들이 ‘내 동무는 어디에 있을까?’ 하고 슬기롭게 생각할 수 있기를 빕니다. ‘우리 동무는 어떤 웃음을 지으면서 아침을 열까?’ 하고 반가이 마주할 수 있기를 빕니다. 꿈을 곱게 품어서 그림으로 빚는 이모는 더없이 멋지고, 이런 이모를 둔 아이는 날마다 기쁨이 넘치리라 생각합니다. 4348.12.7.달.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어린이문학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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