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아이 192. 감순이 감돌이 (2015.12.9.)



  마을을 크게 한 바퀴 돌며 걷는 나들이를 갈 적에 감알을 반으로 갈라서 두 아이한테 나누어 준다. 두 아이는 감순이하고 감돌이가 되어 마을길을 걷고 달린다. 우리 셋은 감 석 알로 배를 든든히 하면서 겨울 들길을 누빈다. 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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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파랗게 물든 하늘에 구름을



  겨울비가 가신 하늘이 더욱 파랗다. 파랗게 물든 하늘에 마치 빗질을 성글게 한 듯한 구름이 흐른다. 구름은 몽실몽실 보드라운 솜뭉치처럼 흐르기도 하지만, 석석 빗질한 모습으로도 흐른다. 여기 하늘을 보라고, 땅바닥만 보지 말고 하늘도 함께 보라고, 온누리를 고루 어루만지는 너른 하늘을 보라고, 조용히 노래를 한다. 이 하늘을 두 아이하고 손을 맞잡고 걸어가면서 바라본다. 하늘노래를 부르고 하늘숨을 고마이 마신다. 4348.12.13.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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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아저씨 손 아저씨 우리 그림책 1
권정생 지음, 김용철 그림 / 국민서관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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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592



아무것도 없으니 서로 돕는구나

― 길 아저씨 손 아저씨

 권정생 글

 김용철 그림

 국민서관 펴냄, 2006.2.20. 1만 원



  한손을 내밀 줄 아는 사람은 ‘손이 많은’ 사람이 아닙니다. 한손을 내밀 줄 아는 사람은 ‘마음이 넉넉한’ 사람입니다. 한손을 내밀 줄 모르는 사람은 ‘손이 없는’ 사람이 아닙니다. 한손을 내밀 줄 모르는 사람은 ‘마음이 없는’ 사람입니다.


  이웃을 누가 도울까요? 돈이 있는 사람이 이웃을 돕지 않아요. 마음이 있고 사랑이 있는 사람이 이웃을 돕습니다. 이웃을 누가 아낄까요? 집안이 넉넉한 사람이라든지 집이 커다란 사람이 이웃을 아끼지 않아요. 마음이 너그럽거나 사랑이 가득한 사람일 때에 이웃을 돕습니다.




윗마을 길 아저씨는 두 다리가 불편했어요. 그래서 어릴 때부터 방 안에서 꼼짝 못 하고 앉아서만 살았대요. 부모님이 계실 때는 잘 보살펴 주셔서 그런대로 살아갈 수 있었지요. (5쪽)



  권정생 님이 쓴 글에 김용철 님이 그림을 붙인 《길 아저씨 손 아저씨》(국민서관,2006)를 읽습니다. 아이들은 이 그림책을 가만히 읽으면서 두 아저씨가 이루는 삶을 지켜봅니다. 그야말로 아무것도 없다 할 두 아저씨가 서로 돕는 모습을 그림책으로 물끄러미 바라봅니다.


  그런데 길 아저씨가 손 아저씨한테 아무것도 없지는 않습니다. 두 아저씨한테는 저마다 ‘발’이 있고 ‘눈’이 있어요. 그리고 ‘손’이 있습니다. 여기에 ‘마음’이 있어요.


  두 아저씨는 어릴 적부터 집 바깥으로는 거의 나다니지 못한 채 집에서만 머물렀다고 해요. 두 아저씨네 어버이는 두 아저씨를 어릴 적부터 알뜰히 돌봐 주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두 아저씨네 어버이는 그만 먼저 돌아가셨지요. 어쩔 수 없는 노릇일 텐데, 어버이는 아이보다 나이가 많으니까요.




손 아저씨가 커다란 대추나무 집에 구걸하러 갔을 때 그 집 할머니가 말씀하셨어요. “에그, 딱하기도 하지. 하지만 윗마을 길 총각한테 비하면 괜찮은 편이야. 길 총각은 두 다리를 못 쓰니 방 안에서 꼼짝 못 하고 앉아만 있다는구먼.” (15쪽)



  어버이를 잃은 뒤 두 아저씨는 이제 빌어서 먹어야 합니다. 앞을 못 보는 아저씨도 다리가 없는 아저씨도 이도 저도 못하면서 남한테 손을 내밀어 겨우 끼니만 때우지요. 손수 부칠 땅도 모르거나 없는 터요, 어디에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도 모르지요. 몸을 제대로 놀리지 못하니 나무를 하지도 못하고 방에 불을 지피지도 못할 테지요.


  그런데 두 아저씨는 이웃 할머니가 다리를 놓아서 만납니다. 할머니가 다리를 놓았다기보다 ‘손 아저씨’가 동냥을 할 적에 이웃 할머니가 ‘길 아저씨’ 이야기를 했고, 손 아저씨는 길 아저씨 이야기를 들으면서 ‘눈이 번쩍 뜨이듯이 새 길이 열렸구나’ 하고 깨닫습니다.




“하지만 나는 걷지도 못하는데 어떻게 남을 도울 수 있겠나.” “걱정 말게나. 다행히 나는 앞을 못 보지만 이렇게 두 어깨가 튼튼하니까 내가 자네를 업고 다니겠네.” 길 아저씨는 금세 마음이 환하게 밝아졌어요. (20쪽)



  두 아저씨는 여태 아무것도 없는 빈몸인 줄 알았으나, 둘이 한자리에서 만나며 비로소 두 아저씨한테는 서로 저마다 ‘새로운 것’이 있는 줄 깨닫습니다. 두 아저씨는 서로서로 하나씩 있는 새로운 것을 슬기로우면서 사랑스레 살리기로 합니다. 두 아저씨는 이녁 어버이한테서 물려받은 따스한 사랑을 고이 살려서 앞으로 씩씩하게 살자고 다짐합니다.


  참말 두 아저씨는 어버이가 따스히 돌보고 사랑으로 보살폈기에 이렇게 살아갈 수 있어요. 참말 두 아저씨는 ‘먼저 떠난 어버이’가 알뜰히 돌보고 사랑으로 어루만져 주었기에 ‘어버이 뒤를 좇아 죽으려는 마음’을 품지 않고 씩씩하고 꿋꿋하게 살아서 이렇게 서로 돕는 길을 걸을 수 있어요.



길 아저씨와 손 아저씨는 점점 솜씨가 늘어 온갖 물건을 만들었어요. 집 안에서 지게도 다듬고, 바소쿠리와 봉태기도 만들고, 멍석도 짜고, 깨끗한 돗자리도 엮었어요. 길 아저씨와 손 아저씨도 이제는 남에게 기대지 않고 살아갈 수 있었어요. (29∼30쪽)




  서로 아끼고 돕는 두 아저씨를 바라보는 이웃은 어떤 마음이 될까요? 두 아저씨네 이웃은 두 아저씨를 바라보면서 마음이 푸근해지거나 애틋해지겠지요. 어쩜 저리 서로 아끼면서 착하게 사느냐 싶어서 한마을 살붙이로 더욱 살뜰히 마주할 만하겠지요.


  이러는 동안 두 아저씨는 이웃집 일손을 살짝 거들기도 합니다. 두 아저씨가 서로 눈이 되고 발이 된 터라, 두 아저씨가 마당에 멍석을 깔고 앉아서 거들 만한 일거리가 있습니다. 적어도 새끼를 꼴 수 있고, 바구니를 짤 수 있습니다. 멀리 움직이거나 들에 나가거나 멧골에 오르는 일은 못하더라도, 집안 마당에서 할 만한 일거리가 있어요.


  두 아저씨는 저마다 손을 놀려 이래저래 온갖 살림살이를 지을 수 있을 적에 얼마나 기뻤을까요? 두 아저씨는 스스로 살림을 짓고 삶을 지을 수 있는 날을 맞이하면서 얼마나 보람찼을까요? 이런 두 아저씨 몸짓과 마음결을 지켜본 이웃 아낙은 두 아저씨한테 시집가기로 했다 하고, 두 아저씨는 저마다 마음 고운 짝을 만나서 한결 재미나며 아름답게 살 수 있었다고 합니다.


  어느 모로 보면 《길 아저씨 손 아저씨》는 이 그림책 바탕을 이루는 글을 쓴 권정생 님 삶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몸이 아파 늘 드러누워 지내듯이 살며 다른 바깥일을 할 수 없던 나날이라 하더라도, 서로 마음으로 돕고 아끼는 벗님하고 이웃님이 있기에 오늘 하루도 힘껏 살아내려고 하는 이야기를 들려주거든요. 다른 재주도 힘도 솜씨도 없지만, 몸져누운 자리에서 한 줄 두 줄 온마음을 쏟아서 쓴 글이 이렇게 고운 이야기책으로 거듭났어요.


  아무것도 없으니 서로 돕습니다. 아무것도 아니니 서로 아낍니다.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기에 서로 사랑합니다. 아무것도 손에 쥐지 않고 어깨동무를 하기에 아름답습니다. 내 밥그릇을 챙기려 할 적에는 서로 안 돕고 서로 안 아끼며 서로 안 사랑합니다. 함께 누리는 삶자리를 헤아리려 하기에 서로 돕고 서로 아끼며 서로 사랑하지요. 4348.12.13.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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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숲 시골빛 삶노래

― 맛있게 먹는 밥 한 그릇



  밥을 맛있게 먹으려면 어떻게 하면 될까요? 밥을 맛있게 먹으면 맛있습니다. 삶을 즐겁게 누리려면 어떻게 하면 될까요? 삶을 즐겁게 누리면 즐겁습니다. 이웃을 사랑하려면 어떻게 하면 될까요? 이웃을 사랑하려 하면 이웃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얼핏 보면 말장난 같으나, 참말 이와 같은 삶 얼거리입니다. ‘어떻게 해야 하지?’ 하고 묻기만 해서는 실마리를 못 찾아요. ‘어떻게 하면 될까?’ 하고 스스로 수수께끼를 내고는 이 실마리를 따라서 나아가야 비로소 실마리를 엽니다.


  삶이 따분하거나 고단하다고 여기는 사람은 스스로 따분한 삶하고 고단한 삶을 끌어들인다고 할 만합니다. 삶이 재미있거나 아름답다고 여기는 사람은 재미와 아름다움을 늘 스스로 끌어들인다고 할 만합니다. 왜 그러한가 하면, 스스로 생각하는 대로 스스로 삶을 짓기 때문입니다. 환경이 어떻고 터전이 어떻고 하는 얘기는 나중 얘기입니다. 왜냐하면, 웃는 사람은 어디에서나 웃고, 우는 사람은 어디에서나 울거든요. 돈이 많은 어버이를 두어야 아이들이 웃지 않아요. 웃는 어버이를 둔 아이들이 웃어요. 돈이 없는 어버이를 둔 아이들이 울지 않아요. 우는 어버이를 둔 아이들이 울어요.


  밥을 맛있게 먹으려면 어떻게 하면 될까요? 자, 이제는 우리 스스로 깨달아야 합니다. 스스로 밥을 맛있게 짓고, 맛있게 차리며, 맛있게 수저를 들면, 우리 밥상은 언제나 맛있습니다. 남이 차려 주기에 맛있는 밥이 아닙니다. 비싼 밥을 바깥에서 사다가 먹으니 맛있는 밥이 아닙니다. 스스로 삶을 즐겁게 다스리면서 기쁜 노래를 부를 수 있는 하루가 될 때에 비로소 맛있는 밥을 먹어요. 편의점 도시락이든 집밥이든 호텔 밥이든 모두 같아요. 어떤 마음인가에 따라 밥맛이 바뀌어요.


  아침저녁으로 밥상을 차리며 사는 틈틈이 《치킨로드》(책과함께,2015)라는 책을 읽습니다. 이 책을 쓴 앤드루 롤러 님은 ‘닭’ 아닌 ‘닭고기’가 어떻게 수백 억 마리나 우글거리면서 지구별 곳곳을 넘나드는가 하는 수수께끼를 풀려고 합니다. 오늘날 지구별에서 사람들은 닭을 얼마나 괴롭히면서 고기하고 알을 얻는가 같은 뒷얘기도 파헤치고, 먼먼 옛날부터 지구별 여러 나라와 겨레에서 닭이라는 짐승을 어떻게 바라보았는가 하는 이야기도 들려줍니다.


  “닭은 고대 이집트에서 희귀하고 신분 높은 새였는데, 이 사실은 1923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세상에 알려졌다(54쪽).”고 하는 이야기를 읽으면서 가만히 돌아봅니다. 이러한 이야기가 요즈음 들어서야 비로소 알려졌을까요? 아마 그러할는지 모릅니다. 다만, 이집트라는 나라에서는 예부터 닭이 ‘희귀하고 신분 높은 새’인 줄 잘 알았을 테지요.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잘 몰랐어도 말입니다. 곰곰이 따지면, 한국이나 중국이나 일본도 닭을 함부로 다루지 않았어요. 아시아 여러 나라도 닭을 아무렇게나 다루지 않았지요. 평화를 사랑하는 수수한 사람들은 오랜 옛날부터 닭을 비롯해 돼지도 소도 말도 다른 모든 짐승도 함부로 다루거나 아무렇게나 부리지 않았습니다. 시골에서 조촐히 살림을 지으면서 수수하게 삶을 가꾸던 사람들은 닭을 비롯한 모든 짐승을 알뜰히 보살피고 고이 돌보았어요.


  닭이 낳는 알 하나를 고맙게 받아들였고, 닭 한 마리를 오래오래 키웠습니다. 어미 닭이 알을 품어서 병아리가 까도록 했습니다. 어미 닭이 지낼 둥우리를 사람들이 정갈하게 엮어 주었고, 살림집하고 닭우리는 한울타리에 깃들었어요. 추운 겨울에는 사람하고 닭이 한지붕 밑에서 잠을 잤다고 했습니다.


  “이 섬(이스터 섬)의 원주민들은 거대한 석상을 조각하지 않을 때에는 곡식을 재배하고 닭을 돌보는 정교한 방식에 따라 닭장을 지은 듯하다. 수백 개에 달하는 닭장이 섬 전체에 퍼져 있다. 이 닭장은 빈틈없이 쌓아올린 돌무더기인데, 닭장마다 돌문이 달린 자그마한 입구가 있다(109쪽).” 같은 이야기를 읽으며 새삼스레 돌아봅니다. 닭을 알뜰히 돌보던 겨레는 모두 평화롭습니다. 닭을 고이 보살피던 수수한 사람들은 전쟁무기 따위를 만들지 않았습니다. 이와 달리, 오늘날 산업 사회에서는 닭을 공장이나 감옥 같은 곳에 잔뜩 가두어서 달포도 채 안 되는 동안에 ‘고기닭’으로 살찌워서 내다 팔아요. ‘공장 축산’이 널리 퍼진 오늘날 산업 선진국마다 군대와 전쟁무기가 어마어마하며, 산업 선진국(과 산업 후진국) 어디나 군대와 전쟁무기를 없앨 뜻이 없어 보입니다. 평화로 나아가지 않는 모든 나라는 고기닭도 고기돼지도 고기소도 아주 끔찍한 곳에서 무시무시하게 ‘뽑아’냅니다.


  닭 한 마리를 알뜰히 아끼면서 돌보던 지난날에는 닭 한 마리가 열 해도 살고 스무 해도 살았습니다. 이무렵에는 고기 한 점을 함부로 먹지 않았어요. 고기 한 점을 아주 고맙게 먹었을 뿐 아니라, 기쁘게 먹었지요. 오늘날에는 수수한 평화가 가뭇없이 사라지면서 ‘고기를 날마다 먹어’도 고마움이나 기쁨을 느끼거나 누리는 사람도 함께 사라지고 말았지 싶습니다.


  그러니까, 고기를 먹느냐 안 먹느냐는 대수롭지 않습니다. 이른바 채식이냐 육식이냐는 대수롭지 않아요. 아시아를 이룬 수수한 시골마을 시골사람이 키운 짐승은 모두 ‘풀을 먹고 자랐’습니다. 풀을 먹고 자란 짐승 살점은 ‘고기’라 하지만, 막상 이 집짐승 살점은 ‘풀로 이루어졌’어요. 수수한 시골마을 시골사람이 고기를 먹을 적에는 그냥 풀을 먹는 삶하고 같습니다. 이와 달리 오늘날 산업 사회에서는 ‘닭도 돼지도 소도’ 풀을 못 먹어요. 오직 사료와 항생제와 촉진제만 먹는 오늘날 ‘고기짐승’입니다. 고이 사랑스레 가꾸어 고맙고 반가운 밥(풀이든 고기이든)을 누리는 삶이 사라지면서, 오직 돈으로 재거나 따지는 문명과 문화예요.


  “오늘날의 양계 산업은 예전에 전혀 시도하지 않았던 규모와 범위로 실험을 하고 있다. 오염된 수로, 노동자에게 위험한 환경, 식품 안전에 관한 우려, 형편없는 동물 복지 문제 등은 활기찬 국제무역의 그림자 속에 대부분 은폐되어 있다(399쪽).” 같은 이야기는 미국과 유럽과 한국 모두 똑같다고 할 만합니다. 아름다움이 사라지면서 산업이 되고, 사랑스러움이 사라지면서 문명이 됩니다. 기쁨이 사라지면서 경제발전이 되고, 즐거움이 사라지면서 현대사회가 됩니다.


  나는 아침저녁으로 손수 밥을 차려서 곁님하고 아이들하고 밥상을 누리는 자리에서 늘 스스로 묻습니다. 오늘 하루도 맛있는 밥인가? 오늘 하루도 기쁜 밥인가? 오늘 하루도 노래하는 밥인가? 오늘 하루도 웃음잔치 같은 밥인가? 이 물음에 스스로 고개를 끄덕이면 언제나 맛있는 밥입니다. 이 물음에 스스로 고개를 젓는다면 아무래도 맛없는 밥이 되고 맙니다. 언제나 나 하기에 달린 일입니다. 언제나 내 마음먹기에 따라 달라지는 삶이요 하루입니다. 4348.12.13.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에서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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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숲 시골빛 삶노래

― 마음속에 빚은 그림처럼 사랑해



  언젠가 ‘우리는 모두 잊혀진 하느님이다’ 하고 외치는 말을 들었습니다. 이 말을 들으며 속으로 피식 웃었어요. 더없이 마땅한 말 아닌가 하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속으로 이렇게 생각하면서 뭔가 아리송했어요. 아니, 이 말대로 우리가 모두 잊혀진 하느님인 줄 알았다면, 이 말을 예전부터 알았다면, 나는 왜 스스로 ‘아름다운 하느님’으로서 ‘아름다운 하느님’답게 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잇달았어요. 골을 부리거나 짜증을 내거나 시샘을 하거나 거친 말을 한다면, 이때에 나는 스스로 ‘하느님 아닌 바보스러운 몸짓’을 하는 셈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우리는 모두 잊혀진 하느님이다’ 하고 외치는 말을 들을 적까지 나는 이 말을 제대로 몰랐을 뿐 아니라 제대로 헤아린 일조차 없는 셈입니다. 너하고 내가 다른 목숨이 아니요, 너만 아름답거나 나만 아름답지 않은 줄 안다고 말하기는 했어도 정작 삶이 어떻게 흐르고 사랑이 어떻게 피어나는가를 조금도 모른 셈이지요.


  가을이 저물며 새삼스레 겨울이 찾아옵니다. 새삼스레 겨울이 찾아오면 마당 한쪽 동백나무는 새삼스레 꽃봉오리를 터뜨리려고 합니다. 이무렵 마당 한복판 후박나무도 봉오리를 야물게 맺어요. 다만. 동백나무는 겨울 한복판에 꽃송이를 하나씩 터뜨린 뒤에 봄에 흐드러지고, 후박나무는 봄에도 봉오리를 단단히 웅크리다가 여름으로 접어들려고 할 즈음부터 한꺼번에 꽃하고 새 잎을 터뜨리지요. 오늘은 터질까 모레에는 맺힐까 하고 두근두근 기다리고 기다린 끝에 비로소 새 꽃하고 잎을 만날 수 있습니다.


  “맞아요. 바로 이 얼굴. 코는 킁 하고 바짝 치켜 올라가고, 눈은 반짝반짝 빛나며, 엷은 주근깨로 뒤덮인 장난기 가득한 얼굴! 이 얼굴을 보면 기쁨이 몰려와요. 왜냐하면 이제부터 평소와 다른 새로운 날들이 시작되는 기분이 들거든요(10쪽).” 하고 첫머리를 여는 《달라도 친구잖아!》(개암나무,2012)라는 어린이문학을 읽으며 새로운 철을 새삼스레 돌아봅니다. 이 책을 쓴 다카도노 호코 님은 그림을 그리는 삶이란 무엇인가를 살며시 풀어냅니다. 그림쟁이는 빈둥빈둥 노는 게으름뱅이일까요? 그림쟁이처럼 글쟁이나 사진쟁이는 ‘먹고사는 일’에는 어수룩한 어리보기일까요?


  가만히 돌아보면 어린이는 어른하고 여러모로 다릅니다. 어린이는 어른처럼 바깥일을 해서 돈을 벌지 않습니다. 어린이가 하는 일은 놀이예요. 어른이 보기에 아무것이 아니라 할 만한 것을 장난감으로 삼고, 어른이 보기에 아무것도 안 하는 듯하더라도 모두 놀이로 누립니다.


  어른은 빨래나 걸레질이나 설거지나 밥하기 같은 집안일을 모두 일로 여깁니다. 어른은 논일이나 밭일이나 바깥일(회사나 공장이나 일터에서 일삯을 받고 하는 일)을 모두 일로만 여깁니다. 참말 어른은 늘 ‘일’투성이예요. 이와 달리 어린이는 늘 ‘소꿉’투성이입니다. 어린이는 모든 삶을 놀이로 바꾸기에 소꿉이 되고, 어른은 모든 삶을 일로 바꾸기에 그냥 일일 뿐입니다. 그러면 어린이는 어리보기일까요? 어린이는 게이름뱅이일까요? 어린이는 철부지일까요?


  “누군가가 그림 속으로 숨어 들어가는 일이 때때로 있어. 정말 들어가 보고 싶은 멋진 그림인 경우에만 그렇겠지만 말이야(26쪽).” 같은 이야기를 되새깁니다. 참으로 아름답게 그린 그림이 있으면 그만 이 그림에 빨려듭니다. 영화 〈메리 포핀스〉를 보면 길바닥에 빚은 그림으로 들어갔다가 나오는 대목이 나와요. 그림이 더없이 아름답다고 여길 만하니 이 그림으로 신나게 들어가서 실컷 논 뒤에 다시 밖으로 나옵니다.


  스스로 아름다이 생각하면서 스스로 아름다이 빚은 그림이기에, 이 그림에 나부터 스스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스스로 사랑스레 생각하면서 스스로 사랑스레 이룬 그림이기에, 그 그림에 너랑 내가 손을 맞잡고 함께 들어갈 수 있습니다.


  내가 지은 아름다운 꿈에는 나부터 기쁘게 들어갑니다. 내가 지은 아름다운 꿈에 너를 불러서 함께 들어가서 웃습니다. 네가 지은 아름다운 사랑에는 너부터 기쁘게 들어갈 테지요. 네가 지은 아름다운 사랑에 함께 들어가자고 네가 나를 부르니 서로 어깨동무를 하고 들어가서 노래합니다.


  삶이란 웃음하고 노래가 어우러진 잔치라고 느낍니다. 삶에서 웃음하고 노래를 뺀다면 재미도 보람도 없으리라 느낍니다. 삶에 웃음하고 노래가 고이 어우러지면서 춤이 태어나니, 이러한 삶을 누리는 사람들은 저마다 남달리 웃음꽃을 터뜨리고 웃음바다를 펼치리라 느껴요. 웃으면서 춤추고 노래하며 춤추기에 우리 스스로 사랑을 새롭게 지어서 온누리에 아름다운 꿈을 퍼뜨릴 만하다고 느껴요.


  “창문으로 들어온 산들바람과 빛의 타래 속에서 아주 작은 먼지들이 반짝반짝 춤을 추고 있었어요. 정말 말할 수 없이 즐거워 보였어요(61쪽).” 같은 이야기가 흐르면서 《달라도 친구잖아!》라는 어린이문학은 천천히 끝을 맺으려 합니다. 그야말로 티끌이나 먼지라고도 여길 수 있는 조그마한 이야기를 차곡차곡 여미는 이 작은 책에는 산들바람하고 빛타래 같은 노래가 잔잔히 흐릅니다. 물결치거나 너울치는 이야기는 없습니다만, 산들바람을 타고 하늘을 날거나 구름하고 동무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러고 보면 어버이가 아이하고 나누는 사랑은 늘 조그맣다고 여길 만합니다. 대수롭지 않다 싶은 조그마한 사랑을 나누는 어버이와 아이입니다. 작은 사랑에서 작은 꿈을 길어올리고, 작은 꿈에서 작은 삶을 지으면서, 작은 삶으로 작은 웃음을 나누는 작은 살림이라고 할 만해요.


  마음속에 빚은 그림처럼 사랑합니다. 마음속에 지은 그림처럼 노래합니다. 마음속에 아로새긴 그림처럼 꿈꿉니다. 마음속에 씨앗 한 톨로 심은 그림처럼 웃습니다. 마음속에 고요히 깃들어 잠자는 하느님처럼 살아갑니다.


  먼 옛날부터 누구나 그림을 그렸고, 먼 옛날부터 누구나 삶을 지었습니다. 먼 옛날부터 여느 어버이 누구나 아이한테 사랑스레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먼 옛날부터 여느 아이 누구나 여느 어버이한테서 사랑스러운 이야기를 물려받으면서 삶을 새롭게 지었습니다. 책도 없고 인터넷이나 컴퓨터도 없고 사전이나 도서관이 없었어도, 여느 보금자리에서 여느 어버이와 여느 아이는 늘 새로우면서 아기자기한 이야기꽃을 피우면서 하루하루 살았습니다. 아마 먼 옛날부터 누구나 마음속에 꿈을 씨앗으로 심었기 때문이리라 느껴요. 언제 어디에서나 우리는 모두 고운 숨결로 거듭나면서 손을 맞잡거나 어깨동무를 할 수 있으니, 이러한 넋으로 마음자리에 새로운 생각을 그렸으리라 느껴요. 4348.12.13.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에서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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