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으로의 -적/-로의 -적


 과거로의 퇴행적인 발언

→ 과거로 퇴행하는 발언

→ 옛날로 뒷걸음치는 말

 미래로의 진보적인 사고

→ 미래로 진보하는 사고

→ 앞으로 나아가는 생각


  한국말에서는 ‘-의’를 아무 데나 붙이지 않으나, 일본 말투와 번역 말투에 길들면서 ‘-의’를 어디에나 붙여도 되는 듯이 여기기도 합니다. 이러면서 다른 일본 말투 가운데 하나인 ‘-的’을 한자말마다 붙이는 겹치기 일본 말투가 나타나기도 합니다. ‘-의’하고 ‘-적’이 한자리에 맞물리는 ‘-으로의 -적/-로의 적’이 나타나는 말투를 보면 여러 가지 한자말이 고루 섞이기 일쑤입니다. 어느 낱말을 가려서 쓰느냐에 따라 말투가 달라지기 마련이며, 누구하고 나눌 말을 쓰려 하느냐에 따라 ‘-으로의 -적/-로의 적’ 같은 말투는 쉽게 털 수도 있으나 좀처럼 털어내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4348.12.18.쇠.ㅅㄴㄹ



앞으로의 잠재적 먹이 장소

→ 앞으로 먹이를 얻을 곳

→ 앞으로 먹이를 얻을 수 있는 곳

《베른트 하인리히/최재경 옮김-까마귀의 마음》(에코리브르,2005) 59쪽


토박이말로부터 가르치는 언어로의 근본적인 변화는

→ 토박이말에서 가르치는 말로 뿌리부터 바뀌는 일은

→ 토박이말에서 가르치는 말로 송두리째 바뀌는 흐름은

《이반 일리치/노승영 옮김-그림자 노동》(사월의책,2015) 79쪽


(최종규/숲노래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말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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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이 콩 부딪혔는데



  막대솔을 들고 빨래터로 물이끼를 걷으러 가는 길에 산들보라가 뭔 일이 있는지 우뚝 서서 허리를 숙인다. 신이 풀렸나 보다. 사름벼리는 달리는 결을 멈추지 못해 그만 동생하고 콩 부딪힌다. 그래도 사름벼리는 어라 하며 멈추려 했는지 동생하고 부딪힌 뒤 엉덩방아를 찧고, 산들보라는 누나가 뒤에서 부딪혔으나 용케 가만히 있는다. 누나는 동생한테 미안하다 하고, 동생은 누나더러 괜찮다고 한다. 요 귀여운 녀석들. 4348.12.17.나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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겹말 손질 372 : 판이하게 다르다



판이하게 다르고

→ 아주 다르고


판이(判異)하다 : 비교 대상의 성질이나 모양, 상태 따위가 아주 다르다



  한자말 ‘판이하다’는 “아주 다르다”를 뜻한다고 하니까, “판이하게 다르고”처럼 말한다면 “아주 다르게 다르고”처럼 말하는 셈입니다. 그런데 한국말사전을 살펴보면 “예전과 판이하게 달라진 고향”이나 “생김새가 판이하게 다르다” 같은 보기글이 나와요. 한국말사전 보기글도 겹말로 잘못 올렸습니다. 한자말 ‘판이’를 쓰고 싶다면 “판이하고” 꼴로만 적어야 하고, 굳이 이 한자말을 쓸 일이 없다고 여기면 “다르고”나 “아주 다르고”나 “사뭇 다르고”나 “몹시 다르고”처럼 쓰면 됩니다. 4348.12.17.나무.ㅅㄴㄹ



독일어는 한국어와 판이하게 다르고

→ 독일말은 한국말과 아주 다르고

→ 독일말은 한국말과 사뭇 다르고

《손관승-그림 형제의 길》(바다출판사,2015) 207쪽


(최종규/숲노래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말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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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코로스, 어머니의 보물상자 페코로스 시리즈 2
오카노 유이치 글.그림, 양윤옥 옮김 / 라이팅하우스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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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583



아이를 돌보고 어버이를 보살피는 기쁨

― 페코로스, 어머니의 보물상자

 오카노 유이치 글·그림

 양윤옥 옮김

 라이팅하우스 펴냄, 2015.12.5. 12500원



  나는 두 어버이한테서 태어났습니다. 두 어버이한테서 물려받은 사랑으로 무럭무럭 자랐습니다. 이윽고 몸이 많이 자란 뒤에 짝님을 만나서 새롭게 아이를 낳습니다. 아이를 낳으면서 나도 새삼스레 어버이가 됩니다.


  나를 낳은 두 어버이는 저마다 다른 두 어버이한테서 태어났습니다. 두 어버이는 또 다른 두 어버이한테서 태어났습니다. 이렇게 두 어버이는 자꾸자꾸 이어집니다. 먼먼 옛날부터 서로 아끼고 보살피며 어깨동무하는 사이로 지내는 두 어버이는 언제나 고운 사랑으로 아이를 낳아 돌보았습니다.



‘나가사키 비탈진 돌계단에는 시장 다녀온 어머니들이 멀거니 서 있는 포인트가 있다. 마침맞게 어른어른 햇볕을 가려 주는 바람 통하는 길. 어머니도 어린 아와 남동생을 데리고 이곳에 멀거니 서 있곤 했다. 술주정 심한 아버지에게서 도망칠 때도.’ (5쪽)




  만화책 《페코로스, 어머니의 보물상자》(라이팅하우스,2015)를 읽습니다. 이 만화책을 빚은 오카노 유이치 님은 어머니를 대단히 아끼거나 돌보는 사람은 아닙니다. 이녁 어머니가 다기 아기로 돌아가듯이 거의 아무것도 못하면서 요양시설에서 지낼 적에 ‘어머니 기저귀’를 갈아 준다든지, ‘어머니 밥’을 차려 준다든지 하지 못해요. 《페코로스, 어머니의 보물상자》를 빚은 오카노 유이치 님이 할 수 있는 일이란 이녁 나름대로 돈을 벌어서 어머니를 요양시설에서 모시는 일에다가 어머니하고 지내는 삶을 만화로 그리는 일입니다.


  옛날 같으면 있을 수 없는 일이라 할 만해요. 옛날에는 제 어버이가 늙으면 어느 딸아들이든 집에서 늙은 어버이를 모시며 살았으니까요. 먼먼 옛날부터 어버이는 아이를 돌보고, 어른으로 자란 아이는 다시 늙은 어버이를 보살피면서 살림을 짓고 이야기를 나누며 사랑을 주고받았어요.


  그런데 만화책 《페코로스, 어머니의 보물상자》는 어떻게 널리 사랑받는 책이요 만화요 이야기가 될 수 있을까요? 만화를 그린 오카노 유이치 님은 그저 요양시설을 찾아갈 뿐이고, 똥이고 밥이고 돌봄이며 아무것도 할 수 없거나 하지 않지만, 이녁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어떻게 사람들 마음을 찬찬히 건드릴 수 있을까요?



“미쓰에, 어디 갔었어?” “앗, 히로코.” “저기가 나가사키야.” “가고 싶다. 여기(아마쿠사) 계속 있다가는, 애보기와 밭일에서 벗어날 수 없어. 히로코, 나랑 나가사키에 가자.” ‘아하, 엄니가 지금 아마쿠사에 가 있구나. 어머니 속에는 보물상자가 있고, 그 보물상자 안에 깜빡 들어선 것 같은 그런 묘한 순간들이 있다.’ (12∼13쪽)


‘요양시설에 어머니를 찾아가 딱히 하는 일 없이 함께 보내는 이 시간의 신비로운 느낌. 무심히 흘러가는 시간의 이 신비한 따뜻함.’ (46쪽)




  어버이가 아이를 돌볼 적에는 더 나은 시설이나 문화를 베풀어 주지 않습니다. 어버이는 아이를 돌보며 언제나 사랑으로 어루만집니다. 반찬이 김치 한 조각만 오르는 밥상이라 하더라도 어버이는 아이하고 사랑을 나누는 밥상맡에 둘러앉습니다. 따순 밥 한 그릇으로 오붓하게 삶을 지으려고 하는 어버이예요.


  요양시설에서 지내는 늙은 어버이를 마주하는 오카노 유이치 님은 아마 한동안 아주 바빴으리라 느껴요. 스무 살이 넘고 서른 살을 지나는 동안 스스로 꿈을 키우려고 매우 바쁘게 지냈으리라 느낍니다. 그리고 이처럼 ‘아이가 꿈을 찾아 달리는 모습’을 먼발치에서 바라보며 흐뭇하게 웃는 어버이예요.


  이리하여 아이(오카노 유이치)는 어버이 곁에서 딱히 다른 하는 일은 없이 손만 맞잡는다든지, 함께 꾸벅꾸벅 졸며 해바라기를 한다든지, 어머니가 문득 들려주는 옛날 옛적 어린 삶 이야기를 가만히 받아들입니다. 뭔가를 더 해 주는 삶은 아니요, 뭔가를 더 해 주지도 못하는 삶이라 할 텐데, 이런 삶이라 하지만 아이와 어버이 사이를 잇는 사랑이라는 끈을 늘 차분히 돌아보면서 한 칸 두 칸 만화를 그려 넣습니다.



“할머니가 나예요?” “그렇구먼, 늙어 버린 미쓰에란다. 앞으로 너는 많은 일을 경험할 게야. 전쟁도 겪을 것이고, 원자폭탄 떨어진 도시로 시집가서, 술주정 남편 때문에 고생도 숱하게 하고, 큰아들은 대머리 번들번들.” “할머니는 얼굴이 참 고우세요. 좋은 일이 많았던 얼굴이에요.” (67쪽)


“엄니, 봄이 오면 쓰요시도 걸을 수 있어?” “하하, 아니야. 쓰요시 걸음마는 좀더 기다려야 해.” “그때도 아부지는 술 취해서 다 뒤집어엎을까?” “후유. 그 술버릇은 못 고쳐.” (81쪽)




  어버이는 아이를 돌보면서 기쁩니다. 날마다 새롭게 자라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거든요. 아이는 어버이가 보살펴 주니 기쁩니다. 날마다 새로운 사랑을 받을 수 있거든요.


  어버이는 날마다 밥을 새로 짓고, 옷을 새로 갈아입히고, 이야기를 새로 들려주면서, 어버이 스스로 새로운 마음이 됩니다. 아이는 날마다 밥을 새로 받고, 옷을 새로 갈아입으며, 이야기를 새로 들으면서, 아이 나름대로 새로운 숨결로 거듭납니다.


  아이를 돌보는 일이 고단하면 아이는 어버이한테서 고단한 기운을 물려받습니다. 아이를 돌보다가 문득 한숨을 쉬거나 거친 말이 새어나오면 아이는 이런 한숨이나 거친 말을 문득 듣고는 마음속에 앙금으로 쌓습니다. 아이를 돌보며 빙글빙글 웃는다면 아이는 어버이한테서 웃음을 물려받아요. 힘들다 싶은 일을 하면서도 노래를 부르는 어버이라면, 어버이는 아이한테 노래하는 기쁨을 물려줍니다.



“미쓰에 언니, 내가 먼저 오게 됐네.” “후사코, 죽어 버렸니?” “언니는 천천히 와도 괜찮아.” (142쪽)


“언니, 마음껏 울어.” “후사코.” “날이 따뜻해져서 이 간지럼나무에 잎사귀가 가득해지면 간지럼 먹이러 오자, 언니.” (143쪽)




  만화책을 덮으며 생각합니다. 두 아이를 돌보며 지나온 발자국을 되짚습니다. 어버이로서 내가 문득 골을 부리면 아이들은 나한테서 곧장 골부림을 물려받아서 골을 부립니다. 어버이로서 내가 즐거이 노래하고 춤을 추면 아이들은 어느새 활짝 웃음꽃을 터뜨리면서 나를 둘러싸고 신나게 춤을 춥니다.


  어버이인 내가 얌전하면 아이들도 얌전합니다. 어버이인 내가 수다쟁이가 되면 아이들도 수다쟁이가 됩니다. 어버이인 내가 꽃을 상냥하게 쓰다듬으면 아이들도 꽃을 상냥하게 쓰다듬습니다. 어버이인 내가 돌멩이를 함부로 뻥뻥 차면 아이들도 돌멩이를 함부로 뻥뻥 차요.


  아마 나는 우리 어버이한테서 골부림이나 짜증을 물려받았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어버이가 나한테 물려준 대로 우리 아이들한테 골부림이나 짜증을 다시 물려줄 수 있어요. 그리고 우리 어버이가 나한테 골부림이나 짜증을 물려주었어도 이를 삭히고 달래어 웃음과 노래로 바꿀 수 있어요. 우리 아이들도 저희 어버이한테서 기쁨을 물려받을 수 있고, 좀 바보스러운 대목도 슬기롭게 가다듬을 수 있어요.



“엄니, 잠 깨셨어요?” “먼 데까지. 먼 데까지 잠을 잤어. 엄청 먼 데까지 잠을 잤어.” (155쪽)



  아이들하고 함께 꿈을 꿉니다. 아이들하고 함께 노래합니다. 아이들하고 함께 삶을 사랑하면서 손을 맞잡고 춤을 춥니다. 만화책 《페코로스, 어머니의 보물상자》는 책이름에 드러나듯이 ‘대머리가 된 늙은 아들’이 더 늙은 어머니가 살며시 열며 보여주는 보물상자 같은 숱한 이야기를 가만히 받아들여서 누린 하루를 들려줍니다.


  살짝 늙은 수수한 대머리 아저씨가 폭삭 늙은 어머니한테서 보물상자를 엿보고, 이 보물상자를 살뜰히 아낍니다. 오늘 나는 조용한 시골에서 조용한 살림을 가꾸면서 왁자지껄 개구지게 노는 아이들한테서 새로운 보물을 느끼고 내 마음속에서 새로운 보물상자를 끌어내어 사랑스러운 씨앗을 심는 하루를 누립니다. 우리한테는 저마다 다른 보물상자가 있고, 이 저마다 다른 보물상자에는 저마다 다르면서 고운 이야기가 물씬 흐르리라 생각합니다. 4348.12.17.나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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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는재로 2015-12-17 11: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권도 감동적이었지만 이번권도 감동적입니다 전권은 군데군데 글로 되어 만화부분의 비율이 좀 적었지만 이번책은 만화부분의 분량이 대부분이라 더 어린시절의 이야기와 어머니의 이야기가 참
아버지는 솔직히 술에 취해 저런행동을 하는인간이라니 그래도 저런 아버지에게 헌신한 어머니의 모습 그리고 대공습의 피해를 보여주면서 반전의 정신까지 그려낸 감동적인 글이에요 나라는 달라도 부모님에 대한 사랑은 어디든 마찬가지 같아요

파란놀 2015-12-17 11:33   좋아요 0 | URL
네, 이번 책은 한결 부드러우면서도 깊고, 그리고 아프면서 따스한 이야기가 잔잔히 흘렀구나 하고 느꼈어요. 이러한 사랑을 받아 태어났고, 또 이러한 사랑으로 우리는 이곳에서 아이들을 돌볼 수 있을 테지요 ^^
 

<전라도닷컴> 2015년 12월호에 실은 글입니다. 다음달 글을 이제 막 마무리짓고 기쁘게 전라도닷컴에 보냈기에, 이달 글을 누리집에 띄웁니다.


..


시골도서관 풀내음

― 마당을 누리는 집에서



  겨울을 앞둔 늦가을에 뒤꼍에서 유자를 땁니다. 가시가 많은 유자나무 곁에 걸상을 받치고 서서 한 알씩 찬찬히 따서 큰아이한테 건네면, 큰아이는 곧 작은아이한테 건넵니다. 작은아이는 누나가 건네준 유자알을 한손에 하나씩 받은 뒤 신나게 콩콩 뛰면서 마당으로 내려갑니다. 뒤꼍에서 해를 잘 받으며 자라는 유자나무는 봄이면 하얀 꽃을 피우고 가을이면 노란 열매를 맺어요. 우리는 유자나무를 비롯해서 모든 나무를 아침저녁으로 바라보면서 ‘우리 집 사랑스러운 나무야, 잘 잤니?’ 하고 물은 뒤 ‘우리 집 예쁜 나무야, 잘 자렴!’ 하고 절을 합니다.


  마당에서 우람하게 자라는 후박나무를 보고는 ‘네 그늘이 참으로 멋지구나!’ 하고 노래합니다. 겨울에는 그늘이 안 달갑다고도 할 만하지만, 겨울에는 해가 길게 눕기 때문에 그리 그늘지지 않습니다. 마당에 나무 한 그루가 우람하게 서면, 한여름에는 뙤약볕을 가려 주고 한겨울에는 세찬 바람을 막아 줍니다. 예부터 집 둘레에 나무를 알맞게 심는 까닭은 볕과 바람을 고루 누리려는 뜻이지 싶습니다. 나무가 있어서 볕이랑 그늘을 함께 맞이하고, 나무가 있기에 싱그러운 바람이 불 뿐 아니라 세찬 바람을 가려 줍니다.


  아이들하고 《나의 사과나무》(키즈엠,2015)라는 그림책을 보면서 나무 한 그루란 얼마나 대단한가 하고 새삼스레 떠올립니다. 버려진 능금나무를 아이가 손수 살뜰히 돌보면서 되살리는 이야기가 흐르는 그림책에는 ‘되살아난 능금나무가 능금 열매를 잔뜩 베푸는 모습’이 나옵니다. 되살아난 능금나무에는 새가 다시 찾아오고, 벌레도 꼬물꼬물 기어요.


  그림책에 나오는 아이는 벌레를 함부로 잡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벌레는 새한테 먹이가 되니까요. 벌레는 때때로 능금알을 뚫고 파먹을 테지만, 몇 알쯤 파먹어도 괜찮아요. 벌레가 어느 만큼 있어야 새도 벌레잡이를 하면서 새끼 새를 돌보거든요. 나무 한 그루는 새도 받아들이고 벌레도 받아들이며, 무엇보다 저를 아끼고 돌보아 주는 따순 손길과 마음과 사랑인 사람들도 받아들입니다.


  그나저나 마당을 누릴 수 있어야 나무를 심어서 건사합니다. 마당이 제법 넓어야 나무 밑에 평상이나 걸상을 두면서 그늘을 누립니다. 마당이 아주 넓지 않더라도 나무를 심고 텃밭을 가꾼다면, 한 해 내내 즐거운 살림을 북돋울 만합니다. 아이들은 마당에서 맨발로 마음껏 뛰놀고, 어른들은 아이들이 뛰노는 곁에서 요모조모 살림을 짓지요. 아이들은 어른들이 일하는 곁에서 어깨너머로 살림을 배웁니다.


  듬직하고 알찬 《모둠도둠 산꽃도감》(자연과생태,2013)을 아이들하고 함께 넘기면서 다시금 생각에 잠깁니다. 《모둠모둠 산꽃도감》은 멧골에서 흔히 피는 온갖 꽃을 한 자리에 알맞게 갈래를 지어서 ‘비슷한 생김새’가 어떻게 다르거나 같은가를 알려줍니다. 어수리와 참당귀와 궁궁이와 강활과 구릿대와 고본과 바디나물이 어떻게 다른가를 나란히 알려주고, 양지꽃과 세잎양지꽃과 돌양지꽃과 물양지꽃과 딱지꽃과 가락지나물을 어떻게 가르는가를 찬찬히 보여줍니다. 뻐꾹채와 엉겅퀴와 큰엉겅퀴와 바늘엉겅퀴 들을 어떻게 살피면 되는가를 쉽게 밝힙니다.


  멧꽃을 모둠으로 묶어서 보여주기까지 무척 오랫동안 멧꽃을 지켜보고 살펴보고 들여다보고 마주보았겠구나 하고 느낍니다. 멧꽃처럼 들꽃도 오래도록 사랑으로 지켜보거나 살펴볼 적에 꽃마다 어떻게 다르면서 새롭고 아름다운가를 기쁘게 알아차릴 수 있으리라 느낍니다.


  그리고, 꽃이 저마다 다르듯이 마을도 저마다 다릅니다. 시골에 있기에 다 같은 마을이 아니라, 볕과 바람과 비와 흙이 저마다 살짝살짝 다른 마을입니다. 마을에서 나고 자라는 사람도 저마다 다르고, 이렇게 다른 사람들은 저마다 기쁜 사랑을 마음에 고이 품으면서 저마다 새로운 꿈을 차근차근 이루려 합니다.


  마당 생김새도 집집마다 다르지요. 마당에 놓는 살림도 집집마다 다르고요. 마당을 가꾸는 손길도 집집마다 다를 수밖에 없고, 마당 한쪽에 심는 나무도 집집마다 다르기 마련입니다.


  겨울이 되어도 마당에서 맨발로 뛰놀기를 좋아하는 아이들이 ‘망가진 세발자전거’를 갖고 새로운 놀이를 짓습니다. 작은아이는 망가진 앞쪽 손잡이를 들고 놀다가, 큰아이가 끌어 주는 뒤쪽 걸상을 붙잡고 ‘손으로 끄는 자전거’ 놀이를 새삼스레 즐깁니다.


  아버지가 자전거에 두 아이를 태워서 마을 뒤쪽 천등산 골짜기로 나들이를 가면, 작은아이는 먼저 앞장서서 숲길을 헤치고 싶습니다. 큰아이는 골짜기로 들어서기 앞서 빨갛거나 노랗게 물든 잎을 뜯어서 ‘가랑잎놀이’를 하고 싶습니다. 마을 한 바퀴를 그냥 달리면서 도는 놀이를 할 적에, 아이들이 붙인 이름으로는 ‘마을 한 바퀴 놀이’인데, 두 아이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두 팔을 활짝 벌리고 하늘을 날듯이 통통통 달립니다. 따로 장난감이 없이, 언제나 스스로 장난감이 되면서 기쁘게 하루를 짓습니다.


  가만히 보면, 아이들은 제 어버이를 장난감으로 삼기 일쑤입니다. 목말을 태워 달라는 둥, 엎드려서 말이 되어 달라는 둥, 드러누워서 배가 되어 달라는 둥, 어버이는 아이들 놀잇감이나 장난감이 됩니다. 그러면 어버이로서 이 아이들을 장난감으로 삼아 봅니다. 아이들 손이나 발을 잡고 마당에서 빙글빙글 돕니다. 아이들은 어버이가 마당에서 깔깔깔 웃으면서 놀도록 북돋우는 놀잇감이 되고, 어버이는 다시 아이들이 타고 안기고 업히면서 노래하는 놀잇감이 됩니다.


  마당에서 함께 뛰고, 마당에서 함께 일하며, 마당에서 함께 빨래를 널고 걷습니다. 마당에서 함께 숨바꼭질을 하고, 마당에서 함께 술래잡기를 하며, 마당에서 긴줄을 살살 돌리며 줄넘기놀이를 할 수 있습니다. 마당에 선 나무는 우리를 포근히 굽어보면서 겨울바람을 막아 주고 솨락솨락 겨울노래를 들려줍니다. 4348.11.18.물.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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