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랑 놀자 169] 빈그릇



  집에서 맛있게 밥을 먹은 뒤에는 빈그릇을 개수대에 놓습니다. 물꼭지를 틀어서 그릇을 물로 부시고 수세미로 문질러서 깨끗하게 해 놓지요. 집이 아는 밖에서 밥을 돈을 치르고 사다가 먹으면, 이때에는 우리가 빈그릇을 치우지도 않고 설거지를 하지도 않습니다. 때로는 밥상을 그대로 놓고 일어서요. 잔뜩 어질러진 밥상까지 밥집 일꾼이 치워요. 학교에는 밥판에 밥을 담아서 밥상맡에 앉아요. 밥을 담는 판이기에 밥판이니, 밥을 담은 접시라 하면 밥접시이고, 밥을 담은 그릇이면 밥그릇이에요. 책을 놓아 배우니 책상이고 밥을 놓아 먹으니 밥상이에요. 학교에서는 밥판이나 밥접시나 밥그릇을 스스로 들고 자리를 찾아 앉은 뒤, 빈그릇을 스스로 치워요. 자, 그러면 밥을 다 먹고 빈그릇을 치우러 우리가 스스로 움직일 적에는 어느 곳에 가면 될까요? '빈그릇'이라는 말을 푯말로 붙인 곳에 빈그릇을 갖다 놓습니다. 어느 학교에 가서 밥을 먹은 뒤에 '퇴식구'라는 이름만 있어서 한동안 헤맸답니다. 4348.12.20.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말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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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움마실을 마친 밤



  곁님 어머니하고 곁님 동생 식구하고 함께 배움마실을 다녀온다. 이틀 동안 모두 씩씩하게 새로운 배움길을 걸었다. 나이가 제법 있는 사람들이 나선 배움길이란 삶을 스스로 새롭게 짓거나 가꾸려고 하는 길이다. 초등학생이나 고등학생만 배우는 길을 닦을 노릇이 아니라, 서른이건 쉰이건 일흔이건 삶을 사랑하려는 꿈이 있으면 누구나 기쁘게 배울 노릇이라고 느낀다.


  배움마실을 히단 엊저녁에 뮤패드 태블릿으로 글을 좀 쓰려는데 무선자판은 갑자기 건전지가 다 닳아서 못 쓰고, 유선다람쥐는 갑자기 먹통이 되었다. 이놈들이 왜 이러나 하고 한참 실랑이를 하다가 문득 알아차렸다. 새로운 삶을 배우려고 하면서 내 몸에서 나오는 전자기장이 이 아이들을 이렇게 해롱거리게 했구나 하고.


  이제 오늘 밤 잘 자고 이튿날 새벽에 서울로 전철을 타고 가서, 아침 여덟 시 버스를 신나게 타고 고흥으로 돌아가야지. 사흘 밤을 아버지가 바깥에서 자며 배움마실을 하느라 두 아이가 몹시 기다리겠네. 그동안 모두 재미있게 놀았기를 빌고, 아버지가 시골집으로 돌아가면 아주 재미나게 새로운 마음이 되어 놀아야지. 4348.12.20.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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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일어서며 새싹이 돋고
해가 누우며 풀이 죽고
따순바람 불며 꽃이 피고
찬바람 불며 잎이 지고

겨우내
풀씨 꽃씨 나무씨 모두
흙 품어 가랑잎 품에 눈밭 품에
고이 안겨서 자다가
해가 다시 일어서는 날
기다리면서
꿈꾼다.


2015.12.20.해.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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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권쯤이야



  고흥에서 서울로 가는 버스길에서 책을 다섯 권 읽었다. 고흥으로 돌아가는 길에도 이쯤 넉넉히 읽으리라 생각한다. 집안일을 안 애도 되기에 책을 한결 빨리 읽지는 않는다. 그저 온마음을 여기에 모을 만하니 가벼운 바람결 같은 손길이 되어 책을 읽는다.

  곁님 어머님하고 전철을 타고 시외버스를 타고 움직이는 동안에는 한 줄조차 안 읽는다. 곁에 이야기를 나눌 숨결이 있으니 책에 마음을 쏟을 일이 없다. 크게 보면 사람은 모두 사람책이니, 곁에 있는 님하고 도란도란 빚는 이야기는 언제나 고우면서 사랑스러운 책이다. 시골에서는 마당하고 밭하고 숲이 책 노릇을 한다.

  그리고 나는 아이들 어버이로서 아이들이라고 하는 온누리에서 가장 맑고 밝으며 고운 책을 하루 내내 마주한다. 참말 아이들이란 어른들한테 둘도 없는 보배 같은 책이다. 아이들로서도 제 어버이가 온누리에서 가장 사랑스러우며 포근한 책이 될 테고. 4348.12.20.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삶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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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버지가 아버지로서 삶을 새로 가다듬는 길을 배우고자 마실을 나왔다. 아이들도 늘 삶을 새로 배우고, 어버이도 삶을 늘 새로 배우는데 나 스스로 한결 고운 넋이랑 웃음으로 노래하는 길을 가려고 배움마실을 다닌다. 오늘 이렇게 아버지가 혼자 길을 나섰는데,  다음에는 우리 다 같이 배우러 나오자. 시골집에서 이쁘게 놀렴. 고마워. 4348.12.19.흙.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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