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 없애야 말 된다

 비판적


 비판적 태도를 보일 필요가 있다 → 비판해야 한다 / 비판해 주어야 한다

 매사에 너무 비판적이다 → 모든 일에 너무 꼬치꼬치 따진다

 비판적 사고 → 판가름하는 생각 / 따질 줄 아는 생각

 비판적 독해 → 판가름 독해 / 판가름하기

 비판적 담론 → 비판 담론 / 판가름 담론

 비판적 읽기 → 밝게 읽기 / 판가름 읽기 / 파헤쳐서 읽기


  ‘비판적(批判的)’은 “사물의 옳고 그름을 가리어 판단하거나 밝히는”을 뜻한다고 합니다. ‘판단(判斷)’은 “사물을 인식하여 논리나 기준 등에 따라 판정을 내림”을 뜻한다 하고, ‘판정(判定)’은 “판별하여 결정함”을 뜻한다 하며, ‘판별(判別)’은 “옳고 그름이나 좋고 나쁨을 판단하여 구별함”을 뜻한다 합니다. ‘구별(區別)’은 “성질이나 종류에 따라 차이가 남. 또는 성질이나 종류에 따라 갈라놓음”을 뜻한다 해요. ‘판단→판정→판별→판단’으로 빙글빙글 도는 말풀이입니다.


  한국말에 ‘판가름’이 있고, 이 낱말은 “사실의 옳고 그름이나 어떤 대상의 나음과 못함, 가능성 따위를 판단하여 가름”을 뜻한다고 합니다. ‘판단·판정·판별’은 바로 한국말 ‘판가름’을 가리키는 셈입니다. ‘비판’이나 ‘비판적’ 같은 한자말을 꼭 쓰고 싶다면 쓸 수밖에 없을 테지만, 한국말에 ‘판가름’이 있고, 때와 곳을 살펴서 ‘따지기’나 ‘밝히기’나 ‘파헤치기’ 같은 낱말을 쓸 만하며, ‘비판적이다’는 ‘날카롭다’나 ‘나무라다’나 ‘못마땅하게 여기다’나 ‘싫어하다’나 ‘차분하다’나 ‘차갑다’를 가리키는 자리에 끼어들기도 합니다. 4348.12.24.나무.ㅅㄴㄹ



비판적인 눈으로 응시하지는

→ 따가운 눈으로 바라보지는

→ 매서운 눈으로 바라보지는

→ 날카로운 눈으로 바라보지는

→ 내키지 않는 눈으로 바라보지는

→ 못마땅해 하는 눈으로 보지는

《페스탈로찌/홍순명 옮김-린하르트와 겔트루트》(광개토,1987) 161쪽


비판적인 자세로 수용해야 합니다

→ 비판 자세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 꼼꼼히 살펴서 받아들여야 합니다

→ 찬찬히 따져서 받아들여야 합니다

→ 곰곰이 판가름하며 받아들여야 합니다

→ 옳고 그름을 가려서 받아들여야 합니다

→ 잘잘못을 가리며 받아들여야 합니다

→ 잘 살펴서 받아들여야 합니다

《김남주-시와 혁명》(나루,1991) 34쪽


비판적으로 읽도록

→ 따져서 읽도록

→ 파헤쳐서 읽도록

→ 판가름하며 읽도록

→ 옳고 그름을 가리면서 읽도록

→ 속 깊이 살피며 읽도록

《헨리 지루/이경숙 옮김-교사는 지성인이다》(아침이슬,2001) 52쪽


크리슈나무르티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 크리슈나무르티를 비판한다

→ 크리슈나무르티를 나무라는 쪽에 선다

→ 크리슈나무르티한테 무엇이 잘못인가를 말한다

→ 크리슈나무르티가 무엇을 잘못하는가를 밝힌다

《전사섭-장충동 김씨를 위한 책 이야기》(시공사,2003) 68쪽


거울 속의 얼굴을 비판적으로 바라본다

→ 거울에 비친 얼굴을 비웃듯이 바라본다

→ 거울에 비친 얼굴을 손가락질하듯이 바라본다

→ 거울에 비친 얼굴을 나무라듯이 바라본다

→ 거울에 비친 얼굴을 꾸짖듯이 바라본다

→ 거울에 비친 얼굴을 씁쓸히 바라본다

→ 거울에 비친 얼굴을 쓰겁게 바라본다

→ 거울에 비친 얼굴을 쓰디쓰게 바라본다

→ 거울에 비친 얼굴을 쓸쓸히 바라본다

→ 거울에 비친 얼굴을 차갑게 바라본다

《존 버거,장 모르/김현우 옮김-행운아》(눈빛,2004) 227쪽


비판적으로 바라봄으로써

→ 비판 어린 눈으로 바라보면서

→ 차분히 돌아보면서

→ 잘하고 못한 대목을 짚으면서

《이숙의-이 여자, 이숙의》(삼인,2007) 23쪽


그런 관행들에 비판적이었기 때문이다

→ 그런 관행들을 비판했기 때문이다

→ 그런 관행들을 따졌기 때문이다

→ 그런 관행들을 나무랐기 때문이다

→ 그런 관행들을 꾸짖었기 때문이다

《마저리 쇼스탁/유나영 옮김-니사》(삼인,2008) 47쪽


비판적 사고는 부정적 사고가 아닙니다

→ 비판하는 생각은 나쁘게 보는 생각이 아닙니다

→ 비판 어린 생각은 나쁜 생각이 아닙니다

→ 판가름하기는 나쁘게 보는 눈길이 아닙니다

《손석춘-10대와 통하는 사회 이야기》(철수와영희,2015) 39쪽


(최종규/숲노래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말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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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적' 없애야 말 된다

 일상적


 일상적 모습 → 흔히 보는 모습 / 여느 모습

 일상적 생활 → 여느 삶 / 하루하루 삶

 일상적 습관 → 늘 보이는 버릇

 일상적으로 많이 사용된다 → 늘 많이 쓰인다

 일상적으로 하는 일 → 으레 하는 일

 일상적으로 이르는 말 → 흔히 이르는 말 / 쉽게 이르는 말


  ‘일상적(日常的)’은 “날마다 볼 수 있는”을 뜻한다고 합니다. ‘일상(日常)’은 “매일 반복되는 생활”을 뜻한다고 합니다. 두 낱말은 모두 한자말인데 뜻풀이가 다릅니다. 가만히 살피면, ‘일상’은 “날마다 되풀이되는 삶”이란 뜻이고 “날마다 같은 삶”이란 뜻이기도 합니다. 짤막하게 “늘 같은 삶”이나 “한결같은 삶”이라 할 만합니다. 아무튼 ‘일상적’은 말뜻대로 “날마다 보는”이나 “늘 보는”으로 손질하면 되고, 흐름을 살펴서 ‘흔히·으레·자주·쉽게·손쉽게·늘·언제나·가볍게·가까이’ 같은 낱말로 손볼 수 있습니다. 4348.12.24.나무.ㅅㄴㄹ



일상적으로 행해지고 있었다

→ 으레 벌어진다

→ 자주 일어난다

→ 손쉽게 볼 수 있었다

→ 늘 있었다

→ 흔했다

→ 잦았다

《요시미 요시아키/이규태 옮김-일본군 군대위안부》(소화,1998) 66쪽


인권 침해사례를 일상적으로 경험하고 있다

→ 인권 침해를 늘 경험한다

→ 인권 침해를 언제나 겪는다

→ 인권 침해를 예나 이제나 겪는다

→ 인권 침해를 끊임없이 겪는다

→ 인권 침해를 한결같이 겪는다

《외국인노동자대책협의회-외국인 이주노동자 인권백서》(다산글방,2001) 19쪽


일상적 의미보다는 훨씬 더 심오하고 정확한

→ 흔한 뜻보다는 훨씬 더 깊고 올바른

→ 여느 뜻보다는 훨씬 더 깊고 또렷한

→ 수수한 뜻보다는 훨씬 더 깊고 바른

《존 버거·장 모르/김현우 옮김-행운아》(눈빛,2004) 75쪽


더 일상적인 감정이며

→ 더 수수한 감정이며

→ 더 흔히 품는 느낌이며

→ 더 쉽게 품는 느낌이며

《존 버거·장 모르/김현우 옮김-행운아》(눈빛,2004) 81쪽


일상적인 말로 자리잡기도 한다

→ 일상말로 자리잡기도 한다

→ 흔히 쓰는 말로 자리잡기도 한다

→ 흔한 말로 자리잡기도 한다

→ 가벼운 말로 자리잡기도 한다

《중앙일보 어문연구소-한국어가 있다 1》(커뮤니케이션북스,2005)


일상적 문화공간

→ 일상 문화공간

→ 마을 문화 터전

→ 언제나 즐길 문화 쉼터

→ 가까이 찾아갈 수 있는 문화 쉼터

→ 언제라도 찾아가는 문화 쉼터

《최엄윤-이천동, 도시의 옛 고향》(이매진,2007) 124쪽


일상적으로 쓰는 말에도

→ 흔히 쓰는 말에도

→ 쉽게 쓰는 말에도

→ 늘 쓰는 말에도

→ 가볍게 쓰는 말에도

《손석춘-10대와 통하는 사회 이야기》(철수와영희,2015) 21쪽


(최종규/숲노래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말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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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은 나한테 여러모로 새로운 한 해이다.

2014년까지도 늘 새로운 한 해였는데,

2015년에는 처음으로 '한 해 계획'을 1월에 세웠고,

이때에 세운 계획을 모두 이루었다고 느끼며,

무엇보다도 2015년에는 '내 이름'을 바꾸었다.

열아홉 살 적부터 쓰던 '함께살기'라는 이름은 고이 내려놓고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바꾸었다.

스무 해 남짓 쓰던 이름을 바꾸기란 쉽지 않을 듯했지만

막상 바꾸고 보니 아주 쉬었다.

그냥 하면 다 되는 일이었다.


여러 곳에 글을 올리지만, 알라딘서재에서는 '연간 통계'라는 

재미난 이야깃거리를 베풀어 주기에,

이 '연간 통계'를 들여다보기로 한다.




2011년 - 92,041 방문 (828) + 1726꼭지 + 3,278,710자 + 28.46권 (여섯째)

2012년 - 194,551 방문 (1150) + 2188꼭지 + 4,092,592자 + 35.53권 (둘째)

2013년 - 191,599 방문 (1461) + 3351꼭지 + 5,201,687자 + 45.15권 (첫째)

2014년 - 495,551 방문 (3152) + 4538꼭지 + 14,775,504자 + 128.26권 (첫째)

2015년 - 1,062,796 방문 (8357) + 4103꼭지 + 15,590,544자 + 135.33권 (첫째)


다섯 해에 걸친 '알라딘서재 방문자' 흐름을 살피니, 

나 스스로 새롭게 거듭나려고 할 무렵에는

한 해 방문자가 이듬해에 곱배기로(곱배기보다 조금 더 많이) 늘었다.

어떻게 이렇게 될 수 있을까?

아무래도 내가 쓴 글을 사랑해 준 이웃님들 때문이다.

이웃님들이 찾아와 주지 않으면 '방문자 숫자'가 생길 수 없잖은가.


알라딘서재이든 예스24블로그이든 네이버블로그이든 반디블로그이든

처음 이런 누리사랑방을 열 적에는

하루 방문자가 한둘이나 서넛이나 너덧 즈음이었다.

이러다가 한 해가 지나니 열이나 스물쯤 되었고

다시 한 해가 지나며 쉰 안팎이다가

또 한 해가 지나며 하루 백 분 즈음 드나들었는데,

해가 가면 갈수록 숲노래 누리집에 찾아오는 

이 많은 발걸음을 생각하면 할수록

글 한 줄을 어떠한 마음으로 써야 하는가를

새삼스레 깨닫는다.




2011년 - 리뷰 382 + 페이퍼 1313 + 리스트 25

2012년 - 리뷰 455 + 페이퍼 1571 + 리스트 161

2013년 - 리뷰 434 + 페이퍼 2677 + 리스트 240

2014년 - 리뷰 596 + 페이퍼 3498 + 리스트 444

2015년 - 리뷰 612 + 페이퍼 3275 + 리스트 216


2014년에는 '글을 얼마나 많이 쓸 수 있는가?'를 생각해 본 해였고

2015년에는 '리뷰'라고 하는 성격으로 쓰는 글을 '얼마나 많이 쓸 수 있는가?'를

생각해 보았다.

2016년에는 어떤 한 해가 될 만할까?

2016년에는 알라딘서재를 비롯해서 누리집에 올리는 글보다

'책에 넣을 원고로 쓰는 글'이 더 많으리라 본다.

아마 2016년에는 페이퍼라고 하는 '삶글' 숫자가 줄어들 수 있을 테고

'리뷰'라고 하는 '책느낌글(서평)' 숫자는 이보다 더 늘어날 수 있으리라.


아무튼

어떤 글을 쓰든 나 스스로 재미나게 쓸 노릇이고,

숲노래 누리집을 찾아오는 이웃님한테

재미나며 즐겁고 사랑스러운 이야기를 베풀 수 있기를 꿈꾼다.

2016년을 꿈꾸며

2015년을 기쁘게 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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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글 읽기

2015.12.7. 큰아이―감과 함께



  우리 집에서는 내 생일을 딱히 챙기지 않으나 둘레에서 생일을 축하한다는 말을 해 주어 비로소 나도 그때가 내 생일인 줄 안다. 올해에는 이러한 생일 축하만 받을 수 없다고 여겨서, 읍내에 나가 감꾸러미를 여럿 장만한 뒤에 음성 할머니 일산 할머니 이모, 이렇게 세 곳에 선물로 부친다. 나는 상자에 감꾸러미를 담고, 큰아이는 세 곳에 보낼 글월을 쓴다. 올해에는 세 곳에만 감꾸러미를 선물로 부치지만 새해에는 이러한 선물을 더 많이 보낼 수 있기를 빌어 본다. 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글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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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다란 크리스마스트리가 있었는데 두고두고 보고 싶은 그림책 42
로버트 배리 글.그림, 김영진 옮김 / 길벗어린이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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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597



‘성탄절나무’ 한 그루가 돌고 돌아서

― 커다란 크리스마스트리가 있었는데

 로버트 배리 글·그림

 김영진 옮김

 길벗어린이 펴냄, 2014.12.1. 1만 원



  선물은 언제 우리한테 올까요? 선물은 누가 우리한테 줄까요? 선물은 어디에서 샘솟아서 우리한테 이를까요? 선물은 왜 우리한테 나타날까요? 선물은 어떻게 우리한테 닿을까요?


  하늘에서 뚝 하고 선물이 찾아올 수 있을 테지만, 선물이 우리한테 오려면 ‘선물이 될 것’을 우리가 애타게 바라고 꿈꾸며 빌어야 한다고 느낍니다. 우리 스스로 애타게 바라거나 꿈꾸거나 빌지 않고서야 선물을 받을 수 없는 일이라고 느낍니다. 늘 생각하고 언제나 가슴에 두기에 선물을 받을 만하구나 싶습니다. ‘소원종이’에 바람이나 꿈을 적는다고 하듯이, 마음에 어떤 꿈을 생각으로 깊게 새겨서 노상 되뇔 수 있을 때에 이러한 바람이나 꿈을 이룰 수 있지 싶습니다.



나무를 세우고 보니 상상한 것과 퍽 달랐어요. 나무 꼭대기가 천장에 닿아 픽 꺾였어요. 윌로비 씨가 한숨을 폭 쉬었어요. “오, 이런! 이대로 둘 순 없지!” (8쪽)




  로버트 배리 님이 빚은 그림책 《커다란 크리스마스트리가 있었는데》(길벗어린이,2014)를 읽으면서 생각합니다. 한 해가 저무는 섣달에서도 스물나흘째 날에 생기는 일을 재미나게 담은 그림책입니다. 이 그림책 첫머리를 보면 윌로비라고 하는 할아버지 댁에 ‘성탄절나무’ 한 그루가 찾아오는 모습이 나옵니다. 윌로비 씨는 무척 큰 집을 거느린 분이고, 무척 커다란 성탄절나무를 이녁 집안에 들이려 합니다. 그런데 커다란 집이지만 커다란 나무가 그만 다 안 들어갑니다. 나무 꼭대기가 천장에 닿아서 구부러집니다.


  윌로비 씨는 나무 꼭대기가 구부러지니 집사를 불러서 꼭대기를 자르라고 말합니다. 집사는 나무 꼭대기를 자르지요. 그러고는 이 나무 꼭대기를 이 커다란 집에서 일하는 다른 사람한테 선물로 줍니다. 그리고 이 ‘잘린 나무 꼭대기’를 받은 사람은 이녁 나름대로 이녁 방에도 놓으려 하는데 이녁 방에서 천장에 닿으니 새삼스레 다시 ‘나무 꼭대기’를 또 잘라요.



정원사 팀 아저씨가 버려진 나무 꼭대기를 보았어요. 팀 아저씨는 버려진 나무를 그냥 지나칠 사람이 아니었어요. (14쪽)



  그림책 《커다란 크리스마스트리가 있었는데》를 보면 ‘나무 꼭대기’는 자꾸 잘립니다. 여러 사람 손을 거친 뒤에는 여우가 이 나무 꼭대기를 봅니다. 여우는 이녁 보금자리로 가져가서 이 ‘여러 차례 잘려서 버려진 나무 꼭대기’를 두는데 또 ‘나무 꼭대기’가 천장에 닿는군요.


  나무 꼭대기는 또 잘려서 버려집니다. 그리고, 이렇게 잘려서 버려진 나무 꼭대기는 자꾸자꾸 다른 짐승 손으로 갑니다. 더 작은 짐승이 ‘더 작아진 나무 꼭대기’를 손에 쥡니다. 처음에는 커다란 나무 한 그루였는데 차츰 자그마한 ‘나무 꼭대기’가 되고, 마지막으로 생쥐한테 이릅니다.




밤이 깊었어요. 아빠 여우가 지나가다가 버려진 나무 꼭대기를 봤어요. 아빠 여우는 곰곰 생각하다가 자루에 나무 꼭대기를 담았어요. (22쪽)



  생쥐한테까지 닿은 ‘나무 꼭대기’는 사람 눈길로 보자면 매우 작습니다. 그렇지만 생쥐한테 ‘마지막으로 남은 나무 꼭대기’는 작지 않습니다. 사람한테는 매우 작아 보일는지 모르나, 생쥐한테는 ‘무척 큰’ 나무 한 그루라고까지 할 만합니다. 생쥐는 ‘나무 꼭대기를 집으로 가져가느’라 무척 애먹습니다. 눈밭에서 구르고 넘어지거든요. 아빠 생쥐가 나무 꼭대기를 가까스로 집까지 끌고 가니, 이 나무 꼭대기는 생쥐네 집에 꼭 들어맞습니다. 생쥐네 집에서는 더 ‘나무 꼭대기를 잘라야 할 일’이 생기지 않습니다.


  성탄절을 하루 앞둔 밤에 윌로비 씨를 비롯해서 여우며 토끼이며 생쥐이며 모두 기쁜 웃음이 가득합니다. 저마다 제 보금자리에 알맞게 ‘성탄절나무’ 한 그루를 집안에 두었습니다. 사람이 사는 집이든 크고작은 짐승이 사는 집이든 저마다 가슴으로 품는 꿈으로 바라보는 성탄절나무를 누립니다.



아빠 생쥐가 지나가다가 버려진 나무 꼭대기를 봤어요. 아빠 생쥐는 나무 꼭대기를 끌고 가다가 눈밭에서 꽈당. 계단을 오르다가 미끌미끌 꽈당! 후유, 겨우겨우 집에 도착했어요. 엄마 생쥐가 손뼉을 짝 쳤어요. “어쩜, 우리 집에 딱 맞아요!” 생쥐 식구는 나무 꼭대기에 샛노란 치즈 별을 달았어요. (30∼31쪽)




  나는 책상맡에 ‘내 꿈’을 적거나 그린 종이를 올려놓거나 붙입니다.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저희 꿈을 적거나 그린 종이를 문이나 벽마다 붙입니다. 우리는 우리 꿈을 아침저녁으로 언제나 새삼스레 바라봅니다. 마음에 품은 꿈을 늘 바라보면서 이러한 꿈으로 나아가는 길을 새롭게 생각합니다. 스스로 꿈길로 걸어가고, 스스로 꿈노래를 부릅니다. 하려고 하는 일을 생각하고, 이루려는 사랑을 생각합니다. 나아갈 길을 헤아리고, 함께 어우러질 살림을 헤아립니다.


  그림책 《커다란 크리스마스트리가 있었는데》를 가만히 돌아보면, ‘나무 꼭대기’를 얻은 이들은 모두 ‘이만 한 크기로 성탄절나무가 있기를 바랐’습니다. 그래서 나무 꼭대기가 버려질 때마다 길에서 이 ‘버려진 나무 꼭대기’를 그냥 지나치지 않았어요. 모두들 길에서 이 ‘버려진 나무 꼭대기’를 알아보았어요.


  여느 때에 늘 꿈으로 마음에 품지 않았다면 ‘나무 꼭대기가 버려진 자리’ 옆을 지나갈 일이 없었으리라 느껴요. 언제나 꿈으로 고이 마음에 품었기에 ‘나무 꼭대기가 버려진 자리’ 옆을 지나갔을 테고, 나무 꼭대기를 알아보았구나 싶어요. 왜냐하면, 나무 꼭대기가 버려진 자리 옆을 지나가면서 ‘다른 것’은 알아보지 않고 오직 ‘나무 꼭대기’만 알아보거든요.


  한 해가 저무는 섣달 끝자락에서 지난 발걸음을 되새기고, 앞으로 내딛을 발걸음을 되짚습니다. 꿈을 품기에 꿈을 이룬다고 하는 말을 곱씹습니다. 새해에 이루고 싶은 꿈을 아이들하고 함께 새롭게 종이에 적거나 그려서 잘 보이는 자리를 골라서 척 붙여야겠습니다. 4348.12.23.물.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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