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멋대로 공주 비룡소의 그림동화 141
배빗 콜 지음, 노은정 옮김 / 비룡소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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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598



‘나이가 꽉 차’도 시집가기 싫은 공주

― 내 멋대로 공주

 배빗 콜 글·그림

 노은정 옮김

 비룡소 펴냄, 2005.5.17. 9000원



  아이들은 얼마든지 놀 만합니다. 어른도 얼마든지 놀 만합니다. 공부만 해야 하는 아이가 아니고, 일만 해야 하는 어른이 아닙니다. 삶을 즐겁게 누릴 아이요 어른이고, 삶을 사랑스레 가꿀 아이요 어른입니다.


  아이는 나이에 맞추어 이것을 하거나 저것을 해야 하지 않습니다. 모든 아이가 똑같은 나이에 글을 떼거나 어떤 학교를 마쳐야 하지 않습니다. 모든 아이가 똑같은 어느 나이에 이르러 어떤 일을 반드시 해내야 하지 않아요. 더군다나 아이한테는 ‘꽉 찬 나이’가 없습니다.


  이는 어른한테도 마찬가지예요. 어른도 몇 살 나이가 되었으니 이런 일을 꼭 해야 하지 않습니다. 어른도 어느 나이에 이르면 무엇을 반드시 해내야 하지 않습니다.



내 멋대로 공주는 결혼하고 싶지 않았어요. 아가씨로 지내는 게 좋았거든요. 하지만 공주가 워낙 예쁘고 부자여서 모든 왕자들이 결혼하고 싶어 했죠. (2∼3쪽)



  배빗 콜 님이 빚은 이쁘장한 그림책 《내 멋대로 공주》(비룡소,2005)를 재미있게 읽습니다. 책이름처럼 ‘내 멋대로’라고 하는 공주는 ‘다른 사람이 보기’에 괴물이라고 여길 만한 짐승을 귀염둥이로 곁에 둡니다. 언제나 귀염둥이 짐승(괴물)을 돌보고, 드넓은 꽃밭을 가꾸면서 하루를 누려요. 내 멋대로 공주로서는 나이가 꽉 찼기에 혼인을 한다든지 시집을 가야 한다는 생각이 처음부터 없습니다. 내 멋대로 공주로서는 공주 이름 그대로 ‘마음껏 하고픈’ 대로 하면서 삶을 누리고 싶은 마음입니다.




하루는 왕비가 말했어요. “너도 이제 나이가 꽉 찼으니 짐승들하고 그만 노닥거리고 어서 남편감이나 찾아라!” (6쪽)



  어버이가 왕이나 왕비라고 해서 아이한테 꼭 ‘왕국을 물려주어’야 하지 않습니다. 아이는 어버이한테서 굳이 왕국을 물려받아야 하지 않습니다. 왕국뿐 아니라 커다란 회사도 이와 같다고 할 만해요. 어버이가 어떤 내로라하는 대단한 회사를 세운 대표나 회장이나 사장이라 하더라도 아이가 구태여 그런 회사를 물려받아야 할 까닭이 없습니다. 어버이로서는 아이를 ‘후계자’로 여길 수 있을 테지만, 아이로서는 아이 나름대로 아이 삶을 즐겁고 씩씩하면서 알차게 가꾸는 꿈을 키울 수 있습니다.


  아버지가 군인이기에 아이도 군인이 되어야 하지 않습니다. 어머니가 운동선수이기에 아이도 운동선수가 되어야 하지 않습니다. 아버지가 의사이기에 아이도 의사가 되어야 하지 않습니다. 어머니가 교사이기에 아이도 교사가 되어야 하지 않습니다. 아이는 언제나 아이 스스로 가장 즐겁거나 기쁜 삶을 찾아서 꿈을 키울 노릇입니다.




아무도 공주가 시킨 일을 해내지 못했어요. 왕자들은 모두 쑥스러워하며 성을 떠났습니다. “이제는 됐겠지?” 내 멋대로 공주는 킥킥 웃으며 말했죠. 공주는 이제야 마음이 푹 놓였어요. 그런데 바로 그때 뺀질이 왕자가 짜잔 나타난 거예요! (20∼21쪽)



  그림책 《내 멋대로 공주》에 나오는 내 멋대로 공주는 ‘아무튼 어머니 아버지 말을 듣기’로 합니다. 그래서 공주한테 찾아온 수많은 왕자한테 이것저것 시켜 봅니다. 공주가 시키는 일을 거뜬히 해낼 수 있어야 ‘남편감’으로 받아들이겠노라 하고 밝힙니다.


  수많은 나라에서 찾아온 수많은 왕자는 공주가 시키는 일을 하나도 못 합니다. 그도 그럴 까닭이 공주는 공주 스스로 좋아하고 사랑하며 즐기는 일을 왕자들한테 시키는데, 수많은 왕자 가운데 ‘내 멋대로 공주가 여느 때에 즐겁게 하는 일(놀이)’을 해 본 적이 있는 사람이 없어요. 공주한테 찾아온 왕자는 너나 할 것 없이 ‘공주 겉모습’이나 ‘공주 재산’을 바라보면서 찾아왔을 뿐입니다. 공주하고 사이좋게 놀거나 어울리면서 ‘먼저 동무가 되려는 마음’인 사람이 없어요.


  생각해 보셔요. 사이좋은 동무로 함께 놀고 꿈꾸고 사랑하려는 사이가 아니라, 그저 ‘공주와 왕자’라고 하는 ‘후계자로 짝짓기’만 해야 한다면, 공주는 살아가는 보람이나 뜻이 없습니다. 왕자한테도 이런 삶은 보람이나 뜻이 없을 테고요. 즐거움도 기쁨도 없이 왕좌에 앉는 일이란 웃음도 노래도 이야기도 흐르기 어렵습니다.




뺀질이 왕자는 내 멋대로 공주도 별것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공주는 하는 수 없이 왕자에게 마법의 뽀뽀를 했고 ……. (26∼27쪽)



  수많은 왕자는 공주가 시키는 일을 해내지 못하는데, 마지막으로 뺀질이 왕자는 공주가 시키는 일을 모두 거뜬히 해냅니다. 이러면서 뺀질이 왕자는 생각합니다. “내 멋대로 공주도 별것 아니군”


  자, 이제 뺀질이 왕자는 어떻게 될까요? 뺀질이 왕자는 수많은 ‘경쟁자’를 신나게 물리치고 내 멋대로 공주하고 짝이 될까요? 공주를 아끼거나 사랑하려는 마음이 아닌 ‘공주가 시키는 일쯤이야 대수롭지도 않다’고 여기는 마음으로 공주하고 어떤 삶을 누리려 하는 생각일까요?


  공주는 ‘하는 수 없이’ 왕자한테 뽀뽀를 합니다. 그러나 그냥 뽀뽀가 아닌 ‘마법 뽀뽀’입니다. 왕자는 ‘마법 뽀뽀’인 줄 모르는 채 ‘다른 모든 경쟁자를 물리쳐서 으뜸이 되었다는 자랑’만 생각합니다. 즐거운 삶을 짓는 놀이를 꿈꾸는 공주는 마지막 장난으로 ‘마법 뽀뽀’를 하는데, 이를 받아들일 만한 뺀질이 왕자가 될는지, 아니면 ‘저런 공주하고는 못 살겠다’고 외칠는지, 마지막 이야기는 우리가 저마다 가만히 생각해 보아야지 싶습니다. 4348.12.25.쇠.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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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랑 놀자 172] 자장얘기



  어머니나 아버지는, 때로는 할머니나 할아버지는, 아기를 재우려고 보드라우면서 따사로운 목소리를 뽑아서 노래를 부릅니다. “자장자장 잘도 자네” 하면서 부르는 이 노래는 ‘자장노래’라고 해요. 노래는 아니지만 같은 말을 나즈막하면서 살가이 되풀이하며 재우려 할 적에는 ‘자장타령’을 한다고 해요. 아기를 재우려는 어버이는 때때로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하지요. 아이가 이야기 하나만 듣고서 자겠다고 하면 어버이는 잠자리맡에서 이야기를 조곤조곤 나긋나긋 속삭입니다. 잠자리에서 들려주는 이런 이야기는 ‘자장이야기’나 ‘자장얘기’예요. 잠자리에 들면서 오늘 하루를 되새기고 새로운 하루를 꿈꾸려는 뜻으로 몇 마디 말을 읊을 수 있어요. 이를테면 “나는 늘 언제 어디에서나 눈부시게 튼튼하지” 같은 말을 읊으면서 참말 나한테는 아픈 데가 없이 씩씩하고 튼튼하기만 하다고 다짐하듯이 몇 마디 말을 읊으며 고요히 잠자리에 들 수 있습니다. “오늘 하루도 즐겁게 놀았고, 새 하루도 재미나게 놀겠어요” 같은 말을 읊을 수도 있을 테고요. 이런 말은 ‘자장말’이 됩니다. 4348.12.25.쇠.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말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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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노래 96. 억새풀 놀이


  즐겁게 웃을 적에 놀이가 됩니다. 즐겁게 노래할 적에 놀이로 거듭납니다. 즐겁게 이야기꽃을 피울 적에 비로소 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논둑길을 따분하게 걷는다면 놀이가 태어나지 않습니다. 논둑길을 왜 걸어야 하느냐고 묻는다면 놀이를 마음속에서 길어올리지 못합니다. 언제 어디에서 마음 가득 놀이를 떠올리거나 그리거나 생각하기에 참말 즐겁게 웃고 노래하면서 이야기하는 놀이를 누린다고 느낍니다. 억새풀 놀이를 하려고 논둑길을 걷지는 않습니다. 논둑길을 걷다가 억새풀을 보았고, 억새풀이 바람 따라 춤추는 모습을 보았기에, 이 억새풀을 한 포기 뜯어서 서로 간지럼을 태우는 놀이가 저절로 태어납니다. 4348.12.25.쇠.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사진넋/사진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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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넋·삶 93 빛, 빛깔, 빛결, 빛살



  지구별에서 빛은 해님과 함께 나타납니다. 해가 뜨면서 빛이 나타나는데, 빛은 볕과 함께 나타납니다. 이리하여 ‘햇빛·햇볕’을 말합니다. 햇빛이 퍼질 적에는 아주 빠르게 퍼집니다. 햇빛이 퍼지는 줄기, 이를테면 빛줄기(햇빛줄기)는 따로 ‘햇살’이라 합니다.


  우리는 ‘빛의 삼원색’이나 ‘색의 삼원색’을 말하면서 ‘빛’과 ‘색(色)’이 어떻게 이루어지는가를 나타내기도 합니다. 그러나, ‘빛’과 ‘색’을 제대로 갈라서 쓰는 사람이 드물고, 왜 ‘삼원색’을 ‘빛’과 ‘색’으로 나누는가를 알려 하는 사람이 드물며, 이렇게 가르는 잣대가 맞는지 살피는 사람이 드뭅니다.


  한국말사전에서 ‘색(色)’을 찾아보면 “빛을 흡수하고 반사하는 결과로 나타나는 사물의 밝고 어두움이나 빨강, 파랑, 노랑 따위의 물리적 현상”으로 풀이합니다. ‘색(色)깔’을 찾아보면, “= 빛깔”로 풀이합니다. ‘빛깔’을 찾아보면 “물체가 빛을 받을 때 빛의 파장에 따라 그 거죽에 나타나는 특유한 빛”으로 풀이합니다. ‘빛’을 찾아보면 “1. 시각 신경을 자극하여 물체를 볼 수 있게 하는 일종의 전자기파 2. 물체가 광선을 흡수 또는 반사하여 나타내는 빛깔”로 풀이합니다.


  한국말사전에 나오는 말풀이만 살피더라도 ‘色’이나 ‘色깔’이라는 낱말은 뜬금없거나 뚱딴지 같은 줄 알 만합니다. 이런 한자말이나 엉터리 낱말은 쓸 까닭이 없습니다. ‘빛’에서 ‘빛깔’이 나옵니다. ‘빛’은 온누리 모든 것을 알아보도록 이끄는 ‘전자기파’이고, ‘빛깔’은 빛을 받으면서 드러나는 알록달록한 모습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처음부터 이 대목을 제대로 가르고 살펴서 말해야 했습니다. 어설프게 ‘色깔’ 같은 낱말을 억지로 짓지 말아야 했고, ‘色’이라는 외국말(한자말)을 한국말로 똑똑히 옮겨서 써야 했습니다.


  ‘빛살’은 “빛 + 살”이면서, 빛이 흐르는 줄기(빛줄기)를 나타냅니다. 화살이나 물살처럼, 빛살입니다. ‘빛깔’은 “빛 + 깔”이면서, 빛이 이루는 모습(꼴)을 나타냅니다. 맛깔이나 때깔처럼, 빛깔입니다.


  ‘빛’과 ‘빛깔’이라는 두 가지 낱말만 써야 합니다. 괜히 ‘色’과 ‘色깔’이라는 낱말을 섞으니 뒤죽박죽이 되고 말아요. 그러면 ‘색종이’나 ‘색연필’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빛종이·빛깔종이’나 ‘빛연필·빛깔연필’로 바로잡아야 합니다. 사람들 입과 손과 귀에 많이 굳었다 하더라도, 어른들 입과 손과 귀에 굳었을 뿐입니다. 아이들 입과 손과 귀에 굳지는 않았습니다. 우리는 ‘생각이 굳어서 딱딱하고 메마른 어른’ 틀에 맞추어 말을 뒤트는 짓을 그쳐야 합니다. 우리는 ‘생각이 열린 아이’ 삶에 맞추어 말을 살릴 수 있어야 합니다. 한국말을 바르고 아름답게 쓰자는 뜻보다 ‘삶을 제대로 세우고 슬기롭게 갈고닦아 넋을 제대로 다스리자’는 뜻으로 낱말을 하나하나 제대로 살펴서 제대로 쓰는 길을 열어야 합니다.


  이리하여, 우리가 쓸 말은 ‘빛의 삼원색’이나 ‘색의 삼원색’이 아닙니다. ‘빛’과 ‘빛깔’로 말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써야 맞지만, 자칫 헷갈릴 수 있으니, ‘빛’을 ‘빛살’로 바꾸어서 쓸 수 있어요.


  그러니까, ‘빛의 삼원색’이 아닙니다. ‘세 바탕빛살’이며 ‘세 빛살’이고 ‘빛살바탕’입니다. ‘세 빛살’은 ‘빨강·푸름·파랑’입니다. 빨강은 “온 목숨”을 나타냅니다. 온 목숨은 “따뜻하게 흐르는 물”인 피를 품습니다. 이러한 물(피, 불물)을 몸에 담은 목숨은 ‘사람’과 ‘열매(알)’입니다. 모든 열매가 빨간 빛은 아니지만, 빨강이라는 빛으로 목숨을 이야기합니다. 푸름은 “풀과 나무와 숲”을 나타냅니다. 나뭇줄기는 흙빛을 닮으나, 나무에 매다는 잎이 풀과 같은 빛이고, 풀과 나무가 어우러진 숲도 푸른 빛이라고 이야기합니다. 파랑은 “바람·하늘과 물·바다”를 나타냅니다. 하늘빛은 파랑이고, 이 파랑이 바다빛이 됩니다. 물은 하늘을 닮아서 파란 빛이 되기에, 바다와 물은 파랑이라는 얼거리에서 하나입니다. 


  ‘적·녹·청’처럼 외마디를 따서 일컫기도 하는데, 외마디를 제대로 따려면 ‘빨·푸·파’라 해야지요.


  곧, ‘색의 삼원색’이 아닙니다. ‘세 바탕빛깔’이며 ‘세 빛깔’이고 ‘빛깔바탕’입니다. ‘세 빛깔’은 ‘빨강·파랑·노랑’입니다. 빨강은 목숨을 따뜻하게 안는 빛깔입니다. ‘핏빛’이나 ‘열매빛(알빛)’이라 할 수 있습니다. 파랑은 바람과 하늘을 상큼하게 품는 빛깔입니다. ‘바람빛’이나 ‘하늘빛’이라 할 수 있습니다. 노랑은 온누리를 보드랍게 돌보는 빛깔입니다. ‘햇빛’이나 ‘불빛’이라 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한 가지를 더 생각할 수 있습니다. 빛깔을 보면 짙거나 옅습니다. 짙거나 옅은 느낌은 ‘결’입니다. 그러니까, 짙은 빛깔이나 옅은 빛깔을 가를 적에는 ‘빛결’이라는 낱말을 쓰면 됩니다. 사회에서는 ‘농도(濃度)’나 ‘농담(濃淡)’ 같은 한자말을 쓰지만, 이런 한자말이 아닌, 한국말 ‘빛껼’을 써야 알맞습니다.


  이제 빛살과 빛깔을 살피면서 빛결을 말할 수 있다면, 한 걸음 내딛은 셈입니다. 한 걸음 다음은 두 걸음이면서 새 걸음입니다. 새롭게 내딛는 걸음입니다. 다음 걸음은 무엇인가 하면, ‘빨강’과 ‘푸름’과 ‘파랑’에서 무엇이 나오느냐입니다. 빨강은 핏빛이면서 알빛(열매빛)인데, 동백꽃빛이나 장미꽃빛이나 딸기알빛이나 앵두알빛이나 능금알빛으로 갈릴 수 있습니다. 빨강이라는 빛깔로 드러나는 꽃이나 열매를 떠올릴 수 있어요. 푸름은 풀빛이면서 잎빛입니다. 쑥잎빛이나 감잎빛이나 민들레잎빛이나 모과잎빛이나 풀개구리빛이나 개구리밥빛처럼 온갖 풀이나 작은 짐승이나 벌레를 그리면서 이 빛깔을 가리킬 수 있어요. 파랑은 하늘빛이면서 바다빛인데, 달개비꽃빛이나 봄까지꽃빛이나 쪽빛이라 할 만합니다. 노랑은 해님이 드리우는 포근한 기운이 서린 빛깔이니, 벼빛이나 보리빛이라 할 수 있고, 짚빛(마른 풀잎 빛깔)이라 할 수 있으며, 개나리꽃빛이나 원추리꽃빛이나 병아리빛이나 민들레꽃빛이나 씀바귀꽃빛 같은 모습을 하나하나 헤아릴 수 있습니다. 노란 꽃이나 열매를 가만히 되새깁니다.


  빛깔은 내가 스스로 짓는 삶에서 찾습니다. 한국사람이 흔히 잘못 쓰는 빛깔 가운데 ‘갈색(褐色)’이 있습니다. 이 빛깔말을 으레 쓰기는 하지만 정작 어떤 빛깔인지 제대로 아는 사람이 드뭅니다. 한국말로는 ‘흙빛’이거나 ‘도토리빛’이거나 ‘밤알빛(밤빛)’입니다. 나뭇줄기 빛깔이 ‘흙빛’이기도 합니다. 자작나무나 벚나무라면 흙빛이 아니지만, 여느 나무는 흙빛하고 거의 같습니다. 아니, 나무는 흙빛을 닮는다고 할까요. 흙이 까무잡잡하면 나뭇줄기도 까무잡잡하다고 할까요.


  푸름을 가리키는 풀빛은 잎빛이기도 하기에 솔잎빛이나 잣잎빛이나 후박잎빛처럼 쓸 수 있습니다. 감잎빛도 봄감잎빛과 여름감잎빛과 가을감잎빛이 다릅니다. 하얀 빛깔을 가리킬 구름빛도, 어느 때에는 잿빛인 구름이니, 매지구름빛은 새로운 잿빛이라 할 만합니다. 까만 빛깔은 까만 씨앗으로 나타낼 만하니 능금씨빛이나 배씨빛을 쓸 수 있고, 깨알빛이나 나팔꽃씨빛을 쓸 수 있습니다. 그림자빛이나 그늘빛을 쓸 수도 있습니다. ‘밤빛’은 밤알과 밤하늘을 가리키는 두 가지 빛깔로 나눌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늘빛은 ‘낮하늘빛’과 ‘밤하늘빛’이 있을 테지요. 더 가른다면 ‘아침하늘빛’과 ‘새벽하늘빛’도 있어요.


  제 삶을 찾을 때에 제 빛을 찾습니다. 제 삶을 찾아서 바라볼 때에 제 빛을 찾아서 바라봅니다. 제 삶을 찾지 않는다면 제 빛을 보거나 알 수 없습니다. 가만히 눈을 감고 생각해 봅니다. 아직 내 몸이 어둠만 보다가, 밤이 지나서 아침이 찾아올 적에 내 둘레에 어떠한 빛이 퍼져서 어떤 모습을 만날 수 있는지 그려 봅니다. 4348.3.14.흙.ㅎㄲㅅㄱ


(최종규/숲노래 . 2015 - 람타 공부/숲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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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의 힘 눈빛사진가선 17
엄상빈 지음 / 눈빛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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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으로 삭힌 사진책 104



‘수수하며 착한’ 이웃이 사는 강원도를 바라보다

― 강원도의 힘

 엄상빈 사진

 눈빛 펴냄, 2015.10.12. 12000원



  포근한 겨울 날씨는 더없이 반가운 선물이라고 느낍니다. 추운 날씨가 이어지다가 며칠쯤 포근한 날씨가 찾아들면 이불이며 빨래이며 마당에 내다 넙니다. 어른인 나는 이불이랑 빨래를 널며 하하하 웃습니다. 아이들은 마당에서 신나게 뛰놀다가 ‘아, 겨울인데 덥네?’ 하면서 웃어요.


  매서운 겨울 날씨는 가없이 고마운 선물이로구나 하고 느끼고요. 포근한 날씨가 이어지면 어느새 파리가 깨어나기도 하는데, 다시 차가운 바람이 불면 파리는 감쪽같이 사라질 뿐 아니라, 풀잎이 더 싯누렇게 시들고 가랑잎도 더 바짝바짝 마릅니다. 한겨울에 웬 파리가 나다니나 싶어 파리채를 휘두르다가 요 녀석들도 겨울에는 좀 잠을 자야지 하고 생각합니다. 뒤꼍이나 마당에서 잘 돋던 풀은 숨이 죽으니, 시든 풀을 밟으며 서걱서걱 사각사각 소리를 노래처럼 듣습니다.


  전남 고흥에서 지내는 우리 식구는 한겨울에도 무척 포근한 날씨를 누리기 때문에, 다른 고장에서 눈이 펑펑 쏟아지는 날씨여도 이곳에서는 싸락눈조차 구경하기 어렵습니다. 눈을 구경하기는 어렵지만 한겨울에 동백꽃이나 장미꽃을 구경합니다. 참말 고흥에서는 한겨울에도 볕이 따사로운 날이 이레 남짓 이어지면 장미나무를 울타리에 심어서 키우는 이웃집에서는 장미꽃이 소담스레 벌어지기도 합니다. 아마 경상남도 통영이나 남해 같은 곳에서도 한겨울에 짙붉거나 새빨간 꽃송이를 소담스레 만날 만하리라 느껴요. 태평양을 거쳐서 부는 포근한 바람을 맞이하고,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하늘에서 빛살조각처럼 퍼지는 즐거운 기운을 맞아들입니다.



강원도 내 한 일간지에서 조사한 바에 따르면 ‘강원도민을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순박하다’를 가장 많이 꼽았다. 도민들이 ‘타 지역 사람들이 도민들에 대해 어떤 느낌을 가질 것이라고 생각하느냐’에 대한 질문에서도 역시 ‘순박하다’는 말을 가장 많이 꼽았다.




  엄상빈 님이 빚은 사진책 《강원도의 힘》(눈빛,2015)을 읽습니다. 이 사진책은 강원도 사람들 이야기를 차분하면서도 포근하게 들려줍니다. 그저 사진일 뿐이라고 여긴다면 그저 사진이지만, 그저 강원도 이야기라고 여길 수 있으면 그저 강원도 이야기입니다. 우리 이웃이라고 바라보면 우리 이웃이요, 우리 할매요 할배라고 여기면 우리 할매요 할배입니다.


  강원도 사람들은 ‘순박’할까요? 그러면 ‘순박(淳朴)’이란 무엇일까요? 한국말사전에서 이 한자말을 찾아보면 “거짓이나 꾸밈이 없이 순수하며 인정이 두텁다”를 뜻한다고 합니다. 한자말 ‘순수(純粹)’는 “전혀 다른 것의 섞임이 없음”을 뜻해요. 그러니, ‘순박한 강원도 사람들’이라 할 적에는 “거짓이나 꾸밈이 없이 티없고 살갑다”는 뜻이 되리라 느낍니다. 다른 한국말로 하자면 “수수하면서 착하다”요 “수수하면서 사랑스럽다”라고도 할 만합니다.


  문득 궁금합니다. 서울 사람들은 ‘수수하다’거나 ‘착하다’거나 ‘사랑스럽다’거나 ‘살갑다’고 할 만할까요? 부산이나 대구나 광주 사람들은 어떠할까요? 서울 같은 커다란 도시에서 사는 사람들을 놓고 강원도 사람들을 바라보듯이 ‘수수하네요’라든지 ‘착하네요’라든지 ‘사랑스럽네요’라든지 ‘살갑네요’ 하고 들려주는 말은 몇 사람이나 할 만할까요?


  어느 모로 본다면, 모든 강원도 사람들이 다 ‘순박’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고장 사람들이 강원도 사람들을 마주하면서 ‘순박’하다고 말하는 사이에 강원도 사람들은 차츰 ‘순박’한 마음결이나 마음씨로 거듭납니다. 서울이나 부산 같은 큰도시 사람들을 가리켜 ‘차갑다’거나 ‘새침스럽다’거나 ‘날카롭다’거나 ‘바쁘다’거나 ‘안 착하다’ 같은 느낌을 말하는 동안 참으로 서울이나 부산 같은 큰도시 사람들은 이러한 모습으로 달라지지 싶습니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이 새로운 말을 빚기도 하지만, 우리가 쓰는 말에 따라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이 달라지기도 한달까요. 사진은 바로 이러한 흐름을 찬찬히 살피면서 찍습니다. 사진은 바로 이러한 삶자리를 가만히 돌아보면서 찍습니다. 사진은 바로 이러한 이음고리를 넌지시 밝히면서 찍습니다.



여기에 담겨 있는 30여 년 세월의 사진 속 주인공들이 바로 강원도민들의 순박한 자화상이다. 강원도 여기저기를 다니며 우연히 만난 우리의 이웃 아저씨들이고 아주머니들이다.





  전라남도에서 사는 우리 식구는 우리 이웃을 따사롭게 바라봅니다. 이웃도 우리를 따사롭게 바라봅니다. 그래서 내가 전라남도 고흥이라는 고장에서 사진을 찍는다면 ‘고흥 사람들’이나 ‘전라남도 사람들’을 엄상빈 님이 《강원도의 힘》이라는 사진책에서 강원도 사람들을 사진으로 담듯이 ‘순박’하게 마주하면서 담을 수 있습니다.


  서울이나 부산에서 사는 이웃님도 서울이나 부산에서 마주하는 사람들을 얼마든지 ‘순박’하게 마주하면서 순박하게 사진으로 찍을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사진은 ‘찍히는 사람’이 어떠한가에 따라서 달라지기도 하는 사진이지만, ‘찍는 사람’이 어떠한가에 따라서 거듭나기도 하는 사진이기 때문입니다.


  강원도 사람들이 워낙 순박하기에 엄상빈 님은 강원도 이웃님을 순박한 숨결이 흐르도록 사진으로 찍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엄상빈 님 스스로 순박한 마음결이나 마음씨가 되어 강원도 사람들을 이웃이요 동무요 한식구로 마주한다면, 강원도 사람들을 찍는 사진은 언제나 순박한 기운이 흐르는 따사롭고 착하며 수수하고 살가운 사진이 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강원도 사람들을 사진으로 찍기에 ‘순박한 빛’이 흐르지 않습니다. 서울이나 부산 사람들을 사진으로 찍어도 얼마든지 ‘순박한 빛’이나 ‘따사로운 숨결’이나 ‘수수한 바람’이나 ‘짙푸른 노래’로 담을 수 있어요. 모델이 훌륭해서 사진이 훌륭할 수 있으나, 모델만 훌륭해서는 사진이 훌륭하지 않습니다. 모델이 좋고 나쁜가에 따라서 좋고 나쁜 사진이 나오지 않으니까요.





집중호우로 다 망가졌던 그 양배추밭에도 이듬해가 되면 어김없이 다시 파종을 하고 농사일을 이어가는 사진 속 주인공 농부처럼 은근과 끈기, 그리고 순박함이 바로 ‘강원도의 힘’이다.



  누구를 찍든 ‘누가’ 찍는가에 따라 사진이 달라집니다. 누구, 이를테면 멋지거나 훌륭한 모델을 찍더라도 ‘누가’ 찍는가에 따라 비틀리거나(편견이 되거나) 뒤틀릴(왜곡될) 수 있습니다. 순박한 사람들을 찍더라도 ‘누가’ 찍는가에 따라 안 순박하게 찍을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순박한 이웃을 사진으로 찍으려면 사진기를 손에 쥔 사람도 똑같이 순박할 수 있어야 합니다. 수수한 이웃을 사진으로 담으려면 사진기를 손에 잡은 사람도 똑같이 수수할 수 있어야 합니다. 사랑스러운 이웃을 사진으로 옮기려면 사진기를 손에 든 사람도 똑같이 사랑스러울 수 있어야 합니다.


  사진은 언제나 삶자리에서 찍습니다. 먼 자리도 가까운 자리도 아닌 삶자리에서 찍는 사진입니다. 그리고 사진은 사랑자리에서 찍습니다. 이웃을 사랑하는 넋으로 사진을 찍지요. 마지막으로 사진은 꿈자리에서 찍습니다. 이웃하고 어깨동무를 하면서 삶을 사랑스럽게 짓겠노라 하는 꿈을 가슴에 품으면서 찍습니다. 삶자리와 사랑자리와 꿈자리를 생각하기에 《강원도의 힘》이라는 사진책이 태어날 수 있습니다. 자그마한 사진책 한 권을 책상맡에 두고 오래오래 되읽으면서 우리 이웃이 살아가는 삶자리랑 사랑자리랑 꿈자리를 헤아리다가, 오늘 우리 식구가 지내는 삶자리랑 사랑자리랑 꿈자리에는 어떤 기운과 바람과 숨결이 흐르는가 하고 돌아봅니다. 4348.12.24.나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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