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노래 97. 세발자전거



  세발자전거가 얼마나 사랑스러운가는 어린이만 알 수 있으리라 느낍니다. 멈추개가 따로 없는 이 세발자전거는 어린이가 하루를 재미나게 놀도록 북돋우는 멋진 동무입니다. 세발자전거를 안 타도 될 만한 나이가 되어도 애써 세발자전거를 타고, 또 이 세발자전거를 놓고 두 아이가 서로 도우면서 오르막을 밀고 밟고 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일도 대단한 기쁨입니다. 그런데 이 세발자전거는 두 아이가 다른 언니한테서 물려받아 즐겁게 누리다가 이제 이음쇠가 다 낡고 닳아서 부러지는 바람에 더는 달리지 못합니다. 우리 집 세발자전거가 숨을 거두기 앞서 두 아이가 마지막으로 남긴 자취입니다. 4348.12.26.흙.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사진넋/사진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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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서 버스를 타기



  집에서 면소재지까지 걸어갔다. 오 킬로미터 남짓 되는 길을 두 아이가 씩씩하게 걸었다. 면소재지에 거의 닿을 무렵 발이 아프다고 해서 한 아이씩 살짝 안고서 걷기도 했다. 가볍게 날듯이 걷는 두 아이는 이만 한 길이 이제는 하나도 대수롭지 않다. 다섯 살 아이는 끝까지 씩씩하게 걸었다. 면소재지 가게에 들러 과자 한 점을 사 준 뒤에 군내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여덟 살 아이는 걸상에 누워서 자도 되느냐고 물었다. 고단하다고 할 만한 길은 아니었지만 수월하다고 할 만한 길도 아니었겠지. 그러나 우리는 이렇게 한 발자국씩 내딛으면서 함께 자란다. 스스럼없이 걷고, 씩씩하게 노래하고, 즐겁게 버스나 자동차를 얻어서 타고,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고, 다시 새로운 넋으로 가다듬으면서 하루를 마무리한다. 4348.12.26.흙.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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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유교수의 생활 29
야마시타 카즈미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1년 1월
평점 :
품절


만화책 즐겨읽기 567



산타 할아버지 월급은 누가 줄까?

― 천재 유교수의 생활 29

 야마시타 카즈미 글·그림

 서현아 옮김

 학산문화사 펴냄, 2011.1.25. 4500원



  아이들은 날마다 자랍니다. 아이들은 날마다 새로운 삶을 지켜보고 바라보고 겪고 느끼고 생각하면서 자랍니다. 어른들도 날마다 자랍니다. 어른은 어른 나름대로 날마다 새로운 일을 하고 살림을 가꾸고 사랑을 나누고 이것저것 보듬으면서 자랍니다. 아이를 낳아 돌보는 어버이는 이런 어른대로 자라고, 아이가 없는 어버이는 이런 삶대로 자랍니다. 아이들도 제 어버이한테서 사랑을 받으며 자라기도 하고, 제 어버이한테서 아무 사랑을 못 받으며 자라기도 합니다.


  만화책 《천재 유교수의 생활》은 날마다 새롭게 배우면서 새롭게 자라려는 생각으로 사는 유교수 이야기를 다룹니다. 스물아홉째 권을 읽으면, 마을에서 거짓말쟁이라는 소리를 듣는 아이를 마주하는 유교수가 나오고, 대학 건물에서 무척 오랫동안 숨어 지내는 제자를 마주하는 유교수가 나오며, 만년필을 잃어버린 채 허둥거리는 유교수가 나오다가는, 어릴 적에 어머니를 잃은 유교수가 나옵니다. 유교수는 이런 삶을 거치면서 이러한 대목을 배우고, 저러한 삶을 지나는 동안 저러한 대목을 배웁니다.



“근데 그게 말짱 거짓말이었대요!” “그 소년은 왜 거짓말을 해야만 했던 거요?” (7쪽)


“힐끔힐끔 보는 사람은 믿을 수 없죠.” “그건 너의 주관이지. 힐끔 본다고 해도 사람은 저마다 생각이 다르다고 본단다. 그걸 뭉뚱그려 모두 믿을 수 없다고 판단하는 건 너무 폐쇄적인 생각이 아닐까 싶구나.” (15쪽)



  누군가는 고개를 안 돌리고 바라봅니다. 누군가는 고개를 모로 하며 바라봅니다. 누군가는 고개를 홱 돌리고, 누군가는 고개를 가만히 돌립니다. 누군가는 눈을 질끈 감고, 누군가는 눈을 동그랗게 뜹니다. 저마다 생각과 삶과 마음이 다릅니다. 저마다 다른 생각과 삶과 마음에 따라 이야기도 다릅니다.


  힐끔힐끔 본다고 해서 제대로 못 보지 않습니다. 언뜻 스치면서 본다고 해서 잘못 보지 않습니다. 오랫동안 지켜보면서도 제대로 모르기 일쑤이고, 따사로운 눈길로 보는 듯했으나 정작 속으로는 딴 꿍꿍이가 있기도 해요.


  그러니까 겉모습으로는 아무것도 알 수 없습니다. 겉만 살피거나 헤아려서는 어떤 곳에서도 참을 가리지 못하지요.



“거짓말이라고 생각한다면 거짓이라는 것을 확실히 입증해야 한다. 증명하려면 공부가 필요하지.” (19쪽)


“나는 이 세상에 완전히 거짓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모든 것은 인간이라는 필터를 통해 걸러지는 거니까. 나는 이 필터를 어떻게 갈고닦을 것인지에 관해 가장 관심이 많지.” (41∼42쪽)



  만화책 《천재 유교수의 생활》에 나오는 유교수는 어떤 천재일까요? 깊이 생각할 줄 알거나 곰곰이 돌아볼 줄 알기에 천재일까요? 오래도록 생각할 줄 알고, 한 번 듣거나 겪은 일은 잊지 않기에 천재일까요?


  그런데 유교수는 집에서 밥을 지으면 설거지를 할 줄 모릅니다. 맨 처음에는 밥조차 지을 줄 몰랐습니다. 유교수는 자동차를 몰 줄 모릅니다. 유교수는 자전거를 타지도 않습니다. 게다가 유교수는 아기를 어떻게 돌보아야 하는가를 모르고, 아기를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가도 몰라요.


  유교수는 아무것도 모르는 일하고 맞부딪힐 적에 내빼지 않습니다. 모르는 일을 해야 하더라도 걱정하지 않아요.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놓고 끝까지 생각합니다. 다만, 혼자 끝까지 생각하느라 아무 일도 못 하기 일쑤요, 둘레에서 그 일을 도맡아서 해치우지요. 답답해 보이니까요.



“혼자서 살 수 없는 것은, 자네도 마찬가지 아닐까? 햇빛 속에서 단순하게 생각함으로써 만들어지는 수식도 있다네. 나는 그걸 보고 싶어.” (74∼75쪽)


“아무튼 일단 여기 앉아라. 아직 네 어머니와 제대로 이야기도 못 했잖니. 소리내서 말을 하라는 게 아니야. 그냥 보기만 하면 된다.” (184쪽)



  어느 모로 보면 어리숙한 몸짓이 꽤 많은 유교수이지만, 유교수가 유교수일 수 있는 까닭은 스스로 삶을 즐기기 때문입니다. 유교수한테 가장 걸맞고 알맞으며 들어맞는 길을 스스로 찾아서 씩씩하게 걷기 때문에 유교수한테는 유교수 삶이 가장 즐겁습니다. 그리고 유교수는 ‘새롭게 배우기’를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아니 언제나 새롭게 배우기로 나서려고 해요. 새롭게 배우지 않는다면 스스로 이 땅에서 살아갈 뜻이 없다고 느낍니다.


  이리하여 나는 《천재 유교수의 생활》을 읽는 내내 오늘 이곳에서 내가 누리려 하는 ‘새롭게 배우기’란 무엇인가 하고 되새깁니다. 밥 한 그릇을 지어서 아이들하고 먹을 적에 새로운 마음이 되는지, 설거지를 하거나 비질을 하면서 새로운 몸짓이 되는지, 자전거를 타거나 들길을 걸을 적에 새로운 눈길이 되는지 가만히 헤아립니다. 책 한 권을 읽을 적에도 ‘다른 책’만 읽는지, 아니면 똑같은 책을 놓고도 ‘새롭게’ 읽는지 되새깁니다.



“하나코가 열심히 일했으니까 산타 할아버지는 좋은 선물을 많이 주실 거야.” “산타 할아버지는 월급을 누가 줘요? 산타 할아버지는 일 많이 하니까 세상에서 제일 부자여야 하잖아요.” “산타 할아버지는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자선가인 자선사업가로 미루어 생각해야 할까. 아니, 애초에 …….” “할아버지도 몰라요?” (137∼138쪽)



  그나저나 천재 유교수한테도 때때로 막히는 길이 있습니다. 어느 때인가 하면, 이녁 손녀하고 마주할 때입니다. 손녀는 아직 스스로 잘 몰라서 유교수한테 스스럼없이 묻고, 유교수는 슬기롭게 대꾸하기도 하지만, 여태 한 번도 생각하거나 겪은 적이 없어서 우물쭈물하기도 합니다. 이를테면 “산타 할아버지는 월급을 누가 줘요?” 같은 말에 유교수는 할 말을 잃습니다. ‘바른대로 논리를 찾으려’고 하니, 그야말로 산타 할아버지라고 하는 넋은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가를 놓고 머리가 어지럽습니다. 산타 할아버지가 있는가 없는가부터 따져야 할 터인데, 산타 할아버지는 ‘있다’는 쪽으로 생각하기로 한 유교수이기에 손녀한테 “산타 할아버지는 좋은 선물을 많이 주실 거야” 하고 말했는데, 손녀가 되물은 말 “산타 할아버지는 월급을 누가 줘요?”를 어떻게 ‘증명’해야 하는가를 놓고 머리가 아파요.


  자, 산타 할아버지한테는 누가 월급을 줄까요? 산타 할아버지가 이녁 스스로 월급을 줄까요? 산타 할아버지가 받을 선물은 산타 할아버지가 스스로 줄까요? 천재 유교수 할아버지는 아마 이 수수께끼를 놓고 논문이나 책 한 권을 써야 할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아이들이 이렇게 물을 적에는 실마리를 아주 쉽게 찾을 수 있는데, 유교수 할아버지는 아이를 돌본 적이 없어서 실마리 찾기를 못 합니다.


  아이가 ‘산타 할아버지 월급’ 이야기를 물으면, 아마 웬만한 여느 어버이라면 이렇게 대꾸하리라 생각합니다. “그러게 말야, 산타 할아버지는 누가 월급을 줄까?” 아이한테 이렇게 되물으면 뜻밖에도 아이들은 저마다 다 다른 슬기로운 생각을 열어서 재미난 대꾸를 해 줍니다. 4348.12.25.쇠.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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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다이제스터 2015-12-25 18: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산타 할아버지는 월급 받지 않는다는 것에 한표합니다. 그분은 스스로 존재하는 분이 거든요. ㅎㅎ
즐거운 성탄절 보내세요. ^^

파란놀 2015-12-26 01:15   좋아요 0 | URL
네, 산타 할아버지한테는 모든 것을 그 자리에서 창조하실 테니 월급이라는 개념이 있을 수 없겠지요. 유교수 님한테는 그러한 개념을 생각하기는 아직 어려울 듯합니다. 그래도 34권을 보면 유교수 님도 이제는 그분 아버님이 `삶에서 사람이 창조하는 사랑`이라는 대목에 한 발자국 다가선 듯도 하지만, 아직 `직관`이라는 세계하고는 좀 떨어져서 지내시니까요 ^^

재는재로 2015-12-25 20: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한표요15년크리스미스도지나가고있네요좋은마스지내시고계신가요 좋은연휴되시기를

파란놀 2015-12-26 01:16   좋아요 0 | URL
아이들하고 놀고 아이들을 재우고 하면서 오늘이, 아니 어제가 25일이었구나 하고 이제 비로소 느낍니다 ^^;;; 하루가 참으로 빨리 지나갔네요. 재는재로 님도 늘 아름다운 하루로 마무리 지으셔요 ^^
 

겹말 손질 374 : 물기 있는 습한 곳



물기 있는 습한 곳

→ 물기 있는 곳

→ 물기 많은 곳

→ 축축한 곳


습(濕)하다 : 메마르지 않고 물기가 많아 축축하다



  외마디 한자말 ‘습하다’는 “물기가 많아 축축하다”를 뜻한다고 하는데, 한국말 ‘축축하다’는 “물기가 있어 젖은 듯하다”를 뜻합니다. 그러니 한국말사전에 실린 뜻풀이는 겹말입니다. “물기가 많다”라고만 적든지 “물기가 많거나 축축하다”로 적어야 합니다. 그냥 물기가 있으면 “물기가 있다”나 ‘축축하다’라 하면 되고, 물기가 많으면 “물기가 많다”라 하면 됩니다. 4348.12.25.쇠.ㅅㄴㄹ



물기 있는 습한 곳에서 산다

→ 물기 있는 곳에서 산다

→ 축축한 곳에서 산다

《노인향-자연생태 개념수첩》(자연과생태,2015) 63쪽


(최종규/숲노래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말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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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말을 죽이는 외마디 한자말

 험하다 險


 험한 골짜기 → 가파른 골짜기 / 거친 골짜기

 험한 지역 → 가파른 곳 / 거친 곳

 험한 얼굴 → 못난 얼굴 / 궂은 얼굴 / 거친 얼굴

 손이 험하다 → 손이 거칠다 / 손이 투박하다


  ‘험(險)하다’는 “1. 땅의 형세가 발을 디디기 어려울 만큼 사납고 가파르다 2. 생김새나 나타난 모양이 보기 싫게 험상스럽다 3. 어떠한 상태나 움직이는 형세가 위태롭다 4. 말이나 행동 따위가 막되다 5. 먹거나 입는 것 따위가 거칠고 너절하다 6. 일 따위가 거칠고 힘에 겹다 7. 매우 비참하다”처럼 모두 일곱 가지 뜻이 있다고 합니다. 여러모로 두루 쓰는 낱말이라 여길 수 있지만, 여러모로 쓰는 한국말을 짓누르거나 밀어내는 낱말이라 여길 수 있습니다.


 날씨가 험하다 → 날씨가 궂다 / 날씨가 나쁘다

 분위기가 험하여 → 분위기가 안 좋아 / 분위기가 차가워

 말투가 험하다 → 말투가 거칠다 / 말투가 막되다

 차를 험하게 몰다 → 차를 마구 몰다 / 차를 거칠게 몰다


  날씨를 말하건, 흐름을 말하건, 말투를 말하건 모두 같습니다. 느낌을 고스란히 살려서 거칠 적에는 ‘거칠다’고 하고 마구 하면 ‘마구’ 한다고 말하면 됩니다. 때로는 ‘나쁘다’거나 ‘차갑다’고 할 수 있으며, ‘썰렁하다’거나 ‘막되다’고 할 수 있습니다.


 험한 음식 → 너절한 음식 / 후줄그레한 밥

 험한 차림새 → 후줄그레한 차림새 / 너절한 차림새

 험한 농사일 → 고된 농사일 / 벅찬 농사일 / 힘든 농사일

 험한 일 → 거친 일 / 힘겨운 일

 험한 꼴 → 끔찍한 꼴 / 모진 꼴


  외마디 한자말 ‘험하다’를 굳이 쓰고 싶다면 쓸밖에 없습니다만, ‘너절하다’나 ‘후줄그레하다’나 ‘고되다’나 ‘힘들다’나 ‘거칠다’나 ‘모질다’ 같은 말을 알맞게 쓸 수 있습니다. 비탈을 가리킨다면 ‘가파르다’나 ‘깎아지르다’를 쓰면 돼요. 4348.12.25.쇠.ㅅㄴㄹ



산세가 험한 곳

→ 멧줄기가 거친 곳

→ 멧자락이 가파른 곳

→ 멧골이 깎아지른 곳

《김병걸-실패한 인생 실패한 문학》(창작과비평사,1994) 11쪽


험한 들판을 마구 달려야

→ 거친 들판을 마구 달려야

《배빗 콜/노은정 옮김-내 멋대로 공주》(비룡소,2005) 12쪽


이렇게 험하게 말했으면

→ 이렇게 막되게 말했으면

→ 이렇게 함부로 말했으면

→ 이렇게 마구 말했으면

→ 이렇게 거칠게 말했으면

《문흥미와 여덟 사람-이어달리기》(길찾기,2006) 18쪽


그토록 험한 일을 당하고

→ 그토록 몹쓸 일을 겪고

→ 그토록 끔찍한 일을 겪고

→ 그토록 아픈 일을 겪고

→ 그토록 슬픈 일을 겪고

→ 그토록 모진 일을 겪고

《이시카와 이쓰코/손지연 옮김-일본군 ‘위안부’가 된 소녀들》(삼천리,2014) 18쪽


(최종규/숲노래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말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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