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균덩어리



  예방주사를 맞지 않은 아이를 가리켜 ‘병원균덩어리’라고 말하는 어른이 퍽 많은 듯하다. 이런 말을 하는 어른이 있는 줄 며칠 앞서 처음 알았다. 그런데 이런 말은 방송 매체에서도 가끔 나오는 듯하다. 어느 모로 본다면 ‘문명’을 앞세워서 총칼을 잔뜩 짊어지고 다른 나라로 쳐들어가서 식민지로 삼으려고 하던 제국주의 정치권력이 으레 이런 말을 했다. 한국을 식민지로 삼으려고 했던 이웃나라 정치권력도 한겨레 시골사람을 두고 ‘병원균덩어리’ 비슷한 말을 했다. 이런 말을 쓰는 사람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예방주사란, 아이 몸에 ‘병원균’을 미리 집어넣어서 ‘그 병원균이 일으키는 병’에 걸리지 않도록 미리 면역력을 키우는 주사이다. 그러면, 예방주사를 맞지 않았고 ‘어떤 병’에도 걸리지 않은 아이한테 ‘병원균’이 있을까, 아니면 예방주사를 맞은 아이한테 병원균이 있을까? 너무 쉬운 대목이다. 그런데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는 이러한 얼거리조차 제대로 살피거나 헤아리거나 따지지 못하는구나 싶다.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잃어버린 셈일까?


  예방주사를 안 맞아도 아이들은 얼마든지 튼튼하고 씩씩하다. 예방주사를 맞으면서 아이들을 튼튼하고 씩씩하게 돌볼 수 있다. 예방주사 때문에 병에 안 걸리거나 더 잘 걸리지 않는다. 어버이가 얼마나 슬기롭게 아이들을 돌보면서 사랑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뿐이다. 마음 가득 고운 사랑이 되어 아이를 따사롭게 어루만지는 보금자리가 아닌 채 예방주사만 척척 맞힌다고 아이가 안 아플 수 있을까? 예방주사는 안 맞히지만 집안 흐름이 차갑거나 무섭다면 아이들은 어떻게 지낼까?


  예방주사는 맞힐 수 있고 안 맞힐 수 있다. 어버이로서 우리가 생각할 대목은 언제나 하나이다. 아이를 참답게 사랑하려는가? 아이를 참답고 슬기롭게 사랑하려는가? 아이를 참답고 슬기롭게 사랑하려 하는 어버이로서 ‘삶·살림·사랑’을 얼마나 새롭게 배우거나 익히려 하는가? 아이들한테 밥 한 끼니를 지어서 먹일 적에도 밥이 무엇인가를 똑똑히 배워서 짓듯이, 아이들 몸속으로 들어갈 예방주사를 맞히든 안 맞히든 어버이 누구나 스스로 똑똑히 배우고 살펴야 할 노릇이다. 예방주사가 무엇인지 똑똑히 배우지 않거나 살피지 않기에 ‘병원균덩어리’ 같은 말을 함부로 읊고 만다고 느낀다. 4349.1.13.물.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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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말 2016-01-13 16:20   좋아요 1 | URL
그런데요..아이를 초등학교에 입학시키려면 예방접종을 꼭 해야해요. 맞았다는 확인서를 꼭 요구하더라구요..어쨌든 이 나라에서는 선택사항이 아닌거 같아요..ㅠ.ㅠ

파란놀 2016-01-13 16:44   좋아요 1 | URL
말씀처럼 그 대목을 잘 압니다.
저희는 아이들을 학교에 안 보내요.
집에서 놀게 하면서
두 어버이가 함께 가르쳐요.
앞으로도 굳이 학교에 보낼 마음이 없습니다.

학교는 삶과 사랑과 사람을 가르치고 배우는 곳이어야 하지,
어떤 강제의무를 주입시키는 곳이 되어서는 안 되어야겠지요.

의무교육인 학교에서 예방주사를 강제의무로 하는 일이
폭력인 줄을, 게다가 예방주사 성분이 무엇이고
부작용이 무엇인지를 하나도 알려주지 않고
숨기기까지 하는, 이런 커넥션은... 참 고질로 뿌리내렸지 싶어요.

히말 2016-01-13 16:51   좋아요 0 | URL
저도 별로 학교 보내고 싶지 않은데 용기가 잘 안나네요..ㅋ 학교에 보내지 않는다면 그만큼 부모가 많은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것인데 그 방법도 잘 모르겠구요..숲노래님은 어떻게 양육을 하시나요?

파란놀 2016-01-13 18:55   좋아요 0 | URL
제가 겪으며 살기로는,
노력을 해야 하기보다는
˝즐겁게 공부를 하는 어버이˝가 되고,
˝아이들이 마음껏 놀면서 스스로 하루 계획을 아침에 짜고,
저녁에 이를 되새기도록˝ 이끌 수 있으면 되는구나 싶어요.

이렇게 나아가다 보면,
어버이도 늘 함께 공부하고
아이도 스스로 계획을 짜니까
나이에 맞추어
무엇을 새로 배우고 살피면 되는가를
둘이 함께 즐겁게 깨달을 수 있어요.

저희는 이러한 데에서 `람타 공부`라는 것을
한 가지 더 해요.

아무튼, 노력보다는 `사랑`이고 `공부`예요 ^^
 
내 친구, 말하는 여우 - 마음을 따뜻하게 해 주는 감동 그림책 시리즈 1
이모토 요코 그림, 코와세 타와미 글, 프뢰벨교육연구소 옮김 / 프뢰벨행복나누기 / 2004년 1월
평점 :
절판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608



동무가 된 아이와 여우 사이를 갈라놓는 어른

― 내 친구, 말하는 여우

 코와세 타마미 글

 이모토 요코 그림

 프뢰벨교육연구소 옮김

 프뢰벨행복나누기 펴냄, 2004.1.15. 8000원



  이모토 요코(いもと ようこ, 1944∼)라는 일본 그림책 작가가 있습니다. 나는 이분 그림이 어릴 적부터 익숙합니다. 어릴 적에는 이분 이름을 모르는 채 이분 그림을 둘레에서 아주 쉽게 보았습니다. 공책이나 책받침이나 책살피나 문방구 같은 데에 곧잘 이분 그림이 나왔거든요. 이와사키 치히로(いわさきちひろ, 1918∼1974) 님 그림도 어릴 적부터 익숙하게 보았어요. 이밖에도 일본 그림책 작가 여럿 작품은 한국에 퍽 널리 조용히 들어왔습니다. 다만 1980년대가 저물고 1990년대로 접어들 무렵까지 ‘누구 그림’인지 감춘 채 들어왔지요.


  내가 어릴 적에는 그냥 ‘귀엽거나 사랑스러운 그림’이라고만 여겼고, 그저 ‘한국 어떤 그림책 작가’가 그렸겠거니 하고 여기던 그림인데, 아이를 낳아 돌보는 어버이가 되어 그림책을 살피다가 이모토 요코 님 작품이나 이와사키 치히로 님 작품을 ‘책으로 만나’면서 크게 놀랐습니다. 그동안 한국 사회에서 이런 멋진 그림과 그림책을 빚은 이웃나라 사람 삶을 하나도 안 보여주었기에 나도 그저 모르는 채 살았구나 하고 깨달았어요.



“겁내지 마. 내가 도와줄게.” 타미는 여우에게 조심조심 다가갔어요. “커다란 가시네. 가시덤불에 걸렸었구나!” 타미는 여우 발에서 가시를 뽑아냈어요. (5쪽)



  《내 친구, 말하는 여우》(프뢰벨행복나누기,2004)는 코와세 타마미 님이 글을 쓰고, 이모토 요코 님이 그림을 그린 책입니다. 책이름에 잘 나오듯이 ‘말하는 여우’가 나오는 그림책이에요. 어느 작은 시골마을에 ‘타미’라는 아이가 있고, 이 아이는 숲에서 혼자 놀다가 여우를 만납니다. 그런데 여우가 슬프게 울어요. 아이는 여우한테 다가갑니다. 여우가 무서워하니 여우를 달래면서 가만히 살핍니다. 이러다가 여우 발에 가시가 박힌 줄 알아채고는 살살 뽑아 줍니다.


  발에 박힌 가시가 빠진 여우는 홀가분하면서 기쁩니다. 이때 여우는 아이한테 ‘말하는 여우’ 모습을 드러내요. 아이는 여우한테 스스럼없이 다가갈 줄 알았기에, 여우가 말을 할 적에 놀라기는 했지만 둘이 사이좋은 동무가 될 수 있으리라 느꼈어요. 이날부터 둘은 숲에서 살가운 놀이동무가 되어서 한껏 즐겁게 뛰놉니다.




다음 날, 타미는 숲 속으로 갔어요. “말하는 여우를 다시 만나면 좋을 텐데…….” 바로 그때였어요. 바스락바스락. 누군가 갑자기 덤불 속에서 툭 튀어나왔어요. (8쪽)



  그런데 말이지요, 아이랑 여우는 서로 사이좋은 동무이지만, 어른들 생각은 다릅니다. 어른들은 이 아이가 숲에서 혼잣말을 하면서 떠든다고 여깁니다. 게다가 여우라는 짐승을 제대로 만나거나 사귄 적도 없으면서 그저 여우를 나쁘게만 바라보아요. 타미네 어머니와 아버지도 타미가 더는 숲으로 못 가게 막을 뿐 아니라, 여우는 무서운 짐승이라고 말합니다.


  마을 어른들이 한 번이라도 보았다면, 타미랑 여우가 얼마나 사이좋게 노는지 마을 어른들이 한 번이라도 보았다면, 아니 마을 어른들도 숲에서 사는 수많은 짐승하고 사이좋게 지내면서 함께 놀기도 하고 노래도 불러 보았다면, 참말 다를 텐데요. 아무래도 마을 어른들 스스로 ‘아이처럼 여우하고 동무로 사귄’ 적이 없기 때문에 여우를 나쁘게 볼는지 모릅니다. 이 그림책에 나오는 마을 어른들뿐 아니라, 여느 자리에 있는 퍽 많은 어른들도 ‘여우나 여러 숲짐승을 이웃으로 여겨서 사귀는’ 일이 거의 없다시피 해요.


  아이는 여우하고 동무가 될 수 없을까요? 어른은 여우하고 이웃이 될 수 없을까요? 우리는 누구를 동무로 여겨야 할까요? 우리한테는 누가 이웃이 될 만할까요?




마을 사람들은 타미를 점점 이상하게 여기기 시작했어요. “타미가 산마루에서 혼잣말을 하고 있더라니까요!” “혹시 여우에게 홀린 게 아닐까요?” 그 소문은 타미의 엄마와 아빠에게까지 들렸어요, “타미야, 이제 숲 속에 가면 안 된다!” 엄마가 단단히 일렀어요. (15쪽)



  동무가 된 아이와 여우 사이를 갈라놓으려 하는 어른입니다. 그러나 어른으로서는 어쩔 수 없구나 싶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아이들은 마음으로 바라보며 서로 동무가 되지만, 어른들은 마음이 아닌 겉모습으로 바라보다가 이모저모 따지기 때문입니다.


  참말 눈을 가만히 감고 마주하면 ‘말하는 사람’이든 ‘말하는 여우’이든 똑같을 텐데요. 우리가 동무나 이웃을 사귈 저에 ‘눈을 감고 마음으로 마주할’ 수 있다면, 겉모습이나 재산이나 이런저런 것을 따지지 않을 텐데요.


  그렇잖아요. 반가운 동무는 잘생기거나 못생기지 않아요. 동무를 사귈 적에 얼굴을 볼 일이 없어요. 아니, 동무하고 사귀며 놀 적에 얼굴을 바라보기는 할 테지만, 얼굴 생김새가 잘생겼거니 못생겼거니 따지지 않아요. 우리는 얼굴 생김새로만 동무가 되거나 같이 놀지 않으니까요.


  어른들이 함께 일하는 이웃을 사귈 적에도 이와 같아요. 겉모습이나 생김새만으로 ‘함께 일할’ 수 있어요. 마음으로 믿고 기대며 아끼고 보살피고 어깨동무할 수 있을 만한 사람일 때에 비로소 함께 일할 수 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여우를 잡으려고 산에 올라갔어요. 타미는 여우가 걱정이 되었어요. 타미는 몰래 집에서 빠져나와 산으로 올라갔어요. 타미는 말하는 여우를 찾아 헤맸어요. 그러나 말하는 여우는 어디에도 없었어요. “말하는 여우야…….” 타미는 너무나 지쳐 쓰러지고 말았어요. (26쪽)



  그림책 《내 친구, 말하는 여우》에 나오는 조그맣고 여리며 어린 아이 타미는 여우가 걱정스럽습니다. 마을 어른들은 여우 사냥을 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여우가 ‘잘못한’ 일은 하나도 없지만, 여우 같은 짐승은 숲에서 사라져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힙니다.


  먼먼 옛날부터 숲에는 여우뿐 아니라 늑대도 이리도 삵도 범도 곰도 오소리도 너구리도 족제비도 쥐도 뱀도 잔나비도 솔개도 매도 수리도 올빼미도 소쩍새도 꾀꼬리도 박새도 할미새도 모두모두 저마다 사이좋게 어우러져서 지내는데, 사람들(아니 어른들)은 그만 사람 아닌 짐승은 숲에서 사라져야 하는 줄 여기기 일쑤입니다. 아이들은 ‘사람인 동무와 이웃’도 사귀지만 ‘짐승인 동무와 이웃’도 사귀는데다가 ‘풀과 꽃과 나무인 동무와 이웃’도 사귀는데, 어른들은 이 대목을 자꾸 놓치거나 잊고 말아요. 어른들 스스로 얼마 앞서까지 아이였던 줄 잊었기 때문일까요.


  포근한 마음이 흐르는 그림책을 아이들하고 함께 읽는 동안 아이들은 이 줄거리에 빠져듭니다. 나도 곁에서 이 이야기에 빠져듭니다. 아이랑 여우가 부디 오래도록 사이좋은 동무가 될 수 있기를 바라면서 그림책을 넘깁니다. 아이가 무럭무럭 자라서 ‘여우를 비롯한 숲짐승’을 살가운 이웃으로 여길 줄 아는 슬기로운 어른이 되기를 바라면서 그림책을 펼칩니다. 온누리 아이들 누구나 마음에 한가득 사랑을 담아서 기쁘게 삶을 짓고 살림을 가꾸는 어른으로 거듭나기를 꿈꾸면서, 이모토 요코 님 이쁘장한 그림책을 새삼스레 읽고 자꾸 읽어 봅니다. 4349.1.13.물.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6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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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자전거 삶노래 2015.12.1.

 : 추워도 재미있어



겨울에 타는 자전거는 바로 추운 맛이다. 찬바람이 그야말로 차가운데, 때로는 자전거가 휘청거릴 만큼 드세게 분다. 두꺼운 겉옷을 단단히 여미고, 두꺼운 장갑을 끼어야 겨울 자전거 나들이를 할 만하다.


어떠니? 이 겨울바람을 쐬면서 달리는 자전거가 재미있니? 찬바람을 한가득 쐬고 집으로 돌아오니 집이 무척 포근하니? 이 겨울에는 차가운 바람이 온 들을 잠재우면서 우리가 마음속으로 깊이 꿈을 꾸도록 북돋운단다. 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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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순이 86. 한겨울 억새순이 (2015.12.31.)



  가을걷이가 끝난 뒤부터는 논둑에서 억새가 한들거려도 딱히 베어내지 않으니, 이 억새는 아이들한테 재미난 놀잇감이자 놀이동무가 되어 준다. 자전거순이는 들길을 달리다가도 이 억새를 꺾어서 한손으로 쥐고 달리고 싶다. 바람 따라 춤추는 억새풀이 반갑고, 억새순이도 바람 따라 콧노래를 부르면서 이 겨울을 실컷 누린다. 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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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장 옆 탱자나무 - 한혜영 동시집 푸른사상 동시선 4
한혜영 지음 / 푸른사상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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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사랑하는 시 77



할머니가 아이한테 들려주는 조촐한 노래

― 닭장 옆 탱자나무

 한혜영 글

 푸른사상 펴냄, 2012.3.25. 9000원



  할머니 한혜영 님은 동시도 쓰고 동화도 씁니다. 이러한 글은 어린이문학을 하려는 글이기 앞서 이녁 손주한테 들려주려는 이야기입니다. 누구보다 이녁 손주가 스스로 손에 쥘 첫째 책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지어서 들려주려는 이야기예요.


  동시를 쓰는 할머니는 이녁 손주한테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을까요? 동시를 쓰는 할머니는 이녁 손주를 낳아서 돌보는 이녁 딸아들이나 며느리나 사위한테 어떤 이야기를 물려주고 싶을까요? 아무래도 사랑을 이야기로 들려주고 싶을 테지요? 무엇보다 사랑을 차근차근 물려주고 싶을 테지요?


  옛날부터 내려오고 옛적부터 흘러온 이야기는 모두 어버이가 아이한테 들려주려는 이야기일 뿐 아니라,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이녁 손주한테 물려주고픈 가장 슬기롭고 따사로운 사랑이리라 생각합니다. 재산이나 학력이나 이름값이 아니라, 삶을 스스로 짓는 사랑을 물려주고 싶으리라 생각해요.



바람 한 차례 옥상으로 불어오자 / 블라우스와 와이셔츠 / 큰 빨래들은 / 어미 두루미처럼 날개를 활짝 펼쳤다. (빨래)


늦잠 자는 / 씨앗은 일어나라고 // 은지팡이로 / 토독! / 톡! / 톡톡! // 두들기며 비 옵니다 (봄비)



  아침에 잠을 깨는 아이들은 언제나 빙긋빙긋 웃으면서 나한테 다가옵니다. 저녁에 잠들기까지 이 아이들은 언제나 내 둘레에서 방긋방긋 웃으면서 나한테 달라붙습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함께 놀자 하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함께 움직이자 합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내 몸짓을 지켜보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내 말씨를 헤아립니다.


  빙긋빙긋 웃는 아이한테 나도 웃음을 짓습니다. 방긋방긋 웃으며 놀자 하는 아이들한테 나도 웃음을 지으며 손을 내밉니다. 아이들이 바라는 한 가지는 언제나 놀이입니다. 다만 억지스럽거나 고단한 놀이는 아닙니다. 학습 놀이나 체험 놀이를 바라지 않습니다. 교육 놀이라든지 사회 놀이를 바라지 않아요.


  아이들은 늘 따사로운 사랑으로 놀자고 웃음으로 말을 겁니다. 아이들은 늘 즐거운 사랑으로 놀자면서 노래하듯이 말을 해요. 이때에 어버이는 두 가지를 할 수 있습니다. 첫째, 그저 그대로 놀 수 있어요. 다음으로, 바쁘거나 다른 할 일이 있다면서 같이 안 놀 수 있어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종이는 / 이제 막 한글을 배우는 / 꼬맹이의 삐뚤빼뚤한 / 이름을 받아 적는 종이다. (종이)


곰이랑 사자가 사람을 만났을 때 / 발톱부터 세우는 건 말이 안 통해서 그럴 거다 // 영어, 일어, 불어, 한문 학원 같은 / 간판 사이에 동물의 말을 가르쳐준다는 / 간판도 하나쯤 끼어 있으면 (이런 학원 어디에 없나요?)



  동시집 《닭장 옆 탱자나무》에 흐르는 이야기는 두 갈래로 살필 만합니다. 첫째는 할머니가 아이한테 들려주는 포근한 사랑 이야기입니다. 둘째는 아이가 집이나 마을이나 학교 안팎에서 겪거나 부대끼는 삶을 놓고 사랑으로 마주하자고 손짓하는 이야기예요.


  바람이 불어 빨래를 날리고, 비가 내리며 새싹이 자라도록 합니다. 아이들은 새하얀 종이에 글씨를 그리거나 그림을 그립니다. 해님이 움직이면서 그림자가 져요. 벌이나 나비가 집이나 교실로 들어왔다가 나가지요. 이를 모두 포근한 사랑이라는 눈길로 바라보면서 아이한테 이야기로 들려줄 수 있으면, 아이는 제 이웃하고 동무를 따사로우면서 너그러운 몸짓으로 맞아들이는 슬기를 배워요.


  학원으로 바쁘거나 공부로 힘들다면, 바쁘거나 힘든 아이들을 북돋울 만한 이야기를 짓습니다. 아이들이 스스로 생각을 열면서 앞으로 우리 사회를, 이 나라를, 너른 지구별을, 가없는 우주를 고이 품에 안을 수 있도록 생각을 여는 이야기를 짓습니다.



강이 아프단다. / 암처럼 딱딱한 / 시멘트 덩어리가 / 가슴께서 만져진단다. (아픈 강)


바람은 보이지 않으니까 소리를 내는 거야 / 안 그러면 제가 찾아온 걸 아무도 모르잖아 (바람은 소리를 좋아해)



  찬바람이 부는 한겨울에 아이들을 이끌고 들길을 걸어 봅니다. 한겨울이기에 찬바람을 함께 맞으면서 겨울이란 어떤 철인가 하는 대목을 고스란히 느낍니다. 바람이 차니 아이들이 봄은 언제 오느냐고 묻습니다.


  바람이 잔잔하고 볕이 포근한 한겨울에 아이들하고 마당에서 달리면서 함께 땀을 흘립니다. 바람이 안 불어 포근한 날씨이니 아이들은 겨울이 왜 이리 덥냐고 묻습니다.


  별빛으로 가득한 한밤에 아이들을 데리고 마당에 서서 별바라기를 하다가 서로 손을 맞잡고 삼십 분 남짓 밤마실을 합니다. 아버지 손을 꼬옥 잡고 별바라기 밤마실을 하는 동안 풀섶에서 마른 잎을 헤치는 들쥐 소리를 듣고, 족제비 지나가는 소리를 들으며, 멧비둘기가 자다가 우리 발자국을 듣고 깜짝 놀라 하는 소리도 듣습니다. 아이들은 저희 손을 꼬옥 잡고 걷는 아버지가 있어서 밤소리를 들으면서도 재미나게 놀 수 있습니다.



손가락 까딱하는 것까지도 따라하는 / 그림자 때문에 / 청년은 결국 도둑질을 포기했대요 // 제 그림자가 빤히 지켜보는데 / 어떻게 도둑질을 할 수가 있겠어요? (무서운 그림자)



  할머니는 조촐하게 이야기를 엮어서 동시집 《닭장 옆 탱자나무》에 담습니다. 벌레 한 마리도 함부로 다루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을 동시집에 담습니다. 그림자가 늘 우리 곁에 있다는 대목을 넌지시 알려주려고 동시를 살그마니 씁니다. 벌레 한 마리도 무척 아름다운 목숨일 뿐 아니라, 어머니도 아버지도 있는 우리랑 똑같은 이웃이라는 대목을 동시로 가만히 보여줍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있는 그림자는 우리가 하는 모든 몸짓을 똑같이 따라한다는 대목을 일깨우면서 아이들 스스로 씩씩하고 의젓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속삭여요.


  곰곰이 돌아보면 먼먼 옛날부터 온누리 모든 어버이는 저마다 시인이 되어 아이들한테 사랑을 노래해 주었으리라 봅니다. 문단에 오르거나 시집을 내놓았기에 시인이 아니라, 어버이 자리는 언제나 삶을 노래하는 자리이지 싶어요. 아이들이 사랑을 배우도록 북돋우는 이야기를 들려주기에 시인입니다. 아이들한테 물려주고 싶은 사랑을 가슴으로 가다듬어 속삭이기에 시인입니다. 아이들이 스스로 즐겁게 놀도록 북돋우고, 언제나 아이들하고 손을 맞잡으며 함박웃음으로 놀 수 있기에 시인입니다.



“그 벌 죽이지 말고 살려서 보내줘라 / 누구의 아버지일지도 모르지 않니?” // 공책을 말아들고, 불끈! 솟구쳤던 팔뚝이 스르르 떨어졌다 (‘아버지’라는 말)



  오늘도 새 하루를 맞이하기 앞서 조용히 생각을 가다듬어 봅니다. 어제하고는 다른 새로운 아침에 아이들하고 무엇을 하며 놀는지, 아이들한테 어떤 놀이를 보여줄는지, 이 아이들하고 누리는 살림은 어떤 사랑으로 새롭게 피어날 만한지를 새벽녘에 고요히 헤아립니다. 나도 늘 노래(동시) 한 가락을 마음자리에 두면서 조촐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아침을 맞이해야겠습니다. 4349.1.13.물.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6 - 시골에서 시읽기/동시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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