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발상의


발상의 전환 → 생각 바꾸기 / 생각 새로 하기


  ‘발상(發想)’은 “어떤 생각을 해냄. 또는 그 생각”을 뜻합니다. 이 한자말하고 늘 짝을 이루어 쓰이는 ‘전환(轉換)’은 “다른 방향이나 상태로 바뀌거나 바꿈”을 뜻해요. 그러니까 “발상의 전환”이란 “생각을 바꿈”을 뜻하는 셈입니다. “생각 바꾸기”를 가리키고, 생각을 바꾼다고 할 적에는 “다르게 생각한다”거나 “새롭게 생각한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4349.1.14.나무.ㅅㄴㄹ



발상의 전환을 이뤄 보자

→ 생각을 바꿔 보자

→ 생각을 고쳐 보자

→ 생각을 확 뒤집어 보자

→ 생각을 다르게 해 보자

→ 생각을 새롭게 해 보자

《정재환-대한민국은 받아쓰기 중》(김영사,2005) 60쪽


나 같은 건 상상도 못 할 발상의 소유자

→ 나 같은 건 꿈도 못 꿀 생각을 품은 사람

→ 나 같으면 꿈도 못 꾸는 생각을 하는 사람

《히구라시 키노코/최미정 옮김-먹고 자는 두 사람 함께 사는 두 사람》(대원씨아이,2015) 158쪽


(최종규/숲노래 . 2016 - 우리 말 살려쓰기/말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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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고 자는 두 사람, 함께 사는 두 사람 5
히구라시 키노코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5년 12월
평점 :
절판


만화책 즐겨읽기 595



어떻게 하면 서로 곁님 마음을 읽을까

― 먹고 자는 두 사람 함께 사는 두 사람 5

 히구라시 키노코 글·그림

 최미정 옮김

 대원씨아이 펴냄, 2015.12.31. 5000원



  시골은 도시와 사뭇 달라서 해가 떨어지면 그야말로 캄캄합니다. 요새는 마을마다 등불을 곳곳에 세워 주기는 하지만, 불빛이 닿지 않는 자리가 훨씬 넓습니다. 시골은 모름지기 밤에 어두워야 하기 때문에 일부러 마당이나 집 둘레를 밝히지 않습니다. 밤에는 풀도 나무도 꽃도 모두 자야 하니, 마을도 집도 밤에는 고요하게 잠듭니다.


  이런 시골마을에서 아이들은 밤에 손전등을 들면서 놀고 싶습니다. 캄캄한 밤에도 씩씩하게 별바라기를 하면서 놀기도 하지만, 손전등으로 비추면서 새로운 모습을 느끼는 놀이도 하고 싶어요.


  아이들이 손전등 놀이를 하면 건전지가 빨리 닳습니다. 그러나 아이들은 건전지 닳는 걱정을 하지 않습니다. 그저 재미있게 놀이를 합니다. 건전지 걱정을 하는 사람은 오직 어른입니다.


  우리 집 아이들이 밤에 마당이나 잠자리에서 등불 놀이를 하고픈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옛날을 아스라이 떠올립니다. 나도 이 아이들만 한 나이에 손전등으로 밤놀이를 하고 싶었어요. 어머니나 아버지한테서 ‘손전등 밥 닳는다’는 걱정이나 꾸중을 들으면서도 이불을 뒤집어쓰고는 손전등을 켰지요. 불빛을 받은 이불 속은 낮에는 도무지 볼 수 없는 새로운 빛깔이고 빛결입니다. 이런 모습을 느끼고 싶으니 걱정이나 꾸중을 아무리 들어도 손전등 놀이를 합니다.



‘이젠 부모님 마음을 충분히 알겠어. 마음은 아직 어린이와 어른 사이를 오락가락하고, 사회나 인간관계에 얽히며 겨우 어른이란 걸 자각하지만, 금전 감각은 완전히 어른이 됐구나.’ (17∼18쪽)


‘앞으로도 지금 내가 상상조차 못 할 내가 될지 모른다는 불안은 접어두고, 그저 즐겁게 기다리는 편이 좋을지 모르겠다.’ (24쪽)



  히구라시 키노코 님이 빚은 만화책 《먹고 자는 두 사람 함께 사는 두 사람》(대원씨아이,2015) 다섯째 권을 읽습니다. 2013년 11월에 첫째 권이 한국말로 나온 지 이태 만인 2015년 12월에 다섯째 권이 나오면서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이야기를 마무리짓습니다.


  이 만화책은 ‘먹고 자는 두 사람’이던 사이가 ‘함께 사는 두 사람’으로 거듭나는 열네 해 이야기를 짤막하게 간추려서 들려줍니다. 그저 ‘먹고 자는 두 사람’이던 때에는 서로 어떤 마음인지 읽으려 하지 않거나 못했다면, ‘함께 사는 두 사람’으로 거듭나려는 동안에는 서로 어떤 마음인지 읽으려 애씁니다.


  어버이가 아이 마음을 읽거나 느끼듯이, 어버이가 저마다 제 어릴 적 모습을 되새기면서 오늘 이곳에서 마주하는 아이들 마음을 헤아리거나 살피듯이, 《먹고 자는 두 사람 함께 사는 두 사람》에 나오는 사내와 가시내는 아주 천천히 서로서로 마음을 읽고 느끼면서 한집살이를 이룹니다.



‘한발 뒤로 물러나 바라보면, 이런 날도 길고 긴 연표 위를 걷는 것에 불과하겠지.’ (40쪽)


‘나는 지금 나 이외의 무언가를 책임져서 나를 성장시키고 싶은 거구나.’ (59쪽)



  마음읽기는 쉬울까요, 어려울까요? 마음읽기는 할 수 있을까요, 할 수 없을까요? 뭐, 쉽다면 쉽고 어렵다면 어려울 텐데, 참말 마음읽기는 ‘마음먹기’에 따라 달라집니다. 겉으로 스치면서 지내는 하루라면 마음을 도무지 못 읽을 테고, 속으로 아끼면서 사랑하는 삶이라면 마음을 찬찬히 읽을 테지요.


  말을 해야 마음을 알기도 하지만, 말을 하지 않아도 마음을 느낍니다. 아니, 말을 할 적에는 마음을 열어서 서로 나누고, 말을 하지 않을 적에는 마음이 고이 흐르면서 서로 느낍니다. 마음으로 아는 마음이 있고, 마음으로 느끼는 마음이 있다고 할까요.



‘날 위해서도 아니고, 리츠코를 위해서도 아닌, 우리의 미래를 위해.’ (102∼103쪽)


‘리츠코 마음을 들을 수 있으면 좋을 텐데. 그게 된다면 지금까지처럼 갑자기 화내거나 갑자기 울리는 일도 없었겠지.’ (141쪽)



  두 사람 사이가 한낱 ‘먹고 자는 두 사람’이던 무렵에는 마음읽기는 거의 생각조차 안 하다 보니, 이때에는 다투는 일도 잦았을 뿐 아니라 서로 마음에 송곳을 찍듯이 생채기를 내는 일마저 있습니다. ‘먹고 자는’ 사이로만 머물 수 없다고 여기면서 ‘함께 사는 두 사람’이 되는 길을 걷는 사이 어느덧 다툼은 잦아듭니다. 다만 아예 사라지지는 않고 다툼이 줄어요. 다툼이 줄면서 이야기가 늘고, 이야기가 느는 동안 어느새 스스럼없이 마음을 주고받을 뿐 아니라, 딱히 마음을 말로 털어놓지 않아도 느낌으로 헤아립니다. 함께 있어서 즐거운 나날을 누리고, 함께 있기에 새롭게 가꾸는 살림을 깨달아요.


  만화책 《먹고 자는 두 사람 함께 사는 두 사람》에서는 “우리 앞날”을 생각하면서 새로운 길을 걷는다는 얘기가 흐릅니다. 어느 한 사람을 생각하는 길이 아니라, 서로 손을 맞잡고 걷는 길이라는 대목을 바라봅니다. 그런데, 서로 손을 맞잡고 걷는 길이라면, 이러한 길이 바로 “우리 앞날”이라면, 참말 이러한 길은 참답게 어느 한 사람을 사랑하는 길이 되리라 느껴요. 한쪽으로 치우친 길이 아니기에 사랑이요, 한쪽을 그냥 한쪽이 아니라 곁에 있는 님, 곧 ‘곁님’으로 느끼는 길이라고 할까요.


  곁이 있는 아름다운 숨결이기에 곁님이 됩니다. 그리고, 곁에 있으면서 서로 따사로이 보살피고 지켜 주는 사이가 된다면 곁지기가 되어요. 곁에 있는 사랑인 만큼 곁사랑일 테고, 곁에 있는 너른 꿈이라면 곁꿈이기도 합니다.



‘지금까지 함께 시간을 보냈기에 진심으로 느낀다. 리츠코와 부부가 될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156∼157쪽)


‘아, 그렇구나. 어쩌면 부부야말로 어떤 의미로 궁극적인 남녀의 우정이 아닐까?’ (180쪽)



  사내와 가시내 사이가 되든, 사내와 사내 사이가 되든, 가시내와 가시내 사이가 되든, 마음으로 아낄 수 있을 때에 비로소 어깨동무나 우정이라는 말을 쓸 수 있습니다. 마음으로 아끼지 못한다면 어깨동무도 우정도 아닐 테고, 마음으로 아끼지 못할 적에는 ‘함께 사는 두 사람’이 아니라 ‘먹고 자는 두 사람’이기만 할 테지요.


  겉으로 드러내는 몸짓도 뜻이 아예 없지 않습니다만, 함께 사는 사이라면 겉치레가 아닌 즐거운 몸짓이 되어 마음으로 포근히 안을 수 있어야지 싶습니다. 겉모습이나 생김새를 아예 안 쳐다볼 수 없다고 합니다만, 함께 삶을 지으면서 나아갈 사이라면 겉모습보다는 속마음을 곱게 가꾸면서 활짝 웃는 살림을 지어야지 싶습니다.


  만화책에 나오는 이야기로 그치는 사랑이 아니라, 온누리 어느 곳에서나 사내와 가시내가, 또 수많은 짝꿍하고 동무가, 따사로운 숨결로 거듭나는 하루를 지으면서 기쁘게 웃고 노래하는 곁님이 될 수 있기를 빌어요. 상냥한 손길로 서로 어루만지는 이야기가 흐르는 만화책을 이제 고요히 덮습니다. 4349.1.14.나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6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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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놀 2016-01-14 22: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만화책이 마음에 안 들면 안 읽으면 됩니다.
여기에 악플 달 겨를이 있으면
그대가 좋아하는 만화를 읽기 바랍니다.
괜히 엉뚱한 곳에 와서 악플 달지 마셔요.
 

말 좀 생각합시다 16


 심심한 사과의 말씀


  ‘심심하다’라는 낱말을 놓고 아이들은 “아이 심심해.” 하고 말합니다. 하는 일이 없어서 재미가 없다는 뜻입니다. ‘심심하다’라는 낱말을 두고 살림하는 어른들은 “국이 심심하네.” 하고 말합니다. 국물 간을 좀 싱겁게 했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한자말 ‘甚深’이나 ‘深深’을 쓰는 지식인이 있습니다. 이 한자말은 “심심한 감사”나 “심심한 사과”나 “심심한 조의”나 “심심한 경의”처럼 쓴다고 하는데, 한국 말투가 아닌 한자를 널리 받아들여서 쓰는 일본 말투입니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는 영어도 널리 쓰니까 한자말쯤이야 그리 안 대수로울 만합니다만, “심심한 사과의 말씀”처럼 말하는 어른을 아이가 바라본다면 무엇을 느낄 만할까요? “심심한 감사의 말씀”처럼 말하는 지식인을 여느 살림꾼이 마주한다면 무엇을 생각할 만할까요?


  아마 아이는 뭔 ‘사과’를 ‘재미없게’ 하는가 하고 고개를 갸우뚱할 테지요. 아마 살림꾼은 뭔 ‘사과’를 ‘싱겁게’ 하는가 하고 고개를 갸웃거릴 테지요.


  누구한테 사과한다고 말하려 한다면 “깊이 사과”하면 됩니다. “고개 숙여 사과”하면 돼요. “거듭 사과”할 수 있을 테고, “머리를 조아리며 사과”할 수 있습니다. 4349.1.14.나무.ㅅㄴㄹ



우선 우레시노 시민 제위께 심심한 사과의 말씀을 전한다

→ 먼저 우레시노 시민 모두한테 깊이 사과하는 말씀을 올린다

→ 먼저 우레시노 시민 여러분한테 고개 숙여 사과 말씀을 여쭌다

《손민호-규슈 올레》(중앙북스,2015) 40쪽


(최종규/숲노래 . 2016 - 우리 말 살려쓰기/말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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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장소] 2016-01-14 18:11   좋아요 0 | URL
정말 무게를 실어야하는 말에는 함부로 쓸수없을 듯.
진심이 어딘지 애매해지니까..

파란놀 2016-01-14 21:08   좋아요 1 | URL
한자말이든 영어이든 알맞게 쓰면 좋을 텐데,
한국말에 영 어울리지 않는 말을
함부로 쓰는 일이
사라지면서
슬기롭게 말과 생각을 나눌 수 있기를 비는 마음입니다..

[그장소] 2016-01-15 00:33   좋아요 0 | URL
저 댓글을 쓰기 바로 전에 저는 심심한 위로 ㅡ라면서 반 장난같은 말을 ㅡ하고 내려온 참이어서 그게 더 와닿았던 참이었어요.가서 고쳐야할까 하다 말았는데 늘 어렵습니다.말은 .
^^

파란놀 2016-01-15 05:16   좋아요 1 | URL
저도 말놀이나 말장난 같은 이야기를 그동안 즐겨 쓰기는 했는데
제대로 슬기로운 뜻을 담아서
말놀이나 말장난을 할 때에
비로소 스스로 생각을 살찌울 수 있다는 대목을
요즈음 들어서 새삼스레 해 봅니다.

그리고 모든 말을 굳이 어린이 눈높이에서 해야 하지는 않을 테지만,
어린이와 시골사람과 할머니와 할아버지와
학교를 안 다닌 사람도 함께 나눌 수 있는 눈높이를 헤아리면서
말을 쓸 때에 비로소 아름다울 수 있으리라 생각해요 ^^

[그장소] 2016-01-15 12:50   좋아요 0 | URL
좋은 이야기 고맙습니다 ^^
 

시든 코스모스는 씨앗을 남기고



  시든 코스모스를 본다. 아직 꽃잎이 떨어지지 못한 코스모스도 이 겨울까지 버티면서 해바라기를 하다가 바싹 야윈다. 찬바람이 얼마나 매서운데 아직 꽃잎을 떨구지 않았을까. 한겨울에도 볕이 포근한 고흥이기에 이곳에서 더 해바라기를 하면서 꽃내음을 나누어 주고 싶었을까. 아직 꽃잎이 아슬아슬 매달린 코스모스 꽃송이 곁에 있는 씨앗을 손바닥에 훑는다. 아이들한테 코스모스 씨앗을 나누어 준다. 우리 집 둘레에 코스모스 씨앗을 뿌린다. 4349.1.14.나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6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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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름벼리는 파란하늘을 안고서



  이 겨울에 우리는 새파란 하늘을 온몸으로 안으면서 논다. 걸으면서 놀고, 달리면서 놀지. 하늘을 보며 놀고, 노래하며 놀지. 무엇을 하든 놀이가 된다. 무엇을 해도 파란하늘이 베푸는 숨결을 먹는다. 이곳에서 오늘 서로서로 바라보면서 들길마실을 누린다. 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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