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츠바랑! 13 (아즈마 키요히코) 대원씨아이 펴냄, 2016.1.10. 5200원



  만화책 《요츠바랑!》은 몇 살부터 읽을 만할까? 우리 집 만화순이가 여러 가지 만화를 보다가 《요츠바랑!》을 지난해부터 슬슬 보는데 퍽 재미있어 하는 눈치이다. 그런데 여덟아홉 살 어린이가 이 만화를 알아들을 수 있을까? 나이를 가늠할 길이 없는 요츠바가 나오는 만화책인 《요츠바랑!》은 그야말로 나이를 가늠할 까닭이 없는 아이가 즐겁게 삶을 누리는 이야기를 다룬다. 그저 놀고, 그저 웃고, 그저 춤추면서 하루를 누린다. 마음속에 걱정을 담을 까닭이 없이 신나게 놀고, 기쁘게 웃으며, 마음껏 춤추면서 하루를 마무리한다. 어느 모로 본다면 모든 아이들은 이 만화책에 나오는 요츠바하고 같으리라 본다. 티없는 마음으로 오직 사랑과 기쁨을 가슴 깊이 아로새기면서 웃음과 놀이로 하루를 지새우고 싶은. 4349.1.15.쇠.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6 - 한 줄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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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츠바랑! 13
아즈마 키요히코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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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량한 말 바로잡기

 미미 微微


 미미하게 흔들리는 물살 → 잔잔하게 흔들리는 물살

 미미한 것이었다 → 자잘한 것이었다 / 아주 작은 것이었다


  ‘미미(微微)’는 “보잘것없이 아주 작다”를 뜻합니다. 그러니까 ‘보잘것없다’나 ‘아주 작다’를 ‘미미’라는 한자를 빌어서 나타내는 셈입니다. 아주 작다고 한다면 ‘작디작다’라 할 수 있고, 때에 따라서는 ‘잘디잘다’라 할 수 있습니다. ‘자잘하다’라는 말이 어울리는 자리도 있습니다. 물살이라면 ‘잔잔하다’라는 낱말이 어울립니다. 묽기라면 ‘옅다’나 ‘묽다’라는 낱말이 어울리지요. 4349.1.15.쇠.ㅅㄴㄹ



농도가 미미해서 효과가 없는 듯이

→ 묽기가 옅에서 효과가 없는 듯이

→ 너무 묽어서 보람이 없는 듯이

《대프니 밀러/이현정 옮김-땅이 의사에게 가르쳐 준 것》(시금치,2015) 303쪽


1년에 한 명이 나올까 말까 한 미미한 정도이다

→ 한 해에 한 사람이 나올까 말까 하도록 적다

→ 한 해에 한 사람이 나올까 말까 할 만큼 매우 적다

《김경희-마음을 멈추고 부탄을 걷다》(공명,2015) 85쪽


공룡의 눈에는 개미가 눈에 보이지도 않는 미미한 존재겠지만

→ 공룡 눈에는 개미가 눈에 보이지도 않는 아주 작은 목숨이겠지만

→ 공룡한테는 개미가 눈에 보이지도 않는 하찮은 목숨이겠지만

→ 공룡한테는 개미가 눈에 보이지도 않는 보잘것없는 목숨이겠지만

《정청라-할머니 탐구생활》(샨티,2015) 49쪽


(최종규/숲노래 . 2016 - 우리 말 살려쓰기/말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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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말을 죽이는 외마디 한자말

 격하다 激


 조그만 일에 격하여 → 조그만 일에 불끈하여

 격한 어조 → 거친 말씨 / 거센 말씨

 격한 운동 → 거친 운동 / 거센 운동

 격한 목소리로 → 거친 목소리로 / 거센 목소리로


  ‘격(激)하다’는 “1. 갑작스럽게 성을 내거나 흥분하다 2. 기세나 감정 따위가 급하고 거세다”를 뜻한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한국말로는 “갑작스레 불끈하다”나 “갑자기 발끈하다”라든지 ‘거세다’나 ‘거칠다’라 할 만합니다. 때로는 ‘북받치다’나 ‘울컥하다’를 쓸 만하고, 때로는 ‘드세다’나 ‘무시무시하다’를 쓸 만하기도 합니다. 4349.1.15.쇠.ㅅㄴㄹ



아빠의 감정도 격해졌다

→ 아버지 마음도 거칠어졌다

→ 아버지도 마음이 북받쳐 일어났다

→ 아버지도 울컥했다

→ 아버지도 크게 성을 냈다

《시게마츠 기요시/오유리 옮김-안녕 기요시코》(양철북,2003) 226쪽


격했던 마음이 가라앉으니

→ 울컥했던 마음이 가라앉으니

→ 치솟았던 마음이 가라앉으니

→ 짜증내던 마음이 가라앉으니

→ 불끈했던 마음이 가라앉으니

→ 달아올랐던 마음이 가라앉으니

《박정희-나의 수채화 인생》(미다스북스,2005) 207쪽


워낙 격한 소리가 오고 가기에

→ 워낙 거친 소리가 오고 가기에

→ 워낙 큰 소리가 오고 가기에

→ 워낙 무시무시한 소리가 오고 가기에

《정청라-할머니 탐구생활》(샨티,2015) 65쪽


(최종규/숲노래 . 2016 - 우리 말 살려쓰기/말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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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곡차곡 (사진책도서관 2016.1.8.)

 ― 전라남도 고흥군 도화면 동백마을, ‘사진책도서관 숲노래’



  영화 〈마고리엄의 장난감 백화점〉을 보면 첫머리에 마고리엄네 가게 아래층에 사는 아저씨 이야기가 흐른다. 이 아저씨는 ‘마고리엄 이야기’를 날마다 적는다고 한다. 이백마흔세 해를 산 마고리엄 아저씨인 만큼 이 아저씨하고 얽힌 이야기는 두툼한 책으로 아주 많다.


  《시골자전거 삶노래》라는 책을 도서관 한쪽에 꽂는다. 그동안 내놓은 책하고 나란히 꽂는다. 이 책들이 있어서 이 도서관을 지키는 힘을 얻고, 이 책들을 내놓으면서 이곳에서 일구는 삶을 하나씩 갈무리한다고 할 만하다.


  처음부터 책이 잔뜩 꽂힌 도서관은 없다. 언제나 한 권씩 살피고 헤아려서 갖추는 도서관이다. 차곡차곡 그러모은 책으로 천천히 피어나는 도서관이다. 이런 도서관을 찾아오는 사람은 ‘처음부터 책이 많은 모습’만 볼는지 모르지만, 오래도록 차곡차곡 갈무리해서 엮은 이야기가 모이기에 시나브로 도서관이 될 수 있다.


  흙을 가꾸어 밭을 삼을 적에도, 씨앗 한 톨이 자라서 숲을 이룰 적에도, 아이를 낳은 어버이가 한집살림을 돌볼 적에도, 참말 아주 조그마한 마음이랑 손길이 모여서 고운 사랑으로 거듭난다. 앞으로도 차곡차곡 갈무리해서 차근차근 책살림을 북돋울 우리 도서관 앞날을 고요히 헤아려 본다. 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6)






* 도서관 나들이 오시려면 먼저 전화하고 찾아와 주셔요 *

* 사진책도서관(서재도서관)을 씩씩하게 잇도록 사랑스러운 손길을 보태 주셔요 *

☞ 어떻게 지킴이가 되는가 : 1평 지킴이나 평생 지킴이 되기

 - 1평 지킴이가 되려면 : 다달이 1만 원씩 돕거나, 해마다 10만 원씩 돕는다

 - 2평 지킴이가 되려면 : 다달이 2만 원씩 돕거나, 해마다 20만 원씩 돕는다

 - 평생 지킴이가 되려면 ㄱ : 한꺼번에 200만 원을 돕거나, 더 크게 돕는다

 - 평생 지킴이가 되려면 ㄴ : 지킴이로 지내며 보탠 돈이 200만 원을 넘으면 된다

* 도서관 지킴이 되기 : 우체국 012625-02-025891 최종규 *

* 도서관 지킴이가 되신 분은 쪽글로 주소를 알려주셔요 (010.5341.71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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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의 실천
게리 스나이더 지음, 이상화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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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 삶읽기 226



학교에서 말을 가르치는 까닭은?

― 야생의 실천

 게리 스나이더 글

 이상화 옮김

 문학동네 펴냄, 2015.12.12.18. 13000원



  1990년에 미국에서 “The Practice of the Wild”라는 이름으로 나온 책을 한국말로 옮긴 《야생의 실천》(문학동네,2015)을 읽습니다. 이 책은 지난 2000년에 《야성의 삶》이라는 이름으로 한 번 나온 적 있습니다.


  ‘야성(野性)’이라는 한자말은 “자연 또는 본능 그대로의 거친 성질”을 뜻하고, ‘야생(野生)’이라는 한자말은 “산이나 들에서 저절로 나서 자람”을 뜻합니다. 새로운 번역으로 나온 책에 붙은 ‘야생’은 ‘야생마·야생화’처럼 쓰기도 하는데, 이는 한국말로 ‘들말·들꽃’을 가리켜요. 그러니까 야생이란 ‘들’을 나타내는 셈이고, 야성이란 들 같은 숨결을 나타내는 셈입니다.


  지난날에 함석헌 님은 ‘들사람’을 말한 적이 있어요. ‘들사람’이란 바로 ‘야생인’이라 할 테고, 이는 야성으로 살거나 야생인 삶이라 할 테지요.



‘자연’이라는 말 자체는 위협적인 말이 아니지만, ‘야생’의 개념은 문명사회에서는 유럽이나 아시아에서나 똑같이 종종 제멋대로임, 무질서, 푹력과 연결됩니다. (29쪽)


야생지의 문화들은 자급자족 경제가 가르쳐 주는 삶과 죽음의 교훈에 맞춰 삽니다. 그러나 지금 ‘야생적인’이라든지 ‘자연’이라는 말은 무엇을 의미할 수 있을까요? (32쪽)



  우리는 들에서 나고 들에서 죽는 사람일까요? 사람이 살아온 발자국을 가만히 돌아봅니다. 예부터 지구별 삶을 돌아보면 누구나 들에서 나고 들에서 죽었지 싶습니다. 들에서 난 목숨은 들에서 자라는 목숨(풀, 열매)을 먹어요. 들에서 자라던 목숨은 들로 돌아가서 새로운 흙이 됩니다. 몸뚱이는 들에서 돌고 돕니다. 몸뚱이는 들에서 새로 깨어나고 새로 살다가 새로운 들이 되어요. ‘논밭’이란 ‘들’을 가리키는 이름이기도 하고, 들판이나 들녘 같은 말은 우리 스스로 먼 옛날부터 누구나 들사람이었다는 대목을 넌지시 비추지 싶어요.


  그렇지만, 오늘날 지구 사회는 물질문명이 넘치면서 도시가 커집니다. 고작 서른 해나 쉰 해 앞서만 해도 거의 모든 사람들이 들에서 나고 자라다가 들로 돌아갔다면, 이제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들이 아닌 도시에서 나고 자라다가 도시에서 자취를 감추어요. 이제 오늘날 지구에서 거의 모든 사람들은 들을 볼 겨를이 없고 들길을 걸을 틈도 없으며 들내음을 맡을 말미조차 얻기 힘들어요.


  참말 오늘날 사회에서는 들바람을 쐬기가 어렵기에 어떻게든 틈을 내어 ‘올레 걷기’처럼 스스로 온몸을 맡기면서 숲이나 들을 걸으려고 하는구나 싶습니다. 이렇게 하지 않고서는 도시 사회나 문명 사회에서 버티기 어려울 테니까요.



학교에서 언어를 가르치는 목적은 우리를 얼마 안 되는 언어행동 영역의 울 안에 가두고 몇 가지 선호하는 특징들만을 양성하자는 것입니다. 직업을 구하거나 파티석상에서 사회적 신용을 주는 데나 도움이 될 문화적으로 한정된 엘리트 형식들인 것이지요. (51쪽)


걷는 일은 굉장한 모험이며 최초의 명상이며 인간에게는 으뜸가는 진심과 영혼의 실천입니다. (52쪽)



  《야생의 실천》을 쓴 게리 스나이더 님은 이 책을 빌어 ‘학교에서 말을 가르치는 까닭’을 찬찬히 짚습니다. 사람들이 스스로 삶을 지어서 살지 못하도록, 그러니까 사람들이 자급자족을 하지 못하도록 하면서, 도시에서 문명 사회로 스며들어 일자리를 찾거나 문화를 누리는 데에 얽매이도록 하려는 뜻으로 학교에서 말을 가르친다고 이야기해요.


  그러고 보면, 교과서에서 다루는 말이나 사회에서 쓰는 말은 ‘도시에서 지내기에 어울리는 말’입니다. 교과서를 비롯해서 수많은 인문책이나 신문이나 방송에서 흐르는 말도 ‘도시에서 문화를 누리기에 어울리는 말’이에요.


  참말로 교과서나 인문책에는 농사짓기하고 얽힌 말이 나오지 않아요. 고기잡이하고 얽힌 말도 나오지 않아요. 어머니가 아기를 낳아서 돌보는 살림하고 얽힌 말도 나오지 않습니다. 씨앗을 심고 가꾸는 시골말뿐 아니라, 집을 짓고 밥을 지으며 옷을 짓는 살림살이를 두루 아우르는 말도 나오지 않습니다. 풀이나 꽃이나 나무를 가리키는 말도 나오지 않고, 방아나 절구나 베틀이나 물레나 빨래나 낫이나 호미 같은 말도 교과서하고는 아주 동떨어진 말이거나 박물관에 갇힌 말이기 일쑤예요.



모든 전통 문화에는 춤이 있습니다. 춤을 공부하러 올 때 젊은이들은 그들의 비길 데 없는 영원한 아름다움과 힘을 함께 가져옵니다. (110쪽)


신성한 산과 그 산으로의 순례는 아시아에서는 깊이 자리잡은 민중종교의 특징입니다. (198쪽)



  ‘걷기’가 대단한 모힘이며 명상이고 실천이라고 밝히는 게리 스나이더 님은 지구별 모든 곳에서 오래도록 이어온 삶에서는 ‘춤’이라고 하는 기쁨이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이러면서 ‘거룩한 산’을 이야기해요.


  춤이란 무엇일까요? 방송에 나오는 연예인이 궁둥이만 흔드는 몸짓이 춤일까요? 산이란 어디일까요? 온갖 장비와 옷을 갖춘 뒤에 오르락내리락하는 데가 산일까요?


  어떤 틀이 있어서 그 틀에만 맞추어야 하는 춤이라고 느끼지 않아요. 아이들이 즐기는 춤을 보면 그야말로 몸 가는 대로 손이며 발이며 뻗고 활짝 웃어요. 남 눈치를 보면서 춤을 추는 아이는 없어요. 그야말로 신나고 즐겁게 춤을 춥니다.


  산이라고 하는 곳은 ‘산’일 뿐 아니라 ‘숲’입니다. 나무 한 그루 없는 데를 놓고 ‘거룩한 산’이라 하지 않아요. 나무가 우거지고 풀이 곱게 드리운 숲일 때에 비로소 산다운 산이에요. 숲짐승이 있고 숲바람이 부는 고즈넉하고 그윽하며 고요한 곳이 바로 아름다운 숲이면서 산입니다.



오늘날 지중해에서 사는 사람들은 그들의 잿빛 암산이 한때는 작은 숲과 야생동물이 풍부한 곳이었다는 것조차 모릅니다. 집중적인 파괴는 농업 유형의 한 기능이었습니다. (255쪽)


딸기는 누구를 위한 것일까요? 딸기는 새와 곰을 유혹해서 기꺼이 먹힙니다. 그것은 선물입니다만 또한 답례이기도 합니다. 열매의 씨앗이 그들에게 실려 멀리 갈 것이기 때문이지요. (315쪽)



  《야생의 실천》을 읽으면서 오늘 우리가 얻은 것과 잃은 것을 차분히 되새깁니다. 오늘 우리가 얻은 것이라면 컴퓨터와 인터넷과 스마트폰과 자가용과 고속도로과 텔레비전 같은 것일까요? 오늘 우리가 잃은 것이라면 자급자족과 두레와 품앗이와 마을과 사랑 같은 것일까요?


  오늘 우리는 돈을 벌고 쓰는 살림을 얻습니다. 오늘 우리는 마음을 가꾸고 사랑을 나누는 살림을 잃습니다. 오늘 우리는 학교를 다니면서 졸업장과 자격증을 얻습니다. 오늘 우리는 집에서 어버이가 사랑으로 가르치고 물려주는 살림을 잃습니다. 오늘 우리는 도시라고 하는 문명 사회를 얻습니다. 오늘 우리는 시골과 숲과 산과 들이라고 하는 터전과 보금자리를 잃습니다.



커다란 정신의 내부에 있는 것처럼 동물과 인간은 모두 말할 수 있지요. 그리고 이곳을 통과한 자는 남을 치유하고 도와줄 힘을 갖게 됩니다. (320쪽)


우리 문화가 불을 밝히는 것은 우리가 어떤 현실의 일을 함께하고, 혹은 놀고, 이야기를 들려주고, 문제를 일으킬 때, 또는 누군가가 아프거나 죽거나 태어날 때, 혹은 추수감사절 같은 모임에서입니다. (347쪽)



  나는 우리 집 두 아이하고 시골에서 살며 이 아이들을 학교나 유치원이나 학원 어느 곳에도 보내지 않습니다. 우리 집이 고운 보금자리가 되면서 즐거운 삶터가 되고 앞으로는 너른 숲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집에서 아이들이랑 함께 배우고 가르칩니다. 아이들이 졸업장을 따기보다는 말다운 말을 삶에서 배우기를 바라면서 이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지 않아요. 아이들이 문명인이나 사회인이 되기보다는 슬기로운 어른이 되고 씩씩한 사람으로 자라기를 바라면서 집에서 함께 배우고 가르칩니다.


  그러고 보면, 아이에 앞서 나부터 들사람이나 시골사람이나 숲사람으로 거듭나려는 꿈으로 사는 셈입니다. 나도 아이도 함께 웃고 노래하고 춤추고 이야기꽃을 피우면서 고운 들사람으로 거듭나고 예쁜 시골사람으로 다시 태어나며 슬기로운 숲사람으로 살림을 가꾸려는 꿈을 키웁니다.


  “야생의 실천”이란 “들을 살다”를 가리키지 싶습니다. 들내음을 맡고 들바람을 마시면서 들꽃을 마음밭에서 피울 수 있는 살림일 때에 “들을 살다”라 말할 수 있지 싶습니다. 손수 흙을 일구고 손수 씨앗을 심어서 손수 살림을 짓는 하루를 누릴 적에 바야흐로 “들을 살다”라 말하면서 가없는 기쁨으로 이웃하고 어깨동무를 할 수 있지 싶어요. 내 넋이 ‘들넋’이 되기를 빕니다. 내 손길이 ‘들결’ 같은 사랑이 되기를 빕니다. 내 몸짓이 ‘들춤’처럼 흐드러지기를 빕니다. 4349.1.15.쇠.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6 - 시골에서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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