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을 즐겁게 살리는 길을 놓고 짤막하게 쓴 글 네 가지입니다. 예전에 쓴 밑글을 거의 몽땅 고쳐서 새로 써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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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개아파트


  자전거를 타고 읍내 저잣마당을 다녀오던 날이었어요. 등에 진 가방에 먹을거리를 잔뜩 담은 뒤 자전거를 천천히 몰아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지요. 자전거 왼쪽으로 지나가는 자동차를 살피다가 문득 내 왼쪽에 우뚝 선 아파트를 보았는데, 이 아파트 이름이 ‘무지개’아파트이더군요. 그저 아파트에 붙은 흔한 이름 가운데 하나라고 여길 수 있지만, 영어로만 멋을 부린 아파트 이름이 떠올라서 새롭구나 하고 느꼈어요. 영어로만 멋을 부린 아파트 이름도 재미있는데, 한국말로도 아파트 이름을 곱거나 이쁘장하거나 사랑스러운 마음으로 알뜰살뜰 붙일 수 있어요. ‘실개천’아파트라든지 ‘솜구름’아파트라 이름을 붙일 수 있고, ‘사랑’아파트라든지 ‘꿈’아파트라 이름을 붙일 수 있어요. ‘숲마을’아파트나 ‘노래마을’아파트가 될 수 있고, ‘조약돌’아파트나 ‘봄제비’아파트가 될 수 있지요. ‘달빛마을’이나 ‘선돌마을’이나 ‘새싹마을’이 될 수 있고, ‘푸른마을’이나 ‘하얀나라’나 ‘새빛누리’가 될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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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빔, 설빔, 잔치빔


  ‘한겨레’는 “한 + 겨레”입니다. 한겨레가 쓰는 글은 “한 + 글”인 ‘한글’이기에, 옛날부터 쓰던 말은 “한 + 말”인 ‘한말’이라 할 만해요. 이런 얼거리를 생각한다면, 우리가 사는 나라는 “한 + 나라”인 ‘한나라’이고, 이밖에 ‘한춤’이나 ‘한노래’ 같은 말을 지을 수 있어요. 한겨레가 입는 옷은 ‘한옷’이라 할 수 있고요. 옷 가운데 새로 마련하는 옷은 따로 ‘빔’이라고 해요. 설에 새로 마련하는 옷이라면 ‘설빔’이 되고, 한가위에 새로 마련하는 옷이라면 ‘한가위빔’이 되지요. 생일에 새로 마련하는 옷이라면 ‘생일빔’이고, 잔칫날에 새로 마련하는 옷이라면 ‘잔치빔’이에요. 새로 장만하는 옷에 꽃무늬가 곱게 깃들면 ‘꽃빔’입니다. 새로 장만한 꽃빔을 두고두고 입어서 더는 새 옷이 아니라면 그냥 ‘꽃옷’이라 하겠지요. 여러 빛깔로 무늬를 넣은 옷을 ‘색동옷’이라 하는데, 이러한 옷은 ‘무지개옷’이라 할 수 있어요. 위아래가 한 벌인 옷이라면 ‘한벌옷’이고, 위아래를 둘로 나눈 옷이라면 ‘두벌옷’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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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 더


  밥을 한 그릇 먹고 나서 한 그릇을 더 먹고 싶으면 “한 그릇 더 주세요” 하고 말합니다. 한 그릇을 먹은 뒤 두 그릇을 더 먹을 수 있다 싶으면 “두 그릇 더 주세요” 하고 말하지요. 물을 한 잔 마시고서 목마름이 가시지 않으면 “한 잔 더” 바라기 마련이에요. 책을 한 권 읽고 나서 더 읽고 싶을 적에는 “한 권 더” 읽고 싶습니다. 노래를 한 가락 듣는데, 노래를 부르는 사람이 몹시 아름답거나 멋있거나 훌륭하거나 그윽하거나 즐겁게 불렀으면 “한 가락 더” 불러 주기를 바랄 수 있어요. 이때에 우리는 ‘앙코르’나 ‘앙콜(앵콜)’ 같은 프랑스말로 외치기도 하지만 “한 번 더” 같은 말로 외치기도 해요. 때로는 “두 번 더”를 외치지요. 한 번 더 부르는 노래로는 어쩐지 아쉽다고 느끼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세 번 더”나 “네 번 더”를 외칠 수 있어요. 노래를 부르는 사람은 손뼉물결을 뜨겁게 받으면 한 번 더이든 두 번 더이든 세 번 더이든 그야말로 목청이 터져라 하고 신나게 노래를 불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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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녀별


  별 일곱이 꼭 국자처럼 생겼구나 싶은 별을 가리켜 ‘국자별’이라고도 하고 ‘바가지별’이라고도 하며 ‘주걱별’이라고도 해요. 사람마다 다 다르게 바라보면서 재미난 이름이 붙어요. ‘국자별·주걱별·바가지별’이라 하는 별에는 ‘북두칠성’이라는 이름도 있어요. 꼬리를 길게 늘어뜨리듯이 흐르는 별은 ‘꼬리별’이나 ‘꽁지별’이라 하고, ‘살별’이라고도 해요. 이 별에는 ‘혜성’이라는 이름도 붙어요. 밤하늘을 올려다볼 적에 꼬리가 늘어지는듯이 흐르면서 반짝 빛나다가 곧 사라지는 별은 ‘별똥’이나 ‘별똥별’이라 해요. 이 별에는 ‘유성’이라는 이름도 붙어요. 음력으로 쳐서 팔월 십오일에는 견우랑 직녀가 만난다는 옛이야기가 있지요. 이때에 밤하늘을 올려다보면 두 가지 별이 아주 가까이 맞닿는다고 해요. 자, 어느 별이 이때에 가까이 맞닿듯이 보일까요? 바로 ‘견우별’이랑 ‘직녀별’일 테지요. 수많은 별이 가득한 밤이기에 별밤이면서 ‘별잔치’예요. 마치 ‘별비’가 쏟아지듯이 별똥이 잔뜩 흐르는 날이 있고, 별이 냇물처럼 이어진 미리내가 짙게 보이는 날이 있어요.


(최종규/숲노래 . 2016 - 우리 말 살려쓰기/말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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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을 사랑하는 넋으로 새롭게 가꾸는 길을 돌아보면서, 예전에 쓴 글을 뜯어고쳐서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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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모임


  반가운 사람은 날마다 만나도 반갑습니다. 즐거운 사람은 날마다 만나도 즐겁습니다. 어여쁜 사람은 날마다 만나며 어여쁘고, 아름다운 사람은 날마다 만나면서 새롭게 아름답구나 하고 느낍니다. 좋구나 하고 여기는 사람이라면 날마다 만날 적에 좋구나 하는 느낌이 새삼스레 일어나겠지요. 서로서로 만납니다. 어깨동무를 하면서 살갑게 사귑니다. 오순도순 이야기꽃을 피웁니다. 즐겁게 노래하기도 하고 신나게 춤을 추기도 해요. 그런데 저마다 여러 가지 일이 바쁠 수 있고, 사는 자리가 좀 멀리 떨어졌다면, 날마다 보고 싶어도 날마다 못 볼 수 있어요. 이레에 한 차례 만난다든지, 열흘에 얼굴을 한 번 본다든지, 보름에 한 차례 만난다든지, 한 달에 한 차례 만난다거나, 달포나 철마다 겨우 한 번 만날 수 있어요. 날마다 만나면 ‘날마다모임’이 되거나 ‘날모임’이 됩니다. 이레마다 만나면 ‘이레모임’이 되겠지요. 보름마다 만나면 ‘보름모임’이거나 ‘열닷새모임’이요, 달마다 만나면 ‘달모임’입니다. 한 해에 한 차례 만나는 ‘해모임’도 있으리라 생각해요. 반가운 이라면 날마다 보든 달마다 보든 해마다 보든, 때로는 열 해나 스무 해만에 보든, 환한 웃음을 북돋우며 밤늦도록 이야기잔치를 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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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하늘


  밤에 다니는 버스를 타 보았나요? 도시에서 깊은 밤에 달리는 버스라면 찬찬히 잠들면서도 밤새 불빛이 밝은 숨결을 느낄 수 있습니다. 시골에서 깊은 밤에 달리는 버스라면 그야말로 깜깜한 밤빛을 느낄 수 있어요. 밤에 다니는 버스이기에 ‘밤버스’가 되면, 밤에 다니는 기차는 ‘밤기차’예요. 밤에 다니는 배일 때에는 ‘밤배’가 될 테고, 밤버스랑 밤기차를 아울러 ‘밤차’라고도 해요. 어느 날에는 밤길을 고즈넉히 걸을 수 있어요. 어머니하고 아버지가 ‘밤마실’이나 ‘밤나들이’를 하자면서 밤길을 걷는 날이 있겠지요. 밤길은 낮길하고 달라 모두 새롭거나 낯설게 보일 수 있어요. 무엇보다도 밤마실을 하는 동안 밤하늘을 새삼스레 올려다볼 만하지요. 낮에는 새파랗게 환한 하늘에 새하얗게 맑은 구름이 흐르는 낮하늘이고, 밤에는 초롱초롱 곱게 빛나는 별빛이 가득한 밤하늘이에요. 별은 밤에 뜨는데 때로는 낮에도 볼 수 있어서 ‘낮별’이라는 이름이 있고, 낮에 보는 달한테도 ‘낮달’이라는 이름이 있어요. 그러면 별이랑 달도 ‘밤별’하고 ‘밤달’이라는 이름을 붙여 볼 만하겠지요. 밤별을 보며 숨바꼭질이나 술래잡기를 해 보면 ‘밤놀이’도 무척 재미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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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흘거리


  요즈음 겨울은 한번 추위가 찾아온다 싶으면 보름이고 한 달이고 그치지 않기 일쑤예요. 이러다가도 포근한 날씨가 찾아온다 싶으면 보름이고 한 달이고 이어지기 일쑤이지요. 지구별 날씨가 무척 크게 바뀐 탓이라 할 텐데요, 예전에는 이 나라 날씨가 이와 같지 않았어요. 예전에는 보름이고 한 달이고 똑같은 추위나 포근함이 잇따르는 날씨가 아니라, 사흘 추우면 나흘 포근한 날씨였어요. 추위보다 포근한 날씨가 살짝 긴 겨울이었다고 할까요. 이처럼 사흘 춥다가 나흘 포근한 날씨일 적에는 ‘사흘거리’나 ‘나흘거리’라는 말을 써요. 사나흘에 한 번씩 어떤 날씨가 되기에 ‘-거리’를 붙이거든요. 닷새마다 어떤 일이 되풀이된다면 이때에는 ‘닷새거리’라 할 만하고, 엿새나 이레마다 어떤 일을 되풀이한다면 이때에는 ‘엿새거리’나 ‘이레거리’라 할 만해요. 그러면 ‘하루거리’나 ‘이틀거리’도 있을 테지요. ‘한달거리(달거리)’라든지 ‘두달거리’도 있고, ‘철거리(석달거리)’라든지 ‘한해거리(해거리)’도 있을 테고요. 그러고 보니 추위나 포근함이 한 달씩 간다면 ‘한달거리 추위’나 ‘한달거리 포근’이라 할 수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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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한국말은 ‘사람’입니다. 영어로는 ‘휴먼(human)’이라 적고, 한자로는 ‘인간(人間)’이라 적습니다. 나라마다 쓰는 말이 같다면 모두 같은 말을 쓸 테지만, 나라마다 쓰는 말이 달라서 모두 다른 말을 씁니다. 영어를 쓰는 나라에서는 영어로 말밑이 있어 ‘휴먼’을 즐겁게 쓰고, 한자를 쓰는 나라에서는 한자로 말뿌리가 있어 ‘인간’을 즐겁게 씁니다. 한국에서는 한국대로 말넋이 있어 ‘사람’을 즐겁게 써요. ‘사람’은 ‘살다’라는 낱말에서 나왔고, ‘살다’는 바로 오늘 이곳에서 눈을 뜨고 숨을 쉬면서 생각을 하고 마음을 기울여서 사랑으로 하루를 일구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그러면, 사람은 어디에서 살기에 사람일까요? 바로 이 땅에 발을 디디면서 삽니다. 이 땅은 거칠거나 메마른 땅이 아니라 풀과 나무로 우거지면서 꽃이 피고 열매가 맺는 숲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사람’은 들숨(들녘 목숨)이면서 숲넋(숲자락 넋)인 셈입니다. 그리고, 사람은 두 씨앗이 만나서 새로운 한 씨앗으로 태어나고, 가슴에 사랑이라는 마음씨앗을 품습니다. 사람이 혼자 살 수 없다고 할 적에는 ‘이웃과 기대야’ 하기 때문이라기보다는 들과 숲이 있어야 한다는 뜻이고, 바람과 흙이 함께 있어야 한다는 뜻이라고 느낍니다. 생각으로 꿈을 짓고, 이 꿈이 이 땅에 고요히 나타날 적에 비로소 사람으로서 산다는 뜻이지 싶어요.


(최종규/숲노래 . 2016 - 우리 말 살려쓰기/말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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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미소와 작은 유산들 - 김지연 사진집
김지연 사진 / 눈빛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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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책 <빈 방에 서다>는 서울과 대구에 있는 작은 마을책방에서만 만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정미소와 작은 유산들>이라는 책에 이 느낌글(사진비평)을 붙입니다. <빈 방에 서다>뿐 아니라 <정미소와 작은 유산들>도 널리 사랑받을 수 있기를 빌어요.


서울 : 책방 치읓(ㅊ) + 테이크아웃드로잉, 유어마인드, 더북소사이어티, 스토리지북앤필름, 비엥북스, 땡스북스
대구 : 더폴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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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으로 삭힌 사진책 103



‘보금자리’하고 ‘낡고 빈 집’ 사이

― 빈 방에 서다

 김지연 사진

 사월의눈 펴냄, 2015.10.16. 29000원



  제가 큰아이를 낳은 곳은 인천이고, 이무렵 우리 식구가 살던 집은 4층 건물 옥탑이었는데, 1955년에 지었다고 했습니다. 이 4층 건물은 아직 그곳에 그대로 있습니다. 용케 안 헐렸다고 할 수 있지만, 제법 튼튼하게 지었으니 버티는구나 싶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집은 기찻길하고 맞닿은 터라, 인천하고 서울 사이를 오가는 전철이 지나갈 때면 덜덜 떨려요. 전철이 서너 대(여느 전철과 빠른 전철)가 겹쳐서 지나갈 때면 떨림과 소리가 대단했습니다.


  오늘 우리 식구가 사는 집은 전남 고흥 시골에 있습니다. 이 집은 언제 지었는 지 알 길이 없습니다. 다른 시골집도 이와 비슷한데, 시골에서는 집을 짓고도 면내나 읍내에 신고를 안 하기 일쑤라 건축대장에 없습니다. 전기를 쓸 적에는 한국전력에 신고해야 하기에 전기를 처음 쓴 때는 알 수 있으니, 우리 식구가 사는 이 시골집은 1986년 7월부터 전기를 썼다고 나와요. 마을 어르신들 말씀을 들으면 이 집에서 살았다는 분이 여럿 계십니다. 모르기는 몰라도 꽤 오래된 집이로구나 싶습니다.



사람이 모두 떠나버리고 없는 빈집, 빈방에 발을 들여놓을 때마다 흡사 관에 들어가는 것 같은 서늘함을 느껴야 했다. (작가 이야기)



  “낡은 방”하고 “빈 방에 서다”가 어우러진 사진책 《빈 방에 서다》(사월의눈,2015)를 읽으면서 집이란 무엇인가 하고 곰곰이 헤아립니다. 이 사진책을 선보인 김지연 님은 전북 전주에서 서학동사진관을 꾸립니다. 《빈 방에 서다》에 나오는 ‘집’은 두 가지로, 하나는 그저 낡고 작은 방이 있는 집이고, 다른 하나는 이제 더는 사람이 살지 않는 집입니다.


  아직 멀쩡하거나 깨끗해도 사람이 살지 않는 집은 차츰 스러집니다. 빈집이 되면 이 집에는 따스한 기운이 사라지는 터라, 아무도 없으나 천장이 주저앉고 비도 새기 마련입니다. 빈집을 따로 돌보는 사람도 없고, 빈집에 불을 때는 사람도 없으니, 이 빈집은 쓸쓸하게 남다가 어느새 흙으로 돌아갑니다. 시골에서는 집을 흙이랑 나무랑 돌로 지으니 조용히 흙으로 돌아가지요.


  도시에서는 아직 멀쩡하거나 깨끗한 집이어도 재개발을 한다면서 허뭅니다. 더 오래 살고 싶어도, 따스한 보금자리로 여기면서 알뜰살뜰 아끼고 싶어도, 이러한 집이요 보금자리요 삶터를 하루 아침에 빼앗기기 일쑤입니다. 도시에서는 돈을 앞에 내세우면 그 어느 것도 이 돈을 이기거나 견디지 못해요. 재개발을 하면 돈이 떨어진다 하고, 재개발을 해야 돈이 된다 하며, 재개발을 하기에 돈을 잘 번다고 하지요.



어느 날 산꼭대기 빈집에 들어섰다. 들어서는 현관에 빈 소주병이 뒹굴고 있었다. (작가 이야기)






  사진책 《빈 방에 서다》는 낡거나 빈 집에 선 사진가 눈길을 고스란히 보여줍니다. 낡거나 빈 집은 참말 말 그대로 ‘낡’거나 ‘빈’ 집입니다. 그러나, 낡은 집이든 빈 집이든, 오랫동안 사람 살던 곳이요, 사람 살던 자국이 흐르는 곳이요, 사람 살던 이야기가 머물던 곳입니다.


  어린이가 그린 그림이 한쪽 벽에 있습니다. 달력과 사진이 한쪽 벽에 있습니다. 때로는 편지가 벽에 붙고, 때로는 무언가를 적은 쪽종이가 벽에 붙어요. 빈틈이 하나도 없이 벽종이를 바른 낡은 방이 있고, 오랜 나날 묵은 때가 깃든 방이 있습니다. 발신자번호 따위는 뜨지 않는 낡은 전화기가 방 한켠에 얌전히 있습니다.


  그러고 보면, 사진책 《빈 방에 서다》에 나오는 집은 문을 살그마니 열면 들이나 숲이 보이는 자리에 있구나 싶습니다. 방에서 문만 빼꼼 열어도 바람이 훅 불지요. 여름에는 더운 바람이 불고, 겨울에는 차가운 바람이 불어요. 여름에는 빗물 묻은 바람이 불고, 겨울에는 눈송이 날리는 바람이 불어요.


  텃밭에 심은 남새에서 풀내음이 흐릅니다. 마당에 선 나무에서 잎내음이 흐르다가, 바람 따라 춤을 추는 잎노래가 흐릅니다. 젊은 날 낳아서 돌본 딸아들은 훌쩍 자라서 도시로 떠났습니다. 도시로 떠난 딸아들은 설이나 한가위가 아니면 고개를 내밀지 않습니다. 한 해 거의 모두 조그맣고 조용한 집에서 늙은 할매와 할배가 온 하루를 보냅니다. 방에 홀로 있기보다는 밭에라도 가고, 아니 방에 홀로 있지 않고 밭으로 가며, 옷을 정갈히 차려입고 읍내 저잣거리로 마실을 갑니다.



어제 사진 찍고 간 빈집이 오늘 헐리는 것을 보는 일은 충격이었다. 건물을 제거하는 것은 사람의 기억과 인격을 소멸시키는 것이다. (작가 이야기)



  예부터 집을 지을 적에는 먼저 숲을 가꾸었습니다. 예부터 어느 집이건 나무를 기둥으로 삼기 때문입니다. 우람하게 잘 자라서 튼튼한 줄기가 멋스러운 나무가 있어야 기둥으로 삼아서 집을 지어요.


  이백 해를 자란 나무를 베어 집을 지으면, 이 집은 이백 해를 간다고 합니다. 사백 해를 자란 나무를 베어 집을 지으면, 이 집은 사백 해를 간다고 합니다. 그리고, 천 해를 자란 나무를 베어 집을 지으면, 천 해도 가고 다시 천 해를 더 갈 수 있다고도 해요.


  오늘은 그저 ‘낡은 집’이거나 ‘빈 집’으로 보일는지 모르나, 이 모든 낡거나 빈 집은 하루 아침에 지은 집이 아닙니다. 적어도 이백 해는 자란 나무를 베어서 지은 집입니다. 못해도 백 해는 더 자란 나무를 베어서 지은 집이요, 웬만하면 삼백 해나 사백 해는 너끈히 자라던 나무를 베어서 지은 집이에요.


  삼백 해를 자라던 나무를 베어서 지은 집이라면, 이 집은 삼백 해 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이고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울 만한 집이라는 뜻입니다. 비록 오늘은 낡은 집이 되어 헐리더라도, 비록 오늘은 빈 집이 되어 조용히 스러지더라도, 비록 오늘은 아무도 안 찾는 외딴 집 쓸쓸한 자리가 되더라도, 이 집에 깃든 노래와 숨결과 웃음과 눈물과 이야기는 애틋하면서 사랑스럽습니다. 이리하여, 사진책 《빈 방에 서다》를 선보인 김지연 님은 바로 이 애틋하면서 사랑스러운 눈길로 마음을 달래면서 한 장 두 장 사진을 찍고, 책으로 꾸려서, 우리한테 다소곳하게 내밉니다.



어느 초여름, 그 빈집 앞에는 유채꽃과 황매화가 만발하고 있었다. (작가 이야기)








  하루 아침(은 아니고 한두 해)에 우지끈 뚝딱 시멘트로 때려집은 집이라고 해서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시멘트로 이루어진 아파트숲이 ‘좋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어느 곳이든 모두 집이요 보금자리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다만, 시골집이든 도시 아파트이든, 사랑이 흐르고 이야기가 흐를 때에 집이 되고 보금자리가 되리라 느낍니다.


  천 해 된 나무를 베어서 지은 시골집이어도 사랑이 흐르지 않으면 ‘집’이라는 이름을 붙이기 멋쩍습니다. 오백 해가 된 나무를 베어서 지은 멋스러운 기와집이어도 이야기가 노래처럼 흐르지 않으면 ‘보금자리’라는 이름을 붙이기 어려워요.


  도시에서도 시골에서도 집살림을 곱게 건사하면서 알뜰살뜰 사랑스러운 손길로 돌보는 사람들은 이곳을 아름다운 보금자리로 거듭나도록 북돋웁니다. 오늘은 비고 만 집이어도 유채꽃이 피고 냉이꽃이 핍니다. 어제도 비고 오늘뿐 아니라 모레도 비고 말 집이어도 민들레꽃이 피고 쑥꽃이 핍니다.


  텅텅 비어 사람 그림자가 안 보이는 집이기에 ‘낡거나 빈 집’이라 할 수 있습니다만, 사람 발자국이 없을 뿐, 이곳은 ‘꽃집’이라 할 수 있습니다. 철마다 새로운 꽃이 흐드러지니 꽃집이에요. 마당에 감나무가 있으면 감나무집이라 할 수 있고, 마당에 배나무가 있으면 배나무집이라 할 수 있어요. 바다를 내다보는 ‘바닷집’이라든지, 멧골에 깃든 ‘멧집’이 될 수 있습니다.


  빈 방 앞에 선, 또 낡은 방 앞에 선 김지연 님은 무엇을 보았을까 하고 돌아봅니다. 빈 곳과 낡은 곳 앞에 선 김지연 님은 어떤 마음으로 이곳을 둘러보면서 사진 한 장 찍었을까 하고 되새깁니다. 오늘 언뜻 보기에 낡았기에 빨리 허물어서 번듯한 시멘트집이나 아파트로 바꾸어야 하지 않습니다. 여러 해에 걸쳐 보아하니 텅 빈 집이기에 얼른 치우거나 밀어내야 하지 않습니다.


  오늘 이곳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새롭게 살도록 할 집이요 보금자리입니다. 집을 짓는 마음은 삶을 사랑하는 마음일 때에 아름답고, 보금자리를 가꾸는 마음은 사람을 사랑하는 숨결일 때에 싱그럽습니다.


  아이들은 어버이한테서 집살림을 물려받습니다. 앞으로 새로운 어른으로 자랄 아이들은 이 집을 물려받아 한결 이쁘장한 보금자리로 가꿀 수 있고, 다른 터에 새로운 집을 지어 그야말로 새로운 보금자리를 이룰 수 있습니다.


  집자리가 보금자리인 까닭은, 집을 지어서 살림을 이룰 적에 사랑을 꽃피우려는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곧, 집자리는 보금자리이면서 사랑자리요, 이야기자리이고, 노래자리이자 꿈자리입니다. 웃음자리이고, 꽃이 피는 자리이며, 삶이 기쁘게 흐르는 자리, 바로 삶자리입니다. 사진은 언제나 삶자리에서 태어나고, 사랑자리에서 자랍니다. 사진책 한 권은 이 삶자리에서 사랑을 가꾸며 웃음과 꿈을 노래하는 사람들이 어깨동무를 하면서 빚습니다. 4348.11.15.해.ㅅㄴㄹ


(글에 붙인 사진은 사진가 김지연 님한테서 고맙게 받았습니다.)

(최종규/숲노래 . 2016 - 사진책 읽는 즐거움/사진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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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들보라는 흙 파면서 놀지



  산들보라는 흙 파면서 놀지. 흙 파는 놀이가 재미있으니까. 흙 파는 놀이가 재미있어서 추위도 잊으니까. 흙 파는 놀이에 옴팡 빠져들어서 해가 꼴깍 넘어가는 줄도 잊으니까. 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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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말 21 (사진책도서관 2016.1.12.)

 ― 전라남도 고흥군 도화면 동백마을, ‘사진책도서관 숲노래’



  도서관 소식지 〈삶말〉 21호를 그렸다. 도서관 이야기책을 꾸밀 만한 살림이 못 되기도 했지만, 도서관 어귀 유리문에 그림을 새로 붙이고 싶어서 〈삶말〉 21호를 손으로 그렸다. 집에 있는 책을 도서관으로 옮겨서 제자리를 찾아 꽂는 동안 큰아이는 만화책을 본다. 이동안 작은아이는 작대기 하나를 주워서 꽁꽁 언 흙을 콕콕 찍으면서 논다. 커다란 돌도 들어서 옮기는 놀이도 한다. 곰곰이 돌아보면 큰아이가 작은아이만 하던 나이에도 으레 이처럼 놀았다. 아이들한테는 작대기랑 흙이랑 돌은 더없이 재미난 놀잇감이자 장난감 구실을 한다.


  겨울바람이 차갑지만 맨손으로 종이책을 손에 만지면서 도서관 책꽂이를 갈무리한다. 큰아이는 맨손으로 책을 읽고, 작은아이도 맨손으로 흙을 만진다. 작은아이는 손이 빨갛게 되어도 논다. 손이 더 차갑지 않도록 도서관에 오래 머물지 않는다. 이 겨울바람은 겨울이 겨울답도록 찾아온 바람일 테지. 겨울이기에 부는 이 바람은 오직 겨울에만 마주할 수 있고, 이 바람이 잦아들 즈음에는 새롭게 따사로운 봄바람이 찾아들 테지. 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6)









* 도서관 나들이 오시려면 먼저 전화하고 찾아와 주셔요 *

* 사진책도서관(서재도서관)을 씩씩하게 잇도록 사랑스러운 손길을 보태 주셔요 *

☞ 어떻게 지킴이가 되는가 : 1평 지킴이나 평생 지킴이 되기

 - 1평 지킴이가 되려면 : 다달이 1만 원씩 돕거나, 해마다 10만 원씩 돕는다

 - 2평 지킴이가 되려면 : 다달이 2만 원씩 돕거나, 해마다 20만 원씩 돕는다

 - 평생 지킴이가 되려면 ㄱ : 한꺼번에 200만 원을 돕거나, 더 크게 돕는다

 - 평생 지킴이가 되려면 ㄴ : 지킴이로 지내며 보탠 돈이 200만 원을 넘으면 된다

* 도서관 지킴이 되기 : 우체국 012625-02-025891 최종규 *

* 도서관 지킴이가 되신 분은 쪽글로 주소를 알려주셔요 (010.5341.71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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