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아이 328. 2016.1.20. 딸기랑 책이랑



  딸기를 한 소쿠리 얻었다. 이 겨울에 딸기를 선물해 주는 이웃님은 얼마나 달콤하면서 싱그러운 마음일까. 작은아이는 쉬지 않고 딸기를 노래한다. 나는 너희한테 밥을 먼저 차려 주고 나서 딸기를 주고 싶다면서 달랜다. 밥을 씩씩하게 다 먹은 뒤에야 비로소 딸기를 흐르는 물에 씻어서 꽃접시에 담아 내민다. 두 아이는 배움책상에 꽃접시를 올려놓고 그림책을 펼치면서 딸기맛을 기쁘게 누린다. 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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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노래 106. 가을꽃하고 놀던 하루



  가을꽃하고 놀던 하루를 기쁘게 아로새기려고 사진을 한 장 남깁니다. 다만, 사진으로 찍지 않았어도 이날 하루는 내 마음속에 깊이 남습니다. 사진 한 장을 굳이 찍어 놓기에 이날 어떠한 숨결과 노래와 사랑이 흘렀는가 하는 대목을 두고두고 돌아볼 수 있습니다만, 참말 사진이 아니어도 가을이 새로 찾아오면 마음에 아로새긴 이야기를 새삼스레 꺼낼 수 있어요. 사진이 있으면 눈앞에서 척척 꺼내어 바라보고, 사진이 없으면 마음에 아로새긴 그림을 가만히 떠올리면서 이야기꽃을 피웁니다. 우리가 놀고 웃고 얼크러지는 하루는 늘 마음자리에 새롭게 깃듭니다. 4349.1.23.흙.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6 - 사진말/사진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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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뼈들 삶창시선 42
김수상 지음 / 삶창(삶이보이는창)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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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말하는 시 111



시와 말뼈

― 사랑의 뼈들

 김수상 글

 삶창 펴냄, 2015.3.25. 8000원



  한국말사전에서 ‘말뼈’라는 낱말을 찾아보면 “성질이 고분고분하지 못하고 거세어 뻣뻣한 사람을 놀림조로 이르는 말”이라고 나옵니다. 다만, ‘말뼈다귀’라는 낱말은 올림말로 나오지 않아요. 문득 궁금해서 일본말사전까지 찾아보니, 일본말 가운데 ‘うまのほね(馬の骨)’가 있고, 이 낱말을 “말뼈다귀, 내력을 잘 모르는 시시한 자”로 풀이합니다. 일본말사전에 실린 보기글에는 “どこの馬うまの骨ほねだかわからない”가 있고, 이 글월을 “어디서 굴러먹던 말뼈다귄지 모르겠다”로 풀이해 놓습니다. 모르는 노릇이지만, 오늘날 우리가 흔히 쓰는 ‘말뼈다귀’는 일본말에서 슬그머니 넘어온 말투가 아닐까 싶습니다. 어쩌면 일제강점기에 살그마니 건너온 말투일 수 있겠지요.



인생 한 방이면 돼, 홍콩 느와르 같은 대사를 몇 번이나 혼자서 씨부리는 저 여자, 한쪽 무릎 세우니 흘러내린 치마 밑엔 허연 허벅지 (폐경)


징을 만드는 장인을 만났다 / 손톱엔 쇳물 때가 새까맸다 / 이가리를 만들고 사개질을 하고 / 한밤엔 담금질을 했다 (풋울음)



  김수상 님이 선보인 시집 《사랑의 뼈들》(삶창,2015)을 읽으면서 문득 ‘말뼈’라는 낱말이 떠오릅니다. 사랑이라고 하는 ‘뼈’를 생각하면서 말로 집을 짓는 이야기가 흐르는 시집이기에 저절로 ‘뼈 + 말’이 떠오르고, ‘뼈가 되는 말’이나 ‘말이 되는 뼈’가 떠올라요. 단단한 얼음판을 지치면서 놀듯이 시를 쓰지는 못하고, 아슬아슬하다 싶은 살얼음판을 살금살금 걷듯이 시를 쓴다고 하는 김수상 님인데, 살얼음판을 걷는 말이란, 말뼈란, 뼛속으로 스미는 말이란 무엇일까 하고 헤아려 봅니다.



지하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계단을 올라오는데 비누 냄새가 났다 얼마 전 새로 단장한 놀이터에 아이와 엄마가 비눗방울 놀이를 한다 크고 작은 방울들이 공중에 떠다녔다 까르르까르르, 했다 (얇은 막)


막내놈 가방을 모조리 비우니 코발트색 튜브물감 하나가 찌그러져 책이며 공책이며 가방에 푸른 떡칠을 해놓았다 게임할 시간은 있고 가방 정리할 시간은 없냐고 등교하는 아침에 눈물이 쏙 빠지도록 혼을 냈다 보내놓고 젖은 걸레로 책이며 공책을 닦는데 (구름의 문장)



  어떤 말이 내 몸을 이루는 뼈로 단단하게 굳었을까 하고 돌아봅니다. ‘말에 뼈가 있다’는 말처럼, 이웃한테 들려주는 말에 어떤 마음을 싣는 삶인가 하고 돌아봅니다. 시인 김수상 님이 들려주는 이야기(말)에는 어떤 뼈가 깃들어 이 사회와 나라와 삶을 돌아보도록 북돋우는가 하고 돌아봅니다.


  단단한 뼈처럼 단단한 말이 있습니다. 무른 뼈처럼 무른 말이 있어요. 뼈다귀 같은 말이라고 해서 꼭 단단하기만 하지 않습니다. 단단한 뼈가 있으면 무른 뼈가 있고, 억센 뼈가 있으면 말랑말랑한 뼈가 있어요. 단단한 뼈가 있어서 살점을 받친다면, 물렁한 뼈가 있어서 뼈랑 뼈가 이어져서 몸을 움직일 수 있어요.


  그러니까 삶이란 ‘단단뼈’하고 ‘물렁뼈’가 맞물리는 이야기꾸러미라고 할 만합니다. 어느 때에는 단단하지만 어느 때에는 물렁하기도 하는 삶이라 할 만하고, 이러한 삶을 어느 때에는 다부지거나 야무진 말마디로 그릴 수 있지만, 어느 때에는 말랑말랑 물컹물컹 부드러이 그릴 수 있어요. 누군가는 그야말로 씩씩하고 힘차게 한길을 걷고, 누군가는 그야말로 흔들흔들 비틀거리면서 이 길 저 길 들쑤시면서 걸어요.



냉장고가 운다 내일이 입춘이라는데 한밤에 혼자 깨어 냉장고가 울고 있다 반쯤 남은 소주병이 울고 젖은 시래기가 울고 아버지가 먹다 남기고 간 간처녑도 벌겋게 울고 있다 (생활의 발견)



  삶이 여기에 있고, 시가 여기에 있습니다. 말뼈 같은 시가 있고, 소뼈나 닭뼈 같은 시가 있습니다. 양뼈나 개뼈 같은 시가 있고, 참새뼈나 박새뼈 같은 시가 있어요. 커다란 짐승을 받치던 뼈 같은 시여야 더 크지 않습니다. 자그마한 새가 하늘을 가볍게 날도록 받치던 뼈 같은 시이기에 하염없이 작지 않습니다.


  사회를 비평할 적에도 시가 되고, 삶을 바라볼 적에도 시가 됩니다. 사회와 부딪힐 적에도 시가 태어나고, 살림을 가꿀 적에도 시가 태어나요. 그러니까, 《사랑의 뼈들》을 쓴 김수상 님이 이녁 막내아이를 꾸짖는 하루를 보내면서도 문득 이녁 모습을 되새기며 시가 태어나고, 파란 물감으로 젖은 가방을 조용히 닦으며 시가 새롭게 흐릅니다.


  냉장고를 열다가 시가 태어나지요. 냉장고를 다시 닫으면서 시가 태어나요. 쌀을 씻거나 밥을 지으면서 시가 태어나고, 설거지를 하거나 그릇을 떨어뜨려 깨면서 시가 태어나요. 언제 어디에서나 삶이 흐르기에, 이 삶을 고스란히 바라보고 고이 껴안을 수 있다면 우리는 누구나 시인이 되어 기쁨과 슬픔을 골고루 노래할 수 있습니다.



척추도 지느러미도 없이 지식만 빨다가 얼마 전에 죽은 내 친구 시간강사는 죽어서도 대가리에 먹물만 잔뜩 넣고 응급실 시트에 널브러져 있었다 먹물 제대로 한 번 쏘지도 못하고 (어느 쭈꾸미의 죽음)



  쭈꾸미는 죽어서 바다로 돌아가기도 하고, 쭈꾸미는 죽지 않고 산 채로 잡혀서 사람들한테 먹히기도 합니다. 쭈꾸미가 죽은 바다에서 사람들은 헤엄도 치고 낚시도 하며 여행도 해요. 쭈꾸미를 먹은 사람은 쭈꾸미 숨결을 온몸으로 받아들여서 새롭게 기운을 내요.


  시집 《사랑의 뼈들》에 흐르는 사랑이란 뼈란 노래란 삶이란 꿈이란 말이란 머나먼 별나라에 있지 않습니다. 언제나 김수상 님 삶자리에 있습니다. 김수상 님이 바라보는 대로 삶이 흐르면서 시가 흐릅니다. 김수상 님이 스스로 새롭게 가꾸려 하는 삶처럼 시가 한 줄 두 줄 흐릅니다.


  나는 두 아이를 밤에 살뜰히 재우면서 이마를 쓸어넘기고 볼에 뽀뽀를 하고 이불깃을 여미고 자장노래를 부르고 가슴을 살며시 토닥이고는 시집을 조용히 펼칩니다. 등불을 켤 수 없어서 촛불을 켜고 시집을 고요히 읽습니다. 고단하면서도 즐겁게 누린 하루를 마무리하기 앞서 두 아이하고 누린 살림 이야기를 짤막하게 수첩에 적어 봅니다. 내가 우리 보금자리에서 아이들하고 나누는 말마디도 날마다 새삼스레 노래가 되어 새롭게 거듭나겠지요. 4349.1.23.흙.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6 - 시골에서 시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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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의 : 열네 개의 반지


너는 열네개의 반지를 끼고 왔구나

→ 너는 반지 열네 개를 끼고 왔구나

→ 너는 열네 반지를 끼고 왔구나

《김중일-내가 살아갈 사람》(창비,2015) 18쪽


  “물 한 잔”처럼 적을 때에만 한국 말투입니다. “한 잔의 물”처럼 적으면 번역 말투입니다. 반지를 가리킬 적에도 “반지 열네 개”처럼 적어야 비로소 한국 말투입니다.


세명의 악동과 탈진한 고양이

→ 세 악동과 탈진한 고양이

→ 세 장난꾸러기와 기운 빠진 고양이

《김중일-내가 살아갈 사람》(창비,2015) 50쪽


  사람을 셀 적에는 “악동 세 명”이나 “악동 세 사람”처럼 적어야 올바릅니다. 또는 “세 악동”이라 하면 되지요. ‘악동(惡童)’은 ‘장난꾸러기’로 손보고, ‘탈진(脫盡)한’은 ‘기운 빠진’으로 손봅니다.


여러 번의 수리를 거쳤음에도

→ 여러 번 손질을 했는데도

→ 여러 번 손을 보았는데도

→ 여러 번 고쳤는데도

《시오미 나오키/노경아 옮김-반농반X의 삶》(더숲,2015) 94쪽


  ‘수리(修理)하다’는 ‘손보다’나 ‘고치다’를 뜻해요. 그러니 “여러 번 손보았는데”나 “여러 번 고쳤는데”나 “여러 번 손질했는데”로 보기글을 손보면 됩니다.


왜 일반인의 눈을 피하려는 거죠?

→ 왜 일반인 눈을 피하려는 거죠?

→ 왜 사람들 눈을 꺼리지요?

→ 왜 사람들 눈에 안 뜨이려 하지요?

《이와아키 히토시/서현아 옮김-칠석의 나라 2》(학산문화사,2014) 78쪽


  이 보기글에서는 ‘-의’만 덜어도 됩니다. ‘일반인(一般人)’은 그대로 둘 수도 있고 ‘사람들’로 손질해도 됩니다. 4349.1.23.흙.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6 - 우리 말 살려쓰기/말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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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의 여왕 - 스텔라이야기.겨울편
마리 루이스 개이 글 그림, 조현 옮김 / 현암사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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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614



이렇게 멋지고 착한 누나가 다 있을까

― 눈의 여왕 (스텔라 이야기·겨울 편)

 마리 루이스 개이 글·그림

 조현 옮김

 현암사 펴냄, 2007.7.10. 7800원



  봄 여름 가을 겨울 네 철에 맞추어 네 권으로 나온 ‘스텔라 이야기’ 가운데 겨울 이야기인 《눈의 여왕》(현암사,2007)을 겨울에 읽습니다. 이 그림책에는 스텔라하고 샘, 이렇게 두 아이가 나옵니다. 스텔라는 누나이고 샘은 동생입니다. 스텔라는 봄부터 겨울까지 두루 겪어서 제법 잘 알고, 샘은 아직 네 철을 잘 모릅니다. 이것저것 모르는 것이 많아서 궁금한 것도 많은 동생 샘은 누나한테 끝없이 “왜?”라고 하면서 물어요. 이것저것 먼저 겪어서 스스로 깨우친 누나 스텔라는 끝없이 묻는 동생한테 차근차근 하나씩 알려주는데, 누나로서도 아직 잘 모르겠으면 한참 생각을 해 보아야 하는데, 귀찮아 하거나 성가셔 하지 않아요. 그야말로 훌륭하게 동생을 이끌면서 함께 놀고, 신나게 놀며, 멋지게 놀아요.



“누나, 눈은 차가워? 얼음처럼 얼어붙는 거야?” “응, 눈은 바닐라 아이스크림처럼 차갑지. 아기토끼 솜털마냥 보드랍기도 해. 샘, 밖으로 나가자.” (7쪽)




  그림책 《눈의 여왕》에 나오는 스텔라 누나도 어릴 적에 제 동생처럼 늘 “왜?” 하고 물으면서 살았으리라 느껴요. 샘이 아직 동생으로 찾아오기 앞서, 그러니까 스텔라가 퍽 어렸을 적에, 스텔라는 어머니랑 아버지한테, 또 둘레 언니 오빠한테 언제나 “왜?” 하고 물었을 테지요. 스텔라한테도 궁금함을 풀어 준 어버이랑 이웃이 있을 테지요. 늘 모든 것을 궁금하게 여기면서 하나씩 배우고, 언제나 모든 것을 새롭게 바라보면서 즐겁게 배웠을 테지요.


  그림책을 한참 보다가 우리 집 두 아이가 꽤 어리던 나날을 돌이킵니다. 큰아이가 눈을 처음 보던 날을 돌이키고, 작은아이가 눈을 처음 보던 날을 되새깁니다. 눈을 처음 보던 큰아이는 그저 물끄러미 눈송이를 바라보았고, 뺨에 닿으며 녹고 손바닥에 내려앉아서 녹는 하얀 것을 무척 재미나게 여겼어요. 걸음마를 처음 떼면서 눈밭을 밟다가 뒹구는 즐거움을 느끼면서 웃었고, 세 살 무렵부터는 커다란 빗자루를 옆구리에 끼고 눈을 쓰는 일을 거들었어요. 작은아이가 우리 집에 찾아온 뒤에는 큰아이가 눈덩이를 뭉쳐서 동생한테 보여주었지요.



“샘, 우리 눈사람 만들자.” “누나, 눈사람은 어디서 자?” “푹신한 눈밭에서 자지.” “누나, 눈사람은 뭘 먹어?” “눈송이랑 …… 눈으로 만든 완두콩이랑 …… 눈옷이랑!¨ (10∼11쪽)



  한집에서 사는 두 아이는 서로 가장 살가우면서 즐거운 놀이동무입니다. 나이가 벌어지기에 몸집이 다르고, 큰아이가 하고 싶은 대로 동생이 다 따르지는 못하지만, 큰아이는 동생한테 맞추어 신나게 놀 줄 압니다. 작은아이는 누나가 하듯이 다 따라가지 못하지만 누나가 무엇을 어떻게 하는지 찬찬히 지켜보고는 하나씩 똑같이 따라하려 합니다. 작은아이는 어버이한테서도 배우지만 누구보다 누나한테서 훨씬 즐겁고 재미나게 배워요.


  어느 모로 본다면 큰아이는 동생한테 놀이동무이면서 길동무이고 스승이기도 한 셈이랄까요. 큰아이 스스로 먼저 겪은 온갖 삶과 살림을 동생한테 기쁘게 알려주고 살가이 보여주며 신나게 물려주는 셈이랄까요.




“누나, 눈은 어디에서 내리는 거야? 여름엔 어디에 가 있다가 와? 그리고 눈덩이 하나에 눈송이가 몇 개나 들어갈까?” “모올라, 샘, 이거 좀 도와줘.” (20∼21쪽)



  그림책 《눈의 여왕》에 나오는 동생 샘은 묻고 묻고 또 묻습니다. 자꾸 묻고 새로 묻고 거듭 묻습니다. 누나가 궁금함을 곧바로 풀어 주지만, 이내 새로운 궁금함을 길어올려서 물어요. 그림책을 가만히 보면, 동생 샘은 누나가 하나씩 알려줄 적마다 “알려줘서 고마워” 하고 말할 틈이 없도록 끝없이 묻기만 해요. 누나 스텔라는 동생이 물을 적마다 곧바로 대꾸합니다. 하나하나 알려주는데, 정 모르겠구나 싶은데 또 새롭게 물으면 “모올라!” 하고 외치지만, 다음에 묻는 것을 알 만하다 싶으면 다시 상냥하게 가르쳐 주지요. 그리고, 동생 마음을 새로운 곳으로 돌릴 줄 압니다. 동생이 그저 묻기만 하지 말고 몸으로 스스로 겪어서 알아차릴 수 있기를 바라요. 왜 그러한가 하면, 누나 스텔라도 동생만 하던 때에 언제나 몸으로 스스로 겪어서 한결 잘 알 수 있었을 테니까요.


  이를테면, 어머니랑 아버지가 “바닷물은 짜단다” 하고 말해 준대서 이를 그냥 받아들여서 알기는 어려워요. 아이들이 몸으로 스스로 바닷물을 먹어 보아야 비로소 “아하, 바닷물은 이만큼 짜네” 하고 알지요. 어머니랑 아버지가 “그렇게 달리다가 넘어져서 무릎이 깨지면 아프지” 하고 말해 준대서 이를 그냥 받아들여서 알기는 힘들어요. 아이들이 몸으로 스스로 신나게 뛰어놀다가 때때로 넘어지거나 자빠지거나 엎어져서 무릎도 얼굴도 팔꿈치도 깨지거나 긁혀서 피가 나 보아야 “아하, 넘어져서 다치면 이렇게 아프네” 하고 알아요.




“샘, 눈으로 천사를 만들자. 커다란 날개 달린 천사 말이야.” “누나, 눈사람 천사도 날 수 있어? 노래도 할 수 있고?” (28∼29쪽)



  누나 스텔라는 끝없이 왜 왜 하고 묻는 동생 샘한테 ‘눈 천사’를 빚자고 말합니다. 동생 샘은 누나 스텔라가 ‘눈 천사’를 빚자고 말하니, 함께 눈을 뭉쳐서 눈 천사를 빚기보다는 ‘눈 천사’가 하늘을 날 수 있는지 궁금해 해요. 게다가 눈 천사가 노래를 할 수 있는지도 궁금해 해요. 이때에 누나 스텔라는 어떻게 할까요?


  누나 스텔라는 더없이 상냥하고 멋지면서 착한 아이답게 동생 샘더러 ‘귀를 기울여서 들어’ 보라고 말합니다. 눈으로 빚은 천사가 들려주는 노랫소리를 동생 샘더러 들어 보라고 말해요.


  이 말을 들은 동생 샘은 ‘왜? 왜? 왜?’ 하고 묻는 말을 그치고는 누나가 말한 대로 조용히 귀를 기울입니다. 모든 말을 멈추고 고요히 귀를 기울여서 ‘눈 천사’가 부르는 노랫소리를 들으려고 해요. 그림책 《눈의 여왕》에서 이 대목을 읽다가 괜히 짠합니다. 우리 집 큰아이도 동생하고 놀다가 곧잘 이 모습으로 동생을 이끌거든요. 동생이 스스로 새롭게 몸으로 받아들여서 깨닫도록 이끄는 말을 무척 부드러우면서 살갑게 하곤 해요.


  따사로운 말 한 마디로 궁금함을 풀어 줄 뿐 아니라, 스스로 삶을 새롭게 배우는 길로 접어들 수 있습니다. 너그러운 말 한 마디로 수수께끼를 풀어 줄 뿐 아니라, 서로 어깨동무하면서 사랑을 새롭게 마주하는 살림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가르치는 사람은 모름지기 상냥할 노릇이라고 느낍니다. 어버이 자리에 선 사람도, 누나나 언니 자리에 서는 사람도, 나이를 한 살이라도 더 먹은 사람도, 한결같이 상냥하면서 착한 마음씨로 슬기롭게 이야기꽃을 피울 노릇이로구나 싶습니다. ‘왜?’ 하고 끝없이 묻는 아이가 예쁘고, ‘그건 말이지’ 하고 끝없이 알려주는 아이가 사랑스럽습니다. 4349.1.23.흙.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6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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