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들보라는 눈을 자꾸 먹어



  산들보라는 우리 집 둘레로 소복히 쌓인 눈을 만난 적이 아직 없다. 누나처럼 손이 꽁꽁 얼도록 눈밭을 뒹굴어 본 적이 이제 처음이다. 이리하여 산들보라는 눈맛을 보면서 눈을 사귀고 싶다. 두 손 가득 눈을 뭉쳐서 들여다보다가 얼굴을 폭 파묻으면서 눈을 냠냠 먹어 본다. 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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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랑 놀자 194] 호빵



  추운 겨울에 뜨끈뜨끈하게 익혀서 호호 불며 먹는 ‘호빵’을 멋모르고 크게 한입 베다가는 혀나 입천장이 델 수 있어요. 1971년에 처음으로 나온 호빵은 참말 ‘호호’ 불면서 먹는 빵이라는 뜻으로 나왔어요. 여기에, 온 식구가 ‘호호’ 웃으면서 맛나게 먹는 빵이라는 뜻도 함께 담겼어요. 이름이 참 재미있지요? 그러면, 후후 불며 후후 웃는 몸짓으로 먹으면 ‘후빵’이 될 수 있겠지요? ‘찐빵’은 김에 쪄서 익히는 빵이에요. 말 그대로 쪄서 먹으니 ‘찐빵’이지요. 빵은 으레 구워서 먹는데, 굽지 않고 찌니까 ‘찐빵’이라는 이름을 따로 써요. 팥을 넣으면 ‘팥빵’이 되고, 크림을 넣으면 ‘크림빵’이 되지요. 초콜릿을 넣은 ‘초코빵’이 있고, 딸기 맛을 낸 ‘딸기빵’이라든지 치즈를 녹여서 넣은 ‘치즈빵’이 있어요. 떡 가운데에도 ‘호떡’이 있는데, 이 호떡은 호호 불면서 먹는 떡이라기보다 “중국사람이 빚은 떡”이라고 해서 ‘호떡’이라고 해요. 호떡은 ‘호(胡)’라는 한자를 써요. 그렇지만, 호떡도 호호 불며 호호 웃는 몸짓으로 먹는다고 하면서 ‘호떡’처럼 써도 재미있어요. 팥을 넣으면 ‘팥떡’이고, 수수를 넣어 ‘수수떡’이며, 수수랑 팥을 함께 넣어 ‘수수팥떡’이에요. 4349.1.23.흙.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6 - 우리 말 살려쓰기/말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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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흥에서 시골버스 끊어지다



  고흥이라고 하는 시골에 눈이 내려서 쌓이는 일은 한 해에 한 차례 있을까 말까 하다. 이런 눈이 어제 처음으로 쌓였고, 오늘도 새로 눈이 내리면서 쌓인다. 이리하여 고흥에서는 시골버스(군내버스)가 어제도 끊어지고 오늘도 끊어진다. 고흥에서는 눈길을 달릴 수 있는 버스가 없다. 다른 고장은 어떠하려나? 고작 1센티미터도 쌓이지 않는 눈발인데 이러한 눈발로도 버스가 못 다니는 고장이 있을까? 4349.1.25.달.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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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랑 소년 12
시무라 타카코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6년 1월
평점 :
절판


만화책 즐겨읽기 600



내가 나를 밝히며 걷는 길

― 방랑 소년 12

 시무라 타카코 글·그림

 이상은 옮김

 학산문화사 펴냄, 2015.12.25. 5000원



  “벽장에서 나오다”를 가리키는 ‘커밍아웃’이라고 합니다. 말 그대로 벽장에 스스로 갇힌 채 바깥을 두려워하는 마음을 훌훌 털어내겠다고 하는 커밍아웃이라 할 만합니다. 영어로는 ‘커밍아웃’이나 ‘컴 아웃 오브 클로셋’이 될 테고, 한국말로는 ‘벽장열기’나 ‘빗장풀기(빗장열기)’가 될 테며, 때로는 ‘털어놓기’나 ‘나를 밝히기’나 ‘나를 말하기’가 될 테지요.


  시무라 타카코 님이 빚은 만화책 《방랑 소년》에는 초등학교를 다니는 나이인 때부터 ‘내가 누구인가?’를 스스로 돌아보면서 ‘내가 나를 밝히는’ 아이들이 나옵니다. 바깥에서 바라보는 눈길로 따지는 사내나 가시내가 아니라, 내가 나를 바라보면서 나한테서 느끼는 ‘숨결’이 무엇인가를 생각하면서 이를 씩씩하게 밝히면서 길을 걷는 아이들이 나와요.



“싫어, 애들이 놀릴 텐데.” “아무렴 어때. 어차피 이제 곧 졸업이잖아. 적당히 무시하면 돼.” (13쪽)


“둘 중 한 명이 남자래.” “뭐? 진짜? 누구?” “몰라. 둘 다 남자일지도.” “거짓말.” (20쪽)



  ‘사내스러운’ 가시내는 치마를 벗으면서 바지를 입곤 합니다. 그러면 ‘가시내스러운’ 사내는 바지를 벗으면서 치마를 입어도 될까요? 바지 입는 가시내를 놓고는 그다지 말이 많지 않은(그러나 말이 안 많다고 할 수도 없지만) 사회 얼거리라 할 수 있는데, 치마 입는 사내를 놓고는 대단히 말이 많은 사회 얼거리라 할 수 있어요.


  이를테면, 학교에서 ‘바지를 입고 다니는 가시내’가 있고, 학교에서도 이를 받아들여 주지만, ‘치마를 입고 다니는 사내’를 받아들여 줄 만한 학교가 있을는지 궁금해요. 회사라면 더더구나 ‘치마 입는 사내’를 받아들여 줄 만한 곳이 매우 드물다고 하겠지요.



“나는 줄 게 없는데.” “아니야. 그런 거 필요 없어. 선물 같은 건 됐으니까! 나랑 사귀자. 저기, 내 성격이 마음에 안 들면 고칠게. 무신경하게 굴지 않도록 조심할게. 좀더 의젓해질 테니까.” (40∼42쪽)


“눈이다.” “쌓이려나?” “집에 갈 때 어떡하지?” (91쪽)



  만화책 《방랑 소년》에 나오는 주인공은 딱히 한 사람이 아니지만, 이 만화책에서 한복판 자리를 차지하면서 이야기 흐름을 이끄는 아이는 ‘니토린’이나 ‘슈이치’라는 이름인 아이입니다. 어릴 적에는 어른들이 ‘귀엽다’면서 이 아이를 바라보았을 테지만, 이 아이가 누나 옷을 몰래 입어 볼 적에는 ‘싫다’고 하거나 ‘끔찍하다’고 여기곤 합니다.


  왜 그러할까요? 이 커다란 울타리는 무엇일까요? 벽장에서 나온다고 하는 일은 ‘나를 밝히는 아이’가 하는데, 어느 모로 본다면 울타리를 높이 쌓고서 ‘벽장에서 나오지 않는 사람’은 ‘나를 스스로 밝히는 아이’를 마주보는 다른 사람들이지는 않을까요? 한 아이는 그야말로 씩씩하고 의젓하게 벽장 문을 열고 나왔는데, 스스로 빗장을 풀고 바깥으로 나왔는데, 막상 이 아이를 둘러싼 다른 사람들은 이녁 마음자리에 단단히 빗장을 걸고서 외려 벽장으로 숨어들려 하는 셈은 아닐까요?



“나참, 그런 게 아니라니까.” “그래도 좋아하잖아.” “음, 좋아해. 아마도. 하지만 고백하고 싶은 건 아니야.” (97쪽)


“‘빨강머리 앤’ 놀이? 너도 이제 고등학생이야.” “미안.” “그보다 이게 뭐니? 머리가 새빨개! 그런데, 앤이 돼서 어디 가려고?” “소개해 줄 사람이 있어.” (106쪽)



  만화책 《방랑 소년》 첫 권(2007)에는 초등학생인 아이들이 나오고, 열두째 권(2015)에는 어느덧 중학교를 마치고 고등학교로 가는 아이들이 나옵니다. 이 만화책에 나오는 아이들은 저마다 ‘마음열기’도 하고 ‘빗장풀기’도 하고 ‘털어놓기’도 하면서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갑니다. 더는 뒤를 돌아보려 하지 않으면서 한 걸음 두 걸음 차근차근 내딛습니다.


  마음을 열었다가 마음이 다치기도 하지만 다시 마음을 닫으려 하지 않습니다. 빗장을 풀다가 그만 괴롭거나 고단한 일을 겪기도 하지만 다시 빗장을 걸려 하지 않습니다. 씩씩하게 생각을 털어놓고, 의젓하게 나 스스로 어떤 숨결인가 하는 대목을 밝힙니다.


  가만히 본다면, ‘내가 나를 말하는 일’이란 나부터 스스로 거듭나려고 하는 몸짓일 뿐 아니라, 나를 둘러싼 사람들도 함께 새로운 숨결로 거듭나자고 외치는 목소리라고 할 수 있구나 싶어요. 혼자서 새로워질 수는 없으니까요. 다 같이 새로워질 때에 다 같이 홀가분하면서 기쁜 살림과 삶과 사랑이 될 수 있으니까요.



“초조해 하는 마음은 이해해. 나도 그랬어. 어른들이 하는 말도 안 듣고. 하지만 이제 나도 어른이니까, 안 된다고 할 수밖에 없어.” (134∼135쪽)


‘하지만 뿌듯했어. 그리고, 사람들은 의외로 남을 쳐다보지 않는구나.’ (156쪽)


‘나 자신에게 솔직해지고 싶다고 생각했어. 그러기 위해 거짓말을 하는 건 이상하잖아? 사실대로 털어놓자.’ (161쪽)



  만화책 《방랑 소년》에 나오는 ‘니토리 슈이치(니토린 또는 슈이치)’는 고등학생이 된 뒤에 알바 자리를 찾아나섭니다. 이도 저도 다 막히다가 어느 찻집 한 곳에서 알바 자리를 얻습니다. 처음에는 누나 이름을 걸고 알바를 하는데, 언제까지나 이렇게 거짓말을 할 수 없는 줄 스스로 묻고 되물은 뒤, 찻집지기한테 속내를 털어놓기로 해요.


  이제껏 수없이 새로운 걸음을 한 발짝씩 떼었다면, 여기에서 또 떼는 한 발짝은 더욱 무겁고 힘듭니다. 그렇지만 새로 떼는 한 발짝이니 더욱 새로울 뿐 아니라, 더욱 씩씩하고 의젓하게 거듭나는 걸음걸이라 할 수 있어요.


  아이들은 스스로 생각하면서 스스로 길을 찾습니다. 스스로 길을 찾다가 너무 괴로워서 ‘나하고 비슷한 길을 걸은 어른’을 찾아가서 물어보기도 하지만, 내 길은 언제나 내가 스스로 생각하고 부딪히고 찾고 열어야 할 뿐입니다. 남이 나를 도와줄 일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나를 도와야 할 뿐이에요.


  만화책에서뿐 아니라 삶자리에서도 온누리 아이들이 저마다 씩씩하게 기운을 내어 한 발짝씩 내딛을 수 있기를 빕니다. 마음 가득 꿈을 심고 사랑을 담아서 언제나 새롭게 한 발짝씩 나아가면서 내 삶부터 바꾸고, 나를 둘러싼 사람들한테도 새로운 숨결을 나누어 줄 수 있기를 빌어요. 4349.1.25.달.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6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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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위


  우리 겨레가 크게 치르는 명절은 두 가지예요. 하나는 ‘설’이고, 다른 하나는 ‘한가위’예요. 그런데 어른들은 ‘설’이라는 말만 쓰지 않고 ‘신정·구정’ 같은 일본 한자말도 쓰고, ‘한가위’라는 말만 쓰지 않고 ‘추석’이나 ‘중추절’이나 ‘추수감사절’ 같은 한자말도 써요. 설을 ‘설날’이라고도 하듯이 ‘한가위’는 ‘가위·한가위·가윗날’이라고도 해요. 가윗날이 더없이 크다는 뜻으로 ‘한’을 앞에 붙여 ‘한가위’라 하지요. 설날 뒤에 찾아오는 보름날은 보름달이 더없이 크다고 해서 따로 ‘큰보름’이라고도 해요. 설날에는 ‘설빔’을 마련해서 입고, 한가위에는 ‘한가위빔’을 마련해서 입어요. 설날에는 연날리기나 윷놀이나 널뛰기나 그네뛰기 같은 ‘설놀이’가 있고, 한가윗날에는 강강술래나 씨름이나 줄다리기 같은 ‘한가위놀이’가 있어요. 옛날에는 날에 맞추어 즐기는 놀이가 다 달랐어요. 요새는 따로 어느 날에만 즐기는 놀이라기보다 여느 때에도 마음껏 즐기는 놀이가 되었지요. 윷놀이나 씨름을 딱히 설이나 한가위에만 하지 않거든요. 제기차기나 그네뛰기도 언제라도 할 수 있고요. 활쏘기를 할 만한 데는 드물 테지만, 고누는 집에서도 놓을 수 있고, 연도 아무 때나 날릴 수 있어요.


+


빵빵하다


  꽉 차고도 남는다든지, 모자라다고 느끼지 않는다든지, 마음이 바다와 같다든지 할 적에 ‘넉넉하다’라 말해요. ‘넉넉하다’하고 비슷하게 쓰는 낱말로 ‘푸짐하다·푸지다’고 있고, ‘넓다·널찍하다·너르다’가 있으며, ‘너끈하다·너그럽다’가 있어요. 그리고 ‘널널하다’라는 낱말도 있어요. ‘널널하다’는 함경도 고장말이라고도 하는데, 남녘에서는 1990년대 무렵부터 차츰 쓰임새가 넓어졌어요. 어떤 일이 수월하다든지, 자리가 제법 넓다든지, 시간이 꽤 있어서 느긋하다든지 할 적에 쓰는 ‘널널하다’예요. 한국말에는 센말하고 여린말이 있기에 ‘널널하다’뿐 아니라 ‘늘늘하다’라든지 ‘날날하다’처럼 재미나게 쓸 수 있어요. ‘녈녈하다’라든지 ‘냘냘하다’처럼 써도 뜻이나 느낌이 재미있어요. ‘빵빵하다’라는 낱말을 사람들이 쓴 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어요. 그렇지만 이 낱말도 무척 재미나지요. 풍선이 빵빵하게 부푼다든지, 빵을 구울 적에 빵이 빵빵하게 부푼다든지 하면서 써요. 자전거 바퀴에 바람을 빵빵하게 넣는다든지, 추워서 방바닥에 불을 빵빵하게 넣는다든지, 노랫소리를 빵빵하게 큰 소리로 듣는다든지, 선물이나 덤을 빵빵하게 많이 준다든지 할 적에도 써요.


+


동그라미, 세모, 네모


  우리 집 큰아이가 다섯 살부터 ‘네모빵’을 말합니다. 어른들은 ‘식빵’이나 ‘샌드위치빵’이라 말하지만, 큰아이로서는 이도저도 못 알아들을 만한 이름이라 여겼는지, 그냥 ‘네모빵’이라 말해요. 그래서 나는 큰아이 말을 그대로 받아들여서 ‘네모빵’이라 말합니다. “먹는 빵”을 뜻하는 ‘식빵’이라는 이름보다 ‘네모빵’이라는 이름이 한결 잘 어울린다고 느껴요. 동그랗게 생긴 빵을 보면 ‘동글빵’이라고도 해요. ‘도넛’이라는 영어 이름이 있지만, 나는 또 큰아이 말을 받아들여서 써요. 동글빵은 때때로 ‘동글구멍빵’이 돼요. 동그랗게 생겼으면서 가운데에 구멍이 있으니까요. 이리하여 세모낳게 생긴 빵을 보면 우리는 ‘세모빵’이라 하지요. 김밥 가운데 세모낳게 생긴 김밥은 ‘세모김밥’이라 해요. 그러고 보면 김밥은 으레 동그랗게 말기에 여느 김밥은 ‘동글김밥’이라는 이름을 따로 붙일 만해요. 동글동글하게 생긴 햄은 ‘동글햄’이 되고, 네모지게 생긴 햄은 ‘네모햄’이 되어요.


+


부름택시


  집에 자동차가 있으면 택시를 탈 일이 없을 테지요. 집에 자동차가 없으면 버스나 전철을 타거나 택시를 잡아서 타요. 집에 자동차가 있어도 이 자동차를 두고 움직일 적에는 택시를 잡아서 타지요. 어린이나 푸름이는 자동차를 몰지 않으니, 다리가 아프거나 몸이 힘들거나 짐이 많을 적에는 택시를 불러서 탈 수 있어요. 길가를 걷다가 택시를 보면 곧바로 탈 수 있고, 어느 때에는 우리가 있는 곳으로 택시가 오기를 바라면서 미리 전화를 할 수 있어요. 이때에 우리가 부르는 대로 찾아와 주는 택시를 ‘부름택시’라고 해요. 우리가 부르는 대로 찾아와서 도와주는 이웃이 있으면 이분들을 ‘부름이’나 ‘부름이웃’이나 ‘부름님’이라 할 수 있지요. 전화를 걸면 택시가 고맙게 우리한테 찾아오는데, 봄을 부르면 봄이 우리한테 올까요(봄부름)? 꽃이 피기를 바라면서 꽃을 부르면 꽃이 우리한테 올까요(꽃부름)? 기쁨이나 웃음을 부르면 기쁨이나 웃음이 우리한테 올까요(기쁨부름·웃음부름)? 돈을 부르고 싶은(돈부름) 사람이 있고, 그리운 님을 부르고 싶은(님부름) 사람이 있을 테고, 밥을 불러서 집에서 받고 싶은(밥부름) 사람이 있을 테지요.


(최종규/숲노래 . 2016 - 우리 말 살려쓰기/말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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