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상상의

 상상의 세계 → 꿈 같은 세계 / 꿈누리 / 꿈에 그린 세계
 상상의 나라 → 꿈 같은 나라 / 꿈나라 / 꿈에 그린 나라
 상상의 섬 → 꿈 같은 섬 / 꿈섬 / 꿈에 그린 섬
 상상의 도시 → 꿈 같은 도시 / 꿈도시 / 꿈에 그린 도시
 상상의 힘 → 생각하는 힘 / 생각힘 / 꿈꾸는 힘

  ‘상상(想像)’은 “실제로 경험하지 않은 현상이나 사물에 대하여 마음속으로 그려 봄”을 뜻합니다. 그러니까 “마음으로 그리기”가 ‘상상’인 셈이고, 이러한 뜻은 예부터 ‘꿈’이라는 낱말로 가리켰어요. 이야기를 펼치는 흐름을 살펴서 ‘꿈꾸기’라든지 “꿈에 그리기”라든지 “꿈으로 그리기”라든지 ‘생각’이라든지 “생각으로 지은”으로 손질해서 쓸 만합니다. 4349.1.30.흙.ㅅㄴㄹ


상상의 동물일 뿐
→ 꾸며낸 짐승일 뿐
→ 생각으로 지은 짐승일 뿐
→ 생각으로 만든 짐승일 뿐
→ 꿈속에서 만날 수 있는 짐승일 뿐
→ 꿈에서나 보는 짐승일 뿐
→ 꿈속 짐승일 뿐
《윤정모-황새울 편지》(푸른숲,1990) 33쪽

상상의 나래를 펼쳐 나갔다
→ 생각에 날개를 달아 펼쳐 나갔다
→ 생각 날개를 펼쳐 나갔다
→ 생각은 날개를 달고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 생각을 꾸준하게 이어 나갔다
《하이데마리 슈베르머/장혜경 옮김-소유와의 이별》(여성신문사,2002) 15쪽

상상의 나래를 펼쳤던 것이다
→ 생각 나래를 펼쳤던 것이다
→ 생각 날개를 펼쳤다
→ 꿈날개를 펼친 셈이다
→ 꿈나래를 펼쳤다
→ 꿈을 한껏 펼쳤다
《서경식-소년의 눈물》(돌베개,2004) 16쪽

한번 상상의 날개를 펼쳐 보세요
→ 한번 생각 날개를 펼쳐 보세요
→ 한번 생각을 활짝 펼쳐 보세요
→ 한번 생각을 마음껏 펼쳐 보세요
《장성익-있다! 없다!》(분홍고래,2015) 43쪽

(최종규/숲노래 . 2016 - 우리 말 살려쓰기/말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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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바라지

  뒤에서 도와주는 사람은 ‘뒷바라지’를 한다고 합니다. 그러면 앞장서서 도와주는 사람이 있으면? 이때에는 ‘앞바라지’라 하면 돼요. 옆에서 도와주는 사람은? 이때에는 ‘옆바라지’가 될 테고, ‘곁바라지’도 있을 테지요. 서로 즐겁게 돕는 모습을 살피면서 기쁘게 새로운 말로 나타낼 만해요. 도서관에서 일하는 분들은 ‘책바라지’를 해 준다고 할 만하고, 할머니랑 할아버지가 우리 집에 찾아와서 이모저모 도와주시면 ‘살림바라지’를 해 주신다고 할 만해요. 우리가 노래를 부를 적에 옆이나 뒤에서 소리를 받쳐 주면 ‘노래바라지’를 하는 셈이고, 우리가 느긋하면서 신나게 놀도록 어머니랑 아버지는 ‘놀이바라지’를 하지요. 그리고, 새로운 이야기를 재미나게 배우도록 ‘배움바라지’를 하셔요. 꿈을 푸르고 싱그럽게 키우라면서 ‘꿈바라지’도 하시지요. 나는 동무나 이웃한테 어떤 바라지를 할 만할까요? 우리는 앞으로 동무나 이웃이나 어버이한테 어떤 바라지를 하는 아름다운 사람으로 살림을 지을 만할까요?

+

땡볕

  여름은 더운 철이에요. 그런데 더워도 너무 더운 날이 있어요. 바람 한 점 불지 않고 구름 한 조각 없는 날에는 그야말로 무더워요. 이 무더위에도 ‘땡볕’을 고스란히 받으면서 바깥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도시에서도 시골에서도 ‘뙤약볕’을 온몸으로 받으면서 땀흘리는 이웃들이 있기에, 우리는 저마다 기쁘며 즐거운 살림살이를 꾸릴 수 있습니다. 겨울은 추운 철이에요. 그렇지만 추워도 너무 추운 날이 있어요. 바람이 씽씽 불고 햇볕은 조금도 들지 않는 날에는 더할 나위 없이 추워요. 춥디추운 날에는 칼바람이 불면서 더 춥지요. 바람이 불지 않고 눈도 오지 않지만 몹시 매서운 추위가 있으면 이를 ‘강추위’라고 해요. ‘강서리’나 ‘강기침’을 일컬을 적에 쓰는 ‘강-’을 붙인 “마른 날씨에 찾아오는 매서운 추위”가 강추위예요. 더운 날에는 더위가 수그러들기를 바라면서 바람아 불어 주렴 하고 노래해요. 추운 날에는 추위가 가라앉기를 바라면서 바람아 잠들어 주렴 하고 노래하지요. 더운 날에는 구름아 찾아와 주렴 하고 빌면서 소나기라도 한 줄기 쏟아지기를 바라요. 추운 날에는 구름이 걷히고 햇볕이 쨍쨍 내리쬐기를 바라요. 여름에는 땡볕이 고단하고, 겨울에는 포근한 햇볕이 고마워요.

+

쉼날

  숨을 고르게 쉬면서 몸을 느긋하게 쉽니다. 시외버스를 타고 먼 길을 가야 할 적에는 고속도로 곳곳에 있는 쉼터 가운데 한두 곳에 멈추어 얼마쯤 쉬어요. 길을 걷다가 다리가 좀 아프거나 힘들면 어디 앉을 만한 데를 찾아서 쉬지요. “쉬는 곳”이기에 ‘쉼터’라 하는데, 걸상 하나만 있어도 쉼터가 되고, 놀이기구를 갖춘 쉼터가 있으며, 가볍게 배를 채울 만한 먹을거리를 파는 가게가 있는 쉼터가 있어요. 학교에서 공부를 할 적에 사이사이 쉬는 때를 마련해 줍니다. 내내 공부만 하면 힘들거나 지치거든요. 10분을 쉴 수 있고, 15분이나 20분을 쉴 수 있어요. 이렇게 “쉬는 때”는 어떤 이름으로 가리키면 잘 어울릴까요? 쉬는 때이니까 ‘쉼때’라 하면 될까요? 학교를 다니는 어린이와 푸름이도 한 주 가운데 학교를 쉬는 날이 있고, 일터를 다니는 어른도 한 주 가운데 일터를 쉬는 날이 있어요. 쉬는 곳이 ‘쉼터’이듯이, “쉬는 날”이라면 ‘쉼날’이라 하면 잘 어울릴까요? 잠을 자는 ‘잠자리’이듯이, 쉬는 곳은 ‘쉼자리’도 되고 ‘쉴자리’도 되어요. 넉넉하게 쉬고 홀가분하게 쉬면서 새롭게 기운을 차립니다.

+

맛있는 밥상

  오늘은 무슨 밥을 먹을까요? 오늘도 어제와 똑같은 밥을 먹나요? 오늘도 어제와 똑같은 밥을 먹기에 맛있는 밥일 수 있고, 때로는 맛없는 밥일 수 있어요. “맛있는 밥상”을 날마다 받을 수 있으면 늘 맛있게 한 끼니를 누리며 기뻐요. “맛없는 밥상”을 날마다 받아야 한다면 그야말로 고달플 테지요. 우리는 저마다 다 다른 맛을 좋아하기에, 나한테 맛있는 밥이 너한테 맛없는 밥일 수 있어요. 나한테는 그 밥집에서 차려서 주는 밥이 맛있어서 그 밥집을 ‘맛집’으로 삼는데, 너한테는 그 밥집은 영 맛없다고 느껴서 ‘맛집(맛있는 집)’이 아니라 ‘맛없집(맛없는 집)’으로 삼을 수 있어요. 우리는 아침저녁으로 받는 밥상을 “맛있는 밥”으로 여길 수 있습니다. “고마운 밥”이나 “즐거운 밥”으로 여기면서 이런 이름을 붙일 수 있어요. 오늘 먹는 밥에는 ‘오늘밥’이라는 이름을 붙여서 반갑고 기쁘게 한 끼니를 즐길 수 있습니다. “밥 한 그릇”이 수수하면서 아름답습니다.

(최종규/숲노래 . 2016 - 우리 말 살려쓰기/말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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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숲


  꽃이 많이 핀 곳을 ‘꽃밭’이라 하고, 풀이 많이 돋은 곳을 ‘풀밭’이라 하며, 나무가 많이 자란 곳을 ‘나무밭’이라 합니다. 나무가 우거진 곳은 ‘나무숲’이라 하고, 풀이 우거진 곳은 ‘풀숲’이라 합니다. 그러면, 꽃이 우거진 곳은 ‘꽃숲’이 될 테지요. ‘밭’은 그리 넓지 않으면서 마을에 가까이 있는 터전을 가리킨다면, ‘숲’은 퍽 깊고 넓으면서 마을하고 제법 떨어진 터전을 가리킨다고 할 만해요. 딸기밭이라면 딸기를 많이 심어서 거두는 곳이고, 마늘밭이라면 마늘을 맡이 심어서 거두는 곳이에요. ‘밭’은 바탕을 나타내기도 해서 ‘마음밭(마음이 자라는 바탕)’이나 ‘이야기밭(이야기가 자라는 바탕)’이나 ‘생각밭(생각이 자라는 바탕)’처럼 쓸 수 있어요. 그러면 ‘마음숲·이야기숲·생각숲’처럼 쓰면 무엇을 가리킬 만할까요? 마음숲을 가꾸는 몸짓이나 이야기숲이 그윽한 모습이나 생각숲이 깊다고 하면 어떤 느낌인지 가만히 그려 봐요. ‘밭’이랑 ‘숲’을 붙여서 ‘노래밭·노래숲’이라든지 ‘그림밭·그림숲’이라든지 ‘놀이밭·놀이숲’을 그릴 수 있어요. ‘책밭·책숲’이나 ‘만화밭·만화숲’이나 ‘꿈밭·꿈숲’도 그려 볼 만해요.


+


책 한 권


  한 학교에 다니는 어린이나 푸름이가 저마다 글을 한 꼭지씩 써서 책으로 묶으면 ‘문집(학교문집)’이라고 하는데, ‘문집’은 “글 +  묶음(책)”을 가리키는 한자말이에요. 그러니까, ‘학교문집’은 ‘학교글책’이자 ‘학교책’인 셈이에요. 한 학급 이야기를 모으면 ‘학급글책’이나 ‘학급책’이고요. 글을 모으기에 ‘글책’이라면, 그림으로 엮기에 ‘그림책’이에요. 만화를 담으면 ‘만화책’이 되고, 사진을 실으면 ‘사진책’이 돼요. 어른들은 인문 이야기를 다룬 ‘인문책’도 읽고, 시나 소설 같은 문학을 다루는 ‘문학책’도 읽어요. 우리가 사는 이 환경을 생각하도록 북돋우는 책은 ‘환경책’이고, 자연 이야기를 다룬 그림책은 ‘자연그림책’이에요. 동화를 담거나 동시를 담으면 ‘동화책·동시책’이 될 테지요. 밥짓기를 다루는 책이라면 ‘밥책·요리책’이 돼요. 텃밭을 일구거나 논을 짓는 이야기를 다루면 ‘흙책·농사책’이 되고, 노래 부르기나 악기 켜는 길을 밝히면 ‘노래책’이 되지요. 우리는 또 어떤 책을 짓거나 읽거나 나눌 만할까요? ‘꿈책’이나 ‘사랑책’은 어떨까요? 옛이야기를 다루면 ‘옛이야기책’이 되고, 도란도란 나눈 수다를 담아서 ‘수다책’이 될 수 있어요.


+


춤추는 발


  발바닥을 굴려서 춤을 춥니다. 발바닥으로 땅바닥을 쿵쿵 울리기도 하고, 뒷꿈치나 앞꿈치로 똑똑 찍기도 합니다. 발바닥으로 바닥을 울리거나 찍으면, 이에 따라 내 몸이 움직이고, 내 몸이 움직이는 결에 따라 내 팔과 손이 홀가분하게 움직입니다. 이렇게 온몸이 홀가분하게 움직이니 ‘춤’이라 하는구나 싶습니다. 그러면, 춤은 춤이로되 손을 홀가분하게 놀린다면 ‘손춤’이 될 테고, 발을 홀가분하게 놀린다면 ‘발춤’이 될 테지요. 엉덩이를 흔들면 ‘엉덩춤’이 될 테며, 허리를 돌리면 ‘허리춤’이 될 테지요. 발바닥을 굴려서 ‘발바닥춤’입니다. 두 팔로 땅을 짚고 걷거나 통통 튀긴다면, ‘물구나무춤’입니다. 머리를 흔들어 ‘머리춤’이요, 빙글빙글 돌아서 ‘빙글춤’이에요. 그리고, 또 어떤 춤을 출 수 있을까요. 꽃과 같이 나부끼면 ‘꽃춤’일 테고, 나무와 같이 서다가 바람에 따라 흔들리는 결을 살피면 ‘나무춤’일 테며, 바람이 불고 멎는 결을 살피면 ‘바람춤’일 테지요. 바람 따라 흩날리는 잎처럼 몸을 흔들면 ‘잎춤’이고, 나비처럼 가벼이 팔랑거리면 ‘나비춤’이에요. 젓가락을 손에 쥐어 ‘젓가락춤’을 추고, 손에 채를 쥐고 북을 치면서 ‘북춤’을 추기도 해요.


+


돌사람


  구리를 녹여서 사람 모습으로 만든 것을 본 아이가 ‘돌사람’이라고 말합니다. 아직 쇠와 돌이 어떻게 다른가를 잘 모르고, 구리가 무엇인지 모르니 ‘돌사람’이라고 할 만하구나 싶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아이가 가리키는 ‘돌사람’을 ‘쇠사람’이나 ‘구리사람’으로 바로잡아 주지 않습니다. 구리로 빚은 ‘동상’이든 돌로 깎은 ‘석상’이든 모두 ‘돌사람’이라 할 수 있으니까요. 왜냐하면, 쇠붙이라 하더라도 크게 뭉뚱그려서 헤아리면 ‘돌’이거든요. 보석이나 다이아몬드도 돌 가운데 하나예요. 예부터 돌로 지은 무덤은 ‘돌무덤’이라 하고, 돌을 쌓아서 집을 지으면 ‘돌집’이라 합니다. 돌로 깎은 구슬은 ‘돌구슬’이지요. 돌을 갈아서 쓰는 칼은 ‘돌칼’이에요. 그리고 ‘돌’은 “태어나서 한 해가 되는 날”이나 “한 해 가운데 하루씩 남달리 기리는 날”을 가리키기도 해요. 아기는 ‘돌잔치’를 하고, 한글날이 올해로 ‘몇 돌째’인가를 기려요.


(최종규/숲노래 . 2016 - 우리 말 살려쓰기/말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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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어스톤 도서관에서 길을 잃다 (양장) - 일상과 그 너머에 대한 인문적 성찰
류대영 지음 / 생각비행 / 2016년 1월
평점 :
절판




책읽기 삶읽기 229



길을 잃은 아버지가 아이한테 물려주는 책

― 파이어스톤 도서관에서 길을 잃다

 류대영 글

 생각비행 펴냄, 2016.1.15. 2만 원



  한동대학교에서 신학을 가르치는 일을 맡는다는 류대영 님은 이녁이 쓴 책을 이녁 아이들이 한 권도 안 읽었다고 합니다. 아무래도 학자로서 쓴 글이고 책이니 이녁 아이들이 읽기에는 어려울 수 있다고 할 테지요. 아이들한테 읽히려는 마음으로 논문을 쓰는 사람은 매우 드물거나 딱히 없을 테니까요. 류대영 님이 그동안 쓴 글하고 책이라면 이녁 스스로 걸어가고 싶은 학문길을 살피면서 빚은 열매라고 느낍니다.


  《파이어스톤 도서관에서 길을 잃다》(생각비행,2016)라는 책은 누구보다 류대영 님네 아이들한테 읽히려는 마음으로 쓴 글을 묶었다고 합니다. 학문도 논문도 아닌 ‘우리 아이들이 읽고서 생각해 주었으면’ 하는 이야기만 따로 써서 이 책을 엮었다고 해요. 아버지라는 사람이 어떻게 태어나서 어떻게 자랐고 어떤 생각을 가슴에 품으면서 살았으며 이제껏 사람과 사회와 삶을 어떻게 바라보았는가 하는 이야기를 제법 두툼한 책으로 여미었다고 합니다.



사람은 떠나도 그가 주고 간 사랑은 사라지지 않는다. 나를 먹이고, 업어 주고, 쓰다듬어 주던 할머니의 사랑은 지금도 나를 살리고 있다. (24쪽)


학교 앞에 난 고속도로는 멀리서 학교로 오가는 일을 편리하게 해 주었다. 그러나 다른 고속도로와 마찬가지로 그 길은 주변 사람들의 삶과 연결되어 있지 않다. (29쪽)



  글이나 책을 쓰는 어버이라면 아이한테 글이나 책을 남길 만합니다. 땅을 지어서 흙을 돌보는 어버이라면 아이한테 땅을 물려주면서 흙을 돌보는 손길을 물려줄 만합니다. 살림을 가꾸는 어버이라면 아이한테 살림을 가꾸는 숨결을 물려줄 만해요. 자동차를 좋아하는 어버이라면 아이가 자동차를 좋아할 수 있는 마음을 물려줄 테고, 바다를 좋아하는 어버이라면 아이하고 바다로 자주 나들이를 가면서 바다가 베푸는 넋을 물려줄 테지요.


  《파이어스톤 도서관에서 길을 잃다》를 읽으면, 류대영 님을 낳은 어머니와 아버지 이야기가 흐르고, 할머니와 할아버지 이야기가 흐릅니다. ‘유신’이라는 이름으로 온 사회가 캄캄하던 무렵 어리거나 젊은 류대영 님이 겪어야 한 이야기가 흐르고, 캄캄해서 앞이 보일 듯 말 듯하던 무렵에 어떻게 공부를 했는가 하는 이야기가 흐릅니다.


  ‘등화관제’ 이야기를 읽다가, 나도 어릴 적에 으레 겪은 등화관제 훈련이 떠오릅니다. 등화관제 훈련을 시킬 적마다 민방위대원인지 새마을대원인지 온 마을을 돌면서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어요. 우리 식구가 사는 집은 5층짜리 아파트였는데, 전쟁이 터지면 항구에서 고속도로로 이어지는 길목을 우리 아파트를 허물어서 막는다고 하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인천에서 서울로 이어지는 고속도로 길가에는 아파트가 남달리 많았는데, 이 아파트는 모두 ‘전쟁 대비 목적’으로 그곳에 세웠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어요.



(유신시대 등화관제 때문에) 가로등을 포함해서 땅에서 모든 불빛이 사라지자, 놀랍게도 하늘에는 이루 셀 수 없이 많은 빛이 나타났다. 거대한 별바다였다. (56쪽)


나는 우주와 연결되어 있을 뿐 아니라 우주로부터 왔다. 물질적으로 볼 때 내 몸은 우주의 구성성분과 같다. (66쪽)


영어 사전에 걸레처럼 되어서 책갈피를 넘기기도 힘들게 되었을 때쯤, 나는 영문학이 무엇인지 조그씩 그 맛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한때나마 문학의 길을 꿈꾸며 시를 습작하기도 했다. (78쪽)



  신학을 배웠고, 신학을 가르치는 류대영 님이라 하는데, 《파이어스톤 도서관에서 길을 잃다》라는 책은 종교를 거의 안 다룹니다. 하기는, 류대영 님이 걸어온 길은 ‘학문 닦기’입니다. ‘종교 섬기기’라고 하는 길이 아니니까요.


  엄청난 별바다를 보던 어릴 적 일을 그립니다. 이윽고 ‘우주와 내가 이어진 고리’를 헤아립니다. 한국말이 아닌 영어라는 새로운 말을 익히면서 맛본 ‘다른 나라 문학’에서 새로운 삶과 사람을 만났다고 합니다. 손전화 없이 살다가, 손전화가 없으면 도무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회 얼거리에서 ‘네 식구가 함께 쓰는 전화기’를 마련하고, 아이들이 커서 따로 지낼 적에는 ‘두 사람이 함께 쓰는 전화기’로 이어간다고 합니다.


  포항에서 커다란 공장이 설 적에 숲을 어떻게 밀어서 없애는가 하는 모습을 지켜본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숲길을 거닐거나 멧자락을 오르내리면서 느낀 생각을 들려줍니다. 어릴 적부터 가까이 지낸 동무가 일찍 숨을 거둔 일을 겪으면서 사람과 삶이란 무엇인가 하고 되새긴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수수하다면 수수하고, 투박하다면 투박한 이야기입니다. 류대영 님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그야말로 아버지가 아이한테 들려주는 이야기요, 여느 자리에서 수수하게 주고받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이처럼 수수하고 투박한 이야기가 여러모로 맛깔스럽습니다. 모르는 일이지만, 아마 류대영 님네 아이들은 아버지가 들려주는 이 이야기책을 재미있게 읽으리라 생각해요. 왜냐하면, 어느 지식을 강요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어느 삶을 치르면서 어느 한 사람이 차근차근 거듭나거나 자라온 발자국을 들려주는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한창 젊은 발자국을 내딛는 류대영 님네 아이들은 이 책을 곁에 두면서 새삼스레 기운을 얻을 만하리라 봅니다.



파이어스톤 도서관에 있는 책꽂이 길이를 모두 합치면 약 110킬로미터나 된다고 한다. 서울 시청 앞에서 천안 사거리까지의 도로 길이가 약 100킬로미터라고 하니. (104쪽)


상상력은 모든 분야에서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고자 하는 끊임없는 노력을 낳는다. 상상력은 위대한 문학과 예술을 탄생시키고, 초월을 위한 종교와 사상을 만들며, 놀라운 과학기술의 발전을 이루어낸다. (135쪽)



  미국에 있는 파이어스톤 도서관은 무척 크다고 합니다. 그곳에 깃들어 책이나 자료를 살피다 보면 흔히 길을 잃는다고 해요. 파이어스톤 도서관에 들어갈 적에는 ‘도서관 지도’를 꼭 손에 쥐고 돌아다닌다고 하는데, 도서관 지도를 손에 쥐고 이리저리 찾아다녀도 때때로 ‘어디로 돌아 나와야 하는가’를 잃는다고 합니다.


  도서관이 워낙 커서 모든 곳에 불을 밝히지 않는다지요. 사람들이 저마다 책을 살펴서 보는 자리에서 스스로 불을 켜도록 한대요. 그런데, 미국에 있는 의회도서관은 이보다 훨씬 크다고 합니다. 책이라는 모습으로 이룬 열매를 알뜰히 여겨서 건사한다고 하는데, 한 사람이 이들 도서관에 있는 모든 책을 읽어낼 수는 없는 노릇이라 할 만합니다. 그러나, 한 사람으로서 스스로 새롭게 서려고 하는 길에 스스로 배우려고 하는 책을 넉넉히 찾을 만하겠지요.


  류대영 님은 파이어스톤 도서관에서 자꾸 길을 잃으면서 학문을 닦습니다. 학문을 닦으면서 스스로 거듭납니다. 길을 잃고 또 잃지만 씩씩하게 새로운 길을 찾습니다. 지도에 없는 길을 느껴서 찾고, 지도와는 다른 도서관 얼거리를 느끼면서 ‘책하고는 다른 삶·사회·사람 얼거리’를 배웁니다. 사람이 이룬 문명과 문화가 어마어마하다 싶은 도서관에 가득가득 모이지만, 사람이 이룬 모든 문명과 문화가 이곳에 다 모이지는 않는다는 대목을 깨닫습니다.


  신라 옛 유적이 있는 곳을 천천히 거닐면서 ‘오늘날까지 남은 문화재(유물)’는 거의 모두 권력자가 쓰던 것이라는 대목을 돌아봅니다. 여느 사람들이 수수하게 살며 쓰던 살림살이는 오늘날까지 거의 남아나지 않는다는 대목을 돌아보지요.



한국은 학자가 100권의 책을 내더라도 논문을 따로 쓰지 않으면 공부를 하지 않은 것으로 평가되는 이상한 나라다. (207쪽)


나는 죽비로 머리통을 얻어맞는 듯한 충격을 받았다. 그러니까 그 이발사는 세계적인 대기업을 다니며 안정적인 생활을 했지만, 순전히 봉사를 위해 이발 기술을 배웠고, 지금까지 이발 봉사를 하고 있었다. (249쪽)


농협이라는 조직은 말 그대로 농촌의 협동조합인데, 도대체 누가 누구를 위하여 대형 마투를 만드는지 모르겠다 … 농협이라면 깨끗하고 편리한 건물을 지어 놓고, 거기에 농민들이 와서 자기 물건을 팔게 하면 좋을 것 같은데,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을 보면 내가 알지 못하는 어떤 사정이 있는 것 같다. (291쪽)



  어느 모로 본다면, 길을 잃기에 길을 새로 찾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아버지로서, 또 어버이로서, 또 학자로서, 또 곁님(남편)으로서 빈틈없는 모습으로 살아온 나날이 아니라, 이렇게 부딪히고 저렇게 넘어지면서 늘 새롭게 배우려고 한 삶이었다고 하는 이야기를 류대영 님 나름대로 책으로 적었다고 할 수 있어요. 어버이 한 사람은 이제까지 살며 이렇게 삶을 배웠다고 하는 이야기를 아이들한테 들려주면서,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저희 삶을 새롭게 부딪히고 부대끼고 어우러지면서 기쁘게 배우기를 바라는 마음을 함께 물려주려고 하는구나 싶습니다.


  나도 두 아이 아버지로서 늘 새롭게 부딪히고 넘어지면서 새롭게 거듭나고 배웁니다. 늘 길을 잃기에 늘 길을 새로 찾습니다. 어린 아이가 자꾸자꾸 넘어지고 일어서면서 걸음마를 익히듯이, 아이를 돌보는 어버이는 곧잘 어긋나기도 하고 어리숙하기도 한 나날을 보내면서 찬찬히 슬기로운 사람으로 거듭납니다.


  배울 수 있는 마음이기에 어른으로 산다고 할 수 있을까요? 가르칠 수 있는 마음이기에 어른이거나 어버이가 아니라, 배울 수 있는 마음이기에 어른이나 어버이로 살면서 아이들하고 사랑을 나눈다고 할 수 있을까요?


  아이하고 살며 ‘길을 잃는’ 수수한 어버이한테 길동무가 될 《파이어스톤 도서관에서 길을 잃다》가 되리라 하고 느낍니다. 길을 잃는 수수한 어버이 누구나 ‘우리가 걸어온 이야기’를 ‘우리 아이들한테 스스로’ 기쁘게 들려줄 수 있으면 더없이 아름다우리라 하고도 느낍니다. 4349.1.29.쇠.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6 - 시골에서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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린다 2016-01-29 11: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음이 따뜻해지는 리뷰여요ㅎㅎ

파란놀 2016-01-29 13:23   좋아요 1 | URL
고맙습니다. 언제나 마음이 따뜻한 하루 누리셔요 ^^
 

삼월꽃


  별꽃이랑 코딱지나물꽃이랑 봄까지꽃은 이월을 밝히는 눈부신 꽃입니다. 앉은뱅이 봄꽃 세 가지는 마당이며 논둑이며 들판을 덮습니다. 냉이꽃이랑 꽃다지꽃이랑 꽃마리꽃도 앉은뱅이 봄꽃 둘레에서 나란히 앉아서 한들한들 어깨동무를 합니다. 숲에서는 할미꽃이랑 복수초랑 현호색이 곱게 고개를 내밉니다. 삼월로 접어들 무렵에는 참달래(진달래)가 하나둘 기지개를 켜고, 유채꽃하고 갓꽃이 피기도 하고, 닥나무꽃이랑 매화나무꽃이랑 수유나무꽃이 해맑게 흐드러집니다. 삼월에 피어나며 눈부신 꽃을 바라보며 생각합니다. 동백꽃은 삼월꽃일까요, 이월꽃일까요? 제비꽃도 삼월에 방긋방긋 고개를 내미니 삼월꽃이라 할 테지요. 그런데 제비꽃은 삼월뿐 아니라 사월에도, 때로는 이월이나 일월에도 피어요. 그러면 제비꽃은 ‘어느 달 꽃(몇 월꽃)’이 될까요? 사월에는 사월을 빛내는 하얀 딸기꽃이 피고, 딸기꽃에 앞서 앵두꽃이 곱습니다. 요즈음은 앵두꽃이나 딸기꽃을 누리는 사람은 드물고 으레 벚꽃만 누리는데, 달마다 이 꽃하고 저 꽃을 즐기면서 꽃한테 이름을 하나씩 새롭게 붙여 봅니다. 너희는 삼월꽃이로구나, 너희는 이월에도 피고 사월에도 피니 삼월꽃이면서 이월꽃이요 사월꽃이로구나, 너희는 사월에 흐드러지지만 삼월부터 피어나니 사월꽃이면서 삼월꽃이로구나, ……. 봄꽃이고 봄맞이꽃이며 삼월꽃입니다. 봄내음꽃이고 봄바람꽃이며 봄빛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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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자전거


  아이는 어른하고 함께 서면 키도 몸집도 작아요. 아직 작기에 아이요, 앞으로 무럭무럭 자랄 꿈이 있으니 아이입니다. 그래서 이 작은 숨결인 아이를 가리켜 ‘작은이’라 할 수 있어요. 그저 작으니까 ‘작은이’입니다. 그러면 어른은 ‘큰이’라 해 볼 수 있을까요? 몸집만 놓고 본다면 ‘작은이·큰이’처럼 부를 만합니다. 어른은 아이를 낳은 뒤 어린이를 바라보며 ‘큰아이·작은아이’처럼 부르기도 해요. 처음에 낳은 아이는 언니가 되면서 큰아이 자리에 서고, 나중에 낳은 아이는 동생이 되면서 작은아이 자리에 서지요. 어른하고 대면 몸이 작은 어린이는 어른처럼 커다란 자전거를 타지 않습니다. 자그마한 자전거를 타지요. 그런데 어른 가운데에도 자그마한 자전거를 타는 사람이 있어요. 어른이라고 해서 굳이 커다란 자전거만 타야 하지 않거든요. 작고 가벼우면서 예쁜 자전거를 어른도 얼마든지 탈 만합니다. 자, 그러면 어른도 아이도 즐겁게 타는 자그마한 자전거 이름은 무엇일까요? 네, 바로 ‘작은자전거’입니다. 우리가 자전거로 산을 타면 ‘산자전거’가 되고, 바퀴 하나인 자전거는 ‘외발자전거’가 되며, 짐을 실어 ‘짐자전거’가 되고, 이밖에 ‘놀이자전거’나 ‘여행자전거’나 ‘씽씽자전거’나 ‘눕는자전거’가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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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짝마실


  공원이나 놀이터로 놀러 갑니다. 혼자서 놀러 가서는 동무를 만나기도 하고, 어머니나 아버지 손을 잡고 놀러 가기도 하며, 집에서 키우는 귀염짐승인 개를 데리고 놀러 가기도 해요. 마을 한 바퀴를 빙글 도는 나들이를 가기도 하는데, 가까운 이웃한테 놀러 가는 일을 가리켜 ‘마을’이나 ‘마실’이라고도 해요. 여러 집이 모인 곳을 ‘마을’이라고도 하니, 같은 낱말을 놓고 두 가지로 쓰는 셈이에요. 공원에 가는 길이라면 ‘공원마실’이 돼요. 바다에 가는 ‘바다마실’이 있고, 들에 가는 ‘들마실’이나, 숲에 가는 ‘숲마실’이나, 산에 가는 ‘산마실’이 있어요. 극장에 영화를 보러 가는 길이면 ‘극장마실’이나 ‘영화마실’이고, 책방에 가면 ‘책방마실’이요, 도서관에 가면 ‘도서관마실’이지요. 자전거를 타고 떠나서 ‘자전거마실’이 되고, 두 다리로 걸어서 ‘걷기마실’이 됩니다. 골짜기에 가서 여름을 시원하게 누리고 싶으면 ‘골짝마실’이에요. ‘냇가마실’이나 ‘섬마실’도 재미있습니다. 도시에서는 ‘시골마실’을 갈 테고, 시골에서는 ‘도시마실’을 갈 테지요. 서울에서 부산으로 ‘부산마실’을 간다면, 부산에서 서울로 ‘서울마실’을 갑니다. 저녁에 잠자리에 들어 꿈나라로 갈 적에는 ‘꿈마실’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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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바람


  혼자서는 이야기를 하지 못합니다. 나 아닌 다른 사람이 있어야 나눌 수 있는 이야기입니다. 혼자서 하는 말이라면 혼잣말입니다. 말은 다른 사람이 없어도 읊을 수 있으나, 이야기를 하자면 우리 둘레에 다른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니까, ‘말’은 혼자서도 얼마든지 하고, ‘글’은 혼자서도 얼마든지 쓰지만, ‘이야기’가 되려면 적어도 두 사람이 있어야 해요. 이렇게 여럿이 모여서 이야기를 도란도란 나누면 ‘이야기꽃’이 핀다고 해요. 서로서로 재미나게 ‘이야기보따리’를 푼다고 하지요. ‘이야기밥’을 먹는 어린이는 슬기롭게 자라고요, ‘이야기잔치’를 벌이면 다 같이 웃고 노래하면서 ‘이야기마당’이 벌어지는 셈이에요. 이야기는 바다처럼 너르거나 바람처럼 싱그러울 수 있어요. ‘이야기바다’가 되고 ‘이야기바람’이 되지요. ‘이야기밭’이나 ‘이야기나무’는 어떤 느낌일까요? ‘이야기별’이나 ‘이야기나라’나 ‘이야기숲’이라면, 또 ‘이야기빛’이나 ‘이야기동무’나 ‘이야기사랑’이라면 어떤 뜻이 깃들까요? 서로서로 마음을 기울이면서 사이좋게 ‘이야기집’을 가꿉니다.


(최종규/숲노래 . 2016 - 우리 말 살려쓰기/말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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