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책 한 권을 아이들하고



  그림책 《꽃밭의 장군》을 아홉 살 큰아이하고 함께 읽는다. 번역이 살짝 아쉬워서 몇 군데는 연필로 고쳐서 함께 읽는다. 마흔 쪽을 살짝 넘는 ‘이야기가 살짝 긴’ 그림책인데, 그림결이나 이야기결이 무척 상냥하면서 곱다. 무엇보다도 한국에서는 이만 한 너비와 깊이를 드러내는 그림책이 아직 드물거나 없다고 느끼고, 이처럼 따스하고 부드럽게 평화로운 살림살이를 잘 보여주는 이야기책이 앞으로 한국에서도 태어날 수 있기를 비는 마음이다.


  전쟁을 반대한다는 목소리를 담는 인문책도 재미있고, 전쟁이 얼마나 무시무시한가를 그리는 사회과학책도 뜻있다. 그런데 어린이도 아주 쉽고 재미나면서 아름답게 배우면서 깨닫도록 북돋우는 그림책은 재미랑 뜻뿐 아니라 사랑에다가 꿈까지 고스란히 보여준다.


  어른들이 ‘글만 있는 인문책’도 꾸준히 즐기되, 아이들하고 ‘아름다운 이야기가 흐르는 그림책이나 동화책’을 함께 즐길 수 있으면 참으로 재미나면서 사랑스러운 삶터가 될 만하리라 하고 생각한다. 아름다운 손길로 아름다운 그림책을 쥐고, 아름다운 아이들을 우리 아름다운 어른들 무릎에 앉혀서 아름다운 눈길로 함께 읽는다면, 그 얼마나 아름다운 책놀이요 책살림이 될까나. 4349.1.31.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6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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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


  내가 우리 아버지·어머니를 가리킬 적에는 ‘아버지·어머니’처럼 쓰고, 동무나 이웃 아버지·어머니를 가리킬 적에는 ‘아버님·어머님’처럼 씁니다. 다른 집 딸·아들을 높이려는 뜻에서 ‘따님·아드님’처럼 써요. 어버이는 제 아이를 놓고 ‘님’을 붙이지 않아요. 아이도 제 어버이를 놓고 ‘님’을 붙이지 않고요. 그런데 ‘딸·아들’을 높일 적에 ‘딸님·아들님’처럼 안 적어요. ‘ㄹ’이 떨어져서 ‘따 + 님’이고 ‘아드 + 님’이에요. 이와 같은 얼거리로 “하늘에 계신 님”을 가리킬 적에도 ‘하늘 + 님’은 ‘하느 + (ㄹ 떨굼) + 님’이 되어 ‘하느님’처럼 적어요. ‘님’은 누군가를 높일 적에 붙여요. 흔히 사람을 높일 적에 붙이지만, 사람이 아닌 자리에도 붙이지요. ‘해님’이나 ‘달님’은 해와 달을 사람으로 여겨서 섬기려는 뜻이에요. 그래서 ‘땅님·숲님·비님·눈님’이라든지 ‘풀님·꽃님·나무님·벌레님’처럼 쓸 수 있어요. 동무한테는 ‘동무님’이라 할 만하고, 이웃한테는 ‘이웃님’이라 할 만해요. 학교에서 어린이와 푸름이를 가르치는 교사를 두고는 ‘선생 + 님’이라 ‘선생님’이지요. 그러면 학생은 ‘학생님’이라 하면 될까요? 배우는 사람이 학생이니까 ‘배움님’이라 해 볼 수 있을 테고요.


+


징검다리


  치마가 길면 어떤 치마일까요? ‘긴치마’이지요. 바지가 길면 어떤 바지일까요? ‘긴바지’예요. 다리가 길면 어떤 다리일까요? ‘긴다리’일 테지요. 팔이 길면 ‘긴팔’일 테고요. 다리는 우리 몸에도 있지만, 이곳에서 저곳으로 건너가는 자리에도 있어요. 돌로 지은 ‘돌다리’, 나무로 지은 ‘나무다리’, 쇠로 지은 ‘쇠다리’가 있어요. 골짜기에 놓는 ‘흔들다리’가 있고, 나무나 잔가지로 엮은 뒤에 흙을 덮는 ‘섶다리’가 있어요. 냇물이나 도랑이나 웅덩이에 돌을 하나씩 놓는 ‘징검다리’도 있는데, 다리 구실을 하도록 사이사이에 놓는 돌을 가리켜 따로 ‘징검돌’이라 해요. ‘징검돌’은 ‘다릿돌’이라고도 하는데, 여러 사람 사이를 살뜰히 잇는 구실을 슬기롭게 하는 사람을 가리킬 적에 ‘징검돌’과 같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나저나, 이곳하고 저곳을 잇는 다리가 길면 이때에도 ‘긴다리’라 할 수 있어요. 두 곳을 잇는 다리가 커다랗다면 ‘큰다리’라 할 테지요. 서울이나 부산 같은 큰도시를 보면 ‘긴다리·큰다리’ 같은 이름보다는 ‘대교’라는 한자말을 흔히 쓰지만, 길거나 커다란 다리를 ‘한강큰다리’나 ‘광안긴다리’ 같은 이름으로 즐겁게 붙일 만해요.


+


마늘빵


  마늘을 넣어 밥을 지으면 마늘밥이 됩니다. 고구마를 넣어 밥을 지으면 고구마밥이 됩니다. 쑥을 넣으면 쑥밥이요, 팥을 넣으면 팥밭이며, 콩을 넣으면 콩밥입니다. 보리로 지으면 보리밥이고, 쌀로 지으면 쌀밥이에요. 이리하여, 마늘을 써서 빵을 구으면 마늘빵이 될 테지요. 한국사람도 오늘날에는 빵을 널리 먹으니, 마늘로 얼마든지 빵을 구울 만합니다. 영어를 쓰는 나라에서는 ‘마늘’이 아닌 ‘갈릭’이라는 낱말을 쓸 테니 ‘갈릭 브레드’라 해요. 한국말에서는 ‘빵’이지만 영어에서는 ‘브레드’이기도 해요. 그러고 보니 ‘바게트’ 같은 서양말도 한국에서는 그냥저냥 쓰기 일쑤입니다. 한국말로 손쉽게 알아들을 수 있도록 ‘막대빵(막대기빵)’이라 해도 될 텐데 말이지요. 마늘을 써서 구운 빵이기에 ‘마늘빵’이라 하면 누구나 쉽게 알아볼 만하고, 막대기처럼 길게 구운 빵이기에 ‘막대빵’이라 하면 참말 누구나 바로 알아차릴 수 있어요. 팥빵도 한국말로 ‘팥빵’이라 해야 알아듣기에 좋아요. 일본말로 ‘앙꼬빵’이라 하지 않아도 됩니다. 일본말로 쓰는 ‘소보로빵(소보루빵)’도 ‘곰보빵’이나 ‘오돌빵’이나 ‘못난이빵’ 같은 한국말로 고쳐서 쓰면 한결 낫습니다.


+


힘내자


  밥을 먹으면서 새롭게 힘을 내요. 몸을 움직인다든지 다른 것을 움직이려면 ‘힘’이 있어야지요. 힘이 없으면 어쩐지 축 처져요. 힘이 빠지면 고단하거나 고달파요. 힘이 없으니 아무것도 못하기 마련이고, 힘이 여리면 여러모로 벅차거나 버겁기까지 해요. 몸을 살찌우려고 밥을 먹으면서 힘을 낸다면, 마음을 가꾸려고 사랑을 받아들여서 힘을 내요. 생각하는 힘을 키우고, 꿈을 꾸는 힘을 길러요.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면 온누리에 따사로운 기운이 퍼져요. 해님이 곱고 따스히 베푸는 기운을 받아서 꽃이며 풀이며 나무가 자라요. ‘봄기운’을 받아서 씨앗이 싹이 트고 겨울눈이 터져요. 오래달리기를 하다가 힘이 빠져서 축 처질라치면 “자, 조금 더 힘내렴!” 하고 옆에서 북돋아 줘요. 아무래도 안 되거나 못 하겠구나 하고 느껴서 기운이 빠질 적에 “괜찮아, 다시 기운을 내 보자!” 하고 곁에서 빙긋 웃으면서 일으켜세워 주어요. 새롭게 힘내고, 다시금 기운내요. 때로는 “젖 먹던 힘”을 내기도 하는데, 이때에는 한꺼번에 힘을 모아서 내려고 ‘용’을 쓴다고 할 수 있어요. 있는 대로 다 모아서 기운을 쓴다든지, 모질고 단단하게 기운을 내려고 할 적에는 ‘악’을 써요.


(최종규/숲노래 . 2016 - 우리 말 살려쓰기/말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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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금풀, 감풀, 토마토풀


  감을 얇게 썹니다. 동글배추를 얇게 썹니다. 케챱과 마요네즈를 뿌린 뒤에 둘을 섞습니다. 접시에 담아 밥상에 올립니다. 네 살 아이는 ‘감과 동글배추를 섞어서 놓은 접시’를 보더니 “‘감풀’이네.” 하고 말합니다. “그래, 감풀이로구나.” 아이들한테는 감과 풀이 함께 있는 접시입니다. 이 아이들한테 ‘샐러드’라는 이름을 알려줄 수 있지만, 아이들이 처음 느끼면서 스스로 붙인 이름대로 ‘감풀’이라 하기로 합니다. 며칠 뒤, 능금을 얇게 썹니다. 동글배추를 또 얇게 썰어요. 이런 뒤에 마요네즈만 넣어서 섞습니다. 이제는 ‘능금풀’이 됩니다. 며칠이 또 지난 뒤에는 토마토를 얇게 썰어서 동글배추하고 섞습니다. 이제 어떤 풀이 될까요? ‘토마토풀’이 될 테지요. 당근을 넣으면 ‘당근풀’이고, 고구마를 넣으면 ‘고구마풀’이 돼요. 달걀을 넣으면 ‘달걀풀’이고, 딸기를 넣으면 ‘딸기풀’입니다. 자, 우리 함께 감풀도 능금풀도 토마토풀도 모두 맛나게 먹자. 밥도 맛나게 먹고, 국도 맛나게 먹자.


+


감알빛, 감잎빛


  가을에 감알을 바라보며 생각합니다. 감은 ‘감빛’으로 나타냅니다. 살구는 ‘살구빛’이고, 앵두는 ‘앵두빛’입니다. 딸기는 ‘딸기빛’이에요. 그런데 딸기꽃이나 앵두꽃은 하얗습니다. 그래서 빨강을 나타내려면 ‘앵두알빛’이나 ‘딸기알빛’이라 가르고, 하양을 나타내려면 ‘앵두꽃빛’이나 ‘딸기꽃빛’처럼 새롭게 적어 볼 수 있어요. 찔레를 살피면, 꽃은 하얗고 열매는 빨개요. 그러니 ‘찔레꽃빛’하고 ‘찔레알빛’도 새삼스레 다르게 적을 만합니다. 이처럼 ‘석류꽃빛’하고 ‘석류알빛’을 나눌 수 있고, ‘감알빛’하고 ‘감꽃빛’을 쓸 만합니다. 여기에 한 가지를 덧붙인다면, 잎빛을 말할 수 있으니, ‘감잎빛’도 말할 만해요. 잎빛은 모두 풀빛이라 할 테지만, 나무나 풀마다 잎빛이 저마다 다르기에 ‘딸기잎빛’이나 ‘앵두잎빛’이나 ‘찔레잎빛’ 같은 빛깔말을 써 볼 만합니다. 그리고 감알을 놓고도, ‘풋감알빛·말랑감알빛·단감알빛’처럼 갈라서 쓸 수 있어요. ‘감잎빛’을 말할 적에도 새봄에 돋는 옅푸른 감잎빛이랑 한여름에 짙푸른 감잎빛이랑 가을에 누렇게 물드는 감잎빛은 저마다 다르니, ‘봄감잎빛·여름감잎빛·가을감잎빛’ 같은 낱말을 새롭게 지어서 기쁘게 나눌 만합니다.


+


창문천


  마루문하고 창문에 쓰려고 천을 끊습니다. 마루문에 대는 천은 ‘마루문천’이나 ‘마루천’이라 할 수 있고, 창문에 대는 천은 ‘창문천’이나 ‘창천’이라 할 수 있어요. 요새는 흔히 ‘커튼’이라고 하지요. 어떤 천을 쓰면 좋을까 하고 생각하다가, 창문에 대는 두꺼운 천은 겨울에 쓰기 때문에 눈송이가 펄펄 내리는 무늬가 박힌 천을 맞춥니다. 그런데 이 천을 본 우리 집 아이들이 문득 “사랑이 가득 있네. ‘사랑천’이야?” 하고 묻습니다. 그러고 보니까, 이 천에는 눈송이뿐 아니라 ‘사랑’을 나타내는 ‘하트’ 무늬가 가득 있습니다. 다른 천에는 사슴 무늬가 큼직하게 있습니다. 이 무늬를 보더니 어느새 “와, 이건 ‘사슴천’이네!” 하면서 웃습니다. 나는 마당에 나가서 길다란 대나무를 들고 들어옵니다. 이레쯤 앞서 미리 잘라 온 대나무입니다. 마루문 길이에 맞게 자른 대나무에 천을 엮습니다. 이리하여, 마루문하고 창문에 ‘사랑천’하고 ‘사슴천’을 대면서 ‘마루문천’하고 ‘창문천’을 새로 꾸밉니다.


+


물뿅뿅이


  남녘에서 ‘거위’라고 하면 오리하고 닮았으나 목이 더 길고 덩치도 한결 큰 새를 가리켜요. 그렇지만 북녘에서 ‘거위’라고 하면 “사람 몸으로 들어와서 사는 벌레”인 ‘회충’을 가리켜요. 어느 모로 본다면 ‘회충’은 ‘거위(붙어살이벌레)’를 가리키는 한자말이라고 할 만합니다. 그러면 북녘에서는 오리하고 닮은 새를 어떤 이름으로 가리킬까요? 북녘에서는 이때에 ‘게사니’라는 이름을 써요. 그리고, 북녘에서는 ‘물뚱뚱이’라는 이름으로 가리키는 짐승이 있어요. 자, 남녘에서는 ‘물뚱뚱이’를 어떤 이름으로 가리킬까요? 바로 ‘하마’입니다. 물에서 살기를 좋아하면서 몸집이 뚱뚱한 짐승이라고 하기에 북녘에서는 ‘물뚱뚱이’라는 이름을 붙여요. 우리 집 아이들하고 읍내 가게에 갔다가 ‘물게임기’라는 장난감을 보았어요. 이 물게임기를 가만히 들여다보는 아이들은 “그거 있잖아요. 물 뿅뿅 쏘는 거. 그거 사 주세요.” 하고 부릅니다. 그래요, 아이들 말마따나 물을 뿅뿅 쏘는 장난감은 ‘물뿅뿅이’입니다. 단추를 눌러서 바람을 뿅뿅 넣으면 거품이 보글보글 올라오면서 고리가 춤을 추는데 작은 막대기에 꽂힐랑 말랑 흔들려요.


(최종규/숲노래 . 2016 - 우리 말 살려쓰기/말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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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랑 놀자 200] 머리집



  옛날에는 머리카락이 길어도 자르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고 해요. 길게 흘러내리는 머리카락을 곱게 땋아서 다녔다지요. 곱게 땋은 머리마다 댕기를 묶어서 한결 예쁘게 건사했대요. 사내도 가시내도 머리카락을 굳이 자르지 않았고, 턱이나 코밑에 돋는 나룻도 따로 밀지 않았어요. 오늘날에는 ‘긴머리’가 좋으면 긴머리대로 두고, 짧게 치는 머리가 좋으면 ‘짧은머리’대로 돌보면서 살아요. 머리카락이 좀 지저분해 보인다면 ‘다듬기’를 하러 ‘머리집’이나 ‘머리방’이나 ‘미용실’에 가지요. 머리카락이 길면 머리핀을 꽂거나 머리띠를 둘러서 여미어요. 머리카락은 그냥 ‘자르’거나 ‘깎’을 수 있어요. 때로는 ‘볶기·말기·꾸미기’를 하지요. 머리집에 가면 으레 ‘커트’라는 영어를 쓰는데, 짧게 칠 적에는 ‘치기·짧게치기·머리치기’라 해 볼 수 있어요. 치마가 짧으면 ‘짧은치마·깡똥치마’라 하듯이, 머리카락이 짧으면 ‘짧은머리·깡똥머리’라 할 만해요. 검은 머리가 더 빛나도록 머리를 감아요. 머리를 감은 뒤에는 바람에 말릴 수 있고, 따로 ‘머리말리개’를 쓸 수 있습니다. 머리말리개를 가리켜 ‘헤어드라이어’라고도 해요. 4349.1.26.불.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6 - 우리 말 살려쓰기/말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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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슬란 전기 4 - 만화
아라카와 히로무 지음, 다나카 요시키 원작 / 학산문화사(만화) / 2015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만화책 즐겨읽기 603



‘종(노예)’이 아닌 ‘동무’가 되는 길

― 아르슬란 전기 4

 다나카 요시키 글

 아라카와 히로무 그림

 김완 옮김

 학산문화사 펴냄, 2015.12.25. 5500원



  만화책 《아르슬란 전기》(학산문화사,2015) 넷째 권에는 ‘아르슬란’이 노예제와 신분제를 더 깊이 느끼는 이야기가 흐릅니다. 전제군주라 할 사람을 죽였으나 노예들은 오히려 ‘주인님’을 죽였다면서 길길이 날뛰는 모습을 지켜보아야 하거든요.


  왜 그러한가 하면, 종이 되어서 지내는 이들은 ‘시키는 일’만 하면 밥하고 잠자리를 마음껏 누립니다. 신분하고 계급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날 길이 없다고 여기는 사람들은 남이 시키는 대로 따라야 하는 종이 되더라도 ‘넉넉한 밥’하고 ‘느긋한 잠자리’라면 고맙습니다. 여기에다가 돈을 몇 푼 얹어 준다면 더욱 고맙지요. 게다가 전제군주 밑을 떠난다 한들 온누리는 온통 싸움터예요. 어디를 가더라도 목숨을 건사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이곳에서 종살이를 벗어나도 다른 곳에서 사로잡혀서 똑같이 종살이를 해야 하기 마련입니다.



“‘타인에게도 소중한 것이 있다.’ 그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은 야만인이라고 나르사스가 그랬지.” (34∼35쪽)


“나는 그대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다. 다륜이나 나르사스를 버리고 내가 그대를 선택한들, 다음에는 그대를 버릴 날이 오지 않으리라 어찌 확신할 수 있나?” (49쪽)



  만화책 《아르슬란 전기》에는 피가 튀고 사람이 죽는 싸움터가 나옵니다. 언제 어디에서나 수많은 사람들이 거리낌없이 죽습니다. 그야말로 아주 쉽게 죽고 죽입니다. 목숨을 건 싸움을 이겨내지 못하면 그냥 죽어야 합니다.


  오늘날 사회를 돌아보면 칼부림이나 총부림은 드뭅니다. 그렇지만 회사나 공장을 다니면서 일삯(돈)을 벌지 못하면 목숨줄이 쉬 끊어진다고 할 만합니다. 집삯을 치르지 못하면 집에서 쫓겨나야 하지요. 밥값을 내지 못하면 배를 곯아야 해요. 아르슬란이라는 사람이 살던 지난날에는 전제군주가 있다면, 오늘날 사회에는 돈을 휘두르는 권력자가 있어요. 오롯이 자급자족을 하지 않는다면 이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어요.



“미리 말씀드렸다 해도 전하께서 수긍하지 못하셨을 겁니다. 세상에는 경험하지 않고서는 결코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있다 생각하였기에 일부러 만류하지 않았습니다.” (75쪽)


“관대한 주인 밑에서 노예로 살아가는 것, 이만큼 편한 삶은 없습니다. 스스로 생각할 필요도 없고, 그저 명령만 따르면 집도 음식도 나오니까요. 5년 전의 저는 그 사실을 몰랐던 겁니다.” (77쪽)



  우리는 서로 동무가 될 수 있을까요? 우리는 서로 믿고 아끼면서 보살필 수 있을까요? 우리는 서로 어깨를 겯고 삶을 짓고 사랑을 지으며 살림을 짓는 동무로 지낼 수 있을까요? 우리는 싸움이나 전쟁이 아닌, 평화와 평등으로 나아가는 길을 걸을 수 있을까요?


  만화책 《아르슬란 전기》에서 아르슬란이 말하지만, ‘신분’을 따진다면, 우리는 그야말로 서로 동무가 되기 어렵습니다. 같은 신분이나 계급일 때에만 동무가 된다지만, 참말 같은 신분이나 계급일 때에 ‘동무 사이’로 지낼까요? 같은 계급이란 무엇일까요? 다른 신분이란 무엇일까요? 서로 노예 신분이어야 동무로 지낼 만할까요? 서로 임금이나 신하쯤 되어야 동무로 지내는가요?



“정의란 태양이 아니라 별과도 같은 것일지 모릅니다, 전하. 별은 하늘에 수없이 많으며, 서로 빛을 상쇄하고 있지요.” (78쪽)


“나는 너와 친구가 되고 싶다. 만약 내가 싫지 않다면 친구가 되어 줄 수 없겠느냐.” “저는 해방노예의 자식입니다. 친구라니, 전하와 저는 신분이 달라도 너무 다릅니다.” “신분을 따진다면 나는 아무하고도 친구가 될 수 없어!” (182∼183쪽)



  대통령이 있는 나라에는 민주가 있다고 하기 어렵습니다. 대통령이라고 하는 권력 꼭대기가 있기 때문이요, 대통령을 둘러싼 크고작은 숱한 권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대통령을 건사하는 군대와 전쟁무기라고 하는 권력이 있어요.


  대통령이 있다고 하더라도, 신동엽 님이 쓴 시에 나오는 ‘막걸리를 자전거 꽁무니에 매달고 시인한테 찾아가는 대통령’쯤이 있지 않고서야 민주나 평화란 까마득한 노릇입니다. 청와대에서만 사는 대통령이 있는 나라에는 민주나 평화란 아득한 노릇입니다.


  함께 밥을 먹을 때에 동무입니다. 함께 웃고 노래할 수 있는 살림일 때에 동무입니다. 모시는 사람도 다스리는 사람도 섬기는 사람도 거느리는 사람도 없이, 누구나 한손에 호미를 들고 한손에 부엌칼을 쥘 적에 비로소 평화와 평등과 민주가 자랄 수 있다고 느낍니다. 4349.1.30.흙.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6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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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miley 2016-01-30 22: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밌겠어요!
그리고 제 친구신청 좀 받아주세요.

파란놀 2016-01-31 07:23   좋아요 0 | URL
2권은 살짝 재미없었지만 3권 끝자락과 4권으로 접어드니
다시 재미가 살아났습니다 ^^;;

알라딘서재에서는
친구는
신청만 하시면 서로 친구가 되어요 ^^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