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밭의 장군 뜨인돌 그림책 24
재닛 차터스 글, 마이클 포먼 그림, 김혜진 옮김 / 뜨인돌어린이 / 2011년 3월
평점 :
절판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620



‘꽃밭 대통령’과 ‘텃밭 장군님’을 기다리며

― 꽃밭의 장군

 재닛 차터스 글

 마이클 포먼 그림

 김혜진 옮김

 뜨인돌어린이 펴냄, 2011.3.7. 11000원



  아이들하고 살면 아이들을 돌보는 하루를 누리지요. 어버이라면 아이들을 돌보고 가르치는 데에 온힘을 쏟아요. 그런데, 어버이는 아이들을 돌보기만 하지 않아요. 아이들은 언제나 그 자그마한 손으로 어버이를 감싸 주고 어루만져 줍니다. 어버이는 아이들을 씻기고 입히고 먹이는데, 아이들도 자그마한 손으로 ‘돌봄질’을 배워서 고스란히 따라합니다. 그리고, 아이들은 어버이한테서 무엇이든 새롭게 배울 뿐 아니라, 어버이를 새롭게 가르쳐요.


  까르르 웃으면 기쁨이 샘솟는다는 대목을 온몸으로 가르치는 아이들이에요. 낭낭낭 노래하면 즐거움이 자란다는 대목을 온몸으로 가르치는 아이들이지요. 어버이는 말을 가르치고 살림이나 일이나 심부름을 가르치기도 하지만, 아이들은 새로운 말을 짓는 놀이를 어버이한테 가르칠 뿐 아니라, 살림이나 일이나 심부름을 웃고 노래하면서 기쁨이 되도록 하는 몸짓을 가르쳐 줍니다.



그는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장군이 되고 싶었고 자기 군대가 세상 모든 나라의 장군들에게 칭찬 듣기를 바랐습니다. 그래서 조드퍼 장군은 날마다 무기를 닦고, 군복을 다리고, 군화에 광을 내도록 병사들을 훈련시켰습니다. (4쪽)



  재닛 차터스 님이 글을 쓰고, 마이클 포먼 님이 그림을 그린 《꽃밭의 장군》(뜨인돌어린이,2011)이라는 그림책을 가만히 읽으면서 생각합니다. 나는 이 그림책을 아홉 살 큰아이하고 방바닥에 함께 엎드려서 천천히 읽습니다. 서로서로 한 줄씩 두 줄씩 소리내어 읽습니다. 이동안 여섯 살 작은아이는 곁에서 말소리를 듣지요.


  그림책 《꽃밭의 장군》에 나오는 ‘조드퍼 장군’은 처음에는 수많은 여느 장군하고 엇비슷합니다. ‘싸움터에서 이름을 드날리는 장군’이 되고 싶다는 꿈을 품습니다. 조드퍼 장군은 이녁이 다스리는 부대에서 군인들이 늘 훈련을 잘 받도록 북돋우고, 군화에 먼지 한 점 내려앉지 않도록 지켜보았습니다. 무기를 닦도록 시키고, 무기를 잘 다루도록 이끌지요.




부대로 돌아가는 길에 숲 속 동물들이 조드퍼 장군의 눈에 띄었습니다. 수없이 지나다닌 길이었지만 말을 타고 너무 빨리 지나쳤기 때문에 보지 못했던 것이었습니다. 장군은 다람쥐, 토끼, 들쥐, 고슴도치, 제비, 멧비둘기 등을 보았습니다. 보기 힘든 공작도 보았지요. (11쪽)



  그림책 이야기가 이대로 흐른다면 재미없을 테지요? 곰곰이 들여다보면 군인이 군대에서 하는 일이란 참 재미없어 보여요. 무기를 닦고, 군화를 닦고, 내무반을 치우고, 옷을 깔끔하게 다려입고, 그러면서 훈련할 적에는 옷을 온통 더럽히면서 뒹굴고, 다시 청소하고 군화와 무기를 닦고, 총칼을 잘 다루는 솜씨를 갈고닦고 …….


  군대를 다녀온 어버이로서 군대를 돌아봅니다. 군대에서 하는 일에는 ‘생산’이 없습니다. 집에서 하는 일, 이른바 집안일은 ‘집살림’이 될 수 있어요. 집살림을 알뜰살뜰 가꾸면 아이들도 즐거워요. 그렇지만 군대에서 ‘군대일’이나 ‘군대살림’을 알뜰살뜰 가꾸면 누구한테 즐거울까요? 바로 몇몇 사람 ‘장군’이나 ‘정치 우두머리(대통령)’한테 즐겁겠지요.


  전쟁무기를 잘 닦아서 번쩍번쩍 빛나도록 하면 무엇이 좋을까요? 부엌칼을 잘 갈거나 호미를 잘 다스리도록 하면 무엇이 좋을까요? 전쟁무기는 ‘누군가를 적으로 삼아서 죽이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전쟁무기는 아무것도 빚지(생산하지) 않습니다. 전쟁무기는 모든 것을 없앨(파괴) 뿐입니다.


  집안일이나 집살림은 모든 것을 새롭게 빚고(생산하고) 살리지요. 살리는 일이기에 ‘살림’이면서 ‘집살림’이고, 집안을 살려서 웃음과 노래가 흐르도록 하는 사람이 ‘살림꾼’이에요. 아무튼, 그림책 《꽃밭의 장군》에 나오는 조드퍼 장군은 여느 날하고 똑같이 말을 타고 어느 길을 가다가 그만 말에서 미끄러져요. 그만 꽃밭에 나자빠지지요.




조드퍼 장군은 오랫동안 꽃과 벌을 지켜보았습니다. 얼마나 평화롭던지요. 전에는 왜 이런 것들을 알아보지 못했을까요? 한참 후 자리에서 일어났을 때, 장군은 자기가 꽃을 깔고 앉았다는 것을 알고 당황했습니다. 꽃은 처지고 슬퍼 보였습니다. 장군은 꽃밭을 떠나고 싶지 않았지만 병사들에게 돌아가야만 했습니다. 장군은 꽃 두 송이를 꺾어 가기로 했습니다. (16쪽)



  꽃밭에 나자빠진 장군은 다친 데가 없습니다. 그러나 이날부터 무엇인가 달라져요. 왜냐하면, 꽃밭에 나자빠지면서 ‘꽃’을 처음으로 느꼈거든요. 이제껏 군사훈련만 하고 ‘전쟁 영웅’이 되기를 꿈꾸던 장군인데, 이렇게 많은 꽃이 이렇게 곱게 피어서 이렇게 향긋한 숨결을 이루는 줄 처음으로 느껴요.


  수많은 병사를 거느리면서 전쟁무기로 이웃나라를 윽박지를 수 있던 ‘장군님’이지만, 숲을 걸어가면서 ‘벌 한 마리’를 보며 움찔 놀라요. 벌이 저를 쏠까 봐 두려워합니다.


  참으로 웃기지요! 총칼로 사람을 아무렇지 않게 죽일 수 있는 훈련을 하면서 ‘벌 한 마리’가 무섭다니요! 그런데 숲에서 벌은 장군을 쳐다보지 않아요. 벌은 꿀과 꽃가루를 모으느라 바쁘기에 ‘장군 따위는 쳐다보지 않’는다고 해요.




다음날 아침, 조드퍼 장군은 병사들에게 군대를 떠나 집으로 가서 각자의 일을 하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 나라가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곳이 되도록 도와 달라고도 했지요. 병사들은 모두 기뻐했습니다. 하지만 조드퍼 장군보다 더 기쁜 사람은 없었습니다. (21쪽)



  그림책 《꽃밭의 장군》에 나오는 조드퍼 장군은 말에서 떨어져서 꽃밭에 드러누우며 한낮을 보낸 뒤에 숲길을 걸어서 부대로 돌아오고 나서 ‘아주 다른 사람’이 됩니다. 전쟁훈련이나 전쟁무기가 얼마나 부질없는가를 깨닫습니다. 그래서 ‘부대 해산’을 하기로 다짐해요. 모든 병사한테 ‘집으로 돌아가라’고 시킵니다. 집으로 돌아가서 ‘이제까지 하던 일을 다시 하라’고 시켜요.


  집으로 돌아간 병사는 이제 ‘군인’이 아닌 ‘아버지’가 됩니다. 때로는 ‘마을 젊은이’가 되지요. 때로는 ‘멋진 일꾼’이 되어요. 들에서 바다에서 숲에서 마을에서 저마다 솜씨를 뽐내면서 제 고향마을을 아름답게 가꾸는 ‘새로운 사람’으로 즐겁게 노래하면서 살림을 짓습니다.


  조드퍼 장군은 ‘군부대’를 바꾸기로 합니다. 군부대에 학교를 세우고 공원을 두며 밭을 일구지요. 짙푸른 텃밭하고 눈부신 꽃밭을 일구어요. 이리하여 조드퍼 장군은 이제부터는 ‘장군’이 아니라 ‘시골 아재’로 거듭납니다. 묵은 탈을 벗고 새로운 옷을 입어요. ‘이름난 장군’으로 나아가는 길은 내려놓고 ‘사랑스러운 어른’으로 일어서는 길을 걸어요.


  아이들하고 오순도순 이 그림책을 읽으며 생각합니다. 우리가 사는 이 나라에서도 군부대 장군님들이 ‘부대 해산’을 하면 얼마나 아름다울까 하고 생각해요. 남북녘 정치 지도자가 모여서 ‘남북녘 군대 해산 + 남북녘 전쟁무기 없애기’를 하자면서 다짐을 하고 도장을 꾹 찍으며, 서로서로 젊은 일꾼이 고향마을로 돌아가서 아름다운 마을살림을 가꾸도록 북돋우면 얼마나 사랑스러울까 하고도 생각합니다.


  군부대 유지하고 전쟁무기 생산에 돈을 쓰지 말고, 마을을 살리고 집살림을 돌보는 데에 슬기롭게 돈을 쓰면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다운 나라가 되고 지구별이 될 테지요? 남북녘 정치지도자와 장군님이 모두 ‘꽃밭 대통령’이 되고 ‘꽃밭 장군님’이 될 수 있는 날을 빌어 봅니다. 4349.2.2.불.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6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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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래터 치우면서 읽는 시집



  마을 어귀 빨래터를 치운다. 아이들은 아버지 둘레에서 신나게 ‘겨울 물놀이’를 한다. 손발이 시리도록 물이끼를 걷어낸 뒤에 손발을 말리려고 빨래터 울타리에 걸터앉는다. 해바라기를 하면서 시집을 펼친다. 손에 묻은 물기가 마른 뒤에 천천히 넘긴다. 겨울바람과 겨울볕을 함께 맞이하면서 읽는 시집이 싱그럽다. 시집에 깃든 이야기도 반갑다. 두 아이는 더 놀고 싶어 하지만, 이 겨울바람을 살짝 쐬고 들어가면 어떠할까? 우리는 우체국에도 나들이를 다녀와야 하지. 아이들을 살살 달래면서 집으로 들어온다. 4349.2.2.불.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6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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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랑 놀자 202] 너희들



  어른들은 아이들을 바라보면서 ‘너희’나 ‘너희들’ 하고 말합니다. 아이들은 어른들을 마주보면서 ‘너희’나 ‘너희들’ 하고 말하지 않아요. ‘너희·너희들’은 손윗사람이 손아랫사람한테 쓰는 말이거나, 또래 사이에서 쓰는 말이에요. “너희 집에 놀러갈게”라든지 “너희들끼리 놀고 나를 안 불렀네”처럼 쓰지요. 내가 어머니나 아버지를 가리킬 적에 “우리 어머니(우리 엄마)”나 “우리 아버지(우리 아빠)”처럼 말해요. ‘우리’라고 하는 한국말은 “부르는 사람”하고 “불리는 사람”을 함께 아우르면서 쓰거든요. “나를 낳은 어머니”라는 대목을 좀 힘있게 나타내고 싶어서 “내 어머니”처럼 쓰기도 하는데, ‘내’가 아닌 ‘나의’를 넣어서 “나의 어머니”처럼 쓰면 올바르지 않아요. 한국말은 ‘내’이거든요. “너희 집”이나 “네 언니”처럼 말해야 올바르고, “너의 집”이나 “너의 언니”처럼 쓰면 올바르지 않아요. 한국말은 ‘네’이거든요. 그런데 어린이가 보는 영어사전에까지 ‘my’라는 영어를 ‘나의’로 잘못 적기 일쑤라서 ‘나의·너의·우리의’ 같은 말투가 잘못 퍼져요. 일제강점기에 잘못 들어와서 퍼진 일본 말투가 아직까지 사그라들지 않았어요. 4349.1.26.불.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6 - 우리 말 살려쓰기/말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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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없는 사진말

17. 사진비평 없는 사진잡지



  사진비평이 없는 사진잡지를 읽는다. 첫 쪽부터 마지막 쪽까지 읽은 뒤 덮는다. 두 달째 사진비평이 없는 사진잡지를 읽으면서 이런 사진잡지를 구태여 정기구독을 해야 하는지 돌아본다. 이제 우리 사진책도서관에서는 구독을 끊어야겠다.


  ‘사진비평’이란 무엇인가? 사진을 비평하는 일이 사진비평이고, ‘비평’이란 ‘말하기’이다. 그러니까, “사진을 말하는 이야기”가 없는 사진잡지를 읽으면서 고개를 갸우뚱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그 사진잡지는 무엇을 다루었는가? 전시회 소식을 다루었고, 전시회에 걸린 작품을 다루었으며, 전시회를 연 사람들을 만난 전문가 생각을 다루었다.


  전시회를 다루는 일은 사진비평인가, 아닌가? 전시회 다루기는 ‘전시비평’이다. 그리고, 전시회라고 해서 모두 ‘사진전시’를 하지 않는다. 설치예술 전시도 하고, ‘사진 매체를 빌어서 예술을 그리려고 하는’ ‘예술작품 전시’도 한다. 그러니까, 사진을 사진으로서 마주한 사진을 다루는 이야기는 빼놓고서, ‘전시’하고 ‘예술’을 다루는 이야기만 흐르고 마는 오늘날 사진잡지라고 하겠다. 이달치 그 사진잡지를 보니, 여기에 ‘디자인’을 더 다룬다. 그래서 ‘설치작품 전시 + 예술 + 디자인’, 이렇게 세 가지를 다루는 사진잡지가 되는 셈이다.


  왜 사진잡지에서 사진을 다루지 않을까? 오늘날 전문가하고 작가는 ‘사진가’이기를 바라지 않기 때문이다. ‘손에 사진기를 쥐었’어도 ‘아트’나 ‘예술’을 하고, 사진기를 빌어서 ‘설치예술 기록’을 하거나 ‘설치예술 표현’을 한다. 이러면서 사진비평가였던 이들조차 ‘사진비평’은 그만두고 ‘전시비평’하고 ‘예술비평’으로 돌아선다.


  문학잡지에서 문학을 비평하지 않으면 문학잡지가 될까? 문학잡지도 사진이나 그림이나 만화를 얼마든지 비평하는 자리를 마련할 수 있다. 그러나 문학잡지는 ‘창작하는 문학’하고 ‘비평하는 문학’ 이 두 가지가 함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오늘날 한국에서 사진잡지는 ‘창작하는 사진’이나 ‘비평하는 사진’이 아니라 ‘예술하는 몸짓’하고 ‘예술하는 비평’만 흘러넘친다. 4349.2.2.불.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6 - 사진비평/사진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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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이하의 날들
김사과 지음 / 창비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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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 삶읽기 229



‘더럽혀진 한국말’로 문학을 하는 어려움

― 0 이하의 날들

 김사과 글

 창비 펴냄, 2016.1.22. 14000원



  소설을 쓰는 김사과 님이 선보인 산문책 《0 이하의 날들》(창비,2016)은 소설로는 풀어내기 어렵다고 여긴 이야기를 홀가분하게 풀어낸 이야기책이라 할 수 있습니다. 소설하고는 다르게 풀어내려는 이야기를 들려주고, 소설로는 쓸 수 없다고 여기는 이야기를 적바림하는구나 싶습니다.



그 말을 들은 순간 나를 줄곧 따라다니던 그 이상한 느낌의 정체를 깨달을 수 있었다. 지금 우리가 도시를 불태우고 있다. 어, 그런 생각이 들었다. (12쪽)


총과 술과 마약과 여자, 화가 나서 돌아버린 미국 남자들을 생각한다. 그들의 삶은 분노로 가득했다. (51쪽)



  소설도 문학이고 산문도 문학입니다. 어떤 갈래로 글을 쓰든 모두 문학입니다. 다만, 소설에서는 굳이 ‘나(내 이름)’라는 사람이 민낯으로 드러나지 않도록 할 수 있다면, 산문에서는 언제나 ‘나’라는 사람이 민낯으로 드러나요. 소설에서는 내 모습이나 내 얼굴이 아닌 이웃 모습이나 이웃 얼굴을 그린다고 여길 수 있지만, 산문에서는 모든 글마다 내 마음이나 내 생각을 밝힌다고 할 만합니다.


  김사과 님은 산문책 《0 이하의 날들》에서 몇 가지를 자주 다룹니다. 먼저 ‘화(분노)’를 자주 다루고, ‘무라카미 하루키’를 자주 다루며, ‘글과 말’을 자주 다루어요. 김사과 님이 이제껏 빚은 문학은 ‘화(분노)’가 바탕이었다고 이 책에서 곧잘 밝힙니다. 누구보다 글쓴이 스스로한테 성을 내고, 글쓴이를 둘러싼 터전에 성을 내며, 글쓴이가 태어난 이 나라와 사회에 성을 냅니다.



나는 빛에 대해 아는 것이 하나도 없었고 단지 압도된 상태로 끝없이 빛, 한 단어를 반복할 수 있을 뿐이었다. 아니 나는 기록하고 싶지 않았다. 기록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것을 나누고 싶었다. (72쪽)


사실 난 한 번도 상상을 시도해 본 적이 없었다. 단지 절망 앞에서 화를 냈을 뿐, 거기에 제대로 맞설 의지를 가져 본 적이 없다. (83쪽)



  한국에서 태어나 사는 사람이라면 신문을 펼치거나 텔레비전을 켤 적마다 으레 ‘성을 낼’ 만하지 않으랴 싶습니다. 안타깝거나 안쓰럽거나 딱한 사건하고 사고 이야기가 그득하거든요. 신문이나 텔레비전을 들추지 않더라도, 학교를 다니거나 회사를 다니면서 기쁨이나 즐거움을 한가득 누리는 사람은 그리 안 많아 보이기도 해요.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입시지옥인 얼거리이고, 이 얼거리는 꿈쩍을 안 합니다. 대학교는 취업지옥이 되기 일쑤이고, 대학교를 마친 뒤에 회사나 공공기관이나 공장에 일자리를 얻어도 기쁨이나 즐거움으로 일하기는 만만해 보이지 않아요. ‘영업용 웃음(감정노동)’이 아니라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기쁜 웃음’으로 일하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궁금한 노릇입니다. 이리하여, 김사과 님이 선보이는 산문책 《0 이하의 날들》은 바로 이 같은 대목을 ‘소설가 눈높이’로서 가볍게 바라보고 글로 갈무리해서 들려줍니다.



한국의 역사를 돌아보면 중국어, 일본어, 영어로 이어지는 외국어들이 한국 사회 내에서 실질적 권한과 힘을 가져왔다. 다시 말해 한국어는 한국에서 공적인 도구로, 즉 실질적 결정권을 행사하는 언어로 사용된 적이 없다. (105쪽)


소설가가 되는 과정에서 나는 마치 외국어를 배우듯이, 의도적으로 내 모국어인 한국어를 백지 상태에서부터 쌓아올렸다. 왜냐하면 내가 사용하는 한국어가 싫었기 때문이다. 내 한국어가 어설픈 번역 어투와 고루한 일본식 한자들, 그리고 논술식 글쓰기에 의해 더럽혀져 있다고 느꼈다. (148쪽)



  문학을 하는, 그러니까 ‘글을 쓰는’ 김사과 님은 이녁 산문책에서 ‘글쓰기’나 ‘문학하기’를 둘러싸고 ‘한국말’이란 무엇인가 하는 대목을 찬찬히 돌아봅니다. 한국 역사를 돌아보면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한국말은 여태 한 번도 ‘공적인 도구’, 그러니까 ‘공공 언어’로 쓰인 적이 없다고 합니다.


  이 말은 더없이 옳습니다. 한국은 ‘한국말’을 쓰는 나라입니다만, 한국 정치나 사회를 살피면 지난날에는 중국말을 썼고, 개화기를 지나 일제강점기를 맞이하면서 일본말을 썼어요. 해방 뒤에는 ‘일본 한자말’하고 ‘중국 한자말’이 뒤섞인 ‘국한문혼용’ 말투였는데, 토씨만 한글인 말투였어요. 겨우 ‘한글 쓰기’가 자리를 잡을 즈음 영어가 무시무시한 바람을 타고 찾아왔지요. 게다가 수없이 바뀌는 입시제도에 맞추어 ‘논술 글쓰기’가 태어나기까지 하니 ‘말다운 말’은 자리를 못 잡습니다. 한국사람 스스로 ‘한국말다운 한국말’을 쓰기란, 오히려 더 어려운 모습이 돼요.


  그러니, 김사과 님이 들려주는 이야기마따나, ‘더럽혀진 한국말’로 문학을 하는 어려움이란 이루 말할 수 없이 크다고 할 만합니다. 참말로 한국말이란 무엇일까요? 일본 한자말도, 번역 말투도, 일본 번역 말투도, 영어도, 대놓고 쓰는 일본말도, 중국 한자말도, 한문 번역 말투도, …… 이런 자질구레한 모든 것을 신나게 버무리는 말이 바로 ‘한국말’일까요?



10대 후반의 고등학교 중퇴생이 할 수 있는 일은 뻔했다. 뻔한 일들을 닥치는 대로 했다. 시간당 천오백 원을 받고 사장에게 성희롱을 당하며 돈까스집에서 일하기도 했다. (197쪽)


까페로 들어선 순간 문 밖의 변두리 동네적 요소들과 완벽하게 격리된다. 이제 내 앞에 펼쳐진 것은 쾌적한 온도의 실내, 향긋한 커피 냄새와, 여유롭게 배치된 의자와 탁자들, 깔끔한 옷차림의 사람들, 적절한 음량으로 흘러나오는 음악이다. (237쪽)



  고등학교를 그만두며 지냈다는 김사과 님은 이제 ‘시급 천오백 원’을 받으면서 ‘돈까스집에서 성희롱까지 받는’ 일자리에 서지 않습니다. ‘변두리 동네’에 나들이를 가더라도 스타벅스를 마음 놓고 드나들 만한 살림이 됩니다. 산문책 《0 이하의 날들》은 첫머리로 미국 어느 도시에서 지낸 이야기를 쓰고, 곳곳에 여러 나라를 여행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고교 중퇴 알바생’에서 ‘세계여행을 하는 소설가’로 탈바꿈했습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탈바꿈한 삶에서 김사과 님은 ‘성내는 삶’이 사라졌다고 할 만할까요? 산문책 《0 이하의 날들》을 읽는 내내 헤아리니, 김사과 님은 아직 ‘성내는 마음’이 사그라들지 않습니다. 이 책에서 김사과 님은 “한 번도 상상을 시도해 본 적이 없었다(83쪽)” 하고 밝힙니다. “절망 앞에서 화를 냈을 뿐(83쪽)”이라고 덧붙여요. 산문책 마지막 줄까지 ‘상상’을 펼치는 삶이나 이야기는 흐르지 않고 ‘절망에 화를 내는’ 삶이나 이야기만 흐릅니다.


  소설가 한 사람 힘으로는 사회를 바꿀 수 없기에 ‘상상’이 아닌 ‘성·화·분노’만 마음에 품어야 할 수 있습니다. 성이든 화이든 분노이든, 이러한 것으로도 얼마든지 문학을 빚을 수 있습니다. 성을 낼 수밖에 없는 모습이나 얼거리인 한국 사회이기에 성을 내면서 글을 쓸 수밖에 없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 나라나 사회에 성을 낸다면, 아직까지 아름다움도 사랑스러움도 기쁨도 이 나라나 사회에 깃들지 않았다고 느끼기 때문이 아닐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참다운 아름다움과 사랑스러움과 기쁨이 싹이 터서 자랄 수 있기를 비는 마음입니다. 비록 ‘더럽혀진 한국말’이라 하더라도, 이 한국말을 갈고닦으면서 바로 이곳 이 삶자리에 아름다운 노래와 사랑스러운 웃음과 기쁜 꿈이 자랄 수 있기를 빕니다. 4349.2.2.불.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6 - 시골에서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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