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열 개의 눈동자를 가졌다 애지시선 35
손병걸 지음 / 애지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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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노래하는 시 108



아이는 빛노래로 아빠를 키우고

― 나는 열 개의 눈동자를 가졌다

 손병걸 글

 애지 펴냄, 2011.3.19. 9000원



  시를 쓰는 손병걸 님은 서른 살 즈음에 눈을 잃었다고 합니다. 서른 살 즈음까지는 언제나 ‘두 눈으로 몸소 본 것’만 믿고 살았다는데, 두 눈을 잃고 난 뒤로는 ‘두 눈으로 볼 수 없는 것’을 믿고 살아야 하는 하루가 되었다고 해요.


  두 눈으로 보다가 두 눈을 쓸 수 없으면, 그야말로 삶이 뒤바뀌지요. 두 손을 쓰다가 두 손을 쓸 수 없어도, 또 두 다리를 쓰다가 두 다리를 쓸 수 없어도, 아니 손가락 하나만 다쳐도 삶은 뒤바뀌지 싶습니다.


  나는 두 눈으로 바라봅니다. 두 손을 쓰고 두 다리를 움직입니다. 빨래를 할 적에 빨래기계한테 맡기기도 하지만, 으레 두 손으로 복복 비비고 헹굽니다. 두 손으로 밥을 짓고, 두 다리로 자전거 발판을 구릅니다. 아이들을 이끌고 읍내로 저잣마실을 나가면 가방 가득 먹을거리를 챙겨서 집으로 돌아옵니다. 아이들이 졸립거나 힘들다 하면 무거운 가방을 짊어진 채 한 아이를 한팔로 안고, 다른 아이도 다른 한팔로 안으며 걷기도 해요. 그런데 이렇게 눈이며 손이며 다리이며 온몸이며 쓰다가, 그만 어느 한 곳이 다치면 아무것도 못 하기 일쑤예요.



저수지 둑길을 걷는데 / 사람들이 던지는 돌멩이에 / 고인 물 일어나는 소리 / 천 년의 잠을 깨는 것 같아서 / 화들짝 귀가 열렸다 (소리를 보다)


들숨 날숨 몰아쉬며 / 숨이 넘어가도록 / 땀을 쏟는 일이겠지 (하모니카 소리)



  시집 《나는 열 개의 눈동자를 가졌다》(애지,2011)를 읽으면서 가슴이 짠합니다. 손병걸 님은 처음 두 눈을 잃어야 하던 무렵, 그야말로 술로 하루를 보냈다고 털어놓아요. 하루 마시고 이틀 마셔도 허전함이 가시지 않았겠지요. 한 주 마시고 두 주 마셔도 아쉬움이 가시지 않았겠지요. 한 달이고 두 달이고 내처 마셔도 쓰라림도 아픔도 가시지 않았겠지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두 눈으로 보아야만 믿던 삶이었는데, 이제 두 눈으로는 볼 수 없다면, 오직 귀로 듣고 살갗으로 느껴야 하는 삶이라면, 그리고 두 눈이 아닌 마음으로 보아야 하는 삶이라면 어떤 길을 걸어야 할까요?



직접 보지 않으면 / 믿지 않고 살아왔다 // 시력을 잃어버린 순간까지 / 두 눈동자를 굴렸다 (나는 열 개의 눈동자를 가졌다)


점자책을 펼치니 / 와르르 쏟아진다 / 놀란 가슴 쓸어내리며 / 흩어진 점자를 더듬어 가는데 / 들려온다, 별들의 이야기 (빛의 경전)



  우리 집 아이들이 틈틈이 피아노를 치거나 피리를 불 적에 가만히 눈을 감고 소리를 듣습니다. 아이들하고 마당에 서서 눈을 살며시 감고 바람소리를 듣습니다. 밤에 뒤꼍에 올라 별잔치를 올려다보면서 저 별에서 이 지구로 흘러오는 빛살뿐 아니라 소리는 무엇일까 하고 귀를 기울입니다.


  밥을 끓이면서 밥 끓는 소리를 듣고 밥 익는 냄새를 맡습니다. 밥상을 차리면서 이 밥을 맛나게 함께 먹을 아이들을 떠올립니다. 설거지를 하면서 ‘우리 집에서 설거지하는 물’이 되어 주기까지 골짜기를 흐르던 물줄기를 헤아립니다. 빨래를 마치고 마당에 널면서 ‘옷가지를 보송보송 말려 주는 햇볕’에는 어떤 기운이 서렸는가 하고 되새깁니다.



잊고 있었다 / 어둠 속에서도 숲은 / 묵묵히 자란다는 것을 / 모르고 있었다 / 왜, 저 빌딩들이 숲을 향해 / 서서히 기울어져 가는지 (어느 숲)


깨진 유리컵에 베인 손가락 / 점자책을 더듬을 때 아파서 / 며칠째 한 페이지도 넘어가지 못한 / 내 손가락 끝에 박힌 눈 (손가락 끝에 박힌 눈)



  손병걸 님은 시를 쓰면서 이녁 아이를 새삼스레 돌아봅니다. 시집 《나는 열 개의 눈동자를 가졌다》에는 두 눈을 잃은 아픔도 드러나지만, 두 눈을 잃고서 새롭게 뜬 ‘마음눈’ 이야기도 흐르고, 무엇보다도 손병걸 님 딸아이하고 얽힌 기쁜 사랑이 새삼스레 흘러요. 이제까지 느끼거나 헤아리지 못했다고도 할 만한 새로운 사랑이지요.



아빠 식사해요 / 밥때만 되면 / 아이의 목소리 들린다 // 자식이라고는 단 하나 / 고작, 초등학교 3학년 / 생일이 빨라서 3학년이지 / 이제 아홉 살짜리다 // 밥상에 앉으면 / 이건 김치, 빨개요 / 요건 된장찌개, 뜨거워요 / 두 눈이 안 보이는 아빠를 위해 / 제 입에 밥알이 어찌 되든지 말든지 / 오른쪽에 뭐 왼쪽에 뭐 / 아이의 입은 바쁘다 (아이가 아빠를 키운다)



  밥때만 되면 아빠를 챙기는 아홉 살 딸아이 목소리를 들으면서 손병걸 님은 ‘밥이 입으로 넘어가는지 코로 넘어가는지’ 모르겠지요. 아홉 살 딸아이도 이것저것 알려주느라 ‘입이 바쁘’고, 이런 딸아이 사랑을 받으면서 숟가락을 드는 손병걸 님도 밥을 먹는지 사랑을 먹는지 눈물을 먹는지 웃음을 먹는지 모르도록 ‘입이 바쁘’겠지요.


  이 깜찍하고 상냥하며 착하고 어여쁜 딸아이 몸짓과 얼굴을 보고 싶은 마음이 얼마나 클까요. 이렇게 아름다운 마음씨를 베푸는 딸아이 숨결과 넋을 보고 싶은 마음이 얼마나 클까요.



먹먹한 사연이 끝나고 / 이어지는 출연자 소녀가장 / 사회자 : 올겨울 추위를 어떻게 해요? / 소녀 : 연탄불 구멍을 열면 돼요. (생방송)



  사랑은 눈으로 볼 수 있을까요? 사랑은 마음으로 볼 수 있을까요? 모름지기 사랑은 눈으로도 보고 마음으로도 볼 텐데, 두 눈을 감으면 한결 환하면서 고요하게 드러나지 싶어요.


  코앞에 잔칫밥을 차려야 사랑이지 않아요. 눈앞에 값진 선물을 늘어놓아야 사랑이지 않아요. 비싼 밥집에 찾아가서 밥술을 들어야 사랑이지 않을 테지요? 아홉 살 아이가 이것저것 알려주는 목소리에 맞추어, 김치요 된장찌개요 밥이요 반찬이요 물이요 하고 느끼는 손길로 받아들이는 수수한 밥 한 그릇에서 따사로운 사랑을 알아차리겠지요?


  두 눈을 잃은 손병걸 님이지만, 마음에 있는 눈을 새로우면서 크게 뜨는 삶을 짓는 손병걸 님이리라 생각합니다. 아니, 두 눈을 한동안 고요히 감으면서, 마음에 깃든 열 가지 눈동자뿐 아니라 스무 가지 백 가지 천 가지 그윽한 눈동자를 기쁨으로 새롭게 뜨는 손병걸 님 발걸음이리라 생각해요.


  오늘 하루도 아이들하고 기쁨으로 살림을 짓는 하루를 누리면서 이 보금자리를 돌아봅니다. 사랑은 우리 눈앞에 있다는 대목을 다시금 돌아봅니다. 먼발치가 아니라 우리 곁에, 저 먼 별나라가 아닌 우리 살림살이마다 고운 사랑이 흐른다는 대목을 찬찬히 돌아봅니다.


  눈을 떠야지요. 사랑을 알아볼 수 있는 눈을 떠야지요. 사랑으로 하루를 누리려는 눈을 번쩍 떠야지요. 4349.2.4.나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6 - 시골에서 시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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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비클럽 난 책읽기가 좋아
티에리 르냉 지음, 한지선 그림, 최윤정 옮김 / 비룡소 / 200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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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어린이책 읽는 삶 134



값비싼 장난감으로는 동무를 못 사귄다

― 바비 클럽

 티에리 르냉 글

 한지선 그림

 최윤정 옮김

 비룡소 펴냄, 2005.1.13. 7000원



  아이들은 저한테 남보다 값지거나 비싸거나 좋은 것이 있을 적에 ‘자랑’을 하고 싶을까요? 아니면 저한테 있는 어떤 것을 이웃이나 동무하고 ‘나눔’을 하고 싶을까요? 다른 동무들 앞에서 ‘내 것 뽐내기’를 하면 기쁘거나 즐거울까요? 아니면 여러 동무들하고 오순도순 도란도란 아기자기 신나게 놀 적에 기쁘거나 즐거울까요?


  티에리 르냉 님이 글을 쓰고, 한지선 님이 그림을 넣은 어린이문학 《바비 클럽》(비룡소,2005)을 가만히 읽으면서 생각에 잠깁니다. 내 어릴 적을 더듬으니, 사내는 사내대로 로봇 같은 장난감을 학교로 가져와서 동무들한테 보여주기를 즐겼고, 가시내는 가시내대로 인형 같은 장난감을 학교로 가져와서 동무들한테 선보이기를 즐겼습니다. 내가 다닌 학교에 부잣집 아이는 거의 없었기에 ‘자랑’할 동무는 거의 없었고, 자랑하려고 뭔가를 가져왔다가는 주먹힘이 센 아이한테 빼앗기기 일쑤였습니다.


  학교에서는 어떤 장난감이든 집에서 가져오지 말라고 했어요. 학교는 공부하는 곳이니까 장난감을 가져오지 말라는 얘기는 옳다고 느껴요. 그렇지만 아이들은 쉬는 때라든지, 낮밥을 먹는 때에 장난감으로도 놀고 싶습니다. ‘하지 마’나 ‘갖고 오지 마’라 말하지만 말고, ‘한번 가져와서 다 같이 놀아 볼까?’라 말하면서 장난감을 어떻게 다루어야 즐거운가를 ‘가르칠’ 수 있었으면 어떠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디에고가 히죽거린다. 축구공이 방금 바비 인형 캠핑카를 짓이겨 놓았다. 부서진 조각들이 사방으로 튀어나갔다. 저놈의 물건, 아마 200프랑은 나갈 것이다. (9쪽)


“선생님, 쟤가 그랬어요!” 상드라는 손가락질을 하면서 잡아먹을 듯이 말했다. 선생님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선생님은 학생들에게 증거가 없이 남을 몰아세우면 안 된다는 것을 가르쳐야 했다. 교육 과정에 그런 게 있었다. (15쪽)



  어린이문학 《바비 클럽》을 보면 여러 아이가 나옵니다. 맨 먼저, 이 이야기를 이끄는 사내 아이가 나옵니다. 다음으로, 학교에서 권력을 흔드는 어머니를 둔 부잣집 가시내 아이가 나옵니다. 부잣집 아이를 둘러싼 ‘바비 클럽’이 되는 가시내 아이들이 나오고, 마지막으로 아랍에서 프랑스로 넘어온 가시내 아이가 나와요.


  아이들은 학교에서 ‘어버이 권력’에 맞추어 똑같이 움직입니다. 어느 모로 보면 무서운 모습이에요. 어버이가 아이한테 고스란히 가르치거나 물려준 셈이거든요. 사회를 주름잡는 권력이나 이름값이 있는 어버이를 둔 아이들은 동무들 앞에서 똑같이 권력이나 이름값을 휘두르려고 해요. 교사는 학부모와 학생 사이에서 ‘교육 과정에 나온 대로 하는 어설픈 중립’을 지킵니다.


  모든 말썽과 실마리는 아이들이 스스로 풀어야 할까요? 어른인 교사는 팔짱을 끼기만 해야 할까요? 아이를 낳아 돌보는 어버이는 이녁이 거느리거나 휘두르는 권력을 아이들이 똑같이 따라하는 모습이 즐거울까요? 권력도 돈도 이름값도 없는 어버이를 둔 아이들은 ‘권력도 돈도 이름값도 높은 어버이를 둔 아이’한테 억눌리거나 짓눌려야 할까요?



이 아랍 아이는 이번 학기에 전학왔기 때문에 친구를 사귀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어느 날 그 유명한 인형을 하나 들고 나타나서 바비 클럽 여자애들한테 다가갔다. “나, 너희들이랑 놀아도 돼?” 오렐리는 찬성하지 않았다. 걔네 식구들은 아랍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냥 아랍 사람이라는 이유만으로. (21쪽)



  내 어릴 적을 다시 돌아봅니다. 내 동무들을 살피면 ‘바비 인형’처럼 돈값이 꽤 센 인형을 학교로 몰래 가져와서 ‘와 예쁘네’라든지 ‘나도 한번 만져 볼게’ 같은 말이 나오게 하는 아이도 있었지만, 다른 아이들이 더 많았습니다. 어떤 아이가 더 많았는가 하면, 두꺼운종이를 가위로 오리고 그림을 그린 ‘종이인형’을 손수 빚는 아이가 훨씬 많았어요.


  나는 사내입니다만, 나도 종이인형을 오렸어요. 내가 놀 종이인형이라기보다 다른 아이한테 줄 종이인형입니다. 처음에는 50원이나 100원을 받고 팔겠노라며 종이인형을 오리지만 아무도 안 사요. 그래서 나중에는 다 그냥 동무들한테 줍니다. 나한테서 종이인형을 한 번 두 번 받다 보니, 어느새 동무들은 나한테 종이인형을 그려 달라 하거나 오려 달라 합니다. 자꾸자꾸 종이인형을 그리다 보니 나도 모르게 솜씨가 늘어서 그저 재미로 종이인형을 오렸어요.



참을 수 없이 심술이 나서 아이들은 배가 아픈 것 같았다. 그렇다고 대장한테 뭐라고 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상드라네 할머니를, 그 다음에는 이렇게 비싼 것을 사 줄 수 없는 자기들 할머니들을 원망했다. 그래도 속이 시원하지 않았다. 아이들의 화는 곧바로 제밀라에게 미쳤다. 제밀라는 아랍 애니까. (40쪽)



  어린이문학 《바비 클럽》은 ‘바비 인형’을 둘러싸고 아이들 사이에서 ‘권력 다툼’이 생길 뿐 아니라 ‘따돌림’에다가 ‘인종 차별’까지 버젓이 일어나는 프랑스 사회를 그립니다. 여기에다가 ‘이 모든 말썽거리를 팔짱 끼고 구경하는 어른(교사) 모습’을 넌지시 나무라는 투로 보여줍니다. 이런 학교에서 주인공 사내 아이가 모든 말썽거리를 한꺼번에 풀어내는 멋진 생각을 보여줍니다. ‘바비 클럽’에서 우두머리가 되는 부잣집 아이가 아랍 아이를 못살게 굴면서 꼬투리를 잡으려고 할 적에 주인공 사내 아이가 꾀를 써요. 아랍 아이가 고빗사위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빠져나올 구멍을 아무도 몰래 마련하면서, 부잣집 아이가 반 아이들과 교사 앞에서 부끄러운 짓을 하는 셈이 되도록 꾀를 써요.


  이야기 마지막을 보면서 후유 하고 한숨을 쉽니다. 아이들은 이 이야기책에 나오듯이 아직 철이 없어서 동무를 괴롭히기도 하고, ‘부자인 어버이나 할머니’가 있느냐 없느냐로 투정을 부리기도 합니다. 이때에 어버이나 어른이 슬기롭지 않으면 아이들은 엉뚱한 길을 배워요.


  참말로 학교에서 ‘인형놀이 교육’이나 ‘장난감 교육’도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가난한 집 아이나 부잣집 아이나 모두 즐겁게 ‘종이인형 오리기’를 하면서, 모든 장난감이나 인형은 우리가 손수 지어서 즐길 수 있다는 대목을 가르치거나 보여줄 수 있다면 얼마나 아름다울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나는 틈틈이 새 종이인형을 오려서 우리 집 아이들한테 보여줍니다. 아이들은 꾸준히 새 종이인형을 다시 오리고, 나이가 드는 동안(한 살 두 살 더 먹는 동안) 아이들이 오리는 종이인형은 한결 거듭납니다. 두꺼운종이로 된 과자상자라든지 골판종이는 모두 종이인형을 오릴 밑종이가 돼요. 값비싸게 장만해야 하는 인형이나 장난감으로는 동무를 참답게 사귈 수 없다는 대목을 아이들이 배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동무를 참답게 사귀는 길은 서로 아끼고 보살필 줄 아는 마음이 될 때입니다. 살가운 마음이 깃든 장난감으로, 또 살가운 마음이 흐르는 손길로 서로 마주할 수 있기를 빌어요. 4349.2.4.나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6 - 어린이문학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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묶음표 한자말 222 : 선인(善人)



선인(善人) : 선량한 사람


선인(善人)이니

→ 착한 사람이니

→ ‘착한이’이니

→ 상냥한 사람이니



  ‘선인’이라는 한자말은 “선량한 사람”을 뜻한다는데, ‘선량(善良)’이라는 한자말은 “행실이나 성질이 착함”을 뜻한다고 해요. 그러니까, ‘선인 = 착한 사람’인 셈입니다. 한자말로 ‘선인’이라고만 쓰기보다는 한국말로 ‘착한이’라고 새말을 빚어서 쓸 만합니다. ‘착한이·좋은이·나쁜이·못된이’ 같은 낱말을 알맞게 지어서 쓸 만해요. 4349.2.4.나무.ㅅㄴㄹ



뭐 하는 인간인가 수상쩍던 공주님은 미워하는 게 죄라는 선인(善人)이니

→ 뭐 하는 사람인가 아리송하던 공주님은 미워하는 게 잘못이라는 착한 사람이니

→ 뭐 하는 사람인가 알쏭달쏭하던 공주님은 미워하면 잘못이라는 착한 사람이니

《김민희-젤리장수 다로 1》(마녀의책장,2010) 158쪽


(최종규/숲노래 . 2016 - 우리 말 살려쓰기/말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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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들보라는 우체국에서 놀아



  우체국으로 나들이를 간 산들보라는 이쪽에서 저쪽으로 싱싱 달린다. 시골 면소재지 우체국은 널따랗고, 이 널따란 곳을 찾는 손님은 매우 적다. 도시에 있는 우체국은 어디나 무척 좁으면서, 이 좁은 곳을 찾는 손님은 참 많다. 시골아이는 시골 우체국을 놀이터처럼 삼는다. 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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묶음표 한자말 226 : 지근至近



지근거리(至近距離) : 지극히 가까운 거리

지근(至近)하다 : 거리나 정의(情誼) 따위가 더할 수 없이 가깝다


지근至近거리

→ 매우 가까운 거리

→ 아주 가까운 곳

→ 바로 곁

→ 코앞



  “매우 가까운 거리”를 ‘지근(至近)’이라는 한자말로 나타낸다고 합니다. 그런데, 가까운 거리라면 “가까운 거리”라 하면 넉넉하고, 매우 가까운 거리라면 “매우 가까운 거리”라 하면 넉넉합니다. 그리고 “매우 가까운 거리”를 나타내는 한국말로 ‘코앞’하고 ‘눈앞’이 있어요. “바로 곁”이나 “바로 옆”이나 “바로 앞”이나 “바로 뒤” 같은 말을 써 보아도 잘 어울립니다. 4349.2.3.물.ㅅㄴㄹ



욕망은 상상의 지근至近거리에 있지만

→ 욕망은 상상과 가까운 거리에 있지만

→ 욕망은 상상과 매우 가까이 있지만

→ 욕망은 상상 곁에 있지만

《류대영-파이어스톤 도서관에서 길을 잃다》(생각비행,2016) 136쪽


(최종규/숲노래 . 2016 - 우리 말 살려쓰기/말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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