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10분 아빠 육아 - 할 일 많은 직장인 아빠의 육아법, "육아에 관심이 없다는 것은 자녀를 포기했다는 것이다."
안성진 지음 / 가나북스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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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배움책 37



아이를 사랑으로 키우는 아버지가 곱다

― 하루 10분 아빠 육아

 안성진 글

 가나북스 펴냄, 2015.11.25. 13000원



  《하루 10분 아빠 육아》(가나북스,2015)를 쓴 안성진 님은 아이들을 사랑하는 여느 아버지 가운데 하나입니다. 안성진 님은 회사원으로 일하기 때문에 아이들을 도맡아서 보살피지 못합니다. 다른 회사원도 엇비슷할 텐데, 아침에 일찍 일터로 가서 저녁에 늦게 집으로 돌아오지요. 아이들이 유치원을 다니거나 학교를 다닌다고 하더라도 아이들한테 밥을 챙겨 준다든지, 아이들 옷을 챙겨 입힌다든지, 아이들이 새롭게 배울 것을 찬찬히 살펴서 알려주기란 어려울 수 있습니다.


  이리하여 안성진 님으로서는 ‘하루 10분’을 다짐합니다. 적어도 하루에 10분씩 오롯이 아이하고 얼굴을 마주하면서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놀겠노라 하고 다짐합니다.



지금 중년 세대들의 어릴 적 부모들은 다 살갑지 않았다. 아이들은 그냥 저절로 크는 거라고 믿었다. 그러니 어떻게 키울 것인가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문제는 이렇게 훌쩍 크고 나니 부모 자식 간의 사이가 어색하다. (17쪽)


표현이 어색한 아버지들이 단골로 하는 말이 있다. ‘꼭 말로 해야 알겠느냐?’고. 이렇게 대답하고 싶다. ‘네, 꼭 말로 표현하세요!’라고. (24쪽)



  아이하고 하루 10분 동안 얼굴을 마주하겠노라 하는 다짐은 어떠할까요? ‘고작 10분’일까요? 아니면 ‘10분씩이나’일까요? 안성진 님은 《하루 10분 육아》라는 책을 빌어서 ‘10분’을 말씀하는데, 10분이란 두 가지 뜻입니다. 첫째, 참말로 꼭 10분은 아이하고 두 눈을 마주보면서 이야기를 나누자는 뜻이에요. 잔소리나 꾸중을 늘어놓는 10분이 아니라, 살가우면서 따스한 기운이 흐르는 이야기로 10분을 누리자는 뜻이에요. 둘째, 10분은 상징입니다. 아이하고 날마다 10분씩 살가이 이야기꽃을 피우거나 놀이를 즐길 줄 안다면, 10분이 아닌 한 시간이나 두 시간도 얼마든지 이야기꽃을 피울 만합니다. 온 하루를 마음껏 누릴 수 있어요.


  이를테면 설이나 한가위에 모처럼 ‘회사일을 안 하고 쉰다’고 한다면, 이때에 이 나라 수많은 여느 아버지는 아이하고 어떤 나날을 보낼까요? 회사 걱정을 안 해도 되는 며칠 동안 아이하고 얼마나 재미있는 하루를 지을까요?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는 몹시 바쁘기에 주말에만 놀자고 아이를 달랜다면 ‘한집에 살아도 주말 아버지’가 될 텐데, 아이를 낳고도 ‘주말 아버지’로 산다면, 이러한 삶은 얼마나 기쁠 만할까 궁금하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아무리 바쁘거나 힘들더라도 ‘하루 10분’은 꼭 아이를 바라보고 아이만 생각하며 아이하고 함께 짓는 보금자리 살림살이를 돌아볼 수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하루 10분 육아》라고 할 만합니다.



심신이 지쳐 힘들 때도 아이들과 놀아 줄 수 있어야 하고 기분이 다운되어 있어도 아이들과는 즐겁게 대화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30쪽)


평소 아이와 대화가 없는 아빠라면 아이의 마음을 읽을 기회를 갖지 않는 것과 같다. (48쪽)


정작 중요한 것은 아이에 대한 진심 어린 관심과 사랑이다. 아무리 돈이 많아도 여기에 소홀하면 실패하는 육아를 하는 것과 같다. (61쪽)



  아침이 되면 마당으로 내려가서 나무를 바라보며 아침 인사를 합니다. 저녁을 지나 밤이 가까우면 손발을 씻고 옷을 갈아입은 뒤에 다시 마당으로 내려와서 하늘을 바라보며 별한테 밤 인사를 합니다.


  나는 온 하루를 아이들하고 함께 보냅니다. 나는 시골집에서 밥짓고 빨래하고 집안일을 도맡는 아버지로 지냅니다. 이러면서 집살림을 건사하는 일을 합니다. 한 해에 몇 차례쯤 혼자 바깥일을 보러 시골집을 떠나는 날이 있지만, 아침부터 밤까지 늘 아이들 곁에서 하루를 보냅니다.


  어느 모로 본다면 나는 아이들하고 ‘하루 10분’이 아닌 ‘하루 내내’ 지낸다고 할 텐데, ‘때와 곳(시간과 공간)’을 함께 보낸다고 해서 ‘아이 마음 읽기’를 늘 한다고는 여길 수 없습니다. 밥상맡에 함께 둘러앉는다고 해서 ‘하루 10분’이 아니라, 밥상맡이 아이들한테 ‘즐겁게 웃으며 이야기를 누릴 자리’가 되도록 북돋울 때에 비로소 ‘하루 10분’인 셈이에요.


  나무한테 인사를 하든, 별한테 손을 흔들든, 달과 해를 함께 바라보든, 흙과 풀을 함께 만지든, 자전거를 함께 달리든, ‘같이 있다’를 넘어서 ‘같이 짓는다’는 이야기가 있어야 비로소 ‘하루 10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 아이들을 위해 투자하는 시간은 아이들도 즐겁고 부모인 나도 즐거운 일이다. (73쪽)


아이와 함께 나가게 되면 이렇게 한 번 해 보기 바란다. 아이가 집에 가자고 할 때까지 아무 말 않고 그냥 놀아 주는 것이다. (115쪽)


이제 초등학교 5학년, 3학년인 아이들에게 저녁이면 책을 읽어 준다. 결심한 대로 매일 읽어 주기가 쉽지는 않지만 말이다. (162쪽)



  안성진 님은 《하루 10분 아빠 육아》라는 책 겉그림에 “육아에 관심이 없다는 것은 자녀를 포기했다는 것이다” 같은 글월을 뚜렷하고 새겨 넣습니다. 아이를 돌보는 몫은 어머니한테 넘길 일이 아닐 뿐 아니라, 돌봄이 아줌마를 쓴다고 될 일이 아니요, 아이들을 시설이나 학교나 학원에 보내면 끝이 나는 일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아이들은 어버이한테서 배우려고 태어나니까요. 아이들은 어버이하고 함께 살면서 생각을 키우고 사랑을 받으려고 태어나니까요. 아이들은 어버이하고 어깨동무하면서 이 삶을 아름답게 가꾸려는 꿈을 품으려고 태어나니까요.


  《하루 10분 아빠 육아》를 읽으면, 안성진 님은 ‘아이 아버지’인 이 땅 ‘이웃 아버지’들한테 ‘육아책’을 바지런히 챙겨서 읽자는 이야기를 힘주어 밝히기도 합니다. 오늘날 아버지로 사는 수많은 한국 사내는 어려서부터 ‘아이 돌보기’를 제대로 배운 적이 없으니, 아이를 낳은 뒤에라도 아이를 어떻게 돌보아야 하는가를 처음부터 차근차근 배우자고 이야기해요. 이제껏 제대로 배운 적이 없으니 집일이나 아이한테 등을 돌리면서 회사일이나 바깥일만 챙기는 몸짓이 되지 말고, 아이가 모든 삶을 새롭게 배우듯이 아버지도 모든 집일이나 돌봄을 새롭게 배울 노릇이기도 합니다.



어떤 일이든 즐거워야만 오래 꾸준히 할 수 있다. 즐겁지 않은 일을 의지만 가지고 해내기란 쉽지 않다 … 사랑하게 되면 대상에 대해 알고 싶어진다. 반대로, 알게 되면 더 좋아지고 사랑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우리는 잘 알고 있는 것 익숙한 것에 관심을 가지고 더 배우고 싶어한다. (190쪽)



  우리는 모두 아기로 이 땅에 태어났어요. 나도 곁님도 아이들도 모두 아기로 태어났어요. 나는 어릴 적에 우리 어버이한테서 넉넉히 사랑받았을 수 있고, 제대로 사랑받지 못했을 수 있어요. 나는 어릴 적에 어떤 나날을 보냈든, 오늘 이곳에서 아이들하고 새롭게 보금자리를 지으면서 살림을 가꾸는 어버이입니다. 그러니까, 내가 어릴 적에 기쁘게 사랑받은 아이로 자랐으면, 오늘 이곳에서 우리 아이들한테 기쁘게 사랑을 물려주는 살림을 꾸리면 돼요. 내가 어릴 적에 제대로 사랑받지 못하는 아이로 자라야 했으면, 오늘 이곳에서 새롭게 사랑을 길어올려서 우리 아이들한테 새로 짓는 사랑을 나누어 주는 살림을 꾸리면 되고요.


  아이는 언제나 사랑을 바란다고 느낍니다. 아이는 저희한테 돈을 달라 하지 않아요. 아이는 늘 사랑을 바라지요. 아이는 저희한테 장난감을 달라 하지 않아요. 때로는 장난감을 놓고 투정을 할 테지만, 아이는 ‘사랑’하고 ‘장난감’ 사이에서 늘 사랑을 손에 쥐고 싶어요. 그러면 우리 어버이들은, 우리 아버지들은, ‘사랑’하고 ‘일’ 사이에서 어느 쪽 길을 걸을 때에 즐거울까요? 삶을 곱게 짓는 슬기로운 숨결은 어떻게 가꿀 만할까요?


  하루 10분이 어렵다면 하루 1분이라도 아이하고 웃음으로 노래하고 춤추면서 이야기하는 몸짓이 될 수 있어야지 싶습니다. 하루 10분을 누린다면 하루 11분, 하루 12분, 하루 13분 …… 이렇게 시간을 늘리면서 더욱 재미나면서 알찬 나날을 짓는 몸짓이 될 수 있어야지 싶어요.


  아이를 사랑으로 키우는 아버지가 고운 어른으로 일어서리라 생각해요. 아이를 사랑으로 돌보는 아버지가 착한 어른으로 우뚝 서리라 생각해요. 아이를 사랑으로 어깨동무하는 아버지가 참다운 슬기로움을 가슴에 품는 어른으로 살아가리라 생각해요. 4349.2.11.나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6 - 시골에서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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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로 읽는 책 276] 피어날 꿈



  아름답게 피어날 꿈을

  고요히 품는

  씨앗 한 톨



  씨앗을 심어서 볕과 바람과 비가 따스한 숨결로 드리우도록 돌볼 때에 열매를 거둡니다. 땅에 심는 씨앗도, 마음에 심는 씨앗도, 삶에 심는 씨앗도, 모두 알뜰살뜰 가꾸고 돌보면서 아름답게 피어날 꿈이 되기를 빕니다. 즐겁게 누릴 하루를 바라면서 씨앗을 심어요. 즐겁게 맞이할 새 하루를 바라면서 씨앗을 돌보아요. 즐겁게 일굴 이 길을 헤아리면서 씨앗을 고이 품어요. 2016.2.10.물.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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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름벼리는 동생한테 가르쳐 주지



  ‘햇볕이 내리쬔대서 더운 날씨가 아니란다. 겨울이거든. 이따가 해가 넘어가면 춥지. 그러니까 겉옷을 집에 놓고 나갈 수 없어.’ 이런 말을 큰아이한테 들려주면 큰아이는 겉옷을 머리에 척 얹는다. 손은 안 낀다. 이렇게 하면 덥지 않단다. 그리고 이런 옷차림을 동생한테 가르쳐 준다. 큰아이도 작은아이도 겉옷을 머리에 얹고서 달리기를 한다. 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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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량한 말 바로잡기

 보호 保護


보호를 받다 → 보살핌을 받다

중소기업의 보호가 시급하다 → 중소기업을 서둘러 지켜야 한다

법으로 보호되다 → 법으로 지켜 주다 / 법으로 보살피다

어린이를 보호하다 → 어린이를 돌보다 / 어린이를 지키다

자연을 보호하다 → 자연을 지키다 / 자연을 돌보다


  ‘보호(保護)’는 “1. 위험이나 곤란 따위가 미치지 아니하도록 잘 보살펴 돌봄 2. 잘 지켜 원래대로 보존되게 함”을 뜻한다고 합니다. ‘보존(保存)’은 “잘 보호하고 간수하여 남김”을 뜻한다고 해요. 한국말 ‘보살피다’는 “정성을 기울여 보호하며 돕다”를 뜻한다 하고, ‘돌보다’는 “관심을 가지고 보살피다”를 뜻한다 해요. 한국말사전에 나오는 이런 말풀이를 살피면 ‘보호·보존’뿐 아니라 ‘보살피다·돌보다’도 제대로 알 길이 없습니다. ‘보호 = 보살펴 돌봄 + 보존되게 함’이라는데 ‘보살피다 = 보호’라 하고, ‘돌보다 = 보살피다’라 하며, ‘보존 = 보호’라 하니까요.


  다만, 한국말사전 말풀이를 들여다보면 ‘보호’는 ‘보살피다’나 ‘돌보다’라는 한국말로 손질할 만하다는 대목을 알 수 있습니다. ‘보존’은 ‘간수하다’나 ‘남기다’나 ‘지키다’로 손질할 만합니다. 2016.2.10.물.ㅅㄴㄹ



머리는 가슴 밑에서 보호할 수 있지

→ 머리는 가슴 밑에서 보살필 수 있지

→ 머리는 가슴 밑에서 지킬 수 있지

《권혁도-세밀화로 보는 나비 애벌레》(길벗어린이,2010) 13쪽


꽃과 동물들을 보호하고

→ 꽃과 짐승들을 돌보고

→ 꽃과 짐승들을 보살피고

→ 꽃과 짐승들을 지키고

→ 꽃과 짐승들을 아끼고

《재닛 차터스/김혜진 옮김-꽃밭의 장군》(뜨인돌어린이,2011) 20쪽


나를 보호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 나를 보살핀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 나를 돌본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 나를 지켜 준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배리 존스버그/정철우 옮김-내 인생의 알파벳》(분홍고래,2015) 34쪽


(최종규/숲노래 . 2016 - 우리 말 살려쓰기/말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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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의 수학 - 옥스퍼드대 김민형 교수의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수학 강의
김민형.김태경 지음 / 은행나무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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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 삶읽기 230



과자 한 조각을 넷으로 나누려는 셈놀이

― 수학의 수학

 김민형·김태경 글

 은행나무 펴냄, 2016.1.13. 12000원



  작은아이가 “동그란 과자 하나 먹어도 돼요?” 하고 묻습니다. “하나만?” “응. 하나만.” 아이는 동그랗게 생긴 모습으로 하나를 먹고 싶다 말합니다. 그러면 동그란 모습을 작게 잘라낸 조각은 그대로 하나일까요, 아닐까요?


  동그란 과자가 하나만 있을 적에 아이한테 되묻습니다. “하나만 있는데 어떻게 하지? 네 사람이 먹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넷을 알맞게 잘라서 조각을 내면, 넷이 ‘모두 하나씩’ 받을 수 있습니다. 하나는 넷이 됩니다. 또는 두 사람이 안 먹고 두 조각으로 내면 둘이서 ‘저마다 하나씩’ 받습니다. 하나는 하나이면서 넷이 되다가 둘이 되지만 늘 하나입니다.



수가 무엇인지에 대한 피타고라스의 대답은 “모든 것이 수이다”라는 피타고라스의 유명한 언설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 이는 바꾸어 말하자면 우리의 모호한 질문에 대해서 우주의 모든 삼라만상을 이루는 기본 요소가 바로 수라는 답을 준 것이다. (15쪽)


물리학자들은 힘이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을 제쳐두고 먼저 적절히 수학적으로 공식화한 다음, 그것의 성질을 공부하기 위해 힘을 측정하는 방법을 생각하고 관련된 이론을 전개해 나갈 뿐이다. (19쪽)



  김민형 님과 김태경 님이 함께 쓴 《수학의 수학》(은행나무,2016)을 읽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수학 강의’라는 이름이 붙은 책입니다. 우리 삶을 둘러싼 수(숫자)를 수식과 이야기로 풀어내는 책이니, 어느 만큼 수식이 익숙할 때에 이 책에서 들려주는 이야기를 알아들을 만하리라 봅니다.


  아이들은 아직 수식을 모르니 이 책을 읽을 수 없습니다. 수식을 알 만한 청소년이나 어른이라면 혼자서 읽을 만할 테고, 아이들한테는 어른이 먼저 읽고서 이야기를 들려줄 만하리라 생각해요.


  《수학의 수학》에 나오는 피타고라스 이야기를 읽다가 문득 ‘구고 정리’를 떠올립니다. 나는 고등학교를 마치도록 ‘구고 정리’ 이야기를 듣거나 배우지 못했습니다. 고등학교를 마친 뒤에 《한국수학사》(김용운·김용국 씀)라는 책을 읽으면서 이때에 ‘구고 정리’를 처음으로 알았어요. 피타고라스보다 훨씬 앞서 중국에서 갈무리했다는 수학 이야기예요. 《한국수학사》를 읽으면 한국에서도 오랫동안 수학을 가르치거나 배웠다는 이야기가 나와요. 그러나 학교에서는 이런 이야기를 가르치거나 알려주지 않습니다. 교과서에 나오는 수학은 모두 서양 수학이고 서양 이야기였어요.



처음에 제기되었을 때는 너무나도 어려웠던 개념들, 어려운 연산들이 인류가 점점 이해의 폭을 넓혀 오면서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고, 결국 집단의 미성년들에게 지식으로서 전달하게 되는 일은 위와 같이 너무나 흔한 일이다. (32쪽)


어려워 보이는 문제를 일시적으로 더 어렵게 만든 것이 쉬운 답을 이끌어내는 실마리가 된 것이다. (44쪽)



  내가 학교에 다닐 무렵을 돌아보다가, 우리 아이들하고 함께 공부를 하는 요즈음을 헤아립니다. 수학을 익히든 철학을 배우든, 서양 수학이거나 한국 철학이거나 대수롭지는 않다고 느껴요. 우리는 그저 수학을 익히거나 철학을 배울 뿐이니까요. 누가 먼저 찾아낸 연산이나 수식이든, 이러한 연산이나 수식을 삶에 받아들이면서 살림을 가꾸는 길에 쓸 수 있을 때에 ‘아름다움’을 이루지 싶어요. 《수학의 수학》에서도 말하듯이 “집단의 미성년들에게 지식으로서 전달(32쪽)”하는 일은 어른이자 어버이로서 기쁨이면서 아름다운 보람이 된다고 느껴요.


  아이들한테 수(숫자)를 가르치고 말을 가르치며 살림살이를 가르치는 동안 생각을 북돋우거나 가꿉니다. 하나부터 백까지 모든 숫자를 더하는 길을 아주 쉽게 풀어낸 가우스 이야기는 바로 생각을 가꾸고 살림을 북돋우는 길을 밝히는 숱한 보기 가운데 하나예요. 이른바 “어려워 보이는 문제를 살짝 더 어렵게 바꾸어 외려 쉽게 풀이법을 찾는” 길이 나오거든요.


  이를테면 이런 보기를 들 만해요. 가우스는 ‘(1+100) + (2+99) + …… (50 + 51)’을 묶음으로 바라보았다면, 짐을 나를 적에도 ‘하나부터 백에 이르기까지’ 따로따로 들어서 나르기보다는, 알맞은 부피와 무게를 살펴서 함께 들어서 나를 수 있어요. 때로는 수레를 빌어 짐을 나를 수 있지요. 수레를 쓰든 어깨에 짐을 얹든, 왼쪽과 오른쪽이 무게가 어우러져야 하고, 앞과 뒤에도 무게를 골고루 나누어야 해요. 이러한 일이나 살림도 모두 수(숫자)라고 할 만합니다.



‘수가 무엇이냐’에 대한 답을 주려고 할 때 어떤 것이 ‘수’라는 성질이 그 물체 자체에 의해서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앞서 보았듯이 처음에는 수와 아무런 관련도 없어 보이는 곡면이나 곡선, 반도체에도 연산을 줄 수 있었다. 그것보다는 수 체계를 이루는 자연스러운 집합 속에 들어가는 것이 수라는 것이 답이다. (73쪽)



  과자 한 조각을 넷으로 나누면 네 조각입니다. 네 조각을 붙이면 한 조각입니다. 하나는 넷이 될 수 있고, 넷은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한 조각씩 받은 네 사람은 이 조각을 둘로 나누어 모두 여덟 조각이 되도록 할 수 있는데, 여덟 조각을 나란히 붙이면 다시 하나가 됩니다. 작은 조각은 더 작은 조각으로 쪼갤 수 있고, 그야말로 수없이 작은 조각으로 가를 수 있으니, 작은아이가 “과자 하나만?” 하고 물을 적에 잘게 자른 조각을 건네면서 “자, 여기 ‘하나’야.” 하고 말할 수 있어요. 또는 “아까 네가 먹어서 뱃속에 있는 ‘하나’가 있는걸?” 하고 말할 수 있습니다.


  밥 한 그릇에 쌀알이 몇이 들어갈까 하고 헤아리는 놀이를 할 수 있습니다. 나락 한 알에서 볍씨를 몇 알을 얻을 수 있을까 하고 살피는 놀이를 할 수 있어요. 이 두 가지를 해 본다면, 네 사람이 한 해 동안 먹는 쌀알 숫자를 가늠하면서, 네 사람이 논을 부칠 적에 나락을 몇 포기 심어야 하고, 논을 얼마만한 넓이로 가꾸어야 하는가를 셈할 수 있습니다.



복소수가 진정한 수 체계로 받아들여진 것은 복소수가 자연계에서 발견된 20세기부터가 아닌가 싶다. 특히 물질의 미세 구조를 묘사하는 양자역학은 복소수 없이는 불가능한 이론이다. 양자역학에 의하면 물리적인 시스템의 물리량들은 확실하게 값이 정해지지 않고 그것의 어떤 확률적인 분포밖에 알 수 없다고 한다. (150쪽)



  《수학의 수학》이라는 책을 덮으면서 ‘수(數)’라는 낱말을 곰곰이 돌아봅니다. 이 한자는 ‘세다’를 뜻합니다. ‘세다’에서 ‘셈’이 나오고, 컴퓨터를 가리켜 ‘셈틀’이라 일컫기도 합니다. ‘세다’는 ‘헤다’와 같은 낱말이며, ‘헤다’에서 ‘헤아리다’가 나왔으며, ‘헤아리다’는 ‘생각하다’와 같은 낱말이기도 합니다. 한국말사전에서 ‘수’를 찾아보면 “1. 셀 수 있는 사물을 세어서 나타낸 값 2. [수학] 자연수, 정수, 분수, 유리수, 무리수, 실수, 허수 따위를 통틀어 이르는 말”이라고 풀이합니다. “세어서 나타낸 값”이니 ‘셈값’이 ‘수’라는 뜻이겠지요.


  그래서 날을 세면서 ‘하루 이틀 사흘’ 같은 말이 태어나고, 얼마나 있느냐를 세면서 ‘하나 둘 셋’ 같은 말이 태어납니다. 우리가 서로 나누는 꿈이나 사랑은 ‘셀’ 수는 없습니다만, ‘생각할’ 수는 있습니다. 다만 도표나 통계로 꿈이나 사랑을 나타낼 수는 없어도 마음속에 그림으로 그려 보일 수 있어요.


  ‘1 2 3’처럼 적는 글씨는 상징처럼 적는 기호입니다. ‘ㄱ ㄴ ㄷ’ 같은 글씨도 상징과 같은 기호이고요. 수학을 익히거나 배운다고 할 적에는 ‘삶자리에 있는 것’을 마음속으로 그리면서 나타내 보이려고 한다는 뜻이리라 느낍니다. 삶자리에 있는 것을 글씨(한글 같은 글씨)라는 기호로 옮겨서 마음을 나타내듯이, ‘1 2 3’이든 ‘하나 둘 셋’이든 ‘하루 이틀 사흘’이든, 이러한 기호를 빌어서 우리가 누리거나 이루는 삶을 그려서 나타내는구나 싶어요.


  모든 것은 셀 수 있고, 모든 것은 생각할 수 있습니다. 아니, 모든 것은 ‘세면’서 우리 앞에 나타나고, 모든 것은 우리가 스스로 ‘생각하’기에 우리가 느끼거나 알 수 있구나 싶어요. 어버이자 어른으로서 아이한테 수학을 가르치고 함께 배운다고 할 때에는 바로 이 대목 ‘세는 힘’과 ‘생각하는 슬기’를 북돋우려는 뜻이지 싶습니다. ‘세는 놀이’를 하면서 수학을 익히고, ‘생각하는 즐거움’을 헤아리면서 수학을 배웁니다. 4349.2.10.물.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6 - 시골에서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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